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변화,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시장, 고용복지제도의 구조적 조건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2026년 현재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합계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약 2.2명)을 밑도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세계 236개국 중 210개국에서 예외 없이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 추세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에서도 한국의 초저출산·초고령화는 유례를 찾기 힘든 극단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초저출산’이란 합계출산율 1.3명 이하가 3년 이상 지속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세대교체 주기에 따라 약 45년 만에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또 ‘초고령화’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선 사회를 뜻한다. 고령인구와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노년 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고령자 수) 산출의 기준이다. 현재 추세에 따르면 한국은 2040년 인구 3명 중 1명이 노인인 나라가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초저출산 상태가 가장 오래 지속되고, 초고령화 사회로도 가장 빠르게 진입했다. 2002년부터 초저출산 상태에 진입했고, 2021년 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 됐으며, 이후에도 계속 하락해 2023년에는 0.72명(서울은 0.55명)까지 떨어졌다. 이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홍콩과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출산율의 절반 수준이다. 또한 한국은 2017년 8월 고령사회에 진입한 이래 7년 4개월 만인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 추세가 가파른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10년이 걸렸는데, 이보다 더 빠른 속도다.
이러한 추세가 반전되지 않을 경우, 2050년대에 68%의 확률로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할 것이고, 207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2년 기준 OECD 평균 노년 부양비 24.6명과 비교하면 극단적인 수치이다.
[그래프]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추이 (출처: 국가데이터처·《머니투데이》)

다만 2026년 현재 출산율은 조금 반등하는 조짐이다. 2023년 0.72까지 떨어졌던 합계출산율은 2024년에 반등해 2025년 0.8명대를 회복했다. 올해 상반기 출생아 수는 14만 5,804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15.4%(1만 9,430명) 늘어났다. 상반기 증가율로는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대 증가율이다. 출생아 수 증가에 힘입어 인구의 자연감소(사망자‐출생아 수) 폭도 2024년 상반기 6만 62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5만 8,802명, 올해 상반기 3만 3,018명으로 2년 연속 줄었다.
그러나 이 정도 반등으로 위기가 해소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혼인과 출산 건수가 증가한 주된 원인은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1990년대생이 결혼 적령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이 세대의 인구 규모가 1980년대생이나 2000년대생보다 크다는 점이 반등의 주된 이유이다. 따라서 이들의 가임기간이 끝나는 순간, 지표가 다시 하락 추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국가데이터처의 장래추계인구를 보면, 올해 172만 명인 30~34세 여성인구는 내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35년에는 132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3 즉, 약간 반등한 출산율이 유지되더라도, 아이를 낳을 인구 모집단이 급감하면서 출생아 수가 다시 줄어드는 시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이후 이미 예고된 인구의 극단적 감소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나타나고 있고, 한국 사회는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야 하는가. 사회진보연대는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1년에 걸쳐 총 일곱 차례 회원 집단 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는 다섯 가지 주제를 논의했다. ①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인구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② 주류경제학 및 인구학의 진단과 해법은 무엇인가, ③ 유독 한국에서 저출산·고령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④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른 고용구조와 사회보장제도 변화에 사회운동은 어떠한 입장과 대응 방향을 세워야 하는가, ⑤ 저출산 정책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과 대안은 무엇인가 등의 쟁점을 논의했다.
세미나 종료 이후 결과를 정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상황도 변했다. 또 최근 합계출산율이 소폭 반등하자, 인구 변화가 노동시장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인구가 향후 노동시장, 사회·경제정책, 고용과 일자리, 산업구조 변화 등 노동자의 삶 전 영역에 걸쳐 핵심 쟁점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거시적 문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글은 인구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이나 노동운동의 구체적 요구와 행동을 제시하기보다는, 오늘날의 경제·사회 정세를 인식하고 사회운동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데 인구 문제를 중요한 변수이자 조건으로 고려하기 위한 논의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기본 관점과 사회운동의 방향성을 큰 틀에서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구체적인 제도와 이슈의 변화에 발맞추어 논의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본 글은 필자가 세미나 논의를 재구성해 작성한 것으로, 토론 결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부분은 추후 보완할 필요가 있다.
1.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1) 왜 인구변천이 일어나는가?
장 클로드 세네의 『인구학 입문』에 따르면, 인구학은 ‘정밀과학’은 아니지만, 일정한 통계적 규칙성이라는 의미에서 ‘법칙’을 정할 수 있다. 먼저 출생성비, 연령별 활동력, 출산 빈도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한계에 기반한 ‘생물학적 법칙’이 있다. 또한 ‘역사적 법칙’도 존재하는데, 이는 현대사회의 인구가 초기에는 빠르게 증가하다가 점차 속도가 둔화하여 결국은 감소하는 과정, 즉 ‘인구변천’을 말한다. 한편 ‘사회적 규칙성’도 존재하는데, 이는 빈곤층의 높은 사망률과 중산층이 먼저 저출산 경향을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이 중 역사적 법칙으로서 ‘인구변천’은 현대 모든 국가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특징이자, 인구론의 정형화된 사실이다. ‘인구변천’이란, “산업혁명 이후 고출산·고사망 체제에서 저출산·저사망 체제로 이행하면서, 사망률은 꾸준하게 하락하는 반면, 출산율이 상승에서 하락세로 반전되어 인구성장률이 상승에서 하락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뜻한다. 인구성장률이 종(벨) 모양의 곡선을 그린다는 이 관찰은 유럽 산업혁명기의 경험에서 보편화된 인구론의 핵심 개념이다.
[그래프] 인구변천의 모형 (출처: 장 클로드 세네, 『인구학 입문』)

그렇다면 현대 자본주의에서 인구변천은 왜 발생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류경제학은 ‘인구론적 전환’이라는 이론적 분석을 시도했다. 인구론적 전환이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인구학계가 고출산·고사망 사회만을 대상으로 삼았던 맬서스 인구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솔로우의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을 활용해 현대적 인구변천을 설명하려 한 시도를 가리킨다. 이는 “맬서스에서 솔로우로의 인구론적 전환”이라 표현된다.
그러나 인구론적 전환은 인구변천의 원인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인구성장률이 하락하는 원인을 설명하려면 주류경제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세미나에서 확인한 주류경제학의 인구론적 전환이 가진 한계를 간략히 검토하고,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인구변천을 설명할 수 있는 주요 논거를 정리한다.
2) ‘인구론적 전환’의 한계
주류경제학이 시도한 인구론적 전환의 한계는 마르크스주의 관점과 구별되는 주류경제학의 핵심 개념에서 비롯된다. 주류경제학의 기본 전제는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분배’이며, 이는 맬서스의 ‘수확체감의 법칙’을 그대로 공유한다. 나아가 인구와 경제의 성장률이 균형으로 수렴하면 이후에는 동일하다는 ‘지속상태(steady state)’를 결론으로 제시한다. 바로 이러한 두 개념(수확체감의 법칙과 지속상태) 때문에 주류경제학은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인구성장률이 상승에서 하락으로 ‘반전’되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설명해 낼 수 없다.
(1) 맬서스 학파의 인구론: 고출산·고사망 균형
맬서스 학파 인구론의 핵심은 ‘수확체감의 법칙’이다. 이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국민소득은 산술적으로 증가한다”는 맬서스의 명제에 기초한다. 인구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1인당 소득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적극적 억제(기아·전쟁 등에 따른 사망률 상승)’와 ‘예방적 억제(만혼·피임 등에 따른 출산율 하락)’가 작동하면서 인구는 생존에 요구되는 소득 수준에 상응하는 적정 수준으로 회귀한다.
