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12.21

2022년 대선, 민주노총이 경계할 바

10기 민주노총 임원선거 분석(4)-정치방침과 패권주의 문제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의 차기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 집권 말기와 2022년 대선을 통과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역할은 문재인 정부의 민생파탄, 민주파괴 정책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차기 집행부는 타락한 개혁세력인 민주당, 그리고 민주당의 외곽에 있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결연하게 단절해야 한다. 결선에 오른 기호 1번과 3번 후보조는 과연 이러한 정치적 역할을 떠맡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두 후보조의 정책과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며 이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두 후보조의 대선 계획

 
두 후보조가 밝힌 대선 계획은 매우 모호하다. 선거 전략상 대선 방침을 밝히는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노총은 2012년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는 새로운 진보대통합과 민중단일후보를 위한 정치전략을 세우려 했으나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이후 정치세력화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정치방침을 둘러싼 정파 간의 극단적 갈등은 민주노총의 오래된 트라우마 중 하나이다.
 
기호 1번 김상구 후보조는 노동시민진영의 대선 공동대응기구를 구성하고, 100만 조합원의 힘으로 새로운 정치, 선거방침을 수립하겠다고 공약했다. 기호 3번 양경수 후보조는 현실적으로 상층 의결기구에서의 합의는 불가능하므로, 무리한 지지방침은 시도하지 않고 총파업 투쟁을 통해 제 정치세력을 주도할 힘을 키우자고 제안했다.
 
두 후보조 사이의 차이는 대화와 투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경수 후보는 김상구 후보가 문재인 정권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총파업 투쟁이 정권에 대한 선명한 반대를 의미한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총파업 투쟁이 100만 민주노총의 의지를 표현하는지도 의심스럽고, 집행부가 이런저런 정치적 수사를 가져다 붙인다고 총파업이 반정부 투쟁이 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민주당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도 않는데, 조합원의 정치의식을 바꾸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총파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기호 1번, 여권 연대의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조사한 조합원 설문에 의하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집권 여당에 우호적이었다. 민주노총 방침이 가지는 한계를 고려할 때, 조합원 상당수는 민주당에 투표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기호 1번 후보의 ”민주세력 공동기구 구성과 조합원에 힘을 통한 새로운 정치, 선거방침의 수립“은 애매한 쟁점을 남긴다. 대선대응기구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서 민주당과의 단일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호 1번의 공약은 반보수 연합후보로 각색된 민주당 후보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지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기호 1번이 현 정부와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우려가 근거 없는 기우는 아닐 것이다. 대선 계획이 의례적인 선언이 아니라면 1번 김상구 후보조는 이 쟁점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해야 한다.
 
 

기호 3번, 정치전략의 숨겨진 문제들

 
기호 3번은 이번 대선에서 진보대통합이나 특정 정당 지지방침을 상층 의결기구에서 무리하게 합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호 3번을 구성하는 세력들의 과거를 볼 때, 이러한 약속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아래 두 가지가 근거이다.
 
첫째, 2018년에 경기본부장이었던 양경수 후보는 6.13지방선거에서 홍성규 민중당 경기도지사 후보의 배우자 대리로 선거운동에 직접 개입한 바 있다.
 
당시 정의당, 민중당이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민주노총 후보를 특정할 수 없게 되자, 경기본부는 민주노총 방침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양경수 본부장이 공개적으로 민중당 선거운동을 주도했다. 물론 정의당이 내부경선 자체를 거부한 문제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중조직이자 다양한 산별을 포괄하는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조합원의 단결을 무엇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양경수 본부장은 민주노총 선거방침을 스스로 거스르며 개인의 당적에 기반해 활동했다.
 
둘째, 양경수 후보가 속한 민중당(현 진보당)은 민주당을 지지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지난 4월 민중당은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었다. 그 이유는 “미래통합당의 위장정당 꼼수로 적폐세력이 되살아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보수연합’이라는 명분 아래 민주당과 함께 하는 것이 이들의 역사적인 정치 노선이었다.
 
2018년 김장호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이 발간한 이슈페이퍼 <평화, 번영, 통일시대의 등장과 노동자 자주통일운동의 과제>를 살펴보면 민중당-진보당과 전국회의 그룹이 민주노총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지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김장호 연구원은 전국회의 부울경 그룹과 친화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언론 <민플러스> 편집국장이다. 이슈페이퍼는 "촛불혁명 완성과 평화번영통일 위한 노동계급의 역할"을 아래와 같은 언급을 한다. "노동존중, 노동기본권 보장에서 문재인 정권에 저항하면서도 평화번영, 통일의 길에서는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정황들이 많이 발생한다. 단순히 계급적, 계층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자주와 통일의 길에서 각계민중이 하나로 뭉치는 길, 진보와 보수가 하나로 뭉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민주노총은 확고한 전략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노동자 생존권 문제에서 갈등하더라도, ‘자주와 평화의 길’에서 민주당 문재인 정부와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자 자주통일 운동을 전략 과제로 삼는 의견그룹에게 2022년 대선에서 ”적폐세력이 되살아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거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2012년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며, 후보를 사퇴한 사례도 있었다.
 

