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4 봄. 186호
첨부파일
04_특집_스튜어트_홀.pdf

정치적 올바름을 통해서 가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어떤 길들

스튜어트 홀 |
 
번역: 임필수 정책교육실장
원문: Stuart Hall, (1994). “Some ‘Politically Incorrect’ Pathways Through PC”. S. Dunant (ed.) The War of the Words: The Political Correctness Debate. pp. 164–84.
 

역자 해설

스튜어트 홀(1932~2014)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이자, 문화이론가, 정치활동가다. 그는 영국 문화연구 학파, 또는 버밍햄 문화연구 학파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사실 문화연구는 영국 신좌파운동의 한 축이었는데, 지배블록이 헤게모니를 재구성하는 과정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깔고 있었다. 

홀은 1932년 자메이카 킹스턴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는 영국연방 내의 식민지였으나, 1959년에 완전한 내정자치권을 획득하여 자치정부를 구성하였으며, 1962년에는 영국연방 내의 독립국이 되었다.) 그는 1951년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머튼 컬리지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 후 서인도제도에서 영국으로 대규모로 이주한 집단을 일컫는 ‘윈드러시 세대’의 일원이 되었다. (윈드러시는 자메이카에서 그들을 태우고 온 영국 군함 이름이다.) 

1954년 자메이카 출신 동료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에도 홀은 영국에 남았다. 그는 스탈린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어떤 정당에도 몸담지 않고 여러 ‘독립적 좌파’ 인사들과 사회주의 협회를 결성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소설가 헨리 제임스를 다루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으나,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과 영국,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며 발생한 위기를 목격하며 충격을 받고, 이를 단념하고 정치활동에 전념했다. 1958년 핵군축캠페인(CND)에 참여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대학과 좌파 평론》의 편집자를 맡았는데, 이 저널은 E. P. 톰슨, 랄프 밀리반드가 주도했던 《뉴 리즈너》와 합병해 《뉴 레프트 리뷰》로 재출범했고, 홀은 2년간 초대 편집인으로 참여했다. 《뉴 리즈너》 집단은 반파시즘 운동과 영국 공산당에 관여했고, 영국 노동운동을 경험했으며, 요크셔와 북부 산업도시에 지역연고를 가진 사람들로 1956년 영국공산당에서 탈당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대학과 좌파 평론》은 주로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로, 이들 중 상당수는 영국연방 출신의 유학생들로 영국의 토착적 노동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없었다. (나중에 합류하게 된 페리 앤더슨은 아일랜드, 톰 네언은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다.) 양자 사이엔 경향적 차이가 존재했는데, 톰슨이 홀의 글, 「계급소멸의 의미」(1958)를 비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톰슨은 홀의 문화연구가 문화분석을 지나치게 확대한다면서, 대중문화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문화론적 시각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홀의 학술 경력은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영국 영화 연구소’의 패디 웨널과 『대중예술』(1964)을 공저했는데, 그 결과로 리차드 호가트는 그를 버밍햄대학의 ‘현대문화연구센터’에 초빙했다. 1968년부터 그는 센터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마르크스의 위치를 정하자: 평가점들과 출발점들」(1972), 「텔레비전 담론에서 기호화와 기호해독」(1973)과 같은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그는 『제의를 통한 저항』(1975)의 공동편집자였고, 『위기의 감시·단속』(1978)에도 글을 남겼다. 그는 1979년 오픈 대학교(개방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임명되었고, 영향력 있는 저서들을 출판했다. 『부활을 향한 험난한 길: 대처주의와 좌파의 위기』(1988), 『현대의 구성』(1992),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들』(1996), 『문화적 재현과 의미를 나타내는 실천』(1997) 등등이다. 

특히 『부활을 향한 험난한 길』에서는 대처리즘이 민중의 정서와 상식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밑으로부터의’ 흐름과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흐름이 결합해서 형성되었다면서, 이를 ‘권위주의적 인민주의’(authoritarian populism)라고 불렀다. 대처리즘에 관한 그의 분석은 ‘정치적 올바름’(PC)을 다루는 이번 번역 글에서도 다시 등장한다.

한편, 1970년대와 1980년대, 홀은 저널 《오늘의 마르크스주의》와 긴밀히 협력했다. 《오늘의 마르크스주의》는 영국공산당이 발간하는 이론지였는데, 1977~1991년 동안에는 당 내 개혁파의 기수 역할을 했다. 또한 스튜어트 홀의 영향력 있는 문화연구가 발표되는 통로가 되었다. 영국 공산당은 1991년 해산하고 ‘민주좌파’라는 단체로 전환했는데, 이 저널도 그 때 사라졌다. 그는 1997년 개방대학에서 은퇴했고, 2014년에 사망했다. 

