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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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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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란 열사의

죽음에 비쳐본

한진 | 보건복지민중연대
<b>0. 들어가며</b><br>

최옥란 열사가 쥐꼬리만한 수급권과 아들의 양육권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숨진 것이 지난 3월 26일이었으니, 그 후로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3월 28일 발인을 마치고 예정되어 있던 노제와 장례식은 경찰의 폭력으로 인해 치뤄지지 못하였지만,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추모식을 지내며 다시 한번 열사의 뜻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최옥란 열사는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그렇기에 살아남은 우리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고 하겠다. 열사가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폭력적으로 가로막은 경찰의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하고, 열사가 그토록 보장받고 싶어했던 이동권․생존권 쟁취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최옥란 열사의 추모 홈페이지(http://okran.jinbo.net)를 가보면 남은 이들의 이러한 결의를 확인할 수 있다.
최옥란 열사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상기와 투쟁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 중에서 우리가 이어가야 할 주요한 사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최옥란 열사가 작년 12월 농성 중에 냈었던 헌법소원을 재청구하는 일이다.
헌법소원의 내용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에서 생계급여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를 산출하는데 있어 장애가구 등 가구유형별 특성이 인정되어 있지 않음으로써 받는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이 사망하였을 경우 그 청구인의 사망과 동시에 청구된 헌법소원 또한 소실되어 버린다고 한다. 따라서 최옥란 열사가 살아 계실 때 이루고자 했던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 헌법소원을 재청구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은 현재의 기초법이 제정 당시 취지와는 다르게 실질적으로 민중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최옥란 열사가 냈던 헌법소원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기초법의 문제점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b>1. 기초법은 왜 민중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가?</b><br>

생산적 복지와 그의 실질적 구현태인 기초법은 김대중 정부의 야심작이다. 기초법은 제정 당시 이전의 생활보호법에 비해 권리개념의 도입과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완화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복지정책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회복지관계자와 복지의 실질적 주체인 민중의 기대를 모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수혜자의 명칭도 ‘생활보호대상자’에서 권리를 강조한 ‘수급권자’로 바꾸었고 연령기준 등을 폐지하고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게 생활하는 모든 저소득층 가구에게 국가가 의무적으로 생계를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전의 ‘생활보호대상자’보다 ‘수급권자’는 숫자가 늘어나지도 않았고,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열악해졌다. 또한 연령기준은 폐지되었지만 더욱 많은 기준들이 독소조항이 되어 기초법 내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기초법이 시행되자마자 2명의 수급권자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였고, 최근에 돌아가신 최옥란 열사를 포함하면 기초법의 제한된 보장 때문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멋진 포부로 기대를 불러모았던 기초법은 왜 민중의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가? 몇몇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취지는 좋았으나, 시행과정 상에 존재하는 약간의 착오와 아직 제대로 법안이 자리잡지 못함으로 벌어진 일시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기초법의 취지와 실행간에 애초에 존재했던 모순이 드러나고 있는 것인가?
현실은 후자에 가깝다. IMF가 민중에게 요구한 것은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전가였다. 일자리를 잃거나, 열악해진 노동조건을 감수하거나, 줄어버린 임금을 감내해야 했다.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같다. 정부와 자본은 이러한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했지만, 실질적으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의 물질적 가용량은 없었다. 이에 획기적인 복지정책을 시행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선점하면서, 실제로는 수많은 독소조항을 통하여 수급권자의 수와 생계급여의 수준을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조절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독소조항 중에서 최옥란 열사에게 특히 절박했던 것은, 기초법에서 장애가구 등 가구유형별 특성이 최저생계비를 산출하는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옥란 열사가 살아 계셨던 2001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진행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되었다.

<b>2. 최옥란 열사의 헌법소원 내용</b><br>

이상과 같은 점에서 피청구인이 결정, 공표한 2001. 12. 1.자 “2002년도 최저생계비”는 청구인과 같은 장애인 수급권자에 대하여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을 뿐 아니라 장애인에게 소요되는 추가적인 최저생계비를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 제11조의 평등권 조항을 위반한 것이며, 나아가 장애인에게 보장된 헌법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위법한 공권력행사임이 분명하므로 위 규정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며 반드시 “장애인 가구 등 가구별 특성이 고려된 내용”의 최저생계비로 다시 개정,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청구인의 이 사건 “최저생계비 규정”의 위헌을 확인 받고자 이 사건 청구에 이르렀습니다.<br>
<최옥란 열사의 헌법소원 결론 내용>

기초법에서 최저생계비는 중소도시 4인 표준가구를 기준으로 산출된다. 생계급여는 수급권자의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칠 경우, 그 부족분을 보전해주는 보충급여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문제는 최저생계비 자체도 워낙 낮게 책정되어 있지만, 그나마도 지역별․가구유형별 특성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소도시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에 사는 사람의 경우에 전세비 등 비용이 더 추가되는 부분에 대한 고려가 없다. 가구유형별로는 장애가구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00년 장애인실태조사”만 보더라도 장애인가구는 보장구․의료비․간병비․특수교육비 등의 추가 지출이 장애유형․등급별로 다양하나 평균적으로 월 157,900원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올해 들어 장애인 수당을 5,000원 인상하여 5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장애등급에 따라 제한이 있어 모든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수당도 아니다. 즉, 대도시에 사는 장애인의 경우 최저생계는커녕 생존을 위협받는 수준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최옥란 열사는 현재의 최저생계비 산출 기준이 장애인에게 있어 ‘행복추구권,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했다는 내용으로 헌법소원을 내었던 것이다.

<b>3. 나오며</b><br>

물론, 이 헌법소원에 제시된 내용말고도 기초법에는 수많은 독소조항이 있다. 최옥란 열사가 목숨을 걸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이러한 독소조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노동능력과 상관없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PSSP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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