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9.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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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실리적' 조합주의- 공공부문 노동조합 발전전망을 둘러싼 쟁점을 중심으로 -

송유나 | 정책기획부장
'과잉'된 논의, 그리고 문제제기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 방향, 투쟁주체 형성을 둘러싼 논의가 무성하다. 1998년 이후 급격하게 운동주체로 부각된 공공부문, 이를 둘러싼 지금 정세는 한국사회 노동조합 운동이 처한 조직적·주체적 위기라는 조건에서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기간 노동조합 운동을 이끌어 왔던 대공장·지역집중 운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면서 주체 역량이 소진된 점은,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의 성장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 또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사유화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 전망과 과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1999년과 2000년 정부와 자본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광풍에 맞서 선도적으로 전선을 치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투쟁, 2001년 들어 사정없이(?) 불고 있는 노조민주화의 바람, 더욱이 주체의 성장을 넘나드는 '기대치의 성장'. 이것들은 향후 투쟁과 지도력을 둘러싼 다양한 과제 속에서 조직적·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문제는 상당한 관심사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한국노총 1호, 1번지 노동조합으로 자처하던 철도와 전력의 발전노조 민주화 투쟁이 도시철도와 지하철의 실질적 민주화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기간 공공부문의 투쟁이 설령 많은 한계와 오점을 남긴 투쟁이었다 해도, 공공부분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경제'위기', 사실상 자본주의 발전전망의 '위기'가 노동자·민중의 투쟁력과 지도력이 상승하지 못한 상황에서 운동의 위기로 전화하고 있는 가운데 노동운동, 노동조합 운동의 전망과 발전방향을 둘러싼 논의는 지난 몇 년간 치열한 논의주제였다. 사실상 상반기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의 전투성과 좌익성에 대해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은 바로 계급운동의 전망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하기에 현재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논의는 하반기 투쟁의 방향과 목표, 나아가 주체구성과 연대 문제의 하위범주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조합 운동의 방향과 노선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논의의 '과잉'을 촉발하는 원인이다.
그러나 현재 전개되는 논의의 '과잉'은 논의 자체의 질적 측면보다 양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을 모아놓고 '제 3노총' 건설의 추동력과 '새로운' 연대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과열이다1). 더구나 노사정위원회로의 복귀, 교섭창구의 확대,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가히 우려스럽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의 성과와 가능성에 대해 섣불리 기대하기 이전에 몇 가지 문제제기를 던지고자 한다. 첫째, 공공부문의 특수성인 전국적이자 거대한 노동조합의 규모와 양상,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국가 통제와 파업의 파괴력, 대정부 투쟁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조건 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둘째, 전국적으로 산개되어 있는 사업장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민주적·주체적 운영에서의 난제, 국가의 직·간접적 통제가 가져오는 개별 사업장에서의 노자 관계의 왜곡, 결국 노동조합 역시도 공기업의 관료적 운영 행태를 답습하게 되는 현실적 한계들을 어떻게 타파해나갈 것인가? 셋째, 공기업이 가지는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특성, 나아가 공공성 문제에 대해 전술적·전략적 측면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2) 이를 위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공부문이 가지는 특성과 위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계급적 의식의 현실적 조건과 발전의 가능성,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차분히 되돌아보도록 하자. 물론 이 과정은 위기라고 회자되는 노동조합 운동이 처한 조건이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한 경로일 뿐이다.


