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12.41호
첨부파일
-새로운국제주의(번역).hwp

새로운 국제주의: 제국적 전쟁과 세계의 사유화에 맞서

다니엘 벤사이드 | 파리8대학 철학교수
번역: 기획팀


1장. 국제주의의 대장정

17세기 이래로 배태되어 온 민족적 감정은 아메리카와 프랑스에서 발생한 두 번의 근대적 대혁명의 충격 하에서 출현했다. 평등의 원리 속에 정치적 시민권을 기초하기 위해 ‘조국'과 ’민족‘은 특정한 왕조의 정당성에 대립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프랑스의 『인권선언』이나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드러난 것처럼, 갓 태어난 애국주의는 스스로가 보편주의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것이기를 바랬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 민족적 이상과 형제애를 화해시키고자 했다. 이에 따라 부르주아지는 인류의 보편이익을 담지한 것으로 믿어졌다. 자본이 산업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상업적․농업적 상태로 남아있던 시기에 민족은 인민의 상상적 공동체를 표상했다. 그들은 아직 상상적 공동체를 파열시킬 계급의 새로운 적대를 경험하지 않았다.
19세기 전반기에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구성되었다. 1846년 『인민』이라는 에세이에서 미셀레(Michelet)가 인식한 사회적 분화는 그 이후 1848년 혁명에서 전면에 드러날 정도로 증폭되었다. 이제 우리는 1848년 6월 혁명의 나날들과 (『이상적 교육(l'Education sentimetale)』에서 플로베르가 상기시킨) 파리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유혈진압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건들은 생산과 재생산의 자본주의적 관계의 핵심에서 제거할 수 없는 사회적 균열을 보여주면서 유럽의 역사를 ‘둘로 쪼갰다’.

코스모폴리탄주의에서 국제주의로

쁘띠 부르주아와 노동자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그들의 투쟁을 유럽적 전망 속에 기입했다. 1850년대에 마치니(Mazzini), 코수트(Kossuth), 루이 블랑(Louis Blanc) 등은 1848년 망명자들의 수도인 런던에 모였다. 가리발디(Gribaldi)는 베네수엘라에서부터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독립을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 갓 태어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는 산업적 비약과 동시에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또는 프랑스에서 박해받은 혁명가들의 추방(영국, 미국, 라틴 아메리카로 이주하도록 선고를 받은)에 의한 숙련 노동력의 이동에 의해 강화되면서 계몽주의의 코스모폴리탄주의를 대체했다.
형성 중인 노동자 운동은 민족국가를 자연적 현실로도 정치사회의 최종적 해답으로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근대성의 종별적․이행적 형태로 생각했다. 1848년에 이미 『공산주의 선언(Communist Manifesto)』은 그것의 지양을 당면과제로 설정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제 계급의 연대는 피억압계급 내에서 신성한 (종교적) 합일과 민족적 신성동맹에 대립했다.
그러한 유년기의 국제주의는 성숙기의 민족주의에 대응했고, 국제주의에게 민족은 더 이상 세계적 시민권을 향한 진보를 표상하지 않으며, 기원, 인종, 땅, 언어 등에 대한 낭만적 추구 속에서 종말에 다다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 이후로 혁명의 정치적 민족은 역사를 자연화하고 숙명화하는 신화적이고 (르낭의 정식으로 따라) 광물적이거나 ‘동물학적인’ 우스꽝스런 풍자화로 대체되었다.

