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헌정과 민주주의는 복원되었는가?
2026년 한국 정치 전망
1. 총평: 비상계엄 1년,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 더 후퇴한 한국 정치
2024년 12월 3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1년이 지났다. 초유의 비상계엄이 준 충격만큼이나, 단 2시간 37분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과정과 계엄 선포 당일 국회 앞에서 시작되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시민들의 평화집회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빛의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칭송받았다. 올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라는 표현으로 한국 사회의 이러한 저력을 새 정부의 정체성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계엄의 밤’ 뒤 1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정치는 여전히 지난해 12월 3일의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시보다도 퇴행했다. 사회진보연대가 최근 몇 년간 한국 정치를 분석했던 ▲ 정치 양극화, ▲ 제왕적 대통령제, ▲ 헌정위기, ▲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틀에 비춰보자.
올해 정치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은 광범위한 인식이다.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11월 28~29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계엄 이후 정치적으로 더 양극화가 됐다’고 답한 비율은 77%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18%)을 압도했다. 이는 지지 정당·정치 성향·연령·지역·직업 등의 변수로 구분해 보아도 큰 차이가 없는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계엄이 우리 사회에 미친 문제점도 ‘정치·사회적 분열 심화’(27%)라는 응답이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치 양극화의 주된 책임이 어디에 있냐에 관해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응답은 윤석열 전 대통령 38%, 국민의힘 29%, 국민의힘 지지층의 응답은 민주당 32%, 이재명 대통령 26%로 극명히 갈렸는데, 상대방의 책임만 묻는 이러한 모습 자체가 정치 양극화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일보》가 의뢰한 12월 4~5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86%가 “한국 정치가 양극화되어 있다’고 답했으며, 70%는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도 지지 정당·정치 성향·지역·연령·성별 등의 변수와 관계없이 모두 압도적인 비율로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역시 ‘비상계엄 이후 국가 정상화 여부’에는 민주당 지지자의 63%는 긍정적 답변을, 국민의힘 지지층은 70%가 부정적 답변을 내놓아 정치 양극화를 방증했다.
이와 같이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보니, 비상계엄 1주년을 맞이한 올해 12월 3일 여러 신문 사설도 비상계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축하하기보다는, 여야가 여전히 정치적 내전에 가까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중앙일보》는 “통합과 재건이 진정한 내란 극복”이라고 주장했고, 《국민일보》는 “계엄 1년 된 날에도 진영 대결만 보이는 씁쓸한 풍경”이라고 평가했다. 《부산일보》는 국민 통합 대신 내란 심판만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1주년 대국민 성명, “2026년을 내란 청산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민주당, 여전히 계엄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는 국민의힘 모두 정치적 내전을 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전날 “나치전범처럼 처벌”을 언급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포함하여, 정부·여당의 자의적이고 광범위한 “내란 청산” 조치가 과유불급이 되어 공무원들을 압박하고 반대파 제거에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한편 비상계엄 사태와 조기대선 정국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경각심을 키웠고, 이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여러 개헌 논의로 이어졌으나, 2017년 대선의 문재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2025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재명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관련한 지적을 받자 이 후보도 개헌안을 제시했으나, 총리 국회추천제를 제외하고는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또한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서는 미온적인 이 후보를 공세적으로 몰아붙이는 대신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두 후보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 개헌을 통한 정치개혁 약속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비상계엄 이후 뜨거웠던 개헌 논의가 본격적인 대선 운동 기간이 시작되자 수면 아래로 사라졌고, 지금도 그렇다.
앞서 언급한 《중앙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통령 권한 수준에 관한 의견으로 현행 수준 유지(49%), 현행보다 축소(31%), 현행보다 확대(13%) 순서로 답변이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지지 정당에 따른 차이가 컸다. 민주당 지지층은 현행 수준 유지 응답이 59%로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21%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권한 축소 희망이 54%로 가장 많았고, 현행 유지가 그다음(34%)이었다.
즉,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주어졌을 때에 생기는 문제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인 2024년 비상계엄 사태를 겪고서도,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중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진영 논리에 따른 판단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윤어게인’ 세력의 행태는 말할 나위도 없고, 국민의힘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원이 2월 19일 개최한 창립 30주년 연속토론회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국회가 더 문제!>를 보면, 현 야당 세력이라고 해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문제의식이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정치는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더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 주도 세력의 책임이 크다. 주요 선거는 주류 정당에 흔히 중도층의 민심을 붙잡고 지지 외연을 확대하라는 긴장감을 거는 계기로 작동하지만, 심지어 전국 지방선거(2026년 6월 3일)를 딱 반년 남겨둔 12월 초 현재까지, 여전히 계엄의 자장 안에 있는 양당 지도부는 정치 양극화에 힘입어 오로지 핵심 지지층에 호소하는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단일 대오로 이러한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11월 들어 이른바 ‘명청 갈등’(이재명 대통령계-정청래 민주당 대표계 갈등)과 당대표 선거 ‘1인 1표제’ 논란이 불거지며 민주당 내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2월 3일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계엄은 (민주당의)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성명을 낸 것에 반해,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어디까지나 헌법과 법률의 틀 내에서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었다며 선을 긋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도 같은 기조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청래 지도부나 장동혁 지도부도 단순한 소신이나 전체 당 차원의 선거 전략을 넘어 당내 권력 싸움의 측면에서 극단적 노선을 택한 것이므로, 양당 모두 당내에서 토론과 타협으로 쉽사리 갈등이 정리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내년 1월 중순 지방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최고위원 세 자리에 대한 보궐선거와, 8월 당대표 선거에서 친명(친이재명)계와 정청래계가 본격적으로 맞붙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 선출에 기여한 ‘윤어게인’ 세력과 의석을 잃을 위기감이 커진 초·재선 및 수도권 지역 의원 간의 갈등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면에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러한 경쟁의 결과로 각 당내 세력구조가 크게 바뀌거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중대한 변수가 한국 사회에 닥치지 않는다면 12월 현재의 형국이 2026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즉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힘 정당 해산까지 염두에 두며 ‘내란 청산’ 국면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려 하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계엄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대구·경북 수성만을 노리고 이재명 정부, 민주당과의 ‘체제 전쟁’(장동혁 대표 표현)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다. 통상 임기 중간의 선거는 현 정권 평가의 장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문제, 그리고 그와 맞물린 민주당의 급격한 ‘사법개혁’ 추진에 관해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도 2026년에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건에 대한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거나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거나 하지 않은 것처럼, 민주당의 행태가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국민의힘의 행태가 그보다 더 실망스럽다면 민주당 우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올해 어느 정도 확인이 된 셈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은 올해 내내 50~60%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각종 수사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행적이 계속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이와 절연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국민의힘이 계속 보이는 한, 이러한 구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만 보더라도, 한국의 헌정위기는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 등장 후 이른바 ‘사법개혁’을 통해 헌정위기의 질적 비약을 가하는 측면은 뒤에서 분석한다. 2024년 비상계엄 선포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극단적 헌정위기 사태였다. 그러나 우리는 헌정위기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말 그대로 헌정의 여러 핵심 원리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보았다. 즉, 헌정의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야당과 윤석열 대통령, 여당이 각각 대선과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과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며 극도의 갈등을 벌여 온 과정 전체가 만성적 위기였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듯한 태도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만, 후자를 전자가 극에 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려면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헌법에 따라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정치원리’로서 ‘헌정주의’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의 현실, 그러한 현실을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권력구조인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배경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극한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 양극화는 올해 더 심각해졌으며,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는 논의에서 밀려났다.
이미 조기대선까지 가는 국면에서, 우리는 만성적 헌정위기의 징후로서 정당 민주주의의 붕괴에 주목했다. 민주당에서는 2022년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2024년 총선과 당대표 선거를 거치며 ‘팬덤 당원’이 주도하는 당내 민주주의 파괴와 일극화, 일명 ‘이재명의 민주당’화가 이뤄졌으며, 이것이 4월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극명히 드러났음을 짚었다.
한편 202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시기에 제왕적 대통령을 중심으로 계파를 형성하고 당권과 공천권 장악에만 몰두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자행한 초유의 비상계엄 이후로는 전신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회 탄핵 표결에 동참한 것과 달리 갈수록 가관인 모습을 보였다. 친윤계를 비롯한 상당수 의원이 사실상 계엄을 옹호하거나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고,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대표를 끌어내리고 ‘윤핵관’인 ‘쌍권’ 권영세, 권성동 의원을 중심으로 당권 장악에만 몰두했다. 당권파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반탄’ 김문수 후보가 승리한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김 후보가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에 소극적으로 나서자, 경선을 거쳐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대선후보를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긴급 의결로 강제 교체한 한밤중의 ‘당내 쿠데타’까지 벌였다.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파괴의 극치였다.
이와 같이 대선 준비 과정만 보더라도, 양대 정치세력이 서로를 핑계로 제왕적 대통령제와 정치 양극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헌정 위기를 만성화하는 길로 나아가리라는 예측은 대선 이후 실현되었다.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당내 구도가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이 아니고 ‘친길(친전한길)/반길(반전한길)’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어게인’과 ‘부정선거’를 외치는 유튜버 전한길에게 휘둘렸다. 결국 전한길 씨와 당권파를 등에 업은 ‘반탄 친길’ 장동혁 후보가 당대표가 되었다. 장 대표는 자신의 당선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낸 승리”라며 보수 유튜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유튜브와 《딴지일보》를 매개로 ‘민주당 상왕’이라 불릴 정도로 민주당 지지층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김어준 씨와 손을 잡고, ‘당원주권정당’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당의 대의원 제도를 무력화하는 ‘1인 1표제’(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현행 20대 1에서 1대 1로 변경) 당헌 개정을 추진했다. 정 대표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선될 때에도 대의원(46.91%)보다 권리당원(66.48%) 득표가 상당히 높았는데, 권리당원 표의 가치를 대폭 강화하면 김어준 씨 팬층이나 정 대표가 당정 간 엇박자를 감수하면서까지 ‘3대 개혁’(검찰·언론·사법)을 밀어붙이며 확보한 강성 지지층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기 더욱 쉽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이는 ‘개딸’로 상징되는 강성 팬덤의 당내 영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만들어진 과정과 비슷하다.