약 30년 전에 발표된 이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문건 중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루는 글이자, 지금도 많이 인용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핵심적인 통찰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① PC는 1980년대 뉴라이트의 ‘사상경찰’ 활동과 몹시 닮았다. 
② PC는 정체성의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 그런가. 정체성의 정치는 ‘그들 편’과 ‘우리 편’이라는 매우 단순한 도식에 기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③ PC는 (한편으로는) 극단적 명목론에 빠져 있다. 즉, 사물을 달리 부르면 그 사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믿음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PC는 언어의 의미를 법률로서 고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어의 의미는 언제나 미끄러지듯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④ PC는 하나의 정치스타일로, 극히 개인주의적인 정치 개념을 깔고 있다. 즉 진리를 인식하고 있는 개인이 나홀로 치르는 전투라는 정치 개념이다. 이는 편협함, 도덕주의, 참호 속에 숨어 있는 전위주의로 이어진다. 
⑤ PC는 본인들이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법률로써 강제하려고 한다. 즉, 대중의 동의를 얻는 과정의 중요성을 망각한다. 사실 사회적 행동을 법률로써 강제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경찰과 군대를 통해서 사회를 통제한다는 뜻인데, 이는 PC 지지자가 자신의 행동은 무엇이든 정당하다고 선험적으로 전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⑥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PC는 좌파운동에 근본적 분열을 낳는다. 즉 PC를 지지하는 자들과, PC를 비판하는 자들로 나눈다.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에 입각한 실천을 접할 때면 언제라도 이런 통찰을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 ( ) 안은 원문의 설명이고, [ ] 안은 이해를 돕기 위한 역자의 설명이다. 소제목들은 역자가 붙인 것이다. 
 
✽ ✽ ✽
 
한 가지 설명에 따르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사실 좌파 집단 내부에서 끼리끼리 주고받는 농담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혁명적 소집단 각각이 세상만사에 대해 저마다의 당 노선을 지니고 있었을 때, 미국 캠퍼스의 급진적인 학생들은 1960년대 이전 세대들, 즉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옛날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재연했다. 급진적 학생들은 동료 학생들의 성차별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인 행동이 확연히 드러날 때, 홍위병이나 문화혁명 공작대의 말투를 모방해 다음과 같이 말을 걸곤 했다.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르지 않습니다, 동지!” 마르크스는 (어떻게 한 시대의 혁명가들이 종종 이전 시대 혁명가들의 모습으로 변장한 채 나타나는지 말하면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현 시대의 혁명가들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 1852~1870년 황제 재임) 지지 집단을 말하고, 이전 시대의 혁명가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 1804~1814, 1815년 황제 재임) 지지 집단을 뜻한다.] 그는 세 번째 반복을 덧붙이는 일을 빼먹었다. 즉, “세 번째는 농담으로. 그 농담은 거의 틀림없이 되돌아서 [농담을 한] 당신을 물어뜯을 것이다.” 

사실 내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를 실제로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발표를 하고 있을 때였다. 레이건 대통령 당선 이후의 새로운 시대적 풍토에서 우파는 발표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캠퍼스 위원회들을 설립했고, 강연 내용 중에서 미국 헌법을 잠식하거나 미국이 지닌 최상의 도덕적 결단력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첩에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회 주최자들은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며 나에게 강력히 충고했다. 이 점에서 PC는 분명히도 1960년대에 역행하는 1980년대의 반발(backlash) 중 핵심이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공식적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한 자들은 다름 아닌 우파와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보수주의자]였다. 매우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사상경찰’ 활동은 나로서는 충분히 불쾌했다. 따라서 대략 ‘우리 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내가 ‘우리 이슈’라고 보는 문제들을 옹호하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을 실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매우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1. PC의 역사적 맥락 

 
여기서 몇 가지 지극히 기묘한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급진우파, 안보국가, 또는 권위주의적 좌파와 결합되었던 전략들을 1960년대의 자유언론과 자유지상주의적 급진주의의 계승자들이 영유하기 시작했다. 그에 반대하는 유일한 논거들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내놓는 매우 미약한 변명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 하나의 전술로서 PC는 교실에서나 교과과정에 관한 학술적 토론에서 소규모 투사 집단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나, 동시에 그러한 집단들은 [대학과 학술계 너머에 있는] 더 넓은 정치무대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PC 이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PC가 전통적인 좌우 분할을 가로질러 가는 방식과, 좌파의 일부분을 다른 좌파들과 분할하는 방식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모든 방식을 살펴볼 때, PC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1990년대 정치 환경의 특징이자, 따라서 어떤 광범위한 역사적 경향의 징후가 된 온갖 이슈들의 원형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므로 PC의 모순들을 뚫고나가는 경로를 그려보기에 앞서, 이처럼 늦은 시점에서라도, 더욱 광범위한 역사적 맥락에서 PC를 검토하는 것이 유용할 듯하다. 