노동자 계급의식의 현재성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사유화 정책이 인원감축과 노동강도 강화, 노동조건의 급속한 후퇴라는 노동유연화를 핵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경향은 사적부문과 별반 다른 양상이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노동조합 운동의 중심축이었던 - 독점재벌·사적부문 노동조합3)의 경우, 몇몇 국내 독점재벌의 독점 심화의 경향, 중소기업과 제조업의 몰락, 초국적 자본의 진출이라는 다양한 조건에 처하게 된다. 사실 국내 자본의 합리화와 효율화를 위한 재벌 개혁과 경영합리화 정책에 대해 노동자 계급은 투쟁해나가기 어려웠다. 재벌개혁과 합리화 정책을 받아들이자니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에 직면하게 되고, 이를 거부할 명분조차 희박한, 그야말로 위기적 상황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부도라는 조건에서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 것인가, 공적자금 투입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내야 할 것인가? 대우그룹의 부도와 대우자동차 투쟁을 둘러싼 지난 2-3년간의 혼란함 그리고 투쟁전술의 변화는 사적부문이 처한 노동조합 운동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그 동안의 투쟁의 한계는 경제위기 이데올로기와 고통분담 이데올로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 부재에 기인한다. 나아가 경제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이 어떠한 투쟁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술·전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지도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지도력의 형성이라는 게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투쟁력에 기반하여 형성되고 강제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동전의 양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공공부문 운동은 최근 어떠한 변화의 계기에 직면해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인원감축과 노동유연화에 기반한 구조조정 정책으로 인하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오랜 시간 압박해 온 허위의식, 적확히 표현해 공복(公僕)의식에서 급속하게 탈피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다. 이러한 의식적 변환은 투쟁력의 확장과 노조 민주화의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공부문은 국가권력의 직접적 통제와 관리 속에서 개발 독재, 후진국 자본주의 발전의 순기능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공공부문의 공적서비스가 대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공적 서비스, 소위 공공성이라는 측면은 자본의 원활한 순환과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국가의 무기였다. 또한 공공부문이 처한 조건은 국가권력의 정치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공기업 노사관계를 직접적으로 종속시켜 왔다.
한국사회 노동운동이 전투적 성향으로 발전한 양상은 역으로 공공부문의 민주화와 투쟁력을 압박하는 조건으로 기능했다. 즉, 정부와 자본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통해 노동조합 운동의 전투성이 공공부문으로 이전되는 길을 철저히 차단시켜 나갔다. 이것이 공공부문 노동조합 민주화의 경로를 느리게 만들어왔던 요인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경우, 협조적·타협적 운동의 길이라는 손쉬운 길에 노출되어 있었다. 공기업의 관료적 지배와 정경유착 등의 폐해는 공기업 노동조합 운동에서 스스로 모방하고 있는 관성화된 경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공공부문 내에서 이러한 노사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계급투쟁이 현재의 공공연맹을 건설해 왔고, 최근 들어서는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은 '상대적'으로 정부의 직접적 관리와 분할 통치 전략이 관철되는 '사각지대'로 존재해 왔다. 이렇듯 공기업의 기형화된 노동조합 운동과 내부적 관행은 공기업 노사관계를 협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노동조합 운동에서조차 드러나는 일종의 가부장적, 군사 문화적 토대는 노동자간 관계, 경영진과 현장관리자의 관계 속에서조차 되풀이된다. 공기업 노동자들이 주입 받아온 공복의식은 자본주의 수호와 민족국가 유지를 위한 의무감과 노동자들의 헌신성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노동자 의식은 구조조정과 사유화 노동의 유연화 정책에 맞부딪히며 상당히 모순적 경향으로 발현되고 있다. 현재 이 '의무감'과 '헌신성'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서는 새로운 투쟁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집중된 포화, 급격한 노동조건의 악화는 더 이상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철통 밥그릇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와 자본의 억압적 통치기제는 단지 기획예산처 지침 하나로 하달되며, 결국 노동조합이 구조조정 관철을 위한 모범사례 창출의 선봉대로 서게 했다. 명예퇴직,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도 예외적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생존권의 위협에 생생하게 노출되어 나갔다. 더욱이 공공부문 노동자로서 누려왔던 '호황'의 계기는 부도덕한 노동자, 비효율적 노동자로서 낙인찍히는 과정에서 사라져 갔다. 이것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개별적·집단적 저항 의식의 급속한 확산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급속히 그들이 가졌던 허위의식 -공복의식과 애국주의-에서 벗어나 노동조합 운동의 민주화와 실질적 투쟁을 일구는 주체로 서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사유화 정책이 가지는 공공성의 후퇴와 자본주의 전망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사회적 연대, 연대의 확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고리이다. 또한 공공부문이 가지는 정치적 민감성은 소시기 노동자 투쟁의 한 조건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어떠한 연대, 무엇을 위한 연대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고 있다.
