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6/01 제12호

구조조정을 더 쉽게 만들겠다고?

저성장시대, 선제적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운동의 전략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재벌 위기, 엄살인가 실제인가?

최근 대기업들의 인력 감축 구조조정이 심상치 않다. 신입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을 강요하다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은 두산인프라코어는 전체 직원 5000명 중 1000명 가까운 인력을 감축 중이고, 직접고용 종사자가 30만 명에 달하는 삼성그룹은 20퍼센트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년째 해양플랜트 사업 실패로 인한 대규모 적자와 수요 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조선 대기업들의 인력 감축은 이미 중소 조선사로까지 이어져 거제, 통영 등 조선소 밀집 지역의 지역경제 위기로 발전 중이다.

재벌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지표로도 확인된다. 아래 그래프는 한국의 30대 기업집단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을 역사적 추이로 살펴본 것이다. 당기순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눠준 이 지표는 이윤율과도 비슷하며, 기업의 장기 성장추이를 잘 표현해 준다. 그래프가 보여주듯 현재 자본의 수익률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수준까지 낮아졌다. 
 

30대 재벌이 다 같은 건 아니다. 삼성, 현대차와 나머지 재벌들은 규모나 경쟁력에서 3~30위의 재벌들과 차이가 크다. 재벌 관련 분석은 삼성과 현대차, 그리고 나머지 28개 재벌을 분리해 봐야 한다. 2014년 기준 30대 재벌 자본 총액의 42퍼센트, 순이익의 76퍼센트가 두 재벌의 소유다.

한국 재벌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07년까지 근 10년간 크게 성장했다. 삼성과 현대차는 그 성장세가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까지도 이어졌다. 재벌들이 외환위기 후에 갱생한 건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부채 부담을 줄여주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손실을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여기에 미국 주도 금융세계화는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자산 가격 상승에 기댄 소비를 급증시켰고, 그 소비를 충족시킨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줬다. 분식회계로 가까스로 부도를 면했던 재벌들이 2007년이 되면 자기자본수익률이 두 자릿수로 껑충 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자산시장 가격상승에 기댄 소비와 투자가 중단되자 한국 대기업들이 누리던 혜택도 사라졌다. 일부 수출품은 선진국 경쟁기업들이 재무위기에 빠지고 한국 환율도 크게 오른 덕분에 국제 경쟁력이 향상되기도 했지만, 삼성과 현대차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나머지 재벌들은 2010년 이후 상황이 나빠졌다. 삼성과 현대차도 작년부터 수익률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2014년 상황을 보면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재벌들의 자본수익률이 2퍼센트에 불과하다. 금리가 2~3퍼센트 대인 것을 감안하면 재벌들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바닥인 셈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상황이 조금 낫다. 둘은 여전히 9~10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 중인데, 그렇더라도 14퍼센트에 이른 2010년에 비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수익률 측면에서 보자면 재벌들로서는 1996~97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물론 수익률이 바닥이지만 그렇다고 1997년처럼 갑자기 대규모 줄도산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벌들의 재무적 안정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부채비율이 5년 전보다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30대 재벌 평균 부채비율은 170퍼센트 정도다. 외환위기 당시 재벌들의 부채비율이 분식회계로 엄청나게 부채를 줄인 상태에서도 200~500퍼센트였던 것에 비하면 꽤 나은 편이다. 한국 정부의 외환보유고 역시 3000억 달러가 넘어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 중인 재벌들의 구조조정은 부도 위기와 같은 벼랑 끝 상황에서의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 중단기적으로 꽤 절박한 대응이긴 하다. 조선, 에너지, 화학, 기계, 철강 등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재벌들은 산업적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자를 쥐어짜고, 정부의 눈먼 돈을 따내며 당분간 버틴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전략이다.
 

재벌의 구조조정 양상과 파급 효과

현 상황에서 재벌들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사업 규모 축소다. 미국의 금융세계화 성장 덕분에 커진 2000년대 사업 상당부분을 되돌려야 한다. 30대 재벌의 자본규모는 2002년 190조 원에서 2014년 930조 원 규모로 거의 5배가 커졌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이 2배 커진 걸 감안하면 얼마나 빠르게 자본 축적이 진행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20퍼센트 인력감축을 목표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삼성은 새 성장산업 육성보단 쥐어짜기식 비용절감을 핵심 전략으로 잡고 있는 듯하다. 국내생산 역시 대폭 줄이고 있어, 휴대폰은 상징적 수준에서만 구미에서 일부 생산 중이고, 광주에서 생산하던 국내 가전은 모두 해외로 이전했다. 몇 년 전까지 한국에서 대부분을 생산하던 반도체와 LCD도 작년부터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다.

