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12월 2일 故송민영 3주기 추모행사에서 낭독된 황수진 님의 편지글입니다.

사랑하는 민영언니에게

언니, 또 다시 언니가 떠난 계절이 왔네요.

나는 4월 18일부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 8개월은 아마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야근을 많이 하고 술을 많이 먹은 날들이었던 거 같아요. 쿠팡에서 여명을 한박스씩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하루 한 캔씩 먹어야 할 정도로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언니도 잘 아는 사람들이죠.

오늘은 충북 영동에 있는 수련원에서 오는 길이에요. 신규 간부들과 같이 간 수련회였어요. 우리 지회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교육하려고 예전에 민지가 써놓은 글을 다시 보았는데, 사진 한 켠에 언니가 박수를 치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기억나죠. 염호석 열사 돌아가시고 서초동에서 몇 백 명이 미친 사람들처럼 무기한 노숙농성할 때, 대학로에서 버스킹 하던 날이요. 염호석 열사가 너무 아프게 떠났지만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열사의 뜻을 이루자고 웃으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날이었잖아요. 그 사진은 경향신문에 실린 사진이었지요. 나는 그 사진기사를 신문에서 오려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언니도 많은 애정을 갖고 투쟁현장에 함께 했던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꿈같은 직접고용을 이뤄내고 조합원이 2300명으로 늘었어요. 언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많이 기뻐했을 것 같아요. 얼마전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21만 돌파 소식을 듣고도 언니가 떠올랐어요. 언니가 마지막으로 썼던 글이 공공운주노조 조직화 전략에 대한 글이었죠.

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봤어요. 나는 스타렉스를 보면 언니 생각이 나요. 사무처나 진출팀 엠티가 있을 때마다 우리를 싣고 그 큰 차를 능숙하게 몰면서 최신유행곡을 틀어주곤 했었잖아요.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케이크라는 노래를 나는 언니가 운전하는 스타렉스의 조수석에서 처음 들었어요. 진출팀 후배들을 데리고 광주에 간 날이었는데, 내가 언니한테 매화꽃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찾아보다가 결국은 광주 선배들 추천으로 담양 소쇄원에 갔었잖아요. 언니 인스타그램 프로필사진에 남아있는 날이에요. 그 사진은 언니가 신나게 눈누난나 하면서 저 멀리 먼저 가버리고 있는 뒷모습이라서, 볼 때마다 슬프지만요.

갈색 여름 샌들을 보면 언니 생각이 나요. 언니가 떠난 해 여름에 우연히 우리 둘이 같은 샌들을 사서 신발장에서 꺼낼 때마다 헷갈렸었잖아요. 분홍색 헤드폰을 보면 언니 생각이 나고, 편의점에서 견과류를 볼 때도 생각나요. 미니 가습기를 봐도 생각나는데, 좁아터진 사무실에서 같은 공기 마시던 우리는 가습기도 공동 구매했잖아요.

대추차를 보면 언니 생각이 나요. 불면증에 시달려서 우리를 늘 걱정시켰잖아요. 사실은 정작 언니의 불면증은 우리 모두를 걱정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언니랑 나눈 텔레그램 대화를 다시 볼 때마다 참 신기해요. 우리는 쓰잘데 없는 얘기도 하고, 남들 연애 참견도 하고, 언니 소개팅 망한 얘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흉도 봤지만, 가장 많이 나눈 얘기는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네요. 누구는 요즘 어떤 상태인데 조직이 무엇을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 누구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 누구가 이런 상황이어서 걱정된다.... 언니는 회의 때도 가장 많은 활동 단위와 활동가들 사이의 쟁점을 파악하고 있었고 활동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가장 많이 얘기했지요. 언니는 늘 정말 많은 사람들을 시야에 두고,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함께 고민해주고, 때로는 애정담긴 비판으로 혼내기도 하면서 모두를 보듬었어요. 그런 언니랑 같이 조직실에서 활동했던 저는 행운아라고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나는 그 대화들을 다시 볼 때마다 언니한테 너무 미안해요. 나는 언니랑 정말 많은 얘기를 했는데, 사무실에선 대각선 맞은편 앉아서 하루 종일 수다 떨고, 텔레그램도 매일 하고, 셀 수 없는 술자리에 함께 있었고, 일하다가 따로 둘이 몰래 카페 가서 비밀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정작 “언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지 못한 게 제일 미안하고 후회스러워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깊이 신뢰해주는 사람의 존재로부터 큰 안정감을 얻잖아요. 저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언니.. 언니가 나한테 해준 말 중 몇 개는 너무나 기억에 강하게 남아서, 지금도 힘들 때 그 말을 떠올리면 힘이 나요.

그리고 미안해요. 언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얼마나 예쁜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매력과 능력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그런 이야기를 내 생각의 1/100도 말해주지 못했어요. 언니가 자기 능력을 탓할 때, 그게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 말문이 막혀서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했어요. 그냥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라고 하고 말았어요.

우리 모두가 예상했지만, 언니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언니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작아지지가 않아요. 우리 모두가 민영이가 되자고 했었죠. 언니한테 너무 많은 짐을 떠넘겼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반, 그리고 나머지 반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결코 송민영이 될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언니를 떠올리는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겠죠. 그런데 오민혜 언니가 그랬다지요, 어려울 때 송민영 떠올리는 것 좀 이제 그만하라고. 이제 힘들 때 언니를 떠올리는 것보다는 맛있는 거, 좋은 곳, 언니가 봤으면 정말 좋아했을 일들이 있을 때 언니를 더 많이 떠올리도록 노력할게요. 내가 있는 공간에서, 언니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함께 했을 일들을 할게요.

사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언니에 대해서 말하는 게 용기가 잘 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하겠다고 한 이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진 언니에 대한 기억이 조각조각 사라질까봐 불안했기 때문이에요. 편지를 쓰기 위해서 지난 1주일 동안 언니 생각을 좀 많이 했더니 희미해졌던 기억이 다시 짙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 민영이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하셨던 언니 어머니의 말씀을 저는 자주 떠올리곤 해요.

언니가 어느 날 “내 팔자가 남들 다 퍼주는 곰탱이 팔자라더라”라고 하면서 찡긋 웃었던 게 기억나는데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지금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언니가 퍼줬던 마음을 갖고 잘 살아가고 있어요. 그걸 언니한테 다시 돌려줄 수 없게 되었지만, 언니가 내 지분을 갖고 있으니까 언니가 보면 칭찬해주고 뿌듯해할만한 일을 하면서 살게요.

언니가 남들 앞에서 나를 부를 때 ‘우리 수진이’라고 해줬던 게 너무 그립다.
내가 찌질한 짓 하면 ‘황수진 네 이년’ 하면서 혼내던 것도 너무 너무 그립다.

보고 싶은 쏭 언니,
언니를 괴롭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곳에서
편안하게 푹 자고 있을 꺼라 믿을게요.

잘 자요.

(201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