이 모형은 고출산·고사망 상태가 반복·지속되는 이른바 ‘저수준 균형의 함정(Low-Level Equilibrium Trap)’을 묘사하는 데 그친다. 인구성장률은 외생변수, 즉 모형 외부에서 주어진 임의의 상수로 취급되며, 이 외생적 인구성장률은 경제성장률보다 높다고 전제된다. 그에 따라 높은 인구증가율은 1인당 소득을 낮추고, 이는 다시 앞서의 메커니즘을 통해 인구 증가를 억제한다. 인구가 줄어 1인당 소득이 회복되면 인구성장률은 다시 본래의 높은 수준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이 모형은 인구성장률이 1인당 소득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관한 인과관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경제성장률과의 상대적인 대소관계에 따라 인구 증가가 조정될 뿐, 출산이나 인구성장률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내생적으로 결정되는지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당 소득이 상승할수록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2) 앨런의 모형: 인구성장률의 내생화 시도
영국의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은 맬서스의 모형에서 외생변수로 취급되던 인구성장률을 1인당 소득에 의해 결정되는 내생변수로 전환했다. 그는 전현대 사회가 ‘저수준 균형의 함정’에 갇혀 1인당 소득이 정체되어 있었던 반면, 산업혁명을 계기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1인당 소득이 상승하고, 이러한 변화가 인구에 다시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앨런에 따르면 1인당 소득이 상승하면 생활수준이 개선되면서 전현대 사회의 높은 사망률은 하락한다. 동시에 예방적 억제(만혼·피임)이 완화되면서 낮았던 출산율은 상승한다. 따라서 1인당 소득의 상승은 인구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구성장률을 내생변수로 전환했음에도 앨런의 모형은 여전히 수확체감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결국에는 경제성장률이 인구성장률에 못 미치게 되면서 1인당 소득은 다시 하락하고, 그에 따라 인구성장률도 낮아져 경제성장률 수준으로 회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앨런의 모형도 결국에는 맬서스적 ‘함정’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이 모형은 얼핏 보면 전현대 사회에서 현대 사회로의 이행과 인구변천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현대 사회가 ‘저수준 균형의 함정’에 머물러 있다가 산업화라는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이 상승하면, 1인당 소득이 오르고 이에 따라 인구성장률도 상승한다. 그러나 인구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면 수확체감이 다시 작동하면서 1인당 소득 상승세가 둔화되고, 결국 인구성장률도 경제성장률 수준으로 하락한다. 산업화 이후 경제는 새로운 맬서스적 균형으로 수렴하게 된다.
앨런은 인구성장률을 형식적으로 내생화했지만, 1인당 소득이 상승하면 인구성장률이 높아지고 1인당 소득이 하락하면 인구성장률도 낮아진다는 기본 논리는 맬서스적 모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성장률의 변화 역시 결국 경제성장률과의 상대적 관계에 의해 설명된다. 따라서 겉으로는 산업화 이후 인구성장률이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하는 경로를 그릴 수 있지만, 인구성장률 자체의 변화를 내생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특히 인구성장률이 하락하려면 경제성장률이 인구성장률에 뒤처져 1인당 소득이 다시 낮아져야 한다고 전제해야만 한다(수확체감의 법칙). 이런 점에서 이 모형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당 소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3) 넬슨의 모형: 솔로우 자본축적 모형과 지속상태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넬슨은 후진국의 저발전 상태와 선진국으로의 이행을 거시경제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맬서스 인구론에 솔로우의 자본축적 메커니즘을 결합한 확장된 모형을 제시했다. 기존 맬서스 모형은 인구와 소득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구와 소득이 모두 정체된 상태를 균형으로 설명했다. 반면 넬슨은 여기에 솔로우의 거시생산함수를 결합함으로써 인구성장률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양(+)의 값을 갖는, 즉 인구와 소득이 함께 증가하는 동태적인 ‘지속상태(steady state)’까지 분석의 범위를 넓혔다.
솔로우의 거시생산함수는 자본과 노동의 투입을 통해 한 국가의 국민소득이 창출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노동자 1인당 자본이 증가하면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따라서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한다. 늘어난 국민소득의 일부가 다시 저축과 투자로 이어지면서 노동자 1인당 자본도 증가한다.
그러나 자본이 축적될수록 추가적인 자본 투입으로 얻을 수 있는 생산 증가분은 점차 줄어드는 자본의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 반면 인구가 증가하면 기존의 자본을 더 많은 노동자가 나누어 사용해야 하므로 노동자 1인당 자본은 감소한다. 결국 자본의 수확체감으로 인해 새로운 투자가 늘리는 1인당 자본의 양은 점차 줄어들고, 마침내 그 증가분이 인구 증가로 인한 1인당 자본의 감소분을 겨우 보충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때 노동자 1인당 자본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1인당 국민소득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지속상태’에 도달한다. 지속상태에서는 1인당 자본과 1인당 국민소득이 일정하게 유지되므로, 총자본과 국민소득은 인구와 같은 속도로 증가한다. 따라서 인구성장률과 자본성장률, 경제성장률은 서로 같아진다. 솔로우는 인구성장률을 외생변수로 봤기에, 자본성장률과 경제성장률이 인구성장률로 수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솔로우 모형에 따르면 노동자 1인당 자본이 적은 후진국은 선진국보다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자본이 부족한 단계에서는 추가적인 자본 투입이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반면, 이미 자본을 많이 축적한 선진국에서는 수확체감으로 인해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넬슨은 대다수 후진국이 ‘저수준 균형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빅 푸시(big push) 산업화’를 제시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노동자 1인당 자본을 빠르게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최저생계 수준에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에 성공한 후진국에서는 한동안 자본과 국민소득이 인구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한다. 그러나 자본축적이 진전될수록 성장 속도는 점차 둔화하고, 결국 경제성장률이 외생적으로 주어진 인구성장률과 같아지는 새로운 지속상태에 도달한다. 이때부터 1인당 자본과 1인당 국민소득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처럼 솔로우 이론을 차용한 넬슨의 모형은 자본축적이라는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인구와 소득의 관계에만 의존했던 맬서스 이론을 넘어섰다는 의의가 있다. 자본투자를 통해 후진국이 저수준 균형의 함정에서 벗어나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대한 수확체감이 작동하는 한 경제성장률이 결국에는 인구성장률과 같아지는 지속상태로 수렴한다. 더욱 근본적인 한계는 인구성장률 자체가 여전히 외생변수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모형은 인구성장률이 왜 변화하는지를 특히 경제발전과 소득 상승에 따라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이 하락하는 인구변천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한다.
(4) 아리기의 스미스 모형: 부당전제의 오류
아리기는 앞서 설명한 솔로우 모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외생변수였던 인구성장률을 1인당 국민소득의 감소함수로 설정한 ‘스미스 모형’을 제시했다. 즉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할수록 인구성장률이 낮아지도록 가정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발전과 소득 상승에 따라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이 하락하는 현대적 인구변천을 모형 안에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부당전제의 오류에 빠진다. “왜 1인당 소득이 상승하면 인구성장률이 하락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스미스 모형은 바로 그 설명해야 할 현상을 별도의 인과적 설명 없이 모형의 출발점인 가정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모형의 그 외의 작동 원리는 앞서 살펴본 넬슨의 모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해 경제성장률이 점차 낮아져 인구성장률과 일치하는 균형, 즉 지속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앨런, 넬슨, 아리기의 모형은 서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인구성장률을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 ‘수확체감의 법칙’을 전제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맬서스에서 솔로우로의 인구학적 전환’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구변천을 설명하는 이론의 ‘전환’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 모형은 1인당 소득이 상승하는 과정에서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이 왜 하락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며, 경제성장률과 인구성장률이 같아지고 1인당 소득이 정체하는 ‘지속상태’를 경제가 도달하는 균형점으로 제시한다.
