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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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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2교육비평.hwp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로 포장된 입시제도

불평등 재생산의 주요 고리

손지희 | 불광중 교사, 진보교육연구소
학력고사의 암울한 기억과 2004 수능 괴담 그리고...

#1. 슬픈 오버랩
절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오타다. 정정한다. “행복은 성적순이잖아요!”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조한혜정 식으로 말해볼까? 소품종 다량생산시대에나 맞는 암기주입식 근대적 학교교육의 굴레 속에서 사고력과 창의력이라곤 배양 받지 못한 암울한 세대.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수능 세대보다 멍청할지도 몰라.
1994학년도부터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었고, 1998년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2002년 무시험 전형’을 언급했다. 1999년, ‘학교붕괴’ 혹은 ‘학교붕괴론’으로 학교와 교사는 몸살을 앓아야 했다. 烏飛梨落.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선택형 교육과정체제에 맞춘 대입을 1년 앞둔 지금, 입시전문가들의 친절한 조언과 각종 분석이 난무한다. ▷ 수능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내신관리에도 신경쓰고 논술과 면접에도 대비하라.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수능이다. (=슈퍼수험생이 되라?) ▷ 오래 준비해야 한다.(=가능하면 어렸을 때부터 입시준비를 시작해라?) ▷ 맞춤식으로 전략을 짜라.(=필요한 것만 골라서 공부하고 정보력을 업그레이드해라?) ▷ 재수생 초강세. 학교는 학원보다 입시경쟁력에서 더욱 무력해질 것이다.(=사교육의 도움을 받아라? 재수는 남는 장사다?) 이해찬이 사기 친 건가?
노무현 정부 들어 내내 그랬듯 수능 역시 탈도 많고 말도 많다. 수험생 자살이란 안타까운 사건이 올해에도 재연됐고, 유명학원 강사가 출제위원으로 활약했다. 특정 문제집 지문이 고대로 출제되었다는 괴담 아닌 괴담도 나돈다. 여기에 오답논란까지. “세계화, 정보화, 지식기반” 사회인 21세기 위로 암울한 80년대가 중첩된다. 그때는 적어도 사교육비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는 없었다. 전두환에게 감사라도 할까? 과연 나아진 것은 무엇인가? 물론 달라진 것은 많다!

#2. 사고력 신화와 기막힌 모순
대관절 수능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1998년부터 수능을 주관하는 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와 지식까지 검색해주는 포탈 싸이트를 찾았다.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을 알아보는(=측정하는) 사고력 중심의 ‘발전된 학력고사’가 수능. 강조된 대목은 ‘사고력’을 요하는 평가라는 점. 그런데 어라? 내신성적이 높았던 학생들보다 수능시험을 잘 본 학생이 정작 대학교육에선 학업성취도(=학점)가 낮다고? ‘고급’(=비싼) 사교육을 많이 받은 강남지역 부잣집 자제들이 대학에선 죽을 쑨다고?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을 ‘측정’하는데 수능이 실패하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대학교육에서 사고력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뜻? 학력저하론이 들끓은 지 오래다. 수능세대 역시 학력고사 세대보다 나을 게 없다는 얘기인가? 하나 더. ‘사고력’이 중요한 수능시험을 잘 보려면 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뜻?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과연 선발에 있어서 ‘사고력’이라는 기준은 善인가? 수능이 측정하는 건 정말 사고력인가? 학교도 못한다는 사고력 신장을 사교육이 해내고 있나?

