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회원 조민영
 
 
1906년 러시아혁명의 기운이 들끓던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20세기 교향곡의 대가 쇼스타코비치가 태어났다. 러시아 혁명의 뒤틀린 전개 속에서 천재음악가의 삶도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소련을 대표하는 음악가이자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기수에서 소련 인민의 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현해낸 영웅에서 퇴출되어야 할 반인민적인 예술가로. 책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T.앤더슨 저 장호연 역, 2018)>는 쇼스타코비치의 굴곡진 인생에 관한 것이다.
 
젊은 시절 쇼스타코비치
젊은 시절의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가 사랑한 레닌그라드(舊 페테르스부르크, 現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별명은 ‘서구를 향한 창’이었다. 북유럽과 맞닿아 있으면서 서유럽과의 왕래가 자유로운 항구도시이자 러시아제국의 수도였기에 오랫동안 러시아 내에서 지식과 예술의 중심지로 역할했다. 히틀러는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이 도시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나치의 포위에 굴하지 않고 장장 900여일 간 맞서 싸우고 생존했다. 이 책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처절한 죽음과 생존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한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레닌그라드 전투의 전사인 1부의 분량이 본론인 2부와 같다는 점이다. 2부만으로도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의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모습,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탄생에 대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작가가 독일의 소련 침공 이전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공을 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전쟁 당시의 레닌그라드에 관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듯 교향곡 7번은 “스탈린이 파괴했고 히틀러가 그저 마무리했을 뿐인 레닌그라드”에 관한 것이었다. 작가 역시도 레닌그라드에 대한 첫 번째 공격으로서 스탈린의 대공포시대를 비판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스탈린에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쇼스타코비치를 꿋꿋하게 그 시대를 살아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우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자료들의 진위를 의심하며 세심하게 다루려고 한다. 예를 들어 레닌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쇼스타코비치가 그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거나, 스탈린에 대해 비판적인 속내를 털어놓는 인터뷰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검증하며 의문을 던진다.
 
 
오히려 저자는 최대한 이 작곡가를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보여주고 싶어한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4번에 대해 스탈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전긍긍하며 제 살 길을 찾아 붉은 군대의 원수 투하쳅스키를 찾아 호소해놓고는, 투하쳅스키가 배신자로 몰려 처형당하고 자신 역시 소련당국에 잡혀가자 그와의 친분을 부인한다. 오히려 쇼스타코비치는 살기 위해 스탈린과 공산당을 찬양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기에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시기에 숙청으로부터 살아남았던 것은 그의 저명함이나 재능, 영웅적인 면모 덕분이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아간 브레히트가 그의 시에서 밝힌 것처럼, 쇼스타코비치는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책에서는 이 시기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쏟아지는 소비에트 정부의 공격을 보여주며 예술에 대해 질문한다. 당시 그의 오페라<므젠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인민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술’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음악은 물론 대부분의 예술이 실험적인 경향을 추구했고, 러시아예술의 미래파적인 면모는 주목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그 영향 속에서 실험적이면서 다채로운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인민의 적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스탈린의 서슬퍼런 탄압 속에서 마지막까지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하던 그였지만 끝내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예술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인정받는 것일까? 책에서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언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교향곡이 그 대상임을 고려하면 말이다.
 
 
인민의 적이었던 쇼스타코비치는 1937년 교향곡 5번을 내놓으며 소련당국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1941년 포위전 속에서 교향곡 7번을 작곡해내며 소련인민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교향곡은 문명화되지 못한 국가 취급을 받던 러시아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극적으로 바꾸었다. 소련당국 역시 교향곡 7번을 널리 알리며 선전에 활용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영웅으로 떠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스탈린의 대공포시대를 겪으면서 영웅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고 쇼스타코비치는 다시금 인민의 적이 되었다.
 
 
전투와 굶주림 속에서도 어떻게든 작곡을 해낸 그의 모습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완성은 쇼스타코비치가 아니라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이 해낸다. 900여일 간의 포위 속에서 레닌그라드는 인간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한 편에서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죽은 시체의 사지를 잘라 먹고, 집단을 형성하여 조직적으로 인간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버티기 힘든 굶주림은 인간이 개체의 생존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짐승에 지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공연 연습을 하다가 사람이 굶어죽을 정도였지만, 결국에는 1시간이 넘는 교향곡 공연을 해내고, 굶주림 속에서 겨우 배급받은 빵을 교향곡을 듣기 위한 표로 바꾼다. 레닌그라드에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스스로 인간으로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 몸부림을 통해서 우리는 한 위대한 인물의 위대함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 7번 교향곡, 일명 <레닌그라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찾아 듣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들으면서 상상을 해도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 시대의 그 경험을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다. 직접적으로 전쟁과 승리를 표현한 듯한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서 생긴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에 대한 애정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다르게 느끼게 해준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공격 속에서 죽어간, 그리고 살아낸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결국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