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법개혁으로 살펴본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
이재명 정부에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올해 2월 이른바 ‘사법 3법(헌법재판소법, 법원조직법,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공소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7월 29일 검사의 직접수사를 전면 금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8월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특히 사법 3법의 국회 통과를 전후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민에게 해가 되는 내용은 없는지 마지막까지 심사숙고해 달라”고 발언하자,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까지 입에 올리며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이재명 정부 1년, 한국 정치 어디로 가나」(《계간 사회진보연대》, 2026년 여름호)에서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유엔 사법독립 특별보고관 마거릿 사터스웨이트의 2024년 보고서가 제시한 기준에 비추어 평가하면서,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총체적인 공격’으로 규정했다. 또한 정부의 조치들은 법관이 행정부와 입법부, 여론의 간섭 없이 헌법과 법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법부의 독립’ 원칙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물론 사법부는 결점이 없는 조직이 아니다. 사법부의 판결과 업무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혁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개혁은 사법부의 독립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해외의 사법개혁 사례를 살펴보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성이 왜 중요한 가치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1.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사법후퇴’
최근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정세전망 글에서 헌정민주주의에 대한 포퓰리즘 세력의 도전이 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처럼 헌정주의가 비교적 발달한 곳에서도 포퓰리즘 세력이 권력 남용을 통제하는 매개조직을 약화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법부는 정치권력이 장악하려는 핵심 영역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에서 잠재적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첫 번째 단계가 사법기관을 매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법기관을 친정부 인사로 채우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기능이 무너지고, 헌정민주주의는 형식상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면서도 점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5년 10월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가 발표한 2025년 법치주의 지수는 전 세계 국가의 68%에서 법치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 정부의 개방성, 기본권 보장 등을 측정하는 지표들이 세계적으로 크게 하락했으며, 민·형사 영역에서 사법부의 독립성 역시 약해졌다고 짚었다.
[그래프] 한국의 법치주의 지수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가 발표한 2025년 법치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0.74점을 기록해 전체 국가 가운데 세계 19위로 세계 평균인 0.52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외형상 양호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지표에서는 최근 10년간 정체 또는 하락세가 나타났다. ‘사법부가 행정부 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에서 한국은 0.61점으로 세계 46위, 고소득 국가 51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입법부 공직자가 사익을 위해 공직을 이용하지 않는지’를 평가하는 지표에서는 0.32점으로 세계 평균인 0.34보다 낮았다. 이러한 수치와 관련해 WJP는 보고서에서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무결성이 심각하게 약해졌다”고 밝혔다. 참고로 2016년 법치주의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이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비리, 정운호 법조게이트 등의 사건으로 인해 정부 권력 견제 부문과 부패 부문 지표가 크게 하락한 탓이다. (출처: 《법률신문》)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사법후퇴(judicial backsliding)’라는 개념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사법부를 정권에 종속시키려는 통치자의 시도를 분석하는 연구가 등장했다. 스테판 해거드 UC 샌디에이고대 석좌교수와 리디아 타이드 휴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사법후퇴란 선출된 행정부가 법원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너뜨려 사법부가 삼권분립의 한 주체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해거드와 타이드에 따르면 사법후퇴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유형은 사법부의 권한을 공격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① 행정부 또는 입법부가 법원의 사법심사 유형과 범위를 조정해 특정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제한하거나, ② 새로운 법원이나 사법체계를 설치하거나, ③ 위헌 법률을 인정하는 데 필요한 법관의 비율을 조정하는 등 투표 규칙을 변경해 법원의 권한을 정권의 이해에 맞게 조정하거나, ④ 사법심사와 사법적 구제수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사법부의 인사권을 공격하는 것이다. ① 법관의 임기, 징계, 해임 규정을 변경해 정권에 순응하는 법관의 수를 늘리는 한편, 저항하는 현직 법관을 정년이나 임기 조정을 통해 퇴출시키고, ② 행정부 산하에 법관 인사권에 관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사실상 사법부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세 번째 유형은 사법부의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법부와 법관은 예산을 행정부나 입법부에 크게 의존한다. 이를 이용해 ① 사법부 예산이나 법관의 급여를 줄이거나, ② 사법행정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는 방식이 있다.
