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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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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서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

박병규 |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강사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은 민주화와 신자유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를 폭력적으로 탄압하던 군부독재 정권이 퇴조한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하던 과정에서 칠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독재 정권의 파행적인 경제정책 운영이 부작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위기에 직면한 라틴아메리카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여 단기간이나마 경제를 안정시켰고, 이 과정에서 친미적 성향의 경제관료들이 “구국의 영웅”으로서 정치 전면에 등장하였다. 멕시코의 살리나스 고르타리 전 대통령, 아르헨티나의 카바요 경제장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60년대 미주군사학교(SOA) 출신들이 70년대 군부독재의 주역이었다면, 70년대 미국 대학 출신들이 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되어 현재의 라틴아메리카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월에 사임한 볼리비아의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일명 고니)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시카고 대학 출신으로 영어식 억양의 스페인을 구사하기 때문에 ‘미국놈’(gringo)이라고 비아냥을 사기도 했던 산체스 데 로사다는 1985년 경제장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의 신봉자였다. 1985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파스 에스텐소로(Paz Estenssoro) 정권은 24000퍼센트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외환 고갈, 정부 소유 광산의 재정적자로 인해 건국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에 시달렸다. 이때 산체스 데 로사다는 국제통화기금과 손잡고 광산의 민영화, 물가 현실화, 초긴축 재정을 통해 단기간에 볼리비아 경제를 안정시킨 인물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대통령에 당선된 산체스 데 로사다는 민영화, 긴축재정, 경제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에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였으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조합과 농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희생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이 결과 1995년에도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작년에 재집권한 이후 전개된 이번 ‘가스 전쟁’에서도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볼리비아 최대 광산업의 소유자인 산체스 데 로사다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른 장밋빛 비전이 소수 기업가를 비롯한 지배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할 뿐, 이것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빈곤선에서 생활하는 대다수 볼리비아 국민들에게는 실업과 빈곤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깨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산체스 데 로사다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차파레(Chapare) 지역의 코카재배 농장을 강제적으로 패쇄하면서도 대체작물을 보급하는 데는 등한시하였고, 농민들의 불신과 원성을 사게 되었다. 미국 측에서 보면 볼리비아는 페루 다음 가는 코카인 원료 생산지이다. 그러나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볼리비아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코카는 전통적인 생활 필수품이며, 유일한 경제 작물인 것이다. 지금도 저 유명한 포토시의 은광산에서 일하는 볼리비아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생석회를 뿌린 코카잎을 씹으면서 지하 수천 미터에 달하는 막장에서의 중노동을 견뎌낸다. 더구나 커피와 화초에 대한 미국의 수입 쿼터 폐지와 더불어 이들 상품의 가격마저 폭락한 상황에서 볼리비아 농민들은 코카 재배를 통해서 생계를 영위하였는데, 원활한 외자유치를 위해서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정부가 코카 재배를 금지한다면 농민들로서는 생존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체스 데 로사다가 도입한 신자유주의가 국민들의 목을 죈 것이다. 이러한 예는 지난 2000년 볼리비아 정부가 코차밤바 시의 상수도 사업을 민영화하였을 때도 반복되었다. 이 지역 상수도 사업을 떠맡은 미국 엔지니어링 업체인 벡텔의 자회사, 아구아스 델 투나리(Aguas del Tunari)는 상수도 요금을 대폭 인상한 것이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일방적인 횡포에 맞서 볼리비아 국민들은 총파업과 도로점거 시위로 항거하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또다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으로 폭력으로 진압했으나 결국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굴복해 상수도 사업의 민영화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볼리비아의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대안 세력이 출현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나는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가 중심이 된 ‘사회주의 운동당’(MAS, Movimiento al Socialismo)이고, 다른 하나는 게릴라 출신의 펠리페 키스페(Felipe Quispe)가 중심이 된 파차구티 원주민 운동당(MIP, Movimiento Indigenista Pachacuti)이다.
에보 모랄레스는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20.94%의 지지를 얻어 22.4%의 지지를 획득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와 함께 의회 결선투표에까지 갔던 인물이다. 원주민들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지하고, 분배 우선의 경제 정책, 원주민 소유의 토지 환원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농민들의 코카 재배를 옹호함으로써 볼리비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들과 메스티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에 반해서 펠리페 키스페는 아이마라 원주민 출신으로 1992년에는 게릴라단체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룬 인물이다. 1997년 출감한 펠리페 키스페는 2001년 파차쿠티 원주민 운동당을 창당하여 제도권 정치인으로 변신하였다. 정책으로는 토지 공개념의 전면 도입과 지하자원의 국유화 그리고 백인을 축출하고 고대 잉카제국과 같은 원주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이번 가스 전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남미 대륙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볼리비아는 지난 키로가 정권 시절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서 남미 경제의 전략적 중심축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작년에 집권한 산체스 데 로사다 정권 또한 비록 전정권이 입안한 프로젝트라고 일지라도 과도한 외채와 정부의 재정적자를 만회할 수 있는 천연가스 수출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견해는 달랐다. 영국 가스회사를 비롯하여 다국적 기업의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퍼시픽 LNG’가 총 수입의 82%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볼리비아의 몫은 18%에 지나지 않는데 천연가스 수출은 결국 실속 없는 국부의 유출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은, 주석, 초석, 석유 때문에 노동력 착취와 전쟁을 치룬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천연가스 수출이란 현대적 형태의 자원 수탈인 것이다.
더구나 이 천연가스가 칠레를 통해서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리비아인들에게 미국은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볼리비아를 철권통치했던 우고 반세르 수아레스(Hugo Banzer Suarez)를 지원한 국가라는 인식이 있고 이는 볼리비아 국민들과 반미 정치세력에게 결코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칠레는 1879년 초석전쟁(일명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태평양 연안의 볼리비아 영토를 점령함으로써 볼리비아를 내륙국가로 만들어버린 비우호적인 국가이다. 그 이후 볼리비아는 티티카카호 호수에 해군 기지를 창설한 한편, 태평양 연안의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칠레를 통한 가스 수출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위였다.
이처럼 볼리비아에서의 신자유주의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해방군 마르코스의 말처럼 “미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퍼뜨리고 국민국가가 구축한 모든 문화를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이번 가스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펠리페 키스페나 에보 모랄레스와 같은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세력과 대다수의 볼리비아 국민들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지난달 사임한 곤살로 데 로사다를 승계한 카를로스 메사(Carlos Mesa) 현 볼리비아 대통령은 취임 일성에서 국제통화기금의 권고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천명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국제통화기금은 안정화 정책을 조금 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힘으로써 신자유정책의 철폐를 요구하는 볼리비아 국민들의 투쟁은 미해결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PSSP
주제어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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