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여름. 175호
첨부파일
08_노동조합국제동향.pdf

노동조합의 기본소득론 비판

노조의 주도력과 사회적 역할 강화가 노동의 미래에 대한 해법

류미경 | 사회진보연대 회원, 민주노총 국제국장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자영업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 등 고용 불안정층을 중심으로 급격한 실업 증가 및 소득감소가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었다. 그 대응책으로 일부 지자체가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제시했고 정부가 4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 이를 계기로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주장이 정치 의제의 하나로 등장했다. 노동조합 내에서는 일정한 금액의 재난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라는 요구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보편적 기본소득론의 유효성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논의가 진행된 적은 없다. 

보편적 기본소득론은 기술·기후·인구 변화에 따른 일의 세계 변화, 특히 고용 감소와 불안정 노동의 확산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 긴축 정책에 따른 복지 축소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안과 쟁점을 형성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정치 의제로 부상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지지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노동조합과 접점 형성을 시도한다. 기본소득 도입이 개별적·집단적 교섭력에 미치는 영향, 일자리나누기 및 노동유연화에 미치는 영향, 임금노동의 감축과 착취의 폐절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분석을 제시하며 노동조합의 고유한 의제와 기본소득을 연결하려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분석 결과, 노동조합이 임금 및 노동조건 결정과 사회보장체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기본소득 도입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만, 불안정 노동이 확대되고 노동조합이 이들을 효과적으로 대표하지 못한다면 기본소득에 주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사회보장 급여 적정성과 보장성 확대, 실업급여에 연계된 의무 감축, 단체협약 적용률 확대와 같은 노동조합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요구를 기본소득 운동에 반영하고, 기존 노동시장 및 사회보장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층에 대해 노동조합이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기본소득론자들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운동의 대다수는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유력한 대안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정치 의제 또는 사회 운동의 의제로 제기된 보편적 기본소득론에 대한 입장을 정립하고 관련 논쟁에 참여한, 독일과 영국의 노동조합이 제시한 분석을 살펴본다.
 

1. 독일노총(DGB)

 
독일의 노동조합 상층조직들은 기본소득 논의에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독일노총 내 양대 최대조직인 금속노조와 통합서비스노조(Ver.di)가 특히 적극적으로 논의에 개입하고 있다. 금속노조 의장단 보고서 『무조건적 기본소득: 복지국가 4.0에 역행하는 모델』과 통합서비스노조 경제정책국이 발행한 보고서 『무조건적 기본소득: 듣기 좋은 아이디어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중심으로 독일 노동조합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다. 

두 노조는 기본소득론 비판에 앞서 독일기본소득네트워크를 통해 제시되는 기본소득 모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해방적·좌파적 유형과 신자유주의적 유형으로 분류한다. 전자는 빈곤 및 사회적 배제 감축, 자산심사 철폐, 소득과 부의 하향식 재분배, 유급노동과 사회수당의 분리, 유급노동 바깥의 활동 개선, 강요된 노동 및 경제성장 모델 철폐, 임금노동에 대한 해방적 대안 도입 등을 지향한다. 현행 사회보장제도는 유지된다. 후자는 주로 대형 기술 기업 임원들이 주창하는 것으로 기본소득의 엄격한 요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하지만, 기본소득개념으로 분류되어 논의된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출처: Krämer, Ralf. “Universal Basic Income-not really an alternative”, Dialogue of Civilizations Research Institute, 2019. 
 
두 유형 모두 독일 노동조합의 비판 대상이다. 보고서는 노동조합이 세계에 대한 현실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사회·정치적 과정이 실제로 초래할 결과를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해방적·좌파적 기본소득 개념은 다양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실현가능성이 없고 순전히 희망적 사고의 결과로 나타나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유급노동과 무급 활동 중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할 만큼 소득이 보장되고, 복지국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형태의 기본소득은 현실적으로 조달이 불가능한 만큼의 재원을 필요로 하므로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유형은 재원 조달 가능성과 정치적 역관계 등을 고려하면 좌파적 유형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신자유주의의 급진적 판본의 이행을 앞당기는 데 기여하는 일종의 트로이 목마다. 더불어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연대적 혁신을 위한 정책이라는 노동조합의 목표와 원칙에 반한다. 두 노조의 이러한 주장의 구체적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재원 조달의 실현불가능성

