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가 된 유럽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1. 서론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유럽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위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유럽 패싱을 마주하면서 대서양 동맹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느꼈다. 동시에 범유럽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응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3월 2일 영국에서 열린 유럽 주요국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유럽 정상들은 ‘유럽이 단합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긴급행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유럽연합 역시 경쟁력 나침반 계획, 재무장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며 경제적 자립과 외교, 군사적 자강에 나서고 있다.
한편, 2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위의 흐름과 상충하는 행사가 열렸다. 스페인 정당 복스(Vox) 주최로 열린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 집회에선 유럽의 주요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모여 유럽연합의 정책과 자국의 정치권을 비판했고,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을 비판하며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반다양성 정책에 동조했다. 이날 참석한 헝가리 오르반 총리는 “어제의 이단아였던 우리는 이제 주류가 되었다”고 선언하며 유럽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 집회
2월 8일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재편한 유럽 극우 포퓰리즘 정당연합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PfE)’ 소속 정당 지도자(스페인 복스, 프랑스 국민연합, 헝가리 피데츠, 이탈리아 동맹, 네덜란드 자유당 등)들이 모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차용한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세를 과시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이 장면은 현재 주요 유럽국 정상들을 중심으로 하는 범유럽 차원의 연대 강화 흐름에 내부 저항세력이 도전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실제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퓰리즘’으로 분류되는 정치세력은 기존 정치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현재 우파 포퓰리즘 교섭단체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PfE)’와 ‘유럽보수연합(ECR)’, ‘유럽주권자연합(ESN)’ 의석수를 모두 합치면 총 187석(26.5%)으로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대비 의석이 69석이 늘었으며 현재 유럽의회 2당인 ‘유럽사회민주당(S&D)’(136석)을 밀어낼 정도다. 유럽의회뿐만이 아니다. 유럽 각 나라 선거에서도 포퓰리즘 정치세력들은 각국의 정당정치 지형을 바꾸거나 집권세력이 되기도 한다. 최근 포퓰리즘 정당들의 부상에, 많은 분석가는 이들이 각국의 헌정은 물론, 유럽의 해체를 지향한다고 우려한다.
지난호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선 “헌정주의가 결여된 민주정은 권위독재정으로 역행하거나 인민정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글은 위 문제의식을 기초로 유럽적 맥락에서 포퓰리즘을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포퓰리즘이 헌정 민주주의(헌정주의)를 어떻게 변형, 훼손시키는지 살펴볼 것이다. 먼저 이론적 분석틀을 살펴본 후, 해당 분석틀을 기준으로 최근 유럽 주요 국가(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의 행태를 소개할 것이다. 그런 다음 주요 사례의 공통점을 분석하여 포퓰리즘이 각국, 나아가 유럽 차원에서 헌정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이들 세력에 대한 대처가 향후 유럽정치에 핵심 과제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2. 포퓰리즘과 헌정 민주주의와의 관계:
매개조직에 대한 공격과 변형
1) 기존 포퓰리즘 설명의 한계
포퓰리즘은 논쟁적인 단어다. 그 이론적 대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즘은 경험적 사례에서 그 특징을 도출하는 최소주의 접근과, 기존 민주주의를 대체할 급진적 민주주의 전략으로 사고하는 최대주의 접근으로 나뉜다. 전자는 특정한 정책적 입장, 정치스타일, 그리고 정치이념으로 포퓰리즘을 설명한다. 정책적 입장에서 포퓰리즘의 기준은 주로 무리한 확장재정정책, 인기영합정책으로 해당 정책을 펼치는 정당, 정치인을 포퓰리즘으로 간주한다. 정치스타일로 포퓰리즘을 설명하는 접근법은, ‘엘리트’와 ‘인민’을 대립시키고 자신이 ‘인민’의 편이라고 호소하는 수사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이념적 접근은 포퓰리즘이 극복하고자 하는 현실의 모순과 지향하는 사회의 상이 불분명하여 여러 정치이념을 차용하는 점에 주목한다.
반면 포퓰리즘에 대한 최대주의 접근은 포퓰리즘을 진정한 민주주의로 사고한다.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설명이 대표적이다.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을 기존 인민을 고립시키는 대의제에 맞서 집합적인 동일성을 형성하고 참여를 통해 ‘집단적 주체’로서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특정 소수가 통치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약자’들이 스스로 사회 및 정치질서를 형성하고자 하는 주권 추구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나 양자의 설명은 모두 결함이 있다. 최소주의 접근은 포퓰리즘과 비(非)포퓰리즘과의 경계가 모호한 문제가 있다. 확장재정정책과 인기영합정책은 포퓰리즘 정당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주류 정당들도 상황에 따라 특정한 수사로서 ‘엘리트’와 ‘인민’ 간 적대와 인기영합정책을 펼친다. 또한 새로운 수사와 정책적 공통점이 발견될 때마다 포퓰리즘에 해당하는 특성과 범주가 늘어나 포퓰리즘의 규정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한편 최대주의 접근은 포퓰리즘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여기서 ‘인민’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리고 현실에서 어떻게 운동적, 제도적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며 그렇게 모인 정치적 행위가 반드시 해방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정치학 교수인 나디아 우르비나티는 『나, 인민 : 포퓰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변형하는가?』에서 유럽적 맥락에서 포퓰리즘과 헌정주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포퓰리즘(권력 지향 정치세력으로서 포퓰리즘)의 구조적 특성을 설명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인민주의가 의회나 사법기관을 불신하면서,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법치를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고려할 때, 우르비나티 교수의 설명은 포퓰리즘(인민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2) 우르비나티 교수의 포퓰리즘 설명
우르비나티 교수는 포퓰리즘을 논하기에 앞서 현대 헌정 민주주의를 설명한다. 그녀는 민주정에서 주권자의 권력이 ‘이원지배’(diarchic) 즉, 의견(opinion)과 의지(will)라는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본다. 여기서 의견은 제도 바깥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영역이고 의지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 여론을 조율하는 제도와 절차를 의미한다. 이때 현대 헌정 민주주의는 의견과 의지를 독립된 영역으로 구별한다는 점에서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구별된다. 주권자와 통치자가 구별되며 주권자들의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도,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대중독재를 경험한 뒤, 현대 민주정은 다양한 매개조직(intermediation) 즉, 정당, 언론, 중앙은행, 독립된 사법부를 강화하며 의견과 의지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
의견과 의지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다양한 매개조직을 통해 상호 연결되며 영향을 준다. 다양한 이익집단, 사회운동 단체들을 통해 형성된 여론은 매개(중개)조직, 특히 정당을 통해 보편적인 정치적 판단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판단은 선거를 통해 평가받으며 ‘다수’의 지지를 받는 ‘부분의 지배’(merecracy)를 용인한다. 그러나 선출된 ‘부분’으로서 대표는 고정되거나 영속성을 보장받지 않는다. 대표로서 정부는 다양한 의견과 끊임없이 교통하며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적 과정(여론 수렴)의 시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여러 매개조직을 거치며 정책을 결정, 집행한다. 이렇듯, 현대 헌정 민주주의는 의견과 의지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를 선거와 매개조직을 통해 조절하면서 사회적 힘을 정치적 힘으로 바꾼다.
우르비나티 교수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이원지배 사이의 거리감을 참지 못하면서 등장한다. 의견과 의지 사이의 복잡한 시공간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며 이를 막는 다양한 매개조직들을 약화하고 그 작동방식을 변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포퓰리즘, 특히 권력을 쥔 포퓰리스트들은 선출된 ‘다수’의 대표를 사전에 정하고 배타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파시즘과 달리 기존의 대의제와 제도, 기관들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개조직을 장악하여 권력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 변형한다. 이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외부의 적이라기보단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착취하는 기생충과 같다.
우르비나티는 포퓰리즘은 기존의 민주주의 원칙과 개념을 변형하는 해석으로 민주주의를 내파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반기득권 개념을 변형한다. 현대 헌정 민주주의에서 반기득권은 권력에 대한 제도적 견제와 균형을 전제한다. 권력의 영속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제도적 견제와 여론 경쟁을 통해 독재를 막고자 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반기득권 개념을 기득권에 대한 반대, 제거로 이해한다. 여기서 기득권은 엘리트 일반이 아닌 정치엘리트다. 이들 정치엘리트(기성 정당, 사법부, 언론, 관료)가 인민과 ‘지도자’ 사이를 막아서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는 기존 정치엘리트를 비난하며 이들을 정치엘리트 외부의 인물인 자신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변형된 해석의 대상은 ‘인민주권’(people sovereignty)이다. 본래 ‘인민’은 대의제를 통해 ‘법 앞에 평등한 국민’의 이름으로 간접통치를 확립하는 절차적 개념이다. 즉, 주권자로서 추상적 집합체인 ‘인민’(국민)과 현존하는 ‘인민’을 구분하며, 현실의 대의제적 정치과정 곧 ‘다수’와 ‘소수’의 끝없는 경쟁을 추동하는 과정이 인민주권을 이룬다. 반면 포퓰리즘은 간접통치 개념을 전제하면서도, 주권자로서의 인민과 현존하는 인민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 여기서 주권자로서 인민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일치하는 ‘진정한 인민’(the true people)이라는 인공적 개념이다. 진정한 인민은 언제나 도덕적인데 그들이 정말 도덕적이기보단, 기득권이 아니며 언제나 기득권이라는 ‘부정의’의 피해자이기에 도덕적이다. 그리고 진정한 인민이 아닌 자들은 ‘인민의 적’이다. 그렇기에 포퓰리즘 세력들은 권력을 확보할 시, 자제를 하지 않고 ‘인민의 적’을 향해 맹렬한 비방과 무력화를 시도한다.
