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6/01 제12호

3차 저출산 기본계획에 기대가 없는 이유

  •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노동개악으로 결혼을 앞당기자?

2006년, 노무현 정권이 마련한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은 저소득층 보육지원에 대책의 초점을 맞춰, 예산의 60퍼센트를 사용했다. 이는 취업모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명박 정권은 2차 기본계획의 방향을 맞벌이 가족을 위한 일-가정 양립지원 강화로 잡았다. 박근혜 정부는 2차 기본계획이 기혼가구 중심의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어 만혼으로 출산률이 낮아지는 문제를 간과했다고 비판적으로 진단했다. 또한 일-가정 양립지원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며, 정책의 사각지대를 고려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3차 기본계획은 만혼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일-가정 양립 정책을 정착시키며 정책수혜에서 제외된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

구체 내용을 살펴보면 3차 기본계획은 신혼부부에게 주거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청년고용 활성화 정책을 추가한 점이 특징적이다. 3차 기본계획은 결혼과 출산이 지연되는 원인을 안정적 소득과 고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로 보고,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 간의 격차를 축소하겠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제도는 도입은 되었으나 시행이 부진하니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유자녀 여성노동자 대다수가 종사하는 중소기업에 육아휴직 대체근로를 지원하여 휴직활용이 가능한 조건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3차 기본계획에 대한 전반적 반응은 냉소적인데 그 이유는 자명하다.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더 쉬운 해고가 자행되어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노동시장개악이 청년 일자리창출 정책으로 둔갑했다. 정부를 믿고 결혼을 앞당길 청년들이 있을지 의문이다. 일-가정 양립제도 정착을 위해 기업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한다지만 정부의 의지를 신뢰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중에 일자리를 상실하는 여성이 매해 5000명이 넘는다. 노동시간 상한선을 주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리면서 근로시간 단축을 운운하는 것도 헛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 정책이 기만적이거나 실효성이 없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본적인 관점과 정책방향부터가 문제다.
 

돌봄노동의 ‘시장화’와 ‘가족화’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여전히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는 동시에, 가족 내에서 가사와 양육을 전담(또는 대부분 부담)해야 하는 끔찍한 현실 때문이다. 이는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권리가 제약되는 현실로서 여성노동권 개선과 가사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출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대신, 출산을 제한하든 장려하든 경제성장을 위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한다. 또한 저출산 대책은 여성의 가사양육 전담을 전제로 노동시장 참여를 강조하여 이중부담을 심화시킨다. 여성이 가정에서의 역할도 하고 노동시장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시간제일자리를 확산하려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설계된 한국의 저출산대책은 아동과 노인 등을 돌보는 노동을 시장화하는 한편, 탈가족화보다는 가족화하는 성격을 가진다.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돌봄노동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돌봄노동의 사회화 유형을 분류해보자. 돌봄의 사회화 유형은 그 첫째로 서비스를 지원하는 현물지원과 비용을 지원하는 현금지원으로 나뉜다. 한국은 국가가 어린이집 비용을 지원하는데, 이는 민간시설을 통한 서비스 지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가구에는 양육수당을 지급하는데 이는 현금지원으로 분류된다. 가족정책에서 현물·현금급여의 비중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미친 영향을 OECD데이터로 조사한 연구(장지연, 2011, <돌봄노동의 사회화 유형과 여성노동권>)에 따르면 현물지원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현금지원은 돌봄의 가족화를 초래해 경제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로는 현물지원의 전달체계가 공공이냐 민간이냐로 유형을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돌봄노동의 공공성 여부에 영향을 미치고 돌봄노동의 질을 좌우한다. 전달체계가 민간일 경우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해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돌봄노동의 질도 저하된다. 또한 다수의 여성노동자가 돌봄직종에 종사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성별 임금격차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선 조사에 따르면 전달체계가 공공부문일수록 돌봄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성별 임금격차도 크지 않았다. 

셋째로 시간을 지원하는 유형인데 대표적으로 휴가제도를 들 수 있다. 다른 정책보다 휴가제도가 강조되는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경력단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여성에게 휴가가 편중될 경우 기업의 고용회피기제가 되기도 한다. 한편 휴가제도의 재원 및 정책대상 조건설정에 따라 수혜 여부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유형구분에 따라 한국의 저출산 대책의 성격을 살펴보자. 무상보육은 민간전달체계를 통한 현물지원 제도로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지만 돌봄노동의 시장화를 초래하여  돌봄노동의 질을 하락시킨다. 한편 시설 미이용 아동에 대한 양육수당도 도입되었는데, 여성 경제활동지원이라는 정책목표와 상충된다. 또한 돌봄의 가족화로 여성의 성역할을 고착시키는 문제도 있다. 한편 휴가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을 독려하는데, 이는 경력단절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고 중소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각지대로 방치한다. 
 
 
 

시간제 일자리, 보육정책의 초라한 성적표

3차 기본계획에 기대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1~3차 기본계획이 주력하는 ‘여성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와 보육정책’이 여성권에 기여한 성적표가 초라하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기 위해 추진되어 왔고 그 결과 지난 10년 사이에 시간제 여성노동자가 두 배(2005년 73만 6000명, 2014년 144만 5000명)로 늘어났다. 그러나 일자리의 질은 답보상태이다. 심상정 의원실이 올해 발표한 ‘한국의 시간제 여성 실태’에 따르면 시간제 여성노동자의 89퍼센트가 비정규직(임시직)이었다. 특히 시간제 여성 노동자 중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해 퇴직금과 연차휴가,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비율이 2005년 23.9퍼센트에서 2014년 32.1퍼센트로 늘었다. 고용형태만이 아니라 임금수준 또한 낮았다. 저임금(월급 2005년 130만 원, 2014년 190만 원 이하) 여성 노동자 중 시간제 여성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같은 기간 25퍼센트에서 41.6퍼센트로 급상승했다. 한마디로 시간제 일자리는 늘어났으나 ‘반듯한’ 일자리가 아니라 ‘열악한’ 일자리였던 것이다.

보육정책 역시 성적표가 실망스럽다. 일관된 기조로 정책이 추진되기보다는 정책 편의에 따라 오락가락 행보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이라는 정책목표와 상충되는 양육수당을 도입했고, 박근혜 정부는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면서 정부예산을 축소하여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 2013년부터 만 5세 이하 아동 보육지원, 84개월 미만 시설 미이용 아동 가정양육수당을 지원하며 이른바 ‘무상보육’이 시작되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3세에서 5세 아동의 보육비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을 보건복지부 예산에 편성하지 않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쓰라며 책임을 돌렸다. 어린이집 같은 보육기관은 보건복지부가 지원하고 교육기관으로 분류되는 유치원은 교육부가 지원하게 되는데, 누리과정은 교육지원의 성격을 가지므로 교육부가 지급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알려지다시피 교육부의 교부금은 정체상태다. 시·도 의회와 교육청은 크게 반발하여 예산책정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정부의 책임전가로 촉발된 갈등은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반복됐다. 뿐만 아니라 2015년 보육예산의 83퍼센트를 시설이용 및 양육수당 같은 현금성지원에 사용한 반면 국공립보육시설을 위한 예산은 1퍼센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예산 구조는 매해 반복되고 있어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은 지연되고 민간시설 중심의 공급구조가 유지되어 보육의 공공성이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3차 저출산고령화기본계획은 기존의 저출산 대책과 동일한 맥락에서 제출되었으며, 돌봄노동의 공공성 강화와 노동조건 개선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를 멈춰세워야 한다. 저출산 대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의무가 아니라 권리로서 ‘출산의 조건’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져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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