수확체감의 논리로는 1인당 소득이 줄어서 인구성장률도 낮아지는 경우는 설명할 수 있지만, 1인당 소득이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인구변천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려면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자체가 가구의 출산 선택과 인구재생산 방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인과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를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3) 마르크스주의 인구론: 자본주의의 역사특수적 인구법칙
마르크스주의는 인구변천을 초역사적인 자연법칙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생산양식에 내재한 ‘역사특수적 인구법칙’의 산물로 파악한다. 핵심 명제는 ‘1인당 국민소득·임금률·생활수준이 상승할수록 출산율이 하락해 인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1930년대 소련의 경제학자 스타니슬라프 스트루밀린이 이 법칙을 정식화했다. 이 법칙의 함의는 이러하다.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를 덜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출산을 억제한다.
(1) 인구변천의 역사적 실증: ‘엥겔스 휴지기’와 그 이후
우선 ‘1인당 국민소득·임금률·생활수준이 상승할수록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은 하락한다’는 관계가 실제 역사 속에서 나타났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트루밀린의 법칙은 19세기 영국 산업혁명기의 이른바 ‘엥겔스 휴지기(Engels’ Pause, 1780년대~1840년대)’와 그 이후 시기를 비교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확립되기 시작한 엥겔스 휴지기에는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이 오히려 크게 상승했다. 겉으로 보면 소득이 증가하는 시기에 인구도 함께 증가한 것이므로 스트루밀린의 법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1인당 국민소득과 노동자의 실질임금·생활수준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과 임금률, 그리고 생활수준을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엥겔스 휴지기 동안 기계제 대공업 발전으로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나폴레옹 전쟁에 따른 물가 급등과 임금분배율 하락으로 노동자의 임금률과 실질 생활수준은 크게 악화했다. 이후 1820~1840년대에 물가가 일부 안정되었음에도 급격한 도시화로 주거비 부담이 급증하면서 식량 소비를 비롯한 노동자의 실질 생활수준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생활수준이 이처럼 악화되면서 가계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동노동에 의존할 유인이 커졌고, 자녀의 노동이 가구소득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하는 가운데서도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은 오히려 상승했다.
그러나 1850~1860년대에 들어 곡물법과 항해법의 폐지를 배경으로 물가가 안정되고 노동자의 임금률과 생활수준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즉 1인당 국민소득의 상승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이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의 하락과 함께 나타났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상태가 인구변천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 마르크스의 ‘정상상태’와 인구변천
마르크스주의 인구론이 주류경제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전경로와 ‘균형’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파악한다는 데 있다. 주류경제학은 수확체감의 법칙과 함께 노동과 자본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는 ‘중립적 기술진보’를 전제한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인구와 국민소득이 일정한 속도로 함께 증가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일정한 수준에 머무르는 ‘지속상태(steady state)’를 자본주의 경제가 수렴하는 균형으로 상정한다.
반면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증대하기 위한 고정자본 투자, 즉 노동을 절약하는 대신 자본을 축적하는 ‘편향적 기술진보(노동절약적·자본소비적 기술진보)’를 자본주의의 기본 동학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기술진보에서 노동자 1인당 자본의 증가 속도가 노동생산성의 상승 속도를 앞지르면 자본생산성이 하락하고, 장기적으로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나타난다. 이러한 조건에서 불황이 진행되면서 자본축적과 인구변천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거친다.
[그래프] 마르크스주의 모형 (1): 이윤율과 자본성장률, 경제성장률
첫째, 자본생산성은 자본 대비 국민소득이다. 자본생산성의 하락(자본생산성 성장률이 음수)은, 자본성장률보다 경제성장률이 낮다는 뜻이다. 둘째, 이윤은 국민소득의 일부다. 따라서 국민소득 중 이윤으로 분배되는 비율이 일정하다면, 자본생산성이 하락할 때 이윤율(자본 대비 이윤)도 하락한다. 셋째, 이윤의 일부가 투자되어 자본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이윤에서 투자되는 비율이 일정하다면, 이윤율의 하락은 곧 자본성장률의 하락으로 이어지며 둘의 하락 속도는 같다.

불황기에는 노동자 1인당 자본축적과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계속되지만, 자본생산성 저하로 인해 이윤율은 하락한다. 이윤의 일부가 투자되므로, 이윤율이 하락하면 자본성장률도 하락한다.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므로, 경제성장률은 자본성장률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므로 경제성장률은 인구성장률보다 높다. 그런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므로, 인구성장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 즉, 자본성장률 → 경제성장률 → 인구성장률 순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자본축적에 따라 경제성장과 인구성장의 경로가 차례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역사특수적’ 법칙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프] 마르크스주의 모형 (2): 경제성장률과 인구성장률
자본주의의 편향적 기술진보의 핵심은 노동자 1인당 자본을 늘려 노동생산성, 즉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이윤율이 하락하며 자본성장률도 하락하고, 따라서 노동자 1인당 자본의 축적도 둔화하나, 자본축적이 중단(자본성장률이 0에 도달)되기 전까지는 노동생산성이 상승한다. 영역 ③까지는 경제성장률이 인구성장률을 초과한다. (참고로 이 그래프는 대소관계 확인만을 목적으로 각 선을 직선으로 단순화했다.)
결국, 인구성장률은 경제성장률보다 먼저 0에 도달하고, 이후 인구감소 국면에 들어선다(그림의 영역②). 이후 자본생산성의 하락이 더욱 누적되면 경제성장률도 0 아래로 떨어져 국민소득의 절대 규모가 감소하는 국면에 진입한다(그림의 영역③).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정상상태(stationary state)’다. 이 단계에서는 국민소득이 감소해 이윤과 투자도 감소한다. 그러다 이윤율이 0에 도달하면 자본축적이 정지하고 노동생산성 상승이 멈춘다(그림의 영역③ 마지막 지점).
정리하면, 주류경제학의 지속상태가 경제가 일정한 성장경로에 수렴하는 안정적인 균형을 의미한다면, 마르크스의 정상상태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로 인구와 경제가 함께 절대적으로 수축하는 체제적 위기, 즉 붕괴 국면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구조에 주목한다는 차이점은 마르크스의 ‘상대적 과잉인구’와 맬서스의 ‘절대적 과잉인구’ 개념을 대조하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맬서스가 생물학적 번식력과 식량의 제약이라는 자연적 조건에서 과잉인구를 도출했다면, 마르크스는 노동절약적 기술진보와 자본축적의 결과 산업자본에 흡수되지 못하고 배제되는 노동력, 즉 산업예비군에서 과잉인구의 원인을 찾았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생산성과 1인당 소득은 높아질 수 있지만, 동시에 노동을 대체하는 자본축적이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은 산업예비군과의 경쟁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이에 따라 고용과 생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과 부담도 증가한다.
마르크스주의 인구론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의 조건이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자녀 출산을 억제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발전은 단순히 소득을 증가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력의 고용·재생산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며, 이를 통해 출산율과 인구성장률을 낮추는 역사특수적인 인구법칙을 만들어낸다.