‘인민’에 대한 변형된 해석은 ‘다수결’로 이어진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다원주의와 다수의 지배를 결합(의사결정방법, 권력의 결합)한 개념이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는 다수결을 다수의 지배로만 이해한다. 양자의 차이는 ‘소수’를 어떻게 다루냐에 달려있다. 포퓰리스트에게 ‘진정한 인민’은 언제나 다수다. ‘소수’는 언제나 기득권 정치엘리트다. 그들은 지도자/정당과 직접 연결된 인민의 의지를 물화(物化)하여, 진정한 인민과 그 지도자에 권력을 집중시켜 ‘소수’로서 ‘인민의 적’을 배제한다. 그렇기에 포퓰리즘 정당/정치인은 공적 토론을 억압하고 다원주의를 무시하며 인민을 정당/지도자에 통합해, 선거를 통해 그들이 수적으로도 다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즉, 포퓰리스트에게 선거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의례다.
포퓰리즘은 ‘대표성’(representative)에 대한 해석도 변형한다. 민주주의에서 대의제의 핵심 특징은 ‘위임대표’(mandate representation)다.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뿐만이 아니라 전체 유권자인 국민을 위해 선출된 대표자로서 국익을 위해서도 활동한다. 반면 포퓰리즘에서 대의제는 ‘인민 의지를 육신화한 대표’(representation as embodiment)다. 포퓰리즘 정당/지도자는 ‘진정한 인민’에 의해 선출된, 진정한 인민의지를 보여주는 정당/지도자이므로 제도나 여론에 의해 견제받지 않으며 타협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인민 집합을 자신 안에 흡수한 리바이어던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구원자로 스스로를 내세운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지지자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권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기득권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중적 노출,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진정한 인민들에게 자신이 인민의 의지를 육신화한 대표임을 확인시키고 확인받는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유일한 제약요인이 바로 진정한 인민의 여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 정당/지도자는 전통적인 정당과 전문 저널리즘을 상대화하고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청중을 육성한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버나드 마넹의 ‘청중 민주주의’ 개념에 따라, 청중과 연결된 지도자는 제도적 견제를 거부하며 전통적 정당의 지도자들보다 후견주의나 부패에 더 심하게 노출된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은 지도자와 올바른 인민 사이의 거리를 소멸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직접 대의제’다. 이는 위임 민주주의 매개 모델이라는 현대 헌정 민주주의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포퓰리즘 대의제 아래에선 지도자와 진정한 인민 간의 신앙적 신뢰에 기초해 양자 사이의 장애물들(매개조직)을 약화하고 수단화하면서 지도자를 책임성으로부터 면제한다. 이를 위해 포퓰리즘 정당/지도자는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referendum)와 신임투표(plebisticite)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정한 다수(진정한 인민)의 힘을 보여주어 견제와 비판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포퓰리즘은 미디어(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며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정당정치와 제도적 기관, 절차 등을 무장해제, 수단화한다. 나라마다 맥락과 과정은 상이하지만, 방향은 대체로 매개조직의 쇠퇴로 나타난다. 우르비나티 교수는 포퓰리즘 세력이 매개조직의 쇠퇴를 지향하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경향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만일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 후에 청중을 향한 직접 소통을 중단하고 제도에 대한 물리적 파괴, 폭정으로 나아가면, 포퓰리즘은 파시즘이 된다고 주장한다.

[표] 우르비나티 교수의 포퓰리즘과 헌정 민주주의의 주요 개념 해석 요약
우르비나티 교수는 이러한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누적된 결함과 모순의 결과라고 본다. 20세기 민주주의 특징인 법치와 시민권이 기득권화되었으며, 금융세계화로 인한 민족국가 주권 약화, 중산층 감소, 인터넷 발달을 비롯한 정당 자체의 기반 변화를 배경으로 포퓰리즘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포퓰리즘의 부상은, 정세의 변화 속에서 현재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제도와 기관들이 정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역사적 모순과 한계에 부딪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르비나티 교수는 포퓰리즘을 파시즘과 동일하게 해석하거나 민주주의 외부의 적으로 보며 악마화할 것이 아니라, 기존 헌정 민주주의의 한계 속에서 포퓰리즘이 성장했음을 인정하며 이를 통해 헌정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적, 정당정치의 개혁을 주장한다.
3. 유럽 포퓰리즘 개요
유럽에서 포퓰리즘은 유럽통합이 부딪힌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럽통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재건이라는 이해관계에서 출발했으며 냉전 종식 후 유럽연합 출범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정치적, 재정 통합과 무관한 독일 중심의 ‘화폐통합’에 가까웠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중심부’ 국가와 그리스, 스페인 등 ‘주변부’ 국가간의 경제 불균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남유럽의 재정위기를 필두로 유럽의 은행위기와 부채위기로 나타났다. 유럽중앙은행(ECB) 기술관료 중심의 징벌적 구제금융은 금융위기 회복이 아닌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유럽의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유럽통합에 대한 반감에 더해, ‘난민위기’는 각국에서 급증하는 이민자와 난민 문제 대처에 실패한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유럽연합은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급증하는 아프리카, 중동의 난민들을 어떻게 수용할지를 두고 국가별로 분열했다. 늘어나는 난민을 각국의 사회정책, 제도가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면서 기성 정치세력을 향한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과거 유로화나 유럽헌법조약을 거부한 세력들을 중심으로 유럽통합에 반대하며 개별국가의 민족주권을 강조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급부상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인플레이션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각국의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더욱 키웠다. 그 결과 포퓰리즘 세력이 동유럽과 남유럽을 넘어, 서유럽을 비롯한 소위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집권하거나 연정에 참여하는 사례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형제당과 동맹당, 네덜란드 자유당, 핀란드 인민당이 대표적이다. 집권당은 아니라도 오스트리아 자유당, 영국 개혁당, 프랑스 국민연합, 독일을 위한 대안당 등은 기존 주류 정당을 능가하는 지지율을 보인다. 이들의 성장은 각국의 정당정치 지형뿐만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바꾸며 민주주의를 손상시키고 있다.
실제 2025년 2월 말 발표된 유럽연합 산하 비정부기구 리버티즈(The Liberties)의 연간보고서 ‘법치 2025 보고서’는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침체가 심화되었다고 판단한다. 보고서는 6개 부문(사법 시스템, 반부패,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시민사회, 인권보호)을 기준으로 유럽국들을 분류한다. 그 결과 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의 국가들은 민주주의의 ‘해체국’(dismantler), 프랑스, 독일, 스웨덴, 벨기에는 민주주의 ‘추락국’(slider), 네덜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는 ‘정체국’(stagnator)으로 분류되었다.

[표] 유럽의 주요 포퓰리즘 정당
이 글에서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 4개국을 중심으로 최근 주요 포퓰리즘 정당들의 행보를 살펴볼 예정이다. 앞선 보고서에 따르면, 위 4개국은 전년도 대비 2개 부문 이상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한 국가들이며 포퓰리즘 정당의 영향력이 큰 나라들이다. 각 나라에서 포퓰리스트들의 행보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 혹은 변형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다.
