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7/03 제26호

민주노총의 민중경선제 논의,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 정영섭 사무처장
 
작년 8월 민주노총 역사상 처음 열린 정책대의원대회(이하 정책대대)가 별 성과 없이 정족수 부족으로 유회됐다. 진보정당을 통합해 새로운 정당 건설을 추진할 것인지를 두고 격렬하게 토론했지만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왜 이런 파행이 지속되는가? 무엇보다 지난 역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재개하기 위한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협소한 논의만 이뤄졌다. 또,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활동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밝히고, 진보정당 운동 실패의 원인과 교훈은 무엇인지나 어떤 가치를 담는 정당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당과 노조가 접점을 못 찾고 있는 상태에서 극복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의견그룹 간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안 역시 찾지 못했다.
 

우리는 지난 시기 진보정당 운동의 문제를 대중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단시일 내 새로운 당을 만들기보다,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을 근거로 노동자운동을 재건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내 논의는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정치현장특위와 정치연석회의의 불협화음

정책대대 이후 민주노총은 산별연맹과 지역본부 대표자 일부로 구성된 정치현장특별위원회(이하 정치현장특위)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2017년 정기대의원대회(이하 정기대대)에 제출할 정치방침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또, 진보정당과 제 의견그룹을 포함하는 정치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구성해 정치현장특위에서 논의되는 내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려 했다.

12월 초, 정치현장특위에서 만든 ‘정치전략 토론안’이 민주노총 내외부에서 토론됐다. 이번 대선 대응을 위해 ‘민중단일후보 전술’을 채택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진보정치세력의 대연합(진보연합정당 또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며 2018년 지방선거 전에 연합의 상을 결정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진보정당들과 정치단체들이 모인 연석회의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대선 시기 민중 경선1과 후보 전술을 펼치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정당 통합은 의견이 갈렸다. 민중연합당, 민중의꿈 등은 연합정당 창당을 추진하자고 주장했고, 대개 다른 단체들은 연합정당에 부정적이거나 대선 전에 빠르게 추진할 순 없다는 입장이었다. 논의는 크게 진전되진 않았다. 연석회의는 결정 권한이 없고, 각 단체가 의견을 피력하거나 정치현장특위에 제안하는 자문 성격의 단위였기 때문이다.
 
지난 2월 7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뉴시스

민주노총은 지역별·연맹별로 토론을 거쳤지만 촉박한 일정으로 평조합원들의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연석회의에서는 광장의 촛불로 분출된 민중의 정치적 열망을 노동운동이 어떻게 수렴할 수 있을지, 민중 경선[1]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어떻게 얻을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촛불 집회에 나온 시민들 중엔 미조직 노동자들이 많을 텐데, 이러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일터에서의 권리 개선을 위한 의제와 운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노동운동의 고민은 부족했다.

1월 13일 정치현장특위에서는 대선에서 민중후보 전술을 채택하고, 2018년 지방선거 전에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한다는 정치전략 안을 합의했다. 하지만 같은 날 열린 연석회의 토론회에서 각 단체들은 기존의 의견을 반복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부족한 합의, 예견된 부결