1999년과 2000년으로 이어졌던 전력산업 구조개편 투쟁을 기억해보자. 민영화·사유화 논리에 대해 전력노동자들의 자신감은 박약했으며, 자본의 물리적 공세에 논리적·정책적으로 열세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더욱이 투쟁 지도부의 불안정성은 함께 투쟁하겠다고 나선 주체들에게조차 투쟁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게 했다. 전력요금 인상, 전력주권 소멸, 전력이라는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지배. 이에 대한 대중적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한국사회가 가지는 '민족주의'적 편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공부문을 매각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경향의 반노동자성, 나아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의미에 대해 노동자들이 판단하기 이전에, 전력주권의 상실이라는 한 요인만이 부각되었다. 이 속에서 당연히도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급속히 결합되었다. 이러한 투쟁 기조의 불분명함은 투쟁의 한계로 드러났으며,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 투쟁의 발전에 모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주도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자본 스스로 활용해 왔던4) 공공성의 문제가 자본의 생존을 위한 '재편'과정의 한 '시기'에는 자본에게조차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낮은 공공요금, 보편적 서비스, 국부유출에 대한 반감 등이 대중적 정서 속에 이미 삶과 생존권의 문제로 내재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안양·부천 열병합 발전소 매각으로 인한 지역난방 요금의 급속한 인상은 해당 시민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공공성의 문제가 소위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 혹은 지역적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공성의 문제는 여전히도 양날의 칼이다. 뒤늦게 통신요금 인하 투쟁에 나선 시민단체가 그 근본적 원인인 통신산업 사유화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여전히도 '착한' 자본을 기대하면서 '순진하게도' 요금인하만을 주장하듯이 말이다. 구조조정과 공공부문의 사유화, 이를 위한 전제인 노동에 대한 공격을 모조리 허용하고 나서야, 뒤늦게 자본이 조금만이라도, 한 영역에서라도 '착해지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공공서비스를 위해 노동자계급만의 헌신성을 요구하거나 자본의 '효율성' 논리를 전제한 채 공공성을 외치는 오류는 공공성 투쟁이 가지는 현재의 계급적 한계5)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리적 조합주의의 문제점6)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의식은 한편으로 투쟁력으로 전화하는 경로를 밟아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을 잠재적으로 용인하는 경로를 밟기도 한다. 이는 상당히 모순적인 상황이다. 애국주의로 인해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으로 나섰지만, 그 애국주의로 인해 노동자계급 투쟁의 발전을 위한 한 걸음에 주저하기도 한다. 공공부문의 사유화와 구조조정 정책의 문제점, 공공부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참여적·협조적 노사관계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적 경향이 발현되는 원인은 바로 노동조합 운동을 '실리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개별 집단의 실리 창출의 영역으로 사고하는 순간, 이 실리적 조건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고민만이 과도하게 발전된다. 더욱이 공공부문과 같이 현재 자본주의 조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대정부·대정치권 투쟁의 가능성이 일견 열려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실리적' 고민은 더욱더 나래를 편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새로운 주체로 지나치게 격상시켜 평가한다거나, 공공부문이 가지는 현재적 한계를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양 편향은 극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양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근 공공부문이 보여주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의 성숙과 민주화의 과정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며, 이것이 더욱 연속적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고민은 노동조합 상층부에서 만연하고 있는 '실리적' 경향은 무엇이며 아래로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교섭력의 확장과 집중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대정부 직접 투쟁의 필요성, 그리고 가능성을 점치다보니 공공부문은 그야말로 중요한 투쟁대오였다. 그러나 이 대정부 투쟁의 의미는 정부와의 교섭창구의 확대, 실질적 교섭창구로써 노사정위원회의 참가 주장7)으로 상당히 왜곡되고 있다. 즉 정부가 직접 사용자이면서도, 사실상 사용자가 분산되고 교섭구조 역시 파편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주요한 대화채널이라는 주장이다. 