[그림] 12월 13일 대국본 집회와 촛불행동 집회 포스터
연말에도 규모는 줄었지만 올해 초와 같은 ‘극단의 광장’이 열려있다. 2025년 12월 13일 집회를 알리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와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포스터다. 대국본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집회에서 “이재명을 끌어내자”, “(내란 특검을 이끄는)민중기를 끌어내자”, “윤어게인”을 외쳤다. 대국본을 주도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이제 국민저항권을 발동할 시간”이라고 발언했다.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같은 날 집회에서 “내란 수괴(윤 전 대통령)가 아직도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판사들도 내란범들과 한통속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촛불행동 집회 참가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조희대(대법원장)를 탄핵하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하라!”, “국민이 법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이재명 대통령 본인의 ‘사법 리스크’와도 결부된 집권당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과 각종 ‘사법개혁’ 움직임, 그리고 ‘내란 청산’의 판을 더 키워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정부·여당의 거침없는 행보로 인해, 헌정의 구성 요소 중에서도 국가 권력 간의 상호 견제, 그중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성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증폭되었다. 정치권은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 전 대통령, 김건희 씨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을 둘러싼 각종 수사와 재판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개입하려 하고, 사법부와 국가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다음부터는 이상의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2026년에도 한국 정치의 주요 쟁점이 될 “내란 청산”과 이와 결부된 민주당의 “사법개혁” 전망을 분석하고, “이재명과 민주당이 집권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주요 정당들의 2026년 6월 지방선거 준비 태세도 살핀다. 결론으로는 사회운동이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분열을 넘어서는 정치를 모색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2. “내란 청산”과 사법부 압박
○ 3대 특검 상황과 전망
비상계엄 선포의 전모를 비롯하여 전 정부에 제기된 수다한 의혹을 파헤치는 목적으로, 6월 5일, 국회에서 일명 ‘3대 특검(특별검사)’으로 불리는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 상병(순직 해병)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이를 반대하고 퇴장했지만, 안철수 의원과 일부 친한계 의원의 이탈표가 있었다. 이 대통령의 재가와 특검 구성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내란 특검은 6월 중에,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은 7월 초에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1) 채 상병 특검: 11월 28일 가장 먼저 종료한 채 상병 특검(이명현 특검팀)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이에 대한 윤 전 대통령 등의 수사 외압 의혹,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외압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도피 사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사건 등을 수사했다. 이른바 ‘VIP 격노설’과 조직적 수사 외압의 진상을 어느 정도 밝혀냈으나, 윤 전 대통령의 격노와 수사 외압의 고의성을 입증할 고리인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을 밝혀내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구속영장을 10회 청구했지만 임 전 사단장을 제외한 9건 모두 기각된 점도,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로 수사 동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 지점이 되었다.
2) 김건희 특검: 김건희 특검(민중기 특검팀)은 김건희 씨의 명품 가방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수수,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연루된 공천 개입 의혹, 건진법사(전성배)의 선거 개입 의혹, 관저 이전 부당 개입 의혹 등 16개 의혹을 수사했다. 특검은 8월 29일 김 씨를 구속 기소했으며, 12월 3일 김 씨에게 징역 15년에 벌금 20억 원을 1심에서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은 김 씨가 2010∼2012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적극 공모하였으며, 명 씨에게 여론조사 결과 58회를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김 씨의 통일교 커넥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등에 대해 “종교단체와 결탁해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을 무너뜨렸으며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국가 통치 시스템을 붕괴시켰다”며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제기했다. 김 씨의 1심 선고는 내년 1월 28일이다.
그런데 12월 현재, 김건희 특검의 편파성 논란에서 촉발된 이른바 ‘통일교 게이트’가 커지고 있다. 8월 수사 과정에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 등 민주당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건넸다고 김건희 특검에 증언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음이 《한겨레》의 취재로 12월 초 드러난 탓이다. 《한겨레》는 특검이 ‘별건 수사’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과 관련해 별건으로 인지한 국토교통부 서기관의 뇌물수수, 김건희의 집사로 불리는 김예성 씨의 ‘집사 게이트’ 의혹과 관련한 아이엠에스모빌리티의 대기업 투자금 유치, 조영탁 아이엠에스모빌리티 대표가 기자에게 수천만 원을 줬다가 구속된 사건 등, 특검법의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여럿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특검이 통일교와 국민의힘 인사의 유착을 수사하여 권성동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특히 윤 전 본부장이 진술한 민주당 인사 금품 전달 시기는 2018년으로, 정치자금법 위반죄를 적용하면 올해 말로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되기 때문에, 특검의 ‘덮어주기’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12월 10일 결심공판에서 윤 전 본부장은 당초 공언과 달리 추가 폭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취재로 그가 특검에서 전 장관뿐만 아니라 정동영 통일부장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김규화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이전 이름) 의원 등을 언급했고, 특검이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 2022년 초 당시 통일교가 이종석 국가정보원장(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 선대위 평화번영위원장) 등 민주당 인사들을 만난 정황이 담겨 있는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날, 경찰청이 편성한 중대범죄수사과 내 특별전담수사팀이 통일교의 민주당 지원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이 12월 11일 사퇴하자 야권의 공세는 더 강해져,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 도입을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진]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사퇴
2025년 12월 11일, UN해양총회 유치를 위해 출국했다 귀국한 전재수 해양수산부장관이 인천공항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장관직을 내놓고 당당히 응하겠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관련 수사가 아직 진행 중으로 의혹의 진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재명 정부 내각의 첫 낙마이자 가장 유력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장관 사퇴 자체의 충격이 컸다. (사진출처: 《뉴시스》)
3) 내란 특검: 조은석 특검이 지휘하는 내란 특검은 군사 반란, 내란 선동, 무인기 평양 침투 의혹을 포함한 외환죄 혐의 등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범죄 혐의 열 가지에 더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대상으로 했다.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 등 국무위원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군 관련 인사들, 그리고 계엄 계획에 ‘비선’으로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 등을 구속 수사했다. 이를 통해 헌법재판소 판결이 지적한 계엄 선포 절차의 위법성과 관련 국무위원들의 위증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윤석열 정권이 무인기와 대북전단으로 남북 간 무력충돌을 유도하려 했다는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입수했다. 이에 윤석열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외환죄인 일반이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검은 지난해 5월 김건희 씨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보낸 메시지나 창원지검이 작성한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 수사보고서를 박 전 장관이 김 씨에게 전달한 증거를 확보하자, 이를 토대로 김 씨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해 윤 전 대통령과 김 씨가 계엄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특검 종료 시점까지 이를 결정적으로 증명하거나 김 씨가 사전에 계엄 계획을 알고 개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
12월 15일 내란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동기는 무력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기간 독점, 유지하려는 것이었으며, 계엄 준비에 나선 시기는 2023년 10월 이전으로 판단된다고 최종 수사 결과를 정리했다. 김건희 씨가 비상계엄에 관여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란 특검도 지난 반년간 계엄 가담 관련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6명 가운데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수사가 조급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법원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혐의 및 법리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 앞선다”며 사유를 밝혔다. 이는 이들에게 혐의점이 없다는 ‘면죄부’라기보다는, 특검의 수사가 구속 필요성을 입증하기에 부실하거나, 불구속 수사 원칙을 고려했을 때 구속영장 청구가 다소 무리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연내로 마무리되는 3대 특검의 후속 수사는 본래 경찰청 몫이다. 12월 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1월 종료한 채 상병 특검 사건을 넘겨받았다고 알리며, 나머지 두 특검도 수사 기간이 끝나면(내란 특검 12월 14일, 김건희 특검 12월 28일) 인계받기 위해 ‘3대 특검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12월 중부터 후속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대 특검이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이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이첩되면, 국민의힘이 수사기관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3대 특검 사건을 통합한 2차 종합 특검이 필요하다고 공언했다. 3일 이재명 대통령이 “현재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고 언급하며 2차 특검에 힘을 싣자, 여당의 2차 특검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이 2차 특검은 통합하겠다고 한 까닭은, 특검 세 개가 대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올해 검찰의 일반 수사 역량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왜 경찰청이 아니라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계획대로 2차 특검이 진행된다면 2026년 6월 지방선거로 가는 길도 내내 ‘내란 국면’이 되기 쉬울 것이다.
더불어 내년 1~2월에는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김건희 재판, 계엄 관련 군 및 경찰 인사 재판의 1심 선고가 이뤄질 계획이므로, 2026년에도 비상계엄 선포와 김건희 씨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것이다.
○ 민주당의 “내란 청산” 입법
그런데 특검과 민주당 측은 특검의 미진한 수사 진행이나 연이은 구속영장 기각을 “내란 청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사법부의 문제로 돌렸다. (내란 특검팀은 대법원이 계엄에 순응하거나 동조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는 의혹에 따라, 대법원이 비상계엄 직후 심야 긴급 회의를 연 경위를 묻는 질의서를 법원행정처에 보내기도 했다.) 이에 2차 특검을 포함하여 특검 수사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입법과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다수는 사법부를 겨냥한 것이다.
이 중 12월 3일 범여권의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 윤석열·김건희 등의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전담재판부(일명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관한 법률안, ▲ 법 왜곡죄 신설 등 형법 개정안,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살펴보자.
