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1.06.24

안전운임으로 화주 책임은 올리고, 화물노동자의 단결은 넓히고

박귀란(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국장)
2018년 3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가 도입되었다. 화물연대가 화물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표준요율제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 지 15년 만이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에 대한 적정한 운임을 보장하여 과로, 과속, 과적을 방지하고 안전한 운행을 담보하는 제도다. 매년 국토부 산하 안전운임위원회에서 그 해 안전운임을 결정하며, 고시된 운임을 위반할 시 건당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안전운임제는 오랜 기간 합리적인 기준 없이 화주(자본)에 의해 하향평준화 되어 온 화물운송운임을 현실화한다. 안전운임은 원가비용 보전, 적정 소득 보장이라는 기준을 도입하여 화물운송운임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인상시킨다. 이를 통해 낮은 건당 운임을 만회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 과적, 과속 등을 감소시킬 수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운임 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운임제는 운임제도이지만 운임을 결정하는 과정에 이해당사자가 직접 참여하고 운임 결정 주체로 노동조합(화물연대)이 포함되면서 교섭제도의 성격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안전운임제는 노동자의 최저생계비 보장을 목표로 하는 최저임금의 성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화물운송의 비용과 책임을 아래로 떠넘겨 온 자본에게 화물운송 비용과 화물노동자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강제하고 전체 화물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해나가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운송원가 반영을 통한 화주 책임 강화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 이후 자본은 비용절감을 위해 화물운송을 외주화했으며 운수업체 역시 화물자동차를 구입하고 기사를 채용하기보다는 화물노동자와 운송 위탁계약을 맺어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화주(운수사업자)-화물노동자의 관계가 고용관계에서 계약관계로 바뀌자 화주는 화물운송비용에 들어가는 설비투자‧관리비용 일체를 화물노동자에게 전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화물노동자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한편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가 된 화물노동자들은 화물차를 비롯해 화물 운송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자비로 구입하고, 운송 과정에서 소요되는 유류비, 통행료, 보험료 등을 온전히 본인이 책임져야 했다. 화물운송시장에 처음 진입한 노동자들은 5-6년간 수입의 대부분을 매달 300만원에 달하는 차 할부금을 갚고 유류비를 대는데 썼으며, 유가가 오르기라도 하는 때엔 원가가 수입보다 커져 적자를 보며 운행해야 했다.
 
안전운임은 화물운송비용의 전가를 막기 위해 화물운송 원가비용 조사를 통한 이론운임 산정을 원칙으로 한다. 화물노동자가 화물운송과정에서 지불하는 모든 비용(차량할부금, 유류비, 통행료, 정비비 등)을 조사하여 건당 운임에 포함하기 때문에 그동안 화물노동자가 부담했던 운송원가를 이제 화주가 부담하게 된다. 또 운임을 산정할 때 운행시간 뿐 아니라 대기시간과 법정 휴게시간도 반영되므로 화물운송에 들어가는 모든 노동시간을 운임으로 보전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화주가 하청구조를 이용해 운수업체에 책임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화물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운임 뿐 아니라 화물운송의 최종 책임자인 화주가 지급해야 할 운임을 명시한다.
 

