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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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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거대산업에 의해 통제되는가?

김영식 | 회원
영국 영국의 국제사회주의그룹(IS)의 정당인 사회주의 노동자당(SWP)에서 펴내는 주관지 [사회주의 노동자]에 2003년 10월 18일자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SWP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크리스 하먼에 의해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글의 원문은 에서 볼 수 있다. (역자 주)


과학은 거대 산업에 의해 통제되는가?

스티븐 로즈와의 인터뷰

스티븐 로즈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과학에 대한 많은 대중서적을 집필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주의자이며 1960연대 당시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반대한 활발한 정치 활동가이다. 그는 런던의 그가 다니는 대학에서 사회주의 노동자(Socialist Worker)와 인터뷰에서 오늘날 사회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토리 블레어가 영국이 과학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블레어는 단순히 슬로건으로 과학이 실제로 세상에 범한 문제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기술은 자본주의 사회의 한 기구입니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연구비를 내는 사람들에 의존하게 되고, 그들 중에는 압도적으로 산업계가 많습니다. - 내 연구 분야인 생물과학에서는 군대나 제약회사가 많습니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이해관계자”들 중 5대 1의 비율로 유전자 조작 식품을 반대한다고 블레어에게 말하고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정부가 어떻게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이라크와 전쟁을 하러 갔을 때,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러한 당신이] 유전자 조작 식품과 같이 [하찮은] 이슈를 대중들에게 알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정부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는 의사 결정 개방할 수 있는 방법과 민중이 진정으로 필요한 과학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소비자들에게는 이익이 없었고, 농업관련 산업(agribusiness)과 거대 기업에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기술뿐 아니라 농업관련 산업과의 전체적인 상호연관 관계에 주목해야 합니다. 식물이나 동물에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제거하는 것에는 본질적으로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리나 모든 유전자 상호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생물의 유기체는 컴퓨터가 아닙니다. 마치 기계에 한 비트를 지우고 쓰는 것처럼 한 유전자를 가져와서 다른 유전자에 바꿔 놓을 수 없다는 뜻이죠. 유전자는 세포의 다른 모든 유전자를 포함해서 상호 관계에 의존하는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리에 강한(frost resistance)특성을 딸기에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 한 개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이 다른 환경에서도 같이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만약 “유전자 조작 식품이 위험한가?”라고 물어 본다면, 우리가 걱정해야하는 훨씬 더 독한 것들이 우리 주의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 유전자 조작 토마토는 먹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몬산토의 이윤에 기여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기업이나 군부에 의한 과학의 지배가 최근 10여 년 동안 더 악화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예. 훨씬 악화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대학을 예를 들어봅시다. 대학 내에는 특정 제약 회사에 의해 자금을 지원 받은 사설 연구소들이 있습니다. 이 연구소들은 다른 나머지 캠퍼스와 연구교류를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영국 전역의 많은 대학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연구들이 산업계로부터 지원 받고 있습니다. 유전공학과 생물공학과 같은 영역에서 많은 연구자들 스스로 산업 컨설턴트이고, 혹은 회사 주주이거나 회사 이사인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회사와 계약하지 않았다면 공개할 수 없는 비밀 연구 박사학위들도 있으며, 이 경우에 계약에 따라 회사가 연구 결과를 공개할지 말지를 결정하죠.

대학은 많은 역할이 있고 바깥 세계와 많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과 함께 대학은 역시 비판적인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귀찮게 대학을 설립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과학이 지원 받는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기업이나 군부에 의존하는]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어떠한 연구라도 공정한 연구인 것처럼 가장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너에게 이익이 무엇이냐? 제약회사에서 무엇을 배당 받느냐? 너는 무슨 책임을 맡고 있느냐?”라는 질문들이 연구 논문이나 연구원에게 해주어야할 적당한 질문들일 것 같군요. 심지어 어떤 과학 논문지는 연구 논문에 기여한 경제적인 관련 여부에 대한 언급을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국의 대중 언론은 과학자들에 너무 정중합니다.

