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6/06 제17호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모여서 한 건 해야죠!

이승호 금속노조 경남지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 인터뷰

  •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STX고성조선해양 정문 앞 농성장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죽음은
구조조정에 의한 타살”

“개같이 일했고 개같이 쫓겨났다.” 지난 5월 11일 세상을 떠난 서른여덟의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故정○○ 씨가 아내에게 남긴 말이다. 최연소 반장이 될 만큼 촉망받는 숙련공이던 그는 지난 5월 첫째 주 연휴에 특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직책 강등과 보직 변경, 임금 삭감을 통보받았다. 사직
이승호 금속노조 경남지부
미조직비정규직사업부장
서를 제출한 날 밤, 그는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고인의 죽음이 총선 이후 본격화된 조선업 구조조정의 흐름 속에 발생한 것이라 말한다. 대책위는 ‘남편의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유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다음날,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호 금속노조 경남지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을 만났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을 경남지역 노동자들의 현실을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승호 부장은 거제 백병원에서 故정○○ 씨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故정○○ 씨의 죽음은 조선업 구조조정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지금 삼성중공업 안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삼성의 구조조정 방식은 좀 특이해요. 타겟을 특별히 정하지 않는데 전체적으로 긴장을 걸어서 괴롭혀요. 사람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거죠. 구조조정 얘기 나오면서 ‘직제개편을 할 거다. 삼성중공업 내에 물량팀은 없앨 거다’ 하는 얘기가 현장에선 쭉 있어 왔는데, 이 분을 면담한다고 불러서는 반장에서 조장으로 강등시키고 ‘네가 물량팀 맡아라’ 한 거예요.
 
물량팀을 없앨 거라면서 그쪽으로 가라는 건 사실상 해고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문상 온 현장의 동료들이 전부 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건 회사를 그만두라는 것과 똑같은 얘깁니다’라고. 근데 또 삼성이 독특한 게, 그래놓고 사직서를 쓰면 사직서를 안 받는 거예요. ‘사직하지 말고 좀 더 일해보자’, ‘네가 애가 셋이고, 지금 조선소도 어렵고 그런데 어디 가서 일을 구할 수 있겠냐’는 식으로 사람을 극도로 모멸감을 주면서 관리했어요. 고인은 그런 모멸감 때문에 목숨을 끊은 거예요.
 
이 일에 대해 고인의 직장 동료들 반응은 어떤가요?
우리가 [삼성중공업] 정문에서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맞서 데모를 하고 있는데 문상 오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그런데 정말 많이 왔어요. 삼성의 기업문화에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데 깜짝 놀랐어요. 첫날부터 매일 오는 사람도 있고, 연차내고 병가내서 오는 사람도 있고. 이 사람들은 ‘내가 씨X 그만둬도 좋다’ 그런 마음인 거죠.
이 분이 돌아가시기 보름쯤 전에도 현장블럭에서 목을 맨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유서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왜 하필 거기서 목을 맸을까,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근데 삼성 스타일로 순식간에 정리했어요. 언론에 다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삼성중공업 안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번 일은 그 일환이라 봐야죠.
 

“중소조선소나 하청 노동자들에겐 
임금 체불이나 폐업이 일상이죠”

이승호 부장은 2012년부터 거제·통영·고성 지역의 조선업종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조직하는 일을 꾸준히 해 왔다. 총선 이후 정치권에서부터 ‘조선업 구조조정’ 이야기가 본격화되고 있는데,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언론에 연일 구조조정 얘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조선소 노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요. 물량팀이나 조선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지금 구조조정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다들 그러대. 올해 본격적으로 구조조정 국면이 되니까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 어떠냐?’ 물어보는데, 그럼 난 이렇게 얘기해요. ‘빅3 조선소나 1차 밴더 하청업체를 제외하고는, 특히 내가 관심갖고 만나는 중소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금 체불이나 폐업 같은 일들이 일상이다.’
물론 올해에 가중된 느낌은 있어요. 상담 횟수가 더 많다는 것 정도. 특히 대공장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 이런 데는 원래 거의 상담 오는 게 없다가, 훨씬 빈도수가 많아졌죠. 그거 말곤 올해만 특별한 건 아니에요.
 
