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반전팀 레디앙 칼럼 2014년 5월 27일]
 
휴대용대공유도미사일 신궁 수출, 세계적 무기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
-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미국 스팅어 미사일의 교훈
 
임필수 |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미국의 스팅어 미사일과 무자헤딘
 
1979~1989년 소련-아프간 전쟁 기간 동안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아프간의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에 무기와 재정을 지원했다. 그 프로그램의 암호명이 사이클론 작전이다. 사이클론 작전은 CIA가 수행한 비밀작전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돈이 투입된 것 중 하나다. 1980년에 2,000~3,000만 달러가 지출되었으나, 1987년에는 6억 3,000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사이클론 작전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미국이 이슬람 반군에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즉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1985년 말부터 미국 내에서 신보수주의 로비스트 단체인 <프리 더 이글>과 같은 몇몇 집단이 CIA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CIA가 소련-아프간 전쟁에서 무자헤딘 집단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도 미 국방부 정책담당차관의 아프간문제 조정관인 마이클 필스러리, 국가안보위원회(NSC) 정보담당과장 빈센트 카니스트라로가 이슬람 반군에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하라고 CIA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CIA는 미국이 소련-아프간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척하면서 작전을 진행했기 때문에 스팅어 미사일 문제는 큰 논란을 낳았다. 그 당시까지 미국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미국제가 아니라, 중국에서 구입한 56식 소총과, 이집트에서 구매한 AK-47, AKM 소총을 아프간에 지원했다.
최종 판단은 파키스탄의 대통령 지아-울-하크에 달려 있었다. 무자헤딘에 전달되는 CIA의 모든 자금과 무기는 파키스탄을 거쳐야 했다. 스팅어 도입 문제는 소련의 파키스탄 침공을 도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지아 대통령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미국 하원의원 찰리 윌슨이 지아 대통령과 맺은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이클론 작전에서 미국 텍사스 출신 하원의원인 찰리 윌슨이 행한 역할은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2007년 개봉)에 잘 묘사되어 있다. 찰리 윌슨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CIA 지역책임자 거스트 아브라코토스 역은 얼마 전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맡았다.)
 
[그림]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 중 한 장면. 이슬람 전사가 비행 중인 소련 헬리콥터 하인드에 스팅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그림]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 중 한 장면. (주인공 역은 톰 행크스가 연기했다) 찰리 윌슨은 감사의 표시로 이슬람 전사들로부터 처음으로 사용된 스팅어 미사일의 발사기를 선물로 받았고 그의 사무실에 전시해 두었다.
 
찰리 윌슨과 그의 동료들은 스팅어 미사일이 “우리가 만들고자 한 죽음의 혼합물 중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들의 전략은 주로 CIA 무장조직작전 담당관 마이클 G. 비커스가 구상했는데, 그것은 단지 하나의 은탄환(즉 특효약) 무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무기, 전술, 병참술을 광범위하게 종합한 것이었다. 나아가 그 이전에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시스템, 즉 소련제 SA-7, 영국제 블로우파이프를 무자헤딘에 제공한 시도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1986년 9월 25일, 무자헤딘 조직의 하나로 굴부딘이 이끄는 헤지비이슬라미(이슬람정당)의 한 전사가 자라라바드 인근에서 스팅어 미사일로 소련의 중무장 헬리콥터 Mi-24 하인드를 격추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다. 결국 CIA는 사이클론 작전의 일환으로 아프간 무자헤딘에 스팅어 발사기 250기와 미사일 500기 또는 1,500~2,000기를 제공했다.
스팅어 미사일이 전쟁 결과에 끼친 영향이 무엇이냐는 논쟁적인 쟁점이다. 소련과 훗날 러시아는 스팅어 미사일에 거의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관측가에 따르면 스팅어는 ‘전환점’이었고, ‘전력승수’(전투효율성을 극적으로 증가시키는 요인)였으며, 사기 촉진제였다. 찰리 윌슨은 1986년 스팅어 미사일로 Mi-24 헬리콥터를 격추한 사건이 전쟁의 결정적 국면 중 하나였다면서 “9월 26일 전까지 우리는 한 번의 전투에서도 실제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한 번도 실제로 패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프간 반군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마수드는 이렇게 말했다. “소련에 대항한 성전에서 이슬람 전사가 필요로 한 것은 단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코란이었고 또 하나는 스팅어였다.”
1988년에 스팅어 미사일이 마지막으로 이슬람 전사들에 공급되었다. 그 시점에 이슬람 전사들이 스팅어를 이란에 팔아버리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자 미국은 스팅어를 재구매하여 회수하려 했다. 1990년, 약 300개의 스팅어를 재구매하기 위해 5,500만 달러를 지출했다(개당 183,300 달러). 미국 정부는 무자헤딘에 전달했던 스팅어 대부분을 회수했으나, 약 600개를 회수하지 못했고, 그 중 일부는 크로아티아, 이란, 스리랑카, 카타르, 북한에서 발견되었다. (CIA에 따르면 이미 1988년 8월에 미국이 카타르에 스팅어 미사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스팅어 재구매를 위해 1990년대 중반까지 CIA가 지출한 액수는 같은 기간 동안 미국 정부가 아프간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위해 지출한 액수와 맞먹는다.
훗날 미국 정보당국의 한 관리는, “우리가 스팅어를 마치 막대사탕처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1980년대 아프간 전쟁 이후로 회수되지 못한 스팅어 미사일이 다양한 무장집단의 손에 들어가 군용, 민간 항공기 공격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팅어 미사일은 조작법이 너무나 쉽기 때문에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을 듣곤 했다.
휴대용 대공 유도미사일에 관한 우려가 현실이 된 사건은 2002년에 발생했다. 이스라엘 여객기가 소련제 미사일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 후 다양한 종류의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를 다양한 무장조직이 보유하거나 사용한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아래 그림을 보라.)
 
[그림] 최근 시리아 반군이 중국제 FN-6으로 헬리콥터를 격추한 장면
 
 
한국의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수출 계획
 
[그림] 한국기업인 LIG넥스원 구미공장에서 직원들이 거치대에 놓인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신궁을 점검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도 자체 개발한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 신궁의 해외 수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궁은 외국에서 궁수자리의 주인공인 키론(Chiron)이라 불린다.) 신궁은 LIG넥스원이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함께 개발했고 국내 전력화를 마친 상태다. LIG 넥스원은 신궁을 수출용으로 양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 해 보도에 따르면, 2013년 2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국제 방위산업전시회 'IDEX 2013'에 참가했고, 2014년에 동남아시장 군용 입찰에 참여할 것이다. 이제 한국도 본격적으로 유도무기 수출 국가로 발돋움하려 시도하는 중이다. 따라서 한국의 평화운동은 휴대용 대공 유도무기의 세계적 확산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한국의 무기수출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글은 미국과학자협회의 무기판매감시 프로젝트 국장 맷 슈로더의 보고서 <휴대용대공방어시스템의 위협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 몸바사 이후 10년>(2013년 8월)을 참조하여 휴대용 대공 유도미사일의 세계적 확산 현황을 살펴보겠다. 그리고 한국의 미사일 수출 문제를 검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