첫째, PC가 ‘미국적인 것’이냐는 질문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실로 미국적인 현상’이라며 PC를 무시하는 것은 그들이 PC를 너무 협소하게 규정하기 때문이자, 미국적인 현상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면 PC가 사라질 것이라고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전략으로서, 나아가 정치스타일로서 PC는 1980년대 초반부터 영국 정치에 실존했으나, 그 당시에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졌을 뿐이었다고 논증하고자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PC가 미국적인 것이냐는 문제는 모든 포스트-산업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관해 중요한 무언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내가 보기에 PC는 정치영역이 서로 분리된 이슈들로 파편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또한 PC는 사회적 유권자의 해체, 또는 최소한, 그들이 이제 더는 ‘계급’이나 ‘노동’과 같은 더 넓은 집단적 정체성이나 ‘최상의 범주’ 내로 응집하기를 거부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회적 유권자는 지역 유권자와 대비되는 표현으로, 자신의 계급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는 유권자 집단을 지칭한다.] 사실, 하나의 정치형태로서 대중정당이 점차 약화되고, 대중적 정치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감소하고, 노동자계급과 산업노동자가 주축이 되는 ‘구’사회운동의 영향력과 힘이 약해지는 모든 사회에서 PC는 일반적인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주도권이 ‘신사회운동’으로 넘어간 곳들에서 PC가 대단히 강력해졌는데, 당연히도 ‘신’사회운동은 PC를 길러낸 토양이다. 따라서 PC는 정치지형에서 나타난 지진(地震)급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에 좌파는 계급과 경제적 착취가 사회생활의 ‘주요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모든 사회적 갈등은 그러한 모순에서 나오고 그곳으로 되돌아간다고 보았다. PC 시대의 특징을 꼽으라면, 사회적 갈등의 장소가 계급과 불평등에 관한 이슈뿐만 아니라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가족, 종족성, 문화적 차이를 둘러싼 갈등을 포함하도록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가족생활, 결혼, 성적 관계나 식품과 같이, 과거에는 ‘비정치적’이라고 여겨진 이슈들이 정치화되었다. 또한 PC는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가 보여주는 특징인데, 정체성의 정치에서는 물질적 이해관계나 집단적 불이익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사회적 정체성(여성, 흑인, 게이와 레즈비언)이 사람들을 정치에 동원하는 요인이다. 정체성의 정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즉 비공식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의 영역으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로 확장된 현실을 반영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는 이러한 변화를 완벽하게 포착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PC는 우리가 아마도 ‘정치의 문화화(文化化)’(the culturing of politics)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산물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우리가 ‘현실’과 맺는 관계가 항상 언어 내부에서, 언어를 통해서 매개되며, 따라서 언어와 담론은 권력의 작용에서 핵심적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PC는 최근 수십 년간 문화 이론·철학이 이뤄낸 이론적 발전을 상당히 흡수했다는 점에서, ‘문화연구 이후’에 등장한 정치다. PC는 경제학은 잘 모를지라도, (경제의 운동을 포함해) 사물은 그 사물이 표현되는 방식 때문에 이해될 수 있고, 따라서 정치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달리 말하면, 사물은 문화적 또는 담론적 차원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철학자들이 ‘언어학적 전환’이라고 부른 변화를 경험한 지적 문화에서 PC가 부상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종합해 보면, 이러한 요소들은 PC라는 특별한 스타일, 즉 대립적이며 도발적인 표현양식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한 스타일은 공적 논쟁에 더 적합해 보이는 입장과 어조를 이른바 ‘사적’ 공간에 의식적으로 침투시킨다. 많은 사람은 PC 정치가 지식인, 대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PC가 학계 내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봉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어떤 철학자들은 PC 정치의 [지식인주의적이고 아카데믹한] 성격을 두고 극단적 ‘명목론’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런 뜻으로도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극단적 명목론이란, 사물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그 사물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PC의 분명한 믿음을 가리킨다. PC는 매우 개인주의적인 정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즉, “진리를 증언하고” 나홀로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하는 개인이 행하는 정치 말이다. PC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로 결단한 사람들로, 소수지만 헌신적인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는 PC 지지자들(PCers)을 보며 사람들이 17세기의 성인(聖人)들과 같은 현대판 개신교를 떠올린다는 뜻만은 아니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강력한 책무감은 종종 PC의 가장 특징적인 ‘목소리’였다. 
 
 

2. 뉴라이트의 부상과 영국의 PC

 
‘정치적 올바름’의 부상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에서는 최근까지, 영국에서는 지금도) 정치적 뉴라이트의 우세가 두드러졌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이건-부시 정권과 대처 정권은 정치 무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 행위와 도덕적 논쟁의 한계를 설정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맹렬한 사회철학으로 공적 사고의 한계선을 다시 정립하고, 강력하고 새로운 반(反)복지 컨센서스를 작동시켰다. 그들은 정부의 모든 국가장치에 대한 통제권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이데올로기 영역에 대한 지배권이라는 측면에서도 우위를 장악했다. 즉, 그들은 이데올로기적 문제들, 예컨대, 도덕, 섹슈얼리티, 육아, 교육, 교실에서의 권위, 학습의 전통적 기준, 교과과정에서 지식의 편성과 같은 문제들을 기꺼이 진지하게 다루고자 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진지하게 다뤄야 마땅하다.) 그들은 이기심, 탐욕, 소유적 개인주의를 유혹적으로 호소하는 데 성공했다.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란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하는 개인주의를 말한다.] 그들은 계급적 지지가 갈라지는 전통적인 분할선을 가로질러서 일종의 포퓰리즘적 동맹을 형성해냈고, 좌파의 핵심적인 전통적 지지층 속에 “시장의 원리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복음을 불어넣었다. 정치적 뉴라이트는 평범한 사람들이 품은 범죄, 인종, ‘타자성’에 대한 기본적 공포, [나아가] 변화에 대한 기본적 공포를 활용했다. 그들은 편협하고 반동적인 문화민족주의라는 음침한 물 속에서 [지지자를 찾아내기 위한] 낚시를 했고, 그들이 내세운 성적, 문화적 의제를 통해서 몹시 떠들썩하고 잘 조직된, [소위] ‘침묵하는’ 도덕적 다수를 모아냈다. 비록 PC가 뉴라이트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이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뉴라이트는 이러한 도덕적, 문화적 이슈가 종종 정치게임의 승패를 가른다는 인식을 PC와 공유한다. 이러한 인식은 분명히도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또는, 이 점에 관한 한 노동당)의 ‘정치’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영국에서 [대처주의가] 그런대로 무난한 외양을 띠는 ‘메이저주의’로 바뀌는 표면적인 변화가 있었으나[대처 총리의 후임인 존 메이저의 임기가 1990~1997년이었다], 대처주의가 시작한 영국 사회의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변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정부의 정치권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뉴라이트의 프로젝트 [간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우리는 정치권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던 수많은 사례를 보았으나, 뉴라이트의 프로젝트는 더욱 심층적이고 심오한 무언가를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 시대 전체를 ‘종식’하고 (즉 복지국가, 케인즈주의, 완전고용, 종합교육(comprehensive education)[학생들을 수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모아 가르치는 영국의 중등교육]의 시대. 이에 기초하여 전후 합의가 구성되었다), 그것을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유형의 사회질서로 대체하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뉴라이트의 관점은 사회적·도덕적·성적·가족적 생활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공적 제도를 거의 포괄적으로 변형했다. 그것은 기업식 경영이라는 새로운 원칙을 통해서, 공적 제도들이 직접적으로 시장에 복종하거나 간접적으로 시장을 ‘모방’하도록 강제했다. 뉴라이트의 관점은 하나의 철학이자, 세상 모든 것을 위한 하나의 처방전을 담고 있었다. 즉 그것은 우리가 시민이자 투표권자로서 행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아이, 교사, 의사, 연인으로서 행동하는 방식도 개조하고자 했다. 

