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아래 사람 사는 불빛이 차오릅니다 흰 입김을 앞으로 내밀면서 언덕을 내려오는 당신, 한쪽 손에 들려진 짐 꾸러미를 잠시 내려놓고, 한쪽 어깨에 짊어진 가방을 그 옆에 내려놓고, 당신은 나를 올려다봅니다.

기다리던 택시가 오고, 당신은 가방이랑 짐꾸러미를 챙겨 들고 차 문을 닫습니다 짐을 챙기느라 당신을 미처 챙기지 못한 당신, 내 옆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당신이 서 있습니다 깜빡깜빡 졸음에 빠져듭니다

깨우려다 그만둡니다 내 주먹마다 흰 밥이 피고 그 밥알들이 환하게 저물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당신의 이불이 되어줄 때까지, 나는 혼자서 뜨거운 차 한 잔을 오래 마시며 이 겨울을 지나가고 싶습니다

눈이 옵니다 저 저녁을 다 덮는 흰 이불처럼 눈이 옵니다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짧은 길을 길게 돌아서, 찬 기운 가득한 빈집에 들어가 버리고, 당신이 남긴 당신과 나는, 이 눈을 다 맞고 서 있습니다

봄이 올 때까지 주먹을 펴진 않을 겁니다 내 주먹 안에 당신에게 줄 밥이 그릇그릇 가득합니다 뜸이 잘 들고 있습니다 새 봄에 새 밥상을 차리겠습니다 마디마디 열리는 따뜻한 밥을 당신은 다아 받아먹으세요


<목련나무가 있던 골목>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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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던 말들을 하기에 목이 메이고 눈이 매워서.
사랑하는 마음만 받아주길 바라며 언제나 보고싶은 민영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