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대외정책 분석과 비판
강대국 간 세력권 질서로의 퇴행
1. 서론
2025년 12월 5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이하 NSS)는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역대 미국 행정부는 물론,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비교했을 때도 대외정책의 방향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해당 문서에서 나타난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 변화는 올해 초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이후 그린란드를 향한 위협 발언으로 허풍이 아님이 드러났다.
NSS는 과거 미국 행정부들이 지나치게 국가이익의 범위를 확장해 세계 각지에 개입한 결과 미국의 산업기반과 중산층이 훼손되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의 핵심 이익에 집중하고, 서반구를 중심으로 핵심 자원과 공급망에 대한 접근권 우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을 1823년 먼로 독트린을 보충하는 부칙으로서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라고 제시했다. 뒤이어 1월 전쟁부(국방부)에서 발표한 국방전략서(National Defense Security, 이하 NDS) 역시 NSS의 내용을 바탕으로 ‘힘을 통한 평화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 문서는 NSS와 마찬가지로 미국 본토와 서반구를 최우선 방위지역으로 설정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는 주요 국가들에 대한 표현에서도 이전 행정부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며, 중국을 ‘장기적 도전과제’, 러시아를 ‘급박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번 NSS는 “더 크고 부유하며 강력한 국가들의 과도한 영향력은 국제관계의 영원한 진리다”라는 표현과 더불어, 중국과의 관계에서 경쟁이 아닌 경제적 불균형의 재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러시아를 유럽과의 관계 관리 측면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규칙기반 국제질서가 아니라, 강대국들이 상호 협상에 기초해 각자의 경제적·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미치는 지리적 범위를 나누는 ‘세력권’(Sphere of Influence) 중심의 국제질서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리차드 하스 전 미국 외교협회장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중국, 러시아의 세 개의 세력권 분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으며, 《워싱턴포스트》, 《로이터》를 비롯한 주류 언론사들 역시 유사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트럼프 2기 NSS가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국의 세력권인 서반구에서 지배력을 확고히 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며, 마두로 대통령 부부 납치는 그러한 전략에 기초한 행보라고 보았다. 본 글은 이러한 분석이 도출된 배경을 트럼프 행정부가 계승을 표방한 먼로 독트린에 주목해 살펴본다. 특히 서반구 지역에 대한 대(對)라틴아메리카 정책사를 검토함으로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확인한다. 나아가 서반구를 우선시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러한 외교 노선을 19세기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와 비교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가 세력권에 기초한 대외전략임을 설명하고, 이러한 대외정책이 지니는 위험성을 분석하고 비판할 것이다.
2. 먼로 독트린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서반구 지역을 대외정책의 최우선 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NSS와 NDS 모두 서반구를 다른 지역에 앞서 다루며, 이 과정에서 ‘먼로 독트린’을 핵심적으로 강조한다. NSS는 미국 외교정책 목표의 핵심으로 서반구에서 지속적인 상업적·군사적 접근권을 보장받는 것을 명시하고, 그 역사적·정책적 근거로 먼로 독트린을 제시한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의 대외정책 접근을 먼로 독트린에 대한 보충 원칙으로 규정하며 이를 ‘트럼프 코롤러리’로 명명한다.
먼로 독트린은 1823년 미국의 먼로 대통령이 의회 연두교서에 제출한 외교 방침이다. 일반적으로 먼로 독트린은 ‘고립주의’로 이해된다. 하지만 실제 미국 역사에서 먼로 독트린은 일관된 교리가 아니라 당대의 정세에 따라 구성되는 담론으로, 미국이 국제환경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할 때마다 소환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반구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를 드러내는 무대였다.