이처럼 심층적이고 다면적이며 근본적인 ‘개혁’ 프로그램은 새로운 종류의 정치행동에 의해 작동되었다. 즉 그 프로그램은 경제전략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상이한 전선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행되는 정치투쟁이었는데, 지적·도덕적·문화적·철학적 영역에서의 투쟁이 최선두에 섰다. 그 프로그램의 성공은 (비록 의회 내 소수파 정당의 지지층에 기초를 두더라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게 아니라, 공적생활과 시민생활을 개조하는 데에서 얼마나 효율성을 보이느냐에 의해서 평가될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국가를 수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승리는 가장 세세한 문제들을 두고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에 달려 있었다. 예를 들어, 민간 자선단체가 노숙자에게 따뜻한 수프를 선물로 제공하는 것이 그들이 더 ‘의존적’인 삶을 살게 하느냐는 문제부터,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런던에 있는 크리켓 경기장]에서 서인도 크리켓 팀[카리브 지역의 영어사용 국가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잉글랜드 팀을 꺾었을 때, 관중들이 서인도 팀을 응원한 것이 영국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냐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상이한 투쟁들에서 획득한 지배권에 기초한 [뉴라이트의] 정치행동은 상이한 이해관계들을 하나의 광범위한 포퓰리즘적 ‘동맹’으로 용접해냈고, 어떤 [기존의] 합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동의를 획득하는’ 역량, 일련의 소수집단들을 하나의 다수로 모아내는 역량을 구성해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뉴라이트의 전략적 정치행동을 ‘헤게모니적’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 

정확히도 바로 이러한 점이 [즉 광범위한 동맹과 동의에 기반을 둔 헤게모니의 획득이] 전통적 좌파의 약점이었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말이다. 뉴라이트의 공세에 대한 전통적 좌파의 대응은 방어적이었고, [과거에는] 명확했으나 점점 더 시대에 뒤떨어진 채 쇠퇴하고 있는 힘의 원천으로 퇴각했다. 전통적 좌파는 이러한 변화가 생산한 새로운 모순들에 개입하거나, 급격하고도 영구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전통적인 가치와 임무를 다시 생각해보지 못했다. [대처, 메이저 시기에] 반대파는 모든 전선에서 후퇴했고, 그들의 철학은 (예컨대, 동유럽에서 이른바 ‘국가사회주의’ 실험의 해체, 서유럽에서 복지자본주의의 쇠퇴와 같은) 광범위한 역사적 변화 때문에 혼란을 겪었으며, 따라서 우파의 프로젝트를 차단하는 데 (성공을 거두는 것은 고사하고) 충분히 깊숙하게, 또는 역사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입할 수 없었다. 그 대신에 그들은 계속해서 수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특히나 그들은 구래의 개혁세력을 더 새로운 세력, 즉 신사회운동 중 그 누구와도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가 앞에서 논증한 것처럼, 신사회운동은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더욱 파편화된 정치지형 속에서 부상하고 있고 그러한 정치지형의 특징이다. 
 
 