4. 포퓰리즘 정당들의 행태
: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의 사례
1) 개헌을 추구하는 이탈리아형제당과 멜로니 총리
2022년 이탈리아 총선은 많은 이들에 충격을 주었다.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di, 이하 형제당)이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형제당은 무솔리니 정권 잔존세력들의 정당으로 사회운동당, 민족연합의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형제당은 판데믹 시기 드라기 거국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내각 밖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드라기 내각이 백신접종,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또다른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M5S)과의 갈등 끝에 붕괴하자, 형제당은 기존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대거 흡수했다. 형제당은 2022년 총선에서 동맹, 전진 이탈리아와 연합하여 상하 양원 모두 과반을 차지했다. 연정파트너인 동맹과 전진 이탈리아의 낮은 지지율에 비해, 형제당은 최근까지도 30% 수준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연정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총리는 조르자 멜로니로 형제당을 2010년대부터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청년시절부터 형제당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고 2012년 당시 동맹, 전진 이탈리아로 통합하자는 당내 분위기에 반대하며 이후 당을 이끌었다. 2022년 총선 후 이탈리아 최초 여성총리가 된 그녀는 세간의 우려와 달리,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었고 유럽연합에도 적극 협조했다. 이런 행보는 당시 자유주의 정치인과 학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포퓰리즘 세력을 순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국내정치에서 형제당과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 헌정을 크게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멜로니 총리와 형제당이 준비 중인 두 가지 개헌안 때문이다.
(1) 총리 직선제 개헌안
첫 번째 개헌안은 2023년 11월에 발표된 총리 직선제 개헌안이다.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솔리니의 독재를 막기 위해 1948년 이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대통령이 존재하지만,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가깝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단순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채택했는데, 그 결과 여러 정당이 난립하면서 내각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1992년 ‘마니 풀리테’ 수사로 주류 정당이던 기민당, 사회당이 몰락하면서 내각의 변동과 혼란은 가속화되었다. 1948년 이래 내각이 총 68번 교체되었으며 내각의 평균 존속기간이 18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내각 구성에 실패해, 대통령이 임명한 기술관료 내각의 빈도가 잦아졌다. (이탈리아 대통령은 의회해산권과 내각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관행상 의회 자체적으로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는 위기시에는 대통령이 관료 내각을 임명한다. 2021년 마리오 드라기 내각이 대표적이다)
멜로니 정부는 빈번한 내각 교체, 불안정한 정당정치를 이유로 현행 헌법을 바꾸겠다고 주장했다. 당초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하던 멜로니 정부는 2023년 10월 29일 연정회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했고 11월 3일 하원의회에 제출했다. 개헌안 주요 내용은 ▲ 임기 5년 총리 직선제 보장 (최대 2연임 가능) ▲ 상하 양원에 집권당 의석 프리미엄 보장(55%)이다. 동 개헌안은 2024년 6월 하원을 통과했다. 이후 상원에서 현재까지 논의 중이다. 이탈리아 개헌 절차는 상하 양원의 1차 투표(과반 동의)와 2차 투표(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모두 통과하거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멜로니 총리는 총리 직선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의회에서 개헌안이 좌절될 경우,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실제 멜로니 총리는 자신의 법률고문이자 직선제 개헌안을 작성한 마리니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하며 개헌안 통과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제1야당인 민주당(PD)은 개헌안이 무솔리니 정권 시기 1당에게 하원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내줬던 아체르보 법안(Acerbo Law)을 연상시키며,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강한 반발 속에 2024년 11월 8차례의 투표 끝에 정부는 마리니 임명에 실패했다. 그러나 정부는 다시금 마리니 임명을 밀어붙였다. 12월 들어 헌법재판관 공석이 4석으로 증가하자, 정부는 정치권에 헌법재판관 임명 공백을 장기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압박을 강화했다. 결국 마리니 후보자는 2025년 2월 13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5월 7일 상원 질의에서 멜로니 총리는 ‘총리 직선제 개헌안’ 통과에 의회가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탈리아 여론조사기관 스카이TG24의 설문에 따르면 총리 직선제 개헌 찬성 의견이 54%에 이르므로, 여론이 자신에 유리하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줄리아노 아마토 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학자들은 이탈리아 내각의 불안정성은 파편화된 정당시스템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해결 없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위를 총리에 주는 개헌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개헌안
멜로니 정부가 밀어붙이는 두 번째 개헌안은 사법부 개혁 개헌안이다. 멜로니 정부는 사법부와 갈등을 지속했다. 이탈리아는 난민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따라서 멜로니 현 정부는 난민 즉, 불법 이민자를 적발하면, 구금하고 강제이송하는 행정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해당 조치는 유럽연합의 이민·난민 관련 지침과 유럽사법재판소 판시와 충돌한다. 이주민을 출신국가로 이송하는 기준이 되는 ‘안전 국가’ 규정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의 법령은 ‘일반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로 넓게 해석하지만, 유럽연합 지침과 판시는 나라 전체가 안전한 국가 출신의 이주민만이 출신 국가로 이송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탈리아 법관들은 유럽법 우선원칙에 따라 개별 난민에 부과된 구금조치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 인사들은 구금취소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공격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 이집트 난민 12명에게 구금취소를 판결한 알바노 판사의 경우, 수십 건의 살해협박 문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아포스톨리코 판사 역시 4명의 튀니지 난민 구금취소에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멜로니 총리는 페이스북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반하는 행위’라 비판했으며,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동맹)는 X(트위터)에 판사의 과거 집회 참여이력을 공개하며 ‘정치화된 판사’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아포스톨리코 판사는 1년간 계속된 정치권의 사퇴 압박 끝에 2024년 12월 사임했다.
2024년 5월, 이탈리아 정부는 사법부 개혁 개헌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 판사, 검사 경력 분리 ▲ 두 개의 별도의 최고사법위원회(CSM)를 통해 판사, 검사 임용, 승진 업무 체계 분할 ▲ 최고사법위원회 위원 임명 방식 개정(선출에서 추첨으로 변경) ▲ 법관의 징계를 담당하는 별도의 고등징계법원 설치다. 동 개헌안에 대해 총리실은 판사, 검사 유착문제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법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개혁안이라 발표했다. 멜로니 총리는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사법체계를 개혁하고 비선출 엘리트인 사법관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헌법(104조)에 따르면 최고사법위원회는 사법행정 최고기관으로 판사와 검사의 임용, 승진, 징계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이탈리아에서 검사와 판사는 ‘사법관’(magistrate)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업무상으로만 구별된다. 최고사법위원회는 30인으로 구성되는데 당연직 3인(대통령, 검찰총장,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선출된다. 3분의 2는 사법부에서 선출된 판사들이며, 3분의 1은 의회-사법부 합동회의에서 법학교수와 경력 15년 이상의 변호사 중 선출한다. 개헌안에 따르면 검사 최고사법위원회는 법무부 산하에 둔다. 그리고 두 최고사법위원회는 국회, 검사, 판사가 작성한 명단 중에 무작위 추첨으로 지명한다. 고등징계법원은 15명의 판사로 구성된 최고사법위원회로부터 독립된 기구로 둔다. 개헌안은 2025년 1월 16일 하원에서 1차 투표를 통과했다.
이탈리아 법조인들은 해당 개헌안에 반발했다. 로마대학 법학교수 벤베누티는 이탈리아 정치권과 사법부 간에 지속적인 갈등의 역사라는 맥락을 볼 때, 개헌안은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를 무력화하는 안이라 우려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집권기에 부패 문제로 검찰에 여러 차례 기소되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03년과 2008년에 고위공직자 형사책임 면제법을 통과시켰고, 2005년엔 공소시효 단축법도 통과시켜 자신을 향한 수사를 막고자 했다. 그리고 검찰을 법무부 산하로 두는 등 현 법안과 유사한 사법개혁 개헌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사법부 훼손 시도는 당시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비협조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저지되었다. 현 정부 역시 산탄케 관광부 장관, 살비니 부총리 등이 검찰에 기소되거나 되었던 상태다.
이탈리아 판사협회(ANM)는 개헌안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안이라 강하게 비판했다. 파로디 판사협회장은 개헌안이 정치권의 부패혐의를 덮을 수 있고, 사법부의 자치원칙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판사협회는 2월 27일 이탈리아 판사 하루 파업을 결정했다. 이날 이탈리아 전역에서 80%의 판사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전진 이탈리아, 형제당은 해당 파업을 ‘반란’이라 규정하며 비난했다. 이후 3월부터 진행된 판사협회와 법무부 장관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상원은 6월 11일 개헌안을 본회의에 제출할 것을 밝혔다. (18일로 연기되었다) 유럽판사협회(EAJ)는 계속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진행되는 개헌에 우려를 표하며 개헌 절차를 멈출 것을 요구했다.

[사진] 이탈리아 판사협회(ANM)의 2025년 2월 27일 파업
2월 27일 판사파업 당일 로마 최고법원에서 이탈리아 판사협회 지도부를 포함한 100여명의 판사들이 법복을 입고, 이탈리아 헌법전을 흔들며 정부의 사법부 개혁 개헌안에 반대하는 플래시 몹을 진행했다. (사진 출처: 《la Repubblica》)
이렇듯, 멜로니 총리와 형제당, 동맹, 전진 이탈리아의 연립정부는 개헌안을 통해 이탈리아의 헌정을 바꾸고자 한다. 비록 양원 모두 연정 의석이 3분의 2를 넘기지는 못하며, 국민투표 요건 역시 유권자 50만 명, 5개 이상 지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복잡한 절차와 과정이 있는 만큼 단기에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형제당이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며 내각이 역대 5번째로 장수하고 있고, 오성운동이 민주당과 달리 헌정 문제에 관심이 적은 상황은 개헌을 둘러싼 변수가 될 전망이다.