아래에서는 먼로 독트린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재해석되었는지를 검토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먼로 독트린을 다시 소환하는 것은 20세기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19세기 미국 외교 전통을 복권하려는 시도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먼로 독트린 담론의 역사적 전개
1823년 발표된 먼로 독트린은 유럽 열강과의 경쟁이 심화하는 대외적 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둘러싸고 러시아·스페인·영국과 경쟁하던 미국은 1820년대 들어 큰 대외적 압박에 직면했다. 1823년 신성동맹(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묵인 아래, 프랑스가 군사 개입을 통해 스페인의 자유주의적 반란을 진압하고 부르봉 왕정을 복원했다.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시몬 볼리바르를 중심으로 독립 투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던 만큼, 영국과 미국은 신성동맹 국가들이 스페인을 매개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을 우려했다. 조지 캐닝 영국 외무장관은 신성동맹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 동맹을 제안했다. 전쟁부 장관인 존 캘훈은 제안에 동의했지만, 국무부 장관인 존 퀸시 애덤스는 반대했다. 애덤스 장관은 영국을 경계했다. 또한 그는 열강과의 대결 과정에서 연방 권한의 강화가 불가피해질 경우, 오히려 연방의 단결이 약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 1823년 12월 먼로 대통령이 발표한 먼로 독트린은 3가지 원칙을 선언했다. 첫 번째는, 아메리카 대륙을 앞으로 어떤 열강의 식민지화 대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두 번째 원칙은, 미국은 유럽 강대국의 기존 역내 식민지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대신 유럽국이 신생 독립 아메리카 국가에 간섭할 때, 미국은 이를 ‘미국에 대한 적대적 의도의 표출’로 간주할 것을 밝혔다.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은, 미국은 유럽대륙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고별 연설 이래 이어져 온 미국 외교 관행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렇듯, 먼로 독트린은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개입에 대한 방어적 선언이었다.
[그림] 먼로 독트린
먼로 독트린은 1823년 12월 2일 발표된 6397자의 국정 현안을 보고하는 연설문 중 외교정책과 관련된 세 개의 문단을 가리킨다. 먼로 독트린은 1845년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정책 원칙으로 격상됐으며 19세기 후반 들어 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한 서반구를 대상으로 하는 원칙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미국 외교박물관)
먼로 독트린은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개입을 거부했지만, 미국이 이후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지, 특히 독립에 성공한 신흥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이는 이후 미국 외교의 중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1825년, 시몬 볼리바르는 파나마 회의를 통해 범아메리카 연합 구상을 제안하며 미국을 초청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퀸시 애덤스는 제안을 수락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미국의 존재감을 제도적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앤드루 잭슨을 중심으로 남부 노예주와 영국과의 무역에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인들이 파나마 회의 참가에 반대했다. 특히 다수의 라틴아메리카 독립국들이 노예제 폐지를 선언한 점은 이들의 반감을 더 키웠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파나마 회의 참가가 결정되었으나, 대표단은 제때 회의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는 애덤스 행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공격하려는 잭슨 진영의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앤드루 잭슨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먼로 독트린은 미국 외교의 전략적 초점을 아메리카 전반이 아닌 북아메리카 지역에 집중시키고, 서부 팽창과 미국의 배타적 이익을 강화하는 원리로 재해석되었다. 특히 제임스 포크 대통령은 언론인 존 오설리번이 제시한 ‘명백한 운명’이라는 팽창 담론을 수용했다. 포크 행정부는 멕시코와의 전쟁을 감행함으로써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확보하는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했다. 동시에 포크 행정부는 1846년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오리건 지역의 영토 분쟁을 종결하고 캐나다와의 국경을 확정지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 먼로 독트린은 영토 확장과 미국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잭슨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해석·적용되는 담론으로 기능했다.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먼로 독트린은 서부로의 팽창보다는 남쪽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상업적 우위와 경제적 연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겪었다.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반구’(半球, hemisphere)와 ‘범미’(汎美, Pan-American)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라틴아메리카와의 상업적 연계를 강화하고자 했다. 미국은 1889년 워싱턴에서 범미주회의를 개최하여 관세동맹, 무역 분쟁을 다룰 상설 재판소 설치, 미주 은행 설립 등의 구상을 논의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강한 반대로, 상업 문제를 논의하는 상설 기구(오늘날 미주기구의 전신) 설치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이후 칠레와 쿠바에서 잇따라 국내 정치에 혼란이 발생하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미국 내 기대감은 점차 실망감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로 대표되는 호전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주의자들이 윌리엄 매킨리 행정부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들은 스페인과의 전쟁 승리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문명화의 확산이라는 책임을 미국이 부담해야 하며 혼란한 서반구에 대해 지배적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20세기 초 베네수엘라의 채권 회수를 명분으로 유럽 열강이 남미지역에 개입하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행정부는 이를 강하게 견제하며 서반구에서 ‘문명국’인 미국만이 경찰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루스벨트 코롤러리’를 1904년에 천명했다. 