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0 겨울.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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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한국사회성격 논쟁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하〕

김태훈 | 정책교육실장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이하 『세미나』) 서평〔상〕에서 이 책의 주요 목적을 크게 두 층위로 나누었다. 첫째, 한국사회성격 논쟁을 재론하며, 한국사의 ‘장기 20세기’를 개관하는 것, 둘째, 문재인 정부의 출현이라는 정세적 계기에 대한 개입이다. 지난 두 번의 서평은 “한국사회의 객관적 성격과 주체적 성격에 대한 설명”을 부족하게나마 정리해보았다. 이번 글은 문재인 정부와 그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386세대 운동권에 대한 정세적 비판을 정리해본다.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 『후기』의 주요 주제들이다. 

또한 정세는 역사의 한 국면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전 서평에서 살펴본 “한국사회의 객관적 성격과 주체적 성격에 대한 설명”과 정세는 세 가지 측면에서 연결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한국사회의 객관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제대로 대별되지 못하는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 ‘한국의 불행’, 즉 한국현대지식인의 자유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가 취약해, 문재인 정부 386세대의 인민주의가 개혁, 자유, 진보를 참칭하고 있다. 셋째, 문재인 정부와 인민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조선망국, 한국전쟁에 이어 또 다른 망국적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이번 서평은 이런 관점에서 윤소영 선생의 비판을 정리해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역사적, 정세적 비판은 또한 역사과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발전과 표리관계로 보인다. 종합토론의 마지막 주제인 ‘현대경세학으로서 경제학’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봉건제에서 유가 사상의 경세사학과 자본주의에서 스미스와 마셜의 경제학(‘이론적 역사’)이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임에 주목한다. 또한, 마르크스의 역사과학(경제학비판)이 이 전통에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현대경제학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설명한다. 
 

10. 문재인 정부 비판: 역사의 사기극

 
앞서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에 대한 화두가 ‘한국의 불행’이라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화두는 ‘역사의 사기극’이라 할 수 있다. 『위기와 비판』 도입부에서 윤소영 선생은 촛불정국의 개헌논쟁에 대한 개입이 처음에 관심을 가진 문제였으나, 문재인 정부의 출현을 보면서 “역사에 대한 식견이 없는 자가 역사의 주체를 자임”하는 “사기극”에 의분(義憤, 불의에 대한 분노)이 북받쳤다고 표현한다. 사학 없이 사론만 있는 사이비 사학자들은 역사에 대한 격단, 즉 근거 없는 판단만 제시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결함

최순실 씨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결함을 해결할 방도로 의원내각제 개헌, 혹은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절충한 이원정부제 개헌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출현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악하려는 4년 중임제 개헌이 부상한다. 

윤소영 선생은 그동안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비교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민중민주주의(PD)론의 입장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개헌론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민중민주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마르스크주의와 선거정치는 양립 불가능하다. 선거정치의 기원은 로마에서 군주의 선출이었다. 또한, 현대적 선거제도로서 보통선거권의 제도화는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운동이 공산주의화되는 것을 예방한 ‘신의 한 수’였다. 

그런데 이번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민주당 신파를 구파와 구분해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선거정치가 채택한 의원내각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표준이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실질적 독립국으로서 의원내각제로 운영된 주에서 상징적 국가원수로 주지사에 대응하는 연방 차원의 대통령을 둔 것이다. 이 경우에도 견제와 균형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장치를 도입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반면 서양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 연방제를 채택하지 않는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선거정치와 의원내각제의 결합이 적합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귀결은 정치에서 능력주의의 부재를 만든다. 입법부의 무능은 박정희 정부로 소급하고, 행정부의 무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소급하는데 그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다.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통해 정당을 기생화하고 의회를 식물화한다. 자생력 없이 권력에 기생하는 기생정당의 사례가 바로 공화당과 유정회다. 기생정당은 대권경쟁의 수단이기도 한데, 그런 관점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9개의 정당에 가입하고, 6개의 정당을 창당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증거가 대통령의 인사권이다. 장차관·기관장 등 3천여 개 직책을 직접 임명하고 그 10배 정도에 달하는 3만여 직책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직간접적 인사권이 대략 1만 개에서 3만 개로 늘어났다. 이렇게 정치적 지지자에게 전리품(spoils)을 주는 엽관제(spoils system, 능력제[merit system]의 반대말)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강화된 것이다. 엽관제의 결과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는 신조어가 보여주듯 행정부의 무능으로 이어진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관점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계승하고 있다. 물론 선거정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박정희보다는 이승만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의 4년 중임제 개헌은 실행 가능성도 없었다. 민주당은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의석수나 정치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 유신이나 5공 시절처럼, 2018년 3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다. 그것도 아랍에미리트 방문 중에 전자결재를 통해서 발의한다. 그러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한 투표 불성립’으로 5월에 개헌안은 폐기된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반경제학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외교·안보정책을 분석, 비판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학적 문맹 내지 사기를 상징하는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이다. 문재인 정부가 첫 경제수석으로 발탁한 홍장표 교수와 국제노동기구 이상헌 박사가 포스트 케인스주의 임금주도성장론을 변형한 것이다.

리카도-마르크스-솔로우의 성장론은 자본가 이윤의 저축과 투자, 즉 자본축적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기술진보도 중요하다. 반면 포스트 케인스주의 임금주도성장론은 노동자의 임금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일종의 반(反)경제학이다. 두 성장론이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자유주의·공산주의가 인민주의·파시즘과 공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반경제학인 임금주도성장론을 문재인 정부는 더 나아가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변형해 자영업자의 소득분배율을 상승시켜야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재벌개혁도 순환출자가 아니라 대기업의 자영업자에 대한 ‘갑질’에 주목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학적 문맹 내지 사기를 상징하는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2014년, 〈부채주도 성장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겨레신문》]

소득주도성장론은 집권 1년 만에 비판을 받는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자영업자의 소득이 하락하고 자영업 관련 일자리도 감소했다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홍장표 수석의 문책성 경질로 일단락된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위세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초래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양대노총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아닌데, 소득주도성장론 자체가 본래 경제학적 문맹 내지 사기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현 정책실장)은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한 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했다는 방증은 삼성에 대한 ‘투자 구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 8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만나 3년간 180조 원의 투자를 약속한다. 이재용이 2018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유는 특검의 결론인 경영권 승계작업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김상조는 경영권 승계작업이 이재용이 아니라 미래전략실 소행이라고 두둔한 바 있다. 친노-친문 핵심은 유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3대 세습에는 관대하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는 경영권 승계작업이 긍정되었다는 것인데, 차기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와 삼성의 ‘재판 거래’가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민화의 실패와 민주노총의 한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비판은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민주노총이 소득주도성장과 배치되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했다고 해서 임금주도성장론인 것도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는 노무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변형근로제를 통해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으로 귀결된다. 노무현 정부의 2003년 노사정협상에서 주5일제와 교환된 변형근로제는 불완전했다. 잔업과 특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잔업과 특근을 구별하지 않고 노동주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대신 변형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귀결은 또한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이다. 

앞서 서평〔상〕에서 한국사회의 객관적 조건으로서 남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룬 바 있다. 그 분석의 핵심은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이 특수한 형태로 실패했고, 그 결과 남한경제는 몰락해 경제주권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그 원흉은 박정희와 김대중-노무현이다. 박정희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로 재벌을 형성했고, 김대중은 전두환-김영삼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만 일삼다가, 정작 자기가 집권해서는 이들의 개혁을 계승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조차 이미 때를 놓쳤기에 나라를 팔아넘긴다. 노무현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그 귀결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섯 개 시중은행을 모두 외국인이 지배하고, 실물경제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조차 외국인이 지배하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패는 또한 문민화의 실패다. ‘민주정부 3기’라고 강변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역사적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87년 이후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문민화의 실패’이며 그 결과 남한경제도 침몰한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평가는 주류경제학에서도 공유하고 있다. 배리 아이켄그린의 ‘중진국 함정론’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문민화 실패라는 관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와 배리 와인개스트의 정치경제론이 말하는 ‘폭력과 지대의 교환’이란 개념에 주목한다. 

노스-와인개스트는 정치·경제적 권리에 대한 접근(access)의 수준에 따라 무정부상태, 제한접근사회, 개방접근사회를 구별한다. 아무런 사회질서도 없는 것이 무정부상태인 반면, 제한접근사회는 권위적 질서가 지배하고, 개방접근사회는 합의적 질서가 지배한다. ‘폭력과 지대의 교환’은 무질서상태에서 제한접근사회로 갈 때, 폭력의 잠재성을 가진 집단에 권리의 독점을 허용해 그 집단을 순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민화가 목표로 하는 개방접근사회는 이 지대도 최소화해야 한다.

