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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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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푸른나무

조은정 | 회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나무란다라고 (어떤 개가 똥 묻은 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로 인한 정국은 시끄럽기 짝이 없고 조선일보에서는 “데모 많은 나라 외국인 투자 기피”, “내 자식 일자리 뺏는 것을 왜 모르나”, “폭력시위 수위 넘었다” 라는 말을 연일 씨부리고 있다. 인간인지 소인지 모를 미노타우로스 (Minotauros)가 만든 두 개의 답은 입시 해프닝을 만들고 여기저기서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 화장장 사장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명분도 없는 전쟁을 일으킨 부시는 이라크 민중의 저항에 놀라며 게릴라 소탕하는데 군대 좀 보내달라고 연일 협박이며, 정치권은 그들이 말하는 국익도 관철시키지 못하면서 군대 보내자고 그 더러운 입을 맞추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라고 딱 잘라 말하면 될 정도다.
어제도 술을 마셨다. 술 마시는 이유야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채울 때면 술을 마셔서 오염된 머리통을 소독해야 한다. 가득 가득 넘치는 우정만큼 우리의 술잔은 넘쳐 났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술을 좋아한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내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모양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이 가져오는 기분 좋음 때문일 것이다. 첫잔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갈 때 매연에 막힌 목구멍이 확 뚫리는 시원함의 상쾌함과 아세트 알데히드가 뇌를 마비시켜 일으키는 일종의 흥분상태를 즐기는 것이다. 물론 음주의 시간이 가져오는 친구와의 대화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책읽기의 즐거움도 이런 일종의 상쾌함과 흥분상태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와 호흡이 척척 맞는 사람이 정말 논리 정연하게 논조를 전개하여 상대방과의 공방에서 한수위의 우위를 차지할 때의 그 짜릿함과 내가 미쳐 깨닫지 못한 것들을 책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술이 가져오는 흥분과 견줄 만 하다. 그리고 놀란 만한 이색적 표현을 쓴 소설을 발견했을 때, 상상력이 하늘을 나르는 작품을 만나면 그 작품을 읽을 때 손끝에서부터 머리 속까지 전기처럼 소름이 흐른다.
내게 있어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빨간색 셀로판지가 붙은 안경을 쓰다가 그 안경에서 그 빨간색을 벗기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표백제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준 독서의 재미를 제대로 일깨워준 책이기도 하다.
1987년 6월 9일은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신 날이고 그 달 민정당 대표 노태우씨는 6월29일 6․29선언이라는 것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 7월30일 서울대 프락치사건으로 구속당했던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3월 나는 이 책을 손에 넣었다. 내가 이 책을 살 당시 가격이 3천200원이었고 2003년 4월 이 책의 저자 유시민씨가 내가 사는 지역구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얼마 전부터 TV프로그램과 신문 기고를 열심히 하더니 드디어 여의도에 입성한 것이다. 내가 만약 고등학생이었다면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금 배지를 달고 국회의원다운 웃음을 흘리는 지금의 그와 책표지 안쪽의 양 볼이 움푹 들어간 30세의 유씨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유의원이 적어도 김민석이나 김문수같은 의원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1988년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석탄먼지 날리는 강원도 시골의 교단도 “교사도 노동자다”라는 말을 외치며 노동조합 결성을 외치는 전교조 선생님과 교감선생님 일당으로 불리는 선생들의 극한 대립이 있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우리들이 흔히 들어보지 못한 말들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들은 시골 선생들이, 내 아버지가, 어머니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박정희라는 사람을 박통이라 줄여 말하며 독재자라고 하였고 통일을 이야기하였으며 80년 광주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교과서 아닌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였고 스스로 학생들을 모아 독서반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는 그 독서반의 일원이었고 그것을 인연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우선 이 책은 학교 교과서나 매스컴이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른 시각을 취하고 있다. 