화주와의 직접 교섭을 통한 화주 책임 강화

 
화물노동자의 운임과 노동조건은 사실상 화주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운임을 인상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화주와의 직접 교섭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한국 법제도 상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단체교섭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자본의 운송부문 외주화로 인해 화주와의 직접 교섭이 매우 어려운 조건이다. 그러나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컨테이너‧시멘트 부문에서 운수사업자를 통하지 않고도 화주와의 직접 교섭이 가능해졌다. 안전운임위원회에 화주 대표와 화물노동자 대표가 각각 참여하므로 화주와의 직접 교섭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뻔히 아는 자본이 안전운임 교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할 리도, 화물연대를 쉽게 교섭상대로 인정할리도 없다. 제도 시행 초기에 안전운임 구성 및 단체들의 대표성을 둘러싸고 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화물연대가 전체 컨테이너‧시멘트 화물노동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단체로 참여해 위원회의 1/4을 구성(화주3, 운수사업자3, 화물연대3, 공익대표위원4)하게 되었다. 화물연대는 힘들게 얻어 낸 화주와의 직접 교섭을 십분 활용하여 운임뿐 아니라 노동조건과 화물노동자 안전과 관련한 여러 의제들을 협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주로 논의하는 쟁점은 운임과 관련한 사항이지만, 부대조항을 통해 노동조건에 대한 논의도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고시된 안전운임은 심야할증‧공휴일 할증을 통해 심야운행과 공휴일운행을 최소화하고자 했으며 컨테이너 검사‧청소와 같은 위험한 운행 외 업무를 화물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간 화물노동자에게 무급으로 시키던 세척‧컨테이너 교환 업무 등도 발생 시마다 별도의 운임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처럼 화주‧운수사업자‧화물연대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는 매년 화물노동자가 받는 –화주가 지급하는– 운임과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결정된 내용은 법에 의해 보장된다. 법적으로 노동자라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를 통해 사실상 단체협약을 쟁취한 것이다.
 

안전운임을 통한 화물노동자의 단결 강화

 
안전운임제는 물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화물운송을 외주화하고 화물운송비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자본에 맞서 화주의 책임을 강화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화물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지킬 뿐 아니라 화물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안전운임은 업체의 규모나 노동조합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화물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이는 화물노동자 전체의 운임수준을 동시에 끌어올려 평준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화물연대는 2002년 창립 이후 화물운송시장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다. 특히 화물연대가 튼튼한 지역과 업체에서만큼은 높은 수준의 운임 인상, 노동조건 개선 등을 쟁취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지역과 업체에서는 불공정한 관행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안전운임은 컨테이너‧시멘트를 운송하는 화물노동자라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운임을 적용하기 때문에 그동안 운임이 정체되거나 하락해왔던 미조직노동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안전운임을 매개로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이 (미조직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이는 노동자 단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안전운임을 만들고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힘을 확인한 화물노동자들이 화물연대로 모여들고 있다. 안전운임제를 통해 컨테이너‧시멘트 부문에 대한 운임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화물연대의 영향력이 커지자 화물운송시장에서 화물연대의 위상이 높아졌다. 안전운임 시행 이후 전국적‧조직적인 화물연대 가입으로 컨테이너‧시멘트 부문 조합원이 2배 이상 늘어났다. 안전운임을 매개로 한 조직화는 이후 다시 안전운임을 인상하고 지켜나가는 힘이 된다는 점에서 조직화와 제도화가 서로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안전운임을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 역시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역량을 강화한다. 안전운임을 통해 단일한 운임과 노동조건이 도입되자 지역별‧사업장별 집단교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화주와 운수업체는 화물노동자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화물연대의 교섭 요구를 회피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안전운임제 시행으로 화주와 운수업체가 운임과 노동조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지역과 사업장의 조건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교섭자리에 나와 화물연대와 협상할 수밖에 없다. 안전운임을 무기로 지역별 ․ 사업장별 집단교섭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지역본부의 교섭 및 투쟁역량이 강화된다.
 
또한 어떻게든 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반발에 맞서 현장에서 제도를 지켜내는 것 역시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화물연대는 지역별 투쟁을 통해 현장에서 안전운임을 지켜내는 한편, 국토부와 함께 현장점검반을 구성해 직접 업체에 대한 점검을 나가며 현장 감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화물연대는 현장에서 노동조합의 힘을 과시할 수 있으며 이를 지켜본 미조직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을 제대로 적용받기 위해 화물연대에 가입하면서 조직확대의 성과까지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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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는 그 자체로 완성된 제도라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화주의 책임을 강화하고, 화물노동자의 교섭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동조합의 전략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제도를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화물연대의 이후 행보일 것이다. 안전운임을 무기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투쟁과 전략을 만들어가는 화물연대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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