①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민주당이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연내 처리를 시도하는 법안이자 현재 가장 뜨거운 논란의 대상은 내란특별재판부(내란전담재판부)다.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주장은 7월부터 있었으나 논의가 잠정 중단 상태였다. 그러나 지귀연 부장판사가 담당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재판이 지연되고 있으며,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결정하기도 한 지 판사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받아안은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11월 중순부터 앞다투어 필요성을 거론했다. 11월 24일 민주당은 당론으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것을 공식화했다. 같은 시기 민주당이 추진하는 각종 ‘사법개혁’안과도 맥락을 같이했다.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기존 사법체계와 별개로 특정 사건을 위해 ‘특별’히 구성되는 재판부라는 구상은 처음부터 위헌 논란을 크게 일으켰다. 민주당도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표현을 기존의 전담재판부 제도에서 따온 ‘내란전담재판부’로 바꿨지만, 전담재판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담재판부는 재판 효율성을 위해 지식재산권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의 불특정 사건들을 전담하여 다루는 재판부로, 특정한 사건과 피고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다.
KBS는 내란특별재판부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 제1항과 충돌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법률이 정한 법관’이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률(법원조직법 등)에 따라 자격이 부여되고 물적·인적 독립이 보장된 법관을 뜻한다. 자의적 기준에 따라 외부 세력이나 법원 내부 세력이 법관을 배당하거나 교체하는 것을 방지해 재판의 독립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형사사건은 특정 판사에게 임의로 배당되어서는 안 되며, 컴퓨터를 통한 무작위 배당이 원칙이다.
그런데 12월 3일 법사위를 통과한 민주당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은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죄 재판을 위해, 추천위원회를 통해 판사를 추천·임명하고 재판부를 설치하도록 했다. 특정한 사건을 겨냥하여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임명한 판사로, 그것도 이미 다른 판사가 재판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재판부를 따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피고인은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구성된 재판부가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게 되므로, 헌법에 명시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12월 5일 전국법원장회의는 “비상계엄 전담재판부 설치 법안과 법왜곡죄 신설 법안은 재판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 위헌성이 크다”며 “법안의 위헌성으로 인해 많은 혼란이 초래될 수 있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한변호사협회도 12월 8일 “특정 사건이나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둔 입법은 그 자체로 법치주의의 핵심인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위배될 위험성이 크다”면서, “특정 시점과 특정 사안에 따라 입법부가 재판부 구성이나 법관·검사의 직무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입법을 반복하면 국민도 그 입법 취지의 순수성에 공감하기 힘들 것”이라는 내란특별재판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같이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특별히 담당하는 한시적 재판부 설치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견에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추천위원회의 구성 등 세부적인 부분을 고쳐서 위헌 소지를 최소화하여 계속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야가 나흘간 대치한 본회의장 필리버스터가 12월 14일 정기국회 1차 본회의에서 끝이 난 뒤, 민주당은 23일 열리는 본회의까지 특별법을 수정해 다시 상정하기로 했다.
② ‘법 왜곡죄’ 신설
‘법 왜곡죄’ 법안은 판사나 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 또는 묵인하여 판결할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자격정지로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다. 정청래 대표는 법 왜곡죄가 필요한 사례로 ‘검찰 간부가 쿠팡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수사팀에 무혐의 처분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들었고,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재판 중인 지귀연 판사가 “만약 1심에서 윤석열을 풀어주거나 무죄를 선고한다면, 처벌이 가능하다”라며 입법 취지를 밝혔다.
그런데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국 형법에 처음으로 ‘왜곡’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현행 형법의 조항과 조문에는 왜곡이란 말이 전혀 없다. 왜 그럴까? 무엇이 왜 ‘왜곡’인지 자체가 너무나 모호하며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가 죄가 되는지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게, 명확하게 법에 규정되어 있어야 하며, 국가는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거나 형법을 집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의 명확성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법치 원리의 핵심 요소다. ‘왜곡’을 처벌하겠다고 하는 순간 이러한 원칙이 흔들릴뿐더러 역으로 왜곡에 취약해진다. 법리적으로 보면 그렇고, 현실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수사나 판결이 ‘법 왜곡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법 왜곡죄’ 추진에 법조계와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무부와 법원행정처는 “‘고의로 왜곡’, ‘범죄사실을 묵인’, ‘공소권을 현저히 남용’ 등 처벌 대상이 추상적”이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헌법이 인정하는 법관의 재량과 법 왜곡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국법원장회의도 해당 제안이 위헌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점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이 12월 11일 정청래 대표를 만나, ‘법 왜곡죄’ 추진은 “정말 부끄러운 문명국의 수치”이며 “헌법의 기본 원리나 정신을 이탈한 정치는 폭력”이라고 작심 비판을 한 일이다. 이 위원장은 사회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관용과 진실, ‘자제’에 입각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려면 정치권이 “헌법이 마련해 준 궤도”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 공수처법 개정
공수처법 개정안은 대법원장·대법관·검찰총장·판사·검사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모든 범죄’를 공수처의 수사 범위로 확대했다. 현행법이 뇌물 수수, 직권남용 등 직무 관련 8개 범죄로만 수사를 제한한 것과 대비된다.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발의 시점이 민주당이 ‘대선 개입 의혹’ 긴급 청문회를 추진하며 조 대법원장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던 9월 22일이라는 점을 보아도, 조 대법원장을 겨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9월 22일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과 관련한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를 기습적으로 상정·의결했다. 대다수 언론이 명확한 근거 없이 대법원장 청문회를 추진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크게 비판했으나, 정청래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고 발언했다. 조 대법원장이 9월 30일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자, 국정감사 첫날인 10월 13일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관례대로 인사말 뒤 퇴장하려는 조 대법원장을 가로막고 질의를 강행했다. 조 대법원장은 “삼권분립 법치국가에서 재판사항에 대해 법관을 감사나 청문의 대상으로 삼아 증언대에 세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발언한 뒤 90분간 침묵했다. 이틀 뒤 법사위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이 5월 당시 충분한 검토 없이 이른바 ‘정치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닌지 확인하겠다며 현장 검증에까지 나섰다.
조 대법원장을 차치하고서라도, 대법원장, 대법관, 검찰총장과 모든 판사와 검사의 모든 행위가 수사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 법안은 법조인을 정치적으로 압박하여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당초 공수처는 공수처 웹사이트에 소개된 대로,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와 반부패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통하여 공직사회 부패 척결”을 공식 명분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실제 출범에는 기소권을 독점해 온 검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맡아 검찰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컸다. 여기에 비춰보면, 공수처의 수사 대상과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넓히는 것은 본래 출범 명분에서 벗어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에 권력이 집중되어 문제가 생긴다며 공수처를 만들고 검찰청을 폐지했으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공수처의 권한을 크게 키우는 것도 모순이다.
세간에서는 공수처의 ‘무능’도 공수처법 개정안을 우려하는 까닭 중 하나다. 출범 뒤 1년간 공수처가 기소·구속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공수처는 예산 776억 원을 썼으나, 구속영장 8건을 청구해 그중 2건만 발부받고, 6건을 기소한 것이 실적의 전부다. 출범까지 엄청났던 정치적 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공수처가 유명무실하다보니,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야 모두 공수처의 실적 부진을 질타했다. 비상계엄 이후 내란죄 수사 초기에 일어난 검경과 공수처의 수사경쟁 과열,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공수처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겪으며 공수처의 존재 의의에 회의적인 반응은 더 커졌다.
그런데 민주당이 시도하는 사법 체계의 변화는 이 세 법안만이 아니다.
○ 민주당의 ‘검찰개혁’과 검사 압박
먼저, 2019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시 비리, 사모펀드 의혹(‘조국 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이후로 민주당이 줄기차게 외쳐온 ‘검찰개혁’은 올해 9월 26일 민주당의 주도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10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며 실현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존재한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이 담당하던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하여 각각 신설될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과 법무부 산하 공소청에 맡기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큰 형사사법체계의 변화이자 문재인 정부부터 추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실현이지만, 내년 10월 2일 법 시행을 1년 앞두고 공소청과 중수청의 구체적 권한 배분, 특히 공소청에 보완수사권(또는 보완수사요구권)을 부여할지, 전건송치 제도를 부활시킬지 등 쟁점이 남아 있다. (올해 전부 실현되지 않은 ‘검수완박’론자들의 수사권 관련 구상이나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세계적 표준이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은 10월 14일 《사회운동포커스》의 “검찰개혁의 역설: 행정부 권력 집중과 경찰사법으로 나아가는가?”를 참고하라.)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불송치 사건과 이의신청 건수가 대폭 늘어난 현실의 문제가 있다. 모든 사건이 자동으로 검찰에 넘어가는 ‘전건송치’ 제도가 폐지되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얻어, 피해자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해 검사의 판단을 받으려면 직접 이의신청을 제기해야 한다. 그에 따라 경찰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지만 법리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변호사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이의신청하는 사례와,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시민이 이의신청을 포기하는 사례 양자가 늘어났다. 형사사법체계를 통해 시민이 권리와 피해를 구제받는 일이 전보다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문재인-이재명 정부가 이와 같이 시민의 부담을 강화하며 추진한 검찰개혁의 방향은 행정부와 집권세력이 수사권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올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결국 1차 수사기관(경찰·국가수사본부·중대범죄수사청)을 행정안전부 산하로 집중시키고, 법무부 소속이나 법관과 유사하게 사법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 때문에 ‘준사법기관’으로 불려온 검사와 달리, 행정력에 속하는 경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국가의 수사가 소위 ‘정권 입맛’에 맞게 굴러가기 더 용이해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대장동 사건 재판 항소 포기 이후 검사들에 대한 정권과 여당의 압박도 도를 넘고 있다. 《시사IN》은 항소 포기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을 “항명”으로 규정한 민주당이 “검찰 분쇄에 가까운 진압 작업에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하여 검찰을 통제하려다 정권을 빼앗긴 것을 교훈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7월 1일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뒤 검찰총장을 아예 지명하지 않고 있다. 이미 역대 최장 기간의 검찰총장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검찰청 폐지가 확정된 만큼 내년 10월 검찰청 폐지까지 공석으로 둘 가능성이 크다.