식민지 팽창, 쇼비니즘과 인종주의

1860년대부터 지배계급들은 점점 더 광신적이게 되어 가는 민족주의를 위하여 낭만적 민족주의를 버렸다. 1853년 고비뇌(Gobineau)의 『인종불평등』과 그 이후 스펜서 사회학의 부산물들에서 드러난 것처럼, 제국적 헤게모니 형성의 과정에서 민족은 인종화되었다. 그러한 민족주의는 실증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양분을 얻으면서 혁명적 무질서라는 커다란 두려움을 가장 잘 쫓기 위해 문명을 수출하고 질서 내에서 진보를 확산하는 것처럼 뒤늦게 가장했다. 시민성은 민족성 내에서 강화되었다. 민족은 종족화되었다. 1850년대에 쇼비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은 민족과 보편성 사이의 분리를 보여준다.
그러한 진화는 식민 정복 전쟁의 논리와 근대적 제국주의의 출현 속에 기입되었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미래의 ‘대재앙의 씨앗’을 담고 있었다. 그 시대의 정복의 정신을 요약하면서, 세실 로드(Cecil Rhodes)는 ‘행성들을 병합하려는’ 자신의 야심을 보여주었다. 팽창은 최고의 목적이 되었다. 다시 한번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면, 그러한 목적은 결국 ‘권력의 수출’과 ‘폭력의 기능화’를 동반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적․신학적 반유대주의는 인종적 반유대주의로 변모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그러한 반유대주의가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르주아적 파퓰리즘은 계급타협(그리고 프랑스에서는 공화주의적 협약)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대립시켰다. 이는 또한 호전적 경향과 군사주의적 확장에 의해 굴절되었다. 1912년 바젤 사회주의 총회의 평화주의적 성향의 분출(바젤의 종각에서 아라공은 서정적인 찬사를 보냈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전쟁에 맞선 전쟁’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신성 불가침의 [민족적] 통일성을 향한 사회주의 정당들의 참여는 1914년 8월에 제2인터내셔널의 파산을 낳았다. 1차 세계전쟁 이전의 [민족적] 팽창기 동안 주요 유럽 나라들에서 노동자 운동의 노조적․의회적 관료화는 사실상 그것의 ‘민족화’와 쌍을 이루었다. 민중적 문화 속에서 계급적 외양의 공동체와 민족적 공동체라는 두 개의 상상적 공동체는 일치되었다. 정당들의 인터내셔널은 근본적으로 민족적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서로를 살육하는 전면전의 발발에 저항하지 못했다.

혁명적 국제주의와 관료적 쇼비니즘

1919년에 제2인터내셔널의 트라우마와 러시아 혁명이 낳은 열망 속에서 제3인터내셔널이 탄생했다. 1920년 바쿠에서 개최된 동방민족대회는 식민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인민들의 민족적 요구들을 보편화했다. 전간기 파시스트 체제에 의해 격화된 민족주의에 직면해서, ‘조국도 국경도 없는’ 투사들의 새로운 혁명적 국제주의(그것은 장 발텡(Jan Valtin)의 기념비적 저작, 빅토르 세르쥬(Victor Serge)의 기억들, 엘리자베스 포레츠키(Elizabeth Poretsky)의 『우리들』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영광의 시간을 누렸다. 여기서 스페인 내전은 국제적 가교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국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적 이론, 대러시아 쇼비니즘의 재등장(이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나 『이반 대제』와 같은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속에서 호화로운 이미지로 등`장한다), 크레믈린에 대한 각국 공산당들의 관료적 예속 등에 의해 내적으로 급속하게 침식되었다. 1943년 반파시즘의 제단을 향한 인터내셔널의 순수하고 단순한 해산은 그 자체는 국제주의의 종말의 에필로그에 불과했고, 이미 국제주의는 망령이자 유령이 되어 있었다.
2차 세계전쟁 이후 국제주의는 소련이나 중국의 국가이성에 의해 박탈당했고 제3세계에서 변용되었다(이는 특히 전투적인 서인도인 프란츠 파농의 생애와 저작에서 잘 드러난다). 국제주의는 식민지 세계와 중국의 지도자들이 ‘폭풍지대(zone de tempetes)’라고 부른 지역으로 축소된 채, 비동맹국가들의 운동인 반둥회의의 형성과 함께 완화된 형태의 제도적 표현을 찾았고 두 개의 핵 강국 사이에서 불안한 균형을 활용했다. 그것은 쿠바의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된 3대륙 회의와 1967년 라틴아메리카연대조직(OLAS)의 형성 속에서 급진화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대륙적 투쟁이라는 전략적 전망 속에서 전통적 혁명운동과 새로운 혁명운동을 연합하려는 것이었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알제 담화(Discours d'Alger, 1965)나 3대륙에 보내는 그의 유언서신(1967)에 대한 반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국제주의는 제국주의적 메트로폴리스 내에서의 반자본주의라는 차원과 현존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의 반관료주의라는 차원으로부터 분리된 채 ‘자유세계’와 ‘사회주의 진영’ 사이의 대결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었다. 그것은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중봉기를 지지하는 영감이 넘치는 원리들에 대한 거부와(명목상 그것들은 소비에트 탱크들의 케터펠터에 의해 부과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라고 주장되었다) 인도차이나의 해방운동 사이의 균열의 증거가 드러나면서 소진되었다.

