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6/09 제20호

도시는 누구에 의해 해석되는가

강제퇴거와 불법점거 사이에서

  • 이지윤 빈곤사회연대 연대사업국장

 

우장창창

2016년 7월 7일. 신사동 가로수길에 100여명의 경비용역과 철거용역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처음에는 포크레인으로 지하실까지 뚫고 가려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소화기를 밀폐된 지하실에 뿌리면서 문을 부쉈다. 칼을 든 용역들은 1층에 쳐놓았던 천막을 찢고 위에서 내려왔다. 집행관이 집행을 중지하라고 이야기했으나, 용역들은 천막 기둥을 잡고 흔들었다. 

세련되고 고급스런 분위기의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과 용역깡패의 우악스런 폭력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다. 백주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기자회견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카메라가 몰려와 곱창집 ‘우장창창’에서 벌어진 강제집행 상황을 보도했다. 

이날 1차 강제집행은 성공하지 못했다. 강제집행을 막아내고 난 뒤, 함께 가게를 지켰던 다른 가게의 주인들은 마치 자기 가게를 지켜낸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6시간이 넘도록 작은 가게에 갇혀서 건물주 리쌍에게 대화하자고 이야기했고,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강제집행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현장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기자들과 SNS를 보고 달려온 시민들을 보면서 싸움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에 이들은 예상하지 못한 절망을 맛보아야 했다. 우장창창 강제집행이 여느 때보다 많은 언론에서 보도되었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계속해서 오르내렸지만, 기사와 페이스북에 달린 악플들은 한결같았다.
결국 우장창창은 2차 강제집행으로 거리로 쫓겨났다. 7월 18일의 일이었다.


불법과 합법 프레임

집행 과정도 큰 충격이었지만, 우장창창 사건을 다루는 글에 달린 악플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다가왔다. 댓글들이 문제 삼은 가장 큰 이슈는 법이었다. 법적으로 리쌍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장사하는 환산보증금이 4억 이상 되는 가게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과거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투쟁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한차례 개정되어 계약 후 5년까지 임차상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개정 전에 계약한 경우에는 2년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다. 건물주의 권리금 약탈과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막는 법은 아직 없다.

법적으로 리쌍이 잘못한 것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임대인과 임차상인들은 ‘어떤’ 법의 적용을 받아 왔나. 언제나 법은 부동산 소유주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고 해석되어 왔다.

반면 쫓겨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현행법에 위반되는가 아닌가를 여부로 사회적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법 형식주의적인 논의이고, 현실의 문제를 법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건물주의 마음대로, 제대로 된 보상과 절차 없이 임차상인들이 쫓겨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어떤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볼 것인지가 관건이다. 폭력적인 강제 집행을 비판하는 눈으로 도시를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건물주 중심의 법이라는 안경을 쓰고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인지가 문제다. 
 
신사동 우장창창 2차 강제집행 규탄 기자회견 ⓒ창작집단3355 김은석
 

쫓겨나는 이들은 항상 불법이었다

상도4동에서 영하 10도 한겨울에 70세 노인을 내복차림으로 끌어낸 후에 집을 강제 철거한 것은 합법이었다. 용산에서 용역깡패들은 경찰과 같은 복색을 하고 소화기를 뿌리고 사람들을 폭행했다. 이것도 합법이었다. 평택 세교에서 시공사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이름 없는 무덤들을 파헤치고, 유골들을 불법적으로 태우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또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서소문에서 삽을 든 용역깡패 한명이 차량 두 대를 박살냈지만, 근처 5분 거리의 지구대에서는 차량 유리창이 부서지는 20여 분 동안에 용역깡패를 체포하지 않았다. 

반면 쫓겨나지 않으려 망루에 올랐던 용산 철거민들은 테러범이 되었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해괴한 이유로 구속되었다. 법은 원래 쫓겨나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불법적인 용역폭력만 규제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용역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법과 개발방식이 용역업체들과 함께 공존하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 이후 급속하게 형성된 유휴 자본들이 부동산 시장에 투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신자유주의화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대규모 용역업체가 탄생하기 시작한다. 

빨리 개발할수록 이익이 많이 남는 현재의 재개발 방식 속에서 시공사는 강제집행 절차에 들이는 비용보다 폭력으로 얻는 수익이 많다고 판단한다. 현재 재개발 사업에서 수익을 환수하는 방식은 관리처분이나 환지와 같이 빠르게 개발을 완료해야 수익 보전과 보상이 완료되는 형태이며, 정비사업은 대부분 전면 철거 후 재개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초기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토지 소유자나 건설사이고, 금융권은 조합의 차입이나 직접 투자 방식으로 관여한다. 이들이 돈을 먹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개발을 완료해서 재개발 소식이 알려진 직후에 상승한 땅값을 유지하며 수익을 내야 한다. 즉, 개발의 ‘속도’가 개발 ‘이익’에 직결되는 것이다.
 

폭력행위 규제만으론 부족해

그렇기에 재개발 속도를 빠르게 올려주는 철거 용역업체는 시공사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법과 수익을 위한 비호가 있기에, 철거 용역업체들은 하나의 목을 치면 두 개의 목이 올라오는 괴물처럼, 없앨 수 없는 기업이 되어버렸다.

물리적인 폭력만 문제 삼는 것도 한계적이다. 한국의 철거 현장에서의 폭력은 법과 수익이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 대책이 부실한 상황에서 폭력행위 자체를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다.
 

투쟁이 바꾼 현실

1980~90년대 철거 현장에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악명이 높았던 주식회사 적준. 그 뒤를 잇는 다원그룹의 이금열 회장은 철거 폭력 피해자들의 지속적인 증언으로 고발되었다. 정관계에 수십억 원의 로비를 해왔던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는 2014년에 횡령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강제집행에 맞선 투쟁은 ‘철거왕’ 처벌에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 철거민들의 처절한 투쟁으로 1990년대에 공공임대아파트가 확대되었고 재개발 임대 주택이 생겨났다. 이런 투쟁도 당시의 법을 형식적으로 적용하면 대부분 불법이었다. 실제로 많은 철거민들이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이런 투쟁을 거치면서 이 땅에 사는 서민들의 주거권이 상당히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임차상인의 문제도 같다. 그동안 쫓겨나던 임차상인들의 투쟁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조금씩 개정되어왔다. 건물주가 선의로 양보해서가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에 악다구니 쓰며 싸워서 법을 바꿔 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않다. 집주인이 재개발 하겠다고 세입자를 쫓아낸 뒤에 다른 가게를 입점시키거나, 임차상인에게 돌아갈 권리금을 자신이 챙기더라도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없다.

리쌍의 우장창창 강제퇴거 역시 그런 경우다. 장사가 잘되는 세입자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장사하더라도, 불법은 아니다. 오히려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했으니 ‘많이 배려해줬다’는 박수를 받는다. 

현재 길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 자리는 원래부터 장사가 잘되던 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온 임차상인들 때문에 상권이 발달한 것이다. 그러나 임차상인들의 아이디어와 땀에 대한 대가는 법조문에 쓰여 있지 않다. 

누가 불법이며 누가 합법이냐는 테두리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용역깡패의 극단적인 폭력만을 근절하겠다는 전시성 정책도 해답은 되지 못한다. 이것은 누구의 편에서 이 도시 공간을 해석하고 바꿔나갈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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