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막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트럼프 대통령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이어진 미국발 뉴스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1월 3일 ‘확고한 결의’라는 작전명으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습해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다.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를 근거로 부과되던 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을 내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에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이란 전쟁이 시작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8일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미국 ‘최고사령관’으로서 세계 각지에서 휘두르는 권력에 어떤 견제 장치가 있냐는 질문에, “나에게 국제법은 필요 없다”며 “나를 멈출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내 도덕성, 내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를 보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아 나온 외국 어느 정치포스터의 제목, ‘어느 누구, 무엇으로부터도 제약을 받지 않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Trump, Unbound)이라는 비꼬는 문구가 생각났다. 국제질서와 국제법, 정치와 헌정주의에 관해 왜 지금 우리가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트럼프 재집권 1년, 미국과 세계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특집을 준비했다. 김영진의 「트럼프 2기 대외정책 분석과 비판: 강대국 간 세력권 질서로의 퇴행」은 2025년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분석한다. 글은 먼저 2025년 12월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미국 외교정책사를 통해 살펴본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와 먼로 독트린 담론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는 19세기 잭슨주의, 팽창주의적 세력권 질서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후 세력권 질서가 국제적으로 성행하였던 19세기 유럽 질서, 특히 유럽협조체제와의 비교를 통해, 세력권 분할이 단기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비강대국에 대한 강압, 강대국 간 세력권 다툼을 낳아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19세기 세력권 질서가 20세기 자유주의 국제주의 질서에 미달하는 퇴행이라고 주장한다.
박동열의 「공화국을 포위한 『두 유령』과 트럼프 2기 행정부 1년 평가: 딥 스테이트 음모론과 단일행정부론으로 무장한 인민주의」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헌정에 가하는 심대한 충격을 ‘단일행정부론’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단일행정부론은 대통령이 행정부를 전면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도 견제해 온 국가의 ‘심층’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2기 행정부 들어 트럼프는 이 관점에 따라 ‘딥 스테이트’를 강하게 공격하고, 연방준비제도 등 독립기구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며, 다수 공화당의 묵인 속에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고, 사법부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흐름이 트럼프 개인이 특이해서라기보다, 20세기 미국 대통령제 민주정에서 행정권이 비대해지며 잠재적으로 지속된 경향이라고 본다. 다만 트럼프는 이를 인민주의와 결합해 삼권분립을 더욱 약화시키고 권력을 자신에게 더욱 집중시키며 미국 헌정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대통령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상중계’로 싣는 이진호의 「『투쟁의 역사, 성찰의 기록』 출판 기념 토론회」는 글 제목 그대로 『투쟁의 역사, 성찰의 기록』의 출판을 기념하여 지난해 12월에 열린 토론회, ‘한국 노동운동 1987~2025, 다시 시작하는 질문들’의 진중한 논의를 소개한다. 책의 저자인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움’ 사무국장과 안정화 노동포럼 ‘나무’ 대표, 박근태 금속노조 전 부위원장,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이 함께했다. 특히 토론자들이 오랜 활동과 연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기한 의견과 토론이 유익했다. 또 정리자는 구체적인 제안도 여러 축으로 제시되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산업 내 노동자 간 격차 축소를 지향하는 산별교섭, 거시적 직무 분석을 통한 객관적•합리적 기준 마련, 가치 사슬 구조에 기반한 노동자 간 연대 등등이다. 또, 혁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정세와 산업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전략 수립-실행-평가’의 선순환을 구축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참가자 모두 이와 같은 토론의 계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할 것이다.
가토 나오키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벌이는 전쟁범죄: ‘아동 납치’ 문제를 중심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4주년을 맞아, 전쟁 발발 이래로 우크라이나인들이 겪어온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아동 납치’ 문제를 중심으로 고발한다. ‘아동 납치’란 우크라이나 아동을 납치하여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이나 러시아 영토로 데려가는 것으로, 이 아동들을 ‘러시아인’으로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군 점령지나 러시아로 병합된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학생들이 받는 ‘러시아화 교육’과, “비나치화는 곧 비우크라이나화”라는 러시아 국영매체의 주장을 살펴보면, 러시아의 전쟁 의도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미래를 해체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필자는 과거 식민지배와 민족 정체성 침탈을 겪은 한국 사람들이, 오늘날 비슷한 현실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공감하리라 믿는다며 글을 맺는다.
임필수의 「북한 핵무기 2026: 2021년 이후, 북한의 핵무기 개발 5년 총결」은 2021년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이 야심 찬 핵무기 개발 계획을 제시한 후 올해 2월 9차 당대회가 열리기까지, 지난 5년간 이어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북한은 핵탄두를 50여 개에서 최대 90개 제조하여 미국 본토를 목표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한국-일본-괌을 목표물로 하는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에 탑재하여 운영하는 중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아직 기술적 수준이 미흡한 반면, 한국-일본-괌을 목표물로 한 단거리~중거리 핵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북한이 “한국을 동족에서 영구적으로 배제한다”는 식으로 위협적인 언사를 반복하는 것이 이러한 핵무기 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용 가능한 전술핵무기는 이를 방패로 삼아 먼저 군사적 분쟁을 개시할 유인을 키운다. 또 야전사령관의 전술핵무기 사용 권한·능력은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크게 높인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세계적인 핵무기 확산과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핵정책에 주시해야 한다.
김진영의 「한일 피폭자운동의 역사와 현황: 피폭자 지원과 핵무기 철폐를 외친 70년의 투쟁」은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피해자들이 지난 70여 년간 만들어온 운동의 역사를 소개한다. 일본 피폭자운동, 재일조선인 피폭자운동, 북한 피폭자 문제, 한국 피폭자운동의 순서로 주요한 사건과 쟁점을 다룬다. 피폭자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겪는 차별과 신체적·경제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핵무기 피해의 산증인으로서 모든 핵무기의 철폐를 촉구하는 국제적 운동을 조직했다. 필자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핵 사용 위협을 동반한 전쟁이 계속되고 세계 핵 군비경쟁이 재개된 지금, 한국과 일본의 피폭자운동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새겨 보며 새로운 반핵평화운동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한다.
‘책소개’로는 두 편의 글을 담았다. 먼저 정성진의 「영국과 로마의 비교를 통해 본 헌정의 의미」는 박상현·유주형 외의 『영국헌정사』와 『한국헌정사』를 소개하는데, 글의 분량이 길어 두 번에 나누어 실을 것이다. 필자가 2025년 가을호에 『자유주의의 역사』를 소개하며 쓴 「인민주의와 권위독재정의 공포에 맞서는 길」와 함께 읽기를 권한다. 또 김승곤의 「AI 기술 진보 속 방향 찾기」는 다론 아제몰루,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을 다룬다. ‘회원칼럼’으로 오명훈의 「쉽지 않은 현실에서도 높은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실었다.
2025년 미국과 한국에서 새로운 정권의 등장과 함께 예고된 정세의 파고가 점점 더 높아만 가고 있다. 우리의 기관지가 이를 헤쳐 나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26년 3월 23일
임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