부칙에 따라 미국은 파나마, 쿠바, 아이티에 군을 파견해 라틴아메리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반면 민주당이 집권하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기존의 팽창주의적인 먼로 독트린을 다르게 이해했으며 이를 미국 대외정책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는 먼로 독트린이 세력권 선언이 아니라, 헌정주의와 자결원칙을 확산시키는 원리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개입을 규범적 기준에 맞추고자 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의 재해석은 실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책 실천과 괴리가 있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니카라과의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자 군사 개입을 지속하고 파병을 확대하며, 여전히 서반구 질서에 대한 감독권을 미국이 가진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윌슨의 규범적 재해석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에 이르러 더 구체적인 정책 전환으로 나타났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니카라과(1933년), 아이티(1934년)에 주둔하던 미군을 철수시키는 한편, 1933년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제7차 미주국가회의에서 ‘선린정책’을 표방해 점령과 감독에 기초한 직접 개입 방식을 종식했다. 이후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는 무력 행사보다는 외교와 경제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먼로 독트린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확산과 함께 서반구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의 유지를 지향하고 권장하는 원리로 이해되었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이해는 반공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 결과 쿠바나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은 일부 국가를 상대로 군사·정치적 개입이 이뤄지기도 했다. 다만 미국 대외전략에서 우선순위가 유럽이나 동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중요성은 낮아졌다. 특히 냉전 이후 미국의 관심이 중동과 아시아로 집중되면서 서반구 지역에 대한 소극적 방임이 강화되었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미주기구 연설에서 “먼로 독트린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것이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2)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먼로 독트린
그렇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오바마 정부 시기에 종언했다는 먼로 독트린을 왜 소환하고 서반구를 강조했을까? 이는 단순히 지역의 우선순위가 변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19세기의 미국의 대외정책을 부활시키는 것과 동시에 20세기 중반 이후 확립된 미국 대외정책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이 더 이상 국제질서를 포괄하는 행위자가 아님을 선언한다. NSS는 세계의 근본적인 정치단위가 국가라고 보며, 미국은 핵심 국가안보 이익에 집중할 것임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서반구 지역을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간주한다. 서반구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와 마약,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의 역내 접근권 강화를 미국 안보의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서반구 지역에서의 경쟁국들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지역국들을 동원하고 협력함으로써, 역내 주요 자원을 공동 개발할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NDS에선 아예 캐나다에서 중남미 국가에 이르는 서반구 국가들을 본토 방어 설명에 포함시키고, 이들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역국들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4일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반구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경제안보를 위해 그린란드를 매입할 의사를 밝혔으며, 멕시코만에서 석유 시추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캐나다와의 무역적자에 대한 불만을 언급하며 미국의 경제적 힘을 활용해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편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현재 파나마 운하를 중국이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이 통제권을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뉴욕포스트》)
-web-resources/image/2.png)
트럼프 행정부는 말뿐만이 아니라, 이민자 문제와 마약 문제를 두고 실제로 서반구 국가들을 상대로 강압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2025년 12월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대량 유입되는 펜타닐 생산 원료인 전구체를 대량살상무기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치는 마약 문제를 화학무기와 동일한 범주로 격상해 연방정부의 군사작전을 용이하게 한 것이다. 연초에 마두로 대통령 체포 사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1일 다보스 포럼에서 해상이 아니라 육로를 통한 마약 유입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전쟁부는 ‘카르텔 대응 합동기관 태스크포스(JIATF-CC)’를 설치해 멕시코 내 군사작전을 시사하며 멕시코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발언과 그린란드 매입 의지도 거듭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미국 국경 인접국을 상대로 한 영토 확장적·강압적 행보는 국익의 의미를 본토와 정체성 수호에 두고, 물질적 국력과 위상 과시를 중시한, 잭슨주의 전통과 팽창주의적인 19세기 말 미국 외교를 계승한 것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규칙기반 국제질서나 국제법·규범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NSS에서 8차례 등장한 ‘규칙기반 국제질서’는 이번 NSS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국제법이나 국제규범이란 용어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번 NSS는 개별 국가의 주권에 우위를 두고, 초국가적 기구나 국제기구가 각국의 주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적대적으로 묘사했다. 국제기구에 대한 반감은 트럼프 행정부의 실제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이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유엔 산하기관을 포함한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는 조치에 서명했다.