모종린과 와인개스트가 공저한 『한국발전론』에 따르면, 1987년 이후 남한에서는 금권주의(plutocracy)와 인민주의(populism)가 부상한다. 그 결과 천민부르주아지와 그들에 승복하지 않는 하층민의 ‘질투의 권리선언’(발자크의 표현)이 공존하게 되었다. 천민적(pariahhood)이란 행동규범이 부재하다는 의미로, 한국의 거의 모든 재벌총수 일가가 천민부르주아지라 할 수 있다. 와인개스트는 재벌과 재벌노조의 ‘지대공유제’를 개혁할 수 있는가가 그 성패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의 한계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이비 대안인 코퍼러티즘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윤소영 선생은 과천연구실 초기 저작에서부터 민주노총이 코퍼러티즘적 목표를 추구하는 대신 전노협으로 소급하는 사회운동노조라는 지향을 부활시키자고 제안해왔다. 코퍼러티즘적 지대는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특수한 이익, 그것도 기득권 내지 특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재벌노조의 상태는 ‘상황의 지대’를 넘어 독점이윤을 공유하는 ‘지대공유제’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노동조합의 전투성은 변혁성과 아무 상관이 없고, ‘폭력과 지대의 교환’을 상징한다고 비판한다. 이때의 폭력이란 폭력 그 자체라기보다 무질서를 초래하겠다는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노조가 ‘지대공유제’ 수준의 상태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임금격차다. 300인 이상 대기업과 나머지 기업의 임금격차는 1980년대 1.05배 안팎에서 2014년에는 거의 1.7배로 확대했다. 생산성격차를 보정하더라도 ‘임금프리미엄’ 내지 ‘임금지대’가 1980년대 5~10%에서 2014년 거의 50%로 확대된다. 남한의 대기업 임금은 1인당 국민소득 대비 1.91배인데, 임금격차에서 미국(1.01배), 일본(1.16배)보다 오히려 프랑스(1.55배)랑 비슷하다. 2018년 10월에 있었던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논란에 대해서도 “기절초풍할 일”이라 언급한다. 재벌노조의 고용세습이 공공노조로 확대된 것이다. 관련해 1980년대 이후 이탈리아에서 공공노조가 부상하면서 노동자운동이 쇠퇴했음을 지적한다. 공공노동자가 노총이 추진하는 ‘연대임금’에 반대해 임금격차를 고수하기 위해 독립노조를 결성했던 것이다. 
 

북한 사회주의의 타락과 연방제통일론 비판 

2018년 문재인 정부 2년 차에 들어 정책의 강조점이 완전히 변화한다. 소득주도성장 대신 북한 비핵화가 부상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 중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1년 차에 추진한 개헌과 이를 위한 근거였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실행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친노-친문 세력이 분화하면서 연방제통일을 주장하는 친북세력이 득세했다. 또한 소득주도성장은 김동연 부총리가 나름 비판했으나, 대북정책에서는 외교부와 국방부가 완전히 무력했다. 강경화 장관은 무지하고, 송영무 장관은 엘리트의식, 즉 자존심 내지 지조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언론의 비판도 통제했다. 또한 미국 의회가 「대북정책감독법」을 발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견제를 시작하자, 아셈(ASEM,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해 유럽의 지지를 요청한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독일의 총리 모두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복구 불가능한 핵 폐기)를 강조하면서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세계 여론 동향에 둔감한지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냉전에 대한 몰인식을 바탕으로, 탈냉전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북한은 냉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게임의 규칙, 즉 탈냉전을 위한 행동규범을 위반하고 있다. 무기를 동원한 열전과 달리 냉전은 두 체제 사이의 경쟁이다. 경제성장과 정치이념의 우열이 쟁점이다.  냉전의 종식이란 체제경쟁에서 사회주의가 패배했다는 의미이고, 탈냉전을 위한 게임의 규칙(행동규범)은 체제전환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그라스노스치와 중국의 개혁·개방이다. 베트남의 도이머이도 중국 방식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행동규범이 없다. 핵무장을 선택했다. 핵무장을 통해 체제의 안전이 아니라 ‘백두혈통’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한다. 북한은 소련과 비슷한 공업국이라 중국(베트남)식 체제전환을 시도할 수 없었다. 소련식 전환도 시도하지 못했는데, 소련보다 농업집단화와 중화학공업화에 더 철저한 극단화된 스탈린주의였기에, 소련 수준의 경제성장에도 실패하고 ‘빈곤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노선은 북한에서 국내파, 연안파, 소련파를 숙청하는 구실이 되었다. (김일성의 대숙청은 스탈린의 대숙청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결국 초등교육 수준 이하의 만주파만이 지배세력으로 생존하게 되었다. 주체사상은 스탈린주의적 개인숭배를 넘어서 ‘신화화’로 극단화되었다.
스탈린주의는 경제학을 중시했다. 반면 주체사상은 철학에 경도된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철학화한 황장엽에 따르면, 주체사상의 궁극적 목표는 마르크스의 『자본』으로부터 독립이다. 마르크스주의가 경제학비판인 반면, 주체사상은 반경제학인 것이다. 모택동사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인 반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이다. 김정일은 1974년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격상하며 부자세습을 공식화했다. 김정일까지는 극단화된 스탈린주의라 할 수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3대 세습을 강행한 현재는 사회주의가 타락해 절대군주정이 출현했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북한은 타락한 사회주의, 절대군주정이라는 평가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의 연방제통일론을 비판할 수 있다. PD(민중민주론)는 한국사회성격 논쟁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비판하는 한편, 북한의 우리식 연방제통일론도 내재적으로 비판했다. 윤소영 선생은 『NL론 비판』에서 한민승이라는 필명으로 민중민주파의 연방제통일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 핵심은 선변혁후통일론이었다. 반면 NL(민족해방파)은 선통일후변혁론을 주장했는데, 민족자주정부를 수립한 뒤 북한에 흡수되어 사회주의 변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윤소영 선생은 이러한 PD식 선변혁후통일론도 현재의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정정한다. 먼저 남한에서 더는 변혁의 전망이 없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물론 사회진보연대조차 변혁을 지향하는 것 같지 않다고 평가한다. 또한 설사 남한의 변혁이 가능하더라도, 사회주의(남한)와 절대군주정(북한)은 양립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와중에, 민주당 창당 기념식에서 20년 집권을 넘어 50년 집권을 주장했다. 1984년생인 김정은 위원장의 치세와 민주당의 민족자주정부 사이의 평화공존일 것인데, 황당무계이자 아연실색이다. 
 

하노이 노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만인 2018년 5월부터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자, 그 대안으로 추진한 것이 북한 비핵화다. 2018년 4-5월 남북정상회담과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것인데, 이른바 ‘하노이 노딜’은 이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증명했다. 
 
‘하노이 노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증명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대내외정책, 즉 경제와 외교·안보정책은 난맥상을 보인다. 북한이 6월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6월 17일 보도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후 문재인 정부의 대내외정책, 즉 경제와 외교·안보정책은 난맥상을 보인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노동자 배상청구권 재상고심 판결에 이어 11월에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며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기로 결정한다. 일본이 2019년 7월 경제제재라는 방식으로 반격하자 지소미아(GSOMIA,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선언해 미국을 자극한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라 지칭하며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 북한 비핵화는 요원한 채 대미·대일관계만 악화된 것이다. 반일은 몰라도 비미는 부담스러운 문재인 정부는 3개월 만에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로’ 철회한다.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일본은 남한을 북한 같은 적성국으로 간주하지는 않으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의 공유’를 포기했다고 비판하는 중이다. 와다 하루키 교수를 인용해, 북한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라는 문제의 해결에는 ‘미국의 협력과 일본의 참여’(북일국교정상화)가 필요충분조건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일본의 재무장을 비판하려면 남북한도 일본처럼 ‘평화헌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전쟁을 위한 군비 내지 무력을 포기해야 하고, 특히 북한은 핵무력을 포기해야 한다. 핵전쟁게임은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을 구별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적은 사회주의의 친구’라는 남한의 얼치기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 

‘핵전쟁게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북한의 핵무장에 따라 일본과 남한에서도 핵무장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의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의 전술핵 공유를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공유란 핵의 소유권은 미국이 독점하고 사용권은 미국의 후견 아래 공유한다는 의미다. 프랑스 핵무장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 등 5개 나토회원국이 자체 핵무장의 대안으로 미국과 핵공유협정을 체결한 것이 선례다. 
 

조국 사태

소득주도성장도 실패하고, 북한 비핵화는 요원한 상항에서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추진한다. 그런데 2019년 8월에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한 뒤, 상식을 초월한 갖가지 비리 혐의가 제기되자 6월에 임명된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단행하며 갈등이 폭발한다. 8월부터 11월까지 서초동과 광화문에서는 ‘조국 수호’와 ‘조국 사퇴’를 외치는 대중집회가 열린다. 책이 나온 2020년 2월 재판이 진행 중이었던 조국 사태에 대해 정리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비판한다. 

조국 사태란 조국 교수 일가의 입시 비리, 웅동학원 비리, 사모펀드 비리를 가리킨다. 상식적 수준에서도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적조’(새 조국의 적은 옛 조국)와 같은 비판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의 지명과 임명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동시에 유재수 부산부시장 감찰을 중단한 비리,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지원한 비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다.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여서 비호할 도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비주류였던 386세대 운동권이 주류가 되면서 권력형 비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의 해체를 선택했다. 문재인과 추미애의 조치들은 본질적으로 인사권 행사를 통한 ‘사법 방해’라 할 수 있다. (『세미나』 책이 나온 2020년 초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법 방해’와 ‘법원 모독’은 남한에 없는 미국의 제도다. 남한에는 ‘의회 방해’ 내지 ‘의회 모독’도 없는데, 미국이 아니라 남한이 ‘제왕적 대통령제’라 할 수 있는 이유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세 가지 의미의 법치에 대한 위반이라고 비판한다. 그 세 가지 의미란 첫째, 자유주의의 상징인 법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이다. 조국 교수 일가는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법 앞에서 더 평등한 만 명’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둘째, 법치는 ‘(제정)법을 초과하는 법’, 즉 ‘사회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된 일반된 정의 관념’의 지배를 의미한다. ‘합법적 불공정’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망언은 제정법을 초과하는 법이 지배한다는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셋째, 법치는 ‘법조정’(juristocracy)은 아니다. 법조정이란 판·검사와 변호사로 구성되는 법조(법률가 집단)가 정치인으로 구성되는 입법부와 관료로 구성되는 행정부를 대체한다는 의미다. 법조정의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한 입법부·행정부의 무능과 헌법재판소(헌법소원제도)의 도입 때문이다. 

