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이 국제질서에 미칠 파장
국제규범의 교란, 파괴의 악순환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발발한 이란 전쟁은 4월 8일 휴전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초 2주로 예정되었던 휴전은 4월 22일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따라 무기한 연장되었다. 5월 현재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종전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교전이 발생했으며,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의 군사 충돌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이번 전쟁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는 이란 신정체제를 압도했다. 특히 1차 공습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등 이란 신정체제 지도부 다수를 제거했다. 이란은 공습 직후 즉각 보복에 나서 이스라엘과 중동 내 미군기지, 나아가 주변국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했다. 그러나 이란의 공격 강도는 개전 4일 차를 기점으로 급격히 둔화되었고, 발사체의 80~90%가 이스라엘과 걸프국의 방공망에 의해 요격되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군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을 트럼프 행정부와 네타냐후 정부의 승리로 평가하지 않는다. 종전협상을 가로막고 있는 핵심 쟁점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 쟁점이 국제질서에 미치는 파장이 큰 만큼, 전쟁 당사국 간 입장 차이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란 현대사로 살펴본 이슬람주의 비판」(《계간 사회진보연대》 2025년 가을호)에서, 이란 현대사를 검토할 때 이란 신정체제가 표방하는 이슬람주의는 국내적으로는 강압적 통치를 통해 이견을 억압하고, 대외적으로는 중동 정치의 불안정과 전쟁 위기를 지속적으로 촉발함으로써 주변국과의 공존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불확실성으로 빠져드는 이란전쟁”(《사회운동포커스》 2026년 3월 27일)에서는 미국, 이스라엘, 이란 정권 등 주요 당사국들이 지역 질서에 대한 구체적 비전 없이 각 정권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무차별적으로 위반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이번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전쟁의 핵심 쟁점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란 핵물질 문제, 그리고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교란자(disruptor)로서 이란 신정체제의 위험성을 살펴본다. 동시에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수호자를 자임해온 미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전쟁에 대응하는 방식의 한계를 짚고, 중동의 주요 행위자인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의 접근법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 행위자의 대응이 중동뿐 아니라 국제질서 전반을 더욱 심각한 위기로 몰아갈 수 있음을 지적하려 한다.
1.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개전 직후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은 2월 28일 VHF 무선 주파수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금지한다”는 방송을 송출하였다. 이후 이란 정권은 호르무즈 해협 주요 항로에 기뢰를 설치하였고,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을 공격했다. 나아가 이란 정권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 확립을 꾀하고 있다.
이란 의회는 4월 21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확립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법안에 따르면, 이란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를 제한하는 한편, 모든 선박이 이란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고 지정된 항로를 이용하며 통행료를 납부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이란 당국은 법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5월 4일 새로운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리 체계인 ‘주권적 해상교통 규제 메커니즘’을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통항 규정이 배포되었고, 통행료 납부 체계가 구축되었으며, 이를 담당하는 관청인 페르시아만 해협 관리청(PGSA)이 설치되었다.
[그림]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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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에 위치하는 수로로,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30%가 통과하는 곳이다. 본 장에선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 여파가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트럼프 행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호르무즈 해협의 국제법적 지위
이란 정권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국제법상 보장되는 항행의 자유를 위협하는 조치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이란의 영해가 아니라 국제해협이기 때문이다. 국제해협이란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으로, 여러 국가의 선박이 빈번하게 오가는 중요한 해상교통로를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국제해협에서 선박과 항공기의 통과를 보장하며, 항행의 자유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1982년 유엔에서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해양 이용과 권리를 규정한 국제법이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각국은 자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를 기선으로부터 최대 12해리까지 설정할 수 있다. 또한 연안국은 자국 영해의 수역 및 해저, 상공까지 입법·행정·사법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법은 연안국의 권한을 일정 부분 제한하며 외국 선박의 항행권 역시 보장하고 있다. 이를 규정하는 대표적 제도가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과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다.
무해통항권은 유엔해양법협약 17조에 따라 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평화, 질서 또는 안보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해를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동 협약 24조는 연안국이 외국 선박의 무해통항권을 부인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26조는 수수료 부과 금지를 비롯해 통항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어떠한 부당한 요건의 부과도 금지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외국 선박이 연안국을 상대로 무력 위협을 가하거나 고의적인 오염 행위를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연안국이 어업 관리와 환경 보호, 항행 안전을 위해 일정한 규제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역시 무해통항권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
통과통항권은 무해통항권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한 권리로, 국제해협에 적용된다. 유엔해양법협약 38조에 따르면 통과통항권은 국제해협을 중단없이 신속하게 통과할 목적으로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통과통항권은 선박뿐 아니라 잠수함과 항공기까지 포괄하는 권리를 뜻하며, 유엔해양법협약 44조는 해협연안국이 국제해협에서의 항행과 비행을 방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해통항권과 통과통항권은 유엔해양법협약 외에도 국제관습법으로도 인정되고 있다. 실제 거의 모든 국가들은 자국 법제와 국가 관행을 통해 12해리 영해 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며, 무해통항권과 통과통항권 역시 인정하고 있다. 또한 194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코르푸 해협’ 사건 판결은 평시에는 군함조차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 무해통항을 제한받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시 상황에서 국제법과 국제관습법상 항행 질서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1994년 해상 무력 충돌 시 적용되는 국제인도법을 현대화하여 정리한 ‘산레모 매뉴얼’은, 전시 상황에서도 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권이 원칙적으로 유지됨을 명시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자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통과통항권 적용을 부정하며 해협 봉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약 21해리로, 이란과 오만의 영해가 서로 겹친다. 오만은 유엔해양법협약 비준국이며, 설령 이란 정부가 유엔해양법협약상 국제해협의 지위를 부정하더라도 오만 영해 범위에서 항행하는 선박의 통항을 제한할 권리는 없다. 무엇보다 국제관습법은 전시 상황에도 통과통항권과 무해통항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왔다. 따라서 이란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국제법과 국제관습법에 비추어 볼 때 항행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이란 기뢰 마함-7(왼쪽), 마함-3(오른쪽)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에 설치한 기뢰는 마함-7과 마함-3으로 알려져 있다. 두 기뢰 모두 접촉식 기뢰가 아니라 자기장 및 음향 감지 센서를 통해 선박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탄두를 폭발시키는 구조다. 특히 이란의 기뢰는 일정 수의 선박이 통과한 이후 폭발하도록 설정할 수 있어 예측 가능성이 낮고 위험성이 크다. 기뢰는 비교적 신속하게 설치할 수 있지만 제거는 어렵다. 무인 기뢰 제거 체계가 존재하더라도, 제거 작업을 지휘·통제하기 위해서는 함정이나 항공기가 기뢰 인근에 접근해야 하므로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미국 전쟁부(국방부)에 따르면 기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호르무즈 해협에 설치된 기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출처: 《가디언》)
2)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실물경제적 파장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30%가 통과하는 곳이다. 따라서 해협 봉쇄는 세계 원유 공급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2026년 2월 기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운송되었다. 그러나 해협 봉쇄 이후 석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했다. 4월 초 하루 평균 원유 선적량은 380만 배럴 수준으로 급감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길이 막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는 대체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 수출량을 늘렸지만, 수출 규모는 약 300만 배럴 수준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하루 평균 1,300만 배럴 이상의 석유 수출 감소가 발생한 셈이다.