노사정위를 배제 혹은 해체시키자는 주장은 공공부문에서 교섭창구를 해체시키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적 합의주의'와 '노동 참여적 노사관계'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노동의 배제와 착취강도의 강화를 통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관철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와 노동참여적 노사관계가 가능할 것인가? 이미 우리는 합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고통전담의 과정을 지난 몇 년간 충분히 경험해 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자간 형성되는 제 조건은 철저히 계급관계의 힘을 반영한 산물이다. 더욱이 자본의 관리 하에 있는 노동자·민중의 소시기 판단조차 대중적 동력에 기반하지 않는 한, 자본과 정치권력과 대등하게 대립할 수 없다. 자본과 권력이 취하는 가장 '인간적'이라 보여지는 단 하나의 몸짓조차, 시혜라고 베푸는 그 어떠한 정책조차도 자본의 이해관계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최근 제2의 경제위기설에 휘말려 현 정권이 내놓는 경기부양책은 자본 작동을 위한 최소한의 단기적 경기부양책이며, 그조차도 정치적 상황에 구속되어 있는 허구적 수사일 뿐이다. 세련되고 발전된 합의구조를 가졌다고 '기대'되는 서구유럽의 역사를 보더라도, 노자간 합의구조는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유효수요의 확대, 소비의 확대를 통해 노동력 재생산의 물적 토대를 확장시킨다는 원리 하에서 가능했다. 물론 이것 역시도 노동자 계급의 지난한 투쟁을 통한 결과물이었다. 자본은 원활한 축적을 위해 '본능적' 처사를 취하며, 그 처사조차도 자본 발전의 호조건·성장국면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적 힘에 좌우되는 '합의'라는 특수한 상황을 설정한다 해도, 이에 대처하는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단결과 능력 여하에 따라 그 특수한 상황의 합의 역시, 반민중적·반노동자적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그 합의는 재벌개혁과 정리해고를 맞바꾸는 합의였다. 재벌개혁이라는 자본의 순기능적 발전을 위한 노동유연화에 합의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찍어준 것이며, 이것이 여전히 노동자들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합의기구를 둘러싸고 안이냐 밖이냐, 구성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쟁점을 형성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동조합 운동을 놓고 '교섭 불가'라는 극단적 처방을 내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조합 운동은 기업별이건 아니건 이미 합의·협의·협상의 테이블이 전제되어 있다. 문제는 합의 자체가 강요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급적 인식이다. 투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교섭력의 증가와 이를 위한 고민은 결국 상층 정치 강화를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노동조합 운동의 민주적·주체적 운영을 가로막게 되며, 결과적으로 대중적 투쟁력의 쇠퇴로 이어진다. 조직적 불신과 노동조합 내부의 상·하층간 괴리는 교섭주체인 노동조합 상층부로 권력을 집중시키면서 노동 대중과의 간극만을 넓히게 된다. 더욱이 현재처럼 대중의 투쟁력과 지도력이 합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불신의 고리는 더욱 커진다. 물론 임금인상 투쟁에서 대중적 투쟁력과 상층 교섭이 별개 문제라고 볼 수 없듯이, 전체 노동운동 차원의 상층 테이블,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에서의 합의 테이블이 일정한 '조건' 하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적 조건은 이 교섭 테이블에서 노동자들의 주장을 이빨 빠진 호랑이의 호령만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공공산별-->양 노총의 연대-->제 3노총 건설에 대하여

노동조합 발전 과정에서 기업별 노조 체계가 성숙해온 것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일궈나가기 위한 과정에서 특수한 조건이었다. 동일하게도 산별 노조 역시 계급운동의 발전을 확대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전화시키는 조건을 진일보시켜 낸다는 점에서 유리한 '조건'일 뿐이다. 현재 공공부문의 투쟁 역시도 이 기업별 노조 체계의 한계 속에서 꾸려온 성과이다. 기업별 노조는 만악의 근원이 아니며, 기업별 노조의 대안으로 산별 이행을 언급하는 것은 조급한 대립이다. 산별이라는 조합운동의 발전된 지도적 구심을 형성해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실리주의'적 전망과 결부되어, 이를 위한 대정부 교섭력 확보, 교섭력 확보의 전제로서의 노동조합의 양적 연대의 확장, 양 노총을 경유하지 않은 새로운 주체 형성, 결과적으로 공공산별과 제3노총 주장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이 주장은 그 동안 민주노총의 전투적 성향에 대한 비판, 국민·시민과 함께 하는 노동조합 투쟁전술의 변화8)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산별 이행, 정확히 표현해 노동운동의 계급적 발전은 민주노조 운동진영으로 견인되는 노동자들의 수와 양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 계급의 의식적·계급적 발전, 이를 위한 개별 투쟁의 소중한 성과가 모아져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산별 이행을 둘러싸고 진행된 논의의 역사를 보면, 양 극단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투쟁을 잘하면 건설된다'거나, 양적 연대를 통해 대정부 교섭창구를 확대하고 힘을 키우면 된다는 식의 대립이 그것이다.
