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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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관점에서 본 노동자 자주관리

제임스페트라스, 헨리 벨트마이어 | 번역 :: 정지영 |정책부장
[역주] 세계사회포럼이 3회에 이르면서, 그것을 둘러싼 많은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논의들은 단지 세계사회포럼 자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사회포럼을 전후로 제출되고 있는 입장들은 그 이전부터 활성화되고 있는 세계적인 사회운동들(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반전투쟁 등)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들이다.
세계사회포럼은 아직 세계사회운동에 대해 뚜렷한 전망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와 자발적인 연대에 근거해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 다만 우리는 세계사회운동이 현 시기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좀더 과학적인 분석과 비판에 근거하여 구체적인 전망과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사회진보연대는 세계사회포럼을 둘러싸고 몇몇 논자들에 의해 제출된 특징적인 입장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그 첫 번째로 소개할 이들은 마르타 아르네케르와 제임스 페트라스·헨리 벨트마이어다. 이들은 각각 라틴 아메리카의 현재 상황과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투쟁들,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의 조건을 다각도로 점검하며 향후 사회운동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있다.
이 기획 이후에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체계에 저항하는 새로운 반역], 피터 워터만의 [3회세계사회포럼에 대한 회고]라는 글을 실을 것이다. 이 글들이 현 단계 사회운동에 대해 명석한 전망을 곧바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사회운동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과 교훈들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처한 역사적-정세적 조건과 차별점이 있기 때문에, 즉자적인 도입보다는 재차 음미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논쟁들을 살펴본 후에, 마지막 순서에서는 세계사회운동의 전망에 관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가 세계 인민의 삶을 옥죄어오고 있는 지금,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유일한 대안은 세계사회운동의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즉 저항의 세계화임은 두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세 번에 걸친 기획연재를 통해 세계사회포럼과 세계사회운동의 전망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소개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 자주관리(Worker self-management)가 주요한 운동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역주-2002년] 200개가 넘는 공장이 노동자들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되고 있으며, 조직화의 과정에 있는 자주관리 기업들의 전국적 협동조합(a national co-coordinator)이 생겨났다.

역사적으로, 노동자 자주관리는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중심 부분이었으며, "노동자들의 해방은 오직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진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길로써 노동자 자주관리는 이전 소비에트의 관료적 집중주의 및 자본주의적인 경영의 계급적 체제의 반대편에 서있다. 이 글은 노동자 자주관리의 거대한 잠재력을 간략히 살펴보고, 그 후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험에 적절한 몇 가지 역사적 교훈을 짚어내기 위해 20세기의 몇몇 역사적 경험을 돌아볼 것이다.


·노동자 자주관리의 잠재력 (Potentialities of WSM)

노동자 자주관리는 노동자 계급을 자본주의의 학대와 불안정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와 그들에게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는 의미 양자에서 진정으로 해방의 경험이다. 간략히 말해서, 노동자 자주관리는 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결정권을 제공한다:
1> 무엇을,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
2> 고용의 보장 그리고/혹은 고용의 증가
3> 생산된 것에 대한 우선권 설정
4>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가에 대한 본질 정의
5> 사회적 생산과 이윤의 사회적 전유의 결합
6> 공장, 부분, 전국, 국제적 수준에서의 계급의 연대 창조
7>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민주화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자주관리 경험은 이러한 잠재력 중 일부를 증명하고 있다. 솔라노를 비롯한 도처에 실업노동자들이 설립한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들뿐만 아니라 부르크만(Bruckman) 섬유공장과 사논(zanon)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과 분배에 관한 결정이 모든 노동자들의 총회를 통해 이루어진다.(2002년 8월 24일, 마리오 에르난데스의 인터뷰를 보라) 높은 수준의 연대는 대중적 슬로건인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Tocas uno, Tocas todos)"에서 증명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 자주관리의 잠재력이 실현되었을 때, 그것은 제한된 성공과 실패 양자에 직면해왔다. 각기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 있었던 노동자 자주관리의 중요한 경험들 중 일부를 재검토해보는 것이 유용하겠다.