조국 교수 본인도 사노맹 시절의 스탈린주의적 형법론에서 (자유주의가 아니라) 인민주의로 전향했다고 비판한다. 조국은 「근대시민혁명기의 ‘민중적 형법사상’에 관한 소고: 베카리아와 마라를 중심으로」(《형사법연구》 5권, 1992.)에서 베카리아와 마라에 주목했다. 베카리아의 형법을 공안위원회의 공포정치로 실현한 사람이 마라였다. 마라는 1789년 혁명 직후 《인민의 벗》이라는 정치신문을 창간한 프랑스식 인민주의자다. 베카리아를 계승해 공리주의를 제창한 벤섬과도 친화적이다.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경제적 계몽주의와 베카리아-벤섬의 사법적 계몽주의를 구별하는 사이먼에 따르면, 범죄와 형벌에 대한 양자의 차이는 유가와 법가의 차이와 거의 동일하다. 스미스와 유가에게 형벌은 범죄에 대한 배상, 사적 원한을 대신하는 공적 배상이다. 베카리아와 벤섬에게 형벌은 범죄의 억지인데, 프랑스혁명에서 산악파가 공포정치를 자행한 근거다. 나아가 형벌은 사회를 방어하고 변혁하는 수단이다. 산악파는 시민의 구세주, 즉 그리스도를 자임했다. 
 

검찰개혁 논쟁

조국 사태 중에 뜬금없이 검찰개혁이라는 쟁점이 부각된다. 적폐수사를 명분으로 특수부를 증설하는 등 검찰을 강화해온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노딜 이후 선거 전망이 암울해지면서 검찰개혁이라는 자충수를 둔 것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한 검찰의 ‘해편’(해체 수준의 개편)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기소권과 분리한다는 장기적 목표 아래, 수사권을 점차 경찰과 공수처로 이전해 검찰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검찰사법이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개혁은 경찰사법의 부활로 귀결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조선의 사법제도는 검찰 중심의 현대적 사법제도가 아니라 경찰 중심의 전현대적 사법제도였다. 따라서 해방 이후 사법개혁의 핵심은 경찰에서 검찰 내지 법원으로 그 중심을 이전시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에서는 여전히 경찰이 중심이었고, 박정희 정부에서 검찰이 강화되지만 검찰사법으로 이행한 것은 아니다. 중앙정보부가 설치되면서 대검 중수부는 실권이 없었고, 중수부에서 독립한 공안부와 특별수사부가 엘리트코스로 부상하지만, 여전히 검찰사법은 아니다. 검찰의 인사권과 예산권은 제왕적 대통령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검찰개혁론자가 경찰대안론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수처도 문제인데, 헌법기관인 검찰청 위에 법률기관인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 나아가 프랑스혁명기 ‘공안위원회’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법무부 안에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청과 함께 수사권을 독점하는 수사청을 병행 설치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윤석열이 검찰개혁/해편을 저지하려고 조국을 낙마시켰다는 주장의 대표적 사례는 《한겨레신문》 김종구 편집인 겸 전무의 ‘구교주인’(개가 주인을 물어뜯는다는 엉터리 사자성어) 칼럼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조국 일가를 수사하는 이유는 법치의 준수와 수호다. 윤 총장이 볼 때는 오히려 검찰개혁론자가 정치를 사법화하기 위해 정치검찰을 육성하는 셈이다. ‘반사실적’(counterfactual) 가정을 해볼 수도 있다. 만약 검찰의 수사권이 형해화되었다고 가정하면 조국 일가, 나아가 유재수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비리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버닝썬 사건에서 보았듯,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을 리 없다. 게다가 선거개입 비리는 청와대와 함께 경찰이 직접 개입했던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식의 주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검·경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11. 86세대 비판

 
지금까지 정세 분석과 문재인 정부의 개헌, 소득주도성장, 대북정책, 검찰개혁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았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주의자도 인정하는 현대 자유주의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으며, 개혁의 방향과 근거 자체가 문제다. 즉 ‘근거 없는 판단’이고 ‘사기극’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분석하면서 ‘임박한 파국’을 예상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공황(panic) 직전의 비이성적 열광에 비유할 수 있다. 『세미나』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참여연대가 대표하는 비정부기구와 함께 386세대 운동권에 주목한다. 

필자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가 반(反)자유주의적이고 반(反)경제학적이며 심지어 남한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물론, 북한의 핵무장과 절대군주정까지 용인하고 있는데도 사회운동이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원인은 ‘진영논리’와 386세대가 형성해 온 한국의 진보적 통념들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진보를 표방한 사회운동들조차 인민주의와 자유주의, 심지어 인민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언급되는 386세대 PD운동(‘노동계급’)의 후세대로 평가하는 사회진보연대에 대한 여러 비판도 이런 결함을 지적하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비단 그 세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현재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비판에 대해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인민주의의 부활

『위기와 비판』은 『2007-09년 금융위기』부터 여러 저작을 통해 이어져 온 정세분석을 보충한다.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민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과 유럽연합의 실존적 위기를 상징하는 브렉시트가 가장 충격적 사례다. 트럼프는 ‘태평양으로의 선회’로 상징되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거의 모두 부정한다. 그러나 단지 정책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에서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의회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인민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2011년 말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이 3대 세습을 시도하며, 2014년 초 이건희 회장이 의식불명이 되자(최근 사망), 이재용이 역시 3대 세습을 시도하며 최순실 스캔들을 야기하여 박근혜 탄핵과 노무현식 인민주의의 부활을 초래한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원인이 엘리트와의 타협에 있었다고 진단하는 문재인 정부는 인민주의를 훨씬 더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다. 386세대 운동권이 권력 금단 증상에 시달리며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 알 수 있다. 돌이켜보면 2012년 문재인의 대선 패배 이후 2013년 ‘위고 열풍’과 2014년 ‘피케티 현상’이라는 ‘프랑스 이데올로기’가 나타났고,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박근혜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와 복수의 증오심이 확산되었다. 이 와중에 ‘비선실세’ 의혹이 국정농단사건으로 발전하면서 이른바 ‘촛불혁명’을 통해 친노-친문의 정권 재창출이 성공하게 된다. 과거 김대중 정부의 적폐청산이 전두환-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계승하고 있음을 은폐하는 목적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분노와 복수의 외침’, 인민주의적 데마고기(대중선동)일 따름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인민주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강연도 언급한다. 오바마는 우선 과거에 대한 회고와 반성에서 출발한다. 전후 세계질서의 형성에서 미국이 세계표준을 제시했음에 주목한다. 전후 ‘현대화’가 곧 ‘미국화’였고, 소련과의 냉전에 승리했다는 것이다. 다만 탈냉전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결함과 모순’, 특히 ‘경제적 불평등의 폭발’ 때문에 9.11테러와 중국, 러시아의 권위주의 같은 다양한 형태의 ‘반동’(backlash)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타협과 협력’으로서 자유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를 지어내는’(make stuff up) 풍조라고 지적한다. 국가가 후원하는 선전, 인터넷이 추동하는 날조, 언론의 타락으로 인한 뉴스와 오락의 혼재 등이 그 사례다. 정치인의 수치심 상실도 중요하다. 

이런 회고와 반성을 통해 오바마는 현 정세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두 개의 아주 상이한 전망이 세계시민의 감정과 이성을 두고 경쟁하는 순간’이라 분석한다. 그 전망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고 나머지 하나는 인민주의 내지 권위주의다. ‘역사를 공부하라’고 역설하면서, 포섭적(포용적, inclusive)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언뜻 문재인 정부 정책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학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에서 다르다. 포섭은 경제적 인센티브에 근거한 평등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자유주의 정치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도 소개한다. 1963년에 출판된 이 책은 스푸트니크의 충격 이후 기초학문과 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한 케네디 정부를 배경으로 한다. 감성을 무시하는 주지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대만이 아니라, 지식인(지성인) 그 자체에 대한 인민주의적 반대, 나아가 ‘원한’(resentment)에도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Anti-intellectualism’은 반지식인주의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반지식인주의의 세 가지 형태는 파괴, 봉쇄, 정복이다. ‘분서갱유’나 ‘문화혁명’은 파괴의 사례, 냉전기에 일반적이었던 봉쇄는 상아탑으로의 유폐였고, 정복은 사상전향 같은 개조다. 
 

남한의 세대연구

남한에서 세대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2002년 대선을 계기로 노무현 지지자들이 ‘주류교체론’을 제기하면서부터다. 홍덕률 교수는 남한 사회의 적폐가 조선의 사대부, 일제강점기 친일파, 해방 후 친미파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는데 아무런 근거 없는 독단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주 영향력이 커서 2002년 《한겨레신문》에는 ‘주류교체론’ 특집이 실리기도 했다. 그 논지는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인해 5060(1930~40년대생)에서 40(1950년대생)을 건너뛰고 2030(1960~70년대생)으로 주류가 교체되었다는 주장이다. 노무현의 대선 승리는 기존 주류이자 ‘적폐’인 구세대를 386세대로 교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실제로 386세대는 ‘주류교체론’을 주장해 이제 주류가 되었다. 중앙일보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21대 국회에서 50대[1960~1969년생]는 300명 중 174명[58%]인데 원래 국회 다수를 차지하는 연령이지만 이렇게 과점한 적은 1981년[56%] 이후 처음이다.)