대신 여당과 정부가 직접 검찰을 통제하려 시도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 재판 항소 포기 사태 일주일 뒤인 11월 14일 민주당은 ‘검사징계법 폐지법률안’과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일명 ‘검사파면법’). 검사도 일반 공무원처럼 공무원 징계령으로 처벌받도록 하는 내용으로, 검찰총장을 포함한 모든 검사를 정부가 파면·징계할 수 있게 된다. 국회의 탄핵소추를 거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는 기존의 검사 파면 절차도 윤석열 정권 들어 민주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시도하여 큰 논란이 되었으나, 여섯 건 전부 헌재에서 기각되었다. 민주당은 이제는 기각 판결의 부담 없이 검사를 파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법이 검사의 파면을 일반 공무원과 달리 어렵게 했던 취지는 수사 공정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관과 같은 신분보장을 하는 것이었다. 검사의 독립성이 무너지면 ‘정치검사’가 제도화된다고 우려한 것이다. 《시사IN》이 인용한 인터뷰도 다음과 같이 예상한다. “(검사파면법 통과는) 사실상 검찰총장부터 법무부 장관의 명실상부한 부하가 된다는 뜻이다. 이 법안이 없어도 검찰총장 대행이 ‘정부의 단순 의견 제시’에 대통령이 연계된 사건 재판 항소를 포기하는 일까지 생겼는데, 검사 파면법이 통과되면 목숨줄을 쥔 장관 앞에서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검찰총장, 검사가 얼마나 되겠나. 정치검사를 더 양산하게 될 것이다.” 《시사IN》은 “검찰개혁의 초기 아이디어, 검찰의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정권이 검찰을 입맛대로 굴리라는 말이 아니라, 민주정의 작동 원리에 구속시키라는 말이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검사파면법 발의 당시 법안을 연내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12월 현재 민주당의 우선순위가 내란특별재판부에 있고 ‘통일교 게이트’도 불거진 상황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미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이 좌천·강등되고 있다.
12월 11일 법무부는 대장동 항소 포기의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성명서를 주도한 박혁수 대구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사실상 좌천했다. 함께 주도한 정유미 검사장은 평검사로 강등시켰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가 “기강 확립 및 분위기 쇄신을 위한 것”이라며 “항명”에 대한 징계임을 숨기지 않았다. 《한겨레》는 반대로 신임 수원·광주·대구·부산지검장 인사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에 항의 의견을 주도한 검사들을 밀어내고 문재인 정부 당시 주요 보직에 있었던 검사들로 물갈이한 것”이라는 평가를 보도했다.
○ 민주당의 ‘사법개혁’
다음으로는 10월 20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발표한 ‘6대 사법개혁 의제’, 즉 대법관 증원,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평가제도 변경,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재판소원 도입을 살펴보자. 이는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최종 확정하여 발표한 5개 사법개혁안에, 정 대표가 당 지도부 안으로 별도 발의하겠다고 한 재판소원을 더한 것이다. 사개특위는 8월 취임한 정청래 대표의 공약인 ‘사법개혁 완수’를 위해 8월 12일 출범했다.
① 대법관 증원
사개특위는 대법관을 1년에 4명씩 3년간 증원하여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늘어난 대법관으로 인해 대법원은 6개의 소부와 2개의 연합부, 즉 실질적인 전원합의체(대법정)가 2개 구성되는 구조로 개편된다.
그런데 현재 대법관들의 임기를 고려하면 이 대통령 임기 중에 전체 26명 중 22명이 임명되게 된다. 대법관 수에 비해 업무가 과중하여 재판이 지연되므로 증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법조계에도 형성돼 있다. 다만, 법원행정처, 대법원, 전국법원장회의 등은 급격한 증원은 ‘코드 인사’로 사법부를 정치권에 예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장기간에 걸친 순차적 증원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밝혔다. 두 전원합의체의 의견이 엇갈려 말 그대로 ‘전원합의’라는 의미가 사라지고 의견 충돌이 벌어지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②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수를 현 10명에서 12명으로 늘리고, 법원행정처장을 위원에서 제외하는 대신 헌법재판소 사무처장과 지방변호사회장 과반수가 추천하는 변호사 1명을 새로 포함하는 안이다. 기존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 몫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천하는 법관’ 2명(여성 1명 포함)으로 변경하고, 대법원장이 임명하던 추천위원장은 위원 간 호선으로 뽑게 한다.
③ 법관평가제도·법관인사위원회 변경
법관 근무 성적 평가 중 ‘자질 평정’ 부분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의 법관 평가 결과를 반영하는 안이다. 법관 인사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고 대법원장에게 자문하는 대법원 소속 위원회인 법관인사위원회 구성도 개편해, 기존에 대법원장이 임명하던 법관 3명을 대법원장 추천 1인, 전국법원장회의 추천 1인, 전국법관회의 추천 1인으로 변경한다. 아울러 변협 추천 몫 2명 중 1명은 지방변호사회 추천으로 하도록 했다.
④ 하급심(1·2심) 형사 판결문 공개 확대
형사사건 1심, 2심 판결문을 확정 전이라도 전면적으로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대법원 의견을 반영해 예외 조항을 두고, 2000년 8월 1일 이후 선고된 판결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한다.
⑤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관련자를 불러 대면 심문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한다. 그럼에도 수사의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문 여부를 결정할 때 수사기관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포함한다.
‘5대 사법개혁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청래 대표가 강조한 재판소원처럼 민주당 내에서 논의된 안들도 있다.
⑥ 재판소원 도입
재판소원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 헌법·절차문제를 헌법재판소에 묻는 제도다. 헌법재판소가 인용 결정을 내리면 해당 판결은 취소되고 원심 법원이 다시 재판해야 한다. 백혜련 사개특위 위원장은 재판소원은 대법관 증원보다 더 큰 어젠다라 사개특위 사법개혁안에서 빼고 별도 법안을 발의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현재의 3심(1심, 2심, 대법원 상고심) 재판 구조에 더해 4번째 재판 단계를 더하는 사실상 ‘4심제’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소원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정한 헌법에 어긋나므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⑦ 법원행정처 폐지·사법행정위원회 신설
11월 3일 민주당은 “재판·인사·예산·행정 등 모든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는 민주적 통제 절차가 필요하다”며 당내 ‘사법불신 극복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단장을 맡은 전현희 최고위원은 “대법원장을 최정점으로 한 사법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본질”이라며 “사법행정과 예산, 그리고 판사 3,584명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를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고 밝혔다.
11월 25일 TF가 발표한 초안은 법원의 예산·인사 등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위원장 1명, 상임위원 2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가 그 기능을 대신하게 했다. 법관의 전보 인사도 사법행정위가 의결한 안건을 대법원장이 결정하는 구조로 바꿨다. 13명 중 법관은 4~6명인 반면, 비법관은 7~9명이며 비법관도 위원장이 될 수 있어, 비법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중앙일보》는 이를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대대적 개편으로 평가했다. “판사는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는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의 최종 권한을 갖고 실무를 판사 조직인 법원행정처가 맡는 현 제도를 뿌리째 뒤흔드는 개편이라서다.
⑧ 영장심사 국민참여제 도입
10월 27일 민주당 박균택 의원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법원과 판검사들이 여전하다면 결국은 법을 통해 개혁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한덕수, 박성재 등 증거인멸 염려가 매우 큰 내란범죄 주요가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있다”며 국민참여 영장심사법을 발의했다. 구속영장심사위원에 위촉된 시민대표들이 법관의 구속 전 심문절차 등에 참여해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하며, 심사위원은 전국 지방법원 및 지원 소재지 인근의 법정단체 및 공공협의체 등에서 추천한다는 내용이다.
⑨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
대통령 재임 중엔 형사재판을 중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대통령 재판중지법’은 5월 1일 대법원이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바로 다음 날 발의되었고 같은 달 7일엔 국회 법사위까지 통과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여론 악화를 의식한 이 후보가 만류했고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관련 재판이 모두 연기되면서 논의도 중단되었다.
그런데 10월 20일 국정감사에서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재판 재개가)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발언하자, 김용민 의원, 김어준 씨 등 민주당 강경파가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에 11월 2일 정청래 대표는 재판중지법을 11월 내로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다음 날인 3일 대통령실이 반대의견을 내자 하루 만에 철회했다.
정리하면, ▲ 대법관 증원, ▲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 법관평가제도·법관인사위원회 변경, ▲ 하급심(1·2심) 형사 판결문 공개 확대, ▲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 재판소원 도입, ▲ 법원행정처 폐지·사법행정위원회 신설, ▲ 영장 국민참여제 도입, ▲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이라는 이 다양한 안들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한 마디로, 사법부의 기존 권한은 약화하고 사법부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은 강화하는 것이다.
민주당 안대로면 대법원장의 인사권은 대폭 줄어든다. 민주당식 사법개혁에 반대해 온 법원행정처는 아예 폐지하려 한다. 반면, 대법관은 전체 26명 중 22명이 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으로 채워지게 된다. 민주당 사개특위 측은 “대법관추천위원회나 법관인사위원회에 국회에 추천한 사람은 없으니 오해 없길 바란다”고 주장하나, 각종 위원회에 새로이 포함될 외부인사에 정부와 여당이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방안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민주당은 사개특위 사법개혁안과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하는 것에 대법원장의 힘을 빼는 목적이 있다고 직접 밝혔다.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맹공을 펼쳤으나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지 않자 나온 방안인 것이다.