2장. 세계화에서 또 다른 세계화로

빅토리아 시대의 세계화, 유럽과 미국에 의해 가속화된 산업화, 식민주의적 팽창 등은 1864년에 노동자국제연합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1851년과 1862년의 런던 대박람회는 1864년 구성될 총회를 예비하는 노동자 대표들 사이의 접촉과 회합의 장이 되었다. 1980년대에 로날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주도한 자유주의적 반-개혁, 시장의 탈규제,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순환 등이 이번에는 국제주의의 새로운 비상으로 표현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본, 무역, 생산의 세계화는 이제 다시 다양한 형태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는 투쟁의 국제화를 낳고 있다. 시장의 전제에 맞서는 대장정의 한 걸음 한 걸음들로서 그 투쟁의 주요한 상징적 장소들은 저항의 지정학적 기묘함을 보여준다: 시애틀(1999), 밀라노(2000), 프라하(2000), 니스(2000), 포르투 알레그레(2001), 제노바(2001), 포르투 알레그레(2002), 브뤼셀(2002), 바르셀로나(2002), 몬트레이(Monterrey, 2002), 플로랑스(2002), 포르투 알레그레(2003), 하이드라바드(Hyderabad, 2003), 생-드니(2003), 나아가 퀘벡, 제네바, 워싱턴, 방콕, 멜버른, 다카, 바마코(Bamako), 교토, 부에노스 아이레스, 몬트레이. 3년 동안 이들 도시 모두는 WTO, IMF, 세계은행, G8, 다보스 포럼 등의 수뇌부 회의에 대항하거나 유럽 위원회(Conseil de Europe)의 회의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나 회합의 무대가 되었다.

빅토리아적 세계화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19세기의 빅토리아적 세계화는 운송․통신의 거대한 기술혁명에 의해 지지되었다. 몇 년 동안에 철도망은 가지를 치면서 확장되었다. 전신은 전선으로 지구 전체를 직조했다. 증기선은 80일 동안에 세계 일주를 실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타자기와 인쇄 윤전기는 하나의 인쇄물이 엄청나게 많은 부수로 발간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만들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인터넷, 위성통신, 그리고 원격통신이었다. 1860년대는 철도, 전신, 해운 등에서 거대한 혁신이 있었다. 또 이 시대는 거대무역의 탄생, 은행신용의 비약적 발전, 부르주아적 열정과 정념의 폭발(에밀 졸라의 『돈』에서 드러난 것 같은),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사라지는 행운, 요란스런 파산과 정치-금융 스캔들 등과 같은 사건들을 목도했다. 유동성 은행(Credit mobilier)의 파산이나 무자비한 경쟁에 의해 제거된 철도회사들은 신경제의 환상이나 엔론사의 파산의 등가물이었다. 이 시기는 또한 식민원정, ‘학살산업’, 금융적 타락, 그리고 잭 런던에 의해 상상된 강력한 마피아를 예견하는 ‘암살단’의 시대였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도 마피아적 범죄, 모든 생물 종에 대한 암거래, 마약과의 전쟁, 전자 해적과 인터넷 테러리즘, 무자비한 경쟁과 제국적 전쟁 등과 같은 일련의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것은 상품과 자본의 순환을 제한할 줄 모른다. 또한 그것은 국경 없는 폭력, 생태위기, 증권시장 패닉 등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1998년 아시아 위기나 2001년 아르헨티나 위기와 같은 국지적 위기는 카오스 물리학에서 말하는 나비 효과처럼 세계화된 체계 내에서 증식된다.
그러한 세계화의 주창자들은 특별한 수식어 없이 그것을 경제의 피할 수 없는 법칙의 숙명적 결과로 제시한다. 그것은 그 이면의 부조리가 무시하고자 하는 그 자신의 근거를 갖는다: 공간에 대한 병적 허기증과 가속에 대한 광란. 이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에 내재된 것이다. 자본은 자신이 산출한 그 자신의 한계와 사회적 모순들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저하하는 이윤율에 대한 반 경향을 조직하기 위해, 자신의 활동영역을 끝없이 확장하고 자신의 변태와 회전을 가속화한다. 정보통신 및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혁명은 그러한 장기적 운동들을 증폭한다.