기본소득론자들은 부가세나 소비세, 또는 소득세, 자산세, 지본 이동에 대한 과세 등 추가적인 과세를 재원 조달 경로로 제시한다. 통합서비스노조는 몇 가지 가정과 계산을 통해 좌파적·해방적 기본소득 유형은 재원 조달의 측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8250만 인구에게 매월 1000유로를 지급하여 연간 총 1조 유로가 소요된다고 가정하여 이를 2016년 국민소득, 사회보장예산, 조세수입과 비교한다. 해방적 모델에서는 기존 사회보장 서비스가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하고 기초사회보장, 사회부조, 아동수당, 부모수당, 학생우대대출 등 순조세 기반 소득지원만 기본소득에 통합된다. 2016년을 기준으로 이에 대한 지출은 행정비용을 포함하여 1천억 유로(전체 사회예산 9,650억 유로의 약 10%)였으므로 기본소득 도입에 필요한 1조 유로 중 10%만 사회보장예산 감축분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 나머지 9천억 유로는 추가적인 조세를 통해 조달해야 하는데 이는 GDP(3조 유로)의 30%에 해당하고 지자체, 주정부, 연방정부의 복지 서비스 지출 전부와 맞먹는다. 9천억 유로는 매년 지속적인 수입으로 들어와 재분배되어야 하므로 개인 자산, 화폐 발행, 은행구제기금(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채로 조달한 규모는 3천억 유로)을 재원으로 사고할 수는 없다. 

우선 고소득자와 자본소득에 대한 추가적인 조세만으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건 실현 불가능하다. 현재 이윤 및 자산소득에 대한 조세를 두 배로 인상하더라도 1600억 유로에 불과하다. 7400억 유로를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대중적인, 특히 노동자들의 증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임금세 소득은 (아동수당 공제 후) 2223억 유로이며 19%의 부가세는 2190억 유로였다. 2016년 총임금은 1조 3110억 유로였다. 연금 및 퇴직 후 소득과 사회보장급여의 합계는 3870억 유로였다. 총임금에 더하면 1조 6980억 유로다. 앞서 말한 7400억 유로를 소득세를 통해 조달하려면 임금과 연금 총액에 대한 세금이 44%p 인상되어야 한다. 평균적으로 임금총액 대비 조세 및 사회보험료 부담은 현재 34%(임금세 16.4%, 사회보험 기여 17.4%)에서 78%로 증가한다. 결국, 조세와 사회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는 지하경제 유인이 증가하고 이는 경제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유형은 현존하는 사회보장 체계를 폐지하고 임금 등 여타 소득이 상쇄되므로 좀 더 실현가능성이 있겠지만, 임금노동자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 양자의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악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사회보험 체계를 일시에 폐지하여 재원을 마련한다는 구상 역시 실현불가능하다. 이미 수급권을 획득한 이들에게 보장된 급여를 지급하는 데 적어도 40년이 소요된다. 기계세나 로봇세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기계나 로봇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주들이 세금을 내는 것인데, 고정자산, 기반설비, 지식으로부터 부가 발생한다는 주장은 오류다. 이를 인간의 노동으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사용했을 때만 새로운 부가가치와 소득이 발생한다. 국민소득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재원을 부채나 헬리콥터 머니를 통해 조달하는 것 역시 초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된다. 
 

2) 사회보장 약화 

두 번째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기존 사회보장 시스템을 강화하기보다는 약화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사회보험, 사회부조 및 하르츠 IV, 노령인구 및 소득 감소자에 대한 기초생활보장, 생애주기에 따라 특별한 필요가 있는 이들에 대한 지원 등 복잡한 사회보장 구조를 단순한 일괄금액 지급 형태로 대체한다면, 특별한 필요는 더 이상 고려되지 않을 것이고 사회보장의 축소와 사회불평등 심화로 귀결될 것이다. 해방적·좌파적 유형에서는 모든 사회보장 급여가 기본소득으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험, 사회부조, 추가적인 필요에 따른 급여는 유지된다고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므로 더욱 실행 가능한 유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제기된다. 