해양플랜트 부문에 물량팀이 특히 많다고 들었어요. 현재 해양플랜트 쪽 물량팀 인원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가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은 6~7천명 정도 빠진 거 같아요. 잘 안 잡혀요. 이것도 일하는 친구들 통해 귀동냥 한 추측이죠. 삼성중공업이랑 대우조선에서만 올 연말까지 한 2만 명 정리하겠다고 해요. 일단 해양플랜트 쪽에서 빠지겠죠. 2008~09년에 조선소 어렵다고 할 때 중소조선소 노동자들이 거제나 울산 지역에 있는 해양플랜트 일자리로 갔어요. 근데 지금은 갈 데가 없을 거예요. 몇 만 명이 어디로 가냐는 거죠. 이 문제가 올 연말에서 내년쯤 되면 심각해질 것 같아요.
 
일당에도 변화가 있나요?
임금 삭감 있죠. 노골적으로 직시급(잔업이나 특근 수당, 상여금 퇴직금 등을 포괄하여 지급하는 시간당 임금) 천원 삭감, 일당 만원 삭감, 이런 식으로 통보하고 있어요. 시급 천원, 일당 만원 삭감이면 엄청 크죠. 이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조선업 구조조정이나 업체 폐업에 의한 임금체불 문제 같은 게 훨씬 두드러지니까 그게 가려지는 상황이에요.
 
STX고성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민주노총 거제지부
 

“STX고성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체불임금 받아내려고 
20일 동안 회사 정문
앞에서 농성했어요”

조선업 구조조정이 몰아닥치면 생존권을 가장 크게 위협받는 이들은 노동조합이 없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다. 이들이 겪을 임금삭감, 체불, 업체 폐업, 해고 등의 일을 함께 해결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역의 정당·단체·개인 등이 모여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지난 5월 4일 출범)’를 만들었다.

이승호 부장은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사망사건 대응 투쟁이 대책위의 두 번째 사업인 셈’이라고 말한다. 대책위는 출범을 준비하던 지난 4월부터 이미 첫 번째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첫 번째 사업이란 STX고성조선해양이라는 중소조선소 정문 앞 농성을 말한다.

STX고성조선해양의 사내하청업체인 삼원이 폐업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고 길거리에 내몰렸다. 현장의 거의 모든 직종에 물량팀이 있는 중소조선소에서 업체 폐업이나 체불임금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엔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단순 임금체불이 아니라 업체 폐업의 경우에는 돈을 받아내기가 훨씬 어려울 텐데요. 사내하청업체 폐업으로 인한 임금체불에 원청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가요?
우리 입장에선 체불임금이 있으니 그걸 주장하는 게 타당하고 맞는데, 사실 현행 법체계 내에선 원청이 지불하지 않아도 돼요. 애초에 업체에서 돈은 맞게 내렸죠. 근데 조선소가 다단계 하도급이잖아요. 적은 단가 주려고 하고 하다보면 부실이 누적될 거 아닙니까. 조선소 하청업체의 운영비 90~95프로가 임금인데, 부실이 누적된다는 건 체불임금이 누적된다는 것과 똑같은 얘기죠.
 
STX고성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도 이승호 부장님이 지역에서 체불 상담을 하다가 만난 경우인가요? 기존에 노조가 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같이 농성투쟁까지 할 수 있었나요?
맞아요. 개인적인 상담도 많이 오지만, 집단적으로 오는 상담이 좋죠. 붙자, 싸움하자[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게 STX고성조선해양이에요. ‘데모하자. 정문에서. 당신들이 의지를 가지고 데모를 하면 우리가 지원한다. 중심은 당신이 되는 거다. 금속노조가 대신 해결해주는 게 아니다.’ 그걸 분명하게 각인시키고 시작해서, 20일 싸웠어요.
체불임금이나 폐업이 있어도 보통 며칠씩 싸우고, 20일까지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책위 참가 단위들이 당번제로 농성장에 가서 투쟁가도 가르치고, 구호도 가르치고 해서 나중엔 모르는 노래가 없었어요.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죠. 한겨레신문에 르포기사도 나왔고요.”
 
