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7/04 제27호

촛불 열망, '묻지마 정권교체'에 갇혀선 안 된다

대선을 맞이하는 사회운동의 자세

  • 편집실장 홍명교
 
민주당 경선을 축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작금의 대선은 촛불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개월 간 역량을 다해 투쟁해 온 민중운동 진영은 속내가 복잡하다. 우선 민주노총은 민중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정하려 했지만, 정치전략(안) 부결에 이은 정족수 부족으로 심의도 못하고 무산됐다. 시큰둥하거나 ‘민주노총에 그럴만한 역량이 있느냐’는 의구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너진 정치세력화 프로젝트에 대한 면밀하고 대중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탓도 크다.

결국 민주노총은 민중후보전술로 대선 시기를 거치고, 이를 바탕으로 6월 사회적 총파업을 펼친다는 계획을 단념해야 했다. 대신 3월에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수정된 대선방침1이 통과됐다. 6월 사회적 총파업은 유지하되 대선은 뚜렷한 전술 없이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총파업은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저임금 타파, 노조 할 권리 보장 등의 의제를 걸고 있는데, 대선을 거쳐 여름까지 ‘사회적 총파업 연대기구’(명칭 미정)를 통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은 청년·중소상인·빈민 등 대중조직, 시민사회단체들과 몇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연대기구를 4월 중 정식 발족할 계획이다.
 

돌연변이 빅텐트론

한편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촛불의 요구는 정권교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문재인 캠프에 가담해 논란이 됐다.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주축이 된 사회연대노동포럼은 지난 2월 대규모 정책대회를 열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 중 하나다.

이들은 사분오열된 진보정당으로 인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먼 미래의 과제가 됐다며, “(노동운동이) 주체적인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차선으로 자유주의 정당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정당(민주당)을 견인하고, 그 안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거 진출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돌연변이 빅텐트론’인 셈이다.

그들은 ‘수십 년 고생한 시간’을 들먹였으나, 김진태, 양향자, 전윤철, 김광두 등 문재인 캠프를 좌지우지하는 친재벌 인사들의 행보에는 아무 말이 없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행한 노동조합 탄압이나 정리해고제, 파견법 개악 등 반노동 정책들에 대해서도 평가가 전무하다.

당장 민주노총은 ‘민주노조를 버리고 양지를 찾고 싶으면 부끄러운 마음 안고 가라’는 성명을 통해 ‘묻지마 정권교체론’을 펴는 이들을 비판했다. 이에 더해 대의원대회에서 “보수정당에 대한 조직적 지지를 방지/금지한다”는 것을 결의했으나, 구속력과 효과가 뚜렷하진 않다.

이와 같은 흐름을 단순히 출세주의자들의 돌출행동이나 ‘동지에 대한 배신’ 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단순했을 게다. 허나 그렇지 않다. 이런 흐름을 타고 일부 지역에선 알게 모르게 민주당 경선 참가를 조직하고 있는가 하면, 건강보험공단지부 등 공공운수노조 산하 일부 단위는 조합원의 민주당 경선 참여를 결정하기도 했다. 

실용주의적 판단도 문제겠지만, 조합원들 내부에서도 정의당만이 아니라 민주당까지 ‘진보정당’으로 보고 지지하는 시각이 상당하다. 특정 진보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정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결기 어린 선언만으로는 노동자운동 이념의 균열을 메우기 어렵다. 오히려 대체 어떤 공백이 ‘노동조합 대선배들’의 우경화를 낳았는지 보다 객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대선방침도 못 정하는 민주노총, 왜?

민주노동당이 무너지고 복수의 진보정당 시대를 맞이한 후, 노동조합들의 대국회 창구가 민주당으로 수렴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몰락함과 동시에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보낸 노동조합들은 어떻게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적 통로, 투쟁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좋든 싫든 실용주의적 경로를 택해왔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과거 민주노동당이 하던 역할을 능력 있게 수행한다는 평가도 있었고, 실제로 도움이 될 때도 많았다. 힘겨운 투쟁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썩 나쁘지 않은 판단처럼 보였다.