첫째, 거주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주거비용, 가족 구성, 질병 또는 장애 여부 등 특별한 부담이나 생애주기상의 상황 등 개인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금액을 지급하는 것은 오히려 불공정하다. 둘째, 빈곤과 사회적 배제는 단순한 금전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참여 및 발전 기회 결핍의 결과다. 따라서 교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필요에 따른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좋은 일자리로 통합을 촉진하는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사회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보장제도는 기초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기본소득 이상으로 기초생활 수준을 넘어서는 보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경우 민간 보험을 찾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사회보장이 개별화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다. 
 

3) 임금·단체교섭·노동시장 표준 위협 

기본소득론자들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임금노동자들의 교섭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어 모두가 나쁜 일자리를 거부한다면 임금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러한 주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노동시장과 임금결정이 작동하는지를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다양한 노동자 집단의 임금은 생산성 수준을 바탕으로 역사적 계급투쟁을 통해,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되어 왔다. 각 노동시장 내에서의 수요와 공급 간 관계 역시 중요하다. 대다수 노동자에게 기본소득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불충분하고 저숙련 노동자들은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어 임금이 저하된다. 수요가 높은 자격 조건을 갖춘 이들만 개별적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차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할 때만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다. 경험이 증명하듯 강력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제도를 통해 임금 불평등을 저지할 수 있다.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은 노동시장 내에서 노동자 간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권력 관계를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이 없다면 노동자들의 교섭력은 사용자가 요구하는 자격 조건을 갖춘 노동자의 수가 충분한지 부족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임금 불평등을 강화하고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게 된다. 

기본소득은 최저임금 또한 약화하게 된다. 지금까지 기본소득의 최소 요건은 전일제 고용에 대한 임금이 최소한 생계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의 존재이유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모든 임금이 기본소득에 대한 보충적 임금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유형의 기본소득 개념의 주창자들은 최저임금, 노동권, 단체교섭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사회적 지향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을 도입하더라도 최저임금과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수준의 노동법적 보호가 유지되도록 할 충분한 사회적 힘이 있는지 불확실하다. 단체교섭과 노동조합은 약화되고 소득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에 더하여 높은 세율은 비공식 부문을 더욱 키울 요인이 되고 이는 점차 임금 구조, 복지국가 재원, 기본소득의 기반을 허물 것이다. 
 

4) 노동의 미래에 대한 잘못된 가정

기본소득론자들은 디지털화와 기술발전으로 현존하는 대다수의 일자리가 사라져 대량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 가정하고, ‘유급노동과 소득의 분리’로서의 기본소득의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미래에도 유급노동이 사회적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므로, 기본소득의 도입보다는 노동자들이 전환에 조응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자동화·디지털화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에 대해 여러 연구가 각기 다른 전망을 제시하는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전체 일자리의 12%가 디지털화로 인해 위험에 처할 것이고 31%가 상당한 변화를 겪으리라 예측한다. 이에 따라 중간 수준의 자격을 갖춘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압박이 가해질 것이고, 노동시장 내에서 고숙련 노동과 저숙련 노동 간 양극화가 디지털화로 인해 더욱 악화할 것이다. 그러나 OECD에 따르면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는 어느 정도는 통제가 가능하다. 

독일 금속노조는 디지털화로 인한 ‘노동의 종말’을 예견하기보다는 산업·업종의 변화, 요구되는 자격의 변화를 예상하고 이러한 변화를 노동자들이 조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핵심은 모든 산업부문에서 앞을 내다보는 인력 계획을 수립하고, 현재의 노동력이 필요한 자격을 갖춘 미래의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처럼 일자리 상실을 국가의 지원으로 보상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디지털화라는 변화를 노동자들의 이해를 반영하여 구체화하고, 변화의 시기에 걸맞은 사회보장제도와 교육훈련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합서비스노조는 현재는 생산성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약화되는 추세이며, 디지털화는 이러한 전반적인 추세에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 남유럽 또는 구동독 등의 실업률 급증은 생산성 도약이 아니라 경제위기의 결과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파트타임, 열악하고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기술진보의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탈규제화의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유급노동과 소득의 분리는 몇몇 개인에게는 가능할지 몰라도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다. 다른 모든 현금 지급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은 유급노동을 통한 상품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기본소득이 노동의무에 대한 해방적 대안이며 모두가 의미 있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더 많은 사람이 유급노동에서 제외될수록 다른 더 많은 사람이 그만큼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자원활동, 가족활동, 자신이 정한 활동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것이라는 주장 역시 모호하다. 유급노동 총량이 줄어들면 기본소득의 경제적·재정적 토대가 흔들린다. 자동화와 경제위기 결과로 고용이 줄어들어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기본소득은 유급노동에 대한 해방적 대안도 아니고 대량 실업의 해법도 아니다. 
 