2) 행정부와 사법부를 위협하는 프랑스의 멜랑숑과 르펜
2024년은 프랑스 정치사에 있어 격변의 해였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의 지지율 급상승과 여당인 르네상스당(RE)의 참패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국면의 전환을 위해 의회(하원)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결정했다.
그러나 6월 30일에서 7월 7일까지 치러진 조기 총선 결과는 마크롱 대통령의 기대를 벗어났다. 1차 투표 결과 국민연합은 유럽의회 선거 때보다 더 높은 33%의 지지율을 얻었으며 297개 선거구에서 1위를 기록하며 과반(289석)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어진 2차 투표를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당을 포함한 앙상블 중도연합은 국민연합을 제외한 정당들에 단일전선 구축을 호소했다.
그 결과 210여곳의 선거구에서 후보자들의 자진사퇴로 양자구도로 2차 선거가 치러졌다. 2차 투표 결과 국민연합은 3당으로 밀려났으며 1당은 좌파 정당연합인 ‘신인민전선(NFP)’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당(연합)도 과반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 정치는 갈등의 연속이다.

[표] 2024 프랑스 총선 득표율과 하원의석수
프랑스 선거제도는 결선투표제를 채택한다. 총선에서 1차 투표를 진행한 후,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즉시 당선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는 경우, 선거구별로 12.5% 득표율을 넘기는 후보들이 결선에 올라 2차 투표를 진행한다. 결선투표제는 군소정당보다 거대정당에 유리한 제도로 실 득표율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행정부를 겁박하는 멜랑숑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1당인 신인민전선을 주도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연합 내 최대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그 대표인 장 뤽 멜랑숑이다. 사회당 출신인 멜랑숑 대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사회당을 탈당하고, 좌파당을 거쳐 2016년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창당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자로 2016년 올랑드 대통령(사회당)의 노동법 개정에 격렬히 반대하며 기존의 프랑스 양당의 한축인 사회당 지지층을 상당 부분 흡수했으며 격정적인 연설로 인기를 올렸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선 21.9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1.2%p 차이로 2위인 르펜에 밀려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는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과 정당연합을 형성, 현재까지 좌파정당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그의 행보에 주목해 국내 사회운동 일각에서는 그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멜랑숑 대표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문제적인 행동으로 프랑스 내에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표 사례를 들어보겠다. 먼저 멜랑숑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는 2025년 5월 기준 가장 많은 팔로워(유튜브 118만, X 280만)를 보유한 정치인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팔로워는 유튜브 38만, X 10만이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언론인들과 정치인을 공격하는 게시물을 빈번히 올린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범죄가 급증하자, 이에 반발한 반유대주의 반대 집회를 두고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지하는 집회’라 비난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는 부정선거론을 제기하고 마크롱을 위시한 기득권이 대선을 앞두고 계획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를 것이라 주장해 언론과 정치인의 뭇매를 맞았다.
멜랑숑 대표의 공격적 언행은 그의 반체제적 세계관에 기초한다. 그의 세계관은 올해 4월 출간된 『이제는 인민입니다!』(Now, The People!)에서 잘 드러난다. 멜랑숑 대표는 책에서 ‘인민’을 1%의 과두정에 배제된 이들로 정의한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성 조직, 기관은 실패했음이 밝혀졌기에 그들의 권위, 무능에 맞서 ‘인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하며, 현 5공화국을 넘어 자코뱅적 공화주의에 기초한 6공화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그의 반기득권적 시각은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유럽연합과 나토 탈퇴’라는 공약으로 나타났다.
멜랑숑 대표는 대중정당 모델도 거부한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당원 투표나 공개적인 지도부 선거를 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중앙조정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린다. 당은 2022년 12월 중앙조정위원회 인사개편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멜랑숑 대표에 비판적인 라켈 가리도와 다니엘 시모네를 축출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당은 가정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멜랑숑 충성파 콰테넹을 무리하게 공천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사퇴시켰다. 가리도는 《더 네이션》 지와의 인터뷰에서 당내에 토론 문화와 중재 노력이 없다고 멜랑숑을 저격했다.
총선 후 신인민전선이 의회 1당이 되자, 멜랑숑 대표는 자신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이원정부제인 프랑스에선 대통령 정당이 의회에서 과반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다수당에 총리직을 주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극단주의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국민연합에 총리직을 주지 않겠다고 밝히며, 두 정당 외의 정당들과 연정 혹은 총리직을 협상했다. 신인민전선 내 사회당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신인민전선이 추천한 뤼스 카스테 총리 후보자가 아닌 공화당의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다.
바르니에 총리 임명 후 신인민전선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프랑스노총(CGT) 및 시민단체와 연계해 마크롱 퇴진시위를 전국적으로 진행했다. 9월 내각이 구성되자마자 신인민전선은 바르니에 내각을 상대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안정한 상황은 결국 12월 4일 예산안을 둘러싸고 폭발했다. 신인민전선의 내각불신임 투표에 국민연합이 가세하면서 바르니에 내각은 출범 3개월 만에 붕괴했다. 이는 62년 만에 의회에서 통과된 내각불신임 결의이고 바르니에 내각은 역대 가장 단명한 내각이 되었다. 멜랑숑은 직후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합의가 아니며, 자신과 신인민전선은 계속해서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할 것이고 결국엔 마크롱 대통령을 퇴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멜랑숑 대표는 자신의 발언을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바르니에 내각 붕괴 후 2024년 말 들어선 바이루 내각 역시 2월까지만 6차례의 내각불신임 투표를 받았다. 그러나 국민연합의 비협조와 사회당의 이탈로 내각은 계속해서 생환 중이다. 그 결과 바이루 내각은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사회당이 불신임 투표에 협력하지 않자 ‘배신자’로 규정했으며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에 사회당을 국민연합과 동급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사회당의 제롬 구에지 의원은 5월 노동절 행사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지지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2) 사법부를 위협하는 국민연합(RN)의 르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 역시 프랑스 정치위기의 한축이다. 국민연합은 장 마리 르펜의 주도로 1972년 창당한 정당 국민전선(FN)의 후신이다. 나치 옹호 등 극단적 발언으로 악명이 높은 국민전선은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2011년 당권을 물려받은 후 상승세를 보였다. 마린 르펜은 당 대표 시기(2011~2022년) 당에 대한 낙인을 지우고자 탈악마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녀는 2015년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을 출당시켰으며 인종주의적 수사보단 공화주의적 수사와 복지정책을 내세우며 기존 프랑스 양당의 한 축이던 공화당의 지지층을 상당부분 흡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2017년, 2022년 대선 모두 결선에 진출하며 프랑스 내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 되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PO에 따르면, 그녀는 올 3월까지 차기 대선후보 1위를 유지했다.
르펜은 최근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3월 31일 프랑스 형사법원이, 그녀가 유럽의회 기금 400만 유로를 유럽의회 활동이 아닌 당 자금으로 유용한 혐의에 대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르펜은 징역 4년형(전자발찌 착용 상태로 2년간 구금, 2년간 집행유예)과 벌금 10만 유로, 공직선거 출마금지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재판부 판단에 따라 공직선거 출마금지를 1심부터 즉각 적용했다. 판결문은 즉각 집행의 근거로 재범 위험성과 공공질서 혼란을 들었다.12 이 판결로 르펜은 2027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프랑스 언론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르펜의 피선거권 박탈과 1심에서의 형 집행 판결은 이례적인 판결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모든 공적자금유용 유죄판결은 피선거권 박탈로 이어졌다. 특히 프랑스는 이전부터 정치인,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한 사법조치를 취해왔다. 2004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유력 대선주자였던 알랭 쥐페 대중운동연합(UMP) 당(현 공화당) 대표는 재정 비리 건으로 1심에서 10년 간 피선거권 박탈을 처분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뒤집혔으나 당시 그는 당 대표에서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최근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판사 매수,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2024년 12월 파기원(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 전자발찌 착용, 3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처분받았다.
르펜과 국민연합 지도부는 판결에 강하게 불복했다. 르펜 측은 정치적 판결임을 주장하며 즉각 항소했다.(항소심은 2026년 여름까지로 이어질 예정이다) 에릭 시오티 의원은 근거 법조항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는 《쎄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법치주의의 완전한 부정”이며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할 것을 밝혔다. 실제 보방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르펜은 판결이 ‘마녀사냥’이자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하며 자신을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푸틴에 저항한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에 빗대며 사법부에 계속해서 저항할 것임을 밝혔다. 이날 참석한 1만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마린 대통령”, “내가 마린이다” 구호를 외쳤다.
