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 선배, 저는 관악 출신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동지의 후배 정도는 되는 사람이에요. 저는 민영 동지를 잘 몰랐어요. 선발대이던 그때, 선배가 운전하시는 스타렉스를 함께 타 봤던 정도죠. 그래서 비보를 듣고 마음이 내려앉았어도, 이 게시판이 만들어진 걸 알았어도 선뜻 글을 쓰기에는 어려웠어요(제가 써도 되는 걸까 싶어서...). 하지만 어제오늘 추도식과 영결식, 그리고 장지로 가는 여정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선배의 모습이 마음을 움직여 용기 내 몇 자 적어봅니다.

일정들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선배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꼭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러면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 같은 선배였다는 생각에 아주 아쉽고 슬펐어요. 사람들이 선배를 소개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말이 뭐였느냐면요, ‘이걸로는 우리 민영이를 소개하기 부족하겠지만’ 이더라고요. 성실한, 공부하는, 주위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제가 할게요’라는 말이 입에 붙은...어떤 형용사들보다 거대했던 사람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거 아세요? 선배 유골을 봉안할 무렵 어떤 대화를 들었어요. “조직국장이 끝까지 조직화하고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수많은 사람이 선배 영정 뒤를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그 노래를 부르며 말이에요.

하지만 그 누구도 선배가 ‘앞서서 나가’는 존재가 될 거로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영정 속 선배 모습은 너무도 젊고 빛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지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해 더 충격적이었고, 남은 사람들에겐 일종의 ‘사건’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낯익은 선배들이 5살은 더 먹은 듯한 수척한 낯빛,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도 더 울 수 있다는 표정을 하고 선배를 바라볼 때, 마음이 참 저려왔습니다.

선배, 선배 아버님께서 준비해주신 저녁 식사 중에 동기와 이야기하다간 이런 말이 나왔어요. 동지의 장례식을 함께 치르며, 슬픔의 온도를 같은 장소에서 공유하며, 우리에겐 "어떤 동질감 같은 게 생긴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우리는 비단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동지의 꿈을 받아 안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점에서 같아진 셈이고, 이게 앞으로 우리를 묶어줄 따뜻한 끈일 거예요. 말하자면 동지는 남은 사람들에게 이정표 같은 존재가 되어주신 거예요. 이정표라는 건 목적의 기준이잖아요. 선배의 꿈을 받아 안겠다는 약속을 한 사람들은, 지금의 세상이 매우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지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세상이 ‘송민영이 살아가던 세상’과 ‘송민영이 없는, 우리가 만들어가고 살아가야 할 세상’ 단 두 개로 구분되기에 말이에요. 지금은 하염없이 울더라도, 선배의 다정한 그림을 닮은 세상을 지향하겠다고, 더 뜨겁게 살겠다고 새삼 약속해 봅니다.

이렇게 운 장례식은 세 손가락 안에 꼽혀요.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다녀와서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 이 세상에 같이 있었다’고 느끼게 된 장례식도요. 민영 선배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도록 많이 준비하고 애 써주신 사회진보연대 선배들에게도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동시에 전하고 싶습니다.

선배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그곳에서는 편안히 쉬시길 바라요.
온 마음을 다해 추모하고,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