#3. 큰 혼란은 없을지도? 아니 이미 충분히 혼란스럽고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선택형 교육과정에 맞춘 2005입시는 큰 틀에서는 2002입시의 연장이되 가장 중요한 전형요소로 대접받는 수능체제가 선택형으로 바뀐다. 지난 2001년 12월 28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체제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당시 개편안의 핵심은 “현재는 5개영역(언어, 수리, 외국어(영어), 사회탐구, 과학탐구) 모두를 응시하도록 하고 제2외국어 영역만 임의선택으로 하고 있으나, 개편안에서는 모든 영역이 임의선택 영역이 되어 학생이 선택에 따라 일부 영역에만 응시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선택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시험의 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입시의 규정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선택형 교육과정과 어긋나는 수능시험을 시행할 경우 그들 말대로 교육과정의 ‘성공적 정착’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능이 당락의 주요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7차 선택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시험의 변화는 수험생 당사자는 물론 관계자 모두에게 예민한 사안이다.
지난 8월 교육인적자원부는 수능시험영역(과목)을 수험생이 ‘자유로이 선택’하여 응시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지금으로선 그다지 큰 혼란은 예상되지 않는다. 각 대학들이 5개영역에 대한 완전한 ‘임의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 수능 반영계획을 세운 까닭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3+1 또는 2+1를 채택할 예정이다. 여전히 영, 수, 국 중심이되 여기에 사회, 과학, 직업 영역에서 과목 선택이 진행된다. 선택의 권한은 수험생이 아니라 대학이 쥐게 될 거란 예측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지금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다양화’ ‘자율화’ ‘특성화’를 빙자한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대학에 부여된 권리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미 2002학년도부터 ‘다양화’ ‘자율화’ ‘특성화’를 지향하는 대입체제가 시행되면서 일어나기 시작한 일이다. 2002년형 입시의 연장이기는 해도 대학별로, 모집단위별로 수능 반영영역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혼란과 불안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다. 고로 2002년 입시부터 시작된 자기 적성이 아닌 대학의 요구에 맞추는 ‘맞춤형’ 입시전략 강화가 수험생 입장에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선택’을 지고지순의 선이라 여기는(혹은 그렇게 가장한) 그들 눈에는 불완전하게 보일지라도 과목 선택의 폭이 이전보다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 속에서 교과 구조조정과 교원 구조조정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사교육 시장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선택형 입시를 대비해 여러 가지 상품을 준비 중이며 수능성적도 발표되지 않은 시점에서 재수생 강세를 들어 안심시키며 재수를 권유하기도 한다. 사교육 종사자들을 위해 입시를 바꿔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사교육시장은 입시변화에 발맞춰 번창 일로다.