제레미 팍스만(Jeremy Paxman)이 정치가들에게 적용한 테스트- “이 놈이 내게 왜 거짓말을 하지?”-라는 질문을 나를 포함해서 과학자를 만났을 때, 사람들 앞에서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반-자본(anti-corporate) 세계화 운동 내에 때때로 과학과 과학자들을 기업의 도구로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많은 뉴에이지 운동은 인터넷(!)과 같은 과학의 산물을 사용하면서도 과학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그러한 적개심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달한 환원주의 과학과 같은 류의 일면적인 합리성으로 향해야 한다. 이런 류의 과학은 사회적인 것을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인 것을 생리학적인 것으로, 생리학적인 것을 생화학적인 것과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축소합니다.

이러한 과학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대안적인 방법, 서구세계 과학의 환원주의와는 다른 전통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존중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매우 실리주의적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지지해야 하는 지는 의문입니다. 여기에는 이성을 기준으로 세계를 이해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위험스러운 퇴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순진한 환원주의는 제대로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정신작용을 따로 분리해서 두뇌의 작용을 양자물리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하죠. 맑스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은 모든 현상은 다면적이고 복잡한 원인들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관계의 결정 수준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치매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노의 생화학적 특성을 관찰하는 것은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라크에서 걸프전이 벌어진 이유를 알고 싶다면 조지 부시 혹은 토니 블레어의 뇌에서 세로토닌(serotonin) 수준에서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요지를 벗어난 것이지요.

과학을 반대하는 또 한 측면에는 동물 권리 보호 운동이 있습니다. 내 연구 분야에서는 동물의 뇌 내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동물을 죽여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력하게 반대하죠. 그러면 과학자 사회 내부의 반응은 그 실험을 숨겨버립니다.

나는 이것에 반대합니다.

나는 내가 연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기꺼이 토론 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내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우선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공감한다면 말입니다. 나의 과학은 공공 자금의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인간의 권리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과 사회에 관련해서 일반 사람들이 알아야할 큰 이슈는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필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시민 사회의 통제를 확대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17세기 과학의 혁명을 시작했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지식은 힘(권력)”이라고 이야기 했었죠.

그래서 권력을 민주화하기 위해서 지식을 민주화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술 발전부터 과학까지 최첨단의 흐름에서 주도적(proactive)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시민 사회가 과학이 어떤 판단을 하기 위한 주장들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영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물과 동물에 대해 큰 관심이 있습니다. 내게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 유전자 조작의 가능성과 함께 사회의 많은 위험들이 유전자의 힘에 때문에 발생된다는 이데올로기적 주장입니다. 공격성 유전자, 범죄 유전자, 알코올 중독 유전자에 대한 주장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문제를 유전자와 뇌의 문제로 돌리려는 시도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파괴적인 아이들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는 질병으로 진단된 아이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리탈린(Ritalin)과 같은 암페타민(amphetamine)을 처방받고 있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내가 집필하고 있는 책 [뇌의 미래]에서는 그런 새로운 뉴로 테크놀로지(Neuro-Technology) - 약이나 전기 시뮬레이션으로 정보기술과 인간의 접속장치의 창조 등등 -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1960년대로 돌아가서 옥스퍼드 대학의 벽면에 신비로운 슬로건이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잘못이 있는데, 그것을 관념으로 끼어 맞추지 마라”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진실보다는 관념으로 끼어 맞출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그것을 하기 위해 점점 더 정교한 기술들이 설계되고 있습니다. 확실한 사회 영역의 문제들인데도, 이것을 의료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문제들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이슈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일반 대중들도 그들에게 관련된 이슈에 대해 상당한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수적인 것은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공동의 방법으로 함께하는 민중들입니다.

1960년대에 헝가리 반체제 인사들에게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갑니까?”하고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억압된 국가에서]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매일 살아가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그것을 나눈다면 더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발전된 운동 예를 들면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이나 반전 운동 같은 것에서 그런 공동 행동(collective action) 의 희망을 볼 수 있습니까?

미국은 새롭게 제국주의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점점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대안 세계화 운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안 세계화 운동은 다양한 견해, 대안과 해법들이 제출되는 다양한 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한 해답들도 항상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변혁하려고 할 때, 역사적으로 기술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떤 고정된 답이 없는 이유이며 그것이 그런 새로운 사회 운동내에 다양한 힘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며, 저항을 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지구적인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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