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 2026.10.12
흔들리는 권력분립과 사법 후퇴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논란을 중심으로
지난 6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을 대법원장이 거부한 사유를 따져 묻겠다며 그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했다. 대법원장을 국감에 세운 것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지난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작년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을 문제 삼았다면, 올해는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 거부를 이른바 '탄핵 사유'라고 윽박지르며 사법부의 수장을 불러들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사태는 단순한 인사 갈등을 넘어 한국의 헌정 질서에 중대한 경종을 울린다. 대법관 임명을 두고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에 부르거나,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에 앞선다는 인식하에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우선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삼권분립 원칙을 심대하게 침해한다.
국정감사 제도가 부활해 실시된 1988년 제13대 국회 이래로, 대법원장은 통상 인사말을 한 뒤 자리를 뜨고 법원행정처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그럼에도 여권은 조 대법원장을 겨냥해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서초동 정치’가 ‘여의도 정치’ 뺨친다”며 근거 없는 비난 공세를 펴왔고, 급기야 이날 국감장은 사법부 수장을 망신 주고 정치 공방이 오가는 난장판이 되었다.
기관장 자격으로 국감장에 나선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공문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취지를 알기 어려웠다며, "헌법 취지에 비춰 대법원장의 제청에 관해 증언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 독립 원칙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고 증언을 거부했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불허하며, 법률에 따라 후속 조치될 수 있다고 그를 위협하기도 했다. 만약 대법관 제청권 행사 과정을 국회에서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면, 이는 입법부가 대법원장의 고유한 인사권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꼴이 된다. 여당이 정권에 부담되는 증인은 배척하면서 국감을 오로지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데 활용한다면, 사법부를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사전협의 관행의 역사와 대통령 임명권의 한계
노태악 대법관의 퇴임을 앞두고 1월 2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는 그의 후임 대법관 후보 4명(윤성식·김민기·손봉기·박순영)을 추천했다. 청와대는 김민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선호했는데, 그가 이 대통령이 지명한 오영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배우자라는 점 등을 두고 대법원과 견해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어서 이흥구 대법관도 퇴임을 앞두게 되자, 조 대법원장은 그의 후임 후보자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 후보자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동시에 서면으로 임명 제청했다. 이에 김성수 판사는 대법관으로 임명된 한편, 손봉기 판사는 반려되었다. “실질적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서면 제청했고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청와대가 든 사유였지만, 청와대가 선호했던 특정 후보가 배제된 데에 따른 노골적인 불만 표출로도 비쳤다.
그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대면해 사전협의를 거쳐 대법관을 제청해 온 관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유신 이전의 제3공화국 헌법은 사법부 독립을 위해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을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유신헌법은 이를 “임명한다”로 고쳐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 여지를 만들었고, 권력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사전협의 관행은 바로 이 틈새에서 나왔다. 민주주의의 적통을 자처하는 정부가 사법부를 통제하기 위해 유신식 논리와 낡은 관행을 거부권의 근거로 삼는 것은 모순이다. 더구나 대면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라면, 똑같이 서면 제청된 김성수 후보자를 임명한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후 이어진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대해 조 대법원장은 9월 22일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헌법 제82조에 따라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해야 하는데, 해당 요식 행위에 대법관 후보자의 자격 미달이나 절차적 흠결에 대한 구체적 사유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출된 권력 역시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청와대의 헌법 인식이다. 청와대는 “국민들이 다 안다”라며 구체 사유는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조 대법원장의 입장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이에 더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는 이른바 ‘선출 권력 우위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 임명에 있어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가 있은 뒤에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시간적·절차적 순서를 규정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즉, 대통령의 임명권은 무제한의 권력이 아니라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통치권자가 자신과 가까운 인사로 대법원을 채워 우호적인 판결을 유도하는 코트 패킹(court-packing)을 방지하고, 외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는 1차 방화벽이다.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청와대가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상 부여된 사법부의 본질적 권능을 부정하는 것이다. 선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헌법기관보다 절대적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착각은 그 자체로 근거 없는 오만이다.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정주의의 기초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올해 사회진보연대는 《계간 사회진보연대》 여름호와 겨울호에서, 최근 정부의 조치들이 행정부와 입법부, 여론의 간섭 없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법부의 독립’ 원칙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유엔 사법독립 특별보고관 마거릿 사터스웨이트 역시 법관 임명 과정에서 행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전형적인 사법부 장악 시도로 규정한 바 있다. 이처럼 선출된 행정부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여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른바 ‘사법 후퇴(judicial backsliding)’ 현상이 우리 앞의 현실로 전개되고 있다.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얻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한한 권력 행사를 허용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은 단순히 재판에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넘어, ‘법의 지배’를 통해 통치자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제어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원칙이기 때문이다.
대법관 재제청을 둘러싼 초유의 충돌은 어느 한쪽의 완승이나 힘겨루기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고 사법 공백이 장기화하면, 결국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가 침해된다. 일각에서 말하는 추천위의 투명성 강화나 제청 과정의 법제화 등 제도적 보완을 논의하기에 앞서, 청와대와 여당은 선출 권력을 앞세우며 사법부를 제압하려는 태도를 즉각 멈춰야 한다. 헌법이 각 기관에 부여한 고유의 권한을 상호 존중하고, 통치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스스로 제어하는 통제와 균형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위기에 처한 사법부의 독립과 삼권분립 원칙을 온전히 지켜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