세대연구에 의하면, 1955~61년생(1974~1980년 고졸)은 ‘베이비붐세대’, 1962~69년생(1981~1988년 고졸)은 ‘386세대’, 1970~79년생(1989~1998년 고졸)은 ‘X세대’, 1980~96년생(1999~2015년 고졸)은 ‘Y세대 혹은 바링허우 세대’로 명명된다. 

세대별 특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중등교육의 경험이다. 베이비붐세대는 3선개헌부터 10월 유신까지, 386세대는 10월 유신부터 3저 호황까지, X세대는 3저 호황부터 문민화까지, 바링허우세대는 문민화, 1997~98년 경제위기, 2007~09년 금융위기가 중등교육을 받던 시기의 시대적 배경이다. 또한 교육과정의 차이도 주목할 수 있다. 박정희 2차 교육과정은 교육의 질적 향상에 주력하면서 교육과정을 체계화했다. 그러나 유신 때부터 박정희 정부는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3차 교육과정을 택했다. 이런 지향은 김대중 정부의 7차 교육과정까지 견지된다. 따라서 베이비붐세대는 하향평준화로 진행하던 과도적 세대고, 386세대 이후는 하향평준화 세대라 할 수 있다. (이는 뒤에서 비판할 386세대의 역사적 무지와 사이비 사상이 386세대가 받았던 유신체제하 중등교육의 문제라는 의미도 있겠다.) 
 

386세대의 역사왜곡

조선의 사대부가 일제강점기 친일파와 해방 후 친미파로 이어지는 적폐라고 규정하는 386세대의 주류교체론은 역사왜곡이다. 지난 서평에서 한국지식인의 역사를 다루며 설명했듯, 조선 망국의 원흉은 사대부가 아니라 고종이다. 조선 후기 노론 사대부는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에 가장 가깝다. 순절 혹은 망명, 의병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부는 백남운 선생처럼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정작 386세대가 존숭하는 장준하와 같은 재야세력은 철두철미한 친미 반공주의의 관점에서 박정희의 모호한 반공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현재 민주당 주류인 386세력의 또 다른 역사왜곡인 해방 이후 남한정치사의 쟁점도 간단히 살펴보자. 앞서 서평〔상〕의 남한경제사에서 김대중-노무현은 전두환-김영삼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의 적시를 놓쳐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이미 비판한 바 있다. 이번에는 남한 정치사를 살펴보면서 장면-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신파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선호했을 뿐만 아니라 문민화 실패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보자. 

남한 정치사에서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선호한 반면, 김성수 선생이 조직한 한국민주당은 의원내각제를 선호했다. 이후 한민당은 이승만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당으로 결집한다. 따라서 한민당 중심의 민주당 구파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반면, 평안도 탈북 개신교 흥사단과 자유당 탈당파로 구성된 민주당 신파는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민주당 구파와 신파가 분열되기 시작한 계기는 윤보선 대통령(구파)과 장면 총리(신파)의 갈등 때문이다. 

미국계 가톨릭(메리놀 수도회) 소속의 장면 총리는 정부수반이자 국군통수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대신 5.16을 진압해줄 것으로 기대했을 따름이다. 자신은 도주하기에 급급했는데, 미 대사관에서 거절당하자 가르멜수녀원으로 잠적하다가 55시간 만에 내각 총사퇴를 발표한다. 정치인으로서 실격이다. 장면 이후 민주당 신파를 지도한 박순천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에 유화적이었다. 

1963년 대선에서 경기·충청지역은 윤보선을 지지한 반면, 영호남은 박정희를 지지해서 당선시킨다. 1967년 대선에서도 패배한 윤보선 대통령은 3선개헌과 10월 유신을 계기로 재야운동에 투신한다. 이후 구파를 계승한 김영삼과 신파를 계승한 김대중의 대권 경쟁이 본격화된다. 이 갈등은 급기야 자유주의/보수주의 대 인민주의의 대립이라는 정책적·이념적 갈등으로 비화된다. 김대중-노무현 추종자들은 김영삼의 3당 합당 민자당을 야합이라 비난하는데, 자유주의/보수주의와 인민주의의 차이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DJP연합으로 집권하면서 ‘내로남불’의 원조가 된다. 

민자당의 자유주의적 분파인 민주계와 보수주의적 분파인 민정계의 갈등과정에서 민자당은 1995년 민정계가 이회창을 영입하며 신한국당으로, 이회창이 박근혜를 영입하며 새누리당으로 변모한다. 민주당 구파와 신파 사이의 쟁점이었던 의원내각제 개헌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대권 경쟁 과정에서 소멸된다. 유신체제에서 시작된 제왕적 대통령제가 날로 강화된 셈이다. 

정리해보면, 민주당 신파 장면은 구파 윤보선과 갈등하다가 5.16을 초래했으며, 장면의 후계자 김대중은 구파 김영삼과의 후보단일화를 거부하며 권력투쟁에 몰두하다가 1980년 신군부의 등장,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의 당선을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김영삼과 달리 김대중은 재야운동권이라고 불리던 의회 외부의 정치세력과 연대해 정당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386세대 운동권이 부르주아 정치에 입문하면서 능력제가 엽관제로 대체된다. 행정가, 입법가로서 아무런 능력과 경험도 없으면서 청와대로, 국회로 입성한다. 운동권 경력과 지연, 학연이 출세의 도구가 된 것이다. 
 

정파지로 전락한 《한겨레신문》

『세미나』에는 정파지로 전락한 《한겨레신문》에 대한 비판도 여러 차례 언급된다. 『후기』에 ‘정론지와 정론에 대한 보론’도 추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386세대의 인민주의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이라 할 수 있겠다. 정치인이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통해 재생산된다면 시민은 정론지를 통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public opinion’을 번역한 여론(與論)은 인민(people)으로서 국민(nation) 다수의 의견이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외국인이 아니라 민족을 의미한다. 즉 외국인은 물론 정부에 의한 여론의 통제나 조작을 감시하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신문이 정론지(正論紙)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은 그들의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정론 저널리즘(opinion journalism)과 정파 저널리즘(partisan journalism)을 구별한다. 전자는 국민 다수의 여론을 형성하는 공익에 봉사하는 반면 후자는 특정 정파, 심지어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는 사익에 봉사한다고 강조한다. 정파 저널리즘은 사실을 확인해주는 대신 주장을 제공한다. 심지어 디지털 저널리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량 공급되는 쓰레기 언론(junk journalism)은 ‘지지’ 내지 ‘확증’을 제공하는데, 수요자의 선입견에 영합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론지는 박정희에 의해 소멸한다.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을 지지한 지역은 동아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경기·충청지역이었고, 36도선 이남의 영·호남은 박정희를 지지했다. 박정희는 민주당 구파 김성수가 설립한 『동아일보』의 대안으로 『조선일보』를 육성했다. 유신체제에서는 『동아일보』 광고주를 압박해, 결국 『동아일보』가 굴복하면서 정론지가 소멸한다. 당시 해직된 『동아일보』 기자를 중심으로 1988년에 창간된 『한겨레신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일개 정파지로 전락한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한겨레신문》이 정론지가 아닌 정파지일 따름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폭로되었다. 조국 사태 도중에 “‘우병우 데자뷔’ 조국, 문 정부 5년사에 어떻게 기록될까”라는 강희철 법조팀 선임기자의 칼럼이 삭제되면서 《한겨레신문》 기자 50여 명이 국장단 사퇴 요구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찬수 논설위원은 검찰 수사를 ‘군부 쿠데타’에 비유하는 칼럼을 썼는데, 군부나 경찰과 달리 법원이나 검찰은 문관이라는 사실에 무지한 소치다. 나아가 하어영 《한겨레21》기자의 윤 총장의 접대 의혹 오보를 1면 톱기사로 내기도 했다. 

코바치와 로젠스틸은 언론인의 정의를 초판과 재판에서는 사실확인자(verifier)라고 정의한 반면 3판에서는 진실확인자(authenticator)라고 정의한다. 사건을 맥락 속에서 정리하여 정보를 지식으로 가공하는 사람이다. 윤소영 선생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 남한에서는 정론지와 함께 정론 개념도 소멸한 지 오래인 것 같다고 평가한다.  
 

‘길 잃은 세대’: 중일 현대지식인과의 비교 

『세미나』는 386세대를 중국과 일본의 현대지식인과 비교를 통해 평가한다. 지난 서평에서 다룬 한중일 지식인의 역사를 비교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386세대를 중국의 문혁세대, 일본의 68세대와 비교한다. 