세계의 새로운 분할

제국적 세계화의 양상들은 경제적 논리와 기술혁신에 의해 기계적으로 인도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 독일의 재통일, 소련과 그 영광의 해체 등에 따른 새로운 정치적 상황에 조응한다. 1943년과 1944년에 테헤란, 얄타, 그리고 포츠담에서 열린 일련의 회의들에서 협상되었던 세계적 양극 균형은 지역적 위기와 분쟁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동안 냉전을 유지시켰다. 냉전 질서의 붕괴는 1815년 비엔나 조약이나 그 이후 1848년 인민의 봄을 낳은 19세기나 2차 세계전쟁 직후 중요한 조약들을 낳은 20세기 초와 같은 새로운 세계 대분할의 시대를 낳았다.
그러한 분할은 밀실의 조심스런 분위기 속에서 세계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놓고 각국 재상들이 벌이는 평화적인 놀이가 아니다. 그들의 지위는 칼과 칼의 충돌에 의해 확립되고 해체된다. 1991년 평화와 번영의 동의어로 ‘신세계질서’를 선언했던 부시 시니어의 약속과 반대로, 시장이 지배하는 최상의 세계는 지난 15년 동안 걸프 전쟁에서 중앙아시아 전쟁, 그리고 발칸 전쟁이나 아프리카 내전을 거쳐 근동지역의 분쟁에 이르는 끊이지 않는 전쟁을 목도해야 했다. 군사주의는 제국의 (다소간) 숨겨진 얼굴이다. 지배 열강들의 군비지출은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다. 미국의 군비지출은 전세계 국방비 지출의 40%를 넘으며 NATO의 열강들 중 2위를 차지하는 영국의 군비지출의 11배, 그리고 프랑스 군비지출의 12배에 이른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또한 무장한 세계화다.
다국적 기업의 숫자가 1970년대에 대략 10,000개 미만에서 21세기초에 40,000개에 육박하게 되었고, 3억 가까운 사람을 고용하며 그 사람들 중 40%가 애초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할지라도, 그러한 세계화는 민족국가들과의 연계를 단절하지 않는다. 비록 국제기구들의 배치구조가 점차 형성되고 있지만 그것들은 민족국가에 등을 기대고 있으며 그 내에서 어느 것도 ‘세계적 통치성’의 윤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IMF와 세계은행은 채무국의 감독 기관으로 기능하면서 그들의 긴급융자 조건으로 구조조정 계획의 적용을 제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그것의 재앙적 결과들을 보여준다. 부채의 메커니즘은 지배받는 나라들을 훈육하고 부를 이전하며 지배하는 나라들을 위해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전달벨트 역할을 한다. 세계은행은 사회보장체제를 사적 보험과 연금 기금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치의 사용법을 고정시키는 퇴행을 향한 관계를 생산했다.
1995년 WTO의 창립과 함께 새로운 일보가 내딛어졌다. 그 기구는 협조와 조언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라케시[모로코의 도시]의 무역협정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고 분쟁조정기능을 한다. 협정에 반하는 조치를 취한 어떤 나라가 법을 벗어났다고 선언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된 국제적 관할권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결국 국제적 권리의 대부분이 언제나 국가간 관계와 조약들의 영역에 속한다면, 헤이그 국제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는 세계화된 법률질서의 출현의 초안이 된다.
1989년에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로 승진한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은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에 국제금융기구의 공식적 교리가 될 10가지 항목을 요약했다: 재정적자 축소, 자본과 주주들을 위한 재정개혁, 금융시장의 자유화, 수출증가, 관세권의 완화, 외국인 투자 장려, 공기업의 사유화, 경제의 다양한 부문들 내에서 경쟁의 탈규제, 모든 형태의 소유권의 보장. 그러한 권고사항은 유럽연합의 성서이자 마하스트리히트 조약의 ‘수렴 기준’의 모형이 되었다. 그런 지향의 결과는 사기와 같은 시장의 재앙적 발전 속에서 여러 나라들에 의해 오랫동안 검토되었다. WTO의 권위에 종속된 국제협약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 나라들은 첨단기술을 보유한 초민족적 기업들에게 정보산업이나 생명공학 내에서의 혁신에 대한 독점권을 보장해주었다. 농업에 대한 협정은 그 주요한 시장들을 대폭 개방시켰지만, 열강들의 일부에서는 보조금을 받는 생산을 공고화하고 과도한 덤핑에 우호적인 조건이 마련되었다. 더욱 일반적으로 WTO의 정치는 공적 이익이나 생태적 처방에 대한 다른 모든 고려 대신에 자유무역을 특권화한다. 그러한 경제적․제도적 경향들은 권력과 결정의 새로운 장소들에 조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조정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에 대한 저항을 낳았다.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는 국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e d'Etat)의 종말을 표시했다. 