국제사회는 공급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원유 재고(전략비축유)를 적극적으로 풀었다. 미국은 국제에너지기구 파트너국들과 협력해 120일에 걸쳐 4억 배럴 규모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했는데,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조치도 발표했다. 그러나 전략비축유 방출 규모는 하루 평균 약 300만 배럴 수준으로, 해협 봉쇄로 인한 공급 차질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70달러 선에서 등락하던 국제 유가는 개전 이후 100달러를 돌파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원유 수요가 기록적으로 감소했음에도 공급 감소 속도가 이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S&P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지난 4월 세계 원유 수요는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 수준인 하루 500만 배럴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세계 원유 재고는 그보다 더 많은 약 2억 배럴, 즉 일평균 66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공급 부족 규모가 수요 감소분을 상회하면서 전략비축유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세계 원유 재고가 고갈될 위험도 제기되고 있다.
원유 문제 외에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주변 걸프국은 원유뿐 아니라 필수 농업용 비료의 수출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 농업에서 질소 비료 등의 역할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비료 공급이 부족해질 경우 농가의 생산량과 작물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비료의 핵심 원료가 중동 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중동은 전쟁 이전까지 전 세계 해상 운송 비료 원료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공급지였다. 그러나 해상 봉쇄로 비료 수출에 차질이 생기면서 국제 식량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4월 식량 가격 지수는 전월 대비 2.7%, 비료 가격 지수는 26.2% 상승했다. 또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26년 상반기 글로벌 비료 가격이 추가로 15~20%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파종 시기에 비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가들이 비료 사용량을 줄이고 있으며, 이는 향후 작물 수확량 감소와 세계 식량 수급구조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은 취약국의 식량 수급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걸프국 등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많은 저소득층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비료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의 비료 수출 제한과 우크라이나의 곡물 공급 차질로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 주민 2,72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며, 2,230만이 영양결핍 상태에 빠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현재는 2022년과 같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안정적으로 대체할 생산·수출 거점이 뚜렷하지 않아, 글로벌 비료 및 식량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란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항행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국제무역과 세계경제에도 심각한 충격을 초래하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봉쇄 과정에서 비(非)교전국 상선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으며 국제 해상교통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2026년 5월 현재 약 1,500척의 선박과 2만여 명의 선원이 페르시아만 일대에 발이 묶여 있다. 이러한 봉쇄 행위는 국제 항행질서와 공급망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다른 국제해협에서도 유사한 조치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응이 국가 간 분열 속에서 일관된 위기관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3) 분열된 국제사회의 대응
이란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응은 분열적이다. 개전 초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11일 결의문 2817호를 채택했다. 해당 결의안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걸프국 공격을 규탄하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후 4월 7일 안보리 의장국인 바레인과 걸프국은 이란 정부의 해협 봉쇄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촉구하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해당 안건은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었다. 이후 미국과 걸프국은 상선 공격 중단과 설치 기뢰 위치 공개, 통행료 부과 금지, 인도주의 통로 설치 허용 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지만, 이 역시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면서 채택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문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러한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 결의안 논의와 별개로 동맹국 및 주변 협력국과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응을 추진했다. 무엇보다 군사적 압박과 무력 억제를 중심으로 대응 전략을 구성하면서 주변국들에 사실상 참여를 요구했는데,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확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강조해온 미국이 다자적 협의보다 일방주의적 대응을 우선시할 경우, 동맹국과 협력국 사이의 신뢰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뢰 약화는 각국이 국제질서 유지보다 자국 중심의 대응에 집중하도록 만들며, 결과적으로 이란과 같은 국제질서 교란국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공동 대응과 책임 추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호 「트럼프 2기 대외정책 분석과 비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세력권 질서로의 회귀를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 권위주의 정권이 유엔을 비롯한 다자기구의 대응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이든 행정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이 국제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동맹국들과 함께 ‘규칙기반 질서’라는 공통 가치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세력권 질서로의 회귀를 추구하면서 기존 국제질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자적 조율보다 일방적 강압을 우선시하는 방식은 국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대응과 연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는 권위주의적인 이란 정권의 도발만큼이나 국가 간 상호 신뢰를 침식시킨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
2. 이란 핵 문제
현재 종전 협상에서 미국과 이란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중 하나는 이란 핵물질 문제다. 미국 정부는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 전량을 국외로 반출하고 기존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향후 20년간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란 정권은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한 유엔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결의안과 각종 제재의 철회를 요구하며 우라늄 농축 활동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핵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큰 만큼 전쟁 당사국 간 협상이 조기에 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본 장에서는 이란의 핵개발사(史)를 간략히 검토하고, 이란 핵개발이 지닌 위험성을 살펴본 뒤 현재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대한 우려를 정리하고자 한다.
1) 이란의 핵개발사
이란의 핵개발 역사는 팔레비 왕정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팔레비 왕정 시절 이란은 1953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을 군사적 목적이 아닌 전력 생산과 평화적 이용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담아 발표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 정책에 적극 협력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1957년 IAEA 창설과 1970년 NPT 체제 출범에도 참여했다. 팔레비 왕정은 1970년대 들어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관심을 보였다. 이를 위해 테헤란대학교에 핵 연구와 교육과정을 개설했으며,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했다. 이후 독일과 프랑스 기업의 투자를 받아 부셰르 지역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던 중 이란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면서 발전소 건설은 중단되었다.
