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오늘 논평 | 2016.11.16

박대통령의 네 갈래 길? 국민이 갈 길은 무엇인가?

조선일보 “사면초가 朴대통령 앞에 '네 갈래 길'”에 대한 비판

<조선일보 기사> 사면초가 朴대통령 앞에 '네 갈래 길'

“①질서 있는 퇴진: 全權을 거국 내각 총리에 위임, 혼란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퇴진 ②下野:
現총리가 대행… 60일내 대선… 與野 모두 혼돈 불가피 ③탄핵: 국회·헌재 모두 통과될지 주목… 새 대통령 선출까지 최장 8개월. ④현상유지: '정상적 대통령' 불가능 상태… 나라 혼란 계속돼 최악. 정치권과 학계에선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질서 있는 퇴진', 하야(下野), 탄핵, 현상 유지 등 크게 4가지가 거론된다.“


보수가 원하는 박근혜 퇴진의 구체적 시나리오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를 네 갈래로 정리했다. 첫째는 '질서 있는 퇴진(권한대행체제)-거국내각-개헌-조기 대선'이다. 둘째는 '하야-60일 내 조기 대선', 셋째는 '탄핵과 8개월 후 대선', 넷째는 '현상유지-혼란 지속'이다. 정치공학적으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네 갈래 길에서 국민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조선일보식 '질서 있는 퇴진'이란 무엇인가. 거국내각은 법보다는 대통령의 '정치적 양해'가 필수적이다. 거국내각이 들어서도 새 정책을 추진할 힘은 없다. 제한적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민생파탄 정책은 계속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재벌 손실을 노동자 해고와 국책은행 지원이 메우고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이 그렇다. 몇 주 전부터 보수언론들은 경제 사령탑이라도 먼저 세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생파탄 정책을 승계한 거국내각에 국민이 설 자리는 없다.

조선일보가 시종일관 개헌을 들먹이는 이유는 보수세력을 규합할 대의명분 때문이다. 보수세력이 재집권하려면 새누리당 비박계, 안철수, 반기문 등을 묶어 '중도-보수 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제왕적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고, 대통령제를 개혁하는 것이 여야의 대선후보들을 묶을 수 있는 접착제가 될 수 있다. 대선 후보끼리 권력을 나눠 먹는 조건으로 연합하자는 것이 현재의 개헌론이다. 실제 김대중과 김종필은 1997년 대선 시기 '내각제 개헌'을 명분으로 연합하기도 했다.

개헌을 정치공학으로 다루는 건 조선일보의 오래된 특기다. 2007년에도 조선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론을 '선거용 개헌론'이라 비판했었다. 2011년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개헌을 주장하자, 한나라당이 분당될 수 있다며, 이재오가 '권력에 눈이 멀어 개헌하려 한다'고 비판했었다. 현재 조선일보 개헌론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이다.

정치공학이라도 개헌을 통해 민의가 정치에 좀 더 잘 반영될 수 있다면 논쟁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이원집정제든, 내각제든 국가 지도 체제를 바꾸는 것만으로 민의가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단견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엔 민의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막는 장벽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선 생각이 다르면 '종북좌빨'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한다. 정보기관은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SNS를 검열하고, 댓글을 통한 공작도 벌인다.

노동자가 일터에서의 민의를 모으기 위해 노조를 만들어도 기업은 해고하고, 이를 감독해야 할 정부 당국은 오히려 불법을 자행하는 사용자를 두둔한다. 헌법이 보장한 노조를 만들어도, 기업과 공권력에 의해 짓밟히기 일쑤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문제라면 개헌에 앞서 박근혜 정권 시기 벌어진 반민주 악행부터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박근혜의 민생파탄 행위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개헌론은 진정성 없는 대선 연합 명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세 길에서도 아직 국민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야 후 두 달 만에 대선이 치러지면 하야의 주역인 시민들은 준비된 대선 후보 중 1명을 선택하는 '투표용지 1표'로만 남는다. '박근혜 체제를 해체하라'는 거리의 요구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탄핵 8개월 후 치뤄질 대선도 허수아비 총리와 국회의 지루한 공방, 결과를 확언할 수 없는 특검 조사만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시민은 다시 국회와 대선 후보의 입만 바라보는 수동적 존재로 남는다. 박근혜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회피하면, 그야말로 나라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엉망이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모든 고통은 가진 자들이 아니라, 없는 자들의 몫이 된다. 세 갈래 길 어디든 국민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따라서 우리는 '답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단,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박근혜에게 놓인 네 갈래 길”은 국민의 길을 삭제하는 질문이다. 박근혜를 끌어내는 것을 넘어, 박근혜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판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제, <조선일보>식 질문에서 벗어나 시민의 질문으로, 요컨대 “어떻게 박근혜 체제를 해체할 것인가”로 우리 모두가 질문을 바꿔야 한다.
주제어
태그
개헌 조선일보 오늘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