(3) 콜드웰의 세대 간 자원이전론: 왜 부유해지면 출산하지 않는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소득과 생활수준이 상승할수록 왜 출산율이 낮아지는지를 설명하는 미시적 인구이론으로는 게리 베커의 ‘가족경제학’과 존 콜드웰의 ‘세대 간 자원이전론’이 있다. 베커의 가족경제학은 가정을 부모의 소득과 시간을 투입해 ‘자녀’라는 재화를 생산하는 경제단위로 파악한다. 부모는 제한된 예산 아래에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녀의 ‘수’와 ‘질’ 사이에서 선택한다. 이때 소득이 증가하면 자녀의 수를 늘리기보다 적은 수의 자녀 원래대로 교육과 건강 등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교육과 건강 등의 ‘질’을 높이는 선택을 선호하게 되고, 그 결과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콜드웰은 이러한 설명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거꾸로 파악한다고 비판한다. 콜드웰은 「인구학적 전환 이론의 수정을 향하여」(1976)에서 아동을 부모가 효용 극대화를 위해 선택하는 하나의 재화로 보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부모가 처음부터 자녀의 ‘양’과 ‘질’을 비교하여 후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화가 심화되고 노동자들이 이에 적응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비용 자체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이 더 높은 지위와 소득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녀에 대한 교육투자는 노동자 가구 사이의 사회적·경제적 경쟁 속에서 확대된다. 따라서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의 증가는 부모의 단순한 선호 변화라기보다 자본주의적 노동시장과 신분 상승 경쟁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출산은 아동이 가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용 구조가 변화한 결과다.
콜드웰은 이를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부의 순흐름(net wealth flows)’의 방향이 역전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부가 주로 ‘자녀 → 부모’의 방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많은 자녀를 낳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했다. 아동노동이 가구소득의 중요한 원천이었던 반면, 자녀의 교육과 양육에 필요한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소득과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부의 흐름은 점차 ‘부모 → 자녀’의 방향으로 역전된다. 지식노동자로 진입하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키기 위해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해지면서 자녀 한 명에게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모, 특히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따른 기회비용도 커진다. 임금률이 상승하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확대될수록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노동시장을 떠나거나 노동시간을 줄일 때 포기해야 하는 임금소득이 증가한다. 다시 말해 여성이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득을 포기하고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는 경제적 비용 역시 커지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한편으로 자녀의 교육·양육에 필요한 직접비용을 증가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부모가 양육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소득이라는 간접비용까지 높인다. 이에 따라 자녀가 부모에게 경제적 자원을 제공하던 관계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막대한 자원을 이전하는 관계로 전환되고, 다산의 경제적 유인은 점차 약화된다.
이러한 콜드웰의 ‘세대 간 자원이전론’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1인당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이 상승할수록 출산율이 하락한다는 ‘스트루밀린의 법칙’에 미시적 설명을 제공한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노동의 성격과 교육의 필요성, 자녀 양육비용, 부모의 기회비용이 변화하면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의 경제적 유인이 줄어드는 것이다.
4) 마르크스주의 인구론의 시사점
마르크스주의는 인구변천을 경제성장률에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변수가 아니라, 자본축적의 동역학이 관철되는 자본주의 체계에 고유한 ‘역사특수적 인구법칙’의 결과로 인식한다. 자본은 ‘노동절약적 편향적 기술진보’를 통해 노동자 1인당 자본을 축적하고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지만,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본생산성의 하락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동반한다. 동시에 ‘상대적 과잉인구’ 문제가 심화하고 노동자 간 경쟁과 노동력 재생산비용이 상승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상승하며 노동자의 임금률과 생활수준이 상승할수록 출산율이 하락하는 ‘스트루밀린의 법칙’과, 부모와 자녀 사이의 부의 순흐름이 역전되고 여성노동의 기회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콜드웰의 세대 간 자원이전론’이 관철된다. 그 결과 인구성장률이 먼저 음(-)의 값으로 하락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며, 이어서 경제성장률도 음의 값으로 하락해 ‘정상상태’에 이른다.
마르크스주의 인구론을 채택한다는 것은 현대적 인구변천을 단순한 인구통계상의 변동이나 정책적 조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지속가능성이 한계에 부딪힌 체계적 위기의 한 측면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인구감소는 물질적 풍요의 확대와 양육의 기회비용 상승이 결합해 나타나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인 귀결이며, 생산양식의 변혁 없이는 되돌리기 어려운 비가역적인 흐름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다음과 같은 쟁점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주류경제학이 상정하는 ‘지속상태’, 즉 경제와 인구가 일정한 속도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균형과 달리 인구와 국민소득이 축소되는 ‘정상상태’를 예비해야 한다면, 오늘날 경제 규모와 세금수입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확대를 전제로 설계된 경제·사회정책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총임금의 지속적 성장을 전제로 설계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사회복지 재정도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그 부담이 미래세대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 고도성장기에 설계된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에 대해 무조건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정된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부담하고 배분할 것인지, 특히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비용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세대 간 정의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현대사회의 출산율 하락이 비가역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직시한다면, 저출산·고령화 대책 역시 출산율을 과거의 인구대체 수준으로 되돌리는 양적 회복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를 전제로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거나 기존 노동력의 생산성을 높이는 등, 인구 구성과 노동력 활용의 질적 변화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제반 정책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핵심적인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2. 한국에서 극단적인 초저출산이 나타나는 원인
한국에서는 저출산이 고령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의 인구구조 고령화 요인을 저출산과 기대수명 연장으로 나누어 보면, 저출산의 기여율이 약 70%, 기대수명 연장의 기여율이 약 30%를 차지한다. 즉 한국의 초고령화는 단순히 기대수명이 늘어난 결과라기보다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인구 자체가 급감하면서 고령인구의 상대적 비중이 높아진 현상에 가깝다. 따라서 한국의 고령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출산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저출산이 왜 이토록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인가. 저출산은 단순한 인구 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실제로 한국의 출산율 급락에는 여러 층위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전통적인 성역할과 가부장제의 잔존, 남성의 낮은 양육 참여, 과거 남아선호사상에서 비롯된 성비 불균형과 같은 요인뿐 아니라 인구정책과 가족지원 정책의 실패,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의 문제,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회제도 등이 중첩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요인들이 특히 혼인 감소를 통해 출산율 하락으로 연결된다는 특징이 있다. 혼외출산이 드물어 결혼과 출산이 강하게 제도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전체 출생아 가운데 혼인 외 출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3.9%에 불과했다. 따라서 청년층의 혼인율 하락은 곧바로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혼인 감소는 한국 초저출산의 중요한 직접적 경로이지만, 그 자체를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왜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다.
이 글에서는 먼저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인구문제의 요인을 간략히 짚어보고, 저출산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왜 실패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나 수많은 원인 가운데서도 특히 마르크스주의 인구론과 콜드웰의 ‘세대 간 자원이전론’의 관점에서 청년세대가 처한 경쟁압력과 노동시장 격차에 주목하고자 한다. 노동시장 경쟁과 격차가 결혼과 출산의 부담을 높이고, 특히 자녀 양육에 따른 기회비용을 크게 증가시킨 것이 오늘날 한국의 극단적인 초저출산을 낳은 핵심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살펴볼 것이다.