새롭게 들어선 이란 신정체제는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마무리될 무렵부터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중단되었던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재개했고, 본격적인 핵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1990년대 이란 정권은 파키스탄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운영하는 암시장 네트워크와의 거래를 통해 원심분리기와 우라늄 농축 기술, 핵무기 설계도 등을 확보했다. 이후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중심으로 이란 정부는 무기급 우라늄과 플루토늄 개발을 목표로 하는 비밀 핵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2002년 나탄즈와 아라크 지역의 비밀 핵시설이 이란 국민저항평의회에 의해 폭로되었다. 이후 이란은 해당 시설을 IAEA에 신고했으며, ‘아마드 프로젝트’ 역시 중단되었다.
이란은 2003년 IAEA와 안전조치협정 추가의정서에 조인했으나, 이후 사찰에 충분히 협조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696호에 따른 제재를 받았다. 2009년에는 포르도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과 20% 농축 우라늄 생산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29호에 따른 추가 제재에 직면했다. 이후 국면 전환을 모색하던 이란 정부는 오만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비공식 핵 협상을 시작했으며, 장기간 협상 끝에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를 체결했다.
해당 합의에 따라 이란은 15년간 우라늄 농축도를 3.67% 이하로 제한하고, 저농축 우라늄 보유량 역시 300kg 이하로 유지하기로 했다. 2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으며, 기존 고농축 우라늄은 러시아로 반출해 희석하거나 다른 형태로 전환해 처리했다. 이란은 IAEA의 강화된 사찰과 검증을 수용하기로 했고, 그 대가로 미국과 유럽연합은 대(對)이란 제재를 유예·해제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테헤란 연구로(TRR)의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 연료는 국제 공급망과 러시아 협력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란 핵합의에는 약점이 존재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20% 농축 우라늄이었다. 합의에 따라 사용후연료(폐기물)에 포함된 농축 우라늄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의료용 20% 농축 우라늄은 이란의 농축 우라늄 보유량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사용후연료는 일반적으로 방사능 수준이 높아 즉각적인 재사용이 어렵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이 약한 저준위 폐기물은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거의 사라지며, 이 과정에서 폐기물에 포함된 20% 농축 우라늄을 다시 회수할 수 있다.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이란이 약 100kg 규모의 저준위 폐기물을 축적한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로부터 제공받은 의료 목적 20% 농축 우라늄은 연간 5~8kg 사용을 전제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치에 해당하는 총 76kg 규모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이란이 실제 의료 목적으로 사용한 20% 농축 우라늄은 연간 4kg 미만에 그쳤다. 즉, 이란 정권은 잠재적으로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전용할 수 있는 핵물질 보유량을 늘려왔던 것이다.
특히 2018년 1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탈취한 이란 핵 아카이브 문서에는 이란의 핵개발 관련 자료가 상세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 자료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여러 미신고 핵시설의 존재를 드러냈다. 이후 IAEA는 해당 자료와 추가 정보를 토대로 미신고 핵시설을 조사했으며, 일부 장소에서는 미신고 핵물질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이란의 탄도 미사일 개발 및 중동 대리세력 지원과 함께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탈퇴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가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탈퇴한 이후, 핵합의에 당사국으로 참여한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핵합의는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란은 합의 내용을 위반해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다시 본격화했다. 이란은 2021년부터 IAEA 추가의정서 적용을 중단하며 정보 제공과 사찰을 제한했고, 2022년 이후에는 나탄즈와 포르도 지역의 IAEA 감시 카메라를 철거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란은 2025년 6월 ‘12일 전쟁’ 직전까지 60% 고농축 우라늄 약 440kg과 20% 농축 우라늄 약 200~300kg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량은 추가 농축과 무기화 과정을 거치면, 약 10기 규모의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수준이다. 또한 IAEA의 2025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보유량은 약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12일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은 IAEA의 사찰과 접근을 전면 차단했다.
한편 12일 전쟁으로 이란의 주요 핵시설 다수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특히 이스파한·나탄즈·포르도 등 핵시설 밀집 지역에서는 우라늄 변환시설과 농축시설, 원심분리기 생산시설이 타격을 입었으며, 핵무기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던 산업단지·대학·군사시설 또한 공습을 받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핵시설 전반이 큰 손상을 입은 것과 달리, 이란이 보유하고 있던 고농축 우라늄 자체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시설 내부에 저장되어 있던 농축 우라늄의 상당 부분이 지하 깊숙한 저장 공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지하 저장 공간에 고농축 우라늄이 잔존할 수 있다는 의혹은, 이란 정부가 12일 전쟁 이후 피해 시설의 복구 작업에 착수하면서 구체적인 정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6년 1월 위성사진에 따르면 이스파한과 나탄즈 지역의 핵시설에서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 조셉 로저스는 이란 정부가 해당 시설 지하에 보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농축 우라늄을 당장 회수하는 단계는 아닐지라도, 해당 물질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2025년 12일 전쟁 직후(좌)와 2026년 1월 이란 주요 핵시설(우) 위성사진
(위부터 나탄즈 핵시설, 이스파한 핵시설, 이스파한 핵터널 단지)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에 따르면, 2025년 12월 이후 나탄즈와 이스파한 핵시설 잔해 위에 새로운 지붕 구조물이 설치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특히 나탄즈 지역에서는 인근 ‘픽액스 마운틴’ 지하시설로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터널 공사가 진행 중이며, 이스파한 터널 단지 주변에서는 흙 매립 작업이 대폭 증가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은 이에 대해 “해당 지역 지하에 고농축 우라늄이 은닉 또는 매립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사진출처: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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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과 보유를 포기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감시와 사찰을 회피하며 비밀리에 핵시설과 핵 능력을 강화해 왔다. 사실 이란이 군사적 목적이 아닌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개발만을 추구했다면, 국제 규범 내에서도 이를 추진할 수 있었다. NPT는 회원국의 우라늄 농축 자체를 금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NPT 제4조는 비핵보유국인 회원국이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를 개발·생산·이용할 권리를 인정한다. 다만 제3조에 따라 비핵보유국은 원자력 활동의 평화적 이용 여부를 검증받기 위해 자국의 모든 핵시설과 핵물질에 대해 IAEA의 사찰을 수용하고, IAEA 안전조치협정과 추가의정서를 체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란 정부가 IAEA의 사찰에 성실히 임했다면 우라늄 농축을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핵시설을 IAEA에 성실히 신고하지 않았고, 핵시설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활동을 여러 차례 은폐해 왔다. 이러한 행태는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개발이라기보다,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란 정권의 이러한 비협조적 행보는 NPT로 대표되는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키며, 주변국의 핵무장 유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질서에 큰 위협 요인이다. 그 영향은 올해 4월 27일부터 5월 22일까지 열린 11차 NPT 평가회의가 파행으로 마무리된 점에서도 드러난다.