하지만 산별은 기업별 조직형태에서 조금 더 발전하면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차이를 갖는 조직이다. 산별이란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투쟁하는 조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계층적 분할 정책을 극복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에서조차 확연히 드러나는 다양한 요구와 불만을 노동자 '계급'의 요구로 상승시켜내야 하는 조직이다.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 내, 동종업종 내에서 획득되는 의식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의식과 결합을 요구하는 조직이며, 이를 위한 투쟁의 산물이다. 산별노조로의 이행은 계급조직으로서 노조의 성격을 가장 충분하게 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조직적 성숙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별 단결→ 지역별 단결→ 업종별 단결→ 산업별 단결로 나아가는 합법칙적이고, 수학적인 경로는 가능하지 않다.
업종별 공투를 잘하고, 다양한 연대투쟁을 '개발'하는 것으로 산별 요구를 모아내자는 입장은 산별노조를 산업별·업종별·직업별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이해와 요구에 근거해 투쟁하는 조직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산업별 이해란 무엇이며,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공공부문이 에너지 산별을 만들고, 산별 교섭을 진행할 때 산별의 공통적 요구는 무엇인가? 공공부문의 경우, 이 산별 이해라는 것은 대정부 직접 투쟁의 용이함과 공공성의 문제인가? 산별 요구는 계급적 요구이어야 한다. 개별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의 '평균적'이고 '공통적'인 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기업별 노조 체계가 조합원의 범위를 특정기업 범위 내로 한정시키며, 이 틀 안에 노동자의 계급적 자각을 묶어놓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이 때문에, 자본의 노동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소위 기업별 의식을 만연하게 만드는 한계를 지닌다. 일상적 투쟁이, 생존권을 위한 경제투쟁이 기업 내로 갇히며 기업별 투쟁 속에 공동투쟁이 분리되며 파편화된다. 자본 대 노동의 전선, 구조조정 저지 전선이 아닌, 개별기업 노동자들의 전선으로 분산되며 개별 노동자들끼리의 대립으로 현상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부도에 처한 사업장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둘러싼 논쟁은 어떠했는가? 부도사업장 노동자들과 그 부도사업장을 살리기 위한 구제금융의 출처인 금융노동자들간의 입장 차이 속에서, 아니 이 입장의 차이를 악용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자 했던 자본의 논리 속에 휘둘리고 말았던 최근의 경험이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지 않은가?
단적으로 김대중 정권 퇴진을 내걸고 진행되었던 상반기의 총력투쟁 전선을 돌아보면, 투쟁의 시기를 맞추기 힘겨웠고, 공통된 요구안을 내걸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상반기의 투쟁전선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별 건설의 필요성은 공감대가 넓어진다. 그러나 산별 건설만이 해법이라는 식의 주장 역시 조급하다. 산별이건 업종별이건 동일노동·동일임금 관점에 입각해 공동의 요구를 내걸 수 있어야 하며, 이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의 공동투쟁이 갖는 사회적 힘을 투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철강·석유화학·전자 등 산업별 연관효과가 큰 단위에서 교섭시기를 통일하고 교섭기간과 쟁의발생기간을 단축하여 자본측과 공동교섭의 요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공공부문의 경우도 사유화 저지 등 공공부문의 투쟁과제에 입각해 개별 사업장간의 연대기풍을 세우고, 제대로 된 투쟁을 한 번이라도 일구어내야 한다. 이것이 그 어떤 주장보다 먼저 가야 할 길이다.