중국의 현대지식인 연구에서 신좌파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 오히려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주류 지식인은 대체로 경제학자와 역사학자, 특히 사회경제학자이다.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자다. 그들이 주류가 된 것은 현대화론, 즉 경제성장론 내지 경제발전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 비주류는 두 개의 흐름인데 하나는 진보주의·인민주의적 신좌파고 다른 하나는 보수주의적 신유가다. 이들이 비주류인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현대화론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신좌파는 대부분 문학비평가이고 철학자가 일부 있다. 폴라니와 브로델을 따라 ‘반(反)경제학’의 관점에서 현대화론을 기각하는 왕후이나 ‘소자산계급(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추이즈위안이 신좌파를 대표하는 현실을 보면, 중국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멸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소멸하는 계기는 문화혁명의 ‘반(反)지식인주의’다. 문혁기에 홍위병은 지식인을 ‘구린내 나고 늙은 9등급 천민’(臭老九)이라 불렀다. 문혁을 지배한 것은 청년과 무지자에 대한 미신이었다(‘청년이 노인을 이기고, 무지자가 지식인을 이긴다’). ‘빈곤하고 무지한 계층일수록 혁명적이’라는 미신도 있었다. 이러한 맹목적 찬양은 대학교육을 폐지하다시피 한 광기로 귀결된다. 문혁의 ‘10년 동란’이 끝난 뒤 학문의 세대 간 단절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40~50년대생을 문혁세대라 부를 수 있다. 문혁세대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보냉은 문혁세대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불렀다. 환멸(환상에 대한 소멸)때문에 갈 길을 잃었다는 의미다. 386세대도 ‘길 잃은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다른데 386세대는 환멸이 아니라 망상(거짓된 생각) 때문에 헤매는 것 같다. 게다가 문혁세대와 달리 386세대는 대량으로 전향했다. 오래된 망상을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새로운 망상으로 대체한 셈이다. 

문혁세대 이후의 1960~70년대생은 개혁·개방 세대, 그다음 세대는 바링허우(1980년대생) 세대다. 개혁·개방 세대의 특징은 학력 미달임에도 하향평준화로 인해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행동 규범을 습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냉소와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도 특징이다. 바링허우 세대의 지식인은 미디어 명망가의 최신 변종으로 일종의 연예인이다. 문혁세대와 개혁·개방 세대가 이론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반면, 바링허우 세대는 이론의 중요성을 부정한다. 부패에 대한 고발에 몰두할 따름이다. 

일본의 현대지식인과도 비교할 수 있다. 이전 서평에서도 살펴보았듯, 메이지유신이 성공한 이유는 이토라는 희대의 경세가의 공적이다. 이토의 구상이 실현되면서 다이쇼민주주의가 도래했고 자유주의자가 일본의 주류로 부상한다. 일본도 중국처럼 역사학이 현대화된 다음 사회과학과 경제학이 현대화된다. 이렇게 현대학문이 도입되면서 그 내부에서 논쟁이 전개되는 데 그 정점이 1930년대 일본사회성격 논쟁이다. 논쟁의 양대진영을 강좌파(공산주의자)와 노농파(좌파 사민주의자)로 부른다. 주로 당시 30~40대였던 1890년대와 1900년대생이 참여했다. 

사회성격 논쟁의 성과에 대한 찬반을 통해서 전후 지식인이 형성된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회한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강좌파를 포함한 모든 지식인의 자기비판을 요구한다. 오쓰카 히사오도 강좌파의 쇄신을 시도했다. 이들 1910년대생의 입장이 1930년대생으로 계승되면서 전후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내지 구좌파는 1910년대생과 1930년대생이 대표하게 된다. 반면 ‘전중세대’로 불렸던 1920년대생은 회한공동체 개념을 거부한다. 자기비판은 마르크스주의에 국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1940년대생 ‘68세대’로 계승된다. 그 결과 1920년대생과 1940년대생이 비(非)마르크스주의자 내지 포스트모더니즘을 지향하는 신좌파를 대변한다. 이런 지점에서 남한의 386세대는 일본의 68세대와 유사하다. 다만 전향한 적 없는 68세대와 달리 386세대는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를 자임하다가 대량으로 전향했다는 차이가 있다. 
 

‘리얼리즘의 승리’

이렇게 중국, 일본 지식인과의 역사적 비교에 더해, 남한에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취약성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가 이미 존재했음에 주목한다. 386세대 학생운동이 중심이 되어,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을 기대하던 1980년대에 이미 그 실패를 경고하는 문학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엥겔스의 발자크론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말년의 엥겔스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을 가리켜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불렀다. 프랑스사회의 역사를 당대 모든 학자보다 더 ‘리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문열 작가는 1982년에서 1984년까지 연재한 『영웅시대』(1984)에서 부친을 모델로 남로당의 투쟁과 몰락의 비극을 묘사한다. ‘회개한 부르주아’인 남로당이 ‘순혈의 프롤레타리아’인 북로당에 의해 숙청되었다는 사실만이 비극이 아니라, 당시의 마르크스주의가 ‘유사/의사의식’(사이비사상)이었을 따름이라 비판한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사이비 사상이 횡행하는데 그 징표는 ‘과거에 대한 반성, 현재에 대한 인식, 미래에 대한 통찰의 결여’다. 산문집 『시대와의 불화』(1992)에서는 사이비 사상이 ‘변형된 출세주의’라고, 다시 말해 사적 불만을 해소하고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부연한다. 

박완서 작가는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자전소설을 발표한다. 1945~53년의 해방정국을 ‘더러운 시대’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1980년대 부활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소설에서 작가의 오빠는 남로당원인데, 오빠 같은 ‘이상주의적인 얼치기 빨갱이’ 때문에 한국전쟁이라는 ‘벌레의 시간’, 즉 비극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문열과 박완서는 둘 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해방정국, 특히 한국전쟁을 비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병주 작가의 주제 역시 사이비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었다. 자신의 정치이념을 ‘회색의 사상’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중도파적 자유주의라는 의미였다. 『관부연락선』, 『지리산』, 『별이 차가운 밤이면』 장편소설 3부작은 모두 주인공이 학병 출신의 지식인인데 행동에서는 차이가 있다. 『관부연락선』에서는 비영웅으로서 순응했고, 『지리산』에서는 영웅으로서 저항한 반면, 『별이 차가운 밤이면』에서는 반영웅으로서 ‘천민적으로’(행동규범의 부재) 행동한다. 
김원일-김원우 형제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형인 김원일 작가가 인민주의적 개신교도였던 반면 동생인 김원우 작가는 유가적 세계관과 친화성을 갖는 자유주의자였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외심도 있는데, 한국전쟁에 빗대지 않고서도 386세대를 절묘하게 비판한다. 『이 세상 만세』(2018)에서는 촛불혁명을 비판하는데, 한국전쟁기 ‘바닥빨갱이’의 ‘완장질’을 연상시키는 시위꾼의 ‘주먹질’에 주목한다(바닥빨갱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이렇게 1980년대 6·25 소설들은 386세대의 ‘사이비 사상’이나 ‘허망한 열정’, 즉 망상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은 386세대의 대거 전향이었다. 이것이 중국 문혁세대, 일본 68세대와 386세대의 차이다. 
 

12. 현대경세학으로서 경제학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개헌, 소득주도성장, 북한 비핵화, 검찰개혁 정책에 대한 비판과, 이런 사기극에 대한 비이성적 열광의 원인인 386세대의 인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았다. 개헌 논쟁과 문재인 정부의 출현에 대응한 정세적 개입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과학의 이론적 심화와 동반된다.
 

역사학으로서 경제학

2018년 2월에 저술되어 『세미나』의 2권으로 합본되어 나온 『종합토론』을 보면, 윤소영 선생은 “자유주의 또는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반대와 혼동해왔다는 사실”에 대해 자기 평가를 한다. 변증법적 의미에서 비판은 지양, 즉 결함을 발견하고 해결한다는 의미인데, 마르크스주의는 공산주의의 입장에서 자유주의 또는 경제학을 비판한다. 반면 자유주의 또는 경제학에 대한 반대는 그것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달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봉건제의 입장에서도 자본주의에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이래 자유주의나 경제학에 대한 반대는 좌우파가 공유하는 전통이다. 박정희를 추종하는 보수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재야운동권의 인민주의의 근거는 경제학이나 경제학비판이 아니었다. 인민주의적 역사학이나 문학, 철학, 신학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 ‘역사과학으로서 경제학비판’(마르크스주의)의 필요조건으로서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을 좀  더 강조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이란, 역사학의 개념과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경제학이고, 경제학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역사학이라는 의미이다. 중국유학사를 특징짓는 경세학이나 18세기 스미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가 말하는 ‘이론적 역사’가 바로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이다. 『위기와 비판』은 스미스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의 기원에 헬레니즘 시대 로마의 역사가 폴리비오스가 있었음을 강조하고, 『재론 위기와 비판』에서는 벤섬-제임스 밀 때문에 이론적 역사가 경제학에 수용되지 못했음을 강조한다.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

문재인 정부의 개헌 논쟁을 계기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에 주목하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의 폴리비오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의 정체(정치체제, constitution) 개념을 역사학에 수용해 정체순환론(anacyclosis)이라는 경세사학의 변종을 제시한다. 변종이라 한 것은 중국과 비교했을 때 아직 철학이지 경세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중국에서는 경세학,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출현한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으로서 경세학은 정착농경민에게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세학에 무관심한 그리스인의 역사학(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은 개념과 이론이 부재할 수밖에 없었다. 사마천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폴리비오스는 정체론을 역사와 결합해, 정체는 순환한다는 도식을 제시해 이러한 결함을 일정하게 해결한 것이다. 헤로도토스나 투키디데스의 역사학은 그리스를 대상으로 한, 전쟁에 대한 문학적 묘사인 반면 폴리비오스 역사학은 로마를 대상으로 한, 군사적 성공의 원인으로서 정치제도, 특히 정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었다. 