·노동자 자주관리의 역사적 사례들: 유고슬라비아, 칠레, 볼리비아, 페루
(Historical Cases of WSM: Yugoslavia, Chile, Bolivia, Peru)

노동자 자주관리는 몇몇의 국가들에서 각기 다른 시기와 맥락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네 가지 사례를 검토할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칠레, 볼리비아, 페루. 그리고 우리는 그 강점과 약점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

노동자 자주관리는 1950년부터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는 시기까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체제의 공식 원리였다. 유고슬라비아 전역에 걸쳐, 모든 주요 공장들은 노동자 자주관리 체계 하에 있었으며, 이전의 어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보다 생산과 소득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은 파시즘이 패퇴하고, 유고의 대통령 티토가 스탈린 및 소비에트와 단절하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출현했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몇 번의 국면을 겪었다. 첫 번째 시기인 1950년~64년에는 공산당이 국가 수준의 정책을 통제함에 따라, 노동자 자주관리는 공장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시장개혁" 하에 있었던 1965년~1972년 시기에 노동자 자주관리 공장들은 자본가의 압력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공장과 실업을 비롯한 여타 경제 부문 사이의 거대한 불평등이 양산되었다; 1973년~1990년 시기, 민족적 애국주의 침투, IMF의 압력,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의 퇴화가 노동자 자주관리의 최종적인 서거를 가져왔다.
30년 이상 지속된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 실험에서 나타난 초기의 성공은 1940년~1950년의 반-파시즘, 반-스탈린주의 시기 동안 노동자 자주관리에 선행했던 대중투쟁 덕분이었다. 이 투쟁은 노동자 계급을 정치화시키고, 동원했으며, 계급의식과 조직화를 고양시켰다. 유고슬라비아 노동자 자주관리의 한계는 노동자 자주관리가 지역과 부문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았던 공산당이 국가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제나 노동자 자주관리를 제한했다는 점, 그래서 관료적 국가와 공장-기초적인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 사이에 권력의 이중체계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관료집단이 시장으로 돌아서고, 이후 민족적 정책으로 돌아섰을 때, 그것은 노동자 자주관리 체계의 토대를 침식했다.

칠레

칠레에서는 아옌데 정권 하에서(1970~73) 125개 이상의 공장이 노동자 자주관리라고 할 수 있는 체계 하에 있었다. 이 중 절반 정도는 공무원들이 관리했으며, 나머지 50%는 공장에 있는 노동자 위원회가 관리했다. 연구들은 노동자 자주관리 하에 있던 공장들이 중앙집권적 경영 하에 있던 국영 공장들보다 훨씬 더 생산성이 높고, 효율적이었으며, 계획적 결근이 적었음을 보여주었다.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은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생산과 자기 방어를 조정하는 "꼬르도네스 인두스트리알레스, cordones industriales"라는 산업 벨트를 형성했다. 아래로부터 통제되는 성공적인 공장에서, 당과 노동조합의 논쟁은 공장 안의 모든 노동자들이 참가하는 대중 총회의 권력에 종속되었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공장을 폐쇄로부터 방어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호했으며, 사회적 조건 또는 노동을 개선했다. 가장 중요하게, 노동자 자주관리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식을 고양시켰다. 불행하게도 노동자 자주관리는 사회주의적 의회 체제와 자본주의적 정부라는 상황 하에서 발생했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공장과 꼬르도네스에서 구현된 노동자들의 권력과 군부-부르주아들의 국가 장치 사이에 이중적인 권력을 형성했다. 아옌데 정부는 무장이나 노동자 탄압을 거부함으로써, 두 권력 중심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결과는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고,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을 파괴한 1973년의 군사 쿠데타였다. 교훈은 명확하다: 노동자 자주관리의 성공이 더욱 전진하고, 나라 곳곳에 퍼져나감에 따라, 추방된 자본가와 지주계급은 생산 수단들에 대한 통제를 복구하기 위해 폭력과 탄압으로 돌아선다. 자본가들은 우선 트럭 운전자들의 파업을 통해서 분배와 생산을 고의로 방해하려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재정을 중단시키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군부와 독재로 돌아선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절박한 위협에 직면하여 아옌데가 좀 더 결정적인 행동을 하도록 압박했으나, 그는 맹목적으로 의회의 절차에 맡겨져 있었으며, 노동자 자주관리는 패배했다. 만약 칠레의 노동자 자주관리가 유고슬라비아에서처럼 공장이나 부문에 기초한 조직화에서 국가권력 장악으로 옮겨갔더라면, 노동자들은 노동자 자주관리 체계를 방어하는데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볼리비아