확정판결이 아닌 하급심(1·2심) 판결문을 쉽게 열람하게 하는 것은 사생활을 침해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법무부조차 이러한 우려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사법 투명성’을 명분으로 이를 강경히 추진하는 것은 민주당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활용해 법관의 판결 성향이나 양형 등을 분석해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며 “자신에게 유리한 법관을 찾아 소를 제기하는 ‘포럼쇼핑’이나 전관예우 등이 오히려 횡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문 공개는 필연적으로 판결에 대한 여론과 정치권의 압력을 강화하여, 판사의 재판 독립성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곳곳에서 나온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역시 정권과 여당에 불리한 수사를 지연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인권보호를 위해 압수수색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민주당은 동시에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를 너무 안 하니까 국민이 참여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소원 추진은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목적이 명백하며, 이 대통령 본인은 만류했다고 하지만, 대통령 재판방지법은 노골적인 ‘방탄’ 입법이다.
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성향의 법관들까지 재판 독립성 침해 우려가 크다는 의견을 표하자, 12월 중순 현재 민주당은 법왜곡죄 신설 등 일부는 연내 처리 방침에서 물러난 상태다. 그러나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대법관 증원, 법관평가제 도입 등은 여전히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이러한 법안을 추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재 이재명 대통령이나 3대 특검과 관련된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들에게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비상계엄 이후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 면에서 불신을 자초했다고 주장하며,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을 옹호한다. 이들은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계엄 선포 직후 열린 대법원 간부회의,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 등을 근거로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부장판사,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고발하기도 했지만, 12월 14일 내란 특검은 이들에게 계엄에 동조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현 사법부 구성원 개개인의 실책이 있냐 없냐를 떠나,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며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정의 핵심 요소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이재명 정부의 ‘내란 청산’
그런데 ‘내란 청산’에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행정부도 나서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제안으로 행정부 내에서 행정조사를 병행하여 내란을 청산하겠다며 추진한 비상설 기구인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관련한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다.
①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
10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내란은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가담 정도가 극히 경미하더라도 가담·부역을 한 것이 사실이면 (군 인사에서) 승진시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발언했다. 11월 11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공무원 중에서도 “내란에 가담한 사람이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등 문제가 제기됐다”며 공무원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하는 TF를 제안하면서, 열흘 뒤 ‘헌법존중 정부혁신 TF’가 출범했다. 내년 2월까지 공무원 75만 명을 조사하기 위해 25개 부처를 포함한 49개 중앙행정기관에 각각 10~50여 명의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TF로, 전체 인원이 600명이 넘는다.
이로 인해, 단 몇 시간 지속된 비상계엄에 대해 ‘경미한 가담’ 여부까지 밝히기 위해 공무원 75만 명을 조사한다는 것이 지나친 공무원 압박이며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7월 3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직업 공무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 국민의 주권 의지를 대행하는 지휘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의무다. 그것이 법률상 의무일 뿐 아니라 그렇게 훈련되어 있다”고 말했던 바도 있었다.
국무총리실이 TF 추진계획에서 공직자의 휴대전화도 자발적으로 제출을 유도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도 고려한다고 발표하자, ‘헌법존중’ TF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TF가 국가 권력을 남용하여 개인의 권리를 심각히 침해하는 위헌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자발적인 제출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사상 불이익과 수사 위협을 무기로 법원 영장을 받지 않고 헌법상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이를 “당연한 일”이라고 옹호하는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때는 감사원의 공무원 휴대폰 조사를 “사찰”, “헌법상 영장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TF가 총리실과 각 기관에 설치된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통해 익명 투서를 받기로 한 것도, 공직사회에 지나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음해성 가짜 제보가 난무하는 상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렇게 언뜻 들어도 반헌법적이라는 비판이 거셀 것이 뻔한 조치들을 TF가 무리하게, 비상계엄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시도하는 것은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11월 7일)와 법무부, 대통령실의 개입이 크게 논란이 된 상황에서, 국면을 전환하고 ‘내란 청산’의 대상을 넓히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더해졌다.
②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
당선 직후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을 의식하며 검찰개혁 속도를 두고 정청래 대표와 ‘명청 갈등’을 빚기도 하던 것과 달리,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과감한 발언을 연일 내놓으며 논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연말에는 ‘명청 갈등’이란 표현은 민주당 내 파벌 다툼의 맥락으로만 쓰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업무보고 ‘책갈피 달러’ 언급 논란,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 발언 논란, 이 대통령이 직접 백해룡 경정을 파견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수사가 검경 합동수사단에서 사실무근으로 판명된 일과 같이 다른 주제에서 일으킨 논란은 빼고, 직접적으로 ‘내란 청산’과 연관된 발언들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다. “(쿠데타 등은) 나치 전범 처리하듯 영원히 살아있는 한 형사처벌해야 한다”(12월 2일), “일본처럼 종교재단(통일교) 해산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검토하라”(12월 2일), “친위 쿠데타 가담자들은 반드시 심판받는 것이 정의로운 통합”(12월 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관해) 국민 여론에 따라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입법부(민주당)가 잘 행사할 것”(12월 3일) 등이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은 이미 있는 갈등을 더 키웠다. 비상계엄 1주년에 맞춰 내놓은 “정의로운 통합”은 ‘통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당선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으며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고,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겠다고 약속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기조로, ‘내란 청산’을 다른 말로 바꾼 것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통일교와 정치권의 유착, 비리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종교단체 해산의 주체가 될 수 없는데도 대통령이 나서서 해산을 검토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는 것은 문제적이라고 여러 언론이 지적했다. 더구나 이로 인해 “대통령이 직접 종교 단체 해산을 위협하며 정권과 민주당에 불리한 증언을 틀어막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 관련 추가 폭로를 하겠다던 당초 발언과 달리 12월 10일 결심공판에서 윤 전 본부장이 말을 아끼자, 이러한 의혹과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내란특별재판부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은 이미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헌법에 ‘판사는 대법관이 임명한다’고 돼 있는 것에 어긋나는 게 아니면 입법부를 통한 국민의 주권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도 사법부 마음대로 하자는 뜻이 전혀 아니다. 행정, 입법, 사법 가릴 것 없이 국민의 주권 의지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인민주권)은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 마음에 들지 않을 소지가 있으니 국민 마음에 들 판결을 할 별도의 재판부를 세울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개념이 아니다. 자신도 법조인 출신인 이 대통령이 이를 정말 모를 리는 없다. ‘국민의 주권 의지’라고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치는 것처럼(49.42%) 국민의 뜻은 단일하지 않으며 반드시 이 대통령의 뜻과 같지도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점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가? 본디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점점 무소불위의 자세로 나아가기 쉽고, 그러다 보면 오히려 실패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한국헌정사에서 대부분의 대통령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것에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짚었다.
야당 대표 시절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각종 의혹을 맹렬히 공격하던 이재명 대통령은 정작 취임 6개월이 넘도록 대통령 가족과 측근 비리를 예방하기 위한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12월 2일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중앙대 동문의 인사 청탁 메시지를 보내고 김 비서관이 “훈식이 형과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사건이 대통령실의 인사전횡 논란에 큰 파문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김 비서관이 사퇴하는 것을 끝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사진] 대통령비서실 인사청탁 논란
2025년 12월 2일,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비서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인사청탁을 하고, 김 비서관이 “훈식이 형(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랑 현지 누나(김현지 제1부속실장)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재명 대통령 본인과 문 의원, 김 비서관을 비롯한 ‘중앙대 라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공직도 아닌 민간단체장까지 대상이 될 정도면 이재명 정부 내에서 부정한 인사청탁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오가는 것인지, 공식적으로 인사에 관여할 수 없는 부속실장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김현지 비선실세론’이 사실이 아닌지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출처: 《뉴스핌》)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는 조치나 권력구조 개편 개헌 논의는 이재명 정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여러 차례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약속했다. 물론 이러한 약속들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인식을 말로라도 명확히 드러낸 적 없다. 반대로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개헌 문제를 그렇게 시급하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에 직결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거나,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여대야소로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통령이 제왕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강경하고 도발적인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이재명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미 첫 번째 대선 도전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거침없는 언행’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표적 삼아 공격하거나,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며 이들을 통제할 방안을 찾고, 자신의 권한 이상의 문제에 개입하며, 극단적 해결책을 내놓는 자신의 모습을 ‘민의를 받드는 불도저’라는 식으로 미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대표가 된 뒤 윤석열 정부와의 대결이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등 외교 사안을 극단으로 몰고 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는 자신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에도 문재인 정부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징계를 강행했다. 이 사건은 정치 경험이 없던 윤석열 총장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이미지를 얻어 일약에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한 직접적 계기였다. 즉, 당시 검찰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대응에 대중적 반발이 그만큼 컸다. 애초에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이후 최초로, 고등검사장도 거치지 않은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된 것도 그를 이용해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문재인 대통령의 ‘파격 인사’ 탓이었다.
3. 주요 정당의 지방선거 대응 태세
마지막으로, 주요 정당의 2026년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응 태세를 확인한다. 총론에서 보았듯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아직 당내 리더십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민주당은 ‘내란 청산’과 포퓰리즘적 재정안을 내세워 선거에 대응하고, 국민의힘은 그런 민주당을 막을 수 없는 퇴행적 행태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리더십이 확고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정의당, 진보당은 실질적인 지방선거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 더불어민주당
12월 현재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좌우할 당권을 다투는 친명파와 친청파의 ‘명청 갈등’이 본격화했다. 10월 27일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작년 총선 때 영입한 유동철 수영구 지역위원장을 부산시당 위원장 경선 후보에서 컷오프(경선 배제)하여 친명계의 반발을 샀다. 유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청래 대표가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밝힌 ‘억울한 컷오프 없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거짓이었냐”고 따지며, 친청계인 문정복 의원이 맡았던 지도부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면접을 문제 삼았다.
정청래 대표의 더 큰 그림은 대의원 표에 일반 당원 표의 20배의 가중치를 주는 현 당헌을 ‘당원 1인 1표제’로 개정하는 것이었다. 명분은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여 ‘당원주권정당’을 실현하는 것이었지만, 8월 당대표 경선에서 드러났듯 대의원보다 일반 당원(권리당원)층에서 지지가 더 탄탄한 정 대표가 당권을 굳히기 위한 술책이라는 점이 명백했다. 당내에서 기존 당원이 아닌 강성 팬덤의 영향력을 강화하여 당권을 잡는 것은 당대표를 거쳐 대권까지 잡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미 증명한 성공 공식이다.
