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2.6.26호

신자유주의와 노동강도

김현수 | 노동자의 힘
대우조선 76명의 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단요양을 시작한 이래, 많은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과 현장 투쟁을 준비중이다. 물론 2001년 이래 금속 사업장 대부분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은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대우조선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집단 요양 투쟁을 시작하고 회사측이 노조에 대한 극심한 탄압을 시작하면서,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를 둘러싼 성격이 크게 변화하였다. 그 첫 번째는 개별적 노사문제 수준에서 근골격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이전과는 달리, 전체 노자간의 문제로 이 문제를 확대하면서 그 성격이 크게 변했다. 두 번째는 근골격계 직업병의 원인을 단순히 ‘개별적 작업환경’의 문제로 인식하던 수준에서, ‘집단적 작업환경의 악화’, 즉 노동 강도 강화의 문제로 인식함으로써 이에 대한 대응이나 투쟁 목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집단적 작업환경의 변화는 곧 노동강도의 핵심적 요인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최근 발생하고 직업병 실태는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진행된 구조조정과 김대중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가 초래한 노동강도 강화의 직접적인 결과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노동보건의 본질적 문제라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과 대응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1. 노동강도가 왜 중요한가?

경제위기 이후 노동자들의 주요 건강 장해 발생 양상이 크게 변화하였다. 경제 위기 이전에는 “위험 작업 환경 및 위해 물질 관련 직업병”이 노동보건의 중요 문제였다. 위험 작업 환경이란 예를 들어 전기 작업, 고공 작업, 프레스 사용과 같은 작업, 인화 물질의 취급 등과 같은 작업을 의미하는 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이와 같은 위험 작업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와 예방을 강구하도록 적시하고 있다. 한편 위해 물질(hazard material)은 벤젠이나 톨루엔, 석면, 분진과 같은 화학물질을 의미하며, 이런 물질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직업병이 원진레이온의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이다. 물론 이 시기에 소위 작업관련성 질환이라고 분류하였던 신체 부담 작업 관련 질환이나 과로사가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과 같이 업종과 산업을 뛰어넘어 전 영역의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경향과는 달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사망재해 중 과로사의 비중이, 그리고 직업병 중에서는 근골격계 직업병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이들 질병은 특정 위험 작업환경이나 위해 물질과 관련되어 있다기보다 직접적으로 노동강도 강화에서 유발되는 “노동강도 관련성 직업병”이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도 이들 직업병을 “작업관련성 질환”이라 하여 그 본질을 호도하는 명칭으로 불러왔다. 다음의 표는 과로사 발생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표대로라면 1997년 이후 사망재해 중 과로사 비중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물론 이 자료는 현실의 극히 일부를 보여주는 매우 제한적인 통계에 불과하다. 지금 산재보험제도 요양관리 현실을 보면 전체 사망재해에서 과로사가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재래형 사망재해인 전도, 압착, 충돌, 추락과 같은 사고는 작업 관련 사망으로 인정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여 대개의 경우 사망재해 통계에 포착되고 있다. 반면에 과로사는 그 사망의 원인으로서 과로에 대한 입증을 노동자가 해야 하며 사망 전 노동강도가 그 이전과 월등한 차이를 보인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로 대부분의 과로사 노동자들은 산재 인정을 포기하기 쉬우며 따라서 노동부 통계 집계되는 것은 극히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과로사 발생이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2002년 4월 발표한 노동부의 산업재해 통계 발표를 보면 “작업관련성 질병자 수"는 4,038명으로 전년대비 879명(27.8%) 증가하였는데 이 중 요통질환자는 820명으로 전년대비 298명(57.1%)이 증가하였고 기타 신체부담작업으로 인한 질환자는 778명으로 전년대비 291명(59.8%)이나 증가하였다. 요통 및 신체부담작업 관련 질환이란 다름 아닌 근골격계 직업병이다. 이 직업병 역시 노동자가 산재 요양 신청을 할 때, 가장 흔히 부결되는 직업병 그룹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흔히 개인질환이라든가, 연령에 따른 퇴행성 질환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그러나 노동안전 보건 투쟁을 전개하는 현장 부서활동가들은 사업장에서 가장 많이 호소하는 건강 장해가 근골격계 질환이며 그 원인이 작업과 관련이 있음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 통계 역시 근골격계 직업병의 실태 중 극히 일부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통계가 비록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나 과로사나 근골격계 직업병이 경제 위기 이후 가장 급속히 증가하는 노동보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경제 위기 이전과 이후 노동안전보건의 주요 쟁점과 과제가 달라졌으며 이로부터 노동강도 강화 문제가 핵심적인 이슈로 부각되게 된 것이다.