볼리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 체계는 1952년, 인민혁명에서 출현했다. 당시에 계급의식을 가진 광부들과 농민들, 민족주의적인 쁘띠 부르주아들의 동맹은 친-제국주의적인 과두체제를 전복했다. 혁명의 첫 번째 국면에서, 노동자들과 농민군들은 군대를 파괴하고, 광산을 몰수하고, 토지의 재분배를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총회와 노동조합에 의해 무장한 광부 군대들은 산중의 요새에 갇혀있었고, 농민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었으며 그래서 농민들은 국가의 통제권을 획득하여 국가로 부르주아 국가로 재조직하고있던 민족주의적 쁘띠 부르주아(Nationalist Revolutionary Movement, MNR)들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혁명 후 시기에 격화된 투쟁을 불러온 이중적인 권력 체계를 형성했다. 1950년대 내내 <볼리비아 노동자 운동, the Bolivian Workers' Movement>은 혁명의 성과물을 방어하기 위해서 군사적 행동, 총파업,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반면 민족해방운동(MNR)은 그들이 국가의 소유권을 유지하는 동안 노동자들로부터 효과적으로 통제권을 몰수한 광산 공사(State Mining Company)를 설립하면서 국유화된 광산들을 관료 체제로 바꿨다. 1964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잠시 광산을 점유했다. 그러나 1970년, 노동자-농민 동맹은 J.J 토레스의 진보적 군부와 함께 인민의회(Popular National Assembly)에서 인민 권력을 재출현시켰다. 의회가 혁명적인 입법안들을 승인했지만, 그것이 국가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Bnazer 장군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광산 무장군을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볼리비아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단일 부문(광산)의 노동자 자주관리는, 그것이 다른 부문과 대중적인 동맹을 형성하지 못하면,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또는 인민 무장군들의 뒷받침이 없는 인민의회(Popular Constituent Assembly)는 쿠데타에의해 부서지기 쉽다는 점. 세 번째 교훈은 노동자 통제 하에 있는 공장들의 국가화(statification)는 쁘띠 부르주아적인 기술관료들이 노동자들로부터의 통제권을 찬탈하고 국가장치 안으로 통제권을 집중시키며, 자본주의적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공공기업을 운영하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페루: 위로부터의 혁명

1967년, 벨라스코 알바레스(Velasco Alvarez) 장군이 이끄는 진보적 민족주의 군사 장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새로운 체제는 많은 수의 광산과 공장, 플랜테이션 농장을 몰수했고, 두 유형의 혁신조치를 취했다: 산업 협동조합과 산업 공동체. 산업 협동조합은 노동자 경영 참여가 기본이었고, 생산성과 사회-경제적 이윤의 심대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결국 자주관리는 정책생산의 임무를 떠맡는 부차적인 것이 되거나 노동자 대표들을 선출하는 것이 되었다. 산업 공동체는 군부 장교들과 노동자들의 공동 참여 형태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군부 장교들은 임금 차별뿐만 아니라 이전의 자본가들이 소유했던 집중된 통제권을 유지했다. 노동자들이 위로부터 조직된 협동조합과 산업 공동체가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그들은 협동조합과 산업 공동체의 민주화, 더 거대한 통제와 평등의 보장을 위해 조직적으로 단결했으며, 이를 위해 종종 그들이 관리하는 기업에 대항하여 파업을 벌였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지배자 하에서, 공장과 플랜테이션 농장들은 재사유화되었고, 벨라스코 정권에서 이루어진 진보적 노동 입법들은 폐기되었다. 페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위로부터의 국가화 혹은 국유화는 자본주의의 계급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공공부문에서 노동자들의 역할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획득한 사회적 성과는 관료들에 의해 감축되며, 그들은 자본주의적 규범을 작동시킨다. 관료들의 부패와 경영실패, 노동자들의 통제권 부족이 탈국유화와 사유화로 드러났다.


·역사적 경험과 아르헨티나

과거 노동자 자주관리 경험들이 주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은 늘어가는 아르헨티나 노동자 자주관리 공장들에 적절하다.