당대표 선거 당시 이재명 대통령 지지층은 ‘명심’이 찍은 박찬대를 밀었으나, 친여 유튜버 김어준 지지층은 정청래 후보를 밀었는데, 그 덕분에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정 대표는 61.74%의 득표율로 박찬대 후보의 37.35%를 한참 앞섰으나, 대의원 표만 놓고 보면 46.91% 대 53.09%로 뒤졌다. 취임 뒤 정 대표는 김어준 씨와 더 밀착하여, 김 씨가 유튜브에서 대통령 재판중지법,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등의 사안을 던져 민주당 강경층 여론을 자극하면, 이를 당 차원에서 받아안는 식으로 움직였다. 이에 대한 반발이 당내에서도 나오자,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가 “민주당 지지층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정 대표가 당헌 개정의 근거로 삼은 당내 여론조사에 참여한 당원은 전체의 16.81%에 그쳤으며, 투표 자격도 갑작스레 기존대로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권리당원이 아닌 ‘10월 한 달’ 권리당원에게까지 주어지며 논란이 되었지만, 정 대표는 “너무 급하다”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12월 5일 당헌 개정안 표결에서 재적 중앙위원 총 596명 중 271명만 찬성하며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당원 1인 1표제’는 무산되었다. 이로써 정 대표의 리더십이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내년 1월 11일로 예정된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친명 대 친청 구도를 선명히 드러내며 정 대표 체제에 대한 재신임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정 대표는 12월 14일 당원의 날 행사에서 “우리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이재명 대통령 보유 국가”라며 ‘이재명’(17회)을 ‘민주당’(8회)보다 더 많이 언급하면서 이러한 구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부산시당 위원장 선거의 악연이 있는 유동철 수영구 지역위원장과 문정복 조직사무부총장이 각각 최고위원에 출마하면서, 명·청 구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유 위원장은 출마를 선언하며 다시 한번 정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고, 문 총장은 그런 유 위원장을 겨냥해 취재진 앞에서 “천둥벌거숭이”라거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의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변호인 출신인 이건태 의원은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하며 “당이 정부와 엇박자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외에도 친청파인 이성윤 의원과 친명파인 강득군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며, 양측 주자들이 등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올해 친청파가 ‘사법개혁’에서 더 강경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양측의 노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당권 경쟁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낳는 차이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방선거의 주요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과 부산을 보면, 서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약진하고 있다. 정 청장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현재 유일한 3선 구청장이다. 이전까지 특별히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지 않던 정 청장은 11월 들어 ‘행정가’ 이미지로 급부상하여 차기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12월 8일 SNS에 정 구청장이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정원오 구청장이 일을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저는 명함도 못 내밀 듯”라고 콕 집어 칭찬했다. 여기에 힘입어서인지, 리서치뷰가 《KPI뉴스》의 의뢰로 12월 12~13일 진행한 차기 서울시장 선거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정원오 성동구청장(45.2%)이 오세훈 현 시장(38.1%)을 오차범위 밖 격차로 앞선다는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 후보군 중에서도 가장 앞선 결과였다.
12월 14일 《부산일보》는 전재수 장관이 ‘통일교 게이트’에 휘말려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지역 민주당은 전 전 장관을 포기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산시장 선거를 채 반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전 전 장관을 대체할 만한 승산 있는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전 전 장관은 ‘통일교 게이트’ 직전까지 부산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현역인 박형준 부산시장과 접전을 벌여왔다. 《부산일보》는 시장 등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기를 잡아야 구청장이나 시의원 등 기타 선거에서도 승산이 높다는 점에서, 부산지역 민주당이 전 전 장관 지키기로 똘똘 뭉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물론 이는 경찰 수사에서 전 전 장관이 혐의를 벗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 국민의힘
비상계엄 1주년에 사과문을 낸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송언석 원내대표와 달리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은 장동혁 대표는 12월 6일 보수성향 유튜브에 출연하여 “저만의 타임 스케줄과 계획”이 있다며 “앞으로 꿋꿋하게 나아가겠다”고 했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기조로 강성 지지층 단속을 우선한 뒤, 내년에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의문이 잇따른다. 공개적으로 장 대표에게 ‘노선 수정’을 요구했던 초·재선 의원들과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측의 불만뿐만 아니라, 12월 5일 ‘친윤’을 넘어 ‘찐윤(진짜 윤석열 측근)’으로까지 불렸던 윤한홍 의원도 당 회의 자리에서 당이 비상계엄에 대해 잘못했다는 인식을 아직도 갖고 있지 않으니 아무리 이재명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백약이 무효’ 상태라고 공개 비판했다. 보수 언론들도 이러한 목소리가 상식적인 국민의 생각에 가까우니, 비상계엄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전제로 중도층 잡기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연일 촉구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당 구조는 장동혁 대표, 나경원 의원과 같은 강경파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에 당비를 내는 당원 수는 올해 10~11월 두 달 동안 18만 명 넘게 늘어났다. 12월에 당비를 새로 납부한 당원까지 합치면 총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보수 정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100만 책임당원’은 장 대표가 당원권 확대를 공언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나경원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국민의힘 지방선거총괄기획단은 경선에서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50% 대 50%’에서 ‘70% 대 30%’로 바꾸기로 했다. 새롭게 대거 가입한 당원들이 경선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인데, 이는 비상계엄 이후로 ‘민심’과 괴리를 보인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의 ‘당심’을 희석하기보다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 시장으로 꼽힌다. 4선 서울시장이며 대선후보 물망에도 오른 바 있는 오 시장을 대체할 경쟁력 있는 후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측은 최근 기세가 좋은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민주당 후보가 되더라도 오 시장과는 여전히 체급이 많이 차이 난다고 본다.
전재수 장관이 사퇴하며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범여권 부산시장 후보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중도층이 승부처인 부산에 ‘조국 사태’의 조국이 나오면 “땡큐”라는 반응이다. 대신,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전재수 전 장관이 사라지면, 현역 박형준 시장이 유력후보로 거론되던 부산시장 경선에 도전할 후보가 많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 조국혁신당
조국혁신당은 2024년 3월 3일 창당 뒤 약 한 달 만인 4월 10일 총선에서 ‘지민비조(지역구 투표는 민주당, 비례 투표는 조국혁신당)’ 전략으로 비례대표에서 24.25% 득표에 12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2~4%의 박스권 지지율에 머물렀다. 올해 광복절 특별 사면·복권으로 조국혁신당의 상징과 같은 조국 전 당대표가 출소했고, 11월 23일 전국당원대회에서 98.6%의 찬성률로 다시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5월부터 공론화된 당내 성비위 문제와 그에 대한 당 지도부의 대응 논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민주당과의 차별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근본적 한계로 인해 11월 한국갤럽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도 지지율 2%에 그쳤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국혁신당의 지방선거 구상은 조국 대표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정치적 메기” 전략이다. 이른바 ‘민주진보진영’, 즉 범여권의 틀 안에서 국민의힘을 적대시하고 이재명 정부와 협력하되,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2석씩 “나눠먹는” 다인(多人) 선거구나, 무투표 당선이 허다할 정도로 사실상 민주당이 맡아놓은 표밭인 호남 지역에서 경쟁을 활성화하여 지방정치가 좀 더 청렴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1월 4일 페이스북에 “조국혁신당은 광주 포함 전국에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정치적 메기’가 되겠다”고 밝히며, 서울시 관악구 기초의원 선거구와 광주시 시의원 선거의 예시를 들었다.
관악구 기초의원 선거구 중 3인을 뽑는 다인 선거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2인, 국민의힘 1인이 뽑혔는데, 이곳은 범여권 강세 지역이므로 여기에 조국혁신당 후보가 출마하면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 시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비례의원을 빼고 20명 중 11명이 민주당밖에 출마하지 않아 무투표로 당선되었는데, 이와 같이 “경쟁 자체가 없으니 공약을 마련하거나 이행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이는 올바른 지방정치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국의 모든 기초의원 다인 선거구에 후보를 내어 당의 뿌리를 전국에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이후로도 민주당과의 합당설에 선을 그으며 ‘정치적 메기’ 전략을 강조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도의원 22명이 무투표로 당선된 전라북도 도의회 등 호남 지역의 여러 사례를 거론했다.
민주당은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정치적 메기” 전략은 현실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이전 이름)에서 탈당한 안철수 의원와 호남계 의원들이 국민의당을 만들고 호남을 타겟으로 비슷한 전략(“1번과 2번을 일하게 하려면 3번 국민의당을 찍어달라”는 구호)을 취했을 때, 호남 지역은 그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밀어준 전력이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북도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차지하고, 비례 득표율도 선거구 41개 중 39개에서 1위였다. 강한 범여권 지지 분위기와 별개로, 민주당 소속만 달고 나오면 당선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광범위한 덕분이었다.
조국혁신당 자체의 사례만 보더라도, 2024년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호남 지역 평균 약 4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해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바가 있다. 올해 4월 2일 전남 담양군수 재선거에서 정철원 조국혁신당 후보가 51.82%를 얻어 민주당 후보(48.17%)를 꺾고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도 배출했다.
또한, 지난해 총선의 광주광역시 8개 선거구를 분석하면 조국혁신당의 득표율과 더불어민주연합·녹색정의당 득표율이 반비례하며, 이전 총선에서 정의당, 녹색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높은 투표구일수록 조국혁신당의 득표율에 긍정적인 영향이 드러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와 같이 조국혁신당이 진보정당 지지자들을 흡수하는 현상이 내년 지방선거에도 되풀이된다면, 광주광역시 다인선거구뿐만 아니라 예시로 든 관악구와 같이 여러 진보정당도 전략적으로 출마해온 곳에서 조국혁신당 후보의 승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양당 중심 지방선거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략과 별개로, 당의 노선과 정책은 지난해보다 더 애매해졌다. 지난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은 “3년은 너무 길다”, “검찰독재 완전 종식” 등 민주당 주류보다 강경한 구호를 채택했고, 이후에도 “윤석열 탄핵의 길을 여는 쇄빙선” 역할을 자임하며 범여권 지지층에 호소했다.
