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5.10.17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분석과 전망
지속 가능한 평화공존 방안을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지난 10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20개의 평화구상’ 1단계(9월 발표)에 합의하며 전쟁이 휴전단계로 접어들었다. 평화구상 1단계는 ▲ 즉각적인 휴전 ▲ 72시간 이내로 하마스의 이스라엘 인질 석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 ▲ 인도적 지원 재개를 주 내용으로 한다. 이후 2단계인 ▲ 하마스의 무장해제 ▲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 ▲ 국제안정화군 배치, 그리고 마지막 3단계로 ▲ 국제기구의 감독을 받는 과도정부 수립 ▲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 ▲ 경계선 확정 ▲ 가자지구 재건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개혁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장기적 평화공존 방안 부재 속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의 어두운 전망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들은 이번 휴전협정이 지속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태도 때문이다. 「누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협상을 가로막는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전쟁국가를 지향하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과 이슬람주의 무장 정파집단 하마스 모두 상대방의 궁극적인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각각 가자지구 완전 철수와 무장해제는 물론, 팔레스타인 과도정부를 수용할 수 없다. 오히려 휴전을 틈타 통제력을 강화하거나 합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저강도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주민들을 억압하고, 동시에 군사력 재건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마스는 휴전 발표 후 자신들에 도전했던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33명을 처형하며 내부 이견을 억압했다. 나아가 7,000명의 대원을 모집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약속 위반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위협과 공격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타임즈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10월 14일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약속한 시신 중 일부만 인도한 것에 대해 약속 위반이라 비판하며 시신 전원 인도 전까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품을 제한하고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잇는 라파 검문소의 폐쇄 유지를 결정했다. 여기에 휴전 합의가 발표된 직후 이스라엘 군인이 하마스 대원에게 살해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 건물을 공격해 40여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잔해에 갇혔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이 상대방의 절멸을 지향하는 한, 휴전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쟁을 지속하는 이유는, 이들을 대체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의 영구적 평화를 가져다줄 평화공존 안이 구체화되지 못한 탓도 있다. 과거 오슬로 협정으로 대표되는 두 국가 해법 평화 프로세스는 이스라엘 내부의 극단적 시온주의자들과 하마스를 비롯한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극단적 폭력행위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상태다. (김민정,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평화공존’을 위한 연대를 모색하며」)
오늘날 국제사회의 여러 나라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중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평화공존’의 구조를 설계하기보다는, 군사행동의 즉각적인 중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3년 11월 24일과 올해 1월 19일 체결된 휴전협정 역시 이번 휴전합의와 거의 같은 내용의 협정이었다. 인질 교환을 바탕으로 양측은 휴전에 합의하였지만, 이후 단계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휴전이 종료되고 전쟁이 재개되었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핵심 쟁점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 인정 여부, 예루살렘 운영, 국경선 등)을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면, 휴전이 성립해도 이후에 계속해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단체들의 평화공존 방안 노력
오슬로 협정으로 대표되는 두 국가 해법이 사실상 좌절되었으며,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한 국가 해법 역시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에선 두 가지 방법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지연합(Holy Land Confederation)’과 ‘모두를 위한 땅 (A Land For All: Two States, One Land)’이다. 두 단체가 제시하는 안은 모두 두 국가를 분리하는 것이 아닌 점진적인 개방과 통합을 지향하는 방식이며, 즉각적인 시민권보단 거주권에 초점을 맞춘다.
성지연합은 2021년 전 이스라엘 법무부 장관인 요시 베이린과 팔레스타인 변호사 히바 후세이니가 주창한 개념이자 동시에 학자·활동가 그룹의 이름이다. 이들은 두 국가의 연방제를 지향한다. 성지연합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기존 두 국가 해법이 전제하는 즉각적인 정치적 시민권 대신, 일정 수의 영주권을 부여하여 거주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 동시에 대규모 이주자 유입으로 인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회 혼란 억제를 도모한다.
또한 성지연합은 예루살렘 통치에 대해 예루살렘 지역을 관리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동 위원회를 제안하는 한편, 양측 간 교류를 증대할 연방경제사회위원회를 비롯한 연방 기관의 설치를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전을 담은 문서를 소책자로 발간하는 한편, 여러 학술대회에서 참가하며 성지연합의 지향을 소개하고 있다. (「성지연합 브로셔」)
‘모두를 위한 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활동가인 메이 푼닥과 룰라 하르달이 2012년에 설립, 주도하고 있는 사회운동 단체다. 이들 단체는 성지연합과 마찬가지로 연방제 국가를 지향하며, 시민권과 거주권을 분리하여 이스라엘 시민권이 있어도 팔레스타인에 거주할 권리를 보장하는 안을 지지한다. ‘모두를 위한 땅’의 특징은 영토 교환보단 영주권에 초점을 맞추며, 영주권 보장에서 포괄적 시민권으로 단계적인 접근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예루살렘, 보건 분야에서의 공동 기구는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동 국경수비대 창설을 제안하고, 양국 법원이 판결한 사건을 심리할 최고인권재판소의 설치를 주장한다.
‘모두를 위한 땅’의 활동가들은 《르 몽드》, 《포린 어페어스》, 《CNN》 등의 매체에 기고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비전을 소개하는 한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에서 여러 공개 토론회를 열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전 UN 최고인권대표, 토마스 피케티를 비롯한 저명한 인사들의 지지를 표명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위한 사회운동의 과제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로 양측의 평화공존에 대한 회의와 비관이 만연한 게 사실이다. 앞서 보았듯,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말살한, 이스라엘에 의한 한 국가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 하마스 역시 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가자지구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전쟁 범죄를 일으킨 책임 당사자들이 건재한 상황에선 근본적인 변화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성지연합, 모두를 위한 땅을 비롯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시민사회의 노력은 유의미하다. 이들은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제도화하고자 하는 구체적 실험이다. 만약 이러한 노력과 방안을 실현하거나 확산하지 못한다면, 이번 휴전 역시 지난 두 차례의 휴전 합의가 실패로 끝난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과 극단적 폭력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휴전 합의를 진전시키고 정착시키려면, 장기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함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들 단체의 구상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상호인정과 평화를 바라는 주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끝없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대안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평화는 군사적 억지나 힘의 균형이 아니라, 평화공존의 상상력을 제도화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이번 휴전을 시작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영구적 평화가 정착하기 위해선, 성지연합과 모두를 위한 땅의 사례가 보여주듯, 사회운동은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중심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