1> 과거 노동자 자주관리 공장들의 성공은 대중들의 총회에 기초한 수평적 구조에 기반을 두고있다. 칠레와 유고슬라비아의 성공은 노동자들의 위원회와 공장 총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

2> 볼리비아의 광산과 칠레의 제조업 등 한 부문에서의 성공은 다른 부문으로 그리고 다른 계급과의 동맹으로 노동자 자주관리를 확장하는 것에 의존했다.

3> 국지적인 승리와 이중적인 권력은 계급 의식을 강화시키고, 노동 조건을 개선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배 계급들의 폭력적 역공을 불러왔다. 국지적 권력에서 국가 권력으로 이동하는데 실패한 볼리비아와 칠레의 노동자 자주관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한 부르주아들의 탄압으로 끝났다: 대응 권력 혹은 이중적인 권력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상황이며, 이것은 결국 국가권력의 문제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4>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이 성장한 맥락은 나라마다 다르며, 특정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졌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노동자 자주관리는 노동자들의 반-파시즘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고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하에서 대규모 공장 점유가 극에 달했다. 칠레에서 노동자 자주관리는 자본가들의 공장폐쇄와 사보타지를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개입과 정부 정책 양자의 결과였다. 볼리비아에서 노동자 자주관리는 대중적인 반-독재 봉기로부터 성장했다. 오직 유고슬라비아에서만 노동자 자주관리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권력을 굳건하게 유지했는데, 그것은 국가 권력이 비-스탈린주의적인 공산당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자주관리가 강화되고 기능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전국으로, 공장에서 국가로, 고용 노동자들에서 실업자들, 젊은이들, 여성들, 소수 민족들로 확산되는 것이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의 성장하는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은, 특히 점거된 공장들에서 그리고 실업 노동자들의 운동, MTD에 의해 조직된 기업들에서 운동의 구조와 궤도, 정치에 있어서 광범위한 논쟁을 열었다. 세계사회포럼에서 열린 "Emprendimentos Productivos, Propuestas Obreras Desocupacion y el Cierra de Empresas"라는 제목의 논쟁에서, 그리시노폴리(Grissinoppoli)와 부르크만의 노동자들이 경영에 개입했던 경험은 노동자들의 경영권 취득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필요의 결과였음을 명확하게 해줬다: 노동자들은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고, 받았다해도 그것은 깎여있었다: 공장주는 공장을 비웠고, 기계를 해체했다. 즉, 노동자들의 경영권 인수는 그들의 직업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행동이었다. 일단 공장이 조직되면, 총회에서 좀 더 정치적인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자본가들 없이 생산과 판매를 조직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노동자 자주관리 공장을 향한 움직임은 공장 운영 방식에 대한 기술적인 조언을 제공해줄 경제학자들과 교수들을 결합시켰다. 그리시노폴리의 이바나가 말처럼, 이런 발전의 과정에서 "우리는 매일 배우고 있다... 투쟁은 길다... 하지만 우리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투쟁과 자주관리를 실행하는 것은 공장 점거 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계급의식을 창조하고 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실업 노동자들의 노동자 자주관리 경험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조직화, 민중의회(popular assemblies)를 주도하고 있다. 발데마르(MTD-솔라노)의 말처럼, 운동의 주도적인 조직화 원칙은 직접 민주주의, 수평, 그리고 자치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지도자들이 돈에 매수되거나 부패했던 이전의 바리오[역주-도시 빈민과 실업자들의 주거지역]와 노동조합의 경험에서 나온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 경험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나듯이, 이것은 정말 문제다.

특히 점거된 공장의 활동가들 중 일부에게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은 다른 운동들 및 인민들의 부문과 연대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했다. 예를 들어, 공장 축출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이웃의 총회와 실업노동자 운동에게 자신들의 작업장을 지키는 것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공장 점거 노동자들의 운동과 실업 노동자들 사이에 성장하는 협동은 특히 위기의 순간에, 국가의 탄압에 직면한 순간에 증가했다. 엑토르(MTD-구에르니카)가 인정했듯이, 군사화의 위협은 공장과 총회 그리고 실업노동자 운동 사이의 가장 광범위한 인민 통합의 요구들을 부과하고 있다.

