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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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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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인권포럼이 남긴 과제

이소형 | 조직부장
3월 20일, 막상 벌어진 전쟁에 대한 당혹감과 분노를 미처 감지하기에도 일렀던 이날 오후, 보문동에 위치한 노동사목회관에서는 조금은 낯선 주제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 2회 인권활동가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인권운동단체들이 함께 모여 꾸린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의 첫 번째 행사로 3월 인권포럼이 '전쟁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당시 전쟁중단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과 미대사관 앞 집회, 그리고 7시 광화문 반전집회가 다급하게 조직되고 있는 상황,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비하면 이 토론의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것이었다. 애초에 준비했던 토론의 내용들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긴급한 대응들, 특히 소위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는 운동단체들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핵심논의주제로 다루기로 하였다.
평화인권연대에서 준비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정치·군사적 배경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그리고 이러한 전쟁을 반대하고 막아내기 위해 인권운동 혹은 평화운동이 해야할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한 논의가 제안되었다. 하나는 '여성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가 발표하였다. 전쟁이 미치는 극악한 폭력적 상황이 하나의 사회를 파괴시키는 과정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이 존재함, 그것은 사회의 소수자들 즉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 전쟁이 아니어도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된 자들이 전쟁에 의한 극단적인 폭력상황에 의해 이중적인 혹은 최악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는 '억압받는 이들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미국의 명분이 명백히 거짓임을 폭로할 수 있는 반전투쟁의 핵심적인 내용임을 인식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의 발표는 국제민주연대에서 준비하였다. "이라크 전쟁에 맞서 인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인권운동, 평화운동이 전쟁 및 국제분쟁에 대한 대응방식의 한계 등을 지적하며 활발한 국내외의의 연대를 통한 인권(평화)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였다. 또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반전서명운동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미국과 영국을 제소하는 것 등 실천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들로 토론이 진행되었고 논의의 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실천적 대응들과 관련해 별도의 모임을 상정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토론의 시간이 그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에게도, 포럼을 준비한 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도 무척 낯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공동의 대응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소위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는 다소 모호한 운동집단 내에서의 운동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한 내용적인 합의, 혹은 어떤 연대의 근거들이 부재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과제와 공동의 운동방향성을 모색하는 토론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토론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또한 밝혀진 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3월 인권포럼에서 역시 구체적인 공동의 실천과제가 제출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내용이 부족하였고, 급박한 당면 사안들 즉 전쟁중단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공동 성명서 채택, 이라크전 한국군 파병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 대응 등 이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평이한 수준의 공동행동을 계획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만, 토론의 과정에서 짧게 제기된 몇 가지 고민들을 보다 의미있게 기억하고자 한다. 지금 시기 '인권'과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를 화두로 하는 운동들은 정확히 무엇을 위한 투쟁들인가, 또한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의 보편성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투쟁들이 어떠한 연대를 무엇을 위해 도모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들. 정답이 아직 없기에 암묵적으로 숨겨 놓았던 그 고민들이 중요한 논의과제가 되고 있다. 3월 20일 진행된 인권활동가들의 토론은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성과를 남겼다.

인권운동 네트워크, 그 의미는?

작년 11월, 첫 번째로 치뤄진 전국인권활동가대회는 인권운동진영의 공동의 과제를 모색하고 각 시기마다의 인권문제의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틀거리를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전국30여개 단체의 130여명이 모였고, 다양한 영역과 주제의 운동들이 소개되었고 각각의 운동들은 더욱 폭넓은 연대를 제안하였다. 최초로 진행된 이 사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었고 이 행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문제의식들이 비판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평가회의에 거쳐 다시 제안된 제2회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에서는 제2회 대회는 일련의 연대의 흐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보다 내용적으로 풍부한 공동의 과제를 중심으로 기획하기로 결정하였다. 준비모임에서는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간의 일상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 인권운동진영의 현안과 과제, 그리고 중장기적인 운동의 방향성을 밝혀내는 것이 준비과정에서의 과제임을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3월/6월/9월에 포럼을 개최하여 당면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의 경험을 만들어나가고, 공동의 과제를 모색하기로 한 것이며 3월 인권포럼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되었던 것이다.
현재 준비모임의 주요참가단위는 사회진보연대, 국제민주연대,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동성애자연합 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대의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한국사회 특수한 역사적 계기로 인해 형성되어왔던 다양하고 수많은 인권운동들이 지금시기, 그 운동들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해 수많은 쟁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싼 쟁점들, 그리고 '인권운동'의 방식이 시민운동의 정책입안식 운동방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이에 대한 입장차이와 그에 따른 인권단체들의 분별정립들, 또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판단의 차이와 '인권'이라는 화두의 정세적 효과가 시효만료되고 있는 현 시기를 판단하는 것의 차이 등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현존하는 소위 '인권운동' 딱잘라 어떠한 운동이라고 불리기는 모호하나 통상적으로 구분되는 그 운동들이 일종의 '특정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경향은 지금시기 '인권운동의 연대'가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연대틀을 경계하고 지양해야 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쟁점들이 인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토론되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권활동가 대회 준비모임은 활동가 대회를 실무적으로 기획하고 느슨한 네트워크의 수준으로 긴급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을 실천할 수 있는 틀거리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에 결합하고 있는 다양한 운동단위 역시 앞서 분류한 '인권운동진영'으로 자신의 운동이 분류되는 것조차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연대의 흐름들에 유의미성을 찾는다면, 존재해왔던 인권운동들 혹은 이로 분류되는 다양한 운동들이 기간의 운동들을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논쟁의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당면한 정세 속에서 인권운동의 공동의 대응을 꾀하며, 기존에 이러한 운동들이 자임하고 있었던 역할들에 대한,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뒷받침하고 있는 '인권' 또는 '평화'의 담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기하며 서로의 고민을 진척시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 '인권'이라는 화두.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인권운동을 분열시켰고 인권운동의 포섭과 배제 속에 인권을 화두로 하는 기존의 운동의 영역들은 일정정도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며 '인권'을 중심으로 한 운동들은 더 많은 혼란과 동요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인권'이 가지고 있는 그 보편성이 각각의 운동의 정치적 효과들을 배제하고 경계하게 만들면서 지배계급이 허용하는 하는 제도권 내의 요구들로 한정되는 문제이다. 때문에 인권에 대한 요구, 즉 인권운동의 목표들은 민중에 의한 정치를 일구어내는 것과는 분리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지배계급은 '통치'를 위한 다양한 폭력들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계급투쟁과도 분리시킨다. 이렇듯 '인권'의 보편성은 지배계급의 제도적 틀거리를 유지하는 합리적인 대의와 명분으로 '인권'을 도용하는 위험을 허용하기도 한다. 지금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제기하는 운동들은 현실 속에서 '인권'이 정의되는 맥락의 구조적인 모순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권운동진영에게 던져진 복잡한 쟁점들을 풀어가는 것은 악용되고 있는 '인권'이라는 화두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SSP
주제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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