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7/01 제24호

가짜 성장론 대신 촛불의 대안을 만들어야

경제위기론에 위축되지 않을 이유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완성된 제품을 점검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사 공장 노동자 ⓒ박진희
 
“그런데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건 아니겠죠? 촛불집회에 나와도 처음과 달리 요즘은 좀 불안하네요.” 한 제조업 사업장 노조 간부의 말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이 공장은 정리해고의 파도에 휩쓸린 경험이 있다.

경제위기 관련 언론보도 증가로 느끼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이 이렇다. 일자리가 없다보니 청년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공무원 시험장에 몰려가고 있고, 여기저기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치킨집을 차려 ‘치킨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치킨집 수(3만 6000여 개)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을 정도다.

지난 4월 치러진 9급 공무원 공채는 4천 명을 뽑는데 22만 명이 지원했고, 은행권 대출이 막힌 몰락한 자영업자가 고금리 사채 시장으로 내쫓겨 불법사채 대출액이 2014년 8조에서 2년 만에 14조 원으로 증가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은 광장에서만이 아니라 무너지는 민생 속에서 매일 같이 터져 나온다.
 
 
 
 
 
 
 
 
 
 
 
 

심각한 민생 위기
순금융자산은 단군 이래 최고

놀라운 것은 이런 민생 위기에도 불구하고 경제 거시지표는 그럭저럭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가능성을 나타내는 외환보유고 대비 단기 대외채무 비율은 우리나라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낮은 상태다. 최장기간 무역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고, 2013년부터는 우리나라가 해외에 보유한 자산이 외국인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보다 더 많아졌다. 단군 이래 우리나라가 순채권국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가 이전처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또 아니다. 박근혜 정권 3년 3분기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9퍼센트다. 이명박 3.2퍼센트, 노무현 4.5퍼센트에 비해 낮다. 수출액 증가율도 예전보다 높지 않다. 박근혜 4년간 우리나라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2.3퍼센트로 이명박 정부의 7.9퍼센트나, 노무현 정부의 10.3퍼센트에 비해서 많이 모자란다.

요약하면 이렇다. 경제 전체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보유하는 외환과 해외자산은 늘어만 난다. 민생은 위기지만 거시 경제지표를 위협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더 많은 성장? 민생 위기 해법 안돼

“1991년까지 약 30년간 한국 경제가 연평균 9.8%씩 고도성장을 했는데, 2012년부터는 2%대 저성장기에 들어섰다 … 경제가 더 이상 추락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성장률이 1% 대로 떨어지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상황이 올 것이다.”
- 2016년 12월 15일, <연합뉴스> 기사 중
 
경제학자, 정부 관료, 보수언론의 경제 기자들이 내놓는 처방은 하나 같이 ‘더 많은 성장’이다. 4년 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도 많은 국민이 박정희 시대와 같은 고도성장이 우리나라의 민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으로 성장률이 낮아지는 현상은 불가피하다. 국민 경제가 가진 것이 많아지면 그것을 유지하는데도 많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술 혁명이 없는 한 경제성장률은 완만해질 수밖에 없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1인당 GDP가 1만~1만6000 달러(2000년 구매력평가 기준)에 이르면 성장 둔화가 시작된다. 2만 달러에 도달한 후에는 10년간 1.5~3퍼센트 정도만 성장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 전후부터 성장률 둔화가 시작되었고, 2003년 전후에 2만 달러에 도달했다.(베리 아이켄그린 외, 《기적에서 성숙으로 – 한국경제의 성장》) 세계적 기준에서 봐도 특출한 혁신을 만들지 않는 한 선진국 기술을 추격해 성장해 온 우리나라 경제가 3퍼센트 이상의 성장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적 평균에서 보자면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성장이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었고, 박근혜 정부의 2.9퍼센트 성장률이 평범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기대치에는 모자라지만 세계적 평균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도 성장률이 둔화될 때 우리와 같은 극심한 민생고를 겪었을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아는 복지국가들도 성장 둔화를 겪었지만, 우리처럼 국민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나가떨어지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부산 신항만 전경 ⓒ조승준/블룸버그
 