5) 노동조합의 대안 

위의 비판을 바탕으로 통합서비스노조는 모두를 위한, 적절한 급여가 보장되는 양질의 유급노동에 대한 권리 보장을 우선적인 목표로 제시한다. 열악한 고용과 소득 및 부의 불공정한 분배를 해결하기 위한 해방적 대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유급 또는 무급 노동을 인간답고 민주적인 일자리로 만드는 것이고, 여기에 할애하는 시간을 단축하여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또 소득 및 부의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체협약 또는 법에 의한 노동시간 규제, 강력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단체교섭과 노동조합의 실행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각종 형태의 불안정 노동 철폐, 최저임금 인상, 실업감축(장기실업자에 대한 지원 강화 및 양질의 협약임금이 적용되는 일자리 제공)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회보장 체계가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법정 연금 급여 수준이 획기적으로 인상되어 노령 인구나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인구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공공부조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제재 없이 실행되어야 한다. 교육, 보건의료, 주택, 문화, 여가, 스포츠 등에 대한 필요에 주목하여 공적 서비스 강화와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원 확충을 위해 기업 및 부자들의 저항과 공정한 조세와 사회정책을 잠식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압도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더 많은 동맹세력과 연대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사회복지국가 4.0(Sozialstaat 4.0)’이라는 표제로 제시한다. 이 구상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설명된다.

첫째, ‘모두를 위한 사회보장’은 현존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요구다. 노령, 장애, 실업 또는 경제활동 중단 상황에서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한편, 유급노동이 아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수행하거나 새로운 자격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활동 또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업보험 및 조세 기반 기초사회보장제도도 존엄한 삶이 보장되고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받지 않도록 재설계하는 한편, 취약한 사회구성원이 중산층 혹은 사회적 평균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사회보장 및 사회서비스의 기본구조가 기회를 보장하고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충분한 사회보장제도,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을 갖추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조세 정책을 통해 충분한 재정을 갖춰야 한다. 

두 번째는 양질의 유급노동에 공평하게 참여할 권리다. 미래에도 유급노동이 사회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 참여의 중심적 경로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전제로, 디지털화로 인한 일의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 참여 기회가 누구에게나 보장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관한 요구다. 양질의 자격평가 인정제도, 평생훈련, 직업 변경을 위한 기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관한 공적 서비스가 강화되어야 하고 기업 내에서는 종업원평의회가 제도 실행과 설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유급노동 참여의 범위와 질은 돌봄노동에 대한 책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유급노동과 돌봄노동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병행할 수 있도록 돌봄 인프라를 강화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양질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불안정노동을 감축하고 단체협약 적용률을 확대해야 한다. 미니잡(근로시간이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짧은 초단시간 고용 형태)과 객관적 사유가 없는 기간제 계약을 철폐하고 위장도급을 억제하는 한편 임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고용·노동정책은 모두가 양질의 일자리에 참여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셋째, 고용안정과 자기 결정이 보장되는 노동의 미래로의 전환을 노동조합이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전환을 설계하는 데 발언력을 지녀야 한다. 사용자는 기업 내 직무 개요 변화를 예상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 인사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노동조합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면서 고용이 지속되도록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현행 조업단축지원금(Kurzarbeitergeld) 제도의 성격을 이미 발생한 혹은 임박한 위험에 대비하는 것에서,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조기에 예방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원기간 역시 24개월로 늘려야 한다(전직 지원에서 전환을 예비하는 것으로). 실업보험 역시 고용보험으로 재설계되어 산업전환과 디지털화에 대비하여 획득한 자격증이 구식이 되거나 가치 절하될 위험이 예상되는 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하고 육아휴직, 재훈련, 가족간호휴가로 인해 누구도 고용에서 영구적으로 퇴출당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2. 영국노총(TUC) 