2)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핵 비확산 체제
올해 제11차 NPT 평가회의는 회의 전부터 어두운 전망 속에서 출발했다. 지난 두 차례의 NPT 평가회의가 최종문서 채택 없이 종료된 가운데, NPT 체제를 뒤흔드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은 지난 2월 추가 연장 없이 최종 종료되었으며, 지난해 10월 트럼프 행정부가 핵실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핵 협상 과정에서 군사공격으로 비화한 이란 전쟁은 NPT 체제가 일시적 균열을 넘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11차 NPT 평가회의는 시작 단계부터 갈등적인 양상을 보였다. 회의 첫날 부의장국으로 이란이 선출되었다. 부의장국은 일반적으로 지역그룹별 할당에 따라 선출되는데, 이란이 속한 비동맹운동(NAM) 그룹의 국가들이 이란을 후보로 지명해 이를 공식적으로 제출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이에 반발했지만, 의장국인 베트남은 이란의 부의장국 선출을 승인했다. 이에 크리스토퍼 예오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비확산 차관보는 “오랫동안 NPT 비확산 의무를 경시해온 이란을 부의장국으로 선출한 것은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이며, 이번 회의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란 유엔대사는 미국과 이스라엘 역시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반박했다. 양측은 서로가 NPT 체제를 먼저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대립했고, 회의는 실질적인 논의 진전 없이 진행되었다. 결국 이번 제11차 NPT 평가회의 역시 최종 결과 문서 채택에 실패했다.
이처럼 NPT 평가회의가 난항을 겪는 것은 단순히 국제회의 하나가 위기에 처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핵 확산을 억제해 온 국제사회의 다자주의적 노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NPT 제6조는 모든 당사국이 핵 군비 경쟁의 중단과 핵 군축을 위한 성실한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주요 핵보유국들의 군축 의무 이행이 지지부진하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7년 유엔 총회에서 핵무기금지조약(TPNW)이 채택되었다. 비록 NPT가 즉각적인 핵 폐기를 보장하는 체제는 아닐지라도, NPT 평가회의는 기존 비확산 체제의 성과를 점검하고 ‘핵 없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 왔다. 따라서 핵보유국들이 참여하는 이 회의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인류가 수십 년간 구축해 온 핵 통제와 비확산 체제의 기반 자체가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핵 비확산 및 군축을 지향하는 흐름이 흔들리는 현실은 공습과 전쟁을 선택한 트럼프 행정부와 네타냐후 정권의 판단이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 두 정권은 이란 정부의 IAEA 비협조를 보며 외교적 수단만으로는 핵물질 축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어렵다고 보았고, 군사작전을 통한 핵 비확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이란의 핵 능력 억제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이란 전쟁은 일정 수준의 핵 물질을 보유하면서 핵무기화 임계치 아래에 머무르는 국가 사이에서 국제 사찰과 비확산 협력에 대한 냉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즉, 잠재적 핵 역량을 보유한 국가들이 국제 사찰에 협조하더라도 관련 시설이 공습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길 경우, 투명성 확보를 위한 자발적 협력 유인이 저하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NPT와 IAEA 체제의 핵심인 검증과 투명성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국제 핵 비확산 질서 전반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나아가 핵 군축과 국제 통제를 통해 핵위협을 줄이려는 국제 반핵평화운동의 토대도 흔들릴 수 있다.
둘째, 이란의 핵물질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경우 이는 일부 국가들의 핵 보유 또는 핵 능력 확보 의지를 자극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거론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NPT 가입국이지만, 모하메드 빈 살만(MBS) 왕세자를 비롯한 당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자국 역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국제 입찰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123 협정’ 체결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해당 협정은 미국 원자력에너지법(AEA) 제123조에 근거해, 미국과 협력하는 국가의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제한하고 IAEA의 강화된 사찰을 요구하는 규범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를 요구하면서도 강화된 IAEA 사찰 체제의 수용에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 핵시설이 군사공격을 받았음에도 고농축 우라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점은, 핵 억제가 군사적 수단만으로 달성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으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핵 개발 유인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란 정부의 핵개발은 핵 군축을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중대한 위협이다. 그러나 이란 핵 문제를 이유로 무력을 통해 핵물질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오히려 핵무기 확산을 억제해 왔던 기존의 제도적 장치를 약화시키고, 역설적으로 핵 확산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3.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 문제
종전 협상을 가로막는 문제 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저항의 축 세력 간의 갈등이다. 특히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충돌이 대표적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헤즈볼라는 즉각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네타냐후 정권은 보복 공습을 단행하며 교전이 확대되었다.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에 헤즈볼라 공격 중단을 요구했으나, 양측은 서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미국의 중재로 4월 17일 휴전이 성사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산발적인 교전과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은 왜 이란과 저항의 축을 상대로 군사 공격을 지속하는 것일까? 본 장은 이스라엘이 2010년대 이후 중동 정세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이스라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란과 저항의 축이라는 이란의 대리세력에 대한 위기의식이 형성되어 왔으며, 그 배경으로 주변 지역 정권의 구조적 무능과 불안정성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검토한다. 또한 저항의 축이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인식됨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대응이 중동의 안정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의 민주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1) 이스라엘의 중동정세 인식
2010년대 이후 이스라엘은 변화한 중동 정세에 새로운 안보 위기를 느꼈다. 건국 이래 주변 아랍국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인구와 자원이 많은 아랍 국가들의 결속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은 중동전쟁에서의 군사적 우위와 이집트와 요르단과의 평화 조약을 통해 일정 부분 완화되었다. 그러나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뒤흔든 ‘아랍의 봄’ 이후 지역 내 독재정권들이 붕괴하면서 정세가 변화하였다. 중동 전역에서 내전이 확산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무장 이슬람주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기존 국가 중심 위협과는 다른 형태의 불안정성이 부상했다. 실제로 2011년 이집트-이스라엘 국경 인근 네게브 지역에서 알카에다 계열로 알려진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이 민간인을 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는 지역 내 불안정성과 비국가 행위자의 위협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당시 이슬람 진영은 지정학적 분열선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축으로 분화했다. 첫 번째는 무슬림 형제단을 중심으로 하며 그들을 후원하는 튀르키예 에르도안 정권과 카타르가 포함되는 진영이다. 두 번째는 다양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으로, 이슬람국가(ISIS)와 알 카에다 연계 조직들이 대표적이다. 세 번째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저항의 축으로, 이란 혁명 이념을 기반으로 이스라엘과 서방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지역 질서의 안정과 현상 유지를 지향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등 걸프 왕정 국가들이다.