창조경제의 헛발질
재벌경제의 천박함
노동자운동의 과소

오늘날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는 단기간 극복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경제 역시 오랜 기간 저성장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성장이 고성장보다 국민에게 더 많이 고통을 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겪는 민생고는 저성장 탓만은 아니라는 것에 한 가닥 희망이 있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최근의 민생고는 우리나라가 지식기반 경제를 강화하려다 더 심각해졌다.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드러났듯 지식기반경제론(박근혜의 창조경제)은 그 자체가 ‘사기와 협잡’의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기업들은 지난 4년간 지식재산 투자를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 26퍼센트나 늘렸다. 그런데 지식기반 경제는 세계적으로 봐도 타 산업에 대한 긍정적 효과보단 오히려 타 산업을 수탈하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지식기반 기업들의 이윤이 독점(네트워크 효과)과 특허권 지대에 의존하는 탓이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인터넷 기업은 지식을 창조하는 것보다 기존 지식을 얼마나 더 자신의 네트워크에 가둬 둘 수 있느냐가 수익률을 결정한다. 이들의 주 수입원이 광고인 까닭이다. 대표적인 지식기반 기업인 제약회사는 특허권 보호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가 이윤의 양을 결정한다. 더군다나 이들 기업들은 고용효과도 낮아 기업 이윤이 국민경제로 환류 되지도 않는다. 지식기반 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기존 산업에 비해 절반도 되질 않는다.

지식기반 산업이 부의 창조보단 부의 이전으로 이익을 늘린다는 것은 이 산업의 성장이 다른 산업의 이익을 오히려 낮추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에 따르면, 2001~09년 지식 기반 기업들로 이뤄진 생산성 선도 기업들은 연 생산성 증가율이 5퍼센트(서비스업 분류기업), 3.5퍼센트(제조업 분류기업)였는데, 나머지 기업들은 0.5퍼센트(제조업), -0.1퍼센트(서비스업)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Müge Adalet McGowan et al, “The Future of Productivity”, OECD, 2015.) 이들 기업들이 다른 산업에서 이윤을 이전받는 것이 커지는 만큼 다른 산업에서 측정되는 생산성은 낮아진다.
 

둘째, 재벌 경제의 천박함이 민생고를 키웠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매일 폭로된 것처럼 박근혜는 재벌이 최순실에게 돈을 꽂아주는 대로 규제를 해제했고, 이권을 챙겨줬으며, 심지어 정부기관 돈까지도 퍼줬다.

30대 재벌이 기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30퍼센트에서 2015년 40퍼센트까지 증가했고, 자산 비중도 43퍼센트에서 57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재벌의 경제집중도는 높아지는데, 재벌의 낙수효과는 별반 나아지지 않으니 당연히 국민경제에서 비재벌 부분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더 자세한 분석은 《오늘보다》 12월호 ‘박근혜를 만든 체제를 해체하라’ 참조)

셋째, 노동자운동의 과소함이 분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크고, 현재도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의 평균 연급여 격차는 2008년 7000만 원에서 2014년 75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상위 10퍼센트 평균 연급여가 1억인데 반해 나머지 90퍼센트 평균은 240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더 정체되거나 하락하는 것은 이들 부분에 노조가 없는 탓이 크다.

지난 십수 년간 노동조합 조직률은 10퍼센트 내외에서 정체다. 더군다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노골적으로 민주노총을 탄압해 노동조합 운동이 이전보다 더 위축됐다. 박근혜는 2013년 취임 첫해 민주노총을 침탈했고, 탄핵 전 해인 2015년에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시켰다.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그나마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탄압받을 수록 노조 할 권리를 갖지 못한 노동자의 임금·고용 조건은 더욱 위협받는다.


박근혜 체제 해체로 민생 위기 벗어나자

이전 같은 성장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성장에 기댄 국민의 생활은 크게 나아지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가 민생 위기를 통해 기업의 위기를 완화해온 탓에 이를 역전시키면 민생이 나아질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먼저, 창조경제와 같은 사기성 짙은 경제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새로운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 재벌 체제를 해체해 독점된 부를 사회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조할 권리를 전체 노동자에게 충분하게 보장해 노조를 통한 사회 대개혁과 재분배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경제위기론에 위축될 것이 아니라 촛불을 더 크게 키워야 민생 위기도 극복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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