 
영국노총은 148차 정기 대의원대회(2016년 9월 11~14일, 브라이턴)에서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를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현대화 방안의 하나로 검토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우선 이러한 결정의 무게를 파악하기 위해 대의원대회 결의안의 위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영국노총은 3~4년을 주기로 중기적 전략 목표를 채택하는 대부분 유럽 노총과 달리 대의원대회를 매년 9월 둘째 주 월요일부터 나흘간 개최하여 중앙위원회가 제출한 한 해 사업보고 및 평가를 채택하고 가맹 노조가 제출한 향후 활동 과제에 대한 제안을 검토하고 채택한다. 대의원대회의 주기 외에도 특이한 점은 향후 활동 과제에 관한 안을 노총의 중앙 조직이 제출하지 않고 가맹 노조가 제출한다는 점이다. 각 가맹노조는 노총의 사업 방향 및 구체 과제, 이에 따른 기구 구성 등을 담은 250자 내의 동의안(Motion)을 최대 두 개까지 제출할 수 있다. 이렇게 제출되는 동의안은 해마다 80~90개에 이르는데, 대의원대회에서 토론과 수정을 거쳐 조합원 수에 따라 비중을 둔 각 가맹노조의 찬반을 확인하여 채택되면 해당 년도 구체적인 사업계획 수립의 기초가 된다. 

영국노총의 최대규모 가맹조직 중 하나인 유나이트 노조(Unite the Union)가 제출한 68호 동의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편적 기본소득’ 구상과 그 다양한 모델이 영국과 세계 곳곳에서 논의되어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 해소 방안의 일환으로 남성과 여성을 위한 현대적 사회보장제도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영국노총은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의 기초를 포함하는 진보적인 제도를 주창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별적으로 지급되어야 하고 포괄적 공공서비스와 양육수당을 보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점점 더 징벌적이고 수급자를 낙인찍는 효과를 내는 현행 제도보다 행정 처리와 신청이 더 용이할 수 있다. 제재 부과는 사람들을 사소한 이유로 빈곤으로 내몰 수 있다. 

주거 위기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높은 주거비용을 부담하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보충적 급여를 지급할 필요가 있고, 항시적으로 장애인에게 보충적 급여를 지급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제도에서 위의 원칙을 포함하는 새로운 제도로의 이행은 저소득층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사회보장제도는 강력한 노동조합, 일할 권리, 고용안정과 충분한 급여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위한 우리의 의제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영국노총 대의원대회에 앞서 유나이트는 같은 해 7월에 열린 정책대회에서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과 빈곤 철폐를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저임금, 일하는 빈곤층,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모두를 위한 사회보장, 경기부양 및 일자리 창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결의안은 현행 사회보장제도가 자산심사에 의존하고 자의적인 제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적정 수준의 최저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기본소득, 즉 무조건 모두에게 지급 중단 없이 제공되는 제도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 ‘커뮤니티, 청년, 비영리단체 위원회’가 발의한 것이다. 결의안을 채택함에 따라 영국노총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유효성을 검토하는 연구 작업을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에 의뢰한 후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7년 7월 발표된 보고서 「보편적 기본소득과 노동의 미래」(“Universal basic income and the future of work”, Harrop, A. and Tait, C., 2017)는 최근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진 배경을 현재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확대와 기술변화가 미래 노동시장에 가져올 고용감소 우려에서 찾는다. 사회보장제도 및 고용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의 세계의 변화를 △불안정 노동의 확대, △임금 정체, △고숙련 노동력 부족과 저숙련 일자리의 부족, △불평등 확대, △일자리 감소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를 종합하여 기본소득 구상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시장이 직면할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지만, 그만큼의 문제점 역시 내포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분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불안정 고용 관행의 정당화