국제법과 규범을 경시하는 태도는 1월 7일 진행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은 “도덕성에 의해서만 제한된다”고 주장하며 자신에게는 국제법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국제법을 따르겠지만 미국에 제약이 발생할 경우 자신이 최종 결정권자라고 주장하며 국제법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윌슨 대통령 이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수립하려는 노력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국제규범과 국제법의 제도화를 외면하고,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경시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외교를 지배해 온 윌슨주의적 전통과의 단절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연구자들은 서반구를 미국의 배타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재구성하고자 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따르지 않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습이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향권을 구축했던 19세기 세력권 질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세력권 질서로의 회귀로 평가되는 것일까? 또한 세력권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왜 위험한 것일까?
3. 트럼프 행정부 대외정책은 왜 세력권 질서 회귀로 불릴까?
세력권 질서란 무엇일까? 세력권 질서는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향력이 미치는 특정 지리적 영역에서 비(非)강대국에 대한 통제와 다른 강대국의 개입 배제를 기본 원리로 삼는 국제질서를 의미한다. 세력권 질서는 내부 질서와 외부 질서로 나뉘는데, 세력권 내부에서는 위계 원리가 작동해 강대국의 이념과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한편, 외부에 대해서는 상호 간섭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세력권 질서가 국제관계사에서 나타난 대표적 사례가 19세기에 등장한 유럽협조체제다. 유럽협조체제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강대국들이 합의한 비공식적이지만 영향력 있는 규칙들의 집합체였다. 유럽에서 단일 국가가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억제하고자, 유럽 강대국들은 주기적인 회의를 통해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도입했다. 프린스턴대학 정치학 교수 존 아이켄베리에 따르면, 유럽협조체제는 강대국 사이의 협의와 조정을 도모하여 국제 문제를 힘이 아닌 제도와 절차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시도로, 이후 탄생한 국제연맹과 국제연합(UN)을 예고한 다자간 기구의 원시적 형태였다. 그러나 유럽협조체제는 상호 세력권 인정을 바탕으로 한 만큼 여러 한계를 드러내며 결국 붕괴했다. 이 장은 이러한 과정에 주목하여, 세력권에 기초한 국제질서가 20세기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보다 왜 더 퇴행적이고 위험한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1) 19세기 유럽협조체제의 교훈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를 격파한 이후, 유럽대륙에서 단일 패권국이 등장하지 않도록 상호억제를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영국 외무장관 캐슬레이는 전시 동맹을 기반으로 전후 질서를 관리하기 위해 유럽 주요 강대국들과 다중적 동맹 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이러한 동맹을 토대로 유럽대륙에서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전쟁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1814년 체결된 쇼몽조약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쇼몽조약은 주요 국가들이 동맹을 유지하고 전후 평화를 지속해서 보장하기로 합의한 것이었다. 이어 파리조약에서는 전후 질서를 확정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그 결과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전후 질서가 확정되었다. 빈 회의에서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네 강대국은 회의(Congress)를 통해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기로 했다. 또한 강대국들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영토를 변경하지 않기로 했으며,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더불어 급진 혁명에 공동 대응하며 상호 보호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1818년 아헨회의에서 프랑스가 강대국으로 복귀하면서 다섯 강대국 체제가 성립하였다.