지난 10년간 앞쪽의 두 이슬람 진영은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우선 무슬림 형제단을 중심으로 한 진영에서 튀르키예와 카타르는 이집트 무르시 정권의 붕괴를 계기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 지원을 이유로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으로부터 단교 및 경제 봉쇄를 경험했으며, 튀르키예 역시 동지중해 가스 포럼(EMGF)에서 배제되는 등 외교적 고립 압력에 직면했다. 이후 양국은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주변국과의 관계 복원을 선택하면서 점차 실용주의적 외교 노선으로 이동하였다.
한편 극단주의 성향의 ISIS와 알 카에다 역시 급격히 약화되었다. ‘칼리프 국가’를 표방하며 확장했던 ISIS는 2017년 영토 기반을 상실하며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고, 알 카에다는 2022년 지도자 알 자와히리 사망 이후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2024년 정권을 차지한 시리아의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처럼 생존을 위해 노선을 조정한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무장 조직은 조직 기반을 상실하거나 분산된 형태로 전환되었다.
반면,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저항의 축은 오히려 세가 커졌다. 특히 2010년대 미국의 중동 개입 축소와 맞물리면서 이들 진영의 행보는 더욱 대담해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이란은 2019년 9월 예멘 후티 반군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쿠라이스와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을 공습했다. 해당 공습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당시 원유 생산량의 절반 가량이 일시적으로 감소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은 물론 걸프국가들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정부가 중동에서 손을 떼고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아시아로의 전략적 전환’ 구상과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시리아 내 미군 철수와 맞물리면서, 이스라엘과 걸프국은 중동에서 이란의 위협에 맞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브라함 협정이란 결과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과 걸프국이 공유한 이란의 위협과 미국의 중동 개입 축소에 대한 우려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거래의 달인’으로서 외교적 성과를 달성하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욕망에 부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국무부 관료 조직보다 자신의 측근이자 사위인 제라드 쿠슈너를 중심으로 한 탑다운 방식으로 협상을 추진했다. 협상 과정에서 걸프국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 문제를 우선순위로 여기고 있다고 느꼈고, 이에 대체로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기점으로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의 관계 정상화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협정 체결 이전인 2020년 6월, 유세프 알 오타이바 주미 UAE 대사는 이스라엘 유력 일간지 《예디오트 아하로노트》에 아랍 외교관으로서는 최초로 기고문을 게재하여 양측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해당 기고문은 이스라엘인의 약 38%가 읽었을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로 협정 체결을 계기로 양국 정부는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이스라엘과 UAE는 2022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며, AI 및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레인 역시 같은 해 이스라엘과 국방 협력 협정을 맺고 상호 직항 노선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조를 이어가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의 다음 목표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였다.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는 9.11 테러로 훼손된 자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탈석유경제로의 전환을 꾀하는 ‘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첨단기술 산업이 발달한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원했고, 네타냐후 총리와 비공식 회담을 가지며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양국 관계 정상화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먼저 2002년 ‘아랍 평화 구상’을 주도한 살만 국왕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그를 보좌하는 구세대 인사들은 국왕의 업적을 뒤엎는 협정을 섣불리 체결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다음으로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한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 사우디가 갖는 종교적 영향력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신중을 기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카슈끄지 암살 사건 및 우라늄 농축 문제를 고리로 빈 살만 왕세자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관련 논의는 더욱 지체되었다.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걸프국과 이스라엘 간의 교류 및 긴장 완화 분위기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군사공격으로 제동이 걸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중단했다. 동시에 아브라함 협정 추진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랍권에서 다시금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하마스의 2023년 10월 공격은 네타냐후 정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마스, 헤즈볼라 등 이란의 대리세력들은 그간 지속적으로 군사적 위협과 테러행위를 감행해 왔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IDF)은 ‘아이언 돔’과 같은 최첨단 방공망을 구축하는 한편, 2010년대 이후 이른바 ‘잔디깎기 전략’을 운용하며 이들 비국가 무장세력을 억제했다. 여기서 잔디깎기 전략이란 주기적인 군사작전을 통해 적의 군사 역량을 약화해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전략은 무장조직의 지속적인 테러가 전면적인 민간인 피해로 확산하는 것을 막는 데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의 공격은 달랐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1,20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며 이스라엘 건국 이래 하루 기준 최다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해 네타냐후 정권은 전쟁을 택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대리세력을 완전히 섬멸하는 한편, 그 배후인 이란을 상대로 ‘잔디깎기 전략’을 확장 적용하는 방식의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유지하는 대리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이란과 저항의 축들과의 다면전에 휘말릴 가능성을 차단하고자는 의도였다. 동시에 배후국인 이란의 핵 능력과 미사일 능력을 체계적으로 약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걸프국들은 교류를 확대하며 점진적인 긴장 완화를 모색해 왔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은 그간 아브라함 협정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팔레스타인 문제를 전면에 부각해 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이스라엘 사회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배후에 이란이 있음을 인지한다. 그러나 다수의 이스라엘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외교적 해법을 촉구한 것과 달리, 네타냐후 정권은 군사적 대응을 유지했다. 이는 주변국가들이 구조적으로 취약하여, 이란의 지원을 받는 세력을 이들 정부가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네타냐후 정부의 강한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2) 주변국의 취약성을 파고든 이란 정권: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하이파대학의 벤자민 밀러 교수는 이란 정부가 중동 내 국가권위가 취약한 국가들(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팔레스타인 등)의 혼란을 틈타 종파적·민족적 이데올로기를 매개로 이들을 ‘저항의 축’으로 포섭했다고 분석한다. 해당 국가들은 정부의 통치 역량이 부족한 데다, 국민들의 종파·민족적 정체성이 국가 정체성보다 앞서는 구조를 지니고 있어 안정적인 통치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무능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저항의 축’ 세력들은 이란의 물질적 지원(자금, 군사 훈련, 무기 공급)을 받으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본 절에서는 이들 중 레바논 정부와 헤즈볼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당 역학 관계를 살펴본다.