이와 같은 분류를 유엔 사법독립 특별보고관 사터스웨이트의 분류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사터스웨이트의 사법행위 침해 유형 분류
1) 사법제도를 장악하거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제도를 변경하는 행위
- 사법부 장악: 법관 임명에서 행정부·입법부의 영향력 강화, 법원의 규모와 종류 확대, 기존 판사 해임
- 사법부 권한 제한: 입법부·행정부의 행위에 대한 심사권 제한, 행정부·입법부에 법원 판결을 무효화할 권한 부여
- 변호사협회 장악·억제
2)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사법체계를 오남용하는 행위
- 판사·검사·실무자에 대한 정치적 동기의 기소
- 징계·해임·자격박탈의 도구화
- 근무조건의 인위적 악화
3) 사법행위자를 표적으로 삼는 공격과 방해
- 낙인찍기·괴롭힘
- 자의적 구금·고문·강제실종·물리적 공격
해거드·타이드의 사법후퇴 유형 분류
1) 사법부 권한 공격
- 법원의 권한 박탈 또는 제한: 사법심사의 유형과 범위 제한
- 새로운 법원이나 사법체계 설치
- 투표 규칙 변경을 통한 판사들의 권한 제한: 투표 정족수 등 변경
- 사법심사 및 구제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
2) 사법부 인사권 공격
- 사법부의 임용·인선·징계·해임 규칙을 변경해 순응적인 판사를 기용하고 저항하는 판사를 퇴출
- 행정부 산하에 법관 인사권을 담당하는 기구 설치
3) 사법부 예산 삭감
- 사법부 예산과 법관 급여 삭감
- 사법행정에 필요한 인력과 자원에 대한 지원 축소
사터스웨이트와 해거드·타이드의 분류 방식이 공유하는 핵심은 사법후퇴를 단순히 특정 판결에 대한 정치적 비난이나 법원 재조직화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핵심은 행정부나 집권세력이 사법부가 독립적인 권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법관 인사, 법원의 조직과 권한, 예산과 행정, 징계와 정치적 압박 등은 이를 위해 활용되는 수단들이다. 즉, 사법후퇴란 사법부의 독립성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따라서 사법개혁의 명목으로 제도를 변화시키려 할 때, 그 과정과 결과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축시키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사법부의 업무 효율성과 공정성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사법개혁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이 반드시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사법개혁이 사법부의 독립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헝가리, 멕시코, 벨기에의 사례를 검토할 것이다. 헝가리와 멕시코는 사법개혁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침해된 대표적인 사례다. 헝가리에서는 최근까지 집권했던 오르반 정부가 사법부와 사법행정기관을 개편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했다. 멕시코 역시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판사 직선제를 도입했으나,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성과 전문성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반면 벨기에는 이전까지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던 사법제도를 개편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세 나라의 사례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추상적인 원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제도의 변화와 정치권력의 개입 방식에 따라 실제로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각국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2.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한 사법개혁 ①: 헝가리
1) 헝가리 오르반 정부의 사법개혁
헝가리의 사법개혁은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청년민주동맹)와 기독민주인민당(KDNP) 연합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고, 피데스의 오르반이 총리에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르반 정부는 ‘사법 효율성과 투명성 강화’와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을 명분으로 집권 기간 내내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사법부 독립의 원칙을 침해했다.
오르반 정부는 압도적인 의회 의석을 바탕으로 2011년 기존 헌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본법(Fundamental Law)을 제정하고, 선거제도·조세·연금·사법제도 등 주요 국가제도의 구체적인 사항을 카디널법(Cardinal Act)이라는 특수한 법률로 규율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카디널법은 일반 법률과 달리 의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사실상 헌법에 준하는 법률이다. 당시 집권세력이 의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던 만큼, 오르반 정부는 집권세력의 정책을 사실상 헌법 수준으로 고착화시킬 수 있었다. 사법제도도 변화의 대상이 됐다. 오르반 정부는 2011년 헌법재판소법·법원조직법·판사지위법을 카디널법으로 제정해 사법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했다.