정체순환론이란 군주정이 귀족정을 거쳐 민주정으로 진화하다가 다시 군주정으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인 동시에 순환론이다. 군주정이 참주정으로 타락(degeneration)하면서 대안으로 귀족정이 출현하고, 귀족정이 과두정으로 타락하면서 민주정이 출현한다. 그런데 민주정이 인민정(ochlocracy)으로 타락하면 군주정으로 순환한다. 이러한 정체의 영원회귀를 중단시키는 방법이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라는 세 정체의 장점을 결합한 혼합정체라고 주장했다. 로마의 공화정(republic)이 그 모델이다. 원로원(귀족정)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집정관(군주정적 요소)과 민회(민주정적 요소)를 결합해 타락을 예방하는 것이다.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번영 속에서 이미 그 쇠망을 예상했다. 그 예상은 맞았는데, 공화정을 대체한 그라쿠스 형제의 민주정이 마리우스의 인민정으로 타락하면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군주정이 출현한다. 프랑스 혁명기에 공화정이 나폴레옹의 군주정으로 이행한 것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폴리비오스는 자신의 역사학을 ‘증명된’(apodictic/demonstrated) 역사, ‘프라그마틱’(pragmatic)한 역사라고 불렀다. 달리 말해 나랏일(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대상으로 한 경세사학이라고 부른 것이다. 

로마 봉건제와 이에 후속한 서아시아 이슬람 봉건제는 봉건제이면서도 중상주의적, 식민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또한 유럽은 게르만적 전통의 ‘분권봉건제’가 출현하면서 로마제국을 ‘기독교왕국’이 대신하게 된다. 그 결과 신학을 매개로 철학이 부활하면서 정체순환론은 소실된다. 또한 폴리비오스의 순환적·원형적 역사관도 기독교의 단선적·선형적 역사관으로 대체된다. 
 

스미스의 ‘이론적 역사’

중국에서 봉건제가 계승·발전되며 봉건제의 경세사학도 계승·발전된 반면 유럽에서는 단절된다. 그런데 그 단절이 전화위복이 되어 자본주의와 함께 현대경세학으로서 경제학이 출현한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경세사학을 제시한 사람이 스미스다. 

르네상스 시대 마키아벨리는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에서 출발해 현대적 정치철학을 구상한다. 그러나 혼합정체론의 중요성은 인식하지 못했다. 프랑스 계몽주의자 몽테스키외는 영국의 입헌군주정이 출현한 덕분에 혼합정체론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론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혼합정체로서 입헌군주정론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는 프랑스의 절대군주정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절대군주정의 경제적 토대인 중상주의를 비판하지 못했다. 중상주의를 비판한 케네의 중농주의가 스미스의 경제학으로 발전하면서 현대경세학이 출현한다. 

케네의 중농주의(physiocracy)는 ‘자연의 지배’를 의미했는데, ‘자연법칙’으로서 경제에 주목함으로써 중상주의적 정부의 인위적 개입을 비판하고 민간의 자유방임을 주창하는 논거가 된다. 케네는 중국의 정체가 자연의 지배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여민쟁리’(이익을 둘러싸고 민간과 경쟁한다)를 비판한 중국의 경세학에도 주목한다. 

케네를 계승한 프랑스의 튀르고(루이 16세의 재무부장관)와 영국의 스미스는 어렵·채집, 목축, 농경, 상업이라는 생존양식(mode of subsistence) 4단계론을 제시한다. 이는 ‘이론적 역사’(conjectural history)의 핵심이자, 진보(progress) 내지 진화(evolution)적 역사관의 출현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의 생산양식론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생존양식이나 생산양식의 역사적 단계를 거치면서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1760년대 전반까지 글래스고대학에서 도덕철학 강의를 담당했다. 신학, 윤리학, 법, 경제학으로 구성되었는데, 철학이 과학으로 이행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신학과 윤리학 강의는 『도덕감정론』으로 출판되고(인간학에 해당), 법학과 경제학 강의는 『민부론(국부론)』으로 출판된다(정치학에 해당).
『도덕감정론』의 기본개념은 ‘공감(sympathy)’이다. 일상어로서 ‘sympathy’는 연민 내지 동정이라는 의미인데, 스미스에게 ‘sympathy’는 ‘동료로서 공동체의식’(fellow feeling)이다. 그래서 다월과 같은 철학자는 이를 동물행동학, 심리학에서 인간과 침팬지가 공유하는 감정이자 갓난아기에게 발견되는 감정인 ‘empathy’와 구분한다.

스미스는 덕성을 자기 자신의 행복과 관련된 자제(self-command)와 자기애(prudence), 타인의 행복과 관련된 정의(justice)와 인애(beneficence/benevolence)로 구분한다. 법학의 기본 개념이 정의다. 스미스는 정의를 부정적(negative/소극적) 덕성인 동시에 완전한(perfect) 의무이자 권리라 부른다. 타인의 행복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정의를 준수하는 것은 완전한 의미이고, 정의에 위배되면 배상을 요구할 완전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는 긍정적(positive/적극적) 덕성으로서 인애는 불완전한(imperfect)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 즉 인애 없는 사회는 있어도 정의 없는 사회는 없다는 것이다. ‘표준’의 이중적 의미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정의는 ‘기준’이라면 인애는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법학 강의』는 ‘정의의 법’(law of justice)에서 출발해 ‘편익의 법’(law of expediency)에 도달한다. 스미스의 법학은 곧 경세학인데, 정의의 법과 편익의 법은 정부의 기능 분화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즉 정의의 법은 법무부의 업무이고 편익의 법은 내무부, 재무부, 국방부의 업무다. 

편익의 법학이 분업론이나 자본축적론 같은 경제학적 개념과 이론을 통해 『민부론』, 즉 ‘민족의 부의 본성과 원인에 대한 연구’로 발전한다. 동시에 이론적 역사, 즉 생존양식의 진화론도 경제성장의 역사동역학으로 발전했다. 19세기 후반에 제기되었던 ‘애덤 스미스 문제’, 즉 공감에 기초한 『도덕감정론』과 자기이익에 기초한 『민부론』의 ‘비일관성’은 출판되지 않았던 『법학 강의』에 대한 무지로 인한 오해였을 따름이다. 
 

현대경세학으로서 경제학 

스미스의 ‘이론적 역사’는 자본주의에 적합한 현대경세학의 핵심이다. 스미스는 경세학을 ‘경세가 즉 입법가의 과학’(‘the science of the statesman or legislator’)이라고 불렀다. 보통 경세학으로 번역되는 ‘statecraft’는 여전히 기술, 기법이라는 마키아벨리적 정치관에 충실한 반면, 스미스의 경세학은 과학(science)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경세가를 입법가랑 동일시한 것은 의원내각제를 표준으로 통치와 입법을 동일시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미스는 정치인(politician)이란 용어를 기피했다. 경세가는 보편적 원리에 충실했던 반면, 정치인은 ‘사건의 급변’과 ‘사익의 억지’에 충실하기에 ‘간교하고 교활하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경제학 내부에 논쟁이 전개되면서 스미스의 ‘이론적 역사’는 망각된다. 제임스 밀과 리카도가 프랑스혁명의 맥락에서 대두된 벤섬의 공리주의를 수용하면서 공리주의적·이론주의적 경제학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란 ‘utilitarianism’의 번역으로 아주 정확하다. 공(功)은 결과이고 리(利)는 이익이므로 ‘결과로서 이익’이라는 ‘utility’의 의미와 일치한다. 벤섬은 베카리아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원리로 차용하면서 그 원리를 ‘감각적 존재’ 즉 노예에서 동물까지 ‘숨 쉬는 모든 것’에 확대 적용한다.

  제임스 밀과 리카도로 인한 영국 경제학의 공리주의화·이론주의화에 대한 비판은 맬서스가 제기한다. 역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 외부의 비판이 더 중요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정치학을 포함한 역사학이 주류였다. 매콜리의 휘그사관은 공리주의 급진파와 토리주의 보수파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중도파로서 자유주의를 대변한다. 밀과 리카도가 이론에만 집착한다면 매콜리는 이론을 무시하고 역사에만 집착한다. 

공리주의로 인해 소실된 스미스의 경세학은 제임스 밀의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과 마셜로 인해 재건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아버지와 달리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마셜은 이론적 역사를 부활시킨다. 마셜은 『경제학원리』(1890)에서 유럽과 영국의 경제사를 개관했고, 『산업과 상업』(1919)에서 기업의 기술과 조직이라는 관점에서 영국을 독일과 미국과 비교했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영국경제가 정지상태에서 쇠퇴상태로 악화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마셜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과 설립에 성공한다. 마셜의 제자 피구가 후생경제학을 개척하고, 또 다른 제자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은 페이비언주의가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케임브리지 학파가 형성된다. 
 