하지만 받은 게 있으면 빚도 생기는 법이다. 정치세력화 운동이 정체된 상태에서 과거에 대한 어떤 평가도 없이 이와 같은 거래 관계가 지속되다보니 진보정당들보다 민주당 정치인들을 더 친밀하게 여기는 조합원들도 많아졌다. 특히 현실에서 험난한 투쟁을 거친, 새로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이것이 노동운동 내 일부 인사들이 대놓고 뻔뻔하게 민주당행을 택하게 된 배경일 게다.

현 시점에서 한국 노조운동의 이런 경향은 미국과 같은 비즈니스 노조주의로 귀결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노조들은 자신의 문제를 노동자계급 일반의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파이의 크기에만 관심을 갖고, 공화당-민주당으로 고착된 정치엘리트들과의 로비를 통한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선호했다. 이런 모델은 주류 정치의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대중운동과 조합원 민주주의보다는 관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기 쉽다. 

게다가 진보정당운동이 현재의 지리멸렬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념·정책상의 차별성을 찾지 못하거나, 수권 정당과의 연정 제안에 휘둘려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실할 경우, 위기는 보다 빨리 찾아올 수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 모두에게 존재 가치의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노동자운동이 지난 시기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해 밀도 높은 평가를 갖고 전망을 수립하는 것에 실패할 경우, 이런 실용주의 노선은 보다 강화될 수 있다. 특히 올해 말 치러질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가 그 기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선을 전후해 민중운동이 어떻게 합력을 창출하고, 촛불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비전과 실천을 만들 것인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4~5월 대선 국면을 맞이하는 사회운동의 태세는 이후 사회운동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대선 시기 천만 촛불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박근혜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 의제가 관철되는 대선이어야 한다. 박근혜 정책이 무엇인가. 기업 규제를 ‘손톱 밑 가시’라며 없애고, 철도·의료마저 민영화하고, 쉬운 해고와 파견노동을 확대하고, 독재자와 재벌의 편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었다. 정치권력과 재벌의 검은 거래가 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책임 사회의 비극이 세월호 참사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구의역과 넷마블 청년노동자들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이를 청산해야 “이게 나라냐”는 뜨거운 울음을 멈출 수 있다. 

둘째, 재벌왕국·빈익빈부익부 척결을 위해 일터와 삶터에도 민주주의를 일구어야 한다. 87년 6월 항쟁을 이은 노동자대투쟁을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뭔가? 우리에겐 그보다 더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노조 할 권리가 있어야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국민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그래야 민주주의다.

셋째, 이명박근혜 9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노동을 후퇴시키기 시작한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의 적폐를 돌아보는 대선이어야 한다. 성찰이 있어야 적폐도 청산할 수 있다. 재벌 비리는 비호하고,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개악을 통해 노동권을 무너뜨리며, 발전·통신 등 공공부문을 민영화시킨 김대중-노무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낳았음을 뼈저리게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단순히 대권 주자들 중 나의 호불호를 찾고, 선거 캠페인과 투표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터와 삶 곳곳에 만연한 지배체제의 적폐들에 맞서 행동들을 조직하고, 촛불이라는 대중저항을 통해 새로운 시민성을 받아들인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근거지들을 만들 수 있다. 대선 전후 우리는 이렇게 싸워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강압적인 노무관리에 맞서 일터의 민주주의를 만드는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글 서두에 소개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조 할 권리를 기치로 건 연대운동이 일터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지역과 현장에 흩어진 노동자들을 접촉하고 일터의 목소리를 조직한다면, 촛불에서 확인된 대중운동의 가능성이 새로운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유력한 몇몇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 가진 한계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미 높은 가능성이 담보된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묻지마 정권교체’에 머물러선 안 된다. 보다 대안적인 진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확대함으로써, 이후 사회운동이 차기 정권 하에서 제대로 된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이루고, 독자적인 힘과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견제와 압력을 키워야 한다.

셋째, 미조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동시에 일터와 삶터에서 노동조합 설립 등 실질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 편의점 알바, 게임업체, 공단 노동자들도 움직이고 있다. 주권자의 명령을 일터, 학교, 지역 등 모든 곳으로 확장하고, 우리를 굴종하게 만드는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과 자신감으로 채워졌던 광장을 잊지 말자. 대선주자들의 이전투구에 휘둘릴 필요 없다. 여의도와 청와대가 적폐 청산과 사회변혁을 향한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언제든 촛불을 들고 나서자. 그래야 촛불이고, 그래야 주권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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