주력 계열사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SK, GS, 한화 등에서도 구조조정이 소문 없이 진행 중이다. SK는 하이닉스가 큰 이익을 내 그룹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주력 부분인 에너지, 화학에서 손실이 누적되고 있고, 통신도 수익률이 감소해 그룹 전체적으로 사업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다. 포스코는 현대제철 사업 확장으로 시장 경쟁이 격화된 조건에서 이명박 정권 시절 벌였던 무분별한 자원 사업의 후과와 세계적 수요 감소에 직면해 역사상 최초로 계열사가 파산하는 사태까지 맞았다. GS는 소매업을 제외하면 정유, 건설 등 모든 부분에서 적자를 냈고, 한화 역시 금융 계열사 흑자 때문에 그룹 차원의 적자는 면했지만 화학, 건설 등 주력 제조업이 모두 적자를 크게 기록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위기를 가장 호되게 겪고 있다. 2000년대의 거품성장과 풍부한 금융 투자는 조선업을 최고의 호황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거품성장이 끝나자 조선 관련 금융이 제약되었고, 무역과 에너지 소비도 줄어 선박 발주량이 크게 줄었다. 더군다나 중국 조선업체들까지 경쟁에 가세해 조선업 과잉설비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때 재계 30위권에 오른 STX조선은 산산조각 분해 됐고, 해양플랜트에 눈을 돌렸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저가 수주 후폭풍으로 지금까지 수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업은 앞으로도 몇 년간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진과 두산은 30대 재벌 중 경영위기가 가장 심각한 편이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조조정을 진행 중으로, 두산그룹은 최근 신입사원에까지 희망퇴직을 강요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이 수년째 큰 적자를 내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대한항공마저 적자로 돌아서며 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두산그룹은 2009년 무리하게 인수한 건설장비 기업 밥캣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천억 원의 이자를 지불했고, 최근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공격적으로 진출한 신흥국 건설 경기까지 침체돼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두산그룹의 또 다른 주축 계열사인 두산중공업도 가동률이 떨어져 적자에 빠진 상태다. 

재벌들의 이런 인력 감축은 국민경제 전체를 뒤흔든다. 우선 직고용 노동자의 20~30퍼센트에 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1~2차 하청업체들의 고용에도 구조조정 효과가 곧바로 전달된다. 활황으로 인한 고용증가가 자본의 비용절약 전략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천천히 진행되는 데 반해, 불황 시기 고용감소는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자본의 재빠른 구조조정 전략 때문에 매우 빠르게 확산된다. 30대 재벌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130만 명에 불과하지만 30대 재벌의 매출은 140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보다도 많다. 30대 재벌의 구조조정은 공급사슬을 따라 국민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소유권은 제약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은 확대해야

현재 진행 중인 재벌들의 구조조정은 일시적 경기변동 탓이 아니라 장기 저성장으로 이야기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원인이다. 그만큼 약간의 정책지원이나 부분적 구조조정으로 해결될 수 없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연장이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제정은 국민경제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구조조정 관련 제도들은 재벌 총수의 이익은 건드리지 않고, 노동자와 국민경제 전체가 재벌의 손실을 떠안도록 하는 것들이다.

재무위기에 빠진 기업과 채권단의 협상, 즉 워크아웃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기촉법은 철저하게 재벌 총수의 경영권만 보호하며 기업과 노동자 모두를 빈사상태로 몰아넣는다. 2009년 이후 120곳의 워크아웃 신청기업 중 개시 이후 최대주주가 변경된 경우는 25개 기업에 불과했다. 그리고 워크아웃 중에 대주주의 사재 출연이 채권단 지원액의 단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재벌들의 인수합병과 기업분할 절차를 간소하게 해줄 목적으로 입법발의 된 원샷법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삼성과 현대차의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만들어 진 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원샷법은 일부 조건만 만족하면 재벌대기업들이 공정거래법과 상법상의 핵심 규제들을 이 특별법으로 무력화하거나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노동자와 국민경제 전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재벌의 손실을 재벌 총수에게 묻고,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만큼 재벌총수의 소유권은 제약하고, 노동자 생존권은 보호하는 제도들이다. 

금호그룹의 예를 보면, 형제의 경영권 다툼과 총수의 막무가내식 사업 확장으로 2010년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빠졌는데, 결국 이후 5년간 워크아웃 동안 채권단과 정부는 노동자를 쥐어짜 빚을 갚고, 박 씨 일가가 경영권을 되찾을 시간을 벌어준 것뿐이었다. 그동안 노동자도, 지역경제도, 공급사슬의 이해관계자 모두가 큰 고통을 겪었었다.

따라서 노동자의 대안은 오히려 이 반대가 되어야 한다. 금호그룹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려면, 박 씨 일가의 주식과 경영권을 박탈하고 정부·노동자·산업 내 공급사슬의 이해관계자가 합심해 고용과 생산을 적절히 유지해야 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노동 친화적, 국민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 재벌 구조조정에 대해 좀 더 고민을 진척시켜야 할 것이다. 현재의 재벌 위기는 단기간의 경기변동에 따른 것도 아니고, 몇 가지 지원책으로 해결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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