우선 불안정노동의 확대에 관해 가장 중대한 변화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자영노동자(self-employed)의 급증과 일정한 노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0시간 계약, 간접고용, 비자발적 파트타임 등 비전형 노동의 증가다. 이러한 노동의 불안정화는 새로운 플랫폼 기술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 모델의 출현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와 정부의 무대책으로 영국은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불안정한 일자리의 비중이 높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고용 여부 또는 고용상 지위에 상관없이 일률적인 금액으로 안정적인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불안정한 노동시장하에서 더 장점을 지닌다고 여겨진다. 한편 기본소득은 상대적으로 더 오랜 기간 동안 유급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보상이 높아지므로, 더 적게 일하도록 권장하는 셈이다. 대다수가 유급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선택하면 이는 노동 공급 감소로 이어지고 경제성장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기본소득은 불안정노동의 상태에서도 삶을 덜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신 불안정 노동 상태의 인구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노동자의 교섭력과도 관련이 있는데 구직활동 요건이 따르지 않는 대체소득의 원천은 저임금 일자리에 대한 수요를 감축하여 노사 간 권력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재분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기본소득의 충격흡수 기능이 오히려 초유연한 고용관행을 정당화하고 사용자가 착취적 조건에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든다는 반론도 있다. 이런 점에서 좌파적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을 도입하더라도 최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대한 규제 강화를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적 옹호자들은 기본소득이 최저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을 대신할 시장친화적 대안이라고 옹호한다. 
 

2) 생산성 감소에 따른 임금정체의 해법이 될 수 없음 

영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10여 년간 오르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러한 임금 정체의 원인이 낮은 생산성 증가 때문이지 분배방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2008년 위기 이후 영국의 생산성 수준은 G7 평균 이하에서 시작해서 낮은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에 더하여 브렉시트로 인해 무역 투자가 감소하고 경쟁이 생산성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하면 향후 몇 년간 더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생산성 정체 상황에서는 기본소득이 임금정체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다. 기본소득은 원칙적으로 경제성장이 아닌 재분배 정책이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세금에서 재원을 확보하는 기본소득 제도라면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을 통한 평균 임금 상승 효과를 꾀할 수 없다. 장기적 추세가 생산성 증대와 임금 인상이 불일치하는 경우라면, 즉 노동소득분배율이 감소하는 경우라면 이윤, 자산,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여 자본에서 노동으로 자원을 재분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은 노동소득분배율의 장기적 감소를 보이는지 불분명하고(위기 전 장기평균과 거의 같은 수준) 생산성 증가 수준이 낮은 게 더 큰 문제다. 
 

3) 구직 지원 없는 훈련의 실효성 의문

세 번째로, 숙련 노동력의 수요 공급 미스매치는 영국에서 오래된 문제고 향후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 이후 엔지니어링, 테크놀로지 산업, 건설 등의 분야에서 노동력의 유입이 제약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덜 필요한 기술을 과도하게 갖춘 경우 자신의 역량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쇠퇴하는 산업 및 직종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기술과 미래의 일을 매치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숙련의 미스매치는 산업 전환의 속도가 빠른 선진국에서, 특히 기술 교육 및 평생교육 제도가 취약한 영국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현행 구직수당보다 새로운 숙련을 획득하고 일자리를 이동하는 데 더 용이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여 일정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납부했거나 전체 가구 구성원의 소득과 자산 수준이 낮을 때 지급되는 구직수당과 달리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지급되므로 단기적 구직보다 장기적 재훈련을 우선적으로 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 연계 조건 없이는, 산업 쇠퇴로 인한 실업자는 장기적 실업 상태에 빠지게 된다. 기술교육과 평생교육 체계가 부실한 영국에서는 실업 상태에서의 훈련이 고용 가능성 또는 미래 소득을 향상시킬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4) 불평등 확대