입시제도, 그 현란한 변천사와 ‘다양화’의 절정 2005 대입제도

#1. 입시, 그 현란한 변천사와 갈수록 현란해지는 입시제도
“자주 바뀐다” “아무리 바꿔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바꿔야 한다!” 서로 모순되지만 다 맞는 말이다. 자주 손질이 가해졌고 손질해도 공교육 정상화에는 소용이 없었지만 그래도 바뀌긴 바뀌어야 하는 게 입시다. 짧은 인생을 돌아보건대 내가 기억하는 한 입시는 교육문제의 핵심 지위 자리를 양보한 적이 없다. 다들 모든 교육문제는 입시에 집중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적어도 현상적으로 확실하다. 사교육비 문제, 입시위주 교육으로 인한 초중등교육의 왜곡, 기타 등등. 모든 것은 입시에 맞춰져 돌아가고 입시는 교육주체의 행위 규범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들고 나오는 교육개혁안에서도 입시제도 개선은 늘 등장한다. 입시제도는 해방 후 크게 13번 세부적으로는 35번이나 바뀌어 평균 1년 2개월마다 바뀌어 온 꼴이다. 학생선발권을 누가 쥐었나를 놓고 입시 변화 흐름을 단순화시키면 대학자율기 -> 국가 독점기 -> 다시 대학자율 확대기로 요약된다. 최근의 대학자율확대는 ‘다양화’, ‘특성화’의 명분아래 대단히 복잡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로지 변함없는 사실은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중등교육 기관과 학교교사는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는 점이고 오늘도 어제처럼 철저한 종속구조 아래서 청소년들은 신음하고 있다.
2002년에 기본 골격을 드러낸 다양한 입시체제는 선택형 교육과정과 결합되면서 어떤 양상을 보일까? 요즘은 매스컴도 수능만 끝나면 쪼르르 유명 입시 학원의 진학담당자 먼저 찾아가니까 우리도 유명 학원 평가실장의 2005입시대비전략을 먼저 들어보자. “(대학에서 학교생활의 모든 것을 다 보여 달라고 하니 학생부 관리를 위해) 평소 학교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렇기는 해도) 수능시험에 대한 대비가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수능시험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많다. (대입전형이 대학마다 천차만별이므로) 진로선택을 조기에 하는 것이 좋다. (직접 출제범위에는 안 들어가지만) 국민 공통 기본 교과인 1학년과정도 중요하다. (너희들 바쁜 건 다 알지만) 다양한 분야의 독서경험이 필요하다.”
일단, 대학의 학생 선발권이 계속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2002학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복잡다단해졌다. 모집기간에 있어서는 수시/정시로 나뉘었고 전형방식도 일반/특별전형으로 나누었다. 가장 중요한 전형자료는 내신, 수능, 논술, 면접 등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전형자료가 다양해지다보니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 학교는 학교대로 대학이 요구하는 자료를 만드느라 분주하고 학생은 학생대로 틈틈이 경시대회에도 나가랴 봉사활동도 하랴 바쁘고 정신 사납다. 학생부 반영 영역도 교과 뿐 아니라 봉사활동, 출결, 수상기록 등 비교과영역이 반영되는 탓에 학교에서는 자기학교 학생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형식적 처리를 ‘감행’한다. 학생부도 어떤 곳은 석차백분율이지만 많은 곳이 평어 반영이므로 성적 부풀리기도 머뭇거려선 안 된다. 이렇게 복잡해진 탓에 수험생과 진학지도 교사의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본능적으로’ 입시상담을 위해 사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린다. 그것이 전문인 입시기관은 발 빠르게 분석자료를 내놓고 전략을 충고해 준다.
쉬우면 쉬워서 문제, 어려우면 어려워서 문제라는 식으로 변별력과 난이도 논란은 계속 있어왔지만 2005학년도 선택형 수능에서 심화선택과목을 중심으로 출제를 한다고 밝힌 상태여서 난이도 상승은 충분히 점칠 수 있다. 이미 수능 대비는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 의존하고 있는 마당에 난이도가 상승될 거라는 예측은 사교육 매출 신장에 희소식이다. 결국 선택형 수능과 결합되면서 안 그래도 충분히 복잡한데 더욱 복잡해질 전형 방식과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수능 덕택에 학교는 갈수록 진학지도전반에서 ‘무능’하다는 질타를 받을 것 같다. ‘입시’라는 잣대로는 사교육과 도대체 게임이 안 된다고들 한다. 이래도 ‘학교교육정상화’를 우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렇게 현 입시체제는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상은 고3담임교사조차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할 뿐이어서 ‘정보력’과 ‘경제력’이 대학가기의 절대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2. ‘다양화, 자율화, 특성화’란 포장을 벗기면? - 7차 선택형 입시의 ‘불온한’ 전제와 실상
선택형 입시는 보다 정교한 통제 기제다. 이미 ‘다양화, 자율화, 특성화’로 포장된 ‘새로운’ 입시는 학생들로 하여금 모든 생활을 1학년 때부터 신경 써서 관리하도록 요구한다. 실제 반영비중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몇 점 차이로 대학과 학과가 달라지는 판에 교과성적은 물론 출결, 봉사활동, 수상실적 등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전형자료로 활용되는 학교생활기록부. ‘성공’하고 싶거든 미리미리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불리하지 않을까, 학부모들로부터 비난받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성적 부풀리기를 위해 시험난이도도 조정하고 상도 적절히 남발하고 분배해 준다. 안 그랬다간 난리 난다. 교사의 평가권 실종.
다른 문제도 추가된다. 선택형 입시의 지원을 받아 정착 시도 중인 선택형 교육과정은 노동유연화를 위한 구조조정의 실마리다. 이미 음악, 미술, 체육 교과 교사들은 구조조정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대학의 과목선택이 영, 수, 국에 집중되고 학생들도 이에 맞춰 영, 수, 국을 ‘선택’하므로 그 외의 교과는 주변화되어 설자리를 잃어버린다. 현재는 교사수급에 맞추어 선택이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경직된’ 교사수급 방식이 다양한 선택을 가로막는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는 2005년을 경유하면서 활개 칠 것이다. 사회, 과학 등의 교과 역시 조만간 다양한 선택을 위한 유연한 공급방식을 구축하려 들 것이다. 그 방식은 이미 많이 구상되었고 진행 중이다. 기간제, 순회제, 복수전공, 부전공 등등.
복잡한 선택형 입시에 대비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맞춤형 전략. 뒤틀린 학교교육을 더 꼬이게 만들 전망이다. 선택형 입시체제에서는 오로지 대학가기에 학습목표를 맞추도록 허용했고 그러지 않으면 대학가기에 ‘실패’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입시와 관련 없는 것은 안 해도 되는 것이 선택형 입시이다. 입시과목이 아니면 그 순간 무의미해지는 마당에 입시를 그대로 둔 채 음, 미, 체를 내신에서조차 제외하겠다면 누가 그것을 배우려 들겠는가? 이는 보편교육의 교육목표 왜곡과 학교교육의 혼란을 의미한다. 인간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현실은 이토록 엄혹한 법이다. “보편교육 단계에서 마땅히 필요하니 입시와 상관없이 하자”고 하면 당신 말 옳다고 박수칠 학부모와 학생이 몇이나 될까? ‘선택’이 차고 넘치는 현실이 되고 나서 이런 얘기하면 현실 감각 없는 무모한 교사라 비웃음 당할 수 있다. 요컨대,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가 아닌 입시를 위한 맞춤형 교육은 극에 달할 것이다. 경쟁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기업형 인간의 양성. 7차 선택형 입시에 내밀히 깔린 불온한 전제다.

