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민영언니. 우리 쏭언니.
이 글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함께 슬퍼하시고 저희를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는 다짐이기도 하겠네요.

어제 밤엔 긴 잠을 잤어요. 서현공원의 크고 따뜻한 건물 안에 언니를 재우고 나니 언니 부모님과 언니의 언니, 형부께서도 안심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도 모처럼 푹 잘 수 있었어요.

눈을 뜨니 지난 일주일이 꿈만 같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네요. 핸드폰으로 언니 흔적을 찾아보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어요. 이제 언니 없는 일상을 씩씩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은 그럴 기운이 없나봐요. 역대급으로 더러워진 집을 꾸역꾸역 청소하며 생각했어요. 내일 언니 삼우제 지내고 나서부터는,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정말 부지런하게 살겠다고.

언니 장례식은 정말 대단했어요. “송민영 파워 장난아니다.” 이 말을 열번쯤 했지요. 조의금과 모금도 많이 모였구요. 장례위원 740명, 조문객 800여명, 추도식 300여명, 발인에서 안치까지 100명 넘는 사람들이 언니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모두들 언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말했죠. 언니, 32년 짧은 인생에서 언제 이렇게나 많은 것을 남겼어요? 아무리 세상이 불평등해도 주어진 시간만은 평등하니까,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가진 시간은 똑같으니까,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쓴 거에요? 아니면 그 시간마저도 언니한텐 32년밖에 주어지지 않은 걸 미리 알고 남들보다 세배쯤 열심히 산 거예요? 진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언니 장례식 전날까지 우리는 다짐 또 다짐했어요. 아무리 슬프더라도 무너지지 말고 언니 장례식 잘 치뤄주자. 그런데 인천공항에 언니를 데리러 갔을 때, 여객터미널이 아닌 화물터미널에서, 시베리아마냥 춥던 그곳에서 언니를 다시 만나는 순간 모두가 무너지고 말았죠. 언니를 1초라도 더 그 곳에 두는게 싫어서 서둘러 언니를 데리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출발했어요. 언니 영정사진을 안고 있으니 언니를 안고 있는 것 같아서 따뜻했어요. 며칠 동안 못했던 얘기를 언니한테 쏟아내었죠. 언니, 우리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알아요? 태국 바다는 어땠어요? 그렇게 기다리던 휴가인데 며칠만이라도 더 놀고 가지 그랬어요. 맛있는 건 많이 먹었어요? 우리 생각도 했어요? 우리 기도는 들었어요?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언니의 부모님을 처음 뵈었어요. 언니는 엄마랑 똑같이 생겼다더니 정말 그랬어요. 언니의 언니도 많이 닮았어요. 오열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우리는 또 무너져버리고 말았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 영정사진 사이에서 언니의 밝고 예쁜 모습이 마음시리게 했어요. 언니가 왜 여기 있어요… 노동운동 20년 넘게 한 선배가 그러시대요. 많은 장례식을 봤지만 이렇게 슬픈 장례식은 처음이라고.

사람들이 정말 많이 조문왔어요. 세상을 다 잃은 슬픈 얼굴들이었죠. 언니는 우주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오랜만에 본 사람들도 많았어요. 운동을 떠나 미웠던 사람도, 섭섭했던 사람도, 미안했던 사람도. 근데요 언니. 그런 건 다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냥 보니까 좋았어요. 안아주고 싶고 손 잡아주고 싶었어요. 언니라면 그랬을 테니까요. 언니랑 저는 같은 조직실에 있어서 사람들 얘기를 정말 많이 했잖아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대화들이 떠올랐어요. 생각해보니 남들 얘기만 너무 많이 했어요. 언니는 요즘 어떤지, 뭐가 즐겁고 뭐가 힘든지 그 얘기를 조금만 더 할걸. 언니가 듣고 싶은 얘기, 힘 나는 얘기를 더 많이 해줄 걸. 이제서야 모두가 언니 이야기를 하네요.

둘째날 아침 입관식을 하던 때 우리는 또 무너져버렸어요. 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생각만 하고 갔던 저에요. 그런데 언니 얼굴이 너무 많이 부어 있어서 다리가 풀려버릴 정도로 놀랐어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 언니를 보고 나와서 너무 힘들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달래주던 홍명교의 말이 저를 안심시켰어요. “그래도 예쁘던데 뭐… 우리 민영이.” 맞아, 그래도 예뻐. 언니가 맨날 구박하던 홍명교인데, 그래도 대견하죠? 언니 추도영상 만들면서 많이 슬프고 힘들어했어요. 사무실에서 혼자 밤을 샜는데도 도저히 진도가 안나간다며 정신 못 차리고 있길래 제가 가서 같이 완성하고, 구출해줬죠. 이런 거 보면 우리 잘 맞는 거 같아요 언니. 이제는 우리 수진이가 아깝다며 못마땅해하지 말아요. ㅋㅋ

언니의 추도식에서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거대한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몇 백명의 서러운 통곡을요. 괴로웠어요. 오열하시는 어머니와 아이처럼 엉엉 우는 선배들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어요. 민주는 탈진까지 해버리고 말았어요. 영상을 괜히 만들었다고, 추도식을 괜히 길게 준비했다고 그 순간엔 자책도 했어요. 그런데요 언니. 그날 밤엔 사람들이 훨씬 덜 울었어요. 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밤새도록 웃었어요. 누군가 그러대요. “한판의 거대한 굿을 한 것 같다”고… 그래서 모두의 마음이 조금 편해졌었나봐요.