결과는 어땠나요?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도 ‘투쟁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나요?
100퍼센트 다 받아내지는 못했고, 농성 참가자들 임금의 일부를 해결했어요. 노동자들이 직접 행동을 통해 성과를 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죠. 참가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업장에서 이런 부당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저항을 할 것이라고 다짐도 했어요. 또 공단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지의 뜻을 꼭 표현하자고도 했고요.
 
그렇게 싸운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거기서는 다시 일 못할 거 아닙니까. 각자 다른 데 가서 일하고 있어요. 금속노조 개별가입도 했어요. 그런데 개별가입으로 돈 몇 푼 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런 활동을 하면서 만나고 함께 싸운 사람들을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러면서 얘기가 됐어요.
 
©삼성중공업 일반노조 김경습
 

“지역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모아
 한 건 해볼 겁니다”

이승호 부장은 다단계 하청의 굴레 속에서 유동하는 중소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노조’가 아니라 ‘지역노조’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응하는 대책위의 활동은 ‘지역노조’를 만들기 위한 준비 단계이기도 하다. STX고성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의 경우처럼 상담과 대책위 활동으로 만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모아내겠다는 것이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핵심 요구는 뭐가 될 수 있을까요?
임금체불 문제, 고용 문제가 제일 심각하죠. 건설노조에서 다단계 하청의 불법적인 임금체불 문제를 바로 윗 단계의 업체에서 지불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잖아요. 조선소 입장에선 양반이다 싶어서 살펴봤더니 2008년에 단병호, 홍희덕 의원실에서 추진했는데 국회에서 폐기가 됐더라고요. 핵심 사유가 조선업과 건설업의 규모의 차이예요. 조선업이 건설업의 딱 10분의 1이거든요. 종사자 수나 체불임금의 규모가 작으니 조선업에 특례를 적용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거지.
조선업계에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다단계 하도급을 대량 양산해 놓고서는 아무도 책임을 안져요. 구조조정 국면이 되니까 물량팀 해고는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거고요.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위해서는 사업장 단위의 노조가 아니라 지역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지역노조라는 생각을 하게 되신 이유와, 이후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일단 조선업 특성상 단위사업장 조직화로는 안 돼요. 조언하는 사람 중에선 현대중공업처럼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도 해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이름은 ‘사내하청’이지만 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자회사)도 들어와 있고 열어놨거든요. 근데 여기 거제·통영·고성 지역은 타겟이 큰 조선소보다는 중소조선소, 작은 공단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지역지회 방식으로 하는 게 맞겠다고 이야기가 됐어요.
근데 지역지회 방식으로 하면 노조를 만들어도 당장에 이익이 없잖아요. 단협을 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이익이 없는 거니까, 어떤 정체성과 전망을 가지고 활동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문제도 있지만 어쨌든 해보자는 겁니다. 당장 개별사업장 단위의 교섭이 어렵기 때문에 건설노조처럼 사회적 교섭을 하는 쪽으로요. 건설도 2008년도 노가다 일당 삭감 때문에 노조를 만든 거잖아요. 이 지역 하청노동자 요구사항을 압축해서 그걸 지역사회 의제로 만들고, 요구조건 만들어서 한 건 해 보자는 거죠.
 
준비된 사람은 위기를 기회를 만든다고 했던가. 미리부터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고민하고 준비해 왔던 이승호 부장에게 조선업 구조조정 국면은 그가 해야 할 일,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쏟아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지역의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을 모아 한 건 하는” 날이 곧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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