#3. 입시제도 변화와 살판난 사교육시장
사교육비 지출규모 증가는 현란한 선발방식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재수생 이하 자녀를 둔 가정(전국 5천 가구 1만3천명)의 사교육비 지출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의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체 가구 평균의 2.6배에 이른다. 고액과외가 제외되었을 가능성과 ‘줄여 말하기’를 감안하면 이보다 실제 수치는 더 크리라 짐작된다. 최근 들어 사교육비 지출증가폭이 커지고 있고 그것을 주도하는 건 아니나 다를까, 서울 강남권과 경기도 신도시인 것으로 밝혀졌다. 2001년은 2000년 대비 19.8%, 2002년은 2001년 대비 24.9%가 증가했다.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서울 강남권은 전년대비 73.7%, 신도시 지역은 110.6%나 급증했다.
2001년과 2002년 사이에 사교육비가 급증한 것은 변화된 입시와 관련이 있다. 2001년도는 과외금지위헌 판결이 나온 해이기도 한데, 변화된 입시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이에 자극받아 사교육 쪽으로 대거 분출되었다. 심층면접, 논술 대비용 신흥 사교육 시장이 생겨났고 자기소개서 대필까지 성황을 이루었다. 새로운 지출영역이 ‘다양한’ 전형 덕에 생긴 셈이다. 사교육 시장은 쾌재를 부르겠지만 알바까지 해야 교육비를 간신히 댈 수 있는 계층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한 일이다. 공납금도 제대로 못내는 판에...
결국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가 부추긴 복잡한 입시제도는 학교교육 정상화는커녕 사교육시장 육성과 사교육비 지출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부모의 호주머니 사정과 입시에서의 성패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지금 입시 자체가 철저히 특정 계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구성되어 있어서는 아닌지.

#4. 누가 ‘명문’ 대학, ‘좋은’ 학과에 많이 들어가는가?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꿈 서울대! 최근 몇 년 동안 서울대 신입생의 아버지 직업이 고소득 화이트칼라 계층인 경우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생산직인 경우는 그 반대다. 부모 세대의 관리, 전문직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8.7%인데 비해 2001년 신입생 가운데는 무려 52.8%나 된다. 또한 지역별로 볼 때 같은 해 서울출신이 전체 신입생 중 절반에 가까운(47.3%) 걸로 나타났고, 광역시까지 합하면 77%에 달한다. 게다가 2000년 서울출신 신입생 중 강남권 출신이 44.6%였다. 놀랍지 않은가! 현 교육시스템에서는 투자에 비례에 회수한다!
한편, 당락의 최대 변수인 수능 점수에 있어서 경제적, 문화적 자본이 많을수록 높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능 점수 분포를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련지어 분석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수준별로는 전문대 이상이 수능 상위 45%, 고졸 25%, 중졸 이하 15%의 분포를 보이고, 소득계층 별로는 수능 상위(25%) 분포는 상위층 35%, 중상층 23%, 하위층 22%, 직업범주별로는 관리 전문직 37%, 기능생산직 21%, 농림어업 15%로 나타났다. 스토리로 구성하면, 수능 성적이 높을수록 좋은 대학에 가고 상층 계급일수록 수능성적이 높으며 수능성적은 사교육비 지출과 비례하며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많다. 결국, 현 수능체제에서는 경제적, 문화적(대부분은 고학력, 전문관리직 계층임)으로 상층에 속해 있을수록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는 뜻이겠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 아니다. 부모를 잘 만나라!