2011년 새로 제정된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수를 11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재판관의 임기도 9년에서 12년으로 연장했으며, 기존에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선출하던 헌법재판소장을 국회가 선출하도록 했다. 또한 기본법을 통해 국가예산, 조세, 연금 등 재정 관련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 권한을 대폭 제한했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일련의 정부 법안을 위헌으로 선언하자, 오르반 정부는 2013년 기본법을 개정해 위헌 결정이 내려진 법안의 내용을 기본법에 편입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 범위를 좁혔다.
오르반 정부는 법원조직법을 통해 국가사법청(NJO)을 신설하고 사법행정 권한을 단일 기관에 집중시키는 구조를 도입했다. 대통령의 제청에 따라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되는 국가사법청장은 ▲ 신규 판사 임명 과정에서 후보자 순위를 변경하거나 공모를 무효화하는 등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 업무량 조정 등을 근거로 특정 사건을 다른 법원으로 이송할 수 있고, ▲ 각급 법원의 법원장과 부장판사를 임명·해임할 수 있으며, ▲ 전국 법원의 예산안을 작성하고 인력을 배분하는 등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오르반 정부는 2013년 기본법을 개정해 국가사법청을 헌법기관으로 격상함으로써 그 권한을 강화했다. 나아가 2024년에는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법무부장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국가사법청장이 법무부장관에게 판결자료와 통계자료를 제공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마지막으로 오르반 정부는 판사지위법을 통해 판사의 임명·보직·평가·전보·면직 관련 제도 전반을 개편했다. 먼저 판사의 정년을 70세에서 62세로 단축했다. 또한 판사에 대한 부적격 평가가 내려질 경우 사임을 요구하고 징계 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징계 과정에서는 급여 지급을 유보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조치로 1년 만에 약 300명의 법관이 퇴직하게 되었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으나, 법관 인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사법청으로 인해 승소한 판사들 대부분은 원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재임용 절차를 거치거나 다른 법원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오르반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제한하는 한편, 사법행정과 법관 인사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법관의 신분보장에도 행정부와 입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법제도를 재편했다. 이러한 개편은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이에 따른 사법부 독립성 침해는 이후 법관에 대한 압박과 인사·임명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2) 오르반 정부의 사법부 독립 침해 결과 및 대응
오르반 정부의 사법개혁은 실제 사법부 운영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판사 정년 단축 외에도, 오르반 정부가 개혁에 비판적인 법관을 임기 중 강제로 퇴출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11년 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안드라시 바카 대법원장은 정부의 사법개혁안에 비판적인 의견을 밝히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새로운 기본법이 시행되고 기존 대법원이 ‘쿠리아’라는 명칭의 최고법원으로 재편되자, 오르반 정부는 최고법원장의 임기와 선출 요건이 변경되었다는 이유로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바카의 대법원장직을 강제로 박탈했다. 이 과정에서 바카는 대법원장으로서 누리던 보수와 예우, 퇴직급여에 관한 권리를 상실했다.
개별 판사를 겨냥한 공세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8월 바슈바리 차바 판사에 대한 공격이다. 바슈바리 판사는 영국 언론사 《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동료 판사들이 법원 안팎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투명한 사법행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인터뷰가 보도된 이후 친정부 언론은 바슈바리 판사의 과거 재판 경력을 문제 삼아 그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사라고 몰아세웠다. 이후 10월에 바슈바리 판사와 마투시크 판사는 신임 주헝가리 미국 대사인 데이비드 프레스먼과 만나 현지 사법 동향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러자 친정부 언론은 이들의 만남을 문제 삼으며 두 판사가 미국과 접촉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이어갔고, 이들을 겨냥한 조직적인 비방도 다시 벌어졌다. 이처럼 정부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법관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낙인찍는 행태는 오르반 정부 시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법부 독립성 침해는 기존 법관에 대한 압박에 그치지 않고, 사법기관의 인사와 수장 임명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국가사법청과 쿠리아(최고법원)의 주요 직위에 친정부 인사들이 임명되면서 논란이 일었는데, 2020년 오르반 정부가 안드라스 바르가를 쿠리아 원장으로 임명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바르가는 당시 친정부 성향의 법조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헌법재판관을 역임했으나 일반법원 판사로 근무한 경력은 없었다. 문제는 당시 쿠리아 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법원 판사로서 5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르반 정부는 2019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일반법원 판사로서의 5년 이상 경력 요건에 헌법재판소나 국제재판소에서의 법관 경력도 포함하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바르가 외에도 일반법원 판사로 재직한 경력이 없는 여러 헌법재판관이 쿠리아 법관으로 임명되면서, 헝가리 국가사법위원회와 국제사회에서는 이러한 인사 방식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오르반 정부는 이러한 인사를 강행했다.