르펜 지지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르펜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판결을 내린 페르튀스 판사의 신상, 집주소를 공유하며 살해협박했다. 극우매체인 《프론티어》는 이민자 문제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 60여 명의 명단을 공개한 후, 이들을 향해 위협과 모욕을 쏟아냈다. 법관에 대한 위협 수준이 도를 넘어서자 프랑스 최고사법위원회(CSM)는 성명을 발표해 “판사를 향한 개인적인 위협은 민주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 다르마냉 법무부 장관 역시 판사에 대한 위협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르델라 대표는 텔레비전 채널에 출현해 판사에 대한 개인적 위협에 거리를 두면서도 “더 많은 프랑스인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법부를 비판했다.
특이한 점은 르펜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한 멜랑숑 대표의 반응이다. 그는 X에 “선출된 공직자를 해임하는 선택은 오직 인민만이 할 수 있다”며 판결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멜랑숑 대표의 견해는 사법부에 대한 적대감에서 비롯된다. 2018년 멜랑숑 대표는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멜랑숑 대표가 수사과정에 협조하지 않자 검찰과 경찰은 당사와 자택을 압수수색 했는데, 이 과정에서 멜랑숑 대표는 검경에 폭력을 행사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가 공화국이다”를 외쳤다. 결국 그는 2019년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더해져 징역 3개월과 8천 유로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당시 멜랑숑 대표는 판결이 ‘정치판결’이라 반발했다.
이처럼 사법부에 대한 그의 불복종 행보는 신인민전선 내 다른 정당들에서도 반감을 키웠다. 르펜 지지자들의 판결 불복집회에 맞불집회를 연 신인민전선은 2027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대통령 후보가 멜랑숑 대표여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멜랑숑 지지자와 비판자 간에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진] 2022년 프랑스 대선 주요 후보 공보물: (좌)멜랑숑, (중)마크롱, (우)르펜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멜랑숑과 르펜은 정년연장 반대 등의 사회정책과 나토 탈퇴를 비롯한 대외정책 공약에서 일치했다. 결선투표에서 1차 투표 당시 멜랑숑 투표자의 17%가량이 르펜에 투표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이처럼 여당을 능가하는 지지율을 바탕으로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공세를 펼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멜랑숑 대표와 국민연합의 르펜으로 인해 프랑스의 정치 불안정성이 커졌다. 지난해 말 국제신용등급평가사 무디스, S&P는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재정적자가 심해진 상황에서 정치혼란이 가중된 점을 근거로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자신의 조기총선 결정이 실수였음을 인정하며 현명한 판단과 새로운 결정을 해줄 것을 프랑스 국민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총선 재실시, 조기대선, 두 극단주의 정당을 배제한 정당연합 개편 중 어느 선택지를 택해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방어적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독일 대안당(AfD)
2025년 2월 23일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하원) 선거는 이변으로 불렸다.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이하 대안당)이 전통적인 독일 양당의 한 축인 사회민주당(SPD)을 제치고 의회 2당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2024년 하반기 집권 연정(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 내 사회민주당과 자유민주당(FDP)은 코로나19 판데믹 시기 확대된 재정적자를 관리하기 위한 예산안을 두고 갈등했다. 갈등의 결과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이탈하면서 올라프 슐츠 총리 내각은 내각불신임 투표로 무너졌다. 그 결과 조기총선이 치러졌는데, 대안당은 선거기간 내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일론 머스크, 도널드 트럼프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면서 주목받았다. 대안당은 어떤 정당인가?
(1) 분권적인 운동정당
대안당은 2013년 경제학 교수인 베른트 루케가 창당한 정당이다. 당시 당은 유럽국가들에 대한 구제금융에 불만이 많은 경제계 인사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대안당은 반난민 주장을 포함해 인종주의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초기 당내 소수파였던 인종주의자들이 반난민 시위운동단체인 페기다와 연계하며 당내 목소리를 키웠다. 2015년 당대회를 기점으로 이들은 당 지도부에 대거 유입했다. 이후 베른트 루케를 포함한 창당 초기 지도부들의 상당수가 탈당하면서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해졌다.
대안당은 앞선 정당들과 달리 1인의 지도자가 주도하는 정당이 아닌 분권적인 정당이다. 당은 초창기부터 당원들이 당의 주요 정책공약, 후보자 선정 등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게끔 상향식 발의를 광범위하게 허용했다. 여기에 연방제로 인한 잦은 지역선거는 당 지역조직들이 발언권을 키우기 위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강한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구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대안당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 언론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에 따르면, 동독지역은 상대적으로 농촌지역이 많고, 지역 교육기반이 부실하며, 여성 다수의 서독 이주현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주민들이 많았다. 대안당은 지역 청년 남성층을 중심으로 보호주의적 접근을 취했으며 선거기간이 아닐 때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런 전략이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대안당 지역조직 지도자들은 지역에서의 기반을 바탕으로 공식, 비공식적으로 극단적인 시민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극단주의 단체 활동가들과의 연계는 지역조직 지도자들의 당내 발언권을 높였다. 튀링겐 지역의 대안당 지도자 비요른 호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당내 극단주의 분파인 ‘플뤼겔(날개)’의 리더로 다양한 극단주의, 민족주의 시민단체들과 협력해 공격적인 활동, 동원을 시도한다. 그 결과 그의 분파는 상대적 소수임에도 당 지도부를 압도했다.
호케는 1945년 이전의 독일을 지향하며 ‘하이마트’(마음의 고향) 즉, 독일인의 정체성으로서 게르만족이라는 혈통과 독일 영토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대안당은 운동정당(movement party)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역사전쟁을 주도한다. 실제 그와 그 지지자들은 매년 튀링겐 주의 빌헬름 황제 기념비 앞에서 모임을 갖는다. 나치 옹호 등 금기시되던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던 대안당은 2021년부터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으로부터 ‘극우 의심단체’로 지정되어 감시를 받았다. 말자크빈케만 전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이 2022년 과거 독일제국 산하 튀링겐 왕족인 하인리히 13세를 옹립하려는 쿠테타 계획에 연루되면서 독일 주요 정치인들은 대안당에 위협감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대안당은 승승장구했다. 2017년 첫 하원의회 선거에서 의원을 배출한 뒤, 2023년 튀링겐주에서 처음으로 지자체장을 배출했으며 지지율도 사회민주당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선 막시밀리안 크라 등 호케의 측근들이 대거 입후보했고, 이전보다 의석을 6석 늘리며 일부 동유럽 극단주의 정당과 함께 교섭단체 ‘유럽주권국가연합’을 결성했다.
(2) 대안당의 독일 헌정 위협과 방화벽
대안당의 상승세는 미디어 전략과 관련있다. 대안당은 미디어를 활용하여 기성 언론, 정당/정치인, 제도에 대한 공격을 적극적으로 감행한다. 무해화 전략을 통해 전통 미디어에선 정제된 언어를 쓰되, 소셜미디어에선 극단적인 용어를 쓴다. 가령 대안당은 젊은 여성 인플루언서들을 고용해 당의 요구, 주장이 무해함을 어필한다.
동시에 개념에 대한 재의미화 전략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앨리스 바이델 대안당 공동대표는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 강화를 주장한다. 본래 방어적 민주주의란 극단주의적인 외부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민주정을 수호하려는 정치 질서로, 1930년대 나치 정권에 대한 반성으로 헌법학자 칼 뢰벤슈타인이 주창한 개념이다. 그러나 바이델 대표는 이 개념을 이주민, 난민에 대한 방어로 변형하여 사용한다.
그 결과 독일 언론에서 매년 선정하는 ‘올해 최악의 단어’는 거의 매년 대안당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선정된다. 대안당은 소셜미디어를 특히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안당은 ZDF, ARD 등 전통 미디어들이 자신들을 왜곡한다고 보며, X,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대안 미디어’로 사고한다. 크라 의원은 전통 미디어가 좌파 프로파간다만 알리는 편향된 언론이라 지적하며 유튜브, 틱톡을 볼 것을 권장했다.
이들은 가계정과 AI 계정을 활용하여 대안당의 주장을 홍보하거나 경쟁자, 기관을 모욕하는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2024년 X, 인스타그램에서 만들어진 AI 계정 ‘라리사 바그너’는 대안당의 메시지를 홍보하며 대안당에 투표할 것을 요구하는 포스트를 자주 올린다. 또한 재미나고 우스꽝스러운 챌린지를 하는 여타 정당, 정치인들과 달리 대안당은 정장을 입고 진지한 연설을 하는 영상을 올리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그 결과, 주요 소셜미디어에서 독일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대안당 정치인들이다.