그러나 올해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국민의힘이 계속 지리멸렬한 모습과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그런 역할의 필요성이 크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청와대나 당내의 우려까지 불사하는 강경한 태도로 직접 검찰·사법개혁이나 여야 대립 구도를 주도했다. 이에 조 대표는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제시하여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당 지지율을 1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11월 23일 당대표 취임 일성에서 내년 지방선거와 지방분권 개헌 투표 동시 진행, 행정수도 이전, 토지공개념 입법화 등 사회권 정책 등을 주장했으나 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높지 않다.
올해 4월 대선 직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4개 야당은 국회 교섭단체 기준 완화(현행 20인 이상)와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에 합의했지만,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조 대표는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계속 회피한다면, 야당들과 함께 정치개혁 단일 의제로 ‘원 포인트 국회 공동 교섭단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 차원의 전략과 별개로, 유력 정치인으로서 조국 대표 개인의 전망도 관심을 모은다. 조 대표 본인은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출마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았으나, 민주당이 조 대표로의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는 한 나오더라도 당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등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되는데, 조국혁신당의 원내 존재감을 키우려면 조 대표가 지자체장보다 국회의원이 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당내에 있다는 보도도 있다.
○ 개혁신당
마찬가지로 이준석 당대표 개인의 상징성과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큰 개혁신당도 2~4%의 지지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것도 20대, 30대 남성의 지지가 견인한 결과로, 총선과 대선 득표를 보았을 때 이들을 제외하면 확장력이 모자란다.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지난 총선에서는 20대, 30대 남성층에서 각각 16.7%와 9.5%를, 올해 대선에서는 각각 37.2%, 25.8%를 득표했다.) 총선에서는 이준석 당대표가 경기도 화성시 을에서 경합 끝에 당선되는 성과를 거뒀으나, 다른 지역구 출마자는 전부 낙선하여 기존 3석의 지역구 의석이 1석으로 줄어들었다. 비례 득표율도 기대에 못 미치는 3.6%에 그쳐 비례 2석(이주영, 천하람)을 얻었다. 대선 득표는 총선 비례 득표수의 세 배 가까이 늘어나 8.34% 득표를 기록했으나, 원래 목표했던 10%대 득표에 실패했다.
전국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은 다른 원내 소수정당인 조국혁신당이나 진보당도 마찬가지이지만, 개혁신당은 스스로 여러 차례 인정했듯 지역 조직이 미약하고 지역에서 후보로 내세울 인지도·경력이 있는 인사가 부족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총선 이후 개혁신당은 주로 각 의원의 개인기, 즉 각종 이슈와 정치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논평 개진과 방송 출연 활동으로 존재감을 유지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과 단절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이 두드러졌으며, 이는 대선에도 반영되었다.
이준석 대표, 천하람 원내대표가 여러 언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개혁신당은 지방선거 때도 총선, 대선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과의 연대연합을 거부하는 독자 노선을 고수하려 한다. 세부적으로는 ‘물량 공세’식 후보 출마로 지방선거 당선자 최대화를 노리기보단, 지선에서 청년 밀집지역 12개 정도, 지선과 동시에 진행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2~3개 정도의 전략 지역을 설정해서 집중하고, 선거운동을 통해 전국 지지율 상승과 (현 12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당원 증가를 꾀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소수정당의 인력난과 자금난을 메꾸는 ‘고효율’ 대안으로는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조기 후보 발굴과 공천 과정을 진행하여 유권자에게 인지도를 키우는 방안과, 후보자 교육과 공천 심사에 활용할 인공지능(AI) 기반 선거 자동화 시스템을 내세운다.
그런데 개혁신당의 독자 노선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실책을 배경으로 한다. 국민의힘 소속이나 극단적 세력과 선을 그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선에서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한다”고 밝히자, 이 대표가 “오 시장과는 거의 한 팀”이라고 화답한 것처럼, 개혁신당이 내세우는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을 국민의힘 후보와는 부분적으로 연대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분석들이 있다. 또한 12월에 들어 비상계엄 1주년 사과 논란으로 국민의힘 내 대립 구도가 커졌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가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당원게시판 논란’의 중간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한 전 대표를 압박하자 친한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개혁신당과 국민의힘 간 선거연대의 가능성도 이러한 당내 대결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준석 대표의 거취도 관심의 대상인데, 이 대표는 11월 20일 SBS 라디오 ‘정치쇼’에서 “(경기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등판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지역구인) 동탄 주민들이 원하는 상황이 나오거나, 저의 더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하면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천 원내대표는 11월 25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이 대표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면 유일한 개혁신당 지역구 의석을 잃는 것이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 정의당
8월 26일 2026년 지방선거 준비단을 발족한 정의당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으로 내년 지방선거에 대응하며, 지방선거를 계기로 당의 재도약을 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2월 6~7일 ‘2025 정의당 활동가 대회’도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 2026 지방선거 승리”를 내걸었다. 지방선거 준비단 슬로건은 “주민의 삶에서 시작하는 생활정치, 우리의 삶을 바꾸는 진보정치”로, “진보정당의 시작점은 지방선거였다. 진보정당의 존재 의의를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증명하고 인정받는 방법이 바로 지방선거”라고 설명하며 주민 밀착 선거운동, 생활 밀착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권영국 대표는 “대선에서 함께 일구어낸 작지만, 소중한 연대의 성과”와 “신호등의 불빛처럼 독자적 진보 정치의 미래를 개척”을 강조했는데, 노동당·녹색당·정의당 간 연대를 새 진보정당 창당의 조직적 기반으로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총선 이후 활발해진 세 당 간 연대를 각 당의 상징색인 빨강·녹색·노랑에서 착안한 ‘신호등’ 연대라고도 한다. 세 당은 올해 대선에서 진보정당 단일 후보를 냈다.)
지역에서도 정의당 경남도당이 “지난 대선처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선거 기간 연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처럼 진보정당 간 선거연대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12월 8일 여인두 목포지역위원장이 목포 지역의 오랜 민주당 독식을 비판하며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에 ‘야4당’ 공동선거연대 실무협의를 제안했다. 이처럼 지역별로 다른 틀의 접근도 있다.
8월 28일 제11회 노회찬비전포럼 세미나에서 권 대표는 <이재명 정부 시대의 진보정치 전략과 당면 과제>를 발표했는데, 정의당은 이를 바탕으로 향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창당의 구체적 로드맵을 밝히기로 했다. 권 대표는 발표에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지향점으로 “평등·생태·분배의 가치 대변”을 내세우고, 창당 전략으로는 “양당 정치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파’ 정치세력의 조직화”를 제시했다. ‘사회파’는 부동산 자산 중심의 ‘보수파’(국민의힘 등)와 주식시장 소액 투자자 중심의 ‘자유파’(민주당 등) 양 세력에 속하지 않으며 평등·생태·분배의 가치를 중심에 둔 정치세력을 명명하는 별칭으로, 장석준 전 정의당 산하 정의정책연구소장이 제안한 개념이다.
권 대표는 사회파 세력의 주요 투쟁과제로 ▲ 수도권 집중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항하는 송전망 건설 반대운동 ▲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 운동 ▲ 동성결혼·차별금지법·가족구성권 보장 등 사회적 권리 투쟁을 거론했다. 이러한 투쟁을 기반으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창당하여 ▲ 860만 무권리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2026 서산-태안 플랜) ▲ 지역균형발전 대안으로서 송전망 투쟁 등의 의제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 권 대표의 포부다.
또한 서산·태안(석탄화력발전소)과 용인·정읍·금산(반도체 클러스터·송전망 투쟁)을 연결하는 기후위기 서사를 양당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시키면서, 새로운 진보정치 세력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심 사례로 삼겠다는 지방선거 전략을 밝혔다. 개헌에 대해서는 추첨으로 개헌 시민회의를 조직하고 이들이 개헌안 초안과 개헌 일정을 제시하게 하는 ‘아일랜드 방식’의 순차적 개헌론을 제안했다.
당내 평등파 의견그룹 ‘전환’도 “‘사회파 정당’으로 과녁을 정조준하자”며 이러한 구상에 찬동했다. 정재환 전환 집행위원장은 “‘사회파’가 없어지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방치해두어선 안 된다”며 민주당의 하위파트너가 아닌 진보정당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러나 “분화된 진보정당의 각개약진으로는, 이제 진보정당의 지지층에게조차 관성이 되어 버린 ‘다른 세상’에 대한 냉소와 회의를 넘어설 수 없다”며 “분화와 갈등으로 너덜거리는 진보정치를 기워붙이는 것 대신 ‘사회파’를 담당할 새로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내 자주파 의견그룹 ‘함께서울’을 재편하여 올해 10월 출범한 ‘또다른플랜’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권력개헌’을 강조하며 활동하고 있다. 정재민, 황정은 등 또다른플랜 계열 정치인들은 연초부터 《오마이뉴스》에 “‘시민권력개헌’을 말하다” 연속기사를 기고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서울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이 결성한 ‘시민권력! 평등헌법! 서울지역 개헌입법운동 본부’가 주관한 12월 11일 <시민권력! 평등헌법! 사회대전환! 개헌입법 토론회>에서도 김종민 또다른플랜 공동대표가 시민권력개헌의 의미에 관해 발표했다. 김 대표는 시민권력개헌에서는 입법·사법·행정 간 또는 정당 간 권력 배분 같은 권력구조 문제는 화두가 아니며, 오히려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제4권력에 해당하는 시민권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법률 제·개정의 권한을 시민에게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 진보당
진보당은 이미 2024년부터 지방선거 준비 태세에 들어가, 출마자 자격심사와 후보자를 선출하는 당내 투표를 2024년 말에 거쳤다.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출한 지방선거 3대 목표는 △ 광역비례 지지율 3% 득표 △광역단체장 포함 5곳 단체장 배출 △16개 시도 당선자 배출이다.