네 번째로, 장기적인 산업 변화로 고숙련 직종과 저숙련 직종이 분화하면 급여 수준이 양극화할 것이다. 고부가가치 제조업, 전문서비스, 디지털 산업 등 고생산성 일자리가 형성되는 반면 중간수준의 일자리는 축소되어 저임금 직종 노동자들은 발전할 기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쇠퇴산업 고숙련 노동자가 새로운 기술이나 전문성을 획득하기보다는 저임금 일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리적 불평등 역시 큰 문제다. 고생산성 일자리가 런던과 남동부에 집중되어 전체 산출의 40%를 책임지는데, 기술 변화는 이 지역의 경제적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누진적 조세 제도로 재원을 마련하고 충분한 수준의 급여를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는 소득불평등을 줄일 수 있고 지리적 재분배 효과도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자산심사를 조건으로 하는 사회보장 급여보다 재분배 효과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시된 대부분의 기본소득 모델은 현존하는 사회보장 급여보다 낮은 수준의 급여를 제시하고, 조세 인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다. 이러한 모델의 주된 수혜자는 최빈층이 아니라 중저수준의 가구가 될 것이다. 자산심사 기반 제도보다 급여 수준이 낮지 않도록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장기적으로 충분성을 지속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5) 유급노동시간의 불평등한 분배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기계학습 등 기술 변화가 전례 없는 전문적·인지적 노동의 자동화를 불러와 넓고 깊고 빠른 노동시장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역사적 데이터를 살펴보면 영국의 노동 강도는 지속해서 감소해 왔다. 이는 일자리 증가와 노동자당 유급노동에 투여한 시간의 감소가 결합하여 나타난 결과다. 과거 자동화 시기에는 노동수요는 감소하고 생산성은 증가했는데 시간당 임금의 상승으로 이에 대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일·생활 균형을 추구하고 인구고령화 추세로 16~64세 인구의 비율이 줄어든다면, 또 지난 200년간 노동강도 감소 추세를 고려한다면 적당한 수준의 노동 수요 감소는 우려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다면 확실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경제 전반에 걸쳐 일을 덜 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덜 일한만큼 줄어드는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추가적인 소득원 또는 노동시장 밖으로의 퇴출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생산성 수준에 변화가 없을 경우에 기본소득은 답이 되지 못한다. 생산성 증가가 합리적 수준으로 일어나지만 이에 상응할 만큼 임금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이윤 또는 자산에 대한 조세로 조달되는 기본소득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급노동시간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면, 다시 말해 전반적으로 고용률이 감소하고 노동시간 감소를 강요당하더라도, 특정 기술 보유자는 노동시간이 늘어난다면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잘 설계된 자산심사 기반 사회보장급여로도 해결할 수 있다.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미래에 일의 세계에서 발생할 위험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은 몇 가지 장점이 있지만 좀 더 현실적인 개혁이 대안적 해법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현존하는 사회부조 및 기여형 급여의 보장 수준을 높이고 보편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꾀하거나 변화하는 노동세계에 맞는 대안적 보편적 지원 체계(학습수당·아동수당 대폭 인상, 비과세 소득 제도 개편)를 도입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에는 보편적 기본소득에 관한 동의안을 발의한 유나이트 노조도, 영국노총도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더욱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우선, 유나이트 노조의 주요 논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8년 4월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중단에 대해 샤론 그레이엄 조직화·영향력 국장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중단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실행이 간단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며 심각한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 누가 어떻게 기본소득의 액수를 결정할 것인가? 기본소득이 나쁜 사용자들에게 지급되는 보조금 역할을 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기본소득이 노동자들의 발언권과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것을 중단할 것인가? 우리가 사회의 주축으로서 역할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보편적 기본소득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자동화가 일자리의 종말이 아니라 더 나은 일자리를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인력감축에 대한 보상을 교섭하는 데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주 노동시간의 단축과 더 나은 퇴직 후의 생활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기지만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노동당 그림자 내각 재무장관 존 맥도넬이 자신이 위탁하여 작성된 정책 보고서를 환영하며 보고서의 권고를 선거강령에 반영할 것을 선언한다. 그러자 그레이엄 국장은 유나이트는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생활수준의 최저선으로 기능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면서도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인더스트리 4.0으로 알려진 최근의 자동화 물결의 결과로, 사용자들이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일자리 감축과 사용자로서 책임 회피의 방안으로 이용하도록 둘 수 없다. 노동은 사회의 주축으로 유지되어야 하며 단지 일을 중단한 사람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뒤이어 인더스트리 4.0이 가져다줄 이득을 사용자들이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쟁취하기 위해서는, 단체교섭력의 확대와 임금삭감 없는 주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언어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현재 기본소득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당을 뜻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과거에는 이를 실업수당(dole)이라고 불렀다. 유나이트는 지난 3년 동안 이런 상황을 대비해 왔다. 우리는 현장 대표들과 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하는 신기술협약(New Technology Agreements)을 계획해 왔다.” 