오르반 정부 하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침해되면서, 헝가리는 2010년대 이후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관련 지표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가 발표한 법치주의 지수에서 헝가리의 점수는 2015년 0.58에서 2025년 0.50으로 하락해 세계 평균인 0.55보다 낮아졌다. 특히 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 부문 지표가 2015년 0.49에서 2025년 0.35로 크게 떨어져 세계 평균인 0.54에도 크게 못 미쳤다.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하는 ‘사법제도 평가표(EU Justice Scoreboard)’의 독립성 지수 가운데 ‘대중의 사법부 독립성 인식’ 항목에서도 헝가리는 2015년 EU 회원국 28개국 중 26위였으며, 2018년부터 2024년까지는 EU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오르반 정부의 사법부 독립성 침해에 맞서 헝가리 국내외에서도 여러 대응이 나타났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조약(리스본 조약) 제2조가 규정한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 위반을 이유로 유럽연합조약 제7조, 즉 제2조의 핵심 가치를 위반한 회원국의 권리를 정지시킬 수 있는 제재 절차를 발동할 것을 제안했고, 유럽연합 이사회는 여러 차례 청문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오르반 정부에서 법치주의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나타나지 않자, 2022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헝가리의 법치주의 침해와 부패가 유럽연합 예산 집행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해 헝가리에 대한 63억 유로 규모의 예산 지급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럽사법위원회네트워크도 각각 권고와 성명을 발표해 오르반 정부가 사법기관 개입과 사법개혁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 법치주의를 위한 판사들의 행진 시위
2025년 2월 22일 헝가리 판사협회를 중심으로 판사와 시민들이 부다페스트에 모였다. 이들은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며 법무부 청사까지 행진했다. 이 시위는 헝가리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법관들의 시위였다. 이날 시위에는 국제판사협회(IAJ) 회장 두로 세사와 유럽판사협회(EAJ) 회장 미카엘 쇼베리가 참석해, 사법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반드시 사법부와 협의해야 하며 사법부와 법관이 제도적·인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헝가리 판사협회)
헝가리 국내에서도 저항이 나타났다. 2024년 말 법원 인사규칙 개정으로 국가사법청장의 판사 임용 권한이 강화되고 급여 문제까지 불거지자, 판사협회(MABIE)를 중심으로 헝가리 사법사상 최초의 ‘법치주의를 위한 헝가리 판사들의 행진’이 조직되었고, 2025년 2월 부다페스트 도심에서 시위가 열렸다. 판사들뿐 아니라 시민들도 시위에 참여해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라는 국내외의 요구는 오르반 정부 후반기까지 지속되었고, 2026년 4월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오르반 정부 시기에 훼손된 사법부의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개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한 사법개혁 ②: 멕시코
1) 국민재생운동 정부의 헌법 개정과 사법개혁
2018년 12월 국민재생운동(Morena) 당 소속의 로페즈 오브라도르가 멕시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제4의 변혁’을 정치적 비전으로 제시하며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와 각종 특권구조를 해체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권 이후 마야 열차 인프라 사업과 스페인 에너지 기업 이베르드롤라의 전력 판매권 회수 등 주요 정책이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잇따라 제동이 걸리자,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사법부를 기업계와 함께 ‘화이트칼라 범죄자’라고 부르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2024년 6월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오브라도르 정부는 선거제도와 사법제도의 개편을 포함한 18개의 헌법 개정안과 2개의 법률 개정안을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이들 법안은 모두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주도했으며, 사전 공론화나 법조계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총선 결과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소속된 국민재생운동을 중심으로 한 여권 연합이 양원 재적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압승을 거두었고, 대선에서도 그의 후계자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당선되었다. 이에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9월, 새로 구성된 양원 의회에서 헌법 개정안이 일주일 만에 통과되었다.