공공성 쟁취, 국민의 지지와 대시민 연대

그 동안 진행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대해서 여러 가지 평가가 있다. 앙상한 반대투쟁으로 비춰지게 했고, 공공성 쟁취를 위해 대국민적·대시민적 연대 투쟁을 하지 못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과 시민을 볼모로 한 투쟁을 전개했다는 비판의 목소리9)가 거세다. 과연 노동조합이 경제적 투쟁에 매몰된 채 공공성 투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던 것인가? 공공성을 위한 투쟁은 소홀한 채, 생존권 투쟁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시민적·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고 사회적 연대를 이루지 못했던가? 단적인 예로 전력노조가 경제적 이익을 내세웠기 때문에 결국 파업을 접었고 지지받지 못했던가? 전력노동자들은 공공성 쟁취와 전력주권 사수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전력노조 지도부의 동요함과 혼란함에 근거했고, 결정적인 한계는 노동자들이 왜곡된 애국주의와 공복의식으로 인해 이 지도부의 무력함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전력이건 통신이건, 철도이건, 그 어떤 노동자도 대중을 볼모로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간악한 발상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생존권 쟁취를 위해 나아가 공공성 쟁취를 위해, 파업이라는 전술적 무기를 채택할 뿐이다. 파업으로 인한 불편함을 선동하고, 이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정권과 자본이다. 이런 선동을 통해 노동자 투쟁의 의미를 해체시키고, 결과적으로 투쟁을 말살시키려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힘'이며, 그들의 전술이다.
이런 식으로 공공성을 해석하다보니,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논리10)는 공공부문의 '자폐성'을 극복하고 헌신하자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공공성의 수혜자이자, 연대의 대상으로서의 시민·시민사회 영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할 것인가? 공공성을 위해 공공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가장 헌신적이어야 한다. 공공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공공성의 수혜자인 시민·국민의 그 '단기간의 불편'을 두려워해야 하며 착취강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투쟁의 시기, 파업의 시기에 직면하면, 공공성 확대를 위해 연대해야 할 '친구'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착취를 용인하고 강화를 주장하는 적이 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공공성 구현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체현된 공복의식을 되살려 시민들에게 구걸해야할 판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생존권과 사유화 저지 투쟁의 상관관계, 구조조정 저지와 노동권 사수 투쟁의 필연성에 대해 인식해 나간다면, 공공성 투쟁에 내포된 문제점은 제거해나갈 수 있다. 공적서비스의 확장이 노동자계급의 유연화와 희생에 기반하지 않은 것으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공세적 투쟁으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노동조합이 스스로 인식의 폭을 확장시켜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시민사회와의 연대, 사회적 연대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또한 공공성이 노동자의 생존권과 나아가 자본주의의 파행적 전망의 길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민적 연대, 사회적 연대의 주체들도 깨달아나가야만 한다. 이를 전제하지 않은 채 제기되는 '공공성과 시민적 연대'는 공공성을 위해 노동자들이 시민들에게 구걸하고, 시민들은 공공성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모순적 지경에 처하게 될 뿐이다.
결국 공공성은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생존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 계급의 전망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생존권, 국가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력의 문제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현재 자본의 위기가 가져오는 자본 재편의 방향 속에서, 노동자 계급이 수세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공공성은 자본주의 재편의 최대 목표치인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생존권을 위해 최후의 보루로서 방어해야 할 '전술적' 진지일 뿐이다. 단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기득권 형성을 위해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위해 외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자본 재편의 방향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최소 권리의 축소에 대한 방어와 진지의 구축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투쟁을 재건해야 할 정세적이자, 전략적 수위를 함축한 '영역'인 것이다.