정치적 지향과 조직 운영의 패권성 문제

 
강한 정치적 지향을 관철하기 위해, 또는 그 정치적 지향이 조성하는 운동 기풍 탓에 대중조직의 운영이 파행을 겪는 사례가 종종 있다. 특히 진보당(구 민중당) 계열의 활동가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자주 관찰된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파동과 그 후 벌어진 일련의 파국적 사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패권적으로 조직의 기본규칙을 파괴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줬다. 정당 운동에서의 이러한 패권과 파행은 민주노총 질서에서도 나타난다.
 
예로 2018년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는 민중당 충남도당 공동위원장인 이승우 전 수석부지부장이 2011~16년까지 총 3억원 가량의 조합비를 유용하고 횡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전체 조합원 정기모임에서 특별회계감사 결과를 보고하려 했다. 그러나 회계감사에 반발해 민중당 친화적인 일부 조합원들이 집단폭력사태를 자행해 당시 지부 임원 및 간부들이 크게 다쳤다. 상급조직인 플랜트건설노조(위원장 이종화)의 주요 임원 역시 민중당 당원이거나 이에 우호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폭력 사태에 대한 책임 여부를 명확히 하는 조치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력행위자들을 옹호하고 사태를 무마시키려는 행태를 보였다. 아울러 이에 반발하는 충남지부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충남지부의 단체교섭권을 회수하여 해당 지역 플랜트건설노동자들의 임단협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을 방해했다. 심지어는 플랜트건설노조 본조직 운영위를 통해 '지부 해산'을 결정하며 민주노총 플랜트건설노조에서 수천명의 조합원을 일방적으로 내쫓았다. 조합비가 실제로 민중당 정치자금으로 도용되었는가의 의혹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못했으나, 그 진의가 밝혀지지 않았다 해도 정당한 의결체계를 방해하기 위해 극단적 폭력까지 행사한 사건에 대해 특정 정파의 편파적 결정으로 현장 조합원들의 상식적이고 정당한 목소리를 짓밟은 처사는 민주노총의 참담한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민중당-진보당과 결탁한 이들 의견 그룹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의 각 조직들은 민주노총에 가입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당원 가입을 의무적으로 유도한다. 또한, 당비의 납부를 강제하고 선거 등 각종 정치적 계기가 있을 때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기보다는 의결체계를 활용하여 각종 기금 납부를 강제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자기 정파 조직 중심 노선 관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가 선거시기 반복되고, 심지어 선거 이후 집권한다면 안 그래도 취약한 민주노총의 정치적 역량조차 파괴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기본적 조직질서를 무시하고 반칙을 일삼는 행동은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선관위가 확인한 기호 3번 후보조와 관련된 부정 선거운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에서는 조합원 소통방에 ‘지부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3번을 찍고 상급조직에 이를 보고하라는 노골적인 압력이 있었고,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광주지부에서는 지회 간부가 공식적 조직방침을 위장해 3번 양경수 후보에 대한 투표를 독려하는 행위도 있었다. 이들은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는 것도 모자라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비방도 서슴지 않았다. 기호 1번 황병래 사무총장 후보에 대한 비방 선전물을 SNS에 게시하고 공유해 선관위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기호 1번과 3번의 공동 행보 역사

 
공교롭게도 결선에 진출한 1번과 3번 위원장 후보들은 모두 통합진보당을 계승하는 진보당 당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차기 지도부로서 책임 있는 대선 계획을 조직적으로 토론하려면 지난 정파적 갈등과 파국으로 치달은 역사적 책임을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1번과 3번 후보조와 연관된 두 개의 의견 그룹인 국민파 노선과 전국회의는 지난 선거에서 수차례 공동 선본을 꾸렸고, 수권 시에도 집행부를 함께 운영했다. 2004년 이수호-이석행, 5기 이석행-이용식 집행부, 6기 김영훈-강승철 집행부, 9기 김명환-백석근 집행부가 이 두 그룹의 연합으로 운영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번 선거에서 두 그룹은 결별했지만, 반보수 전선에 대한 강조와 민주당 친화적인 정치방침에서는 둘 사이 큰 차이가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정세의 엄중함에 비해 노동운동의 정치역량은 취약하다. 민주노총의 정치전략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잘 평가해봐야 한다. 정치방침의 소멸, 진보정당의 퇴행, 개혁세력의 타락이라는 객관적 조건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노선적 한계를 발본적으로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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