[그림] 빈 회의
1814~1815년 빈에서 열린 빈 회의(Congress of Vienna)는 군주, 외교관, 예술인을 포함해 다양한 인사들이 모인 행사였다. 사교행사와 무도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외교관들 사이의 비공식 협상을 통해 탄생한 것이 1815년 6월 9일 발표된 빈 최종의정서였다. 최종의정서는 바르샤바 공국을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세력권으로 분할했다. 스위스를 영세중립국으로 설정했으며, 프랑스를 1792년 혁명전쟁 이전의 영토로 고정했다. 이밖에 항행의 자유와 외교관 등급 체계를 비롯해 강대국 간 외교 규칙을 정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유럽협조체제는 빈번한 회의를 통해 강대국 간 갈등을 최대한 억제했고, 영토 정복을 위한 대규모 전쟁을 최소화하였다. 역사학자 폴 슈뢰더의 지적처럼 “1815~1848년 이전이나 이후의 어느 시기에도 소국이 강대국에 의해 정복되거나 합병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토록 확신할 수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실제로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완전히 사라진 국가는 없었다. 그러나 영향권 내 국가들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은 빈번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과 함께 신성동맹을 별도로 결성하고, 자신의 영향권인 북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자유주의 혁명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하였다. 반면 강대국들은 상호 영향권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완충지대의 독립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리스 독립 전쟁에 강대국들이 집단적으로 개입한 사례와 1830년대 벨기에의 독립을 용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대국 간 협의를 통한 ‘공동 질서 유지’의 규범은 1848년 혁명 이후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점차 약해졌다. 핵심 조정자였던 메테르니히가 망명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민족 통일 운동이 본격화되자 각국은 다자적 중재보다는 양자 협상을 선호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협조체제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던 영국의 산업적 헤게모니가 19세기 중반 이후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산업 경쟁은 격화되었다. 강대국들은 경쟁 우위를 위해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 조치, 그리고 원료 공급과 시장 접근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식민지 확장 경쟁이 심해졌다. 1873년 이후의 장기 불황은 산업적 축적의 수익성 둔화와 금융화를 동반하며 이러한 경쟁 구조의 재편을 가속화하였다. 그 결과 유럽협조체제를 지탱하던 합의에 기반한 자제보다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구조적 변화로 약해진 유럽협조체제는 규범의 제약을 경시하는 정치지도자의 등장으로 그 쇠퇴가 가속화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나폴레옹 3세를 들 수 있다. 그는 유럽협조체제하에서 제한되어 있던 프랑스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국내에서의 정치적 인기를 확보하고자 했다. 그에 따라 나폴레옹 3세는 유럽협조체제의 절차적 합의를 우회하는 단독행동을 펼쳤다. 크림전쟁(1853~1856)과 보불전쟁(1870~1871)은 이러한 행태가 강대국 간 군사적 충돌로 비화한 사례였다. 예를 들어 크림전쟁의 경우, 다른 강대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예루살렘의 가톨릭 성직자 보호를 명분으로 오스만 제국에 함대를 파견했다. 이 조치는 러시아와 영국이 잇따라 오스만 제국 문제에 개입하게 만들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보불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60년대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통일운동에 위기감을 느낀 나폴레옹 3세는, 비스마르크가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와 관련한 프로이센 국왕의 답신을 의도적으로 편집해 언론에 공개하자 격분했다.(엠스 전보 사건) 그에 따라 나폴레옹 3세는 강대국 회의를 통한 외교적 중재를 거치지 않은 채 충동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프랑스 군사력에 대한 그의 과신은 군사적 패배로 이어졌고, 나폴레옹 3세는 포로가 되어 권력을 상실했다.