‘프랑스의 불행’

프랑스인인 케네-튀르고의 중농주의는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의 고전경제학으로 계승되었을까? 『세미나』 앞부분인 『한국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프랑스 경제사를 다룬 뒤, ‘프랑스의 불행’에 주목한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위하여』의 서문인 「오늘」에서 언급한 ‘프랑스의 불행’이란,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착근하는 데 실패했음(‘프랑스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진정한 이론적 문화의 근원적 부재’)을 의미한다. 윤소영 선생은 그 원인은 프랑스지식인이 경제학을 포기하고 철학이나 사회학에 만족했다는 사실로 소급된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19세기 내내 프랑스혁명이 극좌와 극우로 표류하면서 프랑스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학의 발전에서 영국·미국과 프랑스는 대척점에 있다. 영국에서 발원한 계몽주의는 뉴턴에게서 시작해 로크를 거쳐 스미스의 경제학으로 귀결된다. 그 사이에 볼테르가 뉴턴-로크의 계몽주의를 프랑스로 수입해 공자를 추종하던 케네와 튀르고가 중농주의를 제창한다. 스미스는 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프랑스에서는 볼테르-케네-튀르고가 몽테스키외-디드로-루소와 논쟁에서 ‘철학과 경제학의 교환’이 발생한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콩트의 사회학이 경제학을 대체하지만, 철학자나 신학자와 비견되지는 못한다.

 콩트는 고전경제학을 철학의 변종으로 간주했다. 프랑스에서는 산업혁명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콩트의 사회학을 속류이론 취급했다.) 1789년 혁명과 제1공화국(1792-1804)을 전복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1제정까지, 즉 1848년 혁명 이전까지의 프랑스 경제는 부르봉왕조의 앙시엥레짐과 대동소이했다. 정치적으로도 군주정이 부활했고, 경제적으로도 필수품인 면직물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1848년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1848-51)을 전복한 제2제정의 루이 보나파르트는 현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 제3공화국(1870-1940)에 남겨진 대안이 ‘고리대적 제국주의’였다. 대불황기에 식민주의를 본격화하는데, 대표적 사례가 청불전쟁(1884년)과 베트남 정복이다. 프랑스의 제국주의는 대중적 토대가 강건했다. 나폴레옹 3세를 지지한 농민은 제국주의도 지지했다. 전후 드골의 제5공화국(1958-)이 국유화를 추진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식민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쟁과 알제리전쟁이 일어났고, 패배한 이후에도 블랙 아프리카는 신식민지형태로 유지 중이다. 드골의 ‘아류제국주의’는 아프리카의 신식민지와 핵무장을 토대로 한다. 

이렇게 ‘프랑스의 불행’을 화두로 마르크스 이래 영국은 경제적 현대를, 프랑스는 이데올로기적 현대를 대표한다는 통설의 절충성을 비판한다. 프랑스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통설을 비판하는 것은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이 아니라 이른바 ‘프랑스 이데올로기’를 선호하는 한국의 인민주의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프랑스 좌파에 유행하는 각양각색의 정의론과 행복론, 주류경제학의 주장과 대동소이한 피케티에 대한 과도한 열풍 등이 그 예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알튀세르의 철학은 ‘철학자의 철학’이 아니었다. 『‘자본’을 읽자』에서 알 수 있듯, 경제학에도 아주 민감했다. 알튀세르의 제자 중 경제학에 관한 관심을 가장 오래 견지한 사람은 발리바르다. 윤소영 선생은 본인이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할 수 있었던 것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따라 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연구할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최근 급진주의 내지 인민주의에 너무 양보한다고 비판한다. 2015년 『‘자본’을 읽자』 출판 5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스탈린주의의 핵심은 역사과학이라는 당황스럽고 터무니없는 야망”이었다고 말해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2016년에 쓴 논문에서는 2007-09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앵글로-색슨과 비교할 때 유럽, 특히 프랑스의 특징은 ‘경제의 과소, 종교의 과잉’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2017년 논문에서는 ‘1968년 혁명’에서 프랑스의 경험을 특권화하는데, ‘프랑스 이데올로기’에 고유한 반(反)자유주의 내지 ‘경제학과 철학의 교환’ 때문이라고 본다. 윤소영 선생은 ‘진리 속에 존재하는’ 사람은 발리바르가 아니라 알튀세르라고 비판한다. 
 

그로스만과 경세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지금까지 폴리비오스와 스미스를 중심으로 서구에서 경세학의 발전, 현대경세학(‘이론적 역사’)으로서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또한 ‘프랑스의 불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과 철학’의 교환을 비판했다. 이는 발리바르와 같은 마르크스주의 내의 쟁점까지 포함하고 있다. 서평〔상〕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역사과학으로서 경제학비판이라는 것은 과천연구실의 일관된 입장이고, 이러한 경제학비판의 이론적 계보를 그로스만적 전통의 복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그로스만에 대한 평가를 더 보충할 수 있다. 윤소영 선생은 『종합토론』 끝부분에 스미스에 대해서 생각보다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최근에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리기처럼 마르크스를 스미스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결함을 그로스만을 통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헨릭 그로스만(1881-1950) [사진출처: marxists.org]

그로스만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마셜 같은 존재다. 마르크스의 역사과학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마셜은 정지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개혁의 구상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 정지상태가 쇠퇴상태로 악화할 것이라 예상한 그로스만은 변혁을 위한 구상에 관심이 있었다. 마셜의 구상은 케인스와 피구에 의해 계승되어 사회민주주의라는 결실을 거둔 반면, 그로스만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던 프랑크푸르트연구소에서 소외되어 아무런 결실을 거둘 수 없었다. 비엔나대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교수이자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 초대 소장인 그륀베르크의 수제자 그로스만은, 1930년 그륀베르크 사망 이후 프랑크푸르트연구소를 장악한 사회민주주의자 호르크하이머에 의해 축출된다. 철학자로서 마르크스를 경제학자로 격하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20세기 자본주의의 표준이 미국으로 이행하면서 학문의 표준도 미국화된다. 고전경제학을 현대경제학이 대체하고 사회과학이 보완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론적 역사 내지 역사과학에 대한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구상은 실종된다. 미국에서 현대경제학과 사회과학은 경세학이 아니라 전문지식일 따름이다. 경제사와 전문가의 차이는 경제사에 대한 관심 여부다. 현대경제학을 정초한 새뮤얼슨은 70여 년 동안 무려 597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나, 경제학사와 달리 경제사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현대경제학과 사회과학에 결여된 경세학을 추구하며 서양의 68세대가 마르크스를 복권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1970년대 대불황이 전개되면서 서독의 68세대들은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 같은 철학자가 아니라 루빈이나 그로스만 같은 경제학자를 존숭한다. 

물론 영국에서 마셜이 스미스를 부활시킨 것이 정지상태에서 쇠퇴상태로 진입이 예상되는 시기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보상태에서는 경세학으로서 정치학이 경제학을 대신할 수 있었으나, 정지상태에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피구의 후생경제학,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이 출현한 것이다. 

‘역사학으로서 경제학’에 대한 설명은 유가의 경세사학과 과학, 계몽주의, 경제학의 관계를 정립하는 동시에 윤소영 선생과 과천연구실이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역사과학으로 체계화하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 지식인의 표준은 경제학자라는 것인데, 철학에서 출발해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경제학 비판(『자본』) 연구로 성숙해 간 마르크스의 생애를 떠올려보아도 수긍이 간다. 끝으로 마르크스의 『자본』 서문에서 인용한 이번 책의 제사를 인용한다. 

경제학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는 다른 모든 영역과 동일한 적들[무지와 미신]을 상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경제학이 취급하는 대상의 특수성은 자신의 적들로 사람의 가슴속에서 가장 난폭하고 가장 야비하며 가장 원한과 증오로 가득 찬 감정, 즉 사익(私益)이라는 분노와 복수의 여신들도 전장으로 소환하기 때문이다. 
 

13. 현 정세와 지식인 

 
서평의 마지막으로 『세미나』에서 제시된 현 정세에 대한 역사적 유비에 대해 음미해보고자 한다. 『위기와 비판』은 현 정세를 조선 망국사에, 『재론 위기와 비판』은 1945-53년 해방정국에 유비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초래하고 있는 ‘임박한 파국’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또한 『세미나』는 386세대 지식인의 결함에 대한 비판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자 지식인으로서 윤소영 선생의 자서전적 회고도 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현 정세에서 지식인의 과제뿐만 아니라 지식인의 행동규범에 대해 전수하고자 하는 스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한망국사’와 민주정의 타락

『위기와 비판』에서는 조선망국사에 빗대어 ‘남한망국사’의 주요 계기를 설명한다. 조선망국의 가장 중요한 계기는 1880년부터 1904년까지 문명개화파와 동도서기파가 시도한 개혁이 실패한 것이었다. 그 원인은 고종이 왕권과 국권을 혼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자본주의의 역사를 여기에 유비하면 1979-80년 경제위기와, 1997년 경제위기 사이에 전두환-김영삼 정부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패이자, 문민화의 실패이다.

 『세미나』에서 다루는 한국의 ‘장기20세기’는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 원인은 한국의 노동자운동 혹은 지식인에게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가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인민주의를 민주주의, 진보,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와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와 386세대의 인민주의의 귀결은 인민정, 즉 민주정의 타락이다. ‘populism’은 정치이념의 측면에서 인민주의로 번역할 수도 있고, 정치체제라는 측면에서 인민정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혹자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문재인 정부를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인민민주정’과 ‘인민정’은 다르다. ‘democracy’는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이지 정치이념이 아니다. 현대적 정치이념으로서 자유주의는 민주정뿐만 아니라 군주정, 귀족정이라는 정체와도 결합할 수 있다. 영국의 의원내각제는 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민주정, 즉 자유민주정(‘liberal democracy’)인데 민주정에 군주정, 귀족정적 요소를 결합한 혼합정체다.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민주정과 결합하면 인민민주정(people’s democracy)이다.