1) 인구정책의 실패
조영태는 『인구, 미래, 공존』(2021)에서 1960년대에 시작된 산아제한 정책이 합계출산율이 이미 2.0명 이하로 떨어진 1983년 이후에도 1996년까지 13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1984년부터 1990년대까지 나타난 성비 불균형 문제도 결정적이었다. 가부장적 남아선호 사상으로 여아 출생 비율이 남아 대비 86%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여아 출생아 수는 4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급감했다. 인구학적으로 현재의 출생아 수는 약 30년 전 태어난 여성 인구의 규모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당시 급감했던 여아 세대가 오늘날 주된 출산 연령층이 되면서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급락한 데 더해 출생아 수 자체도 비가역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런 점에서 2003년 초저출산 사회로의 진입은 이미 상당 부분 예견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1996년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고 인구정책의 방향을 전환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국가 예산 투입과 정책 대응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5년마다 제1~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출산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2006년부터 2025년까지 네 차례 기본계획에 투입된 예산은 매 기간 크게 늘어, 1차 32조 원, 2차 75조 원, 3차 197조 원, 4차 383조 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1차 기간 평균 1.19명, 2차 1.23명, 3차 0.98명에 그쳤고, 이후에도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으로 하락하며 최저 수준을 계속 경신했다.
저출산 대응을 담당해 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6년 5월 기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인구전략기본법」으로 개정됨에 따라, 같은 해 9월부터 ‘인구전략위원회’로 공식 전환된다. 향후 정책 방향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극단적인 인구감소에는 과거 정부가 시행해 온 인구정책의 실패 역시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회연구조정협의회의 보고서 『초저출산 장기지속 시대의 인구위기 대응방향』(2023)은 한국 저출산 정책이 실패한 핵심 원인으로 ‘정책 범위의 과도한 포괄성’과 ‘가족지원 정책의 절대적 과소’를 지적한다. 특히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삶의 질 제고’와 같이 사실상 모든 사회정책에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인 기조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저출산 정책이 다른 사회정책과 구분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혼란을 낳았다.
한편 저출산 정책의 예산 구조에도 편중과 과소라는 문제가 있었다. 2021년 기준 중앙부처의 저출산 대응 예산 46.7조 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2조 원이 신혼부부와 청년의 주거 지원을 위한 ‘출자·융자’ 사업에 집중되었다. 출자·융자 사업은 이후 회수되는 자금인 만큼 이를 전체 예산 규모에 그대로 포함하는 방식은 실제 재정지출을 과대평가하는 착시를 낳을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예산 편중으로 인해 정작 가구에 직접 제공되는 실질적인 ‘가족지원’ 예산은 전체의 38.4%에 불과했다. 그 결과 보편적 육아휴직 제도의 도입이 지연되면서 생애 초기 부모 돌봄의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방치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평가다. 인구위기에 대응하는 최전선의 정책이어야 할 가족지원 정책이 부족했던 셈이다. 또한 보고서는 저출산의 구조적 진원지라 할 수 있는 고용 격차, 주택가격 급등, 과도한 양육비와 경쟁적인 교육환경에 대응할 실효성 있는 정책 역시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기업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저출산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출산·양육 지원제도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보다 의무와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에 치우쳐 있어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체인력 확보와 행정절차에 따른 부담이 커 제도 활용률이 매우 낮다. 기업 간 복지 격차가 큰 상황에서 저출산 대응을 기업 단위의 복지에 맡길 경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그대로 출산과 양육 여건의 격차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2) 청년세대의 ‘경쟁압력’과 삶의 불안
한국 초저출산의 원인은 청년세대가 직면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수도권 과밀에 따른 극단적인 경쟁압력, 그리고 크게 상승한 주거비와 양육비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청년세대의 일자리와 소득이 불안정해지는 배경에는 노동시장 격차의 확대가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청년층의 일자리와 소득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200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지표가 악화해 왔다. 15~29세 고용률은 2022년 46.6%로 OECD 평균인 54.6%보다 크게 낮고, 25~39세 고용률도 75.3%로 OECD 평균 87.4%보다 12.1%포인트 낮다. 청년층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상승했고, 임시직 비중은 27.3%로 OECD 34개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고착화는 청년층의 고용 사다리를 더욱 좁히고, 대기업 정규직을 향한 취업 경쟁을 심화시켰다. 대졸 신입사원의 취업경쟁률은 2008년 26.3대 1에서 2017년 35.7대 1로 상승했고, 취업 스트레스 경험률도 2016년 40.4%에서 2020년 53.6%로 늘어났다. 20~40대의 근로소득 증가세는 다른 연령대보다 부진한 반면, 이들의 부채는 오히려 빠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더 나은 일자리와 기회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렸고, 그 결과 더욱 치열한 생존경쟁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은행이 25~3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경쟁압력과 불안이 결혼과 출산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집단의 평균 희망 자녀 수는 0.73명으로, 낮은 집단의 0.87명보다 0.14명, 즉 16.1% 적었다. 고용 상태별로 보면 취업자의 결혼 의향은 49.4%로 비취업자의 38.4%보다 높았지만, 비정규직의 결혼 의향은 36.6%로 오히려 비취업자보다 낮았다. 반면 공공기관 종사자와 공무원의 결혼 의향은 58.5%로 현저히 높았다. 또한 자녀에 대한 금전적 의무감을 강하게 느낄수록 결혼 의향과 희망 자녀 수는 함께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개인 수준의 조사 결과는 지역별 분석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된다. 2020년을 기점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전체 인구를 추월했다. 청년층이 양질의 대학과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입시와 취업을 둘러싼 경쟁 역시 한층 격화되었다. 한국은행의 시도별 패널분석(2005~2021년)에 따르면 높은 인구밀도는 청년층이 체감하는 경쟁압력을 유의미하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59명으로 전국 최저 수준이었던 반면, 인구밀도가 낮은 세종시는 1.12명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인 홍콩·싱가포르·마카오와 같은 도시국가의 사례와도 궤를 같이하며, 인구밀도와 출산율 사이의 음의 상관관계를 뒷받침한다. 16개 시도별 패널자료 분석에서도 인구밀도와 실질전세가격지수, 실업률이 높을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아지는 관계가 모두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국가별 분석에서도 유사한 결론이 확인된다. OECD 35개국 패널분석(2000~2021년)에서 경제적 요인인 청년층 고용률·실질 주택가격·국내총생산(GDP)성장률, 사회·문화적 요인인 도시인구 집중도·여성고용률·혼외출생아 비중, 정책·제도적 요인인 가족 관련 정부지출·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청년층 고용률이 높고 실질 주택가격이 낮을수록, 도시인구 집중도가 낮고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이 높을수록, GDP 대비 가족 관련 정부지출과 육아휴직의 실질적인 이용기간이 늘어날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개인·지역·국가 수준의 분석은 공통된 방향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저출산은 청년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경쟁압력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높은 주택가격, 수도권 과밀화가 복합적으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콜드웰의 ‘세대 간 자원이전론’을 적용하면, 한국 사회에서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이 유독 높아진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부모에서 자녀로 향하는 자원의 순흐름이 크게 확대되면서, 양육은 점차 과도한 경제적·사회적 부담으로 인식된다. 그 결과 청년세대, 특히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당연한 생애경로가 아니라 높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 되고, 이를 유예하거나 포기하려는 경향도 강화된다.