유럽협조체제는 1850년대 이후 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도전과 그에 따른 영국 헤게모니의 약화, 민족주의의 확산, 그리고 주요 강대국 지도자들의 규칙 준수의식 약화가 맞물리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강대국 회의는 형식적으로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존속했으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협의의 장이라기보다 세력권 경쟁과 식민지 분할을 둘러싼 협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경쟁이 격화된 끝에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유럽협조체제는 최종적으로 붕괴했다.
19세기 유럽협조체제는 이전의 군사력 중심의 세력균형을 외교로 보완하려는 시도였으며, 강대국들이 경쟁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유럽의 국제질서를 관리하려는 체제였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운영하는 방식은 일정 기간 동안 상호 자제와 협조를 유도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유럽협조체제는 본질적으로 강대국 중심의 질서였으며, 약소국의 주권과 요구는 주변화되기 쉬웠다. 무엇보다 강대국 간에 공유된 이해관계는 영속적이지 않았다. 1848년 이후 유럽 정세의 변화는 강대국 간 자제를 정당화하던 기반을 침식시켰고, 그 결과 협조체제의 지속 가능성 역시 흔들리게 되었다.
2)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세력권 행보
NSS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적 행보를 살펴볼 때,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은 19세기 강대국의 세력권 질서였던 유럽협조체제와 유사성이 있다. 특히 NSS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전 행정부와 큰 차이를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를 ‘직접적 위협’으로, 중국을 ‘최대의 도전’으로 규정하며 이들을 미국 안보에 대한 핵심 위협으로 평가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NSS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사라졌다.
중국의 경우, NSS는 이념적·안보적 대치보다 경제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무역에서의 균형 회복에 중점을 둘 것을 강조한다. NDS는 더 나아가 중국을 지배하거나 굴욕을 주거나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히는 한편, 인민해방군과의 접촉 확대 의지를 제시했다. 러시아의 경우, NSS는 우크라이나·유럽에 대한 위협보다는 전략적 안정의 회복을 강조하며, 전쟁의 격화를 방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내 적대행위를 신속히 종식하는 것이 미국의 핵심적 이익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NDS는 러시아를 통제할 수 있는 위협으로 평가하며, 러시아가 유럽에서 패권을 추구할 능력이나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경계하는 표현이 완화된 점은 이들 국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역내 미국 동맹국을 지칭하는 방식의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대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근거를 반도체 생산의 전략적 가치에 한정한 점이 그러하다. 또한 이전 행정부가 사용했던 “대만 해협의 어느 쪽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도 반대한다”는 표현을 “대만 해협의 현상유지를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지지하지 않는다”로 완화한 것도 상징적이다. 이 표현 변경과 관련해 미국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 페다시우크는 이러한 어조의 변화가 적극적 반대에서 소극적 불승인으로 이동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으며, 중국이 향후 추가적인 문구 수정을 요구할 때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NDS에서 유럽의 GDP와 러시아의 GDP를 비교하며 유럽이 러시아의 위협을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NSS에서는 오히려 유럽연합이라는 초국적 기구로 인해 유럽인들의 정치적 자유와 주권이 훼손되고 있으며, 세계경제에서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문명적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비판했다. 뮌헨안보회의에서 이루어진 작년 J. D. 밴스 부통령과 올해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연설은 표현상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유럽의 미국 안보 의존을 비판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을 가치와 규범을 공유하는 파트너가 아닌 비용과 책임을 져야 하는 전략적 행위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표현뿐만 아니라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1월 ‘대만 발언’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 국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전화 통화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12월 대만을 포위하는 중국의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일상적인 군사훈련에 불과하며 중국은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하는 등 중국을 신뢰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7년부터 꾸준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높게 평가해 왔다. 또한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CIA에서 대러시아 전문 고위급 분석관들이 다수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유럽을 배제한 채,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여 러시아에 유리한 종전안을 여러 차례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로 NSS 발표 이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페스코프는 《타스통신》에서 이번 조치는 긍정적인 조치라며 환영 입장을 발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제질서를 세력권 질서로 재편하려는 경향은 경쟁 강대국을 대상으로 한 외교적 제안에서도 확인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평화위원회’(BOP)를 국제분쟁 해결을 위한 상설 기구로 발전시키겠다고 주장하며 푸틴 대통령을 초청했다. 비록 2월 19일 열린 첫 회의에 러시아는 불참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참여 조건인 10억 달러 기금 출연 의사를 밝히면서, 동결된 러시아 자산과 제재 문제를 연계해 미국과 협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행보는 분쟁 해결을 보편적 다자기구의 절차에 맡기기보다, 강대국 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아 기구를 협상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접근에 가깝다.
