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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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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의

실패한 프로젝트

정세권 | 기자
지난 3월 15일, 서울지방법원 제12단독(판사 박광우)은 ‘화염병 추방․화재예방 시민연합’의 대표 홍00씨가 민주노총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홍씨는 작년 5월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절 집회 당시 “근로자는 산업역군,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우리 모두 힘을 하나로!“, ”고통받는 영세서민들을 위해 화염병사용만은 멈춰주세요. 경찰도 평화적 대응을 꼭!“, ”우리 모두의 안정을 위해 평화적 집회와 대화로 해결을!“이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차량에 붙이고 다니다가 집회 참가들에 의해 현수막이 찢겼다고 주장하였다. 홍씨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민주노총을 상대로 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서울지법은 ”민주노총은 집회 주최자이긴 하지나 집회 질서유지 의무가 이러한 행위를 제재할 의무까지 없으며, 민주노총은 공동불법행위자가 아니므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b>‘법’에 가로막힌 ‘법대로’</b><br>

월드컵 및 아시안게임 등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에 즈음하여, 정부는 거리미화를 명분으로 노점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추진하는 한편,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이라 한다)의 개악을 통하여 민중의 발언과 행동을 처음부터 봉쇄하고 있다. 나아가 검찰과 경찰이 나서서 집회․시위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법대로’ 소송할 것을 유도하기까지 한다.
작년 6월 18일 대검 공안부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손해를 입은 상인이나 시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일선 검찰청에 ‘불법집단행동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소송을 지원하기로 밝혔다. ‘정부의 엄단방침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집단행동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은 노조가 집단행동에 따른 손해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상의 책임도 끝까지 물을 방침’도 더불어 천명(?)하였다. 또한 같은 날 경찰은 ‘극심한 교통혼잡을 초래해 경제․사회적 손실을 가중시키는 대학로 등 서울 도심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는 관련 법률을 엄격히 적용해 신고단계에서 금지하거나 제한할 것’이라고 하였다. 위 판결은 이와 같은 방침이 발표된 이후 처음으로 민주노총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판결로서, 집회․시위를 막기 위한 검․경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법’에 의해서 실패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b>‘법’은 사라지고 음모와 억측이 난무하다</b><br>

이번 사건의 청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찰의 기획에 의하여, 법률구조공간의 법률적 지원을 등에 업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법률구조공단에 대해서 살펴보자. 법률구조공단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모르기 때문에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자에게 법률구조를 함으로써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법률구조법 제1조). 이는 법률구조공단이 수익사업을 하거나 정부의 정책을 보조하는 기구가 아니라, 법률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공적인 단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주된 경비 역시 국민의 세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법률구조의 요건은 엄격하게 선별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또한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농어민, 월평균 수입이 150만원 이하 근로자 및 영세상인, 6급 이하 공무원, 생활보장 수급자, 외국인 근로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공단규칙 中).
민주노총의 집회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홍00씨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법률적 논리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개인의 민사소송일 따름이다. 이를 법률구조공단에서 지원하고자 한다면 마땅한 그 이유가 있어야 함에도, 이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다. 더군다나 홍00씨가 관세청 공무원으로 24년간 재직하다가 퇴직한 자로서 법률구조 대상자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공적인 단체가 소송을 지원해야 할 이유가 없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이번 소송은, 검찰 감독, 홍00씨 주연, 법률구조공단 조연으로 만들어진 한편의 코미디일 뿐이다.