2024년 개헌안은 크게 ▲ 연방대법원의 조직구조와 판사 보수 규정 변경(헌법 제94조), ▲ 판사 직선제 도입(헌법 제96조), ▲ 사법징계법원 설치(헌법 제94조·제100조), ▲ 재판 기간 설정(헌법 제17조)으로 나뉜다. 먼저 연방대법원의 조직구조를 개편해 대법관 수를 11명에서 9명으로 줄이고 임기도 15년에서 12년으로 단축했다. 또한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고, 연방대법원장은 선거 결과에 따라 2년마다 순환 방식으로 교체하도록 했다. 여기에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포함한 연방법원 판사의 보수 상한을 일반 공직자의 급여 기준에 맞춰 낮추고 퇴직급여도 제한했다.
판사 직선제는 판사의 임용 방식을 임명제에서 선출제로 전환한 것이다. 다만 주 법원 판사의 경우 임명제와 선거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며, 연방법원 판사는 2025년과 2027년에 걸쳐 전체 인원의 절반씩을 선출해 기존 판사들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도록 했다. 또한 연방법원 판사를 제외한 판사에 대해서는 기존의 최소 법조 경력 요건을 폐지했다. 선거 절차는 상원이 공고를 통해 후보자를 모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각각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지원자를 심사하고 예비 후보자 명단을 작성한 뒤, 공개 추첨을 통해 최종 후보자를 확정한다. 이후 관할 구역별로 선거를 실시한다. 판사 선거 시행규정은 선거자금 지원을 금지하는 한편, 60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을 허용한다.
개정 헌법은 기존 연방사법위원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분산해, 사법 일반행정을 담당하는 사법행정기관과 징계·감독 기능을 담당하는 징계법원으로 재편했다. 사법부와 별도로 설치된 징계법원은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제외한 연방법원 판사 등 사법부 구성원이 중대한 비위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들을 면직할 권한을 가진다. 여기에 헌법 제17조를 개정해 형사소송을 제외한 모든 연방 재판은 원칙적으로 6개월 안에 마치도록 했으며, 6개월 안에 선고하지 못할 경우 그 사유를 징계법원에 통보하도록 규정해 재판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오브라도르 정부는 “사법부의 부패를 근절하고 사법부가 국민의 의지에 반응하도록 하는 것”을 사법개혁의 주된 목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오브라도르 정부의 사법개혁은 전문성보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법조인들이 대거 사법부에 진입할 기회를 늘리고, 법원이 정권의 입맛에만 맞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높인다. 그 결과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을 견제하기 어려워지고 사법부의 독립성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오브라도르 정부의 사법개혁은 추진 초기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문제는 실제로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다.
2) 사법개혁 이후 멕시코 상황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사법개혁을 위한 헌법 개정안은 제출 당시부터 국내외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멕시코 판사들은 ‘연방 치안·지방판사 협회’를 중심으로 2024년 8월 전국 20개 주에서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으며, 법원 직원 단체들도 전날 사법개혁안에 반대해 법원 청사를 폐쇄하고 시위를 벌였다. 유엔 사법독립 특별보고관 마거릿 사터스웨이트는 2024년 7월 멕시코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 헌법 개정안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법치주의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했다. 사터스웨이트는 구체적으로 ▲ 판사 선거에 관한 세부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를 실시할 경우 후보자들이 당선을 위해 유권자나 정치세력과 결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 판사의 임기 단축과 징계 절차의 정치화가 사법제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 현직 연방법원 판사의 임기를 일괄적으로 종료할 경우 사건 지연과 사법 공백이 발생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고, ▲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징계 사유가 행정부와 입법부에 사법부가 종속되는 구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 멕시코 사법부 개편안에 항의하는 법원 직원들
2024년 8월 19일 멕시코 연방사법부 노동자 단체들은 오브라도르 정부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며 무기한 업무 중단에 들어갔다. 법원 직원들은 성명에서 해당 개편안이 “능력에 따른 경력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개편안”이라며, “이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여당을 견제할 유일한 균형추인 사법부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정부는 사법개혁을 밀어붙였고, 2025년 6월 판사 직선제를 강행했다. 선거를 앞두고 대법원장 노르마 피냐를 비롯한 다수의 연방법원 판사가 사임하거나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진 판사 선거의 투표율은 13%에 그쳐 역대 멕시코 연방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방대법원 대법관 선거에서도 최고 득표율이 5%에 그치는 등 전반적으로 저조한 득표율을 보였으며, 당선자 대부분은 집권당인 국민재생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조인이었다. 