미국은 좋은 나라 소련은 나쁜 나라,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평화 애호 체제이고 사회저의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침략세력이라는 식의 맹목적 반공주의와 흑백논리…(생략)…그래서 필자는 러시아혁명과 중국의 대장정, 베트남전쟁 등 교과서와 매스컴이 철저히 외면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사건들을 비중있게 …-저자 서문 중-> 저자 서문부터 범상치 않은 구절이 가득하였다. 교과서를 거짓으로 꾸밀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할 나였기에 이 책은 나의 머리 속을 한번 휘젓고 지나가고 남음이었다. 이 책에는 드레퓌스 사건, 피의 일요일, 사라예보사건, 10월 혁명, 대공황, 대장정, 아돌프 히틀러, 거부하는 팔레스타인, 미완의 혁명 4․19, 베트남 전쟁, 검은 이카루스 말콤 X, 일본의 역사왜곡, 핵과 인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아버지가 걸핏하면 “나는 빨갱이 잡으러 베트남까지 갔다온 사람이야"라고 자랑하던 그 베트남 전쟁의 이면과 왠지 이름이 웃겼던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졸라(“애미를 졸라라 이눔아”라고 외치는 사극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의 지성인적 행동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웠던 드레퓌스, 교과서와 달리 4․19 의거를 혁명이라는 말로 칭하는 것도, 그렇게 좋게만 보이던 미국의 석유를 둘러싼 중동분열정책, 인종차별정책,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중국 빨갱이 주은래와 모택동의 민중을 위하는 마음 등이 이 책 한 권속에 모다 있었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영향은 교과서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과 교과서도 그냥 책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의문들을 만들어 주었다. 교과서는 왜 필요하며 국가는 왜 이런 책을 만들어 달달 외우게 할까. 내 아버지는 시커먼 탄가루를 뒤집어쓰며 매일 쉬지 않고 일하는데 왜 맨 날 돈은 없을까. 왜 부모는 눈만 마주치면 대학을 가야 사람구실 한다고 말을 하나. 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수많은 책 속을 헤맸다. 매트릭스 속 미스터 앤더슨이 밤이면 네오가 되어 이상한 현상들의 답을 찾아 헤매듯이 말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이미 나온 지 16년이 되어가는 책이어서 읽을 사람들 다 읽었을 것이고 이런 류의 관점과 이야기를 담은 책은 더 좋은 서적도 훨씬 많다. 이 책은 쉬운 서술구조로 박진감 넘치는 문장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기폭제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읽어도 참 재미있고 사진까지 몇 장 박혀있어서 사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지금 나오는 개정판에는 더욱 많은 사진들이 수록되어있다. 애초에 저자가 교과서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썼다고 했던 만큼 교과서밖에 모르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에게 권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 채택된 역사적 사건들은 다수의 인간이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그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이 소수의 영웅이 아니라 다수 대중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증명한다. 다수 대중이 매우 수동적이고 조류에 휩쓸리듯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그 거대한 헤게모니의 전쟁 앞에 당당히 맞서 그 헤게모니의 질서를 바꾸는 주역임을 보여준다.
지금의 시대는 정확한 적도 보이지 않는다. 독재자도 없으며 무엇을 찾기 위해서 싸워야하는가 하는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고도화되어 대중들의 삶 곳곳에서 편의를 제공한다는 미명 하에 많은 것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 또한 그들의 카르텔을 만들어 그들만의 정보를 공유하며 효과적인 노동착취 방안과 골 때리는 노조탄압 정책을 공조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나마 평등하다던 교육도 어느 누가 어느 만큼의 돈을 투자했느냐에 따라 학벌이 정해지고 그 학벌은 부와 함께 대를 잇는다.
이러한 때 이 오래된 책 한 권이 주는 교훈은 사회 모순이 깊어 갈수록 그 모순을 자각하는 대중들이 점점 늘고있다는 것이고 어떠한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말해 준다는 것이 아닐까한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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