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진보 속 방향 찾기
『권력과 진보』
『권력과 진보』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지은이: 다론 아제몰루, 사이먼 존슨
출판사: 생각의 힘
출간일: 2023.6.30.
기술 변화는 생산현장에도 변화를 초래하기 마련이고 변화가 클수록 노동자들의 삶에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세돌의 패배로 대한민국에도 AI의 존재감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AI는 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 뉴스를 장식하고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만드는 중이다. 이제는 급기야 현대자동차가 아틀라스라는 AI 장착 휴머노이드를 생산현장에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에 대한 금속노조의 입장이 한동안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현재의 기술변화를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좋을까. 이러한 통찰을 형성하는 데 다론 아제몰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가 나름의 참고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에는 ‘애쓰모글루’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 발음은 아제몰루로 이 글에서는 아제몰루로 표기한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주류 경제학자 저자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보고,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유의미한 토론이 더 많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특히, 저자들이 이 책에서 기술변화 과정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저자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기술 발전이 자동적으로 인류의 ‘진보’(번영)로 이어지지 않으며, 누가 기술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과실을 가져가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권력’(투쟁)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주류 경제학자가 갑자기 투쟁이라니,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저자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하며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그중에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자신의 전체 주장을 두괄식으로 요약 제시한다. 4장부터 7장까지는 주로 1차 산업혁명(영국)과 2차 산업혁명(미국)의 사례를 검토하며 교훈을 도출한다. 4장에서는 영국 산업혁명 초기, 기계화가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낮은 임금과 가혹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았던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이어서 5장과 6장에서는 영국 산업혁명 시기 혹사당하던 노동자들이 기술의 혜택을 나누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정부 규제를 입법하는 등 엘리트의 권력에 맞서는 ‘길항 권력’을 형성했던 과정을 서술한다. 7장에서는 미국에서 와그너법이 통과되고 노동조합이 자리 잡으며 실질임금이 급격히 올랐던 과정 등을 보여 주며 미국 노동자들(그리고 이를 지지했던 정치인들)이 투쟁 속에서 기술진보의 과실을 재분배했던 역사를 소개한다.
8장 이후부터는 1980년대 이후 정보기술의 발전이 노동 대체에 집중되면서, 노동자들과의 과실 공유가 무너지고 불평등이 다시 심화하는 과정을 다룬다. 경영자들이 노동 비용 감축만을 우선시하고, 노동자를 교육하기보다 자동화를 선택하는 ‘비전’을 채택하면서 노동 시장이 약화했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9장에서는 AI가 인간을 보조하기보다 인간을 대체하고 감시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경고한다. 10장에서는 소셜미디어 기업이 광고 수익을 위해 자극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콘텐츠를 더 노출시키는 문제와 중국이 AI를 활용하여 시민들을 전방위 감시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AI기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기술은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의 방향을 노동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정책과 사회적 노력을 제안한다.
첫째, 내러티브(비전)와 규범을 바꾸는 것
둘째, 길항권력을 일구는 것
셋째, 정책적 해법을 찾아내는 것
특히 우리는 첫째와 둘째에 주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듯이 노조는 산업화 시대 이래로 늘 길항 권력의 핵심이었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이 기술 변화에 개입해 온 역사가 있으며, 지금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내러티브(비전)라고 생각된다.
또한 저자는 노조가 생산성 상승의 이익이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 공유되도록 하는 데 핵심 도구라고 언급한다. 더 폭넓은 단체협약(역사적으론 산별협약)으로 노동자 간의 격차를 축소하며 고용주와의 협상을 통해 재분배도 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노동조합만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내러티브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중요하게 채택해야 할 또 하나의 내러티브가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내러티브이다. 저자는 길항권력을 형성하고 힘을 갖게 하는 기본은 바로 민주주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10장에서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혐오와 가짜뉴스가 확산하되는 문제와, AI의 도움을 받은 정부의 감시시스템이 강화되는 상황을 경고한 바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주요 원칙들이 세계적인 수준과 일국적인 수준을 가리지 않고 위협받는 지금, 노동조합은 법치와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주류 경제학자인 저자의 견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비판도 몇 가지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술진보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는 비판이다. 노동자의 투쟁이 긍정적일 수 있다고까지 인정한 아제몰루이지만 한계도 있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는 기술진보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중립적이기 때문에 자본친화적(노동절약적)인 것 만큼 노동친화적으로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는 기술진보가 편향적이라고 생각한다. 수익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서 기술진보가 노동절약적이고 자본소비적인 편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분배를 통해서 기술진보의 성과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순 있으되, AI 기술이 전사회적 생산성을 상승시키는 산업혁명으로까지 격상될 것이라고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산업혁명이 역사적으로 드물게 나타나는 이유 역시 기술진보의 편향성에 있다고 생각된다.) 더불어 AI기술이 IT기술의 연장선임을 고려했을 때 생산성이 향상되는 산업혁명이 아닌 2000년대의 통신혁명(컴퓨터, 인터넷)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0년대의 통신혁명과 유사하기 때문에 빅테크가 주도하는 주식 시장과의 관련성을 또한 지적할 수 있다. 2000년대 통신혁명은 주식시장을 적극 부양하며 닷컴버블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에도 IT기술이 세상을 3차 산업혁명으로 이끌 것이라 대서특필된 바 있다. 지금의 주식시장이 그때와 유사하지 않은지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 일례로 현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무려 4.6조 달러인데 이는 독일의 25년 국민총생산액 4.5조 달러(세계3위)를 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AI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챗GPT와 대화하면 사람과 이야기한다는 착각이 들고, 구글의 제미나이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면 즉시 알아듣고 세계의 정보를 금세 요약해 주는 단계에 왔다. 나아가 지식노동은 비숙련 작업부터 벌써 AI가 대체해 가고 있다. 다만 비이성적 열광에 대해선 냉정하게 분석하며 부작용에도 주목해야겠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AI기술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 위에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브라이언 크리스천의 『인간적 AI를 위하여』(2025) 역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AI가 또 하나의 핵폭탄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 때문이다.
얼마 전 군사용으로 활용되는 AI를 개발한 앤트로픽이라는 회사가 자체 ‘가드레일’을 훼손하려는 미국 국방부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 ‘가드레일’이란 자국민에 대한 대규모 감시, 완전 자율 살상 무기 개발이라고 한다. 이에 경쟁업체 개발자들조차 동조하여 항의서한으로 연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다.
이를 보면서 보편적 가치를 견지하며 토론을 확장하고 연대를 구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자들이 『권력과 진보』에서 AI를 활용한 자국민 대규모 감시에 대해 경고하며 했던 고민이 『인간적 AI를 위하여』와 ‘앤트로픽’에서 공통으로 관찰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의 활동가들과 우리 회원들도 보편적 가치를 견지하며 계속된 토론과 논쟁을 시도해가야겠다. 이 책이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 AI기술 논의의 거품은 덜어내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독서와 토론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