특히 후보자 선발 과정에서는 필기시험을 요구한 사법부 심사위원회보다 면접 중심으로 예비 후보자를 심사한 행정부와 입법부 심사위원회에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심지어 과거 마약 밀매조직 수장 엘 차포의 변호를 맡았던 실비아 델가도가 주 판사로 당선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선거 결과와 관련해 미주기구(OAS)는 6월 보고서와 9월 성명을 통해 멕시코 정부의 사법개혁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법치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개혁 과정의 불투명성과 반대 의사를 밝힌 판사들을 상대로 공개적인 위협이 거듭 제기된 점을 문제 삼으며, 후속 입법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셰인바움 대통령은 미주기구의 견해를 주권 침해라고 반박하며, 사법개혁은 멕시코가 주권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이러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사법개혁의 여파로 개인의 권리구제와 행정부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약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5년 10월 셰인바움 정부는 국가 공권력의 행위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개인이 법원에 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일종의 헌법소원과 유사한 제도인 암파로법을 개정했다. 정부는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고 절차를 신속하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소송 자격과 증거 요건 등을 까다롭게 변경함으로써 개인과 단체의 권리구제 수단을 제한하고 행정부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어렵게 한다고 비판했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판사 직선제 시행 이후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선출된 판사 가운데 사법 경험이 부족한 인물이 상당수 포함되면서 업무 수행 능력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멕시코 일간지 《엑셀시오르》에 따르면, 판사 직선제 시행 이후 9개월 동안 10명 이상의 판사가 과도한 업무량과 업무 경험 부족 등을 이유로 사임했다. 특히 24세의 신임 연방판사가 심리 절차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신임 판사들의 전문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오브라도르 정부가 추진한 사법개혁은 멕시코 사법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국민재생운동 정부가 내세운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라는 명분과 달리, 사법개혁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사법부의 본래 기능을 크게 훼손하고 있으며, 나아가 멕시코의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4.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한 사법개혁: 벨기에
1) 사법개혁의 기폭제가 된 뒤트루 사건
벨기에는 전통적으로 정당 간 정치적 타협을 통해 국가의 주요 사안을 결정했다. 사법부 인사 역시 이러한 정치적 타협의 주요 대상 가운데 하나였으며, 법관 임명이 정치세력 간 협상의 대상이 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취약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법관에게는 일정한 연령과 법학 학위, 법조 경력 등의 자격 요건이 요구되었지만, 법관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이 의회 다수당과 협의해 선정했다. 결원이 발생하면 그 수에 따라 정당별로 법관 추천권을 배분하고, 추천받은 사람을 법무부 장관이 국왕에게 제청했다. 따라서 의원내각제 하의 연립정부에서 정당 간 나눠먹기식 인사가 횡행했으며, 정치권과 연줄이 있는 법조인이 판사로 임명되거나 유력 정치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두고 법관 인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정치권과의 연계 여부에 따라 법조인의 법관 진출 기회가 달라지면서 법조인 간 격차가 심화되었고, 젊은 법조인의 법관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법관의 고령화 문제도 나타났다. 이러한 가운데 벨기에 정부는 1991년 경력 법조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능력시험과 젊은 법조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허가시험을 도입해 법관 임용 과정의 객관적 기준을 강화하고 진입 기회를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최종 임용 과정에서 법무부 장관과 정당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사법부 인사에 정치권이 강하게 개입하던 관행은 1996년 발생한 ‘뒤트루 사건’을 계기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 사건은 사법부뿐 아니라 경찰을 비롯한 사법체계 전반의 문제점을 크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1996년 뒤트루는 두 소녀를 납치·감금한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수사 과정에서 그가 1995년에도 여러 명의 소녀를 납치해 해외 성매매 업소에 넘기고 방치해 아사하게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공분을 샀다. 특히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적절히 대응했다면 사건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뒤트루는 이미 1989년 다섯 명의 소녀를 납치·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13년을 선고받았지만, 1992년 약 3년을 복역한 뒤 법무부 장관의 승인하에 가석방되었다. 이후 경찰과 사법부는 뒤트루가 자택 지하에 소녀들을 가두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주민들의 제보를 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조직이 헌병대(국가경찰)와 사법경찰로 나뉘어 있었고, 조직 간 수사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수사 정보의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공범 가운데 지역 경찰 간부가 있었으며, 해당 경찰관이 뒤트루와 공범들을 보호하려 한 정황이 밝혀지면서 경찰의 수사 실패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졌다.