그날 밤 빵언니랑 유미언니랑 유미랑 학생시절 얘기를 끝없이 하는데 그게 어찌나 재밌는지 깔깔 많이도 웃었어요. 고백하자면 저는 학생운동을 졸업한 후에 그 시절을 자꾸 잊으려 했었어요. 2000년대 그것도 후반에 학생운동 했던 제게 그 시절은 생활도 마음도 가난하고, 그럴듯한 영웅담도 없고, 사람들에게 무시와 손가락질도 많이 당하고, 우리끼리 미워하고 갈등했던 시간들만 너무 크게 기억에 남아버려서 그랬어요. 그런데 유미랑 승하언니가 언니한테 쓴 편지를 보며 생각했어요. 내가 이 아름다운 시절들을 왜 잊으려 했을까… 언니 같은 사람들이 내 앞을 걸어간 선배여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데. 남들한텐 드세고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않지만 후배들 앞에선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고 더없이 따뜻했던 언니들. 언제나 동경했고, 언니들이 집회나 회의에서 입을 여는 순간마다 감탄했고, 언니들을 닮아가는게 내 학생운동 시절 가장 중요한 목표였는데. 그러려고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나에게 전국학생행진은 곧 언니들이었어요.

영결식과 발인과 화장과 납골당 안치까지. 저는 언니의 영정을 들고 걸었죠. 연남동 사무실을 들렀을 때는 손과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서 언니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찌나 힘을 꽉 주었는지, 아직도 아파요. 사무실에 언니 갤러리 전시된 거 봤어요? 그거 만든다고 설희언니랑 영글언니랑 민영이가 많이 노력했어요. 사무실을 나올 때는 정말 발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다가 아쉬워서 다시 한 번 복도에 들어갔다 왔지요. 언니의 웃음소리 없는 사무실에서 이제 어떻게 일을 하죠.

화장이 끝나고 언니가 한줌의 유골로 남아 돌아왔을 때, 언니의 어머니는 “왜 이것밖에 없니”라면서 우셨죠. 언니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알 수 없었어요. 예쁜 초승달 눈, 광대뼈, 작은 어깨, 천재 손, 늘 바쁘게 쏘다녔던 다리… 하늘로 가버린 걸 인정해야겠죠. 그래야 언니가 그 세상에서 더 아름다운 것 보고,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아름다운 곳을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하루종일 영정사진을 들고 다녔던 저를 보고 나중에 다해랑 유미는 “미망인 같았다”고 했고, 지원선배는 “천상 민영이 동생이더라”라고 했어요. 맞아요. 저는 언니의 미망인도 하고, 영원한 동생도 할래요.

언니 장례식을 지내면서 각자 살기 바빴던 사람들이 뭉쳤어요. 마음은 있어도 쑥쓰러워서 또는 바쁘단 핑계로 못했던 따뜻한 말도 서로서로 하구요. 그동안 미안했다고, 앞으로 정말 서로를 잘 챙기겠다고 다짐도 하구요. 언니가 봤으면 기뻐서 광대가 승천했을텐데. 하늘에서 보고 있죠? 언니한테 배운 수많은 것 중에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바로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지금 바로 만나야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어제 밤에 사무처방에 메시지를 남겼어요. 사무처 동지들 사랑한다고. 깨톡방에서 언니들에게도 말했어요. 언니들을 믿고 따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매순간마다 언니라면 이렇게 했겠지, 생각하면서 실천할거에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 알려준 사람은 언니가 처음이에요. 언니는 역시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야. mbti에서 S였잖아요. 지원선배가 맨날 디테일 짤라 먹고 결론만 기억한다고 같이 구박도 많이 했잖아요. ㅋㅋ

나는 언니가 남긴 자랑스러운 전국학생행진 후배. 그리고 언니랑 같은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언니가 늘 힘을 보탰던 민주노총. 언니가 사랑하고 아꼈던 그 조직들 지키며 살아갈게요.

언니, 나중에 만나면 꼭 다시 마파두부밥 해주세요. 식사당번때마다 정성 들여 해주던 그 마파두부밥.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마파두부밥. 그게 너무 먹고 싶어서 입안에 자꾸 군침이 돌아요.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편히 쉬어요.
나의 사랑 쏭언니, 안녕.

2015. 12. 9. 언니의 뒤를 졸졸 따르는
언니바라기 수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