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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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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벌거벗은 자본주의

장귀연 | 회원,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자본주의 합리성 : '로또는 합리적이다'

제목 : 로또 하는 건 미친 짓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조합한 경우의 수는 45C6 = 8,145,060, 즉 로또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천60분의 1이다. 이는 벼락을 두 번 맞고 교통사고를 다섯 번 당할 확률과 맞먹는다. 그러니 벼락 2번, 교통사고 5번 당하고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사람만 로또를 해라!

Re : 로또 하는 건 합리적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평생동안 수백억, 아니 수십억의 돈을 벌 확률은, 단연코, 814만5천60분의 1보다 낮다. 그러니 수백수십억의 돈을 벌 자신이 있는 사람만 로또를 하지 마라!

어떤 게시판의 이 답변만큼 로또 열풍의 본질을 잘 꿰뚫고 있는 말이 있을까? 수백수십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8145060분의 1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려받은 종자돈 없이 자수성가하여 수백수십억을 벌 가능성은? 어쩌면 자수성가할 가능성도 벼락을 두 번 맞고 교통사고를 다섯 번 당할 확률보다는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한 빽도 능력도 없이 평범한 사람이 수백수십억을 벌 가능성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단연코 로또 1등 당첨 확률보다 높지 않다. 따라서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한동안 언론에서는 로또 열풍을 두고 '사행심'이니 '황금만능주의'니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상식적이고 진부한 소리지만, 상식적이고 진부한 소리가 대개 그렇듯이 참으로 옳은 말씀들이기도 하다. 사행심과 황금만능주의, 맞다. 그러나 위의 답변이 보여주듯이, 로또를 사는 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 로또 열풍과 로또 열풍을 다루는 언론의 상식적인 말씀들이 본의 아니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합리적인' 사행심과 황금만능주의, 즉 적나라한 '자본주의 정신'인 것이다.

자본주의 원리 : '돈이 돈을 낳는다'

자본주의(資本主義). 자본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상적인 어법으로 돈을 지칭하고, 주의(主義)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일정한 태도나 방침 또는 주장'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바로 '돈'이 방침으로서 변함없이 지켜지고 주장되는 세계를 뜻한다. 즉, 자본주의 원리란 두말 필요없이 간단하게 '돈에서 더 많은 돈으로(M-M´)일 뿐이다.
가치를 낳는 것이 사실은 인간의 노동임을 강변하기는 어렵다. 실로 어느 시대에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노동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본주의의 특징적인 점은 이 과정이 상품, 특히 일반화된 상품으로서의 돈의 자체적인 운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 유명한 물신화 과정이지만, 이때 화폐 물신성의 신비화란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단순한 허위가 아니라 실제로 세계의 메카니즘이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이 가치를 낳는다는 사실이 현실적이려면 자본주의 너머에서 가능한 일이다. 자본주의는 '현실적으로' 돈이 돈을 낳는다. 그리고 물론 금융화는 이 자본주의 원리를 가장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리하여, 잘 알다시피 십억으로 수십억을 만들고 수십억으로 수백억을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수백수십억을 만지기는 벼락을 두 번 맞고 교통사고를 다섯 번 당하고도 살아남을 딱 그만큼 어려운데, 정의 그대로 그들이 만진 돈은 살기 위해서 소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혹시 약간이라도 남는 것이 있다면, 이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원리를 따라, 돈이 돈을 낳는 곳을 기웃거린다. 이른바 재테크는 자본주의에서 사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남는 돈을 은행에 저축하여서 일평생동안 수백수십억은커녕 수억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주식 시장에서도 큰손이 아닌 개미군단이 이익을 보기란, 낙타를 바늘구멍에 통과시키거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만큼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나 냉장고 속에 들어간 코끼리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천재는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돈을 낳을 돈도 없고 재테크에 천재적 재능을 부여받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M-M´를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로또 복권인 셈이다. 주식을 포함한 각종 도박은 베팅한 판돈에 비례하여 만질 수 있는 액수가 결정되는 반면, 로또는 비교적 적은 돈을 가지고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되 돈을 낳을 돈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로또 뿐인 것이다. 그것이 사행심(射倖心)이라면 바로 자본주의 원리가 사행이다.

자본주의 정신 : '나도 벤츠를 탈 수 있다'

뇌물을 '봉투'라든가 아니면 좀더 시적으로 '한조각 마음(寸志)'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부모님처럼 '돈'이라는 말을 직접 입에 담으면 뭔가 천박한 것처럼 느끼는 전자본주의적 습관을 간직한 사람들은, '인생역전'이라는 노골적인 로또 광고에 당황해 한다. 연전에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에도 그랬다. 황금만능주의를 부추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 되세요'에 이어 '인생역전'이 대유행어가 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알몸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황금만능주의는 자본주의 정신의 누드다. 그리고 알다시피, 완전한 누드보다는 몇 조각을 가린 포르노가 훨씬 음란하다.
지하철 역 로또 광고판에서 '인생역전'이라는 큰 글씨 밑에 '나도 벤츠를 탈 수 있다'라는 카피를 보는 순간, 나는 통쾌했다. 위선적인 모자이크 처리를 걷어내고 적나라한 알몸을 보는 순간의 쾌감이랄까. 그럼, 누구나 벤츠를 탈 수 있고말고.
벤츠를 타고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하인들을 맘대로 부리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없다. 머리가 좋을 필요도 없고 성실할 필요도 없고 교양이 있을 필요도 없고 성품이 좋을 필요도 없다. 돈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돈은, 머리가 좋거나 성실하거나 교양이 풍부하거나 마음이 착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그 알몸을 가려 보려고 노력해왔다.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은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한 근면과 검약이라고 주장한 이래, 수많은 이데올로그들이 떠들었던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이 많은 사람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거였다. 부자는 현명하거나 성실하거나 아는 것이 많거나 대인관계가 좋거나, 즉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에. 우리가 알다시피 부와 능력은 상관이 없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 연구들이 밝혀내고 있듯이, 사실상 자본주의 초기에도 대부분의 부르주아지는 전자본주의적 제도에서부터 돈을 낳을 돈을 물려받은 사람들이었으며 근면과 검약이나 능력으로 자수성가하여 자본가가 된 케이스는 매우 소수였다.
로또를 통해 인생역전, 부자가 되는 것은 물론 근면·검약이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야말로 행운일 뿐인데, 사실은 모든 부자가 그러한 것이다. '나도 벤츠를 탈 수 있다'는 '벤츠를 타는 놈도 별 거 아니다'라는 것을 까발린다. 벤츠를 타고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하인들을 부리는 부자들은 현명하거나 성실하거나 아는 것이 많거나 착할 필요가 없으며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특별히 현명하지도 성실하지도 아는 것이 많지도 성품이 좋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서 벤츠를 못탈 이유가 무엇인가. 로또를 맞추든 뭐든 돈만 있으면 말이다. - 이게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의 누드

따라서 로또는 자본주의의 메타포, 또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 원리를 깨치고 있고 그 정신을 체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원리와 정신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자들은 항상 극소수인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원리와 정신 속에서 살 수밖에 없도록 내던져져 있으나, 그 자본주의 메카니즘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원리와 정신에 따라 8,145,060분의 1의 합리적인 확률을 계산하며 로또를 산다.
미국의 슬럼가에서 빈둥거리며 로또 숫자를 적는 데만 골몰하는 흑인들의 절망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누드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도 발전하기는 했다. 이제 거추장스런 가리개를 화끈하게 벗어던지고 알몸에 육박하고 있으니 말이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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