중국에게도 비슷하게 접근한다. 작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보다 부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 정상회담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30일 중국과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11월 1일 APEC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귀국했다. 이는 다자기구를 통한 규범 형성보다는 주요 강대국 지도자 간의 직접 담판, 이른바 ‘빅딜’ 외교를 통해 핵심 현안을 조율하려는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 조정이나 비용 절감 차원의 고립주의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19세기 유럽협조체제와 유사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질서를 규범과 제도에 기반한 다자주의 체제가 아니라, 강대국 간 협상으로 구성되는 질서로 바라본다. 위계상 아래에 있는 국가들을 압박해 강대국과의 마찰을 회피하려 하고, 국제기구보다는 선택적 협의체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강대국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구조로 질서를 이해하는 관점을 드러낸다.
4. 트럼프 행정부 대외정책 비판
일부 현실주의자들은 세력권을 인정하고 이를 관리하여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 스티븐 월트는 《포린 폴리시》 기고글 「무엇이 세력권이고, 세력권이 아닌가?」에서 세력권을 무정부상태의 국제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자, 무질서로 인한 세력권 간 경쟁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불완전한 질서로 이해한다. 따라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세력권에 도전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경쟁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미국 스팀슨센터의 연구원 엠마 애쉬포드는 최근 저서 『동등한 자들 가운데 첫 번째: 다극 세계에서의 미국 외교정책』(2025)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전 지구적 개입 전략이 지속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다극화된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지역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경쟁 강대국의 영향력 확대를 일정 부분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동맹국의 자강을 촉진해 힘의 균형을 관리하고 전쟁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세력권을 부정하기보다 국제정치의 현실로 인정하고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세력권 질서는 기본적으로 힘에 의존하는 질서이므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기 어렵다. 강대국 사이의 충돌을 막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非)강대국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강대국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력권 내부 국가나 동맹국에 강압적인 행보를 취할 유인이 커진다. 특히 세력권이 규칙과 합의가 아니라 압박과 거래에 의해 유지될 때 이러한 유인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강압적 조치는 해당 국가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키거나 세력권으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는 이러한 위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NATO에 대한 거리두기 신호는 유럽 내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핵무장 논의를 촉발했다. 최근 유럽 주요 정상들이 잇달아 중국을 방문해 경제·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가운데 미국 중심 질서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핵무장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 스웨덴의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영국, 프랑스와 함께 양국의 핵 억지력을 유럽 차원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이전보다 더 빈번하고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이번 NSS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점과 중국이 핵탄두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핵무장론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갤럽을 비롯한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응답자가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정권이 올해까지 3대 방위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를 개정하면서 ‘비핵 3원칙’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수록 강대국과 인접한 동맹국은 핵무장을 모색하려는 유혹에 쉽게 노출되며, 이는 핵확산과 핵전쟁 위기 증가라는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낸다.
세력권 질서는 강대국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만큼, 외교 문제도 제도적 조정보다 지도자의 재량과 폐쇄적인 비밀외교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인 외교, 안보 관료보다 사위 제라드 쿠슈너, 기업가 친구 스티브 위트코프와 같은 측근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올해 2월까지 미국의 대사 자리 195석 중 절반이 넘는 102석을 완전한 공석 상태로 방치하고 있으며, 국가안보정책을 조율하고 외국 정부를 상대로 사전에 정책설명을 담당하던 국가안보회의(NSC)의 기능도 크게 약화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이로 인해 미국 관리들 사이에서 업무 혼선과 지연이 빈번한 상황이다.