2월 7일 열린 정기대대에 앞서 1월 19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정권교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 진보정당 분열로 회의감이 크니 조합원 다수가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 다양한 진보정당을 하나로 억지로 통합하려 하지 말고 인정하라는 의견,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은 적절치 않고 민주노총의 요구 중심으로 투쟁하자는 의견 등 정치전략과 대선방침에 대한 많은 이견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중앙집행위원회는 야당과의 연대나 정치방침을 갖지 말자는 것을 민주노총의 입장으로 삼을 수 없고, 정기대대 전에 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정기대대에 제출된 안은 아래와 같다.
1.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의 진보변혁적 재편 전망을 제시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 원칙하에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조합원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2. 민주노총은 2017년 대선에 대응하여 민중단일후보 전술을 채택하고, 대선 실천단을 구성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3. 민주노총은 2017년 대선투쟁을 통해 진보정치세력의 외연 확대와 연대 강화의 성과를 중심으로 2018년 지방자치단체선거 전에 제 진보정당을 아우르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한다.
4. 민주노총은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농민-빈민 등 대중조직과 함께 추진한다.
5. 민주노총은 선거연합정당을 위한 노동자 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요약하면, 민중경선을 거친 후 후보 중심의 운동을 하고, 2018년 지방선거 전에 정당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현행법 상 당을 유지한 채 선거 때만 하나의 당으로 연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표현은 ‘선거연합정당’이라도 사실상 진보정당을 통합해 하나의 정당으로 만드는 내용이었다. 논의 과정에서 원안에 대한 5개의 수정동의안이 발의됐지만, 어느 것도 과반을 얻지 못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론적 방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제기된 첫 번째 수정안은 40.8퍼센트 찬성, 진보정당간의 후보 단일화를 노력하고 단일화된 후보를 지지하되 정당건설은 유보하자는 두 번째 수정안은 48.9퍼센트, 대선에서 민중후보 전술 추진과 올해 하반기에 새 정당 창당을 주장한 세 번째 수정안은 6.4퍼센트, 민중후보 전술을 추진하되 정당 건설은 삭제하자고 한 네 번째 수정안은 37.5퍼센트 찬성, 민중후보 전술은 삭제하고 정당 건설은 추진하는 다섯 번째 수정안은 6.8퍼센트 찬성을 얻는데 그쳤다.

마지막으로 정치전략 원안은 35.1퍼센트 찬성만을 얻어 부결됐다. 정치전략 안건에 이어 대선사업 계획안이 논의되던 중 참가자가 빠져나가 정족수에 미달했고, 정기대대는 유회되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현장 ⓒ뉴시스
 

정치전략 방침은 왜 부결됐나

왜 어느 안도 통과되지 못했을까. 사실 정치전략 안은 누구도 만족하기 어려웠다. 일부는 대선 전 창당이라는 거의 불가능한 안을 주장했다. 반면 진보정당 외곽의 정치단체들은 연합정당을 건설하지 않거나 추후 논의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민중경선제에 대한 회의감도 존재했다. 진보정당들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 그 후보를 지지하자는 안(두번째 수정안)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48.9퍼센트)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두 번째 원인으로 이어진다. 진보정치가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온 상황에서 정치세력들이 힘을 합쳐 경선을 하고 단일후보 만들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회의가 그것이다. 또한 대선 이후 하나의 정당으로 합치는 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 반응도 많다. 이는 지난 정치세력화 운동이 분열과 실패로 끝나면서 대중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반영한다. 따라서 설사 정치세력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더라도 안이 통과되었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다.

대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일정을 앞두고 조급하게 논의된 것도 부결의 원인 중 하나다. 과거의 실패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성찰했어야 했다. 새로운 가치와 노선 등도 충분하게 논의되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총선 이후 일부 세력들이 급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이러한 논의가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의 정치활동 역량과 전체 노동조합의 역량이 약화된 상황에 대한 근본적 진단이 필요하다. 조합원의 정치의식을 높이는 활동보다는 야당에 의존해 현안을 해결하는 실용적 활동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진보정치는 노조에게 절실한 과제가 아닌 것처럼 되었다. 어느 때보다 정치권력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큰 촛불 정세에서 진보정치의 강화, 독자적인 대선후보 운동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정치세력화의 전제는 무엇인가

민주노총은 “한국사회 진보·변혁적 재편을 위한 투쟁 요구와 의제를 전면화 한다”, “진보진영의 후보를 지지한다”,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는 지양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선 방침을 오는 3월 7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노동자들과 어떻게 토론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원점에서 논의해야 하는 상황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을 다시 세우고,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을 확대한다는 근본적 전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Footnotes

  1. ^ 민중경선제는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등 단체 회원 및 조합원이 참여해 공직후보를 공동으로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당에서 얘기되는 국민경선제는 당원과 함께 일반 국민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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