경찰의 무능과 책임 회피에 더해, 사법절차를 둘러싼 불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지며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졌다. 공범과의 유착 의혹을 받던 예심판사(수사 담당 판사)는 수사에서 배제되지 않은 반면, 피해자 가족을 위한 모금 만찬에 참석한 다른 예심판사는 해임되었다. 이를 계기로 수사기관뿐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도 더욱 커졌다. 결국 경찰과 사법기관의 무능과 유착 의혹, 그리고 이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사진] 1996년 백색행진
1996년 10월 20일 약 30만 명의 시민이 브뤼셀에 모여 순수함과 무고함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흰색 풍선과 꽃을 든 채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은 뒤트루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찰과 사법기관을 규탄하고 개혁을 요구했다. 백색행진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파업과 시위가 이어졌으며, 알베르 2세 국왕도 이례적으로 공개 발언에 나서 국가의 쇄신과 변화를 촉구했다. 이후 장뤼크 데하네 총리는 사법·경찰기관의 정치적 인사 관행을 개선하고 사법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출처: 《AFP》)
그 결과 1996년 10월 약 30만 명의 시민이 수도 브뤼셀에 모여 흰옷을 입고 백색 풍선을 든 채 침묵 행진을 벌였다. ‘백색행진’으로 불린 이 시위는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개혁 요구가 표출된 사건이었다. 이후 뒤트루 사건의 진상과 사법체계의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TV 공청회와 의회 조사위원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조직 간 정보 공유의 실패뿐 아니라, 사법부의 인사와 행정에 정치권의 영향력이 작용해 온 구조도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경찰과 사법제도의 전면적인 개혁 요구로 이어졌고, 1998년 이른바 ‘문어개혁’으로 결실을 맺는다.
2) 1998년 벨기에 ‘문어개혁’
1998년 겨울 벨기에 의회를 구성하던 8개 정당은 경찰과 사법제도 개혁에 합의했다. 8개 정당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문어개혁’이라 불린 이 개혁은 분할되어 있던 경찰조직을 단일 조직으로 통합하는 경찰개혁과 사법부 개혁을 포함했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뒤트루 사건을 계기로 기존 경찰·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법관 인사와 사법행정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이 주요 문제로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부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되어 공정하게 수사와 재판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법관과 법조계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유엔 사법독립 특별보고관 파람 쿠마라스와미는 현지에서 여러 법관과 관계자들을 면담한 뒤 그 결과를 조사보고서로 제출했다. 보고서에서 쿠마라스와미는 벨기에 시민들이 사법부에 분노하고 불신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법관 임명 과정에 작용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지적했다. 또한 법관의 임명과 승진을 담당하는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그 개혁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관 노동조합 역시 사법부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독립적으로 법관 인사를 담당할 기구의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치권 내부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이러한 개혁 요구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1998년 4월 뒤트루가 탈옥하면서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이 사임하고 정치적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를 계기로 여야 8개 정당이 협상에 나섰고, 법관 노조도 직접 협상에 참여해 법조계의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결국 정치권은 법관 노조의 개혁 요구를 반영해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혁에 합의했다.