최근 총선 과정에서 대안당은 외부의 지원도 상당히 받았다. 총선 전 미국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대안당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으며, 1월 8일 앨리스 바이델 대안당 공동대표와 온라인 회담을 진행했다. 70분간 진행된 회담은 약 460만 명이 시청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러시아도 대안당을 지원했다. 독일 언론 《도이체빌레》는 러시아산으로 추정되는 봇, AI 유저들이 선거기간 동안 기민당 당대표인 메르츠 대표와 녹색당 소속의 로버트 하벡 전 부총리에 대한 허위정보를 유포했다고 보도했다. 그 외에도 러시아 봇들은 대안당을 홍보하고, 러시아를 옹호하는 게시글과 영상을 수차례 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울러 대안당과 연계된 극단적 대중운동 단체들은 법원에 수차례 소송을 걸거나 온라인발 대중집회를 조직하며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에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대안당 의원들은 의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선출 배제 건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에만 수십 차례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22건의 소송이 계류 중이다. 대안당은 지지자와 극단주의 단체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시위를 진행한다. 4월 26~27일 독일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독일을 위한 단결’(GfD) 집회가 대표적이다. SNS에서 시작, 조직된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대안당을 배제하는 기존 정당들을 비난하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참가자 일부는 나치 경례를 하다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지역에선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사진] 독일을 위한 단결(GfD) 시위
4월 26일 80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도르트문트에 모여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독일 국기와 러시아제국 깃발을 흔들며 독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했다. 나치 경례를 하다 경찰에 체포된 참가자들도 있었다. (사진 출처: 《Tagesspiegel》)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대안당의 행태는 5월 2일 연방헌법수호청의 ‘극우단체’ 지정으로 이어졌다. 연방헌법수호청은 지난 몇 년간의 감시 결과 대안당 내에서 극단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 반헌법적 위협이 크다고 판단해 대안당을 극우단체로 지정했으며, 통화내역 감청 등을 포함해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이틀 뒤, 대안당에 당적을 두거나 연관된 공직자들의 조사가 이뤄졌으며 경찰관 최소 193명이 조사-징계절차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안당은 ‘반대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남용’을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걸었다. 헌법수호청은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극우단체 지정을 보류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되었다. 대안당 지지 확산을 우려한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사민당은 대안당에 겨냥한 각종 방화벽(Firewall)을 강화했다. 의회 의석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헌법재판관 임명이 교착상태가 되지 않게끔, 2024년 12월 헌법재판관 신규임명 전까지 기존 재판관의 임기를 임시연장하고 상원으로 판단을 넘기는 내용을 헌법에 넣었다. 또한 새 의회 개회 전에 전 정권 붕괴의 원인이 된 정부부채 한도 브레이크를 개정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신임 메르츠 총리의 기민·기사당/사민당 연립정부는 1야당에 예산위원회 위원장을 주는 관행과 달리, 부처별 위원회 위원장에 대안당 의원을 배치하지 않기로 합의, 발표했다.
한편, 또다른 포퓰리즘 정당인 바겐크네히트동맹(BSW) 역시 제도권을 위협하고 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과거에 좌파당(Die Linke) 당대표였는데, 대러제재 해제와 난민 반대에 동의하지 않는 좌파당 지도부와 갈등을 겪었다. 그녀는 2023년 탈당하고 자신의 정당을 창당했다. 바겐크네히트 대표는 자신의 당을 ‘좌파 보수주의’ 정당이라 주장하며 좌파당의 옛 기반인 동독지역을 공략하여, 대안당이 주도하는 반난민 집회에도 참석했다.
2024년 9월 지방선거에서 당은 작센주, 튀링겐주에서 10% 이상을 득표하며 지역 3당이 되는 성과를 보였으며, 총선 기간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대안당과 기반이 겹친 탓에 의회 진입 기준인 정당지지율 5%를 넘기지 못하고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선거 후 자당에 분류되었어야 할 표 최대 3만 2천 표가 누락되거나 잘못 분류되었다면서 선거심사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개표를 요구하는 등 선거결과에 불복 중이다.
이렇듯, 극단주의 성향을 보이고 기존 제도에 도전하는 포퓰리즘 정당을 두고 독일 정계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옌스 스판 원내대표는 대안당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주장하며 방화벽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비록 집권연정 내에서 강한 반발을 야기했고 수용되지 않았지만, 어디까지,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면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지는 여전히 쟁점이다.
전후 독일이 극단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에 입각하여 도입한 여러 제도적 장치(위헌정당 해산, 헌법수호청)와 정치질서는 시험대에 올랐다. 독일 헌정은 대안당을 비롯한 포퓰리즘 정당의 도전을 방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인가? 이를 둘러싸고 독일정치의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4) 스웨덴 정치를 교란하는 스웨덴민주당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복지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웨덴은 최근 범죄율이 올라가고, 그에 비례해 정치권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스웨덴민주당(SD)은 혼란의 결과물이자 동력이다. 2022년 총선에서 스웨덴민주당이 스웨덴의 기존 정당정치 지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표] 최근 스웨덴 총선(2006~2022년) 정당별 의석 현황
스웨덴민주당(SD)은 2010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여 20석을 획득한 이래로, 뒤이은 총선에서 계속해서 지지율과 의석수 모두를 늘렸다. (자료 출처 : Europeelects)
2022년 총선 결과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던 스웨덴민주당이 21%의 지지율로 사회민주당(S, 이하 사민당)에 이어 의회 2당이 되었다(스웨덴은 단원제 의회의 의원내각제 국가다). 기존 정당연합 중 누구도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스웨덴민주당은 온건당(M) 주도의 우파정당연합(온건당, 자유당, 기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수정권인 우파정당연합은 스웨덴민주당과 ‘티도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르면 스웨덴민주당은 온건당 주도 연립 내각에 입각하지 않는 대신 정부의 주요 부처 내 요직을 배정받고 정책 논의 과정에 참여키로 했다.
(1) 스웨덴민주당은 어떻게 스웨덴 2당이 되었는가?
스웨덴민주당이 스웨덴 정치에서 논란인 이유는 정당의 기원과 행보 때문이다. 스웨덴민주당은 1986년 ‘스웨덴을 스웨덴답게’ 운동본부라는 네오나치 운동단체와 진보당이 합친 ‘스웨덴당’을 기원으로 하며, 1988년 당명을 현재의 명칭으로 개정하면서 만들어진 정당이다. 20년 가까이 원외정당이던 스웨덴민주당은 2010년 총선에서 의회에 처음 진입했다. 당시 유튜브를 통해 광고를 내보냈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뉴스채널을 통해 선거운동을 펼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스웨덴민주당은 이후 총선 때마다 지지율과 의석수를 올리면서 2014년 원내 3당으로 올라섰고, 2022년 선거에선 온건당을 제치고 2당으로 올라섰다.
스웨덴민주당의 성장은 2000년대 이후 스웨덴 사회의 혼란 심화와 당을 20년째 이끌고 있는 임미 오케손 대표와 당 지도부의 전략적 행보로 설명할 수 있다. 스웨덴의 사회변화는 스웨덴민주당의 약진을 설명하는 주요 배경이다. 수출주도 경제국가인 스웨덴은 노동인구가 부족했기에 이민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비유럽계 이민자 비중이 급증했다. 2006년부터 연평균 이민자 수가 5만에서 10만으로 두 배가 됐다. 매년 이민자 수가 인구의 1%(스웨덴 인구는 천만 명 정도다)를 넘겼고 2016년 한 해에만 16만 3천 명을 받아 정점을 찍었다. 난민 역시 2016년에만 전체 이민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이 유입되었으며 2020년 전까지 매년 2만 명을 넘겼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이들 난민을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 온건당 정부(2006~2014년), 사민당 정부(2014~2022년) 모두 이민자 수용이란 컨센서스 하에 사회문제를 문화적 요인에 주목하며 스웨덴어 학습 지원 등 문화정책 중심의 사회통합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스웨덴은 저숙련 일자리가 5% 미만으로 매우 적어 이민자들의 취업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의 다수는 실업자로 전락했다.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에 따르면 2015년 이주민, 난민의 실업률은 15%로 전체 실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주민들의 높은 실업률과 급증한 집값, 물가는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주민, 난민 거주지역은 게토화, 슬럼화되었으며 갱단 범죄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스웨덴에서 가장 큰 갱단이 쿠르드족 갱단(폭스트롯)인 점은 스웨덴 주민의 이민자와 난민에게 느끼는 공포를 키웠다. 그 결과, 스웨덴에서 범죄, 테러가 크게 늘었다.