3. 인구감소 시대 주요 쟁점 1: 노동시장, 노동생산성, 고용제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성 변화와 인구감소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비가역적인 변화다. 향후 한국의 경제, 노동시장, 고용제도는 그러한 조건을 전제로 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는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청년세대의 심각한 경쟁 압력과 삶의 불안으로 직결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채 인구감소 국면이 계속 이어진다면, 노동시장과 고용제도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장기 저성장과 인구 감소라는 장기적 경로 가운데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은 단기적으로 맞닥뜨리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변화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관점을 세우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 물가, 금리, 경제성장률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의 변동은 노동시장의 고용 규모 및 생산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동화와 인공지능(AI) 도입을 통한 노동공급 부족의 상쇄 가능성, 정년연장을 포함한 고령·여성 인력의 생산적 활용 방식 등 노동운동이 새롭게 마주한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
찰스 굿하트와 마노즈 프라단의 『인구대역전』에서는 노동 공급의 축소가 노동자의 협상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 저축의 축소로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상승이라는 거시경제적 제약이 발생해 명목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실질임금 개선 효과는 제약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게다가 금리 상승은 가계부채와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켜 노동자의 실질 생활 여건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과거 인구 성장기에 형성된 노동운동의 기존 전략은 변화된 거시경제 조건에 맞추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사회운동은 거시경제 변화에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입장에 머물지 않고, 위기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설계하는 능동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아래에서는 인구감소 시대 노동시장의 핵심 화두인 노동생산성, 교육훈련 체계, 정년 연장 등 고용제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격차 속에서 어떤 쟁점을 낳을 것인지 정리하고자 한다. 현재 관련 쟁점에 대해 우리의 입장은 아직 명확하게 모아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 글은 완결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향후 토론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핵심 쟁점들을 기록하고 일별하는 데 목적을 둔다.
1) 고령화와 노동생산성을 둘러싼 쟁점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등 노동시장의 충격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내세우는 가장 핵심적인 정책목표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노동공급의 절대적 축소를 생산성 증대로 상쇄하겠다는 것이 주류적 대응 방향이며, 기존 노동력뿐만 아니라 고령·여성노동 활용 정책을 강화하면서 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익히 알려졌듯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하위권(2023년 기준 OECD 36개 국가 중 22위)에 머물러 있다. 특히 최근 고령층과 여성이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부문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인구구조 변화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2024)은 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력의 고령화가 총요소생산성(TFP)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 내 노동자의 연령분포와 총요소생산성 사이에는 35~49세를 정점으로 역 U자형 관계가 존재하며, 50대 이상 연령대부터 해당 연령대 노동자의 비중이 늘어날수록 기업의 총요소생산성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부(-)의 영향이 나타난다. 이 분석 결과를 중장기 인구 전망에 대입하면, 60세 이상 고령층 비중이 급증하는 2031~2041년 동안 인구 고령화 요인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이 연평균 0.2%씩 추가로 잠식될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고령화가 생산성을 저하시킨다는 명제는 쟁점의 대상이며, 인적자본 개선과 제도 개혁을 통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이철희,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2024)는 고학력 코호트의 진입에 따라 인적자본이 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 봤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 후속세대가 이전 세대 고령층보다 교육수준이 월등히 높으며, 직무 특성에 따라 노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를 상쇄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노동생산성은 급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 고령층의 생산성 하락은 나이 자체가 아니라 제도적 관행과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50대 중반이면 주된 일자리(생애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게 만드는 경직적 노동시장 제도 때문에 고령자들이 숙련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을 떠나 기존 경력과 무관한 저숙련, 임시 일자리로 밀려나 재취업하게 되고, 그 결과 통계상 생산성이 급락하는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노동생산성의 쟁점은 최근 인공지능(AI) 도입이 가져올 노동 대체와 보완,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과 관련한 논의와 연결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AI와 한국경제」(2025)는 AI 도입으로 고령화로 인한 성장 저하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국제연합(UN) 인구 전망을 토대로 현재의 성별, 연령별 노동소득분배율과 경제활동 참가율 수준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AI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 2023년부터 2050년까지 한국의 GDP는 16.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AI가 본격 도입된다면 감소 폭을 5.9%까지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론 아제몰루와 파스칼 레스트레포는 「인구구조와 자동화(Demographics and Automation)」(2018/2022)에서 인구구조 변화가 오히려 자동화 기술 도입을 가속화시키는 유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밝힌다. 저출산·고령화로 청년·중년 노동력이 희소해지고 임금이 상승할수록, 자본이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용 로봇 및 자동화 기계를 개발하고 신속히 도입하려는 경제적 유인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동화를 통한 노동 대체가 이루어지면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급격히 끌어올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993년부터 2014년까지 장기 시계열을 분석한 결과, 한국·독일·일본처럼 청년·중년 대비 고령 노동자의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국가일수록 노동자 1,000명당 산업용 기계 스톡, 즉 로봇 밀집도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제몰루와 레스트레포는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기존 자동화 기술의 도입뿐 아니라 자체 혁신을 위한 기술진보 역시 고도화된다는 점, 그리고 고령화 속도와 자동화 특허 비중 상승 사이에 뚜렷한 양(+)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도 실증했다. 또한 로봇 도입 집중도가 높은 산업 분야, 특히 제조업에서는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해 노동소득분배율이 대폭 하락했다는 결론도 제시하고 있어, 자동화에 의한 생산성 상승이 분배 악화라는 문제를 수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저부가가치 부문의 고용 증가로 노동생산성이 이미 하락 추세에 있는 상태에서 자동화·AI·고령층의 고학력화가 실제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기계로의 대체가 어렵거나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저숙련 중소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는 생산성 둔화의 추세를 상쇄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여전히 많다.
고령화가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 실증해야 할 쟁점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이 쟁점을 논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노동생산성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작업 현장의 교육훈련 문제 또한 인구구조 변화 시기 노동운동이 새롭게 다뤄야 할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
2) 교육훈련과 생산성 격차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공급 축소를 생산성 증대로 상쇄하겠다는 것이 자본의 일관된 전략이라면, 노동자들이 이에 대응하는 전략 중 하나는 숙련 향상이다. 그런데 두 전략 모두, 실제로 작동하려면 작업 현장의 교육훈련 체계가 요구된다. 실제로 교육훈련 체계의 도입은 인구감소 시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필수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자동화와 AI 도입에 생산성을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어도, 그 기술을 현장에서 실행할 노동의 숙련 정도가 충분히 뒷받침되는가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 격차의 문제, 즉 중소기업의 저숙련, 저생산성, 그리고 기업 규모별, 고용 형태별 격차로 인해 교육훈련과 숙련 향상의 유인이 있는지 의문도 제기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 『산업 및 기술 변화에 대응한 미래 인재 양성』(2023), 『한국의 기업은 왜 교육훈련에 투자하지 않는가?』(2018) 등의 연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을 제외하고는 기업이든 노동자든 교육훈련에 투자할 유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은 더욱 그렇다. 다단계 수직 하청관계에서 하위 협력업체는 원청이 요구하는 납품단가와 공정을 맞추는 것 자체가 목표라, 독자적 기술개발이나 숙련 형성에 나설 유인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기술혁신과 자동화 도입 역시 산업별, 기업 규모별로 격차가 이미 크게 벌어져 있다.
이런 조건에서 정년이 연장된 고령 노동자층에 대한 교육훈련 체계만을 강화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령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밀집해 있는 곳은 자동화 투자 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과 저숙련 직무이다. 대기업에서는 기술혁신과 자동화가 교육훈련을 대체하는 경로로 작동하는 반면, 중소기업에서는 애초에 기술혁신에 투자할 여력이나 유인도 없는 공백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공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AI나 자동화 도입만 가속화된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숙련과 임금 격차, 그리고 청년층과 고령층 간의 숙련 형성 기회의 격차가 서로 중첩되면서 격차만 더 벌어질 위험이 있다.
