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4.01.17

2024년 노동정세 전망③: 2024년 노사관계 주요 이슈와 노동운동의 과제

사회진보연대
 
이번 글에서는 노동정세의 마지막 쟁점으로 노사관계의 주요한 쟁점을 검토한다. 앞서 글에서 살펴본 노동시장의 변화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면, 올해 예상된 노동이슈들에 대해서는 중장기적 시야와 호흡으로 노동운동 내부의 전략을 점검해야 한다.
 
 
경사노위 재가동과 타임오프제 시정명령
 
노동개혁과 별도로 윤석열 정부는 한국노총과 노정관계를 유지하며 각종 노동이슈를 경사노위를 통해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2023년 5월 포스코 사내하청 투쟁 강제 진압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경사노위 참여를 중단했지만, 11월 다시 경사노위 복귀를 선언했다.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밝혔고 현재 경사노위는 본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경사노위가 재가동되면서 노사관계, 노동시장 정책이 사회적 대화의 외형을 갖춰 진행될 전망이다.
 
대표적 이슈 중 하나는 공무원·교원노조 근로시간 면제제도 시행이다. 윤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공무원·교원 타임오프제 도입은 2022년 5월 국회를 통과했고 12월 11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타임오프의 한도와 세부시행방식에 대해 경사노위 산하 ‘공무원·교원근무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용노동부는 작년 11월 타임오프 제도 운영 및 운영비원조 기획 근로감독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9월에 실행된 실태조사는 1천명 이상 노조 중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운영하는 480곳을 대상으로 사용자 측이 제도운영 실태를 노동부에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면제 시간과 인원이 법정한도를 초과한 13.1%의 사업장 63곳에 대해 관리 감독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민주노총 사업장으로 서울교통공사노조와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위법 사항이 시정되지 않으면 형사처벌과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 반영 등의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노조회계 공시와 동일한 방식으로 타임오프제에 대한 투명성과 규제를 앞세우며 노조와 대립각을 세울 전망이다.
 
또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국민설문조사 결과를 수용해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를 노사가 원하는 업종에 적용하고 그 구체적 결정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한다고 밝혔다. 개편안을 논의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게 될지, 경사노위를 활용하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복귀를 밝히면서도 곧이어 정부의 노조 회계공시 의무화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정부의 회계공시에 응한다는 결정을 하였고 사회적 대화를 하면서도,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한국노총의 반응은 경사노위 복귀를 통해 핵심적인 노동이슈에 대한 개입력을 확보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성과를 얻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타임오프제 규제,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와 같은 민감한 사안이 경사노위 논의와 함께 행정적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때 한국노총이 어떤 포지션을 취하게 될지가 관건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의 좌초
 
2023년 1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노조법 2‧3조(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였고 12월 8일 개정안은 정기국회 본회의 재표결 끝에 부결되어 폐기 수순을 밟았다.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되어 2000년대 오랫동안 노동운동의 숙원이었던 노조법 2,3조 개정이 최종 좌초된 것이다. 파업 등 노조 활동에 대해 사용자가 제기하는 막대한 손배가압류 공세를 막고 하도급 노동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2010년대 이후 노동계의 대표적 입법 투쟁으로 비교적 폭넓은 지지를 얻은 법안이기도 하다. 2015년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이후 2023년 최근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유사한 내용의 다수 개정안이 제출되었지만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판례를 반영해 법규범과 법현실의 괴리를 메우는 최소한의 조치만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들은 노조법 3조 개정안이 ‘불법 파업을 합법화’하고,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고 ‘파업을 상시화’한다는 공포를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불법 파업이면 손배청구를 당하게 되는 법적구조를 바꾸지도 못했고, 노조법 2조의 사용자개념, 3조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른 책임 비율 인정 조항도 기존 판결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오기형, <노조법 2·3조 개정안 분석>,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3년 여름호를 참고하라.)
 