(1) 레바논 정부의 구조적 무능
레바논은 복잡한 종파 정치와 군벌 정치, 후견주의적 정치체계로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구조적으로 제약을 받는 국가다. 레바논은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프랑스의 위임통치(1920~1943)를 받았다. 이후 1943년 독립과정에서 주요 종파 집단 간에 국민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은 1932년 인구 조사결과를 토대로 종파 간 권력 배분 원칙을 제도화했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이슬람, 국회의장은 시아파 이슬람이 맡았고 외교부장관은 그리스 정교, 국방장관은 드루즈교가 맡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종파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레바논은 15년간 내전을 겪었다. 내전 종식을 위해 1989년에 체결된 타이프 협정은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간 권한 배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상호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그러나 기존 종파 권력 분점 체계는 유지한 채 권한만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국가 권력구조 내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국가기구의 기능을 저하시켰고, 사회관계가 종파집단에 더욱 종속되는 양상을 강화했다. 특정 종파의 유력가문이 후견주의를 통해 공적 자원을 배분하고, 이를 둘러싼 집단 간 경쟁이 지속되는 구도가 고착화되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가 무력을 독점하지 못했기에 레바논 내에서 비국가 무장세력의 영향력이 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전 과정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아 창설된 시아파 무장조직이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레바논 정계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자리잡았다. 내전이 끝난 후,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오랜 기간 군대를 주둔시키며 레바논 내정에 깊이 관여했다. 전후 재건을 이끌던 라피크 하리리 총리는 시리아의 영향력 축소를 추진하며 아사드 정권과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2005년 하리리 총리가 폭탄 테러로 암살당했는데, 국제조사를 통해 헤즈볼라가 용의자로 지목받았다. 이후 시리아군이 철수했으나, 헤즈볼라는 독보적인 무력을 기반으로 다른 종파 세력을 압도했다. 결과적으로 헤즈볼라는 ‘국가 내의 국가’로 성장하며 국내 정치에서 강력한 위치를 확보했다.
레바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던 헤즈볼라는 2024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2023년 10월 하마스 공격 이후 하마스와의 연대 차원에서 헤즈볼라가 교전을 확대하면서 이스라엘과의 충돌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2024년 9월과 10월에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과 하셈 사피에딘을 포함해 고위 간부 다수가 공습으로 사망하면서 조직이 큰 타격을 입었다. 그해 11월 27일 양측은 휴전을 체결했다. 휴전 내용은 2006년 유엔 결의안 1701호 이행을 재확인하는 형태로 정리했다.
그러나, 결의안 1701호의 핵심 쟁점인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놓고 레바논 정부는 실질적인 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2025년 1월 취임한 조셉 아운 대통령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무장해제는 레바논 남부지역에만 적용된다며 완전 무장해제를 거부했다. 한편 레바논 정부군 역시 무장해제에 소극적이었다. 총사령관인 로돌프 하이칼 장군은 레바논 정부군의 전력이 헤즈볼라에 비해 열세인 상황에서 완전 무장해제는 내전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주저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로 아운 대통령과 군 수뇌부 간 갈등이 지속되었고, 결과적으로 무장해제는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레바논 정부는 1월 8일 리타니 강 이남의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월 9일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 사령관 브래드 쿠퍼는 레바논 남부에서 이란제 드론과 미사일 등 무기를 수송하는 헤즈볼라의 지하 터널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3월 2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명분으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미사일과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레바논 정부의 헤즈볼라 무장해제 선언이 실상 유명무실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레바논 정부의 구조적 무능은 헤즈볼라가 정부군을 능가하는 독자적인 군사력을 구축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스라엘 정부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2) 이란의 ‘저항의 축’ 지원
그렇다면 헤즈볼라는 어떻게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이란의 지원이었다. 이란 정부는 시리아 내전과 ISIS의 확산을 계기로 중동 내 영향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반군과 ISIS 세력에 고전하자, 이란은 혁명수비대와 일부 정규군 병력을 파견해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으며, 현지 친정부 민병대 조직 형성과 운영에 관여했다. 또한 외국인 시아파 민병대를 동원해 전력 보강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 장군은 친이란 민병대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이후 쿠드스군과 친이란 세력은 2013년 시리아-레바논 접경지역인 알 쿠이사르 전투에서 시리아 반군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이란 정권은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이 일정 부분 위기를 완화하자, 현지 군사 자문관을 파견해 시리아 정규군과 친정부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친이란 무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또한 이란은 무기 지원에 그치지 않고 ‘저항’ 담론을 중심으로 문화센터와 종교기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반이스라엘·반미 성향의 무장세력과 정치세력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역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2017년 ISIS의 칼리프국 붕괴 이후에 이란 정권은 아사드 정권, 헤즈볼라와 연계해 시리아와 레바논 곳곳에 지하 벙커와 군사시설을 건설했다. 또한 주요 국경 검문소와 보급로를 장악해 이란의 물자와 무기를 유통할 수 있는 이라크·시리아·레바논·팔레스타인을 잇는 육상 회랑을 형성했다. 대표적인 거점으로는 알레포 공항과 인근 사피라 지역이 있다. 이란 쿠드스군은 민간인 거주 지역 인근에 무기 제조 시설과 미사일 저장기지를 구축했으며, 시리아 과학연구센터(SSRC)와 연계해 탄도미사일 생산 및 정밀유도미사일(PGM) 개량 사업에 관여했다.