해외의 교육훈련 재원 조달 방식에서 격차 해소의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독일 산별노조가 운영하는 훈련 기금은 개별기업의 규모나 조건과 무관하게 노동자가 훈련에 접근하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건설산별노조(IG BAU)가 사용자 단체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SOKA-BAU(건설업 사회복지기금) 모델은 모든 기업의 분담금을 모아 산업 공동의 ‘직업훈련 기금’을 운영한다. 금속노조(IG Metall)나 서비스노조(Ver.di) 역시 단체협약을 통해 재직자가 직무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는 생애근로시간계좌제나 유급 교육훈련휴가 권리를 명문화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숙련 격차의 해소를 도모한다.
프랑스는 개인훈련계좌(CPF)제도를 통해 기업이 아닌 노동자 개인에게 교육훈련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직장을 옮기거나 하청관계에 속하더라도 누적된 ‘훈련권’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러한 해외 모델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개별 기업의 투자여력에만 교육훈련을 맡겨두지 않고 산업 단위 전체로 확장하여 기업 간 숙련 격차를 해소하고 노동시장 이동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초고령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생산성과 격차 해소를 달성하려면 교육훈련 제도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를 전환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직업훈련은 고용보험기금에 일부 의존하고 있지만, 영세 중소기업의 열악한 교육훈련 환경을 실질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초고령화 시대의 노동생산성 제고는 개별 기업의 자발적 투자나 단발성 예산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교육훈련의 책임을 산업 단위로 확장하고 실효성 있게 작동시키려면 산별노조의 실질적 권한과 역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3) 고용제도의 변화: 노동의 미스매치, 고용유연화, 정년연장
노동시장이 직면한 가장 큰 우려는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급감으로 인한 ‘노동공급 절벽’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철희의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2024)는 노동량 총량의 감소보다 부문과 유형 간 노동수급 불균형, 즉 미스매치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2072년까지 현재 수준의 약 45%로 반토막 나지만, 실제 노동공급 지표인 경제활동인구는 장년층의 높은 참여율 덕분에 현재의 약 56% 수준까지 완만히 유지될 수 있으며, 생산성을 반영해 조정한 노동투입량 역시 향후 15년 동안은 총량은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노동공급의 실제 위기는 노동인구의 구성과 개별 산업들이 요구하는 인력 구성 사이의 극단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되며, 이 불균형이 특정 산업의 존립 위기를 촉발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인구감소 시기 노동수급 문제를 총량의 부족보다는 미스매치로 인한 불균형 해소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노동력의 미스매치나 산업의 존립 위기는 어디까지나 자본의 문제로만 간주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영역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여러 산업, 부문, 유형에서 발생하는 해고와 실업에 대응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중심 의제였다. 하지만 인구감소가 진행되면서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가 변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09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에서 고용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위기 → 노동수요의 부족 →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대응’이라는 구도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향후 인구구조의 변화가 본격화되면 고용 문제는 ‘생산인구의 감소 → 노동공급의 부족 → 산업, 부문별 노동력의 미스매치로 인한 수급불균형과 구인·구직난의 동시 발생’이라는 구도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인구감소 시기 노동력 수급의 불균형과 미스매치 해결 방안, 그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용제도 등에 대한 입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민감한 쟁점은 고용의 유연화를 둘러싼 논쟁일 것이다. 향후 인구구조 변화와 노동수급 불균형에 대응하여 재계에서는 여전히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라는 해법을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노동운동이 견지하는 고용안정의 원칙에서 이는 수용하기 어렵다. 다만 이전의 노동시장의 조건과는 다르게 급변하는 고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노동운동은 숙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청년, 여성, 고령자 고용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세미나에서는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한국이 참고할 만한 해외의 고용전략을 검토했는데, 그 사례들은 현재와 이미 10년에 가까운 시차가 있어 적용에 한계가 있었다. 또한 고용정책은 노동력 수급의 양적 측면만으로 설계될 수 없으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축적된 제도와 관행, 노사관계의 특성 등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1) 청년 고용
청년 고용과 관련해서는 학교교육과 현장 수습노동을 병행하는 독일과 스위스의 이원화 교육이 일자리 미스매치에 대응한 사례로 검토됐다. 그러나 한국에서 청년고용률과 실업률 사이의 괴리는 근본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비롯된 일자리 격차에 기인한 만큼 이원화 교육과 같은 방식만으로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게 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고용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숙련 수준에 걸맞은 일자리가 규모 있게 확대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 없이 청년 고용 부문의 문제로만 집중된 정책은 오히려 격차의 확대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2) 여성 고용
여성 고용에서 핵심 문제는 ‘일-가정 양립’의 지원 방식이다. 출산율 증가와 고용률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스웨덴은 정규직 형태의 유연노동과 단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해 여성고용률 81.9%를 유지하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는 파견근로와 미니잡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통해 여성 고용을 확대해왔다.
그러나 시간제 고용 확대가 갖는 양면성이 쟁점이다. 고용률이 양적으로 오르더라도 일자리의 질이 저하된다면 성별 임금과 고용의 격차는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육아기 단축노동 제도를 보완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3) 고령자 고용: 정년 연장
고령자 고용과 관련해서는 법적 정년 연장이 핵심 쟁점이다. 초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필요하다. 다만 정년 연장의 법제화가 노동시장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측하고,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과제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 여당은 현행 법정 정년을 2028년 또는 2029년에 61세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연장해 2037년까지 65세로 늘리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올해 6월 말 최종 입법은 노사 간 이견으로 지연되었고, 2026년 하반기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입법이 재추진되고 있다. 현재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 연령의 상향에 따른 소득 공백의 해소를 위해 법정 정년의 즉각적 65세 연장을 요구하는 반면,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법정 연장 대신 퇴직 후 계속고용, 즉 재고용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란에는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쟁점이 있다. 기업 측은 정년 연장의 전제조건으로 임금체계의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절차의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정년연장이 청년 신규 채용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회적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의 문제를 별개의 사안으로 분리해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미 2013년에 60세 정년을 법제화했지만, 50대 조기퇴직, 명예퇴직, 정년 이전 구조조정 등 다양한 우회적 관행이 지속되면서, 법정 정년이 일부 1차 노동시장에서만 실효성이 있고 일반적인 고령노동자의 고용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결정적으로 법정 정년 연장이 고령층 노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플랫폼 및 비정형 노동층에게는 실질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년 연장 의제 자체가 노동 내부의 세대별, 부문별 이해관계 충돌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노조 내부의 합의와 조율을 하나의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4) 소결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향후 인구감소 시대에 노동생산성, 교육훈련, 노동수급의 불균형, 고용제도의 변화는 노동시장에서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각각 별개의 이슈로 보이지만,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해소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하나같이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새롭게 부각될 쟁점들을 노동운동이 어떻게 바라보고 해법을 찾느냐에 따라, 향후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청년·여성·고령자 고용정책, 그리고 급격한 산업 전환에 대응하는 전략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인구감소 시대 노동시장의 격차가 더욱 고착될지, 아니면 완화될지가 갈릴 수 있다.