2017년 이래 스웨덴에서 총격 사건 수는 300건 이내로 떨어진 적이 없다. 올해 1월에만 폭발물 테러가 30건 이상 발생했다. 2024년 스웨덴 경찰은 스웨덴 내 62,000명이 조직범죄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스웨덴의 군인, 경찰을 합친 숫자인 35,000명을 넘어선 수치다. 여기에 교도소 재소자가 27,000명으로 수용인원(11,000명)을 넘어서면서 스웨덴은 노르웨이, 덴마크 등 인접국으로 재소자를 이송하는 실정이다. 기존 주류정당들의 정책 실패와 불안정한 치안 상황은 이주민, 난민을 향한 반감을 키웠으며 난민 반대를 주장하는 스웨덴민주당 지지율을 올렸다.
오케손 대표와 스웨덴민주당 지도부는 스웨덴의 사회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처하며 기존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온건당 청년조직 출신인 임미 오케손 대표는 남부지역(스카니아)을 기반으로 2005년 당 대표에 선출되며 당을 장악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교 친구들인 ‘4인방’ 그룹 주도하에 당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당원 제재, 제명 권한과 선거 후보자 공천권을 중앙위원회에서 집행위원회로 이관하면서 지도부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또한 ‘무관용’ 원칙으로 당내 일부 극단주의자들 및 이들과 연계된 인사들을 제명하고 지도부에 친화적인 인물들로 재편했다.
오케손 대표는 뛰어난 연설 실력과 적극적인 미디어 소통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상황에 따라 유럽연합 탈퇴였던 당의 입장을 변경하는 등 유연한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를 ‘대안 우파’로 호명했다. 이런 행보는 극단주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이민자 문제에 대한 컨센서스를 공유하던 다른 정당과의 차별화에 성과를 거두었다. 스웨덴 마르크스주의 사회학 교수 예란 테르보른은 스웨덴민주당을 능수능란한 사업가와 같다고 짚었다.
결국 스웨덴 정부의 사회정책이 경제와 사회문제를 충분히 해소, 완화하지 못하는 상황은 사회혼란으로 이어졌다. 스웨덴민주당은 이 문제점을 파고들면서 차별화를 통해 과거의 색을 지웠다. 그 결과 스웨덴민주당은 2022년 총선에서 온건당을 제치고 의회 2당이 될 수 있었다.
(2) 스웨덴 공직과 언론을 압박하는 스웨덴민주당
스웨덴민주당은 높아진 영향력을 바탕으로 기성정치, 언론에 대한 현상 변경을 추구하고 있다. 2024년 5월 제기된 ‘댓글부대’(Troll factory) 논란이 대표적이다. 스웨덴 국영방송사 TV4의 프로그램 “냉엄한 사실”은 스웨덴민주당이 2018년 총선부터 청년들을 고용해 AI로 조작된 동영상과 이민자들을 폭력적으로 묘사한 게시물을 제작, 유포해 여론을 조작한다고 폭로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민주당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틱톡에 23개의 익명 계정을 통해 자당의 프로파간다를 확산시켰다. 총 2700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유포된 게시물들엔 스웨덴민주당을 제외한 기존 정당들에 대한 비방, 허위뉴스도 포함되었다.
오케손 대표는 유튜브에 ‘국민에 드리는 연설’ 영상을 올려 혐의를 부인하며 해당 보도가 ‘좌파-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음모’로 6월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웨덴민주당을 방해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스웨덴민주당 소속 시의원 줄리안 크룬이 방송을 통해 10여 명의 댓글부대를 감독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크리스테르손 총리를 포함한 집권 연정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스웨덴민주당은 관련 인사들을 해고하고 부적절한 계정을 삭제했다.

[사진] 임미 오케손 대표의 ‘국민에 드리는 연설’
2024년 5월 14일 오케손 대표는 스웨덴민주당 유튜브 채널에 ‘국민에 드리는 연설’ 영상을 올려 댓글부대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사회민주당이 스웨덴민주당을 겨냥해 좌파 자유주의 언론사들과 공모한 음모임을 주장하며 자신과 당은 부끄럽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스웨덴민주당과 관련된 논란은 언론에만 있지 않았다. 올 3월 25일 스웨덴 언론사 《다겐스 ETC》는 스웨덴민주당이 공직사회 내 비정무직 공무원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해 인사불이익 등 각종 차별을 준다고 보도했다. 10여 명의 공무원이 관련한 인사불이익을 받았음을 익명으로 고백했으며, 스웨덴민주당의 비욘 쇠데르 의원은 비정무직 공무원들이 실제로 편향적이라고 지적하며 261명의 ‘블랙리스트’ 명단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2023년도에도 관련해서 친정권 성향 공무원들에게 차별적인 임금인상을 제안했다는 내부 폭로가 있었다. 해당 보도 후 사민당, 녹색당 등 야당은 현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고, 스웨덴민주당의 문제적 행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현 집권연정을 비판하며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를 의회 헌법위원회에 고발했다.
이같은 의혹들에 관해, 스웨덴민주당은 언론과 정부에 더욱 공세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5월 당대표 취임 20주년을 맞이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케손 대표는 현 스웨덴 정부에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입법과정에서 복잡한 절차로 너무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고 불만을 드러내며, 입법과정을 단축하고 미국의 정부효율부(DOGE)를 스웨덴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오케손 대표는 기성 엘리트를 대체하기 위해 사민당을 제치고 집권정당의 총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다짐은 내년에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각종 정책공약을 쏟아내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스웨덴민주당은 암호화폐를 외환보유고에 추가해야 한다, 필수재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폐지해야 한다며 각종 선심성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아울러 스웨덴민주당에 부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한 비방도 이어갔다. 오케손 대표는 댓글부대 의혹을 보도한 TV4 방송사를 나치 프로파간다에 비유하며 조롱했으며, 요르겐 그룸 의원은 해당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이 스웨덴 탐사 저널리즘 ‘황금삽’ 상 후보에 오르자, X에 그들은 “투옥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라 비방했다. 튀르키예의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다 투옥된 스웨덴 기자 요아킴 메딘도 그가 《다겐스 ETC》 소속이란 이유로 “공산주의자”라 비난했다.
스웨덴민주당의 행보는 스웨덴 여론지형을 변형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이다. 스웨덴노총은 전통적으로 사민당과 밀접한 연계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조합원 사이에서 스웨덴민주당 지지세가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SIFO에 따르면 지난 총선에서 사민당 지지 조합원 비중은 41%로 이전까지 50% 이상의 지지율에서 크게 떨어졌으며, 전체 산업노동자 계층으로 보면 26.4%로 스웨덴민주당의 27.5%에 뒤지기 시작했다. 조합원, 기층간부 중심으로, 노총 지도부의 무조건적인 사민당 지지에 반감을 느끼고 스웨덴민주당 당적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동조합 내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스웨덴민주당은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에 대한 규제법안을 현 정부와 함께 준비하여 사회민주당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한다. LO 산하의 금속노조인 인더스트리패킷메탈(IF METALL)과 테슬라 간 분쟁에 대해서도 노조를 두둔하며 노동조합에서 영향력을 높이고자 한다.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을 둘러싼 여러 위기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제도와 정치세력의 한계를 발판으로 성장했다. 정당정치와 언론에 대한 공격은 물론 스웨덴민주당 인사들의 극단적 언행, 갱단 연루 의혹 등 여러 가지 논란에도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스웨덴 정치권은 요동치는 중이다. 지지율이 급락한 자유당, 중앙당(두 당은 스웨덴민주당에 가장 적대적인 정당이다)은 합당을 모색하고 있으며, 스트뢰머 법무부 장관(온건당)은 4월 말 사법부 독립성 강화 법안을 제출했다. 2023년 의회 헌법위원회가 최근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포퓰리즘 정당들의 사례를 참고해 제안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는 이 법안은 대법원 판사 수를 12~20명으로 헌법에 명시하며, 헌법개정에 필요한 의석수를 의회의 과반에서 3분의 2로 개정하기로 했다. 이처럼 포퓰리즘 정당으로서 스웨덴민주당의 부상은 스웨덴 정치지형을 교란하고 있으며, 기존 정당, 정치인들은 대응방안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5. 결론
1) 매개조직을 훼손하는 포퓰리즘 세력
앞서 살펴본 우르비나티 교수의 포퓰리즘 해석을 기준으로 유럽 주요 4개국(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웨덴)의 사례를 참고할 때, 포퓰리즘 정당들은 나라별로 구체적인 맥락의 차이가 있지만, 앞선 구조적 특성(매개조직의 약화, 훼손)을 공유하면서 다음의 구체적 양상을 보인다.
