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 노동운동가 송민영을 기억하며
세상을 적시는 단비 같은 사람… 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우리가 함께 채워나갈게
2015.12.09 13:16:16
박진경 / 노동자 pssp4001@gmail.com

민영이가 떠나고 나니, 이제야 친구에게 해줄 수 있던 것들이 물밀듯 떠오른다. 지난 생일에 예쁜 팔찌라도 하나 선물할 걸. 우리 동네 맛있는 초밥집에 데려가 민영이가 좋아하는 안주에 술 한잔 할 걸. 매년 이맘때쯤 과메기를 시켜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던데 실컷 먹으라고 몇 두름 주문해줄걸.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물어볼걸. “너 요즘 힘든 일은 없냐?”

서른둘에 우리 곁을 떠난 민영이는 대학시절에 만난 동지, 친구이다. 학교는 달랐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학년이 높아질수록 함께 할 일이 많아졌다. 전국학생행진이라는 학생운동조직에는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대학생들이 무한경쟁 속에서 홀로 취업 스펙 쌓기보다는 함께 사는 법을 찾기를 바랐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니까.

우리는 점점 사라져가는 대학의 자치공간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노동권 여성권 평화권 등 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담론들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노무현, 이명박 정권 시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했다. 해외연수에 가거나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하루가 느슨하지는 않았다.

특히 민영이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실한 친구였다. 시간약속을 빈틈없이 잘 지켰고 함께 읽기로 한 책은 꼭 읽어 왔다. 쟁점 정리도 일목요연하게 해서 민영이가 있으면 토론도 잘 됐다. 할 일이나 고민을 미뤄서 지지부진하게 만들기보다는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민영이는 그림도 슥삭슥삭 잘 그렸다. 민영이와 우리 친구들은 서로에게서 자극을 받으며 가난하고 마음 속 갈등 많은 대학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지난 2일 불의의 사고로 명을 달리한 고 송민영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우리는 사회운동을 하고 싶었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해볼까, 관심 있는 분야의 사회단체에 들어가 일해 볼까, 연고지가 없는 지역에서도 잘 버틸 수 있을까,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몰래 취직해서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까…. 이런 고민을 하며 겨울을 보냈다. 공부하고 상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일단 우리는 함께 결론을 내렸다. ‘일단 뭐가 되든 3년, 5년 열심히 부딪혀 보자. 그리고 다시 만나자! 그때 되면 또 앞길이 보이겠지.’ 불안하기도 했지만 함께여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민영이는 동기들 중 제일 먼저 진로를 결정하고 충북으로 내려갔다. 민주노총 충북본부 총무차장을 맡은 민영이는 노동조합에 필요한 이런저런 실무를 처리하고 지역 노동자들을 만나 민영이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는 활동을 했다. 이를테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회사와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탄압받을 때 ‘희망커피’ 사업을 기획해 지역의 연대를 조직한다든지, 노동조합 여성주의의 강화를 위해 여성 조합원들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든지.

민영이는 맡은 일을 뚝딱뚝딱 해냈다. 그렇게 어디가나 한결 같이 쓸모 있는 모습이 참 위안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에서 익숙하고 북적거리는 생활만 하다가 조금은 낯설고 외로웠을 텐데. 나도 민영이를 좀 더 자주 찾아가 응원해줬어야 했다.

충북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민영이는 사회진보연대의 사무처에서 활동했다. 어딘가에서 캠페인이나 연대 활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근처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고 술 한 잔 하자던 그녀였다. 민영이는 충북에 있을 때 친구들이 자신을 보러 놀러온 것이 큰 힘이 됐다며 혼자 외로워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친구들을 모아 함께 갔다. 뒤에 사람들을 싣고 씩씩하게 봉고차를 몰고서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 흩어져 나름의 사정으로 바빴지만 그런 소중한 시간을 만드는 민영이 덕에 동지의 안부를 확인하며 힘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의 발전을 위해 썼던 민영이. 민영이의 장례식은 그녀의 친구들과 다양한 산업의 노동자, 동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슬픈 와중에도 민영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하고 부지런하고 생색낼 줄 모르던 민영이는 장례식 동안에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정세가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함께 살피고, 지혜를 모으고, 같이 나아가라고.

아직도 예쁘고 건강하던 우리의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나타나 함께 시끌벅적하게 놀 수 있을 것 같다. 젊을 때 왕창 놀자던 민영이었는데. 우리가 가장 예뻤던 시절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 순간순간 그녀의 발자취가 생각 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모여서 민영이를 추억하고, 그녀가 좋아하던 것을 먹고 마시며 함께 울고 웃으려 한다.

항상 우리 곁에 있어줘, 민영아!
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우리가 함께 채워나갈게.
아깝고 보고 싶은 내 친구… 이제 좀 편히 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