이란 정권과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미사일을 저항의 축에 속한 다른 세력으로 이송·공급했다. 특히 헤즈볼라는 과거 제2차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시기(2006)와 비교할 때 무기의 규모와 성능이 양적·질적으로 모두 크게 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당시 헤즈볼라는 약 1만 5천 기 수준의 미사일 및 로켓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2021년에는 그 수가 13만 기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2006년과 비교할 때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전력은 약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헤즈볼라의 무기체계는 고도화되었다. 헤즈볼라는 이란으로부터 탄도미사일 ‘파테-110’와 이를 시리아에서 개량한 ‘M-600’미사일을 이전받았으며, 2021년 기준으로 약 3만 기를 보유했다. 해당 미사일은 GPS 유도 미사일이며, 사거리 200~300km로 이스라엘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동시에 구소련 스커드 미사일에서 파생된 액체연료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스커드 미사일(Scud-C/Scud-D)을 시리아로부터 소량 인도받았는데, 특히 2024년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서 아사드 정권이 보유한 미사일 중 일부가 헤즈볼라로 넘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사진] ‘파테-110’ 미사일
파테-110 미사일은 1995년 이란이 개발한 고체연료 기반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이다. 이란은 2010년 이후 파테-110의 파생형들을 연이어 공개했는데, 이 모델들은 기존 대비 정확도가 대폭 개선되었으며 GPS 유도 방식을 도입해 사거리를 200km에서 300km로 확장했다. 한편, M-600 미사일은 파테-110을 시리아에서 현지 개량한 기종이다. 이들 미사일 체계는 2010년 이후 이란과 시리아를 거쳐 헤즈볼라 등 대리세력으로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CSIS)
이처럼 축적된 전력을 기반으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 능력을 과시해 왔다. 2023년 5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국경에서 약 20km 떨어진 아람타 지역에서 내외신 기자 수십 명을 초청해,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을 가정한 군사 훈련을 공개했다. 훈련에는 드론과 로켓포 공격, 라드완 특공부대의 국경 침투 등 다양한 작전 시나리오가 포함되었다. 당시 헤즈볼라 고위 인사였던 하셈 사피에딘은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도발할 경우 갈릴리 지역을 해당 작전으로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10월 발생한 하마스 및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공격 과정에서 이 훈련의 일부 전술 요소가 활용된 것으로 평가되며, 그에 의해 이스라엘은 큰 민간인 피해를 입었다.
헤즈볼라의 군사력 증강은 단순히 레바논 내부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이란 정권이 시리아 내전과 ISIS 격퇴 과정을 활용해 중동 전역에 친이란 무장 네트워크를 구축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은 시리아를 거점으로 무기 생산·저장·수송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를 통해 헤즈볼라를 비롯한 ‘저항의 축’ 세력에 미사일과 드론, 정밀유도무기 기술을 이전했다.
헤즈볼라는 이러한 네트워크의 최대 수혜 세력 중 하나였다. 헤즈볼라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훈련 지원과 시리아 내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군사적 역량을 크게 강화했으며, 미사일·로켓 전력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비국가 무장조직 수준을 넘어서는 군사력으로 평가된다.
결과적으로 이란 정권은 헤즈볼라를 포함한 친이란 무장세력을 통해 이스라엘과 중동지역 국가들에 대한 비대칭 억지력을 구축하려 했다. 네타냐후 정권이 레바논 정부의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신뢰하지 않는 배경 역시, 헤즈볼라를 단순한 레바논 내부세력이 아니라 이란의 지역 군사 네트워크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란 정권이 구축한 ‘저항의 축’ 네트워크와 그 군사력은 네타냐후 정권의 군사작전만으로 완전히 약화·해체될 수 있을까?
3) 네타냐후 정권의 군사대응 비판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은 저항의 축을 넘어 그 배후인 이란을 직접적인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란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달리 인구와 자원, 재래식 군사력은 물론 핵 개발 역량까지 갖춘 국가인 만큼, 전면전은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수반했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 정권은 제한적 공습과 암살, 주요 군사시설 타격을 반복하며 상대의 역량을 상시 관리하는 이른바 ‘잔디깎기 전략’을 이란과 저항의 축 전반으로 확장 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와 향후 미국의 군사 원조 축소 가능성은 이스라엘 정부에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동 개입을 지속시키면서도, 동시에 이란과 ‘저항의 축’에 대한 군사적 억제력을 스스로 극대화해야 한다는 이중 과제에 직면하게 했다. 이에 네타냐후 정권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조하여 군사적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접근 방식은 이란의 핵 문제 해결이나 신정 체제 붕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저항의 축’을 근본적으로 약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중동 전역의 불안정성만 가중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네타냐후 정권이 이란과 ‘저항의 축’을 겨냥해 단행하는 일련의 공습은 역설적으로 중동 지역 시아파 무슬림들의 극단주의화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 중동의 시아파 무슬림들은 단순히 ‘저항의 축’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이들이 많다. 이란과 이라크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의 시아파는 종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이거나, 자국 내에서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취약한 상황에서 가해지는 외부의 압박은 시아파 공동체를 극단주의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전쟁 초기 2주 동안 레바논 내 최소 8개 마을에 연락해 시아파 주민들의 이주 또는 지역 이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및 드루즈교 주민들에게는 대피 시설로의 이동이 허용된 반면, 시아파 무슬림은 상대적으로 배제되는 조치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 지역에서 종파 간 긴장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이는 자국 사회 내에서 고립된 시아파 민간인들이 생존을 위해 다시 헤즈볼라와 같은 무장 세력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을 높이며, 급진화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차별 조치는 레바논을 넘어 중동 전역에 잠재되어 있던 종파간 갈등을 자극하고 있다. 전쟁 이후 바레인에서는 정부가 반정부 성향으로 의심되는 시아파 시민들을 체포해 일부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전쟁 초반 시아파 시위가 유혈사태로 이어지자, 당국이 시아파 밀집 지역인 길기트발티스탄에 군대를 투입하고 통행금지령을 발령했으며, 통신망도 일시적으로 차단했다.
