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5.06.02

트럼프주의에 편승하려는 양당 외교정책의 위험성

원칙도 구체 방안도 없는 양당의 외교 공약

사회진보연대
이 글에서는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21대 대선 외교ꞏ안보 공약을 조명한다. 요약하면, 양당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의 미래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답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보를 걸어왔고, 이를 반영하는 공문구 수준의 외교ꞏ안보 공약을 내놓았다. 이러한 양당의 정책에는 한국과 세계가 직면한 트럼프주의의 위협에 대한 비판 의식은 없고, 이에 편승하는 실용주의만 보일 뿐이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수준의 양당 외교ꞏ안보 공약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임을 고려하더라도, 양당의 대선공약집은 선거일을 코앞에 둔 시점(국민의힘 5월 26일, 민주당 5월 28일)에야 발간되었다. 그런데 양당의 외교ꞏ안보 공약은 공약집의 설명만 놓고 보면 상당히 비슷하다. 외교ꞏ안보 정책의 토대를 한미동맹에 두고, 주요 이웃 국가인 일본,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잘 유지하며, 유럽, 동남아시아 등 지역과 협력을 확대하며, 다자외교와 문화 교류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튼튼한 국방력을 갖추되 평화적 대화를 추구하겠다고 한다. (대북공약도 문구 수준에서는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국민의힘은 핵 확장억제, 핵추진잠수함 개발, 전술핵 재배치 또는 NATO식 핵공유를 강조하는 점이 다르다.)
 
외교ꞏ안보는 이론적인 모범 경로가 있다. 즉, 적정한 방위력은 가지되 이것이 전쟁이나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불필요한 적을 만드는 것 또한 피하며, 최대한 많은 국가와 우의를 다지되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굴종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따내야 한다. 양당의 외교ꞏ안보 공약은 이러한 모범 공식을 충실히 반영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모호한 문구로 가득하여 실제로 어떤 정책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게다가 이러한 모범 공식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까다로울뿐더러 상기한 목표가 서로 충돌하는 일이 잦다. 작금의 복잡한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외교ꞏ안보 정책의 토대를 한미동맹에 두고, 주요 이웃 국가인 일본,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부터가 엄청난 외교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때문에, 모든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고 내세우면서도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대지 못하는 양당의 공약집은 소위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보인다.
 

반일ꞏ친중 논란의 민주당, 부정선거 음모론ꞏ핵무장론 내세운 국민의힘

 
닮은꼴 공문구로 가득한 대선 공약집에 더해,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거대 양당의 행태는 제대로 된 외교 전략 자체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먼저, 민주당은 ‘친중’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대선 공약집에 ‘불법 중국 어선과 서해 불법 점유 행태에 강력 대응’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올해 2월 중국의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 고정 구조물 설치가 알려진지 한 달이 지난 뒤인 3월 25일에야 비판 논평을 냈다. 4월 29일 대만 유사시에 한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군사적 자원뿐만 아니라 경제ꞏ정치적 수단은 물론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것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 발의)에도 민주당 의원 10명이 동참했다.
 
비상계엄 직후 국면에서도, 대통령 탄핵소추의 직접적 계기는 비상계엄 선포임에도 민주당은 1차 탄핵소추안에 윤석열 정부의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적대시”,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 비판을 포함하여 국내외에서 큰 논란을 빚었다. 대만 문제가 어떻게 되든 한국은 상관없다는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발언(2024년 3월 22일)에 이어, 이 후보는 이번 5월 29일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서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대만을 돕겠느냐’는 질문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할 때 그 답을 생각해 보겠다”며 전제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답했다.
 
