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 2026.01.09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규탄한다
세력권 시대로의 회귀를 선언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위험한 대외전략 구상
2026년 1월 3일 미국이 군사작전으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을 체포했다. 이들은 미국으로 송환되어 마약과 테러리즘 공모, 부정선거 등의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전한 정권 이양까지 베네수엘라를 통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유엔 헌장 2조인 무력 사용 금지 원칙, 내정 불간섭 원칙,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위반한 것은 물론,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타국에 군사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국제법과 국내법을 모두 위반한 중대한 불법행위다. 본 글은 트럼프 행정부가 왜 위법한 군사작전을 베네수엘라에 감행했는지 분석하고, 미국의 이런 행위가 국제질서에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2025 미국 국가안보전략서로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서반구 정책
2025년 12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이하 NSS)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 명시된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외정책의 방향성은 이전 행정부의 대외정책, 심지어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성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2기 NSS의 가장 큰 특징은 대외정책의 원칙으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명시한 점이다. 역대 미국 행정부들이 지나치게 국가이익을 확장하였음을 비판하며 핵심 안보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우선순위를 정할 것을 밝힌다. 최우선 순위로는 인도-태평양이 아닌 서반구를 지목했다. (서반구는 지구를 본초 자오선(경도 0°)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눌 때 그 서쪽에 해당하는 절반을 가리키는 지역이다. 구체적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가 있는 북미와 남미 전부와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 서쪽 지역, 태평양 일부 해역 등을 포함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본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서반구에 진력하겠다며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 개념을 제시했다. (코롤러리는 기본원칙에서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추가적인 원칙을 뜻한다.) 현재 미국이 불안정한 서반구 국가들로 인해 마주하고 있는 이주 문제, 마약 유입 문제, 해상 안전 문제에 맞서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아메리카 개입에 반대한 1823년의 ‘먼로 독트린’과 불안정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미국이 개입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한 1904년 ‘루스벨트 코롤러리’를 확장한 것이다.
NSS의 또 다른 특징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권위주의 강대국을 규정하는 방식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NSS는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미국 외교정책의 최대 우려 사항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번 NSS는 그러한 우려와 경계의 표현을 담지 않았다. 중국은 주로 경제적 경쟁자로 표현했으며, 중국과의 관계에서 균형 잡힌 경제 관계 회복을 목표로 제시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전략적 안정성을 강조했다. 오히려 유럽에 대해서는 ‘문명의 소멸’을 언급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개별국가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초국가기구의 활동,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과 이민 문제로 인한 서구적 가치 훼손, 정치적 반대파 탄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경계하는 유럽 관료들을 비판한 것이다.
서반구에 집중하겠다는 ‘트럼프 코롤러리’와 중국과 러시아 비판 완화를 두고 많은 국제정치 전문가가 우려하고 있다. 미국 터프츠대학 전략연구센터 소장 모니카 토프트 교수는 2025년 3월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 「세력권 시대의 귀환」에서 오늘날 국제질서가 강압적 힘만이 통용되고 다자기구와 소국의 자율성이 위협받는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위 주장을 빌려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이처럼 미국이 강대국의 세력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국의 세력권인 서반구에서 지배력을 확고히 하겠다고 천명한 국가안보전략에 기초한 공격이다. 베네수엘라는 서반구에서 쿠바, 니카라과, 브라질과 함께 대표적인 반미 국가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2019년 미국과의 외교를 단절한 이후 중국, 러시아,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특히 중국은 현재 베네수엘라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며, 2023년 마두로-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양국 관계를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중국 외교에서 최우선 순위 국가를 지칭하는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베네수엘라가 유일하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자국 석유회사 셰브론의 베네수엘라 투자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등 베네수엘라에서의 영향력 회복을 꾀했다. 이번에 군사작전으로 친중-반미 성향의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한 것 역시 이런 세력권에 기초한 행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개입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라면서도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석유 시설에 대한 “완전한 접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기존 베네수엘라 당국에 “처신을 잘하지 않으면 2차 공습을 하겠다”라고 협박하면서도, 이들과의 협조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야권 인사의 귀국과 정치범 석방 문제에 대해선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겠다”라며 선을 그었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 개발을 목표로 한 협력 의제를 놓고 함께 일하기 위해 미국 정부를 초대한다”라며 미국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동시에 1월 5일, 미국에 협력하거나 지지를 표명하는 세력을 단속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비상선포문을 관보에 게시했다. 이 선포문에 따르면, 향후 90일간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중단되고, 국내 이동이 제한되며, 필요시 사유 재산의 압류까지 가능하다. 