3. 영국 좌파와 PC: 런던광역시의회 사례

 
런던광역시의회(GLC, Greater London Council)는 영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핵심적 사례 중 하나였다. 그것은 영국적 맥락에서 PC를 고찰하는 데 도움을 주므로 여기서 기억을 되살려 볼만 하다. 켄 리빙스톤이 이끌었던 GLC는 [역사적으로] 중요했는데, 1980년대 대처주의에 맞서는 거의 유일하며 진지한 정치적 대안을 대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형태이자 (GLC를 구성했던) 새로운 정치적 동맹을 형성했다는 측면에서 그러했다. GLC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은 제도들 내에서, 그리고 런던 노동당이라는 ‘구래의’ 세력과 맺은 (종종 힘겨운) 동맹 내에서, 또한 노동당주의(Labourism)라는 낡은 문화 속에서 지휘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사례를 뒤쫓아서, 여러 도시에서 새로운 종류의 ‘뉴레프트’가 부상했다. 그들은 선거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을 때 지위와 자금을 활용해서 (우리가 깊이 다루지는 않겠지만, GLC 사례에서 이는 특정한 역사적 이유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다), 주민들 중 빈곤층을 위한 지역서비스를 확대하는 조례를 제정했을 뿐만 아니라 성차별, 인종차별, 동성애공포에 반대하는 새로운 종류의 조례를 제정했다. 이러한 조례의 제정은 특히 교육 부문에서, 그리고 동등 기회 규정이나 성적 괴롭힘 규정의 채택에서 두드러졌는데, 그들은 여전히 지역당국의 통제를 받도록 남아 있던 영역에서 그러한 조례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러한 정치운동과 그 정치적 구성에는 매우 새로운 무언가가 있었다. 상이한 급진적 전통과 세력들이 동맹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장이 영국에서 실제 정책으로, 이 정도 규모로 시행된 적이 결코 없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또한 내가 보기에 그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는데, 전통적인 계급구조를 가로질러서 잠재적으로 대중적인,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블록’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이슈들을 모아냈기 때문이다. GLC/지역사회주의(local socialism) 동맹은 전국적 수준에서 대처주의 프로젝트의 근본적 공격에 (심층적으로, 복합적으로, 참신하게) 필적할 수 있는, 좌파의 유일한 ‘헤게모니적’ 정치전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런던 트랜스포트에 관한 유명한 ‘공정한 요금’(fare’s fair) 캠페인은 전형적인 사례다. 여기에는 사적인 요구에 대비하여 공공의 요구를 우선해야 한다는 이슈가 있었고 (이는 민영화라는 대처주의의 핵심 테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이는 재분배와 평등주의를 강력히 강조하는 흐름과 결합했고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도 자동차를 사적으로 소유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몇몇 핵심적인 ‘문화적’ 테마들과 연결되었으며 (도시 생활과 도시 공간의 부흥, 환경적 피해의 복원, 도시에 대한 런던 거주자들의 자부심 회복), 분명히도 ‘신사회운동’이 제시한 테마도 이를 지지했다 (여성의 안전한 이동 보장, 도시 내에서 독신 여성이 낮이든 밤이든 간에 어떤 시간에도 그들의 선택에 따라 혼자서 이동할 권리. 이는 ‘밤을 되찾자’라는 페미니즘 슬로건으로 집약된다).
 

내가 언제나 생각하는 것처럼, 대처 정부는 이들이 사회세력 간의 새로운 연합으로서, 잠재적으로 대중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침대에서 목을 졸라 죽이고픈 욕망을 느꼈고, 그래서 GLC를 파괴하고 지방정부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였을 것이다. 이러한 공격의 창끝에는 ‘미치광이/얼간이 좌파(loony left) 시의회’를 다루는 토리[영국 보수당]파 타블로이드 신문의 악독한 캠페인이 있었고,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활기차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어떤 유치원 교사가 ‘음매, 음매, 검은 양’(Baa, Baa, Black Sheep)이라는 동요를 금지했다는 이야기 등등을 미디어에 확산했다. 이처럼 악독한 캠페인은 대처하기에 쉽지 않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몇몇 사례들을 볼 때 이런 이야기들에는 미디어가 계속 증폭하기에 딱 맞는 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관례가 된 것처럼, [미치광이/얼간이 좌파라고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는 현재 PC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즉, △ 제기된 이슈들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 미디어가 펼치는 과장된 선전의 이면에 정치적 동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고 노력한다, △ 그와 동시에, 그 자신은 일부 투사들이 ‘반(反)인종주의’나 ‘반(反)성차별주의’, ‘반(反)동성애공포’라는 이름으로 행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행동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요약해보면 이렇다.] 우리의 적은 나쁘기 그지없다. 우리의 일에 참견하지 마라. 

GLC-미치광이 좌파 사건의 옳고 그름은 논쟁할 가치가 없지만, 심층적인 정치적 평가는 그럴 가치가 있다. 신사회운동들의 의제를 조례로 제정하려는 이러한 시도를 대처주의가 성공적으로 물리친 후, 그 여파로 나타난 현상은 (정치적 조류의 약화에 따른) 이러한 소수파들[신사회운동들]의 고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립감은 일종의 절망을 담고 있던 ‘의지의 승리’와 혼합되어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서 ‘의지의 승리’란] 심지어 대중적 지지의 물결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라도(초기 단계에서는 대중적 지지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완강히 버티고, 저항하고, 밀고 나간다는 결단을 말한다. 아마 불가피하게도, 광범위하고 전국적/대중적이며 헤게모니적인 전략으로서 1980년대 초에 시작된 것은 (즉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전진하고, 공직 내 권력과 그 외부에서 이뤄지는 정치에 대한 교육적 접근법을 결합하고, 그에 따라 동의를 획득하고 대중적/민주적 기초를 확대한다는 전략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이르러, 낡은 정치형태, 즉 일종의 방어적 전위주의(defensive vanguardism)로 되돌아갔다.   
 
 

