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주의 진정한 벗은 누구인가
5월 광주민중항쟁과 5월 평택평화항쟁
가장 대표적인 기회주의는 바로 무원칙한 ‘평화주의’다. 우리가 위에서 살펴보았듯 평택 문제에 대해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과 충돌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이때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기존의 실정법에 대한 복종이다. 국가가 설정한 한계를 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와 평택 모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의 실정법, 그리고 국가가 대중들에게 강제하는 한계가 근본적인 불의와 억압, 배제를 실행하는 도구와 다를 바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한 것도, 평택 대추분교를 철거하고 농민들의 땅에 철조망을 친 것도 모두 실정법에 따른 것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 무장을 금지하는 국가의 제한을 넘어서야 했던 광주에서도, 농사를 짓기 위해 ‘군사보호시설법’에 따라 설치된 철조망을 넘어서야 했던 평택에서도, ‘공권력’이라는 국가의 조직된 무장력이 이들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공권력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중들을 유린한다. 이처럼 기존의 법질서가 정상적인 중재 기능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의를 체계적으로 집행할 때, 즉 말의 강한 의미에서 ‘압제’로 타락할 때, 주권자로서 대중들은 기존 법질서에 대한 저항권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은 불가피하게 일정한 혼란과 무질서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대중운동의 새로운 조건이 된다. 우선 그 체제의 성격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체제의 재생산을 자신의 고유한 임무로 하는 국가는 법질서의 수호와 확립이라는 명목으로 경찰과 군대 등 억압적 장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주권자로서 대중들에 대한 반동적 공세를 강화한다. 또한 대중들에게는 법으로 대표되는 안정적 질서나 규범에 의존하지 않는, 주권자로서의 보다 창발적인 결정과 막대한 책임이 요구된다. 한편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대중들의 불안을 틈타 무원칙한 평화주의와 기회주의가 더욱 크게 발호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