#5. 학교교육의 결과를 가늠하는 도구로서 수능시험은 온당한가?
수능 준비는 학교에서 할 수 없다가 정설이다. 즉, 정시모집 당락의 주요변수인 수능을 잘 보려면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들을 한다. 실제로도 출혈을 감수해가면서 그렇게들 하고 있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강남의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과 재수생 초강세 현상이 근거로 꼽힌다. 수능에 ‘공교육 정상화’라는 잣대를 들이대 보자. 수능이 본질적으로 학교교육과 따로 놀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고등학교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도구로서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하지만 이것도 옳기만 한가? 대학이 정한 기준을 고등학교가 꼭 따라가야 하는가? 평가가 교육과정을 온통 지배하는데. 이런 정책은 옳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게 차라리 옳다. 가르친 사람이 평가도 해야 한다!
물론 평가방식의 차이를 떠나 입시경쟁의 배후는 서열화 된 대학체제다. 학생들을 갈라 서열화 된 대학체제에 배치시키는 선발기능이 입시의 핵심인 한, 어떤 방식의 평가를 도입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변별력 논란이 해마다 반복되는 이유 역시 입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개개인의 서열 확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평균 1년 2개월 꼴로 입시를 바꿔댔어도 심각함만 더해간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서열화 문제를 잠시 뒤로 미루고 수능이 지닌 문제부터 짚는다.
첫째,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한 대학에서 조사 분석한 결과 대학수학능력과 수능 성적은 정적 상관관계에 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고, 사교육을 많이 받고 대학에 온 학생은 대학공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이 표방한 바와 다른 결과라는 정도는 분명하다. 수능시험 역시 ‘유형화된 대비’가 가능한 시험이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사교육시장에서 ‘비결’을 집중적으로 학습하면 수능에서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과외가 허용된 환경에서 수능은 실시되었고 게다가 어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수능시험은 사교육비 지출규모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비극적인 것은 사교육에 대한 의존 속에서 수능시험만 잘 본 학생은 스스로 학습할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사교육에 찌들은 수동화된 학생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래도 수능이 사고력을 요하고 순순하게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고 우길 텐가? 능력을 박탈하는 시험 준비 과정이 과연 국가경쟁력 강화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사교육 의존도를 자꾸 높이는 국가고사, 과연 옳은가? 재수생이 수능에서 왜 강세를 보이는가도 따져보자. 현역들은 자기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듣고’ 다시 학원에 가서 ‘듣기’를 반복해야 하므로 자기 것으로 체화할 시간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교과서 바깥에서 수능이 출제되면 교과서를 이미 한 번 공부한 재수생이 유리한 건 당연지사다. 학원에서는 집중적으로 출제 가능성이 높은 다양한 자료를 정리해서 주입해주고 수험생을 자율학습까지 시키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학원이 경쟁력을 갖도록 조직된 시험이 학교교육의 무능함으로 표상되고 있을 뿐이다.
둘째, 현재의 수능은 결과적으로 잘 사는 계층에게 유리한 방식인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수능은 계급적 역학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본대로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수능 성적은 밀접한 상관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을 뜻하는가? 수능이 학교교육에 충실한 것만으로 잘 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며 이른바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전 국민의 교육기회를 가름하는 시험으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자세로 올바른 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이렇게 이미 가진 자본을 ‘측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배타적으로 전유하려는 속셈과 다르지 않다.
예전의 ‘암울한’ 시대에는 적어도 이런 기막힌 일들까지 벌어지진 않았다. 물론 그 시절이 그립다는 얘기는 아니다. 좋은 말로 치장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교육과정과 입시가 결국은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것들의 조합일 뿐이고 학교를 더욱 무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문제다.