4. 진지전인가, 전위주의적 소수파 전략인가 

 
지금에 와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대처주의에 맞서면서, 지역사회주의/신사회운동 동맹에 기초를 둔 대중적-민주적 대항정치는 사실상 성립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신사회운동이 낳은 결과는 (즉, 그들의 새로운 정치의제, 새로운 정치세계에 관한 그들의 본능적 인식, 정치적 반대파들이 취했던 ‘헤게모니적’ 스타일에서 전위주의적 스타일로의 역전 등과 같은 결과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전진할 때뿐만 아니라 후퇴할 때도, ‘전략적’이 되는 것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대처주의 뉴라이트보다 이러한 교훈을 잘 알고, 이를 잘 보여주었던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1979년 이래로 여러 번에 걸쳐서 잠시 방어적 현상유지 작전을 펼치도록 물러나야만 했으나, 그 전과 동일하지만 더 심층적인 전략적 전망을 담은 또 다른 판본을 내세우며 싸우기 위해 되돌아 왔다. 예를 들어, 대처주의의 현대화 프로그램 중에서 국가보건서비스(NHS)가 국가적인 수준에서 풀기 까다로운 문제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을 때, 대처주의는 전략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은 대처를 전선에 투입했고, 대처는 “우리 손 안에서 NHS는 안전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 다음에 NHS가 시장원리에 복종하도록 강제함으로써, NHS의 기저에 있는 원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보톰리와 같은 장관들은 교묘한 말을 내놓으면서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런 사례가 내가 ‘후퇴하면서 전략적으로 전진하기’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국의 공적-정치적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대부분의 PC가 보여주는 최근 스타일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인 편협함, 도덕주의, 참호 속에 숨어 있는 전위주의야말로 1980년대 중반에 경험한 패배의 순간에 태어났거나 강화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은 또 다른 요인, 즉 뉴라이트에 직면한 좌파의 실패 또는 취약성에 의해 뒷받침되었다고 믿는다. (좌파의 실패나 취약성은 신사회운동의 그것과 맞먹지만, 물론 다른 종류에 속한다.) 나는 여기서 다뤄야 할 쟁점이 이런저런 특정한 순간에 신사회운동이 잘했냐 잘못했냐에 관한 전술적 판단이 아니라, 좌파가 정치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는 심층적인 문제라고 덧붙이고자 한다. 뉴라이트의 역사적 의제를 ‘전위주의적’ 소수파 전략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반대하거나 물리칠 수 있겠는가? (이제 나는 뉴라이트의 의제가 단지 영구히 권력에 머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도덕적·정치적 질서를 되돌이킬 수 없도록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질문에 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다. (나의 대답은 최소한 일관성이라는 미덕이 있다.) 왜 ‘아니오’인가 하면, 내가 [이 글의] 다른 곳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뉴라이트의 역사적 성격 때문만이 아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장했던 것처럼(우리는 ‘헤게모니’를 향한 투쟁이라는 정치 개념을 그람시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 사회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1차 세계대전의 군사적 은유를 활용한 그람시의 용법을 따를 때)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기동전’은 상대 전력을 전면 공격으로 쳐부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진지전’은 여러 상이한 진지들을 향해 동시에 전진하는 것이다. 진지전을 수행하는 세력의 종합적인 위력은 [전면 공격으로] 여리고(예리코) 장벽을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전체 투쟁영역에 걸친 ‘세력균형’에 달려 있다. 진지전은 권력이 더는 한 장소나 중심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예를 들어, 우체국이나 총독관저처럼, 과거에는 혁명가들이 장악하기를 몹시 원하는 곳이 있었다), 사회 전체에 걸쳐 분산, 탈중심화되어 있는 사회에 적합하다. 또한 진지전은 우리 사회처럼 모든 포스트-산업사회가 공유하는 상황, 즉 권력이 국가 내부에서만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람시가 ‘시민사회’라고 부른 것 내부에서도 행사되는 상황에 적합하다. 그렇다. 권력은 정확히도 문화적·도덕적·사회적 문제들이 다뤄지는 장소를 통해서 행사된다. 다시 말해, 가족, 교육, 종교,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민족정체성, 대중매체, 종교와 같은 문제들은, 우리가 앞서 주장한 것처럼, 신사회운동과 ‘정치의 문화화’가 정치방정식의 중심에 가져온 것들이었다. 효과적인 방어는 현대 정치투쟁에서 본질적인 일부이고, 권력의 획득도 중요한 한 가지 요소이긴 하지만, 효과적인 방어나 권력의 획득은 ‘진지전’을 추구하는 정치가 취하는 전략형태의 대체물이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진지전’ 전략에서 또 다른 핵심은 단순히 ‘전투의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는 ‘동의를 얻는 것’, 즉 다수를 당신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진지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식한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한 이래로, 보편적 투표권, 언론의 자유, 법의 지배와 같은 그 성과들이 지금은 제한된 것으로 보이더라도, 결정적인 개입을 위한 싸움은 우리가 ‘민주주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곳을 두고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말하자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장기적으로 변형하는 일에 진지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 (즉 포스트-민주주의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올바름’에 관한 우리 자신의 청교도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 다수를 획득하는 문제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감각은 그저 ‘그들보다 더 좌파가 되기’로 이어지거나, 소수파가 모든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만약 필요하다면 소수파가 강제로라도 다수파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은 레닌주의적 판본의 ‘기동전’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동유럽에서 그러한 전위주의가 낳은 상당한 결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혁명적 변화는 ‘다수’를 획득하고, 교육하고, 변형하는 데 실패했다. 다수는 그저 시간을 견뎌냈다. 그 후로 그들은 수많은 측면에서 볼 때, 낡고, 자기 민족 중심적이며, 인종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태도로 되돌아갔는데, 즉 레닌주의자들이 ‘다수를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품고 있던 태도로 복귀했다.) 진지전은 [전위주의자들처럼] ‘더 높은 선(善)’, ‘우월한 지식’을 내세우면서 민주주의의 엄격한 규율을 면제받을 여지를 잠시라도 제공할 수 없다. 진지전은 민주적인 전략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국소적인 승리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운명에 처한다. (즉 진지전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현실의 공포, 혼란, 불안을 진심으로 고려하고, 그들이 삶의 새로운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그들을 설득하며, 그럼으로써 지금은 그저 파편화된 소수로 머물러 있는 그들을 다수로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해서 동성애를 싫어하는 학부모들의 관점을 완화하기 위한 힘든 노력 없이, 『제니는 에릭, 마틴과 같이 살아요』라는 책을 근소하게 과반을 차지한 교육위원회를 통해서 지역 학교에 배포하려고 밀어붙인 결과는, [교육위원회에서 통과된] 그때에는 편협한 사람들에 대해 거둔 승리가 ‘구원을 받게 될 소수의 남은 자들’의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있지만 [‘구원을 받게 될 소수의 남은 자들’은 로마서 9장 27절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좀 더 극단적인 경우에, 오직 역풍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냉엄한 진실이지만, 내가 보기에 역설적이게도, GLC가 해체된 후 등장한 PC 세력과 전통적인 노동당이, 비록 서로 다른 식이긴 하지만, 분명히도 이해하지 못했던 진실이다.  
 