4. 인구감소 시대 주요 쟁점 2: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재정위기
초저출산, 초고령화 사회가 마주할 가장 큰 문제는 전 국민의 삶을 뒷받침하는 사회보장제도, 특히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의 재정위기이다. 사회보험은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노후소득 상실, 질병)을 사회 구성원 전체가 보험료를 각출해 부담을 분산하는 제도다. 즉 일하는 세대가 낸 보험료가 은퇴자나 환자를 지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제와 인구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재정자원이 계속 늘어나지만,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 시기에는 필연적으로 위기에 빠진다. 단,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재정의 방식이 달라 인구구조 변화가 가하는 위기의 형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국민연금은 노후를 공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로, 가입 후 수십 년이 지나야 급여가 발생하는 ‘장기적’ 제도이기 때문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해지면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고 받는 사람은 급증해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지며, 고갈 이후에는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지급을 감당하는 완전부과방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이 한 번에 터지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건강보험은 적립금을 장기간 쌓아두지 않는 ‘단기’ 보험으로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지출을 충당하며 매년 지출 상황에 따라 다음 해 보험료율을 새로 정한다. 따라서 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은 고령인구가 늘고 진료비가 증가할 때마다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형태로 매년 가입자들에게 바로 전가된다. 노인 1인당 진료비가 전체 평균의 몇 배에 달하므로, 고령인구 비중이 계속 늘어나면 보험료를 아무리 자주 올려도 지출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운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위기는 인구감소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세대 간 갈등을 촉발하는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세미나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서 제도도 일부 바뀌었다. 그러나 인구감소의 큰 흐름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와 관련한 쟁점들이 사회운동의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최근 이슈를 중심으로 각 제도의 현황과 쟁점을 살펴보겠다.
1) 2025년 국민연금 개혁과 쟁점
2025년 3월, 18년 만에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명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의 모수개혁으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조정하였다. 보험료율은 2026년부터 매년 0.5%p씩 8년간 단계적으로 인상해 2033년 13%에 도달한다. 협상 과정에서 논의되었던 연령대별 차등인상안은 최종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또 이번 개혁에는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군복무와 출산 크레딧 확대 방안이 담겼고, 인구와 경제지표에 연동해 보험료, 급여를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는 여야 합의가 불발되어 제외되었다.
이번 개혁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2025년 기준 41.5%에서 2026년 43%로 즉시 상향되었다. 본래 매년 0.5%p씩 낮아지던 추세에서 자연스럽게 달성되었을, 2028년 40%로 낮출 예정이었던 인하계획(2007년 2차 개혁안)은 이로써 중단되었다.
보험료율이 인상됨에 따라 정부는 연기금의 소진 시점이 기존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춰졌다고 밝혔다. 여기에 최근 주가 상승으로 국민연금의 운용수익이 늘어난 것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2069년으로 4년, 보건복지부는 7년가량 연기금 소진 시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증시 호황이라는 이례적 변수에 기댄 예측일 뿐이다. 향후 보험료 수입보다 급여 지출이 훨씬 빠르게 늘 것이므로 투자수익만으로 기금 고갈 위기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작년 개혁으로 기금 소진 시점이 늦춰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감소 시기 연금 개혁에 대한 세대 간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재정 균형에 필요한 보험료율에 미달한 인상률로 인해 개혁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 전문위원회는 2023년 5차 재정추계에서,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이 약 20%로 인상되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정부의 재정추계 결과를 보면 이번 개혁안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기금 소진 이후의 부과방식 보험료율은 기존에 예측된 36.6%에서 39.2%까지 올라간다. 보험료율을 올렸는데도 미래세대가 짊어질 최종 부담률은 개혁 전 추정치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이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보험료율 인상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즉 기금 고갈 이후의 젊은 세대는 43%의 급여를 감당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높은 보험료율을 떠안게 되었다.
오건호 외의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2024)은 현행 국민연금이 가입기간이 길수록 순혜택이 커지는 역진적 제도라는 점에서, 초고령화 시기를 대비해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것은 노인 빈곤 문제 해결과 무관하거나 역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은 오히려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고소득 장기 가입자에게 혜택이 집중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보험료율의 점진적 인상과 가입 기간의 확대, 기초연금의 저소득층 집중 지급, 퇴직연금 활성화를 결합한 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노동운동 내에서는 이와 정반대 입장이 주를 이룬다. 민주노총은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난해 연금개혁안에 대해서도 노인빈곤 해소에 미흡한 소폭의 소득대체율 인상에 그쳤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해서도 ‘공포 마케팅’으로 규정하며, 기금 고갈을 구실로 연금을 민영화하거나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기금이 소진될 경우,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지급보장 명문화를 선결 과제로 요구하며, 부족한 재원은 국가 재정 투입을 확대하고 자산소득과 법인소득에 보험료를 더욱 부과함으로써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 진영이 견지해 온 ‘소득보장론’은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성장률 저하라는 정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노후 소득보장의 필요성은 원칙적으로는 유효하지만, 지금 인구구조의 조건에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처럼 진보 진영의 연금개혁 입장이 정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고, ‘재정안정론 대 소득보장론’이라는 관성적 구도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실제로 노인 빈곤문제에 대한 해법이나 연금 수급과 재정 부담에 대한 세대 간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차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연금 개혁은 현재 연금을 수령하고 있거나 곧 받게 될 세대들의 이해관계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연금 개혁은 아직 발언권과 존재감이 없는 미래의 노동자와 세대 간 합의를 만드는 사회적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는 모두 현세대들의 이해관계에만 갇혀 있다.
2) 건강보험 재정위기 관련 쟁점
2026년에는 2021년 이후 5년 연속 이어 온 건강보험의 재정 흑자가 적자로 전환되고, 누적 준비금의 소진 시점도 기존 전망인 2031년에서 2029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재의 보험료 인상만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아래 그림은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1년 10월 발표한 국민건강보험의 중기 재정 수지이다. 당시 코로나19 기간 환자들의 병원 방문이 줄어들어 실제 추세와는 차이가 있지만, 이와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프] 국민건강보험 재정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1990년 8.2%였던 65세 이상 고령자 진료비의 비중은 2018년 40.8%까지 상승했다.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2030년 65.4%, 2050년에는 5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조건에서 노인 1인당 진료비가 전체 평균의 3배에 달하는 현재의 지출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건강보험 재정위기의 원인은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의 도입 이후 형성된 무제한적 의료 접근성, 행위별 수가제가 유인하는 공급 측의 과잉진료, 비급여와 실손보험이 맞물려 확대되어 온 의료비 증가 구조에 있으며, 여기에 초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가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
매년 보험료율을 그해 지출에 맞춰 재산정하는 건강보험의 특성상 국민연금 기금 소진과 같이 재정위기가 급격히 발생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 건강보험도 그동안 흑자로 쌓아온 적립금이라는 완충장치가 소진되면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 지출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 폭이 해마다 누적되어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로 지출 증가 속도가 보험료 수입 증가 속도를 앞지르는 상황에서 매년 보험료를 올리는 방식만으로는 격차를 메우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부담은 미래에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갈등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과 다르지 않다.
3) 소결
인구감소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연금과 건강보험 재정은 더 이상 지속적인 인구증가와 경제성장 위에 서 있지 않다. 미래의 경제성장과 조세의 기반이 현재 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는 가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다시 마르크스주의 인구론의 관점으로 돌아가, 오늘날 인구구조 변화로 예견되는 노동시장과 사회보험 재정위기의 다양한 쟁점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구감소가 자본주의 축적의 동역학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고, 경제성장이 멈추는 정상상태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 사회운동은 과거 인구와 경제의 성장기에 가능했던, 사회적 자원의 조달 부담을 후세대에게 미루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