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5.09.19
한·일 반핵평화운동의 연대와 모색
<한·일 반핵평화운동 교류회> 지상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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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일본 원수협)가 주최하고 한국 사회운동단체들이 후원한 <한·일 반핵평화운동 교류회>가 서울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한국과 일본 단체들이 모여 반핵평화운동 계획을 공유하고 공동의 과제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노동·정치·사람, 녹색당, 보건의료단체연합, 비핵평화시민연대, 사회진보연대, 전국금속노동조합, 전환, 정의당, 평등의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플랫폼C, 한국여성단체연합, 합천평화의집 등 13개 단체가 후원했다. 일본에서는 원수협 중앙 사무국과 나가사키현, 효고현, 나라현, 가고시마현, 도쿠시마현 등 일본 각지 원수협 사무국과 함께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민의련),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젠로렌) 등에서 20여 명이 참가했다. 연인원은 80여 명에 달해, 금속노조 대회의실을 꽉 채웠다.
일본에서는 츠치다 야요이 원수협 사무국 국제담당 차장, 키시모토 케이스케 민의련 사무국장이 발표를 맡았다. 한국에서는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 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 이지연 평등의길 부산 집행위원장, 오미정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부설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했다. 교류회 자료집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일본공산당 발간 《신문 아카하타》도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연대”라는 제목으로 교류회를 보도했다.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참가하도록 함께 노력해나가자”
츠치다 야요이 원수협 사무국 국제담당 차장은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에서 핵전력을 증강하는 중국, 북한과 일본·한국을 포함한 미국 주도의 군사 블록이 대치”한 상태이며, 최근 중국의 열병식에 푸틴과 김정은이 참석해 “냉전 시대를 뛰어넘는 군사 블록 결집”을 꾀했다고 정세를 분석했다. 핵보유국들은 이러한 대치를 힘, 특히 ‘핵 억지력’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UN헌장에 따른 대화와 핵무기 철폐뿐이라고 비판했다.
한반도에서도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남한이 미국의 핵 우산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군사적 해결책은 존재할 수 없으며,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민족의 생존과 안전이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인 피폭자가 겪은 참상과 오늘날까지도 피폭 2세, 3세가 겪고 있는 피해야말로 핵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시라고 제기했다.

츠치다 차장은 한편으로 세계와 동아시아의 위기 상황을 전환할 희망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흐름이 UN 핵무기금지조약이다. 이 조약은 UN 가맹국의 2/3이 찬성하지만, 반대하는 국가는 핵보유국, NATO 가맹국, 일본과 한국뿐이므로, 핵무기 철폐가 세계의 다수 여론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수협의 ‘비핵 일본 캠페인’은 일본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촉구하는 여론을 만드는 운동으로, 현재 178만 명이 참여한 서명을 피폭자와 함께 일본 외무성에 제출했으며, 전국 지자체의 41%가 정부에 조약 참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올해 4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참가해야 한다는 답변이 73%, 미국 핵우산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55%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한반도의 비핵평화는 한국 시민의 안전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이므로, 한국 사회운동이 펼치는 한국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 캠페인과 한국인 피폭 1세·2세·3세 연대활동을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함께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특히 피폭자의 증언은 핵무기가 얼마나 비인도적 무기인가를 낱낱이 알려 ‘핵 억지력’ 신화를 깨뜨리는 힘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츠치다 차장은 올해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채택한 선언대로, 2026년 봄 뉴욕 UN본부에서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11차 평가회의에 대응하는 국제공동행동을 제안하며 발표를 마쳤다.

키시모토 케이스케 민의련 사무국장은 피폭자 연대와 반핵평화운동을 일상적으로 이어나가는 민의련의 활동을 소개했다. 민의련의 뿌리는 1930년 노동자, 농민 및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민중들이 함께 만든 무산자진료소(無産者診療所)다. 전쟁 중에 일본 정부의 탄압을 받아 진료소가 모두 폐쇄되기도 했으나, 일본 패전 후 1946년 민주진료소를 거쳐 1953년 민의련을 결성하게 된다. 차별 없는 평등한 의료와 복지를 목표로 성장한 민의련은 현재 일본 내 모든 지역에 총 1,680개의 가맹사업소를 두고 있으며, 사업소 내 의료‧복지종사자와 건강친구회(健康友の会), 의료생협조합원 등 공동조직(共同組織) 회원은 합쳐서 360만 명에 달한다.
키시모토 사무국장의 발표에 따르면, 민의련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파괴하는 일체의 전쟁 정책 반대, 핵무기 폐기, 피폭자 구제 등을 목표로 피폭자를 지원하는 의료 활동을 하는 동시에 피폭자와 함께 싸워나가고 있다. 또, 「평화액션플랜」을 통해 일본 각지에서 전쟁·피폭 경험 청취 기록, 전쟁 관련 유적 답사, 오키나와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연대 등 다양한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청년 직원이 평화운동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중시한다. 일본 모든 43개 현에 반핵평화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매월 회의를 통해 활동 방침 논의, 뉴스 발행, 학습 기획을 한다. 올해 세계대회에는 총 2,398명 참가했고, 핵무기금지조약 운동도 함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창립 70주년을 맞은 2023년부터 전국의 가맹병원과 진료소에 평화헌법 수호의 의지를 다지는 ‘9조의 비’ 건립 운동을 진행하여 이미 60개 이상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키시모토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의 군비 팽창과 의료비 삭감에 맞서 “미사일보다 돌봄”이라는 구호를 더욱 소리 높여나가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군사대결이 아닌 평화와 생명이 우선시되는 아시아를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들자고 주장했다.
“모든 핵무기에 반대하며 국제연대를 넓혀나가자”