글을 마치며

얼마 전 이태리 제노바 투쟁은 反세계화라는 추상적 투쟁 문구가, 그 자체로도 전세계 민중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 투쟁을 충분히 총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국제적 계급 연대투쟁의 현실 가능성 역시도 보여주었다 할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 운동지형은 반세계화 국제연대 투쟁 대오와는 사뭇 달리, 자본과 노동의 완충지대로서의 시민운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의 교란요인이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조직된 노동자대오의 생존권 투쟁의 격렬함이 살아있다는 것은 또 다른 역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3-4년간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위기 담론에 긴박당한 나머지 노사정위원회라는 얼토당토않은 노동자계급 제도화 담론에서 헤매기도 했고, 타협주의와 코포라티즘이라는 노선에도 기웃거려 본 바 있다. 하지만 2001년 민주노총의 김대중 정권 타도투쟁 결의는 그 슬로건 자체의 전술적·전략적 함의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 차이를 떠나, 노동자계급이 선택할 길이 반세계화, 신자유주의 타파,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대정부·대자본 전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대중적 깨달음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위기라는, '자본주의의 몰락'이자 '노동자 계급운동이 고사'할 수 있는 조건에서 노동자 민중은 생존을 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이 선택은 노동자계급의 '조직된' 대오를 강화하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새롭게 투쟁 주체로 세워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부여한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은 자신의 계급적 입장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현장 내부로부터 현장 통제를 저지하는 투쟁을 차분히 그리고 치열하게 시작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공공부문을 주목하고 있는 제 운동의 경향적 흐름이 전체 운동의 발전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실질적 노동조합 민주화의 바람으로 이어지는 결절점이 될 것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저지 투쟁에서 공기업 노동자들이 점하고 있는 위치와 과제가 있다면, 이것을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극복의 계기로 전화시켜내야 한다. 비정규직·여성노동자들이 최악의 조건에서 싸워나가고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향후 투쟁전선의 주체로 서나갈 것이고 연대의 동지라고 한다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공부문이 '주목'받고, 주목받을 수 있는 '조건'을 향후 진정한 연대의 확장을 위한 버팀목으로 만들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PSSP


1) 지난 8월 21일, <공공부문 노동조합 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준비위원회에는 수많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함께 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전력·통신·지하철·도시철도·정투연맹 등이 핵심 주체였다. 노동조합의 발전적 전망을 위해 함께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정책적 고민과 나아가 당면한 투쟁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일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투쟁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 이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이들 주체들을 신뢰하고 쉽게 연대의 손을 내밀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을 몇몇 집행부로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러기에 몇몇 덩치 큰 노동조합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주체 형성의 한 걸음이라 기대하기 이전에, 바로 그 덩치 큰 노동조합이 조합원 대중들로부터 어떻게 다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노동자 투쟁 전선에 함께 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 동안의 투쟁에서 명확히 평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2)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사회진보연대 공공팀에서 발간 예정에 있는 <금융자본의 세계화와 좌파의 경제 전략(가제)>과 <외환금융 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가제)>에서 진행해보는 것으로 하자.
3) 여기서 사적부문과 공적부분을 과도하게 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공적부분의 구분선 역시 불분명하다. 공공성이라는 것을 기업형태나 국가와의 관계에서 판단할 것이냐, 혹은 공공재라는 기준에 의거하여 판단할 것이냐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의 기준을 가름하는 불필요한 논의가 발전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공공성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국가에 대한 통제력 차원에서 '확장해야 할'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와 가름선은 어찌 보면 무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이 글에서 언급하는 공공부문이라는 개념은 노동조합 운동의 현재적 조건에 기반한 표현이라고 이해하길 바란다.
4) 국가주도 하의 단기 고도성장 전략은 독점자본의 육성과 집적을 위한 물적 토대를 요구한다. 이것은 국가가 자본축적 활성화를 위한 기반조건을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저임금 노동력의 무한정 확보와 철저한 관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경우, 파쇼적 군사정권을 합리화시켜내는 기제로서 이 공공성은 '허구적'으로 주입되었다 할 수 있다.
5) 최근 공공성 투쟁이 그야말로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의약분업과 교육개혁 문제에 있어 시민사회 역시도 주저없이 공공성이라는 단어를 채택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도 공공부문의 사유화나 노동의 유연화 정책에 대해 발언하기는 주저하고 있다. 소위 '노동' 사안에 발언하기를 꺼려하며, 심지어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익집단의 투쟁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것은 공공성의 문제가 무차별 대중의 보편적 삶의 문제와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 나아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반민중성·반노동자성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철저히 무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최근 의약분업 문제와 관련한 연대기구에서 사회보험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관했던 것은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6) 앞서 예를 들었던 토론회, 공공포럼, 노동조합 운동의 핵심 정책단위인 한 연구소 등에서 공공부문의 노동조합 발전전망과 과제에 대해 최근 많은 발언과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주장의 일관된 맥락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공공부문 운동의 성장-->대정부 투쟁진지의 성장-->교섭력의 집중과 확장·지역적, 업종별 노사정위원회 참여-->양 노총을 '경유하지' 않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과 공공산별의 건설-->시민적·대사회적 연대의 강화.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 '참여적 노사관계', 그리고 '정치적 노동조합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등의 '주의'들이 결합된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노동조합 운동의 발전,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의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전망'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노동조합 운동을 지극히 '실리주의'적인 것으로 사고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전체 운동에 어떻게 복무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조건과 상황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채 그에 따른 전망만을 제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기에, 교섭구조로서의 '노사정위원회', 교섭력 확보를 위한 전제로서의 새로운 주체 형성, 그리고 연대 문제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에 대해 평가해야만 한다.
