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해체 후, 진정 새로운 시대
연말에 발간하는 기관지 특집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새해 2026년 정세전망이다. 한국과 미국, 새 정부의 등장과 함께 가파른 변화를 겪은 2025년의 의미를 되짚으며 다가올 정세를 조망한다.
정성진의 「국제무역과 금융의 분절화, 달러체제의 위기 가능성과 한국경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2010년대 중반부터 진행되어 온 국제무역·금융의 분절화 추세를 가속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추세가 새로운 국면, 즉 ‘달러체제의 위기’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그런데 이는 미국보다 오히려 전 세계의 위기를 의미하며, 특히 한국처럼 세계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더 큰 파급력을 끼칠 것이다. 한국경제는 무역 측면에서는 미국과 중국 양측의 전략으로 수출산업이 강한 압력을 받으며, 금융 측면에서는 내국인에 의한 자본유출이 꾸준히 확대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필자는 이런 조건에서 이재명 정부가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잘못된 금융시장 개입정책을 펼침으로써 한국경제를 막다른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김영진의 「정치와 질서가 해체되어 가는 세계」는 각국 헌정질서에 도전하는 포퓰리즘 세력과 현존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권위주의 정권의 행태를 검토한다. 필자는 먼저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 후 어떻게 견제세력을 제거하고 있는지, 장기침체와 부채위기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주류 정당의 틈을 유럽 포퓰리즘 세력이 어떻게 파고드는지 살펴본다. 필자는 포퓰리즘 세력에 진정으로 맞서고자 한다면, 일부 정치세력이 주장하거나 실행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맞불 놓기가 아니라, 시민사회 차원에서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하고 민주적 규범을 재구축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러시아와 이란을 비롯한 권위주의 정권들이 노골적으로 핵 위협을 가하며 주변국의 폭력적 대응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필자는 권위주의 정권의 행태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운동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집의 세 번째 글로 임필수의 「중국의 2027년 대만 침공설과 핵무력 증강, 분석과 평가」를 싣는다. 2020년대 초반부터 미국 조야의 저명한 인사들이 2027년을 구체적으로 짚으며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을 언급했다. 2027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그 현실성을 살펴본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면적인 무력침공은 아니더라도 중국의 정책적 의지를 관철하려는 강압캠페인의 수위를 점점 더 높여나갈 개연성은 상당하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질 여지는 상존한다. 또 한편 《핵과학자회보》는 중국이 “9개 핵보유국 중 가장 빠르게 핵무기를 증강하고 있는 국가”이며 “핵확산금지조약(NPT) 당사국 중 유일하게 핵무기 보유량을 상당히 늘리고 있는 국가”라고 평가했다. 무슨 의도인지,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뉴스타트 협정마저 아무 후속 협정 없이 곧 종료되면, 이제 우리는 미국, 러시아, 중국 간 어떤 핵통제, 핵군축 테이블도 없는 진정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김진영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헌정과 민주주의는 복원되었는가」는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 뒤로 1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의 헌정과 민주주의는 계속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내전’이라 부를 만한 정치양극화는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듯 여전히 강렬하다. 그 진원지인 거대 양당 지도부가 더 ‘강성’이 된 탓이 크다. 나아가 필자는 여당이 ‘내란청산’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사법부를 문제 삼으며 내놓은 각종 검찰개혁·사법개혁안이 한국 헌정에 가하는 위협에 주목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헌정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 왜곡죄 신설 안은 ‘재판부 구성에 자의적 기준을 배제하여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한다’, ‘국가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법을 동원하여 처벌해서는 안 된다’라는 현대 법치주의의 원칙에 원천적으로 위배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행정부의 인식도 민주당과 다르지 않은데,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공무원의 휴대폰 제출을 요구하는 등 위헌적 행태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이소형의 「2026년 노동 정세전망」은 장기 저성장, 인구구조 변화, 서비스노동의 비중 확대와 같은 요인으로 노동시장 간 분리가 굳어지고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업률 지표는 양호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단순 저임금 일자리가 빠르게 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쉬는’ 청년이 차지하는 몫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자 간 격차와 노동시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최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이 쟁점이 되었는데, 노동조합은 ‘5인 미만’으로 위장한 사업을 규제하도록 요구하고 노동조합 조직화에 노력을 기울이며 근로기준법의 보편적 적용을 향한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정년연장 법제화의 경우, 노동조합은 정년에 미처 닿지도 못하는 다수 노동자의 노후 고용안정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이를 산업적 수준에서 다뤄야 하며, 그 목적을 위해서 산업적 임금체계도 병행하여 의제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노조법 2·3조 개정을 계기로 산업적으로 연결된 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를 전략적으로 조직하고 공동투쟁과 공동교섭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개별 노조의 교섭권 확보를 넘어 초기업교섭을 지향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이번 호 책 소개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최현의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하여」는 올해 10월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부설교육센터 사무국장이 낸 책, 『투쟁의 역사, 성찰의 기록: 한국노동운동사 1987~2027』(벽너머, 2025)를 소개한다. 이 책은 《계간 사회진보연대》에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여섯 차례 실린 연재와 좌담을 저자가 공을 들여 대폭 손질해서 펴낸 것이다. 《사회운동 포커스》에서 저자 박준형 국장과의 인터뷰, 「실패의 역사 속에서 내일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2025년 11월 3일)도 볼 수 있다. 홍수영의 「우리가 선택할 미래가 과연 핵전쟁인가」는 애니 제이콥슨의 『24분: 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문학동네, 2025년)을 읽으며 핵전쟁이 어떻게 펼쳐지게 되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마지막 회원칼럼으로 김태호의 「살아남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내가 붙잡았던 친구들」을 담았다.
회원칼럼의 제목처럼 우리의 기관지가 ‘살아남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친구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편집자로서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
2025년 12월 19일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