신창현 진보당 사무총장은 “지지율 3%는 정치적 생존과 도약을 위한 최소한의 발판이고, 다수의 기초·광역단체장 배출은 지역정치에서 진보의 실력을 증명하는 기회”라고 규정했다. 핵심은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역량을 집중하여 광역시 단체장 당선이라는 쾌거를 내고, 이것으로 전국적으로 주목도와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유권자는 자기 지역에 진보당 후보가 있어야 진보당에 관심이 생기므로, 원래 목표의 2배수 이상 인원이 출마하여 진보당 후보가 전국 각지에서 유세하며 존재감을 키워 광역비례 득표를 3%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강조했다. 신 총장은 이미 울산과 광주는 거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가 준비되었고,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의 후보를 확대하려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후보, 청년후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는데, 특히 청년후보 발굴을 위해 “빛의 혁명”에 함께 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년후보 공모사업과 청년기금 조성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밀착 생활정치를 강조해 온 진보당은 기관지에 전국 각지에서 1차로 선출된 21명의 청년 기초위원·구의원·도의원 후보가 각 지역 현안 위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2025년 내내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1% 안팎에 머무는 현실에서, 실제로 진보당의 지방선거 성과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지난 총선에서 그랬듯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과의 연합일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진보당은 민주당과의 단일화 5개 지역을 포함해 전국 21곳에 공천하였으나,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 이상헌 후보와 단일화한 울산 북구에서만 당선되었다. 대신 반윤 범야권연대가 필요하다며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여, 정혜경·전종덕 비례위원을 당선시켰다. (그다음 비례순번을 받은 손솔 후보는 총선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유지하여, 올해 6월 위성락 의원이 국가안보실장을 맡자, 의원직을 승계하고 진보당으로 복당했다.)
진보당은 올해 대선에서도 야5당 원탁회의(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를 통해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연합을 추구했다. 민주당과 명시적인 단일화 논의가 없었는데도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는 당내 경선을 거쳐 선출된 지 20일 만인 5월 9일에 이재명 후보를 ‘광장대선후보’로 지지한다며 사퇴했고, 이후 김 대표는 이재명 후보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이 되었으며 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간부들은 각지에서 이 후보 선대위와 선거 유세에 적극 참여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사퇴하고 민주당 지지를 선언하는, 일반적인 야권연대에도 미달하는 모습은 진보당 내에서도 큰 반발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총선, 대선 대응은 진보당 최초로 당내에 등장한 의견그룹인 ‘사람과세상’의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당내 공식 정파 결성은 자주파 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흐름은 2024년 6월 진보당 3기 당직선거에 정태흥 전 공동대표가 총선 비례후보자 선출 과정과 당내 민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출마하여, 역시 진보당 역사상 최초로 상임대표 경선이 치러진 때부터 가시화되었다. 정태흥 선본 측은 민주당이 ‘반미 활동 전력’을 문제삼아 전지예 비례후보의 사퇴와 재추천을 요청하자 이를 진보당 지도부가 그대로 수용한 것이 진보당의 가치 상실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도부가 전 후보 사퇴를 급하게 결정하고, 그 대신 본래 당내 비례순번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정혜경 후보를 올리는 과정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림] 진보당 3기 상임대표 선거 당시 정태흥 후보 선본의 영상
2024년 6월 진보당 3기 상임대표 선거에서 김재연 1·2기 상임대표를 상대로 출마한 정태흥 후보 선본 측에서 만든 영상 캡처. 같은 해 3월 총선 과정에서 진보당 지도부가 민주당의 요구로 민주당 비례위성정당(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는 진보당 측 비례대표 후보를 교체한 과정을 ‘당원민주주의의 훼손’으로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진보당 내 갈등은 올해 경선에서 사람과세상 소속의 강성희 전 의원을 꺾고 대선 후보가 된 김재연 상임대표의 사퇴로 더 커졌다. 이대종 농민당 대표 겸 공동대표가 사임하는 등, 사람과세상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대선 직후 성명을 내어, 김 후보의 사퇴와 민주당 선거운동 가담만이 문제가 아니라 ‘체제교체론’이 아닌 ‘압도적 정권교체론’으로 대선에 임한 것 자체가 진보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었으며, 진보당 지도부가 장기 노선에서도 민주당과의 정치연합을 우선하여 진보당의 자력자강을 도외시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양측의 대립은 2024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일 포기’ 선언 이후 자주파 통일운동의 노선 논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과세상은 북한에 통일 의사가 없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이를 남한만의 통일운동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여 자주파의 오랜 구호인 자주·민주·통일 대신 평등·평화·자주로 대체하고, 남북한관계를 ‘평화적 2국가 관계’로 설정할 것을 주장한다.
올해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 것을 고려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이 또다시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을 앞세울 명분은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12월 초 김재연 대표는 진보당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 남아 있는 과제는 “단연 국민의힘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라며 “내년 지방선거는 내란세력의 완전한 심판을 위한 마지막 결전”, “지방권력에서 국민의힘을 최대한 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보면, 비상계엄 이후 “압도적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며 ‘광장대선후보’ 이재명을 지지한 것과 같은 논리가 지방선거에서 발동할 여지가 있다. 국민의힘 심판을 빌미로 또다시 면피하는 것이다. “광장의 요구와 약속을 반드시 실현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은 당시와 다릅니다. 연대해야 할 대상도 더 넓어졌습니다.”라는 발언도 진보당 고유의 정책보다 반국힘 연대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김 대표는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충분히 보이지 않으니, 국민의힘이 대안처럼 활용되고 있는 상황”,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가진 정당으로서 정책적 차별성, 내란청산의 투쟁성, 풀뿌리 정치력을 명확히 보이겠다”고도 했는데, 이는 조국혁신당의 “정치적 메기”와 동일한 전략이다. 김 대표 등이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진보당판 정치적 메기 전략으로 호남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보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따른 혼란은 진보당에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가 민주당과의 연대연합에 편승하는 진보당의 행태를 옹호함으로써, 민주노총을 정치적으로 분열시키고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형해화해 왔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2024년 총선 당시 대의원대회 결정으로 위성정당 참여 금지를 규정한 민주노총 총선방침 4항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그러나 양경수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올해 대선에서도 진보당 지도부 노선을 따라 민주노총이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대선방침을 제안했다. (‘진보정당 후보’뿐만 아니라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를 지지한다는 후보방침을 내놓았는데, 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열어두는 뜻임이 명백했다.) 이러한 시도가 반발에 부딪히고, 유일하게 남은 진보정당 후보인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 지지 방침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오자, 양경수 집행부는 대선방침 논의를 방기했다.
4. 결론
이 글은 제목에서 던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이 복원되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고 답한다. 만약 국민의힘이 시민 대다수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의 무도한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롯해 극단 세력의 주장과 명확히 선을 그으며 계엄 관련 의혹 해소에 앞장섰다면, 만약 민주당이 헌법재판소 판결도 지적했고,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의 여론이 거듭 주문했던 것처럼 ‘줄탄핵’ 등 독주를 반성하고 좀 더 포용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비상계엄 시도라는 국가적 불행을 정말로 민주주의와 헌정 복원의 기회로 삼는 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비상계엄과 각종 비리의 전모를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준수하고 강화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두 가지는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과제이며, 여론 분열 없이도 이룰 수 있는 과정이지만, 양당 지도부는 더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았다.
정권은 교체되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국제무대에 나아가 마치 자신의 당선으로 모든 악몽이 끝난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 복원을 자랑했다. 그러나 실상이 과연 그러한가.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당내에서는 누가 누가 더 강성인가 대결을, 국회에서는 국민의힘과 극단 대결을 이어갔다. 내년 지방선거의 주된 전략도 ‘내란 청산’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이 사법국가가 되고 있다. 사법이 모든 걸 결정한다.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 위험한 나라가 됐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사실 최종적으로 사법 권력에 의해 실현된다”며 사법부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입법·행정 권력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하여 만인에게 평등하게 집행될 것으로 ‘기대받는’ 사법의 기능을 위협하여, 한국 헌정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위험 요소다. 이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역사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언제나 민중에 대한 압박과 헌정의 붕괴로 이어졌기 때문에, “헌법의 정신을 이탈한 정치는 폭력”, “문명국의 수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한국 정치 분석의 틀로 삼았던 ▲ 정치 양극화, ▲ 제왕적 대통령제, ▲ 헌정위기, ▲ 정치적 내전이 모두 올해에도 지속되거나 더 심화했다. 이런 조건에서 시민은 ‘개딸’처럼 정치에 과몰입하며 적대감과 폭력성을 강화하거나, 반대로 정치에 관한 환멸과 무관심이 커지는 양 편향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정치의 난맥상을 해소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각종 분야의 정책은 정쟁의 대상에 머물고 국가 운영은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올해 10~11월 국정감사가 자기 이름을 알리는 것에만 급급한 의원들의 낯 뜨거운 가짜뉴스와 인신공격으로 점철되면서, 본연의 정책 감사 기능 자체가 여느 해에 비해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한 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관된 외교정책이나 중장기적 국가 전략 수립도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트럼프가 돌아와 전후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국제 정세의 격변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주요 정치세력의 태세와 예고된 사안들을 보면 2026년에도 내전에 가까운 정치적 대립과 헌정위기가 심화할 전망이다. 사회운동은 극단적 의견 대립 사이에서 좁은 정도(正道)를 걸으며, 분열을 치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