7) 가령 다음과 같은 주장이 그것이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는 그것이 노동 배제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전투적으로 대응하였다는 점이다. 노동 참여적이며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구조조정은 줄곧 노동조합이 주장하여온 바이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노동정치와 노사관계 전략을 특징으로 하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해서는 수상쩍다는 인식을 넘어 해체까지 주장하고 나서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조합의 관점에서는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의 한 통로이자, 투쟁의 또 다른 무대이다. 기업별 노사관계만이 존재하는 노동계에서 노사정위원회는 '공장 밖'의 세계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며 파업만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면 노동문제를 둘러싸고 노사관계의 주체들이 '대중 앞에서 최고의 논리를 동원하여 부닥치는' 투쟁의 또 다른 현장이다. 더욱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에게 노사정위원회는 '사용자와 만나는' 실질적인 교섭의 장이기도 하다. 또한 노사정위원회는 노동문제를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의제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징검돌을 제공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란 요컨대 거시적인 충격에 대해 단위 기업별로 동일한 사안을 반복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경제일반에 대해 조정된 적응을 제공하는 기제인 것이다." 박태주, <공공부문노동조합 발전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p. 43
8)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전투적 경제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개별 기업별 노동조합으로서는 단기적 이익, 즉 임금이나 근로조건과 같은 경제적 보상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위한 방법은 노사 협력주의로 기울거나 아니면 파업을 택하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조직이 '공장 밖'을 나서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을 조건짓는 사회경제적 체제'에 대한 인식은 사치였을 뿐 아니라 '공장 안의 이슈'를 사회화 시켜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파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적 경제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이중화와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 모험주의적 투쟁을 가져왔으며 결과적으로도 '시지프스'의 도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앞의 자료집 p. 38
9)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데 주력한 나머지 현재의 고용, 임금, 복지의 유지에만 집중하는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매몰되고 공공이나 여타 사회단체(NGO)와 결합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지 못하였다. 다만 전력노조에서는 전력의 분할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범대위를 구성하였으나 그 역할은 보조적인 수준에 머물렀으며 전력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고 경제적 이익지키기에 나서는 순간 사실상 와해되고 말았다. 이는 전반적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갖는 특성상 공공의 필요를 전면에 내세우고 대중투쟁을 기본으로 사회단체와 연대를 구축하고 나아가 시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전술로서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파업투쟁 이외의 다양한 투쟁전술의 개발에도 실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공부문에 걸맞는 투쟁형태를 개발해내지 못했으며 조직력의 뒷받침이 부족한 가운데 전면 투쟁 구호의 전면화는 '대중을 볼모로 잡겠다는'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즉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파업은 사용자에게 경제적 타격을 미치기보다는 정치적 동원으로서의 성격을 띠며 이는 연대의 형성을 필수적으로 요구함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김태현,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현황과 발전방향', "공공포럼 1차 발제문" p. 21
10) "… 즉,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자기 혁신의 기조로 삼아야 하며… 이것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이 공공성의 정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존스톤은 (1) 공공부문에서의 단체 행동은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요구를 '대중의 이익'이라는 틀에서 규정할 수 있는 능력 (2) 노동조합이 단체 행동의 과정에서 공공서비스의 이용자, 타 노조, 정치인 등 사회운동과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서구의 많은 공공 노동조합들은 임금인상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동시에 '공공서비스의 질'의 유지 또는 향상을 구호로 내거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노동운동은 '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리그'에 몰입하는 일종의 '자폐증'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공공서비스의 제공이 갖는 정치적 성격을 고려할 때 대중의 지지와 이를 위한 사회단체와의 연대는 중요한 고리로 나타나며 이 과정에서 '공공성의 실현'은 핵심적인 과제로 나타난다." 앞의 자료집, p.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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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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