1998년 사법개혁의 핵심은 독립적인 최고사법회의를 설치한 것이었다. 종전에는 정치권과 법무부 장관이 법관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혁 이후에는 최고사법회의가 법관 후보자를 심사·추천하고 법무부 장관이 그 추천에 구속되도록 함으로써 정치권이 법관 인사를 좌우할 여지를 크게 줄였다. 또한 헌법을 개정해 최고사법회의를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그 권한을 명시했으며, 특정 정치세력이 장악하기 어렵도록 구성과 운영 방식을 설계했다.
또 다른 주요 개혁 내용은 재판법을 개정해 법원장직에 임기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전까지 법원장은 정년까지 재직할 수 있었으며, 사건 배당과 법관 평가 등 법원 내부 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개혁안은 이러한 장기 재직 구조를 바꾸어 법원장직을 7년 임기제로 전환하고 최고사법회의의 평가를 받도록 했다. 이는 특정 법원장이 장기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하고 사법행정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후 최고사법회의는 법관 임용시험을 주관하고 구술평가와 다양한 선발 절차를 새롭게 도입해 임용 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였다. 이를 통해 법관 임용은 정치권과 정당 간 협상에 의존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독립된 기구가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에 따라 후보자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정치권이 법관 인사에 개입할 여지도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문어개혁 이후에도 사건 적체를 비롯한 사법부의 낮은 업무 효율성이 계속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권이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문어개혁은 정치권의 법관 인사 개입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한 중요한 사법개혁 사례로 볼 수 있다.
5. 사법부 독립의 의미: 사법부의 문제를 이유로 훼손될 수 없다
사법부는 권력분립의 구조상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능동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아니다. 사법부의 존재 이유는 다른 국가기관의 권력 남용을 막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호하는 데 있으며,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려면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된 상태에서 양자의 권한 행사를 사법적 판단을 통해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스스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독립성을 확보하거나 지켜낼 수 있는 기관이 아니므로, 다른 국가기관의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법적·제도적 보장뿐 아니라, 다른 국가기관과 정치인·관료·공무원이 이를 존중하고 사법부의 결정을 이행하는 데에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세 국가의 사례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단순히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선언되는 원칙이 아니라, 법관 인사와 법원의 권한, 사법행정 등을 둘러싼 제도와 관행 속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임을 보여준다. 헝가리와 멕시코에서는 정치권력이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법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던 제도적 장치가 약화되었다. 반면 벨기에는 기존의 정치적 법관 임명 관행을 바꾸기 위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최고사법회의를 설치하고 법관 임용의 객관적 기준을 강화했다. 그 결과 정당 간 정치적 협상과 이해관계가 법관 임용에 작용할 여지를 줄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법관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처럼 사법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고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사법부가 하나의 권부로서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전제라는 점은 현재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법개혁론을 바라보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최근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둘러싸고 ‘제왕적 대법원장’으로 인한 국민의 사법부 불신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며, 지난해 12월 3일 발의한 이른바 ‘사법행정 개혁 3법(법원조직법·법관징계법·변호사법 개정안)’의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법안에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비법관이 다수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외부에 의한 사법행정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법원조직법), 법관징계위원회에서 비법관 위원의 비중을 늘리는 내용(법관징계법), 전관예우 금지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변호사법) 등이 담겨 있다. 이러한 법안은 사법행정에 외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할 소지를 높인다는 점에서 사법부 독립성 침해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일각에서는 사법부 독립이 법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도그마라고 주장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은 개별 재판에서 법관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법부 독립은 법관이라는 특정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협소한 원칙이 아니다. 법관의 임명·승진·전보·징계와 법원의 조직·예산을 결정하는 사법행정은 법관이 정치적 압력 없이 재판할 수 있는 조건을 좌우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정치권력이 이러한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법관에게 특정한 판결을 직접 요구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사법부의 판결이나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다른 권력이 사법부의 구성과 운영에 개입할 경우, 앞서 살펴본 헝가리와 멕시코의 사례처럼 특정 정치세력이 권력을 남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일은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나 개혁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개혁 과정에서 독립성을 훼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지 감시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법부의 제도와 판결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사법부를 다른 권력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하거나 권력분립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법후퇴는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이 권력자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나 사법부 독립성의 훼손으로 이어져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침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회운동 역시 사법제도와 관행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이는 모든 권력이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에 따르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