인민정은 동시에 법조정이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취약성이 인민주의로 인한 민주정의 타락을 만드는 동시에 입법부와 행정부의 무능이 정치의 사법화, 법조정을 만드는 것이다. 양승두 교수의 남한의 법문화에 대한 연구를 인용하면, 문민화 이후 법의식은 ‘사익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법’이다. 여전히 법을 불신하면서도 법을 회피하지 않고 활용하려는 경향이 출현한 것이고, 그 결과가 ‘소송과잉사회’다. 노무현과 박근혜의 탄핵은 정치의 사법화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고, 위안부와 징용노동자의 배상청구권 소송은 국제정치까지도 사법화했던 셈이다. 

 공자의 이상은 ‘송사(訟事)가 없는 것’이다. 형사사건을 옥사(獄事), 민사사건을 송사라 부를 수 있는데, 공자는 교화를 통한 중재로서 송사를 그치게 했다는 순임금의 고사를 따랐다. 스미스가 흄을 비판했듯, 표준에 따라 시비(옳고 그름)를 가르는 윤리학과 취향에 따라 호오(좋고 싫음)를 따지는 미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민주의와 파시즘이야말로 윤리의 미학화를 통해 배제의 정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386세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를 조직하는 방식이 바로 호감과 비호감, ‘좋아요’와 ‘싫어요’의 선택이다. 
 

해방정국의 슬로우 모션

『재론 위기와 비판』은 이문열-박완서-이병주 작가의 리얼리즘 소설(‘6·25 소설’)이 386세대에 대한 비판을 선취했음을 주장하는 동시에, 1986-88년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이 마치 1945-53년의 해방정국을 슬로우 모션으로 반복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해방정국에서 ‘해방’과 ‘독립’을 구별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연합국의 승리로 인해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으나, 한국은 전승국이 아니라 식민지였다. 학병이나 지원병의 사례처럼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기는커녕 전쟁수행에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북한에서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실시된다. 독립의 조건은 신탁통치였는데, 그 근거는 민도(인민의 정치이데올로기적 수준)가 낮은 것은 물론 국내지도자는 무능했고 망명지도자는 무능한 데다가 부패와 분열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양국이 새로운 임시정부 구성에 합의하자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정 요원들이 반발하여 반탁운동을 주도하면서 좌우 찬탁 인사에 대한 무차별 테러를 감행한다. 지도자는 사익 때문에, 인민은 무지와 미신 때문에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한국전쟁을 선택한다. 이런 의미에서 남한 정치 최초의 인민주의자는 이승만이다. 반탁세력들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전사로서 동학농민전쟁을 강조해 단독선거를 통해 수립한 정식정부를 정당화했다. 해방정국에서 계급문학에 반대하여 민족문학을 주창한 박종화가 조선망국사를 묘사한 『민족』(1947)이라는 작품이 그 근거다.

 이는 이이화 선생의 『민란의 시대』(2019)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학농민전쟁-3.1운동-4.19혁명-5.18광주항쟁을 연결하는 노무현-문재인의 역사왜곡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반탁세력의 인식, 박정희의 역사인식과 유사하다. 박정희는 부친이 동학도라는 자부심이 대단해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을 건립하고 제막식에도 참여한다. 박정희는 『우리 민족의 나갈 길』 이라는 저서에서 동학혁명, 3.1운동, 상해임시정부, 대한민국을 거쳐 4.19혁명, ‘5.16혁명’으로 귀결되는 ‘민족사의 거류(큰 흐름)’에 주목한 바 있다. 
 
영화 <고지전>(2011)의 한 장면. 한국전쟁의 희생자는 남한 군인 28만 명, 민간인 68만 명, 북한 군인 41만 명, 민간인 109만 명이다. 베트남전쟁의 경우 남베트남 군인 29만 명, 민간인 31만 명, 북베트남 군인 85만 명, 민간인 12만 명이다. 2차 세계전쟁의 소련에 버금가는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련의 희생자는 인구의 14%였고, 군인과 민간인의 비율은 4:6이었다. 반면 남북한의 희생자는 8%였고 군인과 민간인의 비율은 3:7이었다. 인구 중 희생자는 낮으나, 민간인의 비율은 오히려 더 높았다.

 한국전쟁은 1-2차 세계전쟁을 제외할 때 인류사 최악의 전쟁으로 베트남전쟁의 피해를 초과할 정도였다. 주로 남한 군경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주목되었는데, 막상 연구가 진행되며 좌파의 학살도 연구된다. 좌파의 민간인 학살은 적치(최초 3개월간 북한에 의한 남한 통치) 초기에 ‘바닥빨갱이’에 의한 보복학살과 적치 말기 북한군, 내무서원, 노동당원에 의한 예방학살, 이후 빨치산으로 변모한 바닥빨갱이에 의한 보복학살로 이뤄진다. 바닥빨갱이의 동기가 분노와 복수만은 아니었고, 사익 추구라는 동기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가짜빨갱이’, 즉 마르크스주의자로 위장한 인민주의자가 상당히 많았다. 

 적치 하 북한식 토지개혁이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남한에서 토지개혁의 목적은 지주의 토지를 소작농에게 분배해 자작농으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북한은 지주뿐만 아니라 부농과 중농의 토지를 소작농뿐만 아니라 고농(농업노동자, 머슴)에게도 분배한다. 그 결과 북로당은 1946년 창당대회 37만 명에서 1948년 73만 명으로 배가된다. 김일성 주석은 빈농주의라는 형태로 스탈린주의를 극단화했던 셈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사회주의의 타락에 대한 설명도 이렇게 해방정국으로 소급할 수 있다. 초등교육 수준 이하의 만주파만 지배세력으로 생존함으로써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폭거에도 저항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히틀러와 프랑스 혁명의 산악파, 스탈린의 논리는 동일하다. 히틀러가 ‘민족의 적’을 설정한 것처럼 스탈린은 ‘계급의 적’, 산악파는 ‘인민의 적’을 설정한 것이다. ‘피아를 구별함’으로써 배제의 정치 내지 잔혹의 정치를 정당화하는 ‘진영의 논리’다. (최근 우리는 조국사태에서 추미애의 사법방해까지 ‘피아를 구별하는 진영의 논리’를 목도하고 있는 듯하다.) 윤소영 선생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고발을 통해 적을 발명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물론 1차 세계전쟁으로 인해 유럽 전체로 확산된 ‘인간적 감정의 결여’도 주목해야 한다. 혁명이 테러로 타락한 것이다. 
 

지식인의 행동규범

마지막으로 386세대 지식인의 전향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들 속에서 윤소영 선생이 전해주고자 하는 지식인의 행동규범에 대해 부족하나마 필자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본에서 많이 연구되는 전향이란 사무라이적 지식인과 종교적 지식인에 고유한 개념이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기존의 개념이 현실과 잘 맞지 않게 되면 새로운 개념을 찾기 시작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론적 전향은 이론적 무능의 귀결이다. 개념이 현실에 부합하도록 발전시키려면 이론적 역량이 탁월해야 하기 때문이다. 386세대가 대량으로 전향한 것도 박정희 정부 이후 현대화의 명분으로 사대부적 전통이 소멸하고 하향평준화로 이론적 역량도 쇠퇴했기 때문이다. 

유가적 지식인은 소인유(대의를 버리고 사리사욕을 쫓는 지식인)를 지양하고 군자유(대의를 쫓는 지식인)를 지향한다. ‘나를 닦는’ 수양학을 바탕으로 ‘남을 다스리는’ 경세학으로 나간다. 사대부적 전통이 소멸한 결과 지조(志操, 꿋꿋한 뜻과 올바른 몸가짐)라는 개념이 낯설어진다. 『공자가어』에서 공자는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다가 곤궁에 빠졌다고 해서 변절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발분하여 ‘생각이 깊어지고 뜻이 넓어진다’고 했다. 

이탈리아 경제사학자 치폴라는 지식인(the intelligent)과 멍청이(stupid)를 구별하면서 멍청이의 일종인 불량배(‘bandit’)에게도 주목한다. 지식인은 타인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면서 자신도 이익을 얻는 자다. 또한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손해 보는 경우는 영웅이다. 멍청이는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자신도 손해를 보는 반면 불량배는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자신은 이익을 얻는다. 역사의 시계가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서 그 주체가 지식인과 영웅에서 멍청이와 불량배로 변모하고 있다. 

마셜은 경세학을 ‘항해학’에 비유했다. 경세가는 국가라는 배의 선장으로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재난을 회피하는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선장에게 항해사나 기관사가 필요하듯 전문가로서 기술관료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의 현대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이 경제사에 소홀한 결과 전문가(전문지식인)만 있다. 남한에는 경세가도 없고, 전문가도 드문 것 같다. 청와대에 눈도장을 찍으려는 사기꾼(사이비 경세가·공공지식인)과 돌팔이(사이비 전문지식인)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윤소영 선생은 현 상황을 공자의 진채절량지액에 유비하면서도, 왕부지의 대련(“육경은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도통을 잇도록 다그치지만, 칠 척의 육신은 다만 천명에 따라 살다가 죽기를 바랄 뿐이네”)과 아도르노의 ‘병 속에 쓴 편지’ 등을 언급하며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을 상징했던 한국사회성격 논쟁의 성과를 소실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세미나』의 연구와 비판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연구자이건 활동가이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책에 대한 독해를 목표로 했던 본 서평은 여기서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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