그러한 국제주의는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라는 이름으로 헝가리(1956), 프라하(1968), 아프가니스탄(1980)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정당화했다. 그런 국제주의의 종말은 사회운동을 ’진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와 동과 서 사이의 선택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러한 운동들은 1990년대에 절대적 자본주의와 단극적 제국 지배에 맞선 동원의 과정에서 혁신된 모습으로 재등장했다. 치아파스 산악지방에서 사파티스타의 봉기에 의해 1996년에 조직된 ’다면적(intergalactique) 회합‘은 사후적이지만 그러한 새로운 국제주의의 상징적 서막으로 제시되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것―원주민 공동체의 특수한 요구들―과 새로운 것―인터넷과 근대적 통신기술의 활용―을 결합했다.
2차, 3차 인터내셔널에 대한 비판적 평가 속에서 21세기의 국제주의는 진정으로 전지구적인 차원을 꿈꾼다. 그것은 세계의 일반화된 시장화와 사유화에 대응하면서 선행자들보다 훨씬 더 지리적으로 포괄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문화들을 결합하고 전통적 노동자 운동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행위자들의 다양성을 재조합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운동, 생태주의 운동, 문화적 운동, 청년운동과 노동조합의 운동 등. 20세기의 트라우마적 경험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고통을 동반하면서 그러한 국제주의는 신중하게 형성되고 있다. 피억압자들의 정치는 ‘극단의 시대’ 동안 누적된 패배와 회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저항의 세계화가 기계적으로 반체계적 요구나 대안적 기획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공적 공간의 빈혈에 균형을 맞추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시민사회’라는 통념은 매우 다의적이다. 세계은행은 태국 빈민포럼의 투사들이나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이 부여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시민사회에 부여한다. 세계화된 자본이나 초민족적 기구들은 세계적 ‘시민사회’를 자신들의 계급적 전략의 본질적 요소로 간주한다. 그들은 세계적 시민사회를 ‘기업의 세계’, 사회적 재생산 역할을 자임하는 거대 기구, 그리고 체계의 결핍요소를 보충하는 것으로 호명된 조직들 사이의 협력을 제도화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것은 새로운 범-정부적(para-gouvernementales) 관료기구를 신성화하고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지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특정조직을 포섭함으로써 배제된 집단과 취약 계급의 사회적 요구를 일정한 방향으로 호도한다. 여기서 ‘시민사회’는 제도적 합의 내에서 갈등을 탈정치화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민중운동이나 부활한 민중운동은 시민사회를 시장화에 맞선 공간으로 제시하면서 그 자신의 내용을 제공할 수 있다. 프랑소아 위타르(Francois Houtart)가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라고 부른 것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는데, 그 속에서 공공재와 공적 서비스에 대한 대안적 논리를 발견한 피억압 집단들의 의식이 표현되고 있다.
단어들의 의미 그 자체는 유통되는 시대의 상황에 따라 뒤섞이기 마련이다. 스탈린 시대의 공식적 단어 속에 편입되면서 위대한 국제주의적 약속은 관료적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명분으로 기능했다. 만약 그 단어들의 의미가 불확실한 것이 된다면, 혼돈은 지속될 것이다. 시애틀이나 제노바에서의 시위를 낙인찍기 위해 거대언론들은 그것을 ‘반세계화주의’로 규정했다. 그들은 마치 민족국가, 부족 또는 종족의 향수가 문제인 것처럼, 그리고 마치 국제주의는 이제부터 모든 흐름에 개방된 시장의 소유물이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쇼비니스트적 경향들은 단지 흥행성이 높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국제적 시위와 회합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한 시위와 회합은 사실상 사회주의 운동의 국제주의적 전통과 NGO들의 ‘무국경주의(sans-frontierisme)'를 혼합하는 용광로가 되었다. 그 구성요소들은 위기와 전쟁의 효과 하에서 국가의 재등장과 인간적 가치의 군사화에 맞서면서 급진화되는 경향이 있다. 포르투 알레그레, 제노바 또는 플로랑스의 시위대들은 편협성이나 폐쇄성, 또는 ‘반세계화주의’ 등의 함의를 거부하면서 스스로를 ‘대안세계화주의’로 정의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제 대안적 세계화를 위한 투쟁이 문제인 것이다. PSSP
주제어
평화 국제 이론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