김찬휘 녹색당 공동대표는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핵무기 사용‧핵실험은 ‘식민주의’와 연결되었다고 지적하며,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핵무기 피폭자, 세계 각국의 핵실험 피폭자, 핵발전소 피폭자, 핵무기에 쓰이는 우라늄 채굴 피폭자들의 4자 연대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접경지인 경기도 지역의 여성평화운동을 소개했다. 경기여성네트워크는 참가 단위들의 정치적 성격이 다름에도 이를 존중하면서 15년째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드문 사례로, <경기 여성 DMZ 평화걷기>를 비롯한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은 1998년 출범 당시부터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핵무장을 비판하며 ‘모든 핵무기에 대한 반대’를 원칙으로 활동한 사회진보연대의 반핵평화‧한일연대 활동을 소개하며, 한반도 비핵화 없이는 동아시아 평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특히, 2020년대 현재에는 남북·북미대화가 교착되고 북한의 핵무장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핵심 캠페인인 핵무기금지조약과 한일 시민의 연대를 주목하고 있으며, 올해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와 후속 활동을 통해 일본 반핵평화운동과 연대를 강화하고 한국 반핵평화운동을 활성화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한국인 피폭자는 강제동원‧징용, 본인 피폭, 2, 3세 피폭후유증까지 3중의 고통을 받고 있으나 오랜 사회적 무관심 속에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 피폭된 한국인 10만여 명 중 현재 알려진 생존자는 1,580여 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편견, 유전적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1만 5천 여명의 피폭 2세와 그 후손들이 있다. 본인이 피폭 2세, 3세인 사실 자체를 아직 모르거나, 알더라도 드러내지 않은 경우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국회를 통과한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법은 피폭 1세만을 법적 피해자로 정의한다. 한국인 피폭자들은 피폭 2, 3세까지 법적 피해자 정의를 넓히고, 전국적 실태조사 실시, 비핵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예산 반영 등까지 포함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한일 피폭자가 연대를 더욱 강화하여 원폭피해자 문제를 폭넓게 알리고 핵무기금지조약 가입 활동을 하자고 촉구했다.

이지연 평등의길 부산 집행위원장은 올해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일본 참가자들이 거듭 일본의 전쟁 책임을 사죄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일본 노동자민중의 반전반핵평화와 국제연대를 향한 의지를 느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단 한 발의 핵무기가 한반도의 7천만 민중을 절멸로 몰고 갈 수 있으므로,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 세계평화를 실현”하자는 민주노총 강령에 맞게, 노동자 국제연대를 더 확장해나가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미정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은 확장억제 폐기, 군사동맹 폐기 투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평화를 실현하자고 주장했다. 2026년 11~12월 핵무기금지조약(TPNW) 당사국회의에서 미국의 원폭 투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을 열 계획을 소개했다.
인류가 살아남는가 핵무기가 살아남는가, 우리에게 달렸다
발표가 종료된 후 여러 주제에 대해 질의응답 및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피폭자 문제를 어떻게 알려나갈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발언이 있었다. 비핵평화시민연대의 이대수 목사는 세계적으로 핵실험이 2,000번이 넘게 벌어졌으며, 그 피해자가 수백 만 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미일 피폭자 연대를 통해 미국에 책임을 묻고 피폭자 실상을 전 세계에 적극 알리자고 제안했다. 한편, 각국 정부가 피폭 피해를 매우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피폭 2세 연대 운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본 참가자들은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며, 이미 냉전 시기부터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 다양한 국가의 핵 피해자들을 초청한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에서도 정부가 피폭 피해를 좁게 인정하는 문제를 끊임없는 투쟁으로 조금씩 개선해왔다며, 피폭 2세 문제도 공동의 과제로 가져가자고 제안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 원수협의 공식 입장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츠치다 차장은 원수협은 북한을 포함해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과거 북한이 NPT를 탈퇴했을 때도 원수협을 이에 반대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북한이나 중국을 핑계로 핵억지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할 때마다 국민의 휴대폰에 경고 알람을 보내는 식으로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바탕으로 일본에서도 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원수협은 핵무기로 결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교류회의 경험을 이어 반핵평화운동과 한일연대를 더욱 강화해나가자는 발언도 다수 있었다. 사회진보연대 이형호 조직국장은 지난 달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한국 참가자들을 환대해준 일본 활동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국에서도 우리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위한 ‘비핵 한반도 캠페인’이 필요하겠다고 발언했다.

사토 스미토 나가사키현원수협 사무국장은 피폭 2세로서 어머니에게 들었던 참혹한 피폭의 경험을 생생히 발언했다. 사토 사무국장의 어머니는 1945년 8월 당시 세 아이 모두가 피폭 후유증으로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여름이라서 사람들이 썩듯이 죽어갔던 지옥을 초래한 핵무기를 ‘억지력’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호소한 사토 사무국장은 피폭자의 목소리를 알려나가는 일이 핵무기 폐기 운동의 원점이라며, 앞으로도 더욱 널리 알려나가자고 강조했다.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태재 회장은 2024년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초청받아 오슬로에 방문했을 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그는 결혼한 뒤에야 아버지가 피폭자였다는 걸 알게 된 피폭 2세이다. 이태재 회장은 “지구상에 핵무기가 남느냐, 인류가 남느냐”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류가 남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폐기하는 길밖에 없다. 피폭자가 생존해있는 동안 핵무기 없는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한반도에서부터 반핵평화의 외침을 더욱 드높여나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