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치권력의 견제자가 될 것인가
편집진은 이번 여름호를 6월 3일 대통령 선거 후에 평가와 전망을 담아서 발간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여름호는 6월 초에 나가야 하지만, 대통령선거 결과를 담아서 내는 게 더 쓸모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집 주제도 ‘2025년 대선, 평가와 전망’이다.
특집의 첫 번째 글, 임지섭의 「만성화된 헌정 위기와 국민주권정부의 위험성: 21대 대선 분석과 평가」는 이번 21대 대선을 거치며 한국의 헌정 위기가 만성화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권심판과 정권교체를 넘어 유례없이 심각해진 헌정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어야 했다. 그러나 탄핵 국면은 물론이고 대선 국면에서도 헌정 위기 해소를 위한 ‘정치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대 정당이 더 이상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유지하지 못하고, 공적 자산을 둘러싼 파당 간의 내전에 몰입하면서 사실상 반헌정세력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진보당과 민주노총 집행부가 민주당의 정권교체론에 노골적으로 편승함으로써, 독립성과 비판력을 상실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는 점 역시 지적한다. 필자는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내란세력 척결’과 ‘압도적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대선 국면을 주도했지만, 그들도 과거 다수당으로서 권한을 남용하고 법치주의를 위협한 주체였다는 점에서, 정권교체 자체가 곧 헌정 위기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민주권정부가 국가재정과 검찰/사법부 개혁을 명분으로 권력을 제한하고 견제하는 제도와 관행을 해체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민주정과 헌정의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야말로 독립적 비판세력으로서 민주당의 인민주의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가운데, 만성적 헌정 위기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글, 임필수의 「이재명 정부 쟁점과 전망: 누가 정치권력의 견제자가 될 것인가」는 앞의 글을 보충한다. 필자는 과거 문재인 정부를 보며 그 위험스러운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검찰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명분으로 독립성을 위협하고 그럼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을 통한 법의 지배의 실현’이라는 현대 정치의 원리를 부정했다. 둘째, ‘부두 경제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경제학적 근거가 없는 경제정책을 도입하고자 했다. 이 역시 정부의 경제정책은 확립된 경제이론을 전제로 한다는 현대 경제정책의 원리를 부정하는 행동이었다. 셋째, 반일민족주의를 선동하면서 외교 사안까지 정치화하는 극히 위험스러운 시도를 밀어붙였다. 필자는 이를 포퓰리즘(인민주의)의 위험으로 규정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한층 더 나쁜 방향으로 밀고 나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정치권력을 내부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사법부의 권위와 역량을 해체 또는 축소하려 한다. 또한 대통령의 정책 의지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국가의 경제장치 중에서 핵심부문인 예산기능을 떼어내 대통령 직속으로 두려고 한다. 이는 마치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과 기획재정부가 ‘정부 내 야당’ 역할을 했던 악몽을 이번에는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한다. 필자는 견제와 균형을 파괴하고, 법치나 경제정책의 원리를 무시한다면 이는 사실 현대국가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번 ‘집중분석’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눈을 돌려 유럽의 정치 상황을 살펴본다. 김영진의 「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는 최근 유럽 각국에서 주류 정당이 된 포퓰리즘 세력의 행태를 분석한다. 먼저, 포퓰리즘과 헌정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분석한 우르비나티 교수의 설명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정당, 언론, 사법부를 비롯한 현대 민주주의의 매개조직을 훼손한다. 포퓰리스트들은 매개조직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되, 파당적으로 활용하고 사유화하고자 한다. 그 결과 정치체제 전반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헌정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협이다. 필자는 이러한 틀에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의 포퓰리즘 정당과 정치인의 최근 행태를 살펴본다. 최근 포퓰리즘 정당이 집권하거나 기존 의회의 정당 지형을 바꾼 국가이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구체 맥락은 다르지만, 포퓰리즘 정치세력은 대체로 매개조직에 공격적이며, 특정 정치인 혹은 분파가 정당을 장악하고 실용적 수사와 정책을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한 뒤, 권력을 활용해 매개조직을 적극적으로 손상시키는 권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나아가, 유럽통합의 위기로 부상한 포퓰리즘 정당들은 국가 간 매개조직도 적대시한다. 필자는 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각국의 헌정과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적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유럽정치의 복원과 재건은 이들 포퓰리즘 세력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사회운동사’로 싣는 김진영의 「사회진보연대의 반핵평화운동과 한일연대: 1998~2025년」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0년, 한반도 해방 80년을 맞아, 1998년 출범한 사회진보연대가 펼친 반핵평화운동과 한일연대의 역사를 정리한다. ‘모든 핵무기에 대한 반대’를 원칙으로 ‘반핵평화’를 강조하는 기조와 실천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사회진보연대의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를 발본적으로 평가하면서, 소련의 핵무장은 ‘사회주의를 방어하는 핵’이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절멸적인 미소 핵 경쟁의 한 축이자, 세계 반핵평화운동을 분열시키고 인민에 대한 국가주의적 억압으로 귀결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진보연대가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모든 핵무기 반대’를 원칙으로 삼고자 했다. 더구나 탈냉전 시대에도 끝나지 않은 한반도 핵전쟁 위기를 해소할 길은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는 대중적 반핵평화운동밖에 없었다. 2003년 이후 북한의 핵무장 시도가 본격화하면서, 사회진보연대는 북핵이 한반도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심화하는 요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내외 사회운동세력, 특히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과 연대했다. “냉전 이후 핵 감축의 시대”가 끝나고 강대국들의 핵 경쟁이 다시 개시될 조짐을 보이며, 북한이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무기 개발에 매진하는 현 상황에서, 필자는 모든 핵무기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사회주의 역사 읽기’는 샤를 베틀렘의 『소련에서의 계급투쟁』 1권 전반부를 다룬 정성진의 「프롤레타리아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본 10월 혁명」을 수록했다. 이 글은 베틀렘의 분석을 통해 소련의 실패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그 교훈을 되살릴 필요성을 제기한다. 연재의 서론 격인 이번 글은, 사회관계와 계급투쟁의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분석하며 실천의 성격을 판단하는 베틀렘의 역사관을 해설한다. 이어서 1917년 2월 혁명에서 10월 혁명까지의 사회관계 변화를 베틀렘의 분석에 따라 정리한다. 세계대전으로 인한 초유의 경제위기와 대공세 실패 속에서 볼셰비키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도시 프롤레타리아 형성을 가능케 했고, 이들이 농민운동과 결합해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10월 혁명 이후에도 경제난과 혁명 지속을 둘러싸고 당·정부·노동자·농민 간의 관계가 핵심 쟁점으로 남았다. 베틀렘은 이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의 결합’이라는 과제로 정리했다. 다음 글부터 내전기와 신경제정책에 대한 베틀렘의 분석을 살펴보며,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선포로 시작된 계엄-탄핵 정세가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일단락되며 한국의 정치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독자 모두 숨 가쁜 6개월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도착한 이 국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분히 돌아볼 때다. 이번 기관지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5년 6월 20일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