선택 담론의 다음 수순과 공교육 정상화의 길

#1. Final Analysis : 2005 수능체제는 과목선택제를 넘어 학교선택제로 가기 위한 연결고리이다.
앞서의 입시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모아진다.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를 빙자한 입시체제는
첫째, ‘대학 수학능력’과 ‘사고력’을 빙자한 수능과 복잡한 전형으로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지닌 계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둘째, 다양한 전형자료의 요구는 정교한 통제기제 구실을 하며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 입시체제는 경쟁으로 숨 막히게 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경쟁이데올로기를 내면화시킨다. 셋째, 그 본질이 복잡함에 있는 탓에 사교육비 지출을 강요한다. 새로운 입시는 사교육시장의 규모를 더욱 부풀려왔고, 선택형 수능에 맞춘 새로운 사교육 상품은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을 것이다. 넷째, 선택형을 빌미로 교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미 음, 미, 체 교사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있다. 다른 과목도 안심할 수 없다! 다섯째, 많은 사교육비 지출을 강요하는 새로운 입시체제 속에서 불평등은 심해졌다.
여기에 또 하나! 불완전한 선택형교육과정 시행을 ‘반성’하면서 학교선택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2005학년도 입시에서는 7차 선택형 교육과정에 따른 입시안이 발표될 당시의 예측만큼 큰 혼란을 당장에 불러일으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당장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맹점은 언제나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2005선택형 수능체제는 완전한 ‘선택체제’(학교 시장화)를 위한 ‘과도기형’에 불과하다. 그리고 불완전한 선택의 원인을 기존의 학교체제와 교사노동구조에서 찾고 ‘학교선택’으로 논의가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부터 심상치 않게 평준화 해체론이 여러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음을 주시하자. 수능을 치루고 내년 입시를 전망하면서 선택형 입시는 학교교육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흉흉한 전망까지 나돌고 있다. 기존의 학교체제는 무력하다는 강력한 암시다. 과연 평준화가 해체되고 학교선택제가 정착되면 학교교육은 정상화되고 불평등과 경쟁은 극복되는가?

#2. 이제 근본을 건드려야 한다.
“자주 바뀐다” “아무리 바꿔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바꿔야 한다!” 그렇다. 그래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입시제도만 손질해서는 학교교육의 정상화, 전인교육, 교육평등은 요원하다. 그것은 ‘입시’만 건드렸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맞춰 입시의 변화 방향 역시 불평등과 경쟁을 가중시키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형적인 대학 및 학과 구조와 노동시장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입시를 ‘개선’하고 대학정원이 수험생 수를 ‘웃돈다해도’ 경쟁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학교교육의 파행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무슨 처방으로도 사교육비 규모를 줄이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살펴본 대로 새로운 입시는 이미 ‘실패’로 판명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 수능을 기점으로 ‘자격고사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입시가 해온 서열화 기능을 전면 재검토할 만한 좋은 계기다. 한편 구조조정에 맞선 음, 미, 체 교사들의 싸움은 보편교육의 상을 다시 고민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갈수록 고착화되는 대학간 서열구조와 학과 간 서열구조,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학력차별과 학벌차별이 횡행하는 살벌한 노동시장의 문제까지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의대, 법대, 경영대, 사범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양성과 선택권 확대를 운운하고 평준화를 문제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다니. 아무리 다양성과 선택을 확대하고 평준화를 해체해도 의대, 법대, 경영대를 가기 위한 아주 편향된 학습에 매몰되는 건 막지 못한다. 오히려 더 부추길 뿐이다. 현재의 기형적인 대학 및 학과구조와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학교 다양화를 통한 선택권 확대’(=평준화 해체), ‘대학자율권 확대’를 입시문제, 사교육문제의 해법인양 들이대서는 곤란하다. 경쟁이 조금도 완화되지 않는 이유는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고,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불안이 갈수록 심각해져서이다. 이제 해결책은 분명하다. 대학을 평준화하고 노동의 불안을 해체하는 것.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하지만 길은 그것뿐이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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