좀 더 장기적인 정치적·역사적 관점에서 PC를 이해하려는 시도로부터 내가 이끌어내고자 한 가장 중요한 결론은 PC가 전위주의적 전술이고, 마치 전략적인 정치적 성과를 산출할 수 있기라도 하는 듯이 추진된다는 점이다. PC는 더 광범위한 문화적·사회적 이슈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옳지만, 정치에 있어서 ‘교육적’ 접근법이 지닌 중심성이나, ‘문화전쟁’을 실제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대중의] 동의를 얻는 것이 지닌 중요성을 적절히 이해하지 못했다. PC는 정치 의제를 급진화했으나, 정치에 관한 낡고, 신뢰가 떨어진 개념에 갇혀 있었다.  
 
 

5. PC와 ‘진리로서의 정치’: 
언어의 다의성을 법률적 개입으로 고정시킬 수 있나? 

 
하지만, 정치적 평가는 이야기의 단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PC의 어떤 핵심적, 근원적 가정들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GLC의 해체 이후, 즉 1980년대 중반 이후, PC가 분명히 출현할 때, 특히나 이러한 가정들이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비록 나의 전반적인 평가도 부정적이지만, 내가 보기에 설득력이 없는 주장으로 PC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PC의 강점과 약점을 더 균형적으로, 세심하게 다루는 설명이 필요하다. [설득력이 없는 주장의] 예를 들면, 구좌파는 PC가 빈곤, 실업, 경제적 불평등과 같이 우리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현실’의 문제들과 비교할 때, 그와 무관하고 사소한 이슈들에 관심을 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명백히도 수용할 수 없다. 이러한 비판은 매우 낡은 관점, 즉 일종의 우둔하고 저급한 유물론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저급한 유물론에 따르면] △ ‘계급’이 예컨대 젠더보다 더 현실적이고, 다루기에 더 간단하다, △ 계급은 경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튼 간에 더 물질적인 결정요소다, △ 경제적 요인들은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존재조건 외부에서, 달리 말하면 젠더화·인종화되어 있는 존재조건 외부에서 단독으로 작동한다. 내가 보기에 이는 전적으로 틀리다. 이에 집착하는 것은 (지난 30년간 이러한 가정들에 도전하고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벌어진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치’에 관한 전통적인 개념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남아 있고, 집단적 의식 속에 (놀랍게도, 심지어 일부 헌신적인 페미니스트들 사이에도)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PC 운동가들이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종족성, 언어, 지식, 커리큘럼, 핵심문헌목록(canon)을 선정할 때 나타나는 자민족중심주의 등등, 지금까지 무시한 문제들을 최전면에 내세운 것은 분명히 옳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정치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옳다. 그들이 말하길, ‘정치’가 이러한 문제들을 전통적으로 무시한 것은 그렇게 하려는 어떤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나 음모 때문이 아니라, 문화 전체가 이런 사회적 적대들을 정치적으로 볼 수 없도록 작동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말도 옳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PC 운동은] (PC가 정당하게 주장하듯이) 이러한 이슈들을 볼 수 있게 하도록, 더욱 더 쿵쿵거리며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성스러운 금기들을 무너뜨리고, 침묵의 공모를 깨뜨릴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이슈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도 있는 정치전략을 고안해내는 것만 빼고 말이다.) 더욱이, 만약 정책적, 제도적 변화가 일상의 개인적 실천까지 파고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중요한 변화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진보적이고 성차별에 반대한다고 하는 남성들이 직장에서 동등기회 결의안을 통과시키느라 너무 바빠서 도저히 설거지할 시간은 내지 못한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은가. 