실업노동자 운동의 몇몇 지도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하에서 노동자 자주관리의 섬들이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 수준의 정치적 투쟁에 활발하게 참가해야한다는 요구를 제안한다. MTR의 마르티노가 세계사회포럼 회의에서 말했듯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지적 권력을 건설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외에도 이 국지적인 권력이 정치적인 힘, 전국적인 사회적 힘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업노동자 운동과 공장 점거 노동자들 사이의 동맹 형성은 사논 출신의 한 대표자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개략적인 말로 묘사되었다. 최소의 공장 점거시기에, 조직된 실업노동자들은 이전의 주인들이 경찰을 불러서 노동자들을 강제로 쫓아내려는 것에 맞서 도자기 공장을 방어하는데 참가했다. 거대하게 통합된 저항은 그들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사논 도자기의 잘 알려지고, 소문난 상품은 생산량을 늘렸고, 운동에 함께 했던 실업노동자들 중 10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다.

<아르헨티나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은 두 개의 전국적인 이벤트를 조직했다. 2002년 8월 24일 3000명 이상의 노동자들과 점거된 공장의 대표자들이 참가한 한 행진은 반체제적인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파산했거나, 노동자들의 임금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기계나 장비를 팔아버리고 있는 모든 생산단위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은 몇 가지 주제를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1> 점거한 기업의 형태에 대하여: 협동조합인가 노동자 자기 통제인가?
2> 동맹에 대하여: 전통적인 당들의 정치인들을 포함할 것인가, 당을 배제할 것인가(자치), 좌파 정당으로 제한할 것인가(아니면 어떤 다른 것인가?)
3> 관점에 있어서: 초점은 배타적으로 국지적이어야 하는가, 지역적이어야 하는가, 부문적이어야 하는가, 혹은 국가적이어야 하는가?

이전의 역사적 사례는 우리에게 약간의 지침을 제공해준다.

첫째, 전통적인 정당들과의 동맹은 지도자들을 선임하고, 노동자 자주관리를 더욱 거대한 투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내부 구조를 관료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가장 성공적인 동맹은 수평적인 동맹, 노동자들과 총회에서 조직되고 계급적 관점을 가진 인민 계급들의 네트워크이다.

둘째, 협동조합들이 성원들의 생계 수준을 증진시켜왔지만, 그들은 보통 자본주의적 체계 안에서 적소(適所)를 발견한다. 인구의 60%가 빈곤 기준 아래에 있고, 빈곤 기준 아래에 있는 8백만의 아이들 중 4백만이 영양실조와 질병에 고통받을 때, 정치적 요구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기본적인 변화에 성공한 "섬들"을 넘어서 야만적인 자본주의로부터 노동자 자기통제의 사회주의로 변형이어야 한다.

셋째, 실업자들과 노동자 자주관리의 자치가 국가의 감시와 정당의 통제를 거부하는 한에서는 긍정적인 반면에, 그들과 공통의 목표와 직접적인 행동의 전술을 공유하고 있는 좌파 정당들과 다른 사회 운동들의 동맹을 거절하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높은 계급의식을 가졌지만 광산 부문에 고립되었던 볼리비아의 예는 극단까지 갔을 때 어떤 자치가 자기-패배적인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넷째, 기껏해야 10만에서 20만의 조직된 실업 노동자들이 있고, 실제로는 대략 5백만에서 6백만의 조직되지 않은 실업자들과 미취업자들이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예에서 보았듯이 노동자 자주관리와 실업노동자 운동에서 인민 계급들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것에 성공하는 것은 지배계급들의 탄압과 폭력을 불러온다. 어떤 시점에서 칠레와 볼리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 운동은 성장하고 힘을 모아감에 따라 자기 방어의 메커니즘과 여러 형태의 저항들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은 이웃의 총회, 진보적인 노조들, 미조직자들의 조직과 함께 존재하는 네트워크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것에 달려있다. 위기가 심화되고, 공장 폐쇄가 다양해지며 탄압이 거세질 때, 행동의 통일은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다. "하나에 대한 공격은 모두에 대한 공격"이라는 연대의 기본적인 정책은 국가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전국적 정치운동을 창조하는 임무를 향한 좋은 출발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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