2. 신자유주의와 노동강도 강화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는 대부분의 업종과 산업, 그 중에서도 조선, 자동차, 자동차 부품과 같은 한국 자본의 핵심 영역에서 급속히 추진되어 왔다. 즉 급격한 인력의 감축, 기업간 구조조정과 통폐합, 비정규직이나 하청, 분사, 소사장제 도입과 같은 고용 형태의 변경, 자동화 설비의 급속한 도입과 같은 신공정 및 기술의 도입, 팀제나 군소 직반장 조직체계로의 작업 조직 변경, 성과급 및 연봉제 도입과 같은 임금체계 개편 등 집단적 작업환경이 4-5년 사이에 매우 급격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집단적 작업환경 변화가 추구하는 바는 바로 노동강도 강화이다. 노동강도는 본질적으로 노동시간(노동일)으로 전환되어 표현될 수 있다. 노동시간은 크게 절대적 노동시간과 상대적 노동시간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전통적인 노동강도 강화 방안이 절대적 노동시간의 증가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최근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은 상대적 노동시간의 증가를 통하여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일)이란 다름 아닌 근로임금 계약의 기본이며 따라서 노동시간의 문제는 곧 임금의 문제와 연동된다. 자본은 절대적 노동시간의 증대를 통하여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최소 시간(최대 상한선)을 제외하고 생산에 동원하여 왔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투쟁의 성과로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고 이로부터 최대 상한선의 턱을 상당히 낮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에게 있어 단위 시간을 늘림으로써 전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전통적 방식이 더 이상 허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상대적 노동시간의 증가가 중요시되었는데, 이는 주어진 노동시간 내에서 노동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단위 시간당 생산량 자체를 증가시킨다. 특히 단순히 단위시간당 물량을 높이거나 라인의 가동율을 최대화하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집단적 작업환경 요인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상대적 노동시간을 급격히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상대적 노동시간의 증대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제 노동자가 아무리 골병들도록 일을 하여도 단위 시간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성과급의 형태로 임금 보전을 하고 있으나 그 전체적 가치의 증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 되고, 이로부터 다시 노동자는 절대적 노동시간(일)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잔업 및 특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자본축적의 놀라운 능력이다.




3. 노동강도 강화와 집단적 작업 환경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법적 노동시간 내에서 엄청난 노동강도에 노출되고 이에 추가로 잔업 특근을 뛰어야만 이전의 생활을 유지한다. 따라서 노동력 재충전의 시간으로서 남아 있는 노동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지고, 나아가 자기 단련이나 교육 시간 혹은 건강과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적극적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 이와 같은 악순환은 초기에 일시적인 근골격계 통증으로 문제가 발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제한 등이 동반되는 급성기 근골격계 질환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통제와 조절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급성기 근골격계 질환의 반복은 만성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발전한다. 이 전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수단은 개인적으로 물리치료나 한방치료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 자신의 직업병이 반복적으로 악화되는 집단적 작업환경을 차단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와 긑은 만성질환으로의 악화는 결국 퇴사 전에 노동능력을 상실하여 고용이 불안해 지거나 요행히 퇴직가지 살아남는다 하여도 남은 여생을 근골격계 직업병의 만성 장애에 짓눌리게 된다. 과로사의 발생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과로사의 발생은 초기 일시적인 피로의 경험, 지속적인 과로의 누적,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생과 과로사로 인한 사망으로 이어진다.

근골격계 직업병은 흔히 개별적 작업환경 즉 작업 자세 , 반복작업, 중량물 작업등에 의해 유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무리한 작업자세나 반복작업이라도 노동강도 자체가 약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 그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즉 무리한 작업 후 충분한 휴식의 보장은 근골격계 직업병의 만성경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만성화의 결정적 요인은 집단적 작업환경 요인 즉 인력 감축, 작업량 증대, 노동시간 증대 및 휴식 감축, 작업공정 변화 및 신기술 도입, 작업조직의 변경, 임금체계 개편 등이다. 이들 집단적 작업환경은 특정 자세나 반복 작업, 중량물 작업이 없는 상태에서도 근골격계에 무리를 주어 직업병을 유발할 수 있으며 만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별 작업환경보다 본질적이다. 애초 노동계가 근골격계 직업병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하여도 이처럼 본질적인 집단적 작업환경의 문제로 파고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인식의 전환을 제공한 것이 바로 대우조선노조의 집단 요양 투쟁이었다. 공상이나 개별요양과 달리 집단요양은 직업병 집단 발명을 사회적으로 확인하고 그 원인을 구명하고 근절하기 위한 노자간 대립과 투쟁을 촉발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한사람의 요양이 인정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작업환경의 악화에 대항하는 계급 투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전국 사업장에서 끌어 오르고 있는 집단 요양 투쟁의 열기는 노동안전 보건 운동을 새로운 차원, 즉 산재 보상 활동의 수준에서 현장 내 작업장 통제에 맞선 투쟁으로 변했다. 이제 대우조선 투쟁은 모든 사업장의 현안이 되었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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