다른 한편으로, PC는 우리의 일상적 언어 사용에 내재된 가정들에 도전하는 것과, 언어를 단속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소수자를 대하는 행동을 집단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과, 사람들에게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말하는 것도 완전히 다른 문제다. PC는 우리가 정치를 실천하는 방식이 [사람들로부터] ‘동일화(identification, 공감)를 얻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에 관해 PC가 제시하는] 그러한 분석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타당하냐는 문제와 별개로)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 즉 실제로 그러한 실천을 지탱해야만 하는 주체들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점을 [사실은] 알고 있거나, [모른다면]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정체성(identity, 동일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화 외부에서 창출된 다음에 정치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란 근본적인 수준에서 개인들을(개인들의 정체성은 다양하며 분할되어 있다)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형성하며(예를 들어, 온갖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흑인’처럼 느끼고 행동하게 한다든가, 다양한 여성들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게 한다든가 말이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한 그들의 동일시를 획득하는 과정이다(그렇지만 그들의 동일시는 [언제나] 결코 완전하거나 균질적이지 않다). 문제를 끌어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에 관해 침묵하게 하는 [즉 반대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은 어려운 이슈들을 원인이 아니라 증상 수준에서 다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기에 PC의 문제는 그들이 제기하는 의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나는 그러한 의제에 종종 동의한다), 그들이 취한다고 보이는 입장에 담긴 함의를 그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언어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언어는 본질적으로 다의적이며(multi-accentual), [단어의] 의미는 언제나 미끄러지듯이 변하기 때문에, 그 의미는 궁극적으로 고정될 수 없다. 언어의 무한한 다의성에 이데올로기적으로 간섭하기를 바라며, 언어가 이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언어를 고정시킴으로써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할 수 있게 하려는 자들은 바로 우파다. 거칠게 말하면, 올바른 영국 보통 남성과 여성이 되기 위해서 청년들이 배워야만 하는 것들이라고, 존 패튼[1992–1994년 영국 교육부장관]이 그의 무한한 지혜로 결정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하지만 좌파가 입법절차를 통해서 언어를 고정시키기 위해 간섭할 수 있다, 또는 간섭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존 패튼과 정확히 동일한 게임을 하는 것이며, 그저 위아래, 앞뒤가 바뀐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과 문화 이론의 ‘언어학적 전환’에서 배운 핵심 교훈은, 하나의 모형이나 실천의 효과는 우리가 그 모형이나 실천을 단순히 뒤집어 놓는다고 해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흑인이 선하고 똑똑하다고 믿는 것은, 수 세기 동안 흑인이 불쾌하고 잔인하고 어리석다고 여겨진 것을 감안하면 위안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도 여전히 인종주의적 가정에 근거를 둔다. 반(反)인종주의 정책의 기초를 생물학적 또는 유전학적 근거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한 생물학적·유전학적 근거가 우리를 지지하든, 국민전선[영국 백인우월주의 정당]을 지지하든 말이다. 모델을 뒤집을 때가 아니라, 그 모델의 제한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서 틀을 바꿀 때, 진정한 단절이 발생한다.  

PC는 언어와 문화가 말하는 바나 의미하는 바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고자 했으나, 의미와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자신들의 개념화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는 단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PC 전략 전체가 정치에 관한 한 가지 개념화, 즉 정치란 ‘잘못된 생각과 의미를 폭로하고 그것들을 진실한 생각과 의미로 대체하는 것’이라는 개념화에 의존한다. PC 전략은 ‘진리로서의 정치’(politics as truth)라는 이미지 속에서 세워진다. (예컨대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며 동성애공포적인 잘못된 의식을 ‘진실한 의식’으로 대체한다.) PC 전략은 (푸코나 여타 논자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심오한 관찰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즉 지식의 ‘진리’는 언제나 맥락에 의존하며, 언제나 담론 내에서 구성되며, 어떤 지식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는 권력관계들과 언제나 연결된다는 관찰 말이다. [푸코의 관찰은] 한마디로 ‘진리의 정치’(politics of truth)다. 담론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그 세계 속에서 우리가 행하는 바, 양자 모두에 영향을 주므로 (담론의 영향에 대한 설명은 타당하다), 우리가 언어를 두고 투쟁을 해야 한다는 관점은, 어떤 절대적 진리(Absolute Truth)가 존재하도록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변화 과정을 생략하려는 시도에 의해 그 정당성이 무효로 돌아간다. 게다가, 지금 법률로 제정되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단일하며 균질적인 진리다. (즉, 그들의 진리를 대체하기 위한 우리의 진리다.) 그러나 사실, 현재 진정으로 어려운 과업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는 관점을 고수하면서도, 차이를 수용하고 그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체성들과 진실들로 구성된 어떤 집합을 ‘더 올바른’ 집합으로 대체하는 하나의 권위라는 모형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문화적 권위에 대한 비판,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통일적이고 균질적인 개념화에 대한 비판은, 정치를 본질주의적인 방식으로 개념화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무가치하고 무익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6. PC와 좌파의 분열: 
‘그들 편’과 ‘우리 편’으로 나누는 PC의 이분법적 전략 

 
그래서 PC는 하나의 역설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는 내가 왜 PC에 대해 깊은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지 설명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PC는 새로운 정치적 국면의 몇몇 특징에 속하거나, 그런 특징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때때로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 국면에 등장한] 몇몇 새로운 개념들을 구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실제로 ‘PC’로 통하는 수많은 것은 새로운 정치형태에서 나타난 일종의 기형(奇形), 즉 과장스럽고 우스꽝스러운 형태(캐리커쳐)다. 새로운 정치적 정세는 PC를 산출했다. 그러나 PC는 실제로 PC를 산출한 세력들과 사상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에, PC는 먼 옛날의 노쇠한 무기로 새로운 투쟁을 하려 한다. 

PC가 좌파를 분열시켰다는 우리의 인상은, 따지고 보면 환상이나 오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근본적 분열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한편으로는, 정치란 ‘그들 편’이 존재하던 곳에서 ‘우리 편’을 끌어들이고,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했던 것과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를 [경찰과 군대를 통해서] 통제함(policing)으로써 통치한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전략[즉, ‘그들 편’과 ‘우리 편’을 나누는 전략]은, 그런 식으로 통치하는 자들이 우리 편이기 때문에 정당화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포스트-산업사회에서 정치의 과업이란 권력이 배열된 갖가지 형태를 영구적으로 뒤흔들면서, (우파적이든 좌파적이든 간에) 그것들이 다시금 의식을 잃고 ‘망각의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망각의 깊은 잠’은 권력이 매우 일상적으로 유도하려는 것이자, 권력이 작동하는 조건으로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전선에서 PC는 내가 잘못된 쪽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되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내게 동의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손가락 고문 장치를 꺼내는 소리, 기요틴 날을 가는 소리, ‘정치적 올바름 사전’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사형수 호송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