첫째, 기존 정당정치와 언론 등 매개조직에 공격적이며, 그들이 유권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스스로를 다른 정당 혹은 정치인들과 차별화한다. 주류 정당들의 정책을 일관되게 거부하고 반대하여 주목을 받는다. 집권 이전에 꾸준히 정치권에 비토를 놓은 이탈리아 형제당이나, 다른 좌파 성향의 정당과 달리 일관되게 비과학적인 자본주의 부정 노선을 취하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들 정당들은 난민 문제 또는 유럽연합 거부/비판을 바탕으로, 기존 정치와 제도, 절차에 지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소셜미디어가 주요 수단으로 부상한다. 소셜미디어는 기존 언론에 대한 ‘대안 미디어’로 간주되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포퓰리즘 정당들은 기존 정당과 언론에 대한 거부와 반대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둘째, 늘어난 인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당을 특정 정치인 혹은 분파가 장악하며 정당 내 민주주의를 약화한다. 포퓰리즘 정치인에게 정당은 조직으로서의 정당이라기보다 ‘플랫폼’에 가깝다. 그들은 당의 주요 절차와 조직구성을 단순화한다. 단순화된 조직구조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한 특정 정치인은 당을 사유화한다.
멜랑숑의 당내 반대파 숙청과 오케손의 당 개편작업은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당 내부의 견제 장치를 무력화하는 대표적 사례다. 대안당의 경우, 튀링겐주의 호케가 주도하는 분파가 당 지도부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당을 특정한 분파의 정당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행위가 가능한 것은 해당 정치인/분파가 확고한 인기와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와 지역, 당내 기반은 해당 포퓰리즘 정치인/분파를 ‘인민의 집단의지를 육신화한 대표’로 만든다.
셋째, 포퓰리즘 정치인/정당은 수사, 정책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취하며 ‘다수’로서 ‘진정한 인민’을 드러내고자 한다. 앞서 살핀 주요 제도, 정책적 입장에 대한 일관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집권에 가까워질수록 주요 사안에 대해 전통적인 좌/우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유연한 수사와 실용적인 정책적 입장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국민연합, 대안당, 스웨덴민주당은 보수정당에 가까운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복지정책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지정책을 확대적용을 주장한다. 그들에게 ‘진정한 인민’은 난민 유입으로 국가가 훼손되기 이전의 시민이다. 이들은 ‘이민자’ 유입탓에 기존의 시민이 제대로 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므로, 이주민, 난민을 몰아내면 ‘진정한 인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유럽연합 탈퇴 입장을 버리고 유럽의회 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행보도 보인다.
반대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바겐크네히트 동맹과 같은 ‘좌파 포퓰리즘’ 정당은 전통적인 ‘우파 정당’의 수사와 정책적 입장을 차용한다. 바겐크네히트의 난민 반대 사례를 비롯해, 이들 정당은 전통적으로 우파 정당이 내세우는 ‘민족주권’ 개념을 강조한다.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인민(진정한 인민)’을 기존 제도권의 피해자로 광범위하게 정의한다. 그렇기에 기존 제도와 정책이 이들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타협과 존중을 거부한다. 상처받은 ‘민족주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유럽연합에 오히려 더 비판적이다. 그 결과 정책적 입장, 수사에서 좌우 포퓰리즘 정당은 수렴한다.
넷째, 집권 후 포퓰리즘 정치인/정당은 사법부를 포함한 매개조직을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권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이탈리아 형제당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포퓰리즘 정당은 집권 후 정치 엘리트를 포함한 매개조직들을 적극적으로 변형하고자 한다. 선거를 통해 언제나 ‘다수’인 ‘진정한 인민’이 수적으로도 다수인 것을 확인하였기에 다수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작업들을 취한다. 이를 위해 ‘진정한 인민’과 ‘지도자’ 사이의 직접적이고 영속화된 지배를 막는 기관, 엘리트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이탈리아 사법부 개혁 개헌안이 대표적 사례다. 포퓰리즘 정권은 사법부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에 충성하는 법조인을 사법부에 심고자 한다. 해당 조치를 막고자 세계대전 이후 유럽 주요국들에서 도입한 헌법이나 다양한 견제장치 규정들을 변경하고자 한다. 글에서 직접 다루지 않았지만 2015~2023년까지 집권한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PiS)이 대법관 임명권을 사법부에서 정부로 변경한 사례와, 헝가리 오르반 총리가 법관의 정년을 하향조정해 친정권 법관들로 사법부 인사들을 대거 교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사례들은 집권세력으로서 포퓰리즘 정당이 권력분립을 훼손하는 권위주의적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위 네 가지 특징들을 고려할 때, 우르비나티 교수가 지적한 ‘포퓰리즘’은 ‘다수의 지배’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다양한 매개조직들을 공격, 변형하고자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세력은 모두 기존 주류 정당들의 통치, 지배에 대한 불만을 배경으로, 자신들이 해석한 ‘진정한 인민’의 이름으로 각국의 헌정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집권 후엔 훼손을 넘어 헌정 민주주의를 마비시킨다. 이들은 단순히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만이 문제가 아니다. 포퓰리즘은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수많은 제도, 절차, 관행의 손상이라는 점에서, 헌정질서와 민주정을 분명히 위협한다.
2) ‘포퓰리즘’이란 험로를 마주한 유럽정치
유럽통합 실패의 결과로 등장한 포퓰리즘은 각국의 헌정만 아니라 유럽통합의 위기를 가속화한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국가들은 파시즘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1949년 설립된 유럽평의회는 개별국가의 자기통제능력을 불신하여 공통의 법치, 민주주의 감시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유럽연합이 창설되면서 1993년 유럽 이사회는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조건으로 회원국의 의무, 시장경제와 함께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유럽 차원의 정치적 통합 강화는 2004년 유럽헌법조약 채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유럽헌법조약이 프랑스, 네덜란드를 비롯한 각국에서 거부된 이후 더 진전하지 못했다.
이후 유럽의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포퓰리즘 세력은 각국의 헌정뿐 아니라 유럽연합의 제도들도 손상시키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폴란드·헝가리와 유럽연합 간의 갈등이 있다. 2017년 폴란드 정부의 사법부 훼손에 유럽연합은 제재(의결권 박탈)을 시도했다. 유럽연합조약(리스본 조약) 7조에 규정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회원국의 중대하고 지속적인 침해가 존재한다는 결정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내린 경우, 그 회원국 정부대표의 의결권 정지 등의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거했다.
그러나 동 조항은 회원국의 만장일치를 요했는데, 헝가리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저항했다. 헝가리와 폴란드가 공조하면서 유럽연합조약을 무력화하자, 유럽연합은 2020년 예산지원 제한 규정을 만들어 양국에 예산지원 삭감을 결정했다. 여기에 양국은 2021년 유럽연합 중장기 예산안 승인을 거부하며 맞섰다. 독일이 갈등을 중재하며 지원금 삭감 결정은 2년간 유예됐으며, 그 사이 2024년 폴란드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유럽연합은 제재를 해제했다. 반면 여전히 유럽연합에 저항하는 헝가리엔 2024년 지원금을 삭감했다.
이렇듯, 포퓰리즘 세력은 유럽연합의 제도, 가치를 무시하고 유럽연합을 자국의 매개조직에 그랬듯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마음대로 활용한다. 그 결과는 유럽통합이라는 더 큰 매개조직의 무력화로, 즉 유럽통합 위기의 가속화다. 그런데 대안적인 국제질서 없는 유럽통합의 파괴는 현재 진행중인 국제질서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초국가적 제도와 질서를 무시하는 유럽 포퓰리즘 세력이, 같은 맥락에서 현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 러시아 푸틴 정부에 친화성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포퓰리즘 정치세력의 매개조직 훼손은 국가 내에서, 국가 간에서 극단적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을 보증하는 제도와 질서의 무력화는 다수의 지배 혹은 힘에 의한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이견을 용납하지 않기에 지식인 또는 사회운동은 폭력적인 탄압에 쉽게 노출된다. 나아가 국제질서의 무력화로 인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강대국의 영토확장을 위한 침략 내지는 협박이 빈번해질 수 있다. 그 결과는 사회의 붕괴와 문명의 파괴다. 극단적 폭력 속에선 어떤 대안의 가능성도 봉쇄된다.
분명 유럽연합을 비롯하여 현재 유럽 각국의 각종 제도적 장치들은 결함과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성찰과 개혁을 통한 헌정 민주주의의 재건이어야 하지, 결코 헌정 민주주의의 부정일 수 없다. 포퓰리즘이 권위주의와 친화성이 크고, 나아가 파시즘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퓰리즘 세력에 대한 단호한 비판과 거리두기는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과연 유럽 정상 외교, 나아가 유럽의 사회운동은 포퓰리즘 세력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에 휩쓸려 부화뇌동할 것인가? 유럽정치의 복원 내지는 재건은 유럽인들이 어떻게 포퓰리즘에 대응할 것이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