시아파 전체를 겨냥한 탄압이 거세질수록, 이란 신정체제를 지지하지 않던 온건한 시아파 대중까지도 이번 전쟁을 시아파 공동체 전체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와 같은 소외와 고립에 대한 공포는 시아파 사회 내부를 결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저항의 축’ 지도부가 약화되더라도 하부 무장 네트워크가 사회적 기반을 바탕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조건을 역설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전시 고립 국면은 이란 신정체제에 맞서 개혁과 대안을 모색하던 이란 내부 사회운동 세력의 입지도 좁히는 역효과를 낳는다. 현재 이란 정권은 전시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3개월이 넘도록 인터넷을 전면 차단하고 있다. 더욱이 이란인권센터(CHRI)에 따르면, 정권은 4월까지 체제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최소 22명 이상 처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신정체제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원천 차단한 채 공포정치를 앞세워 내부 통제를 극대화하며, 이란 내부에서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는 모든 조직적 시도를 봉쇄하고 이러한 조치를 이란 혹은 시아파 내에서 정당화하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의 군사작전은 이스라엘 사회에도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스라엘은 현재 국내적으로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은 이스라엘을 ‘유대인 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구체화할 성문헌법을 구축하지 못한 채 기본법을 제정해 헌법의 기능을 대리했다. 완결된 경성헌법의 부재는 이스라엘 사회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국가인지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 배경엔 인구구성의 변화가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초정통파 유대교인 하레딤(Haredi) 인구 비중이 크게 늘었다. 초정통파 하레딤은 건국 당시 인구가 400명에 불과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여파로 벤구리온 정부는 ‘전통 보존’ 차원에서 이들에게 세금과 병역 의무 면제를 부여했다. 그러나 하레딤 가구당 출산율은 지난 10년간 6.5명을 기록하고 있어, 이스라엘 사회에서 인구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래프] 이스라엘 인구구성 변화
2025년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는 이스라엘에서 하레딤의 인구는 2009년 75만 명에서 2025년 145만 명으로 연간 4.2% 성장세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하레딤의 빈곤율은 33%로, 그외 집단의 빈곤율 14%와 비교할 때 빈곤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청년층이 다수인 하레딤을 둘러싼 교육, 노동문제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임을 주장했다. (출처: IDI)
늘어난 하레딤은 이스라엘에 두 가지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하나는 유대인 정착촌 문제다.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전통적인 거주 구역은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나, 다수의 하레딤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새로운 땅과 집을 사기 어렵다. 그 결과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욕구가 커졌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많은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참여 욕구 증대다. 청년 하레딤 사이에선 앞선 정착촌 문제, 빈곤 문제와 맞물려 유대인 중심주의가 강하게 나타났다. 그 결과 하레딤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졌고, 네타냐후 총리와 리쿠드당이 이들 집단에 의존하면서 극단주의에 더욱 경도되고 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정계는 좌파와 우파 구도가 아닌 종교와 세속 구도로 점차 변모했으며, 이러한 정치 대립구도가 폭발한 것이 2023년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부 개편 시도였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회 모순을 고려할 때, 네타냐후 정권이 저항의 축을 상대로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사회갈등을 더욱 키울 수 있다. 하레딤의 병역을 둘러싼 세속 유대인들과 하레딤 사이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2024년 6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시민단체의 병역 형평성 소송에 대해 하레딤의 병역 면제를 유지할 법적 근거가 없어 하레딤도 병역 복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하레딤 다수는 징집을 거부하고 있으며, 네타냐후 연립정권 내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들이 반발하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은 이들 정당의 지지가 없다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기에, 징집 연령을 상향하는 등 징집 이행에 소극적이다. 이 조치는 경제적 부담과 병역 부담이 몰린 세속 유대인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세속 유대인의 불만이 커질수록 네타냐후 총리와 집권 여당인 리쿠드당의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에 대한 의존도 역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연정 유지를 위해 하레딤 공동체의 이해관계가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반영되는 구조를 강화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법부 독립성 및 병역 형평성과 같이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원칙이 훼손될 우려도 존재한다. 또한 연정 내 강경 민족주의·종교세력의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둘러싸고 팔레스타인 및 주변국과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도 크다. 결국 네타냐후 정권의 군사작전 장기화는 이스라엘 내부의 사회갈등을 심화시키고, 이러한 내부 불안정이 다시 더욱 강경하고 배타적인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 사회통합뿐 아니라 중동 전체의 안정과 평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정리하자면, 이란과 ‘저항의 축’이 이스라엘에 주는 실존적 위협이 사실일지라도, 그들을 상대로 ‘잔디깎이 전략’을 지속, 확장하는 것은 한편으론 중동 시아파 무슬림의 고립감을 키워 이들의 극단주의화를 자극할 수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하여 강경하고 배타적인 정치적 선택을 연이어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두 효과는 상호 연쇄작용을 통해 중동의 영구적인 불안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4. 결론
본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쟁의 여파를 고려하면, 이번 전쟁은 결코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이라는 세 국가 사이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으며, 전쟁 당사국만이 아니라 중동, 나아가 전 세계 시민의 안보적·경제적 피해를 지속적으로 가중하는 장기적 불안정성을 예고한다. 현재 상황에 대해 어느 한 측의 책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 위기를 구성하는 행위자들의 책임 층위가 서로 다른 인과관계 속에서 위기를 고조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란 정권의 경우, 긴장을 완화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여러 차례 스스로 걷어찼다. 이란 신정체제는 내부의 모순을 은폐하고 국제사회와 협조하려는 노력을 방기한 채, 일방적인 조치를 여러차례 취했다. 이란은 개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항행의 자유와 세계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또한 이란은 핵합의를 위반해 고농축 우라늄을 다량 생산하고, 취약한 주변국가에 이슬람주의를 확산시키는 한편, 위험한 무기를 공급해 역내 불안을 초래했다. 국제법과 규범을 준수하려는 노력을 장기간 배제한 채, 중동 전역에 긴장을 상시화하는 신정체제의 행보는 이번 전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요소다.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네타냐후 정권의 책임은 이란 신정체제의 위험성을 제어하는 방식에 있다. 이란 정부가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 위기와 긴장 상태를 야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응이 반드시 군사 공격일 수는 없다. 다자주의적 통제와 압박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하지만, 충분히 유효한 대안이며, 지난 1월의 대규모 시위는 이란 신정체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수 국민의 정당성을 상실한 채 강압적 탄압에 의존해 온 정권은 내부적 사회 모순만으로도 자멸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이는 향후 체제를 전환하고 역내 불안정성을 완화할 제도적 기틀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네타냐후 정권은 일방적인 공습을 선택해 앞선 장기적인 노력을 위기에 빠뜨렸으며, 이는 국제법과 규범 측면에서 정당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두 정권이 감당할 수 없는 여러 새로운 위험을 키우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정권은 잘못된 위기관리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체제가 주변국과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에 책임을 물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위기를 증폭시키는 강대국의 위기관리 방식을 비판해야 한다. 국제법 위반이 난무하는 이번 전쟁을 바라볼 때, 단순히 진영론적 혹은 도덕적 비난에 그치지 않고 규범의 파괴가 개별 국가와 세계질서에 구체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그 파급 효과를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종전협상이 성사되더라도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끝나더라도 분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로 인한 세계적인 피해는 막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