최근 영국노총의 입장 역시 보편적 기본소득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조치는 노동조합이 고용 유지·소득 지원 정책에 대한 요구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3월 23일 영국이 전면 봉쇄에 돌입하고 경제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하자, 영국노총은 공공보건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생계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례 없는 조치를 도입했다. 방역을 위한 봉쇄가 해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무급휴직 상태인 노동자들이 기존 임금의 80%(2,500파운드 상한)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고용유지 지원제도(Job Retention Scheme)와 자영노동자(Self-employed)가 기존 소득의 80%(2,500파운드 상한)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자영노동자 지원제도를 도입했다. 

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상병수당을 지급받게 되는데, 이는 급여가 너무 낮고(주당 94.25파운드), 소득이 일정수준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되어 200만 명 이상이 상병수당에서 배제되고 이 중 7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정부는 상병수당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유니버설 크레딧의 지원 수준을 높여 상병수당과 동일한 금액의 지원이 가도록 했다. 영국노총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확인된 기존 사회보장체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입된 긴급 조치의 존속·확대 방안을 담은 정책요구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고용유지지원 제도를 무급휴직뿐만 아니라 조업단축에 대한 지원으로 확대할 것.
• 의료적 이유로 휴직한 임신한 노동자에게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하여 평소 임금의 80%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할 것. 
• 자영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협의하여 자영노동자 소득지원제도의 결점을 보완할 것.
• 상병수당 급여수준을 현실화 할 것(현행 94.25파운드에서 실질생활임금 수준인 320파운드로).
• 상병수당을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적용할 것.
• 유니버설 크레딧 지급에 대한 요구 조건을 폐지할 것.
• 유니버설 크레딧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 저축액 기준을 폐지할 것.
• 최초 유니버설 크레딧 적용 시 5주 대기기간을 폐지할 것.
• 유니버설 크레딧 급여수준을 인상할 것(주당 260파운드).
• 아동수당을 대폭 인상할 것. 
• 노동세액공제 최소 노동시간 요건을 폐지할 것. 
• 가구에 대한 폭넓은 지원 패키지를 도입할 것. 
 

3. 결론 및 시사점

 
기본소득론은 자동화와 디지털화 등 기술변화, 기후변화, 인구구성변화에 따른 일의 세계의 변화/전환 속 노동자들의 권리 강화라는 과제를 노동조합과 공유한다. 일부 유형의 기본소득론은 빈곤과 불평등 해소, 유급 고용과 돌봄 활동의 공정한 배분, 소득재분배 등의 목표를 노동조합과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문제들에 대해 노동조합이 제시하는 정책대안은 기본소득론과는 원칙과 접근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노동에 대한 관점이다. ‘노동이 가치를 창출한다’, ‘노동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이루는 근간이자 평등을 실현하는 전제다’, ‘노동이 삶을 구성하고 노동이 사회화와 사회적 관계의 매개다.’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은 완전고용과 보편적 노동권을 추구한다. 따라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이러한 일자리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고용정책 및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중시한다. 기본소득론은 탈노동에 가깝다. 

둘째는 노동조합의 기능과 사회적 역할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사회적 요구로 제기하고 이를 다양한 경로로 실현하며,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 표준을 확립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고용과 노동시간, 소득을 연대의 원리를 바탕으로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은 노동조합을 단순히 노동시장 내부자의 이익을 주로 대변한다고 단정하거나 정책 의제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동원 대상으로 보고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은 간과한다. 

독일노총과 영국노총의 사례를 볼 때 기본소득에 관한 노동조합의 입장은 일의 세계 변화 및 사회보장 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구체적 진단 및 분석에 바탕을 두고 대안적인 체계의 현실적 실행(이행)경로를 탐색하는 가운데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