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5 가을. 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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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30년, 사회진보연대 27년

임필수 | 편집장

민주노총 창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산의 주역이며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원동력인 우리들 노동자는 오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전국중앙조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창립을 선언한다.” 민주노총 창립일이 1995년 11월 11일이므로 이제 곧 창립 30년을 맞는다. 창립선언문을 좀 더 읽어보자. “우리는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조직의 확대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산업별 공동투쟁과 통일투쟁에 기초하여 산업별 노조에 기초한 전국중앙조직으로 발전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성을 강화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하여 정치세력화를 실현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1995년 창립 시점부터 산업별 노동조합과 정치세력화를 분명한 목표로 설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처음 세운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 또는 그 목표설정이 옳았는가 되돌아보는 일은 언제라도 두고두고 해야 할 숙제다. 게다가 민주노총 30년은 사회진보연대의 활동가 한 세대가 공유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집으로 「민주노총 30년 좌담: 기억, 진단, 성찰」을 준비했다.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 노동운동의 전략으로서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의 현황 진단, △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인식과 대응, △ 경제위기와 민주노총의 역할, △ 제1노총으로서 민주노총의 위상과 주체 형성, △ 민주노총 30년, 노동운동 혁신을 위한 우선적 과제와 같은 굵직한 주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참석자들은 민주노총이 지난 30년간 일궈낸 성과도 매우 많지만, 현시점에 마주한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예컨대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라는 ‘양날개’ 전략이 현실에서 점점 더 유효성을 잃어가는데도 이를 대체하여 노선적 전환을 선도할 만한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고, 애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를 추구했던가, 그 원초적 목표에 대한 인식조차 점차 흐릿해졌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황이 그렇다면 노동조합운동은 ‘목표 없는 운동’으로 점차 흘러갈 위험이 크다. 참석자들은 노동자운동이 현재 세계 자본주의의 정치·경제 정세와 노동자 대중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적 목표를 구성하고 합의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상중계’로 싣는 김진영의 「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보고와 평가: 원폭 80년과 돌아온 핵 경쟁,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결의」는 지난 8월 3~9일, 대표적인 일본 반핵평화운동 단체인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원수협)가 주최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80주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주제와 현황, 논의를 보고하고, 이번 대회의 의의를 평가한다. 이번 세계대회는 ‘지구 종말 시계’가 역사상 자정, 즉 지구 종말에 가장 근접한 위태로운 정세 속에서 열렸다. 80~90대에 접어든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들이 대규모로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0주년 대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세계대회 선언문은 강대국의 핵 군비경쟁이 공공연히 재개되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격이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정세에 세계 시민이 맞설 길은 각국 정부의 핵 군비 확장과 핵 억지력 옹호에 맞서 “모든 핵무기 반대”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결집하는 것뿐임을 분명히 했다. 또 핵무기금지조약 캠페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80년간 핵무기의 절멸성과 비인도성을 입증하는 산 증인으로서 핵무기의 실전 사용을 막는 국제 여론을 주도한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필자는 이들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 책임이 세계대회 참가자를 비롯한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쟁점분석’으로 담는 김영진의 「이란 현대사로 살펴본 이슬람주의 비판: 좌절과 극단이 낳은 이란 신정체제」는 이슬람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이란 현대사를 분석한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종교를 정치화한 이데올로기로 종교와 구분해야 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문명의 부흥을 위해 교리와 역사를 재해석하며, 신이슬람 질서 창출을 목표로 이슬람법을 엄격한 도그마로 둔갑시키고 반유대주의를 공유한다. 또한 지하드를 통해 폭력을 정당화하며, 서구의 지식은 이슬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필자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이슬람주의가 민주정치와 국제질서와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한편 이란의 이슬람주의는 입헌 혁명의 좌절과 석유 국유화 운동 실패 등 현대화를 추구한 지식인들의 무능과 좌절 속에서 성장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 이슬람주의 세력은 국내에서는 강압적 통치로 이견을 억압하고, 대외적으로는 중동정치의 불안정과 전쟁 위기를 지속적으로 촉발했다. 필자는 이란의 이슬람주의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이란의 민주주의 실현과 중동의 평화 구축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즘 읽기’로는 홍현재의 「자본의 전략과 젠더 규범을 넘어 안전한 일터로」를 싣는다. 이 글은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나래 외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빨간소금, 2023)의 요지를 설명하면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여성위원회가 주최한 북콘서트도 소개한다. 필자는 여성이 겪는 산업재해의 특징과 종류가 통념과 다를 뿐 여성 역시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고, 산업재해 보상 제도에 젠더 공백이 있으며, 이러한 공백은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로 채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 소개’는 정성진의 「인민주의와 권위독재정의 공포에 맞서는 길」이다. 이 글은 세계적으로 발호하는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특성과 위험을 분명히 인식하려면, 먼저 그들이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유주의-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의 표준과 그 변천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자유주의의 역사: 인민주의 비판을 위하여』(박상현·유주형 외, 공감, 2024)를 소개한다. 덧붙여 필자는 ‘개인적 소유의 재건’(자유로운 노동자연합)을 주창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과연 공화주의 편에 가까운 것이냐, 자유주의 편에 가까운 것이냐는 질문도 던진다.

 

‘회원칼럼’, 이혜인의 「원폭의 경험을 일본과 한국이 함께 기억하는 법: 2025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는 ‘지상중계’와 짝을 이루는 글로 함께 읽어주기를 바란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에 『자유론』을 펴내면서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피지배자들이 지배권력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투쟁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권력을 제한하는 것 자체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밀은 ‘선거를 통해 국민과 지배자가 하나가 되어 이해관계와 의지가 일치하게 되면 정부를 견제하거나 제한한 필요가 사라진다’라는 생각이 유럽대륙에 팽배해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밀이 보기에 국민의 의지란 현실적으로 국민 중에 수가 많거나 능동적인 집단, 즉 다수파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의지를 의미할 뿐이며, 다수파가 권력을 남용할 우려는 상존한다. 따라서 ‘다수파의 폭정’을 늘 경계해야 하며, 정부 권력을 제한할 필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밀이 자유론을 발표한 지 160년이 넘었으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선출된 권력, 즉 다수파 권력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태도가 만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헌정의 불안정과 잠재적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2025년 9월 17일

임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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