이 후보와 민주당 선대위는 이러한 발언들이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의 대만 침공과 같이 한반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중대 사안을 “대만과 중국이 싸우든지 말든지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5월 13일 이재명 후보)고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도외시하는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수준의 국제정세 인식을 갖고 어떠한 ‘국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주당은 일본에 대해서도 ‘반일’ 논란을 의식한 듯 공약집에서 한일관계의 목표를 “미래지향적 발전 도모”로 세우고 “한미일 협력 발전을 위해 한일 간 협의, 협력 긴밀화”를 주장했지만, 정작 정권을 잡았을 때 대일외교에서 중대 쟁점이 될 역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거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 해결 노력 지속”이라는 모호한 문구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역사 왜곡 행위’를 매우 포괄적이고 모호하게 정의하는 ‘친일 공직자 임용 금지법’을 당론으로 발의했고, 2023년에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반대 투쟁을 당 차원의 총력 투쟁으로 진행했다. 문재인 정권 시기 여당으로서 반일 민족주의를 조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일정책에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민주당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여는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공약집에도, TV토론에도 그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한편, 국민의힘은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준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전 대통령과 단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의 개입으로 인한 부정선거가 치러지고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서울서부지법에 폭력적으로 난입하기도 한 극단세력들과도 선을 긋지 못했다. 한덕수 총리를 대선 후보로 세우기 위해 한밤중 ‘날치기’ 후보 교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최종 후보가 된 김문수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탄핵에 반대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본 지지층에 힘입어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했다. 이와 같이 세계 민주주의 규범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행태를 만천하에 드러낸 이들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외교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공약집은 “평화와 경제를 함께하는 호혜적 한중관계 형성”을 목표로 하며,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방안이 없을뿐더러 중국 관련 음모론에 빠진 일부 지지층을 끌어안고 가는 모습에서 공약의 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의 핵무장 관련 공약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역대 정부의 목표에 역행하고, 한반도를 핵 경쟁에 몰아넣을 수 있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보다. 김문수 후보는 5월 27일 TV토론에서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핵(무장) 잠재력 확보와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하도록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는 것이나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때 김 후보는 공약인 전술핵무기 재배치 또는 미국과의 핵 공유도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월 18일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고려하는가?”라는 질의에 “우리는 확장억제 공약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한미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강력히 지지하며 조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한다”라고 답했다. 새로운 핵보유국이 등장하는 것을 억제하는 NPT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것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뜻으로,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강조하는 것도 당분간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 없다는 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나 한국 내 미군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추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김문수 후보를 비롯한 국민의힘 세력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며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거는 것은 남한 핵무장론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낸다.
 

세계질서를 파괴하는 트럼프주의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양당 외교정책

 
원칙 없는 양당 외교정책의 문제가 가장 치명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미국의 트럼프주의에 대한 태도다. 양당 모두 외교ꞏ안보 정책의 뿌리를 한미동맹에 둔다고 공언하면서도, 트럼프의 등장에 직면해 자당의 기존 정책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대응할 것이냐는 문제의식이 없다. 맹목적으로 트럼프주의를 긍정하고, 이를 실용적으로 활용해보겠다는 태도만 보일 뿐이다.
 
윤석열 정권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가치외교’,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한국의 외교 노선으로 채택하고, 이를 대내외 수사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미국과 행보를 같이 했다. 그런데 현재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은 정작 트럼프의 미국이 관세전쟁과 친러ꞏ친이스라엘 휴전협상, 권위주의 지도자들과의 친화성으로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가치외교’ 대신 일방주의 외교로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을 무력화하는 상황에 대한 평가나 대책이 전혀 없다. 직전 정권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가치외교’,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온데간데없게 되었고, 트럼프 2기의 미국은 이전까지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노선임에도 내용 없는 ‘한미동맹’ 그 자체만을 지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국제질서의 향방이나 그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아무 전망 없이, 그저 미국의 정책이 바뀌는 데로 쫓아가는 세력일 뿐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들이 내놓은 주체적인 계획은 동맹국들의 방위력 강화를 요구하는 트럼프를 활용하여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보자는 위험천만한 주장뿐이다.
 
민주당은 트럼프주의를 긍정하고 이를 민주당의 ‘국익론’과 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한다. 트럼프와 한국 민주당이 추구하는 ‘국익’이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파괴하여 공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재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판하며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목표하는 것을 칭찬하고, 자신이 ‘현실주의자ꞏ실용주의자’라는 점에서 ‘한국의 트럼프’로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2024년 12월 9일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 국민의 더 나은 삶과 대한민국의 국익을 우선 챙겨야 한다”라고 평가했다(5월 29일 《타임》 인터뷰).
 
한편, 이 후보는 5월 29일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를 강조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데 북미대화의 재개는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완전한 북한 비핵화가 아닌,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만을 제거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ꞏ핵동결을 합의하는 ‘스몰딜’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각계의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당시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북한의 일정한 핵동결ꞏ핵감축과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 교환)를 수용하려 한 전력이 있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러한 전철을 밟는다면, 이를 과연 ‘실용외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누가 되든 방향타 없는 한국, 사회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양당의 공식 외교ꞏ안보 공약은 너무나 두루뭉술한 내용과 트럼프주의에 대한 맹목이 꼭 닮아있다. 그러면서 실제로 드러나는 행보는 제대로 된 ‘노선 차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책임한 모습 뿐이다. 이는 한국 정치의 양대 세력이 당리당략에만 골몰할 뿐,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한국을 끌고 갈 원칙과 정책에 대한 숙고가 전혀 없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정세를 적확히 읽고 한국과 세계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후퇴시키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제시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몫이다.
 
 
주제어
정치 국제
태그
민주당 국민의힘 트럼프주의 21대 대선 외교 정책 핵무장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