기존 베네수엘라 정권의 생존을 위해 일단은 미국과 협력하되, 친미 야권과 반대파는 철저히 탄압하겠다는 행보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무너진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와 사회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 없이 베네수엘라산 원유 개발을 중심으로 미국이 개입한다면, 이는 베네수엘라 사회에 더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이미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GDP가 지난 10년간 절반가량 감소하고 사회가 붕괴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베네수엘라를 떠난 난민과 이주민의 수는 베네수엘라 인구의 4분의 1 수준인 790만 명에 이른다.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마두로 대통령을 제거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 협력과 베네수엘라 시민의 주체적 노력에 기초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처럼 무너진 베네수엘라 사회 재건보다 강압에 기초해 석유 이익을 중심으로 기존 베네수엘라 당국과 협조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한편으로는 반미 성향의 기존 베네수엘라 기득권층과, 다른 한편으로는 야권이나 반체제세력과 충돌을 야기할 수 있으며, 베네수엘라 사회를 더 큰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혼란으로 내몰 수 있다.
만약 상황이 극히 악화하여 미국이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한 추가적인 군사 개입을 하게 된다면,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가 재연될 수 있다. 과거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명분으로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고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소모했지만, 더 큰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반미 성향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지만, 이후에도 종파 갈등과 부패·경제난이 나아지지 않았으며 3조 달러 이상의 비용을 치르고 2011년 철군했다. 현재 이라크는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조정기구(SCF)가 집권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통해 친미 정권을 수립했으나, 탈레반 집권을 막지 못한 채 2021년 철군했다. 이러한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베네수엘라 위기의 해결이 아닌 더 큰 혼란과 비극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세력권 시대의 도래를 알릴 미국의 위험한 도박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미국이 앞장서서 파괴하고, 강대국이 자신의 영향권으로 간주하는 지역에서 무력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최신의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이러한 행위는 다른 강대국의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국의 안보권과 역사적 영향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정당화하고 있으며, 중국도 대만 문제를 내정이자 핵심 이익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이번 침공은 “강대국은 자신의 영향권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실제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을 다룬 게시물이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약 4억 4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일부 이용자들은 이를 대만 문제에 적용가능한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행동이 국제규범을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힘의 논리에 종속된 도구로 완전히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력권이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주관적으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기에 끊임없는 국제적 분쟁을 초래한다.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NSS와 베네수엘라 침공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력권에 기초한 행보는 강대국이 자신의 세력권을 위해 주변국을 무력으로 침공하려는 시도만이 아니라, 강대국 간에 세력권 구획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로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강대국 간의 세력권 확립 경쟁이 두 차례에 걸친 세계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엔 지리적 인접성뿐 아니라 국가 성장에 필요한 자원이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다. 예를 들어, 자원 접근의 경쟁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해지면 강대국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침공 행보는 굉장히 위험하다.
마지막으로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 자체도 국제법 원칙을 일관되게 옹호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마두로 정부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공개적으로 러시아 푸틴 정권을 지지한 바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려’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한 2023년 제3차 EU-CELAC(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 정상회의에서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라틴 아메리카가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규탄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오늘은 우크라이나지만 내일은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습니다. … 한 국가의 대통령이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중요한 것은 국제법에 대한 존중입니다”라고 역설했다. 국제법과 국제규범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약소국의 민중부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관련 내용은 뒤틀린 반제국주의와 평화주의를 넘어③ 참고)
결국,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감행한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은 국제질서를 세력권의 시대로 돌리고자 하는 사건이란 점에서 국제질서에 실로 거대한 위협 행위다. 따라서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 구상의 본질이 드러난 이번 베네수엘라 무력 침공을 단호히 규탄한다. 특히 그 결과,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자율적인 민주주의라는 가능성이 다시금 차단될 것이라는 점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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