[출처: 노동과세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노사관계의 첨예한 쟁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공간을 닫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이슈를 상징하는 이 법안이 지금 시기 왜 굳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결국 좌절되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노조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발의되었던 것은 2013년 12월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부과된 47억 배상 판결에 대한 시민 성금을 계기로 이 법이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을 얻어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대, 20대 국회(2016~2020년)와 문재인 정부 시기 이 법안을 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지는 사실상 없었다. 당시 고용노동부 역시 원칙을 흔드는 특례조항이 많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 2020년 12월 3일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 출석 시 발언).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과반 이상 의석을 차지하고 2021년 3월 임종성 민주당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노란봉투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 법안은 민주당 내부에서 추가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다 2022년 대우조선이 점거파업을 한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 등 5명에게 47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을 계기로 이수진·강민정·양경숙·노웅래 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노란봉투법을 다시 대표 발의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노조법 2조의 사용자개념 확대를 추가한 새로운 개정안이 2023년 초 국회 환노위를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했고 5월에는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되었다. 국민의 힘이 직회부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각하되었고, 11월 9일 개정안은 국민의힘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작년 하반기 민주당은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통과뿐 아니라,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소추안,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현직 검사 탄핵소추 등 국회 다수의석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었고, 국힘과 대통령실은 이를 거부권 행사로 대응하며 대치 정국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대통령이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노조법2‧3 개정안을 위한 노동운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작년 민주당의 반정권 전선을 위한 ‘입법폭주’에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하고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을 형성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으로 노조법 개정안이 활용된 것에 대해 노동운동이 충분히 비판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조법 개정은 이제 다시 노조와 사용자와의 법적인 공방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2024년에는 금속노조 원청 사용자성에 대해 교섭권을 쟁점으로 하는 ‘HD현대중공업 단체교섭 청구’ 관련 대법원 판결이 주목된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했다면 부당노동행위 금지의무를 부담하는 노조법상 사용자라 판시하였다. 현재 계류 중인 이 사건은 단체교섭에 대한 직접적 청구권이 인정되느냐에 대한 재판으로 1, 2심은 금속노조 패소로 판결한 바 있다.
 
올해 총선 결과에 따라 노조법 개정안은 다시 재점화될 수 있다. 상반기 정기국회가 열리면 노동계가 다시 법개정 투쟁을 제기할 여지가 남아있다. 그러나 정치의 양극화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은 민주당의 당리당략에 활용될 공산이 크다. 노동운동이 민주당에 의지한다면 같은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산업전환 고용안정 지원법 개정의 쟁점
 
노동자의 경영 및 주요 의사결정 참여와 관련,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시행과 산업전환 시 고용안정 관련 지원법이 그 쟁점을 담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시기 경사노위에서 합의되어 윤석열 정부에서 국회를 통과해 도입된 제도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2022.1.11.의결)에 따라 법안 공포 6개월 후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서는 3년 이상 재직한 소속 노동자 대표 추천이나 과반수 동의를 얻은 노동자 1명을 비상임 노동이사로 임명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2021년 9월 기준 전국 광역시도 73개 공공기관에서 91명의 노동이사가 활동하고 있고 전국공공기관 노동이사협의회가 창립되었다. 제도의 취지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독려하며 민간까지 확산한다는 것이었지만 노동이사의 노조 탈퇴 여부나 노동이사의 선임 절차 등 제도안착에 필요한 쟁점들은 제대로 공론화되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편 작년 하반기 국회에서는 산업구조 전환으로 발생하는 일자리 위험에 대응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산업전환 지원법)’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고용노동부가 5년마다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지원계획을 수립하는 역할과 노조와 사용자에게 직업능력개발훈련과 고용안정 조치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계획 수립기구에 노사 동수 참여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최종 통과된 법안은 고용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한다는 시행령을 6개월 이내에 제정하도록 노력한다는 부대의견을 남기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올해 시행령이 개정되면 산업전환 과정에 대한 노조의 개입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노동이사제와 산업지원법 개정과 같은 노동 참여의 제도를 공들여 만들어낸다 해도 기업별 노조를 넘어 산별 노사관계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다. 산업전환에서 다루는 의제의 경우 기업별 노조의 개입력은 한계적이므로 산별노조의 책임 있는 역할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제도 실행에 있어 기업별 노조의 한계만을 지적할 뿐 산별 노사관계가 가능한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이 이러한 노사 참여 관련 제도들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 충분한 숙고와 논의가 필요하다. 기업별 노사관계로 제한된 노조운동이 초기업적 교섭과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영과 산업전환의 쟁점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별 노조 스스로 이러한 제도를 활용해 어떻게 산별노조의 제도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자기계획이 필요하다.
 
주제어
노조
태그
노동개혁 경사노위 타임오프제 노조법 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