제도적 완충장치가 약해질수록 외교 문제는 단기적 계산과 지도자의 체면, 감정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올라가며, 이는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점에서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 제2제정기와 비슷하다. 나폴레옹 3세 때도 공식 외교 라인보다는 황제 개인과 황후 외제니, 그리고 소수의 측근이 대외정책을 주도했다. 그 결과 크림전쟁, 멕시코에 대한 군사 개입과 보불전쟁처럼,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단기적인 국익과 황제 개인의 명예를 기준으로 대외정책을 펼쳤다.
2026년 3월 현재 이란과의 전쟁은 동일한 위험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함께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이란을 공습하여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제거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신정체제 이후의 이란 사회 재건과 중동 질서 재편에 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목표가 불분명한 가운데, 공직사회와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공습을 감행했다. 단기적 국력 과시를 우선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이란의 헌정 민주주의 정착이나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힘의 논리를 바탕에 둔 세력권 질서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비해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권력 행사를 제약하는 원리를 중심에 둔다. 강대국의 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국제법, 다자주의 제도, 공개된 협상 절차를 통해 그 힘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 이는 국내정치에서 헌정주의가 권력의 분산과 절차적 통제를 강조하는 것과 유사하다. 규칙 중심으로 사고하면, 분쟁 해결 논의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제도의 개선과 조정 역량의 문제로 전환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단순히 전쟁 억제 장치가 아니라, 강대국 권력의 자의성을 제어하려는 헌정적 시도이기도 하다.
5. 결론: 규범의 재건에 기초한 대외정책 비판이 필요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핵심 이익을 중심에 두고 서반구를 우선시하는 전략을 취하며, 국제법과 규범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대신 중국·러시아와의 세력권 조정을 통한 공모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행보는 19세기 유럽협조체제와 유사한 강대국 중심 세력권 질서를 지향한다. 그러나 세력권에 기초한 질서는 궁극적으로 힘의 균형과 일시적 이해관계에 의존한다. 제도적·규범적 장치를 경시하는 만큼 국제정치는 상호 불신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구조적으로 유발한다. 그 결과 협력의 유인은 줄어들고 약소국에 대한 강압과 강대국 사이에 충돌 위험이 증가한다. (‘죄수의 딜레마’란 서로 협력할 때 모두가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소통의 부재와 의심 탓에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을 하는 것을 뜻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국제관계에 헌정주의적 원리를 도입하려는 시도로 형성됐다. 전후 국제질서는 현실주의적 힘의 구조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제도적 틀 안에 묶어두려는 절충의 산물이었다. 그 대표적 결과가 유엔 상임이사국 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연합이다. 즉,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강대국 정치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사이의 타협 속에서 발전해 온 것이다. 따라서 국제연합이 한계가 있고 민주적 측면에서 결함이 있다면, 해결방안은 규범적 질서를 보다 민주적이고 헌정주의적인 기반 위에서 진화시키는 데 있지, 규범적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따라서 사회운동의 트럼프 2기 행정부 비판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과 발언을 넘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범 파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적으론 단일 행정부 이론에 근거하여 대통령의 권력행사를 제약하는 심층을 거부하고 있다. (이번 호 「공화국을 포위한 『두 유령』과 트럼프 2기 행정부 1년 평가」를 참고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도 국제법과 규범의 제약을 존중하지 않은 채 19세기식 세력권 질서로 국제사회를 재편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헌정주의적 원리를 동시에 약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운동은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함에 있어서, 단순히 대외정책에 대한 도덕적 규탄에 머물거나, 세력권 질서로의 회귀를 ‘현실주의’의 이름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제규범을 더욱 민주적이고 구속력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유럽협조체제가 흔들리던 시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가 국제 평화운동의 노력 속에서 개최되어 분쟁의 평화적·법적 해결 원칙을 제도화하였고, 블라디미르 레닌이 민족자결권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사상적 전통 속에서도 강대국 정치의 자의성을 제약하려는 규범적 노력은 분명 존재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강대국의 세력권 경쟁이 초래할 불안정과 강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국제규범을 방어하고 확장하려는 정치적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