한편 홍00씨는 민주노총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근거로, 집시법 제14조 질서유지 의무를 들고 있다. 제14조는 ‘①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집회 또는 시위에 있어서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 ②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집회 또는 시위의 질서유지에 관하여 자신을 보좌하게 하기 위하여 18세이상의 자를 질서유지인으로 임명할 수 있다. ③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종결을 선언하여야 한다’(제4항 생략)고 규정하고 있다. 홍씨는 이러한 집회질서 유지 의무가 있는 민주노총이 그 의무를 게을리 하여, ‘성명불상’의 가해자들에 의해 자신의 현수막이 찢겨졌으므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그 ‘성명불상’의 가해자들이 조합원인지, 아니면 경주에서 발생한 사건처럼 ‘집회참가자’로 위장한 신원불명한 자의 도발행위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막연하게 당시 집회대오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그 집회를 민주노총이 주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손해를 민주노총에 전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따름이다. 더군다나 현수막 내용이 집회참가자를 자극할 우려가 있었음에도, 집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홍씨가 차량을 가지고 집회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평화적 질서를 유도해야 할 경찰의 조직적인 묵인 혹은 비호가 없다면 쉽게 일어날 수 없다고 짐작할 수 있다. 집회를 할 때 택시나 퀵서비스 오토바이조차 대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경찰이 보호(?)해주는 관행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공동불법행위의 문제이다. 홍씨는 민주노총이 질서유지인을 두는 방법으로 집회참가자들을 관리․감독하여 이와 같은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게을리하여 집회참가들 중 일부가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집회장소인 대학로에서 한참 먼 장소에서 사건이 일어난 점, ‘성명불상’의 가해자들이 집회참가자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주장 역시 억측에 불과하다. 백번 양보하여 집회참가자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집시법 제15조는 주최자의 뜻과 무관하게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 주최자는 집회의 종결선언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였다고 하여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이로써 대부분 추측뿐인 사실관계와는 별도로, 민주노총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법원은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집회의 자유는 고전적 자유권으로서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방어권이다. 집회의 자유는 특히 생각을 달리하는 소수에게 유용한 방어권으로서, 헌법 제21조는 기본권주체에게 집회의 장소․시점․방식․내용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동시에 공적 집회에 참여하거나 참여하지 말라는 국가적 강제를 금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집회의 자유에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특별한 서열이 부여된다. 방해받지 않고, 특별한 허가없이 다른 사람들과 집회할 권리는 예로부터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 자유․독립․성숙의 표징으로 여겨졌다.

집시법은 개인간의 권리관계에 어떠한 규율을 하고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이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국민과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제정된 법이다. 집시법의 모든 구조가 집회 주최자와 국가권력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의무위반에 대해서 국가권력이 처벌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집시법은 공공의 이익과 집회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규정하는 것으로 개인의 권리분쟁에 이를 들이밀 수는 없는 것이다.

<b>구더기는 무서워할 게 아니다</b><br>

집회․시위와 관련해서, 노동조합 혹은 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경우가 전국적으로 7건이나 있다고 한다. 그 성격이 약간 다를 수도 있지만, 이번 판결이 나머지 소송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최루탄을 ‘억지로’ 자제하기 시작한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대응은 상당히 교묘해졌다. 위장집회신고는 말할 나위도 없고, 사실상 집회신고를 ‘허가제’로 적용하면서 애초에 집회를 막아버리고 있다. 작년 4월 부평 대우자동차노동조합 폭력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집회현장에서 보여주는 경찰의 강력대응은, 국회뿐만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조차도 이견이 있을 정도이다. 검․경은 최대한 욕을 덜 먹기 위해, 또한 최대한 국민들의 편의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번에 ‘기획사업’을 진행하였으나 불행히도 “믿는 법에 발등 찍힌 것”이다.
집회신고를 하러 갈 때마다, 집회현장에서 경찰의 막가파식 대응에 불안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방패와 몽둥이뿐만 아니라, 정당한 집회 이후에 들이닥칠지 모르는 법적 문제까지 생각한다면, 그러한 불안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검․경의 폭력과 제멋대로 법집행에 의해서, 민중의 의사표현이 막힐 수는 없다. 이를 무릅쓰고 투쟁해 왔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는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있다. 구더기는 한 몫에 쓸어버리면 된다. 더